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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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쾌락과 행복을 찾기 위해서 읽었던 <에피쿠로스 쾌락>

이번에도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책에 감탄하며, 에피쿠로스와 쾌락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유의미한 자연철학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왜 아직 의미가 있을까? 나에게 그리스 철학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원소론과 같이 묘하게 직관적이면서도 과학적이지 않은 인상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이 시기의 철학자로서, 변증학은 우리를 오도하는 무가치한 학문이라 배척하며(36p), 사물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자연철학자로서의 사유를 집대성 한다. 감각과 지성을 기준으로, 규범론, 자연학, 윤리학을 발전시키며 많은 현상을 설명하고 인생과 그 목적에 대해 사유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주제가 ‘행복’이었으므로, 자연철학은 이를 향하고 있다. 묘하고 비과학적으로 느껴지던 고대 그리스 철학이 여전히 유의미하다면, 실체적이면서도 행복을 향한 철학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애와 서신, 에피쿠로스 철학의 개괄

현대지성 클래식의 <에피쿠로스 쾌락>은 에피쿠로스의 생애와 그의 철학 전반을 효과적으로 소개한다.

그의 저작만 해도 서른 편이 넘는데, 서신 세 편으로 그의 철학을 소개하는 게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서신들은 에피쿠로스가 스스로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개괄하며, 자신의 저작 내용을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의 철학을 소개하는데 유용했다. 첫 번째 서신과 두 번째 서신은 규범론과 자연학으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는 자연철학의 토대가 되는 부분이므로 먼저 읽어보면 좋은 내용이었고, 그의 철학을 알 수록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했다.

백미는 역시 인생과 그 목적을 탐구하고 일상의 선택과 관련한 윤리학에 있다. 윤리학에 대한 서신을 읽고 후술 되는 주요 가르침과 어록, 저작들의 단편을 개괄하며 에피쿠로스 철학의 많은 가르침을 알 수 있었다.




알 수록 즐거운 <에피쿠로스 쾌락>

쾌락, 정확히는 고통의 반대인 '즐거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즐거움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모든 것을 즐거움을 향하도록 설정해 본 적이 있었을까? 쾌락에 정신적인 쾌락과 육체적인 쾌락이 있고, 쾌락이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관점, 그 한계를 인식하는 과정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쾌락과 공존할 수 있는 것과, 공존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고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 쾌락의 반대인 고통과 해악을 피하는 방법 모두 유익했다. <에피쿠로스 쾌락>은 탐구할 만한 가치이다. 선과 공존하며 쾌락을 무한하게 탐하지도, 배척하지도 않는 나만의 지점을 찾는 2023년을 기약할 수 있었다.


감각으로 심상이 만들어지고 이를 지성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는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알 수 있었던 책. 지성적인 쾌락의 탐구를 통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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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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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과 대기근을 겪고 있던 1789년의 프랑스.

삼부회 소집으로 계층의 결집과 충돌이 불거지고, 무장한 왕실 친위대가 광장을 둘러쌌다.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운 시기. 이런 시기의 가난한 민중은 어떤 모습일까?

7월 14일의 바스티유 함락은 민중이 혁명을 시작했다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다.

상징이 된 이날의 현장을 에리크 뷔야르는 <7월 14일>에서 독특하게 옮겨 놓았다.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법

술술 읽히는 책이다. 주인공도 책 전체에 이어지는 감정선도 없었다. 처음에는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 익숙하게 시작했는데, 끝까지 배경만을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택을 보여주었다가, 길거리를 보여주고, 군중을 따라서 여기로 들어갔다가 저기로 들어가고, 뛰어가는 한 사람을 쫓기도 했다. 동생을 찾는 부부 이야기, 남편을 찾는 부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뚝 끊겼다. 손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사슬을 내리쳐 도개교를 내린 이는 왜 잊혔을까? 자꾸만 다른 이야기로 건너갔다. 중간중간에 대비되는 사회상의 기술은 담백했다.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이었다. 일찌감치 붙잡혀 처형된 민중도 혁명이었다. 판자를 건너다가 추락한 사람도 혁명이었다. 이런 식의 사건의 기록, 현장의 기억은 파편적이고 완전하다.

소설이 그리는 현장의 모습

소설은 흥분한 군중의 산발적인 습격, 약탈, 무기를 얻기 위해 여기로, 저기로, 몰려다니고, 바스티유로 향해 대포를 쏘고 도개교를 내려 왕권의 상징인 감옥을 함락하는 과정을 그리기에 과연 적합할까? 소설의 장면 묘사는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세밀했다. 영화라면, 당시의 복식을 입은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억양, 소음을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야 했던 그들의 아이, 일상인 고생과 짧은 행복은 알려줄 수 없다. 그들의 양말은 누가 뜨개질 했는지, 외투는 어디서 구입했는지 일일이 알려줄 수 없다. 에리크 뷔야르는 소설이라는 장르로 모든 장면을 넓게, 또는 좁게, 길게 또는 짧게 자유자재로 기술하며,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현했다.

14세 아이의 팔이 관통되고, 총상 입은 12세의 아이가 판자에 옮겨진다. 수많은 단역들의 이름을 적어 넣고, 감정을 치열하게 묘사하더라도, 불현듯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건들로 인해 시시각각 군중이 더욱더 흥분하듯이, 독자들도 군중 속에 섞여들어가 같이 흥분되어 간다.



잔상과 사명감

현장감을 느끼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고,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통찰을 담은 묘사는 내레이션으로 기능하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문득, 잠시 어지러운 마음이 든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에리크 뷔야르는 “그들과 아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75p)고 했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 봐야 한다”(78p)고 했다. 애끓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는 “모르는 것을 글로 옮겨야만 한다”(90p)고도 했다.

아무리 사실을 수집하고, 철저히 정열적으로 기술해도 눈에 본 모든 잔상을 떨칠 수 없고, 기술해낼 수 없다. 에리크 뷔야르는 최선을 다한다. 모든 걸 다 알아도 부족하지만, 결코 모든 걸 전달할 수 없다. 독자는 최선의 결과물을 샅샅이 읽으며 더욱 허기를 느낀다. 아마도, 허기까지 의도된 최선일 것이다.

보이는 것과 상상해야 하는 것,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것 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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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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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최후의 작품이 발자크 평전이라니! 발자크라니~~ 그의 필력으로 발자크를 어떻게 해체해놓았을까? 발자크의 생애는 원래부터 엉망진창이기때문에,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궁금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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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3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공경희 옮김, 정희진 분류와 해설 / 열린책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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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은 한동안 내가 읽은 유일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었다.

<자기만의 방>만 앞에 두고 버지니아 울프를 굳이 좋아해야 할까를 고민했었다.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는 곱씹기엔 허무하고,

연간 500파운드의 유산을 받고도,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남편을 두고도,

기어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그녀에게 불만족했다.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만 읽다가, 다시 읽은 <자기만의 방>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의록인 <자기만의 방>

울프는 강의를 의뢰받고, 여성 소설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연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울프는 ‘여성의 본질과 소설의 본질’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를 원하며, 스스로의 한계, 편견,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신이 도달하게 된 의견을 밝히며 청중이 스스로 생각하여 진실에 다가가기를 촉구한다.

이 강의에서 울프는 실제 사례와 허구의 사례를 사려 깊고도 철저하게 해석한다. 강연록이지만 에세이 같기도 하고,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같기도 한 묘한 텍스트다. 특유의 사색적인 문장으로 울프는 청중 또는 독자를 자신과 동기화 시킨다. 사려 깊게 읽는다면, 어느새 그녀와 같은 지점에 서 있을 수 있다.



저항? 두루뭉술한 공감?

나는 백 년 가까이 지난 현대의 독자로서 그녀의 동기화에 저항하려고 한다. 나는 방도 있었고, 도서관도 자유롭게 다니며 교육도 원하는 만큼 받았고, 책도 무엇이든 읽고 글도 자유롭게 쓴다. 하지만 공감은 울프가 의도한 ‘여성의 본질과 소설의 본질’의 진실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진실과 가까운 곳, 그곳이 어디일까?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공감하고 싶지는 않다.

열린책들의 <자기만의 방>은 정희진의 해설로 <자기만의 방>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정희진을 수식하는 타이틀이 항상 궁금했는데 ‘여성학자’라는 타이틀은 절묘하리만치 모호하다는 생각이다. 정희진의 해설은 <자기만의 방>의 해설로서 머물기에는 지면이 너무 협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 정희진의 해설로 <자기만의 방>의 답답증이 풀리기에, 완벽한 해설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여러 번, 더 깊게, 더 맥락적으로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을 서구의 여성주의 고전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 자신을 위해서.

p. 195

좋아하지 않을 이유, 공감하지 못할 이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을수록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대한 소중하게 사용하려고 애썼으며, 그럼에도 끝내 포기한 것은 불가항력이지 않았을까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의 글을 신뢰하고, 페미니즘 또는 여성운동과 같은 범주, 여성작가라는 분류를 벗어나, 버지니아 울프만의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고유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굳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고 그녀에게 공감하지 않을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옹졸하고도 우스운 일이다.

페미니즘? 여성학자?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공통의 언어는 여전히 부재중이다. 널린 게 지면이지만, 공유되지 않았기에 자꾸만 돌출되는 언어 덕분에 좁아지는 지면도 답답할 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지점을 만들고 그 지점을 지켜주는 정희진 작가님,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그 자체로 지경을 넓혀주는 ‘여성과 소설’의 본질에 다 가있는 많은 작가님들을 좀 더 생각해 본다.

달성되지 않을 목표(183p)는 계속해서 조금씩은 달성되고 있는 중!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여러 번, 더 깊게, 더 맥락적으로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을 서구의 여성주의 고전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 자신을 위해서.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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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on Your Heart 쓰면서 새기는 영어 지혜의 책장 - 당신의 손끝에서 만나는 인생 잠언 Proverbs Write on Your Heart 쓰면서 새기는 영어
고정인.고지인 지음 / 시대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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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을 읽고 또 읽고 쓰고 현대어로 묵상하며 쓸 수 있는 책이라니 너무 좋을 것 같다. 읽어도 읽어도 단 말씀으로 가득찬 책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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