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노재승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름이 좀 있고 헐벗었지만 완벽한 만화 주인공답게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박삼술 할아버지와 함께한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 고전운문편>

초 대형 블록버스터급 대 좀비 액션 히어로물 한 편을 보고 나면,

21편의 고전 운문이 머릿속에 좌르르 펼쳐진다.

대단히 끈질기게 공부를 좀 시키는 그래서 그래도 공부가 될 수밖에 없는 책.




 

박삼술 할아버지

젊은 주인공도 생각해 보았지만 박삼술 할아버지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노재승 작가님 - (419p)

작가님을 홀린 박삼술 할아버지 덕분에 공부가 되는 만화를 만날 수 있었다.

박삼술 할아버지 덕분이라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5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신 작가님에게 계속 영감을 불어넣고 틈틈이 만화를 그리게 한 캐릭터는 분명 자체적인 힘이 있다.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능력은 완벽한 만화 주인공이지 싶다. 박삼술 할아버지가 고전 운문 편을 알려주셨으니, 고전 운문 21편에서 그치지 않고 몇 편 더, 아니 진도 착착 빼서 현대시까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박삼술 할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강의를 이어나간다. 할머니가 집안일을 시켜도, 커피 한 잔을 하러 가도, 할머니 심부름을 하면서도, 할머니가 좀비가 되어도(?), 좀비떼에 쫓겨도, 좀비가 우글우글한 기차에서도, 침을 흘릴지언정, 손녀딸에게, 학생이 앞에 없으면 무전기를 통해서라도 과외를 한다. 이제나저제나 국어를 가르칠 생각만을 하시는 노재승 선생님의 집념이 형상화된 것일까?

강의는 계속된다

기다리기 지루하니... 수업을 하겠다! 내가 손녀딸 과외를 해야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나? - 4. 서동요, 58p

오늘은... <제망매가>를 배우겠다. / 듣지도 않는데 무슨 말을 하세요. / 무서워서 그래. - 7. 제망매가, 116p

'이렇게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한 고려가요가 있다네.' 10. 정석가, 178p

손녀딸이 오기를 기다리며 과외 준비를 해두고, 손녀딸이 오면 반기며 "오늘 과외는..." 하면서 시작하던 일상 속의 과외는 장소와 배경이 조금씩 바뀌며 급물살을 탄다. 자리에 앉아서 할아버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상상의 전개일 줄 알았는데, 웬걸, 이들은 직접 달린다.

격변의 상황은 상황 대로 흥미진진한데, 절묘한 시점에 착착 맞아 들어가는 고전 운문이 매력적이다. 블록버스터급 이야기 전개 중에 뜬금없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 어째서, 벌어지지 않을 법한 만화 속 상황들과 딱 맞아떨어진다. 갑자기 시작해서, 상황 속에서 운문의 해석과 뜻이 자연스럽게 녹아 나와서, 나중에 그 고전 운문을 떠올리면 만화 속 상황과 함께 운문의 특징들이 생각나게 한다. 환상의 콜라보에 너무 빠져서, 학습만화의 예찬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재미있는걸, 21편의 고전 운문을 반기면서 듣고, 문득 성삼문의 시조 '이 몸이 죽어가서'를 뚝딱, 그리고 감동적으로 이어지는 '도산십이곡'은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다.



웹툰으로도 만나볼 수 있는 그조공

네이버 웹툰에 베스트 도전만화였던 그조공,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를 책을 읽고 찾아보았다. 한 컷 한 컷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웹툰의 특성 덕분에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매 컷을 확대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컷 크기와 구성이 한눈에 보이고, 읽는 속도를 스크롤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책이 훨씬 보기에 편한 듯하다. 그리고 복습을 하려면, 부연 설명을 꼼꼼히 읽어보기엔 아무래도 책이 필요한 것 같다. 웹툰은 웹툰 대로, 책은 책 대로 즐겨왔었는데, 단행본을 기다리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당장 이번 시험범위가 고전 운문이지는 않아서 읽기에 무척 재미있었고 보람찼던 <그래도 조금 공부 되는 만화>

처음에 목차를 보았을 때는 각 운문이 모두 생경하게만 느껴졌는데, 다시금 목차를 펴보니 이야기 전개와 함께 각 운문의 특징과, 몇 절이 생각나면, 무척 성공적이지 않은가? 사이사이 재미있는 요소들을 찾아 다시금 펼쳐보며 샅샅이 읽게 되는 매력적인 만화책이기에 열심히 보면서 고전 운문도 마스터해 보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골딩의 <핀처 마틴>

<파리대왕>은 친철한 순한 맛이었다, 이 책은 매운맛, 아니 쓰디쓰거나 피비린내 내지는 물 비린내가 나는 고약한 맛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고약한지

정말이지 고약한 책이다. 고약하다 고약해. 되뇌며 읽었다. 잘 안 읽히는 책을 읽을 때 내가 쓰는 방법은 한 글자 한 글자 그저 읽어 나가는 건데(이게 방법?), 전혀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포를 그려내더니, 꾸물꾸물 기어간다. 심지어 삿갓 조개는 자꾸 튀어나온다. 아... 삿갓 조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움직이고 있는 거야.. 끈덕지게 사경을 헤매는 듯한 서술과, 불현듯 한 혼잣말! 갑자기 내뱉는 말은 섬뜩하리만치 절절했다. 아 진짜, 이 책 너무 고약한데?

의식이 무너지고, 광기가 느껴지고, 내면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일깨운다. 버티지만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힌다. 덮쳐오는 파도, 암석, 물…

한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는데, 문득 닿는 심연이 있다. 정말 이렇게 처절하게 천천히 죽어가는 것도 고역인데, 아니 죽어가는 게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고역인데, 주인공의 꿈틀거림을 읽으면서,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미치지 않기 위해 의식의 가느다란 끈을 붙잡았던 기억. 죽을 만치 고통스러웠던 순간. 그 순간이 지나고, 내가 그렇게 죽을 만치 고통스러웠던 건 아니라 생각하며, 퇴색되어갔던 느낌들이 살아났다. 이 책이 닿아있는 심연은 분명 존재한다. 삶에 대한 의지와... 이식이 어떤 가느다란 끈으로 느껴지는 아득한 정신의 노력 말이다. 나는 지성적이고, 귀중하다. 그러니 부여잡고 미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나를 놓아버리면 정말 끝이다. 되뇌는 의식과, 그걸 되뇌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영원과 같은 시간이 놀랍게 되살아났다.



그런데, 그의 기억들이 드러나면서, 주인공은 점점 더 악인으로 묘사된다. 상정할 수 있는 악인, 공감하고 동정하고 싶지 않은 악인. 왜 이렇게 고약하게 그리는 걸까, 적응할만 하나 했더니만, 이기적인 인물이 튀어나온다. 이런 주인공을 만들 필요가 있는 걸까, 어쨌든 이 책은 또다시 고약해진다. 그리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게 한다.

반전

이 책은 반전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반드시 모르고 읽어나가야 하는 반전이다. 반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반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토록 처절하게 몰아붙인 주인공, 철저하게 망가뜨린 주인공에게 준비된 반전이 있다는 것,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약한 윌리엄 골딩의 한방이다.

이 책이 나에게 불러일으킨 심상, 의식의 무너짐과 지성과 삶에 대한 의지는 강렬했고, 공감받던지, 받지 않던지 와 상관없게 만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닿아있는 마지막 동질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죽음을 체험하고 죽음 끝에서 돌아와야 알 수 있을까? 그 모든 감각들을 낱낱이 풀어내는데, 처절하고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하고 살벌했다. 이 정도의 깊이, 이 정도의 집요함, 문학이, 이렇게까지 강렬할 수 있을까. 윌리엄 골딩의 고약한 성미에 신물이 날 정도였고, 그래서 그냥 다시 <파리대왕>을 읽으며 힐링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힘든 만큼 벗어나기도 힘든 책, 읽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경험이 되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장 한 장 마음을 다해 읽었다. 사실 멈출 수가 없었고, 소설 속 여러 명의 인물들과 상황에 공감하며, 생각해 보지 못한 곳,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에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완독 후에 감상도 잘 쓰고 싶은데, 아마, 안 될 것 같다. 반전과 반전, 미스터리가 풀리는 방식 그리고 결말까지 완벽했기에, 모든 걸 스포일러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은 후일담 없이도 책 안의 내용만으로 완벽한 책이기도 하다.

짧은 감상을 남겨야 한다면, 다 읽었을 때의 께름한 감정 없이, 쾌감과 함께 묵직한 생각 덩어리들을 한가득 가질 수 있었던 책, 이라고 해야겠다.



가까운 듯 다른 대만

이 책이 한국 소설이었다면, 이만큼 환호하진 못했을 것 같다. 대만이라는 가까운 듯 다른 적당한 거리감이 이 소설에 더 몰입하게 했다. 변호사, 학원 선생이라는 직업,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 가족 관계, 이웃 간의 관계 등 소설 속 여러 일상적인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여러 요소들의 이질감에 훨씬 민감했을 것 같다. 다른 나라라는 약간의 거리감으로 이질적인 요소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

참, 대만의 배경이 흐릿하고 궁금해서,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한 편을 보았는데, 주제는 전혀 달랐지만 대만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이 책을 읽으면서 종종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 그런데 주제는?

소설의 중심이 되는 사건과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무척이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다뤄야 하지만 감히 다룰 수 없었던,

제대로 다루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사건들과 감정들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요 주제를 뭐라고 해야 할까가 좀 의문이다. 책 소개 ‘성폭력 피해자의 진실성을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책 소개에 완전히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진실성'을 다뤘다고 보지 않는다. 넓게 ‘성폭력’이라고 하기에도 아쉬운,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도, 가정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연한 사회문제라고 하기에도 탐탁지 않다. 남녀가 대립되는 구도도 아니다.


 


일례로, 소설에서 지엽적인 사건으로 나오는 사건 중에, 미성년과 관계를 맺어 합의금을 물게 된 이제 막 성년이 되는 남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미성년 소녀의 엄마는 벌써 몇 번이나 다른 남자들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전력이 있었다. 악의가 있다면 엄마에게만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 이 사건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정해져 있는 걸까? 당사자는 몇 명인가? 상처를 받은 사람은? 충격을 받은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던 걸까? 합의금으로 일단락이 될 것 같았던, 소설에서 비중도 크지 않았던 이 사건조차 다각도에서 생각하게 했다.

하나둘씩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 소설의 백미는, ‘비밀’이 드러나면서 애초에 잘못 놓인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해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잘못 놓여 있는지 꼼꼼히 세어봐야 한다. 사실, 이 정도로 잘못 만들어졌다면 전부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게 맞겠는데, 세상 일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상처받은 사람들은 힘들게 무언가라도 제대로 놓고 싶어 할 뿐인데, 어디에 무엇을 놓아야 할지, 그걸 대체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삶이 그렇게 무한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철저히 해체해 나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여러 번 충격을 받았고 여러 번 좌절했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디가 어떻게 왜 부서졌는지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부서진 곳을 같이 공유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결말이 전혀 께름칙하지도 않았고 아쉬움도 없었는데, 모두가 그럴지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나 공유된 시선을 가질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띠지에 있었던, “우샤오러의 모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에 완전히 공감했다.

나도, 꼭 다 읽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은 짧은 호흡과 명확히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언제나 환영이다.

헤밍웨이가 의외로 단편이 많은 작가라는 것을 알고서 기대하며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헤밍웨이의 단편에 더 갈증이 나게 되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치밀한 단편이 매력적이었던 새움 출판사의 <킬리만자로의 눈>

많지 않은 총 6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 킬리만자로의 눈 / 킬러들 /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 / 미시간 북부에서 / 혁명가 / 빗속의 고양이 *

심장이 둘인 큰 강(Big Two-Hearted River)이나 인디언 마을이 없었던 것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그 두 이야기를 뭐 특별히 좋아했거나 그러지는 않으므로-

이 책 만의 구성이 있었고, 하나같이 좋았으면 된 게 아닐까?



짧고 선명한 문장

헤밍웨이의 매력은 그의 짧고 거친 듯 선명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투박한데 치밀하다. 툭툭 내뱉는데 심연까지 건드리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별스럽게 다가오는 문장들. 별일이 아닌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이례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독특하다. 조난을 당해도, 낚시를 해도, 살인자들을 만나도 헤밍웨이 같기만 하다면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킬리만자로의 눈은 역시나 강렬했고, 킬러들은 우스꽝스럽게 섬뜩했으며, 빗속의 고양이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 속에서 묘한 기류가 와닿았다. 다른 단편들도 각자 독특하면서 요상한 매력이 있었다. 단편은 원래가 아쉬움이 남는데, 강렬함과 아쉬움이 극대화 된 듯 하다. 단편인 건 알지만, 그래도 좀 너무 짧다 싶은 건 조금 화도 나더라는.



 

번역 덕분일까?

책을 읽다가 한 문단 전체를 필사했었다. <빗속의 고양이>의 초입, 흔해 보이는 배경 묘사였는데, 독특하다고 생각되었다. 몇 문장 되지 않는데 그 분위기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그 문단이 역자 해설에서 번역의 차이의 예로 다루는 걸 읽고선 무척이나 놀랐다. 기존 번역과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문학 번역은 나에게 그저 난해하게만 느껴졌는데, 문학번역에서도 가능한 직역을 했을 때에만 느껴지는 감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득 필사의 욕구가 느껴졌던 번역문을 역자 해설의 영어 문장으로도 필사해 보고, 헤밍웨이의 원문의 느낌에 더욱 가 닿을 수 있었다. 좋은 번역과 옳은 번역, 번역된 시대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나의 감상과 번역자의 감상이 동일한 언어로 표현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모쪼록 여러 판본으로 읽어보고, 원서로도 읽어본다면 좋아하는 작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사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피하고 싶은 장편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는 너무 좋아하는 소설이다. 직접 전쟁에 뛰어들고, 쿠바에서 살았던 특이한 작가. 그 작가의 색이 가장 잘 드러난 게 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즐거운 읽기였던 새움 출판사 움라우트 세계문학, 헤밍웨이 단편선 <킬리만자로의 눈> 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웃기다. 고상하게 읽어나가다가 풉, 그러다 크크크킄 웃게 되는 책이다.

동시대 사람들이 읽었으면 더 웃겼을 텐데, 그 시절의 파리가 왠지 멋져 보여서 조금 덜 웃기다.

장르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풍자만화, 은근히 중독적이었다.

산책 어디까지 해봤니?

산책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점심 먹고 하는 산책, 강아지와 하는 산책, 운동 삼아 하는 산책, 요즘 산책도 종류가 다양하다. 책을 읽기 전엔 산책으로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지 몰랐는데, 루이 후아루트는 온갖 산책을 찾아낸다. 산책자들을 유심히 보다가, 산책한다고 하고 바로 앉을 곳을 찾는 이를 짚어낸다. 이들은 25보 정도 걷다가 벤치를 발견하면 앉는다고, 이들의 산책은 조금 가다 앉는 게 관건(46p)이라고 한다. 멜론을 사러 가는 산책자도 찾아낸다. 개를 데리고 나와서 자기는 안 걷고 개를 훈련시키고 "아, 오늘 산책 잘했다." 하는 산책자를 말한다. 수많은 산책자들을 자세히 묘사하며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데 읽을수록 그 맛이 있다.



무궁무진한 풍자거리

‘산책자’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파고드는데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고 다채로울 수 있을까? 여러 분류의 산책자를 찾고, 제대로 된 산책이 하지 않는 자를 지적하고, 완벽한 산책자를 치켜세운다. 직업별로 분류하기도 하고, 군인 산책자를 칭송하기도 한다. 산책자와 대비해서 무위도식자, 외지 구경꾼, 부랑자를 묘사한다. 범위를 넓혀 장소와 거리를 이야기하고, 산책하면서 벌어지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이야기한다. 산책에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일을 이리저리 배치해서 산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온갖 것들을 풍자하면서 말이다. 사실 산책과 조금만 관련이 있으면 된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풍자할 수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산책자 생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만 말이다!

산책이 데려다준 풍자의 묘미

<산책자 생리학>을 읽으면서 풍자의 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산책자 생리학>에서 말하는 완벽한 산책을 꿈꾸며 세심하게 산책을 하다가, 얼마 전까지 공사를 해서 새로 깔린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인지 우레탄인지로 된 바로 옆길은 한층 더 울퉁불퉁 한데, 그쪽이 아닌 멀쩡한 보도블록들을 새로 바꾸다니, 작년에 한 일이라는 게, 이런 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 이런 걸 더 맛깔나게 풍자해야 하는데, 아쉬웠다. 루이 후아르트의 논조라면 위트와 통찰을 곁들여 맛깔나게 말해주었을 텐데. 가볍고도 자유롭게, 실랄하면서도 유쾌하게!

만평이란 게, 참 재미있는데 잊고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여전히 풍자가 언론의 하나의 논지로 득세하고 있다. 하나의 견해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모독이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과는 다르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언론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신랄하면서도 우아한 풍자와 이에 관대하면서도 휘둘리지 않는 성숙함이 공존하는 사회야말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아닐까?


산책에 대해 성찰하고, 파리를 느끼고, 풍자를 배웠던 <산책자 생리학>

아무래도 다른 생리학 시리즈도 더 읽어봐야겠다.

그러면 나도 풍자를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