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 신과 인간이 만들어온 이야기
필리프 르셰르메이에르 지음, 레베카 도트르메르 그림,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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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 une bible>은 우리 집에 온 날부터 마루 한 쪽에 펼쳐 놓고 읽었다. 피아노 위에는 온 가족을 위한 성경이 장식품처럼 펼쳐져 있는 집에 새로 온 성경이다.

무슨 책인고

이 책이 무슨 책인지 한참을 뜯어보았다. 멋지기는 겁나 멋진데, 분명히 성경인데, 오묘하기만 하다. 나는 기독교 신자인데, 교회는 안 다닌 지 오래지만 COVID19를 좀 탓해야 할 것 같고, 나에게 있어 신앙은 반투명 배경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 매달려 말씀으로 시작해 말씀에 의지한 눈물의 나날들이 있었고, 하나님이 아이를 살려주셨다. 그 시절에 나에게 종교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결코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에겐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서로를 위로하는 친구들이 있다. 기독교는 나에게 익숙한 언어이자 친밀한 프레임이 되어준다. 성경도 열심히 읽고 공부했는데, 주해서와 함께 읽는 것도 좋아했다. 말씀은 정확하게 읽을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이 책이 문제다. 무슨 책인고... 우선 창세기의 창조 순서도 다르고 아담과 이브의 대화도 다르다. 그냥 모티프를 차용한 걸까, 성경의 해석에 가닿을 수 없는 내용들이 삽입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을까, 어쨌든 이 책을 놓고 주해서를 들이미는 건 진작에 맞지 않았다. 어조도 특이하다. 일관된 어조가 아니라 독특하게 바뀐다. 난 용감하게 책을 펼치는 편이라, 너무 대책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성경의 재구성

프랑스 출신의 글 작가와 역시 프랑스 출신인 그림 작가는 성경의 사건과 인물을 재구성했다. 잘 알고 있는 성경의 부분이 재구성된 장에서는 미묘한 차이점이 느껴졌고,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부분은 헷갈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래동화처럼 글과 그림을 즐기며 읽기도 했다. <바이블 - une bible>은 어투가 시시때때로 바뀌는데, 번역에도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다. 성경의 이야기를 이렇게 만나다니, 이건 너무 문학적이다.

아이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어린이 성경을 같이 읽다 보면 축약과 압축된 말씀에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나는 미션스쿨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며 신앙을 키워온지라 어린 시절의 성경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새로운 접근법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이 책은 신앙으로 향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모독하거나 가르침을 오도해서 다른 길로 향하게 하지도 않는다. 독자적인 감동과 사유, 그리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새로운 책이다.



신과 인간의 이야기

종교가 나에게 일종의 언어이고 프레임이라는 사실은 가끔씩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당연히 죄책감도 드는데, 회개에 대한 유혹도 강렬하다. 나는 지적 자유를 향유하고 싶다. 이 책은 그 경계를 나의 상상을 초월해서 무한히 넓혀서 보여주었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내가 믿는 하나님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이것은 그냥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에든 신이 있다고 느껴보길 바란다. 신앙이 선택이 된 불경한 사회에서, 그 정도의 자유는 모두의 것이 아닐까?

문득문득 성경을 찾아서 읽고 대조하고 성경을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기도하고 싶게 했고 기도하기도 했다. 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도 아직도 서가에서 비중이 있는 기독교 서적들을 강렬히 읽고 싶기도 했다. 언제든 손 닿을 곳에 공평하게 있어주는 종교는 무해하고 든든하다.


신과 인간의 이야기 <바이블 - une bible>, 궁금한 사람은 종교를 떠나 누구나 읽어보길 권하고 싶고 감탄해 보기를 바라 마지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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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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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참 오랜만이다.

나는 어느 날 집에 있는 몇 권 되지도 않던 시집들을 버렸다.

마지막 시집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시집 때문이었다. (비겁한 변명)

시에 분노가 농축되어 있어 나를 괴롭힌다며, 그날로 시와 결별했다.

그러고선 나에겐 시가 들어올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시는 짧아서 싫다고 했다가, 시가 길면 또 시가 길다고 싫었다.

자연을 노래하면 식상해서 싫었고,

눌러 담겨 있는 게 강렬하면, 또 강렬해서 싫었다.

시는 아무래도 나에게 너무 의미가 큰 게 아니었나 싶다.

그냥 그대로 느끼기엔 내 아량이 좁았나 싶다.

시를 읽으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여유가 없으면, 시를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여유를 만들려면, 시를 읽어야 한다는 건, 이 책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를 읽고 깨달았다.




시 한편 음미할 수 없을 정도로 왜 그렇게 아등바등 스쳐 지나가는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틈틈이 시를 읽으며, 차오르는 여운에 생겨난 틈을 음미했다.

시는 강렬하고 효율적이면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한 번에 이해가 될 법 하다가도

음미할수록 이해가 필요 없어진다.

앤솔러지(선집)은 참 매력적이다.

단편집도 9권의 책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한 작가님의 두 편씩의 단편을 모아 읽고 나니 지경이 넓어졌듯

열세 명의 작가님의 시 들을 한 권의 책으로 읽으니 시를 읽는 마음도 조금씩 넓어졌다.

어떤 시는 금방 넘겼었는데, 읽을수록 넘길 수 있는 시가 없었고,

다시 돌아와 모든 시들을 읽고 또 읽는 식이었다.

나의 지경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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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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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초이 작가님의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와 <사소한 사실들>을 교유서가의 마지막 소설로 읽었다.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하고 어울리지 않고, 너무 많다고 탓하고 싶을 만큼 여운이 남았다. 그러고 보면, '돌로 남은' '미래'라는 제목부터 '돌'과 '남는다는 것'과 '미래'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미래'가 사실 고양이 이름인 것도 너무했고, 중의적으로 느껴지기에 심히 완벽했다. 그리고, <사소한 사실들>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사소한 건 하나도 없었다.

고양이 미래, 귀여운 반려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돌보는 마음과 돌보지 지 않는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책임감,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곱게 접혀 있었다.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해 보지는 못했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현실적으로 반대하는 가족이 있었고 나는 반대를 무릅쓰기엔 동물이 무서웠다. 어렸을 때 동네에 돌아다니던 하얀 강아지에게 몇 번이나 쫓겼다는 시답잖은 이유로 무서웠고, 동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무서웠고, 짧은 생을 산다는 것도, 무서운 이유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반려동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범위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고이 접혀있는 이야기, 모나지 않게, 어떻게 겹겹이 눌러 담으셨을까, 감탄하며 읽었고 그래서 더 여운이 남았다.

<사소한 사실들>에서는 지엽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주인공인 화자가 아르바이트 중에 손님의 표정에서 읽은 많은 느낌들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집'과 관련한 생각도, '여행'에 대한 생각도, 하나도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사소할 수 있도록 위로하며 깊게 엮은 내용이었다.

나에겐 9권의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해 주었던 소설, 앞으로도 더 많은 한국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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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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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은 작가님의 <산책>의 표제작 <산책>과 <경유지에서>는 내 이야기같이 공감이 돼서 놀랐다. 내가 너무 쉽게 동질감을 느끼는 걸까? 이번에 새로운 단편들을 열심히 읽다 보니 마음이 활짝 열린 걸까?

아무래도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너무 현실적이다. <산책>에서 자매지간인 여경과 윤경의 관계, <경유지>의 국적도 가치관도 다른 이화와 에릭의 관계는 서로 간에 접점이 좁은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친밀한 관계이다. 형제자매의 성격이 랜덤인 것처럼, 남녀가 막상 함께 지내볼수록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인종인 것처럼 공유하는 건 많지만 생경한 게 현실적이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 동질감을 느꼈는지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자매도 없는데, 그냥 서울에서 태어나 20년 이상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을 떠난 게 비슷하다면 비슷한 지점이다. 나머지는, 사실 겹치는 경험이 없다. 특히 <경유지에서>는 전혀,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묘하게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에서 공감 가는 지점을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시키지 못할 그런 부분에서의 공감이다. 국내 동시대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 은근한 거부감이 드는 것과 반대의 느낌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고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확신의 부족이랄까, 그냥 덮어 놓고 있다거나, 저질러 버린다거나 하는 부분들은 나 같아서 화가 난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내용을 소설로 읽으니 은근한 위로가 된다.

나의 공감의 일부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고단함과 아픔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보살핌 노동의 처연함에도 공감했는데, 이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다른 밝힐 수 없는 지점의 공감과 더불어 공감했다,

갑자기 공감이 되고 또 의외의 지점에서 크고 작은 위로를 건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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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백건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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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같은 단편으로 미스터리한 재미가 있었던 백건우 작가님의 <검은 고양이>. 표제작 <검은 고양이>와 또 하나의 단편 <쥐의 미로>는 두 편 모두 내가 좋아하는 환상소설의 느낌이 있다. 게다가, 표제작 <검은 고양이>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맥락 덕분에 국내 소설로 이런 취향 저격 장르를 이제서야 읽어보다니 싶어서 조금 충격적이었다. 무척 재미있게 읽음.

<검은 고양이>에 나오는 그림이 '베르나르 뷔페' 풍이라고 하길래, 궁금해서 #베르나르뷔페 를 찾아보았다. 찾아보길 잘한 것 같다. 오싹하고 거칠고 판화 같은 느낌, 이도 취향 저격이었다. 어지럼증을 느끼며, 빠져들고 또 빠져드는 소설이다. 그리고 결국 길을 잃어버리는 소설이다. 그곳에 아마도 진실이 있을까, 허구 같은 현실을 벗어난 현실 같은 허구가 있다.

<쥐의 미로>는 자꾸 쥐가 나와서 당황했는데... 뭐 쥐가 많이 나오는 소설은 장편으로도 읽어봤으니 진정할 수는 있었다. CCTV를 모니터링하는 비밀스러운 직업을 가진 화자가 겪는 환각은 약간의 분열을, 그리고 얼마간의 진실을, 감당할 용기를 요구했다. 나는 그저 분열될 것 같은데, 용기가 없는 자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들어가서는 안 될 미로였는데, 이미 나도 모른 채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님 하드디스크에 작품이 많다고 하는데, 재미있고 미스터리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꼭꼭 숨겨두신 듯하다. 어쩌면 몰래 찾아서 읽는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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