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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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맞지 않은 새로운 음식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일독 및 재독 하는 방법도 권장할 만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용기 내어 한두 권 읽어보는 것도 절대 게을리하지 말라고 나는 문학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전자는 깊이를, 후자는 풍성함을 배가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깊이와 풍성함, 이 두 가지는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으며, 문학이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문학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까지도 포괄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라는 칠레 작가를 처음 만났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이 작품을 들었고, 작품 제목에 나온 '네루다'라는 이름이 내 입에 착 감기기도 했으며, 내가 알고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칠레 시인이었던 '파블로 네루다'와 동인인물인지 궁금했던 차에 마침 중고책을 구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부담 없는 분량은 물론 첫 몇 페이지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문체가 매력적이어서 두 시간 정도에 다 읽어버렸다. 


감명 깊었다는 평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비록 실존 인물이었던 파블로 네루다와 실제 칠레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무게를 더하긴 하지만, 깊은 공감을 할 수는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네루다와 칠레를 이름으로만 듣고 교과서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나의 좁은 지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거꾸로 읽으면 이 작품을 좀 더 깊이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다. 네루다와 칠레에 대한 정보를 미리 공부를 하고 이 책을 시작한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공감의 한도가 높을 거라 생각한다. 네루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시를 썼는지, 20세기 중반 칠레의 정치, 문화, 사회적인 변화 등을 시간 내어 살펴본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배경 지식을 차치하고 이 책을 문학작품만으로 한정하고 볼 때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작가 스카르메타의 문체였다. 어찌 보면 조금은 품위가 떨어지는 듯하고, 또 어찌 보면 서민들의 말투와 생각을 박제라고 한 듯 사실적으로 옮겨놓은 것 같은 문장들이 내겐 낯설기도 했고 신선하기도 했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 관련된 묘사들 앞에서 나는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작가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저 내가 가진 이해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딱히 나의 버튼을 누른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엔 적지 않도록 한다. 이야기 진행이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내겐 진부하기만 했다. 영화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두 시간 정도 새로운 음식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저 내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


#민음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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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
정한욱 지음 / 정은문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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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교양을 갖춘 정직한 신앙


정한욱 저, '믿음을 묻는 딸에게'를 읽고


제목 (믿음을 묻는 딸에게)과 함께 부제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만 읽어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딸이 질문하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을 빌려 저자가 기독교에 관련된 25가지 주제들을 선별하고 일반교양 수준에 맞춰 풀어쓴 글의 모음이다. '시작하며'에 이어 차례를 보면 저자가 다루는 주제들이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 신학 혹은 신앙을 전제로 하지만 (저자는 기독교인이다), 그것을 넘어 인문학, 철학적인 내용까지 두루 섭렵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열려있다. 부제에 등장한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이라는 표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차례를 다시 살펴보면, 25가지 질문들은 진지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갈등하는 주제들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보였던 주제들도 기독교가 다뤄왔고 다루고 있으며 다뤄야만 하는 것들임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기독교인의 교양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저자의 독서의 양과 폭, 지식의 양과 깊이, 그리고 관찰과 성찰에 이은 탁월한 통찰은 나를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매 꼭지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 가독성도 좋은데, 그 꼭지를 쓰기 위해 동원된 참고 서적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과 신학을 성실하게 읽고 연구하는 평상시 저자의 내공이 잘 드러난 책이라 생각한다. 또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관점, 딸에게 알려주듯 애정과 이해와 배려가 담긴 문체 등을 보며 나는 보수적인 신앙인의 모델을 본 것 같았다. 


'교양인'이라는 단어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인 중에도 교양인이 좀 더 많아지길 고대한다. 질문하고, 답하려고 애써보고, 모르면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할 줄 아는 상식적인 기독교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옹졸하고 편협하고 반지성적이고 비겁하기까지 한, 우물 속에 갇힌 이기적인 신념을 정통이나 순수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기독교를 부끄럽게 만드는 기독교인들이 이해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소원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충분히 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덧. 그나저나 내 아들은 언제 이런 질문을 하게 될까.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정은문고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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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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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함께, 내가 아닌 우리


루리 글, 그림, '긴긴밤'을 읽고


밤의 길이는 영혼의 상태를 반영한다. 짧은 밤은 단잠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의미하는 반면, 긴 밤은 불면에 시달리거나 선잠을 자면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긴긴밤을 통과했다는 것은 생사를 오가는 삶의 극한 순간을 간신히 넘어섰다는 표현이리라. 작품 속 주인공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는 이러한 긴긴밤을 숱하게 통과한다. 이 작품의 방점은 단순히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 긴긴밤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데에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말이다. 같은 코뿔소끼리도, 같은 펭귄끼리도 아닌, 코뿔소 한 마리와 버려진 알을 든 펭귄 한 마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 이 작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닌 이유다. 


코뿔소와 펭귄의 연대는 강자와 약자의 연대다. 이들은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잠시 연합한 계약 관계가 아니다. 코뿔소는 화염 속에서 무너진 철조망을 넘어 그가 원하는 천국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바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러나 노든은 그러지 않았다. 버려진 알이 담긴 양동이를 물고 졸졸 따라오는 치쿠를 모른 체하지 않았다. 그는 치쿠의 느린 걸음에 기꺼이 보조를 맞추어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걸어야만 하는 긴긴밤을 선택한다. 그에게 천국인 곳이 아닌 치쿠와 알에게 천국인 바다를 향해서 노든은 혼자가 아닌 함께를 선택한다. 이 동화를 읽으며 내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리스도인인 나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천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든도 치쿠도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고아로 성장했다. 노든은 야생 생활에서 인간의 폭력 때문에 아내와 딸을 잃기도 했다. 죽기 직전 구조되어 잠시 살게 된 동물원에서 그는 앙가부라는 친구도 잃었다. 역시 인간의 폭력 때문이었다. 생존자였던 노든은 인간에 대한 복수로 동물원을 떠났다. 그런 상황에서도 노든은 치쿠를 모른 체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든은 조그맣고 약한 치쿠와 치쿠가 들고 품고 다니는 알을 위해 그의 유익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들을 보호하며 돕기로 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약 노든이고 치쿠가 곁에 있다면 과연 나는 노든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치쿠가 죽고, 다행히 때맞춰 태어난 아기 펭귄 '나'는 (이 작품의 화자다) 노든의 목숨 건 도움과 희생으로 혼자 마침내 바다에 다다른다. 험한 절벽을 혼자 넘으며 '나'는 '나'를 살게 하고 여기까지 있게 한 많은 이들의 진정성 어린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의 천국은 공짜가 아니었다. '나'를 사랑했던 이들의 땀과 눈물과 피의 열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천국 입성이 이 작품의 화룡정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일지 모른다. 여기서도 연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의 바다 도착이 이루지 못한 목적으로 작품이 끝났다 하더라도 이 작품의 메시지는 약해지지 않는다. 천국에 먼저 간 치쿠와 저 멀리 초원에서 늙어가는 노든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더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작품을 읽고 뻔한 격언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혼자라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라면 멀리 갈 수 있다.' 천국은 빨리 갈 수 있는 곳이기보다는 멀리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믿는다. 혼자가 아닌 함께, 내가 아닌 우리에게 허락된 곳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노든이나 치쿠와 같은 존재가 있는가. 나는 혼자인가, 함께인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동지가 있는가.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내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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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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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 사이에 충만하기


욘 포세 저,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낯선 작가의 책을 손에 들고 낯선 세상에 처음 발을 내민다. 용기 내어 조심스럽게 첫 발만 디디면 어느새 나는 숙련된 여행자가 되어 이국의 냄새를 맡고 이국의 소리를 듣고 이국의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보면서 모든 시공간을 향유하기 시작한다. 독서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다.


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책 한 권으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로 대체된다.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는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과 조금은 더 깊은 눈을 가진 사람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낮은 자세로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귀 기울이고 멈추고 가만히 살피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문학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익숙함을 떠나 낯섦을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용기,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 용기, 마침내 그것을 감싸 안는 용기. Embrace. 보이는 것만을 의지하지 않고, 시대의 조류에 생각 없이 편승하지도 않고,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문학은 나를 성장시킨다. 잘 만난 문학작품 하나는 똑똑한 사람 열 명의 말보다 낫다. 


어젯밤 나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를 만났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짧은 책은 곧장 나를 노르웨이의 어느 외딴섬으로 안내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기꺼이 순례자가 되어 그곳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했다. 한 생명의 탄생. 나는 저자가 제목에서 말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그다음 문장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뛴다. 인생의 낮 시간은 이리도 짧은 것일까. 낯선 세상에서 아침을 맞이하자마자 곧바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다니. 인생의 황혼은 금세 불어닥쳤다. 태어난 아기는 어느새 손자까지 본 노인이 되었다. 아니,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지 몇 시간 채 되지 않은 존재가 되어있다. 곧 막내딸이 그날따라 아버지의 집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걱정 가득한 채 자신의 차가워진 육신을 만나러 올 것이었다. 


작품의 팔 할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평상시와 같지만 뭔가 다른 낮 시간을 보내는 혼령의 이야기다. 죽은 자가 맞이하는 오전과 오후의 이야기. 하지만 그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단 하루만 허락된 시간이다. 작품 마지막에서 그는 살아있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 (이미 죽은, 그러니까 친구의 혼령)의 인도 하에 저 세상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인생의 아침부터 저녁을 모두 보여주고 주인공은 마침내 사라진다. 그는 덤덤하고, 또 덤덤하다. 마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인생을 하루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에 빗댄다면 나는 몇 시쯤에 있을까. 절반은 넘긴 것 같아 보이니, 정오가 지난 지 한 시간 정도 되지 않을까. 이른 여섯 시에 태어나 아침을 맞이하고, 늦은 여섯 시에 자다가 조용히 저녁을 맞이한 요한네스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오후 한 시에 위치한 나는 과연 여섯 시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될까. 내가 마침내 저녁을 맞이하게 될 때 나를 기억해 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요한네스의 아침과 저녁을 함께 하며 순례를 마친 나는 결국 현재의 나로 돌아온다. 그리고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좀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넉넉히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 욘 포세는 먼 이국땅 한국에서 이런 뜻밖의 열매를 거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일 뿐이다. 내가 위치한 낮 시간을 혼령이 아닌 지금의 내 모습으로 충만히 채우고 싶다. 늦은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저녁을 맞이해도 좋을 만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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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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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의 문체


최은영 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서양고전문학을 선호하는 나는 한국소설도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베스트셀러 위주로 이미 입소문 난 책들을 먼저 살피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수년 전부터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이미 주목받는 차세대 한국 현대소설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책 소개를 보고는 읽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모두 단편집이었기 때문이다. 단편이 주는 의도적인 불친절함과 불가피한 아련함 (혹은 무책임함)보다는 복잡하고 장황하더라도 깊고 풍성함으로 긴 시간 푹 빠져들 수 있는 장편을 나는 사랑한다. 참고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고전문학은 한결같이 장편이다. 나는 책으로부터 여러 방 잽을 맞는 것보다 묵직한 어퍼컷 한 방을 기대한다. 그리고 벽돌책의 매력은 그것을 깨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년 전 '밝은 밤'으로 최은영이 다시 회자되었을 땐 미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구해서 읽었다. 역시 단순한 이유였다. 장편이었기 때문이다. 읽고 나서 감동했다. 그리고 뜻밖이었다. 여느 한국소설처럼 기발하고 특별하고 신기한 사건이나 상황이 전제되지 않은, 어찌 보면 뻔한 인생을 써 내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뻔하지 않게 개별성에서 보편성을,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고전문학에서 내가 느끼던 것과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다짐했다. 최은영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그것이 단편집일지라도 꼭 읽어보겠노라고.


작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일곱 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이미 모두 다른 지면에 실린 글들을 모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연작 소설도 아니고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진 단편 모음이다. 보통 단편집은 가장 먼저 소개되는 글이 대표작인 경우가 많다. 이 단편집도 그랬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작품은 첫 단편의 제목이자 이 책 전체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가 지망생 화자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이 작품은 늦깎이 대학원생일 때 만난 한 강사에 대한 기억과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돌아보며 현재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하여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 강사가 화자에겐 희미한 빛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고, 목적지가 어딘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녀처럼 그저 더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덧 과거 그녀의 위치에 와있는 '나'는 여전히 그 희미한 빛을 쫓아, 동시에 희미한 빛이 되어, 그녀를 종종 떠올리며 하루를 살아간다. 단편소설의 한계이자 그것의 고유한 매력을 아련함에서 찾는 나는 옛 기억의 회상, 그리움, 그리고 그것이 이루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는 것을 글로써 써내는 데에 침착한 최은영의 문체가 적격이라는 생각이다. 


두 번째 작품 '몫'과 다섯 번째 작품 '파종'에서도 글쓰기에 관련된 소재가 중요하게 활용된다. 한편 거의 모든 작품에서 크고 작게 다뤄지는 주제는 여성이 중심에 놓인 사회적 약자의 삶과 그 삶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들을 짓밟고 이용해 먹는 자들을 포함한 사회 구조에 대한 고발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젊은 여자 강사를 대하는 학생들의 무례함을 잠시 언급하는 반면, '몫'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이야기의 흐름이 'A여자 대학교' 학생들에게 가해진 집단 폭력, 'B대학교 대학원'에서 일어난 교수 성희롱 사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남편을 죽여야 했던 여자들과 그렇게 살인을 해야 아내가 살 수 있는 사회구조의 잔인함에 대한 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작품 '일 년'에서는 주로 남자들로 이루어진 정규직 사원들과 함께 일 하게 된 일 년 계약 인턴의 비참한 현실을, 네 번째 작품 '답신'에서는 가부장적 아버지의 폭력성과 미성년자 여자아이를 성 노리갯감으로 삼는 학교 선생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그 폭력에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을 폭로한다. 


'파종'에서는 이혼을 경험한 여자와 그녀의 딸이 살아가는 상처 입은 삶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에 개입하여 직접적인 도움이 되어주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가 죽고 남긴 흔적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남은 모녀에게 희망으로 앞날을 비추는 모습도 잔잔하게 보여준다. 


여섯 번째 작품 '이모에게'에서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받은 여자들의 상처와 더불어 자신을 돌봐주었던 이모의 육아와 훈육방침에 대한 화자의 해석이 실망, 애정 없음, 차가움에서 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립된 인생과 성숙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그려낸다. 


마지막 작품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집에서 길러져야 했던 한 여자의 기구한 인생을 소개하면서 두 딸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평생을 겉도는 그녀의 삶을 비추며 먹먹한 가슴으로 부끄러움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이런 주제들로 모아진 글이다 보니 아무래도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침울한 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둡지는 않다. '밝은 밤'에서 느꼈던 최은영이 가진 문체의 '밝음'이 낳은 효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다루는 방법이 진부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작품을 읽어나가기가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한강 작가의 글이 깊고 무거워 읽기 부담되는 독자에게 최은영 작가의 글을 권하고 싶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나는 최은영 작가의 글에 좀 더 무게가 실리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진다. 여성이 중심에 놓인 글만이 아닌 다른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도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서도 최은영 작가만이 가진 '밝음'의 문체가 멈추지 않고 고유하게 빛나기를 기대한다.


*최은영 읽기

1. 밝은 밤: https://rtmodel.tistory.com/1408

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https://rtmodel.tistory.com/1747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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