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Youngwoong Kim님의 서재 (Youngwoong Kim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6 May 2026 23:18: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Youngwoong Kim</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Youngwoong Kim</description></image><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머뭇거림은 믿음으로, 믿음은 확신으로 - [백지 앞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55022</link><pubDate>Sun, 03 May 2026 12: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550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654&TPaperId=172550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7/0/coveroff/k7321376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654&TPaperId=172550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지 앞에서</a><br/>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머뭇거림은 믿음으로, 믿음은 확신으로<br>최은영 저, '백지 앞에서'를 읽고<br>신간을 구매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작가에 대한 신뢰, 출판사에 대한 신뢰, 그리고 책의 제목, 이렇게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최은영의 여섯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산문집 '백지 앞에서'는 이 셋을 모두 충족시켰다.&nbsp;<br>마흔을 넘길 무렵 나는 다시 독서의 세계로 들어왔다. 매일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그리고 신간을 훑어보곤 했다. 그즈음이었다.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이 2년의 시간차를 두고 출간되었다. 최은영이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문학을 막 다시 읽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단편집보다는 호흡이 긴 장편을 선호하는 나는 두 책을 보관함에만 두고 장바구니에 담진 않았다. 2021년이 되어 '밝은 밤'이 출간되었을 땐 미국인데도 불구하고 곧장 구매해서 읽었다. 내겐 이름을 기억해 둘 만한 한국 작가가 나왔다는 강한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출간되었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단편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밝은 밤' 때문에 생겨난 최은영 작가에 대한 신뢰로 인해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아무래도 호흡이 짧은 단편들이 모인 책이어서 장편이 주는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최은영 작가의 문체와 사상 정도를 파악하기엔 충분했고, 나는 최은영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nbsp;<br>일주일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신간을 훑어보는 습관을 따라 무심코 온라인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 책의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특히나 소설이 아닌 산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나는 최은영 작가의 장편, 단편, 산문, 이렇게 세 가지 다른 유형의 글을 모두 섭렵하게 되는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일부러 읽지 않았다. 신뢰하는 책을 읽기 전의 자세는 철저한 조사가 아닌 신비여야 한다는 게 나만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책을 순수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br>제목이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지 앞에서'라니. 읽고 쓰는 일이 일상이 된 사람에게 이 문구는 골수를 찔러 쪼갤 정도로 깊고 아프게 다가가리라 생각한다. 내게도 그랬다. 백지 앞에서 언제나 무력해지는 내 모습, 동시에 그 자리를 결코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내 모습, 결국 그 자리 앞에 정직하게 섰을 때 생겨나는 또 해낼 거라는 작은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성취될 거라는 조용한 확신을 얻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최은영 작가도 이런 마음으로 제목을 정한 게 아닌가 싶었다. 머뭇거림만이 아닌, 머뭇거림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확신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자신의 삶을 통해 그려 내 보이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nbsp;<br>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 내 추측이 얼추 들어맞았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소설 뒤에 숨어 있는 최은영 작가가 이번 산문집에서는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낸다. 필터를 제거한 채 처음 들려주는 진성으로 그렇게 성큼 최은영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며 다가간다. 마치 잘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nbsp;<br>내게도 그랬다. 특히 최은영 작가가 학창 시절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나는 텍스트로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90년대 상황을 직접 겪은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은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84년생인 최은영 작가는 나와 7년 차이가 난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그 시대 학교 안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선생들의 훈계는 너무나도 쉽게 폭력으로 발현되었고, 그 폭력은 당연한 일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선생들로부터의 구타에, 그 폭력에 저항할 수 없었고, 그것은 폭력의 암묵적인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근간이었다. 나는 내 눈으로 한 선생이 한 학생을 말 그대로 개 패듯이 구석에 몰아넣고 패는 현장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너무도 강렬했던 나머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개 패듯이 맞는 개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의 눈에 잘못된 사회구조적 문제가 잘 보일 리 만무했겠지만, 왜 나는 그때 겁에 질린 채 그 광경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은영 작가 역시 이런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듯했다. 그리고 정도는 크게 다르겠지만, 피해자 위치에 놓인 적도 있는 것 같아 그 부분을 읽을 땐 마음이 아팠다.&nbsp;<br>이 책은 여러 꼭지로 이뤄져 있다. 공통적으로 흐르는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마치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하는 듯한 모습까지 그려질 정도로 최은영 작가는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겼던 것,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그 오래된 상처가 어른이 된 이후까지 남아 영향을 미쳤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작가가 되어 글을 쓰게 되면서 그 억눌린 자아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마침내 그 모습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또한 글쓰기의 힘은 필연적으로 치유로 나타난다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또 한 번 확인할 수도 있었다.&nbsp;<br>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는 법. 그녀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적으로는 최근에 수술까지 했던 갑상선암이다. 목디스크에 위경련까지 겪어냈던 최은영 작가. 거기에 이혼이라는 과정까지 넘어서야 했다. 와장창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그녀의 우울함이 내게도 전염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백한다. 소설 쓰는 일은 인생의 숨구멍이었고, 소설을 썼기 때문에 힘든 상황들을 버틸 수 있었다고. 그리고 소설을 쓰는 것은 인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최은영 작가의 인생에 글쓰기가 있어서, 그것이 구원의 통로가 되어주어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어서. 그녀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겪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br>나는 이 책을 통해 최은영의 글을 읽은 게 아니라 최은영을 읽었다고 느낀다. 두 번은 쓸 수 없는, 가슴 저 깊숙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써 내려간 글은 곧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면의 어려움을 극복해 낸, 그리고 계속 극복해 갈, 최은영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움츠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현재의 최은영만이 아닌 과거의 최은영에게도.<br>더 써주길 바란다고 덧붙이고 싶다. 스스로 작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최은영 작가에게 계속 써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아픔과 상처, 이어진 치유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최은영 작가가 그중 하나라고 믿는다.&nbsp;<br>#문학동네&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최은영 읽기1. 밝은 밤: https://rtmodel.tistory.com/1408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https://rtmodel.tistory.com/17473. 백지 앞에서: https://rtmodel.tistory.com/217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7/0/cover150/k7321376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70049</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경계 위에 서서 그것을 끌어안는 삶 - [경계를 살다 - 문턱 경험에 대한 묵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51960</link><pubDate>Fri, 01 May 2026 1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519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065&TPaperId=17251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74/10/coveroff/k53213706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065&TPaperId=172519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경계를 살다 - 문턱 경험에 대한 묵상</a><br/>에스더 드발 지음, 이민희 옮김 / 비아토르 / 2026년 04월<br/></td></tr></table><br/>경계 위에 서서 그것을 끌어안는 삶<br>에스더 드발 저, '경계를 살다'를 읽고<br>켈트 세계에서 하루는 떠오르는 태양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그 경계의 순간을 기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하루를 감사함으로 맞이하는 의식이다.&nbsp;<br>어릴 적부터 박명의 순간을 동경했다. 해뜨기 전이나 해 진 후 빛으로 밝은 상태는 언제나 신비로 다가왔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와 있는 빛, 이미 사라졌으나 아직 남아 있는 빛의 시간. 경계가 있는 풍광을 머릿속에 그리거나, ‘문턱은 거룩한 곳‘이라는 말을 묵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였다. 경계는 지금도 내겐 신비로 다가온다.<br>잉글랜드와 웨일즈 사이의 접경지에서 쓰인 이 책은 비단 지리적인 문턱만이 아닌 여러 은유적인 문턱들을 얘기한다. 그 문턱은 건너가기만 하면 되는, 혹은 빨리 건너버려야 할 장애물의 이미지가 아니다. 저자는 그 문턱/경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위에 산다는 것과 넘어서는 것을 이미지와 상징의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글이 관념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성과 논리가 가 닿을 수 없는 신비에 이 글은 더욱 근접해 있다. 영성이라는 단어를 감히 사용하기에 이 책은 전혀 모자람이 없다. 오히려 깊이를 맛보게 한다.<br>저자는 문턱을 넘어 낯선 것을 향해 건너가는 일은 하느님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차이와 신비, 그리고 타자성이 드러나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문턱에서 멈출 줄 아는 태도는 곧 쉽게 점유하려 하지 않는 자세를 뜻하며 타자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하느님을 중심에 두면서도 낯선 이에게 집중하는 삶을 따랐다고 한다. 하느님에게서 사람을,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타자에게 다가가고, 타자를 알기 위해 하느님과 관계 맺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하지만 경계에 뿌리를 내린다면 양쪽에 동시에 열려 있을 수 있다. 자기중심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nbsp;<br>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의 시대다. 양극화 현상으로 세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뭉쳐야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경계에 서 있는 건 어정쩡한 회색지대에 머무는 우유부단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문턱/경계는 그런 회색지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 회색지대는 양극을 모두 부정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세력을 뜻한다면, 문턱/경계는 양쪽에 심겨 있어 모두 존중하며 끌어안는 이미지로 그려지기 때문이다.&nbsp;<br>문턱/경계에서 해야 할 일은 경청하고 배우는 일이다. 저자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차이는 위험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것. 둘째, 불확실성 속에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머무르도록 준비할 것. 셋째, 모호함을 기뻐하고 기꺼이 끌어안을 것. 이 모든 단계는 확실성이 주는 안락함을 내려놓는 과정이며 불확실성 자체가 오히려 선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말까지 잊지 않는다. 경계에 선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치열하고 가장 전복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nbsp;<br>불확실성 속에 사는 것과 불안정하게 사는 것이 다르다는 말에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밑줄을 그었다. 평소 내 생각과 공명했기 때문이다. 뿌리를 바른 곳에 단단히 내리고 있다면 불확실할 수는 있어도 불안정할 수는 없다. 나의 뿌리가 확실하다면 불확실성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고, 전복될 수도 있을 불확실성 가운데에서도 안정함을 누리며 전진할 수 있으며, 모호함 가운데에서도 그것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다.&nbsp;<br>마지막으로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삶에서 문턱이 연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이 문턱들은 삶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하나하나를 용기와 섬세함으로 마주하며 살아내야 한다고. 이 책을 통해 우리들 내면의 풍경 속에서 경계 지대를 찾아보고 거기에 머물러 보라고.&nbsp;<br>확실성의 신화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장애물처럼 여기고 있었던 문턱/경계들을 시간을 내어 하나둘 떠올려보자. 박명처럼 중첩되는 순간들이 가진 신비와 그 고유한 의미를 놓치고 있진 않았는지 눈을 감고 성찰해 보자. 어쩌면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경계를 인지하고 그 위에 서서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br>#비아토르&nbsp;#김영웅의책과일상]]></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74/10/cover150/k53213706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741050</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어쩌다 매일 읽고 쓰고 달리게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36683</link><pubDate>Fri, 24 Apr 2026 2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366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336&TPaperId=172366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5/coveroff/897012833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336&TPaperId=172366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a><br/>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01월<br/></td></tr></table><br/>어쩌다 매일 읽고 쓰고 달리게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br>무라카미 하루키 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br>매일 하는 일이 있다. 읽고 쓰고 운동하기. 약 십 년 전부터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내겐 일종의 구원의 통로였다. 인생에서 아주 잠깐 잘 나가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실패를 몰랐다. 책을 읽느니 차라리 논문을 읽었다. 글을 쓰느니 논문의 초고를 쓰거나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집중력이나 지속력이 아닌 오직 재미를 위해 운동을 했다. 당연히 삶의 균형은 없었다.&nbsp; 있을 수가 없었다. 일에 치우친 삶을 성공자의 그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피라미드 상층부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철저한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에 이끌렸다. 그러나 그런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내 인생의 최고로 낮은 점에 이르렀다.&nbsp;<br>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읽고 쓰고 운동하기, 이 세 가지를 내 삶에 아무런 면역 거부 반응 없이 자연스레 장착시키게 된 건 오로지 내가 그 당시 깊고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고 구원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절박했다. 에고가 붕괴된 내면은 취약한 상태다. 무언가가 깃들기 쉽다. 그 시기에 누구를 만나게 되는지, 무엇을 하게 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현저하게 달라지곤 한다. 다행히 나에겐 은인과의 만남이 있었다. 생애 첫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난 바로 그날이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다. 언제나 진정한 구원은 외부에서 오는 법이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nbsp;<br>중학생 이후 독서다운 독서는 처음이었다. 읽고만 있을 수 없었다. 쏟아내야 할 곳이 필요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신앙도 그 시기를 겪으며 안에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했고, 어린 아들과 둘이 미국에서 외나무다리 같은 삶을 살아내야 했던 시기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쓰기밖에 없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던 나도, 커리어가 정점을 향해 가는 시기에 처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 당시엔 운동하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몸은 망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나를 더 혹사시켰다. 그러다가 경미한 뇌경색 증상으로 한 번 쓰러지기도 했고, 두통과 편두통 때문에 매일 진통제를 달고 살았으며, 높은 혈압을 잡기 위해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 키 180인 나는 몸무게 93킬로그램까지 찍었다.&nbsp;<br>읽고 쓰기 시작하면서 잃었던 신앙도 다시 방향을 찾아갔다. 다시 운동도 하기 시작했다. 두통도 편두통도 가끔 불청객처럼 찾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 4년째인 2026년 4월 현재, 나는 몸무게 85킬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세 달째 달리기를 지속하고 있다. 읽고 쓰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나는 매일 읽고 쓰고 달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Who are you?"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매일 읽고 쓰고 달리는 사람이라고. 부디 이 대답을 오래도록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br>지인이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하루키 책은 우선순위에서 미뤄두었기에 그리 반갑진 않았지만 '달리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하루키처럼 나도 쓸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물 받자마자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에세이를 빙자한 회고록이다. 단 인생이라는 두루뭉술한 주제가 아닌, 달리기라는 비교적 구체적이고 명확한 주제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한 산문이라 할 수 있겠다.&nbsp;<br>이 책에 따르면 그는 소설가로 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매일 10킬로미터를 수십 년간 달리고 있다. 이른 아침에 달리기를 마치고 점심 먹기 전까지 글을 쓴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해 오전 중에 일을 모두 마친다. 오후에는 휴식을 취한다. 독서도 하고 산책도 하고 소소한 인간관계도 한다. 그는 이 단순한 삶을 매일 반복한다. 1949년생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재 77세다. 그는 지금도 매일 달린다. 그리고 매일 쓴다. 이 두 가지 동사가 그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는 러너이자 작가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회고록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정체성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힌 책이라 하겠다.&nbsp;<br>매년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철인삼종경기에 출전하는 하루키 할아버지를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동시에 다작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책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하루키 할아버지도 떠올려 본다.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괜스레 흥분이 되고 묘한 기쁨을 느낀다. 아마도 무언가를 묵묵히 꾸준하게 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의 조용한 승리가 내겐 전율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를 보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가 작가이기만 해서는 실망하는 면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러너였다. 지금도 러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실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나로부터 영원한 실망 거부권을 획득해 버린 것이다.<br>책에는 달리기 이야기만 나오진 않는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자질을 세 가지로 요약하는 부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재능, 집중력, 그리고 지속력이 바로 그것이다.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집중력과 지속력은 후천적이어서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 재능까지 타고난 하루키는 집중력과 지속력도 타고난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달린다. 나는 이 점이 인상 깊었다. 매일 달리면서 집중력과 지속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다. 후천적인 이 두 능력은 게으름이 잦아들면 금세 퇴화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성실함. 그 고집.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자에게 바칠 것은 존경 밖에 없으리라.<br>이제 세 달째 달리는 초보 러너인 나는 수십 년간 매일 달려온 하루키의 코딱지만큼도 못하겠지만, 나는 감히 그를 나의 선배라고 스승이라고 여길 생각이다. 읽고 쓰고 달리는 자로서 말이다.&nbsp;<br>#문학사상#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하루키 읽기1. 노르웨이의 숲: https://rtmodel.tistory.com/6552.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https://rtmodel.tistory.com/8203. 양을 쫓는 모험: https://rtmodel.tistory.com/12114.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ttps://rtmodel.tistory.com/19135. 일인칭 단수: https://rtmodel.tistory.com/19576.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2163]]></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5/cover150/897012833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20589</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안정과 모험, 일상과 예술, 죽은 삶과 살아있는 삶 - [달과 6펜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14563</link><pubDate>Mon, 13 Apr 2026 19: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2145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86&TPaperId=172145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7/coveroff/s69263962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86&TPaperId=172145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과 6펜스</a><br/>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06월<br/></td></tr></table><br/>안정과 모험, 일상과 예술, 죽은 삶과 살아있는 삶<br>서머싯 몸 저, '달과 6펜스'를 읽고<br>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으나 끝내 제목은 설명되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해설을 일부러 읽지 않고 유추를 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어 단어 'lunatic'이었다.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정신 나간' 혹은 '미친'을 뜻한다. 나는 '광기 어린'이라고 읽었다. 오래전부터 서양에서 ‘달’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광기를 부추긴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늑대인간이 짐승으로 변하는 시간은 보름달이 뜬 밤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하이드가 악행을 저지르는 밤거리 위에도 달이 떠 있었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모해 가는 공간적 배경 역시 도심의 밤거리와 차가운 달빛이었다. 문학적으로 달빛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광기를 발현시키는 어둡고 은밀한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nbsp;<br>이러한 착상을 '달과 6펜스'에 적용시켜도 말이 된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광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스트릭랜드가 아내와 두 자녀, 안정된 직장, 집, 재산까지 모두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니 그려야만 했기 때문에, 파리로 떠났던 날 밤하늘에도 보름달이 떠있지 않았을까 싶다. 스트릭랜드의 떠남은 이성과 합리로는, 나아가 윤리나 도덕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에 속한다. 나는 이를 광기 말고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달은 이 작품 속에서 직접적인 배경이나 소재로 등장하진 않지만, 마치 늑대인간이나 하이드나 조커를 발현시킨 것처럼 스트릭랜드 안에서 잠자고 있던, 그렇다고 개성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도 모자란, 광기 어린 그 무엇을 깨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던 것이다.&nbsp;<br>이러한 패턴은 비단 스트릭랜드에게서만 발견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에서 상황과 원인은 다르지만 평소와 전혀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이행해 버리는 인물이 세 명 더 등장한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나의 상상 속에서는 이들이 갑작스러운 삶의 전환을 이행하던 날에도 보름달이 떠 있었을 것만 같다.&nbsp;<br>먼저 블란치 스트로브의 경우다. 이 여인은 처음엔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로 등장한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의 간곡한 부탁으로 죽기 직전의 찰스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간병하게 되는데, 그 기간에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남편도 집도 재산도 모두 버리고 스트릭랜드를 따라나서겠다고 선언한다. 남편도, 화자도, 심지어 스트릭랜드조차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왜 그녀는 그런 결단을 내렸던 것일까. 스트릭랜드에게 비친 달빛의 힘이 블란치 스트로브에게까지 미쳤던 것일까. 정황적인 추론으로는 육체적 관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부정적이고 불쾌감을 주는 외로운 독고다이 캐릭터인데 저자인 서머싯 몸은 그를 남성적인 육체를 가진 인물로 그려놓았다. 아마도 블란치는 간병 중 찰스에게 모성애와 함께 본능적인 관능이 깨어남을 느끼고 남편으로부터 얻지 못했던 쾌락을 향유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듯하다. 이에 대한 화자의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다정하면서도 성마르고, 생각이 깊으면서도 분별이 없던 복잡한 여자였지만 이제는 딴사람이 되어 버렸다. 바커스 신의 무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욕망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녀가 그런 비상식적인 결단을 내린 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함구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스트릭랜드로부터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 무엇을 얻지 못했던 듯했다.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으며, 입과 식도가 타버려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병원에서 죽음에 이른다. 아, 그녀의 죽음은 또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nbsp;<br>두 번째 인물은 책의 후반부에 잠시 소개되는 아브라함이라는 유능한 의사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실력을 가진 천재 외과의였다. 그에겐 모든 게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휴가차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했을 때 그는 어떤 계시와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에피파니였을까. 모든 게 돌연 새롭게 보이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 순간 이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만 것이었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에 힘입어 남은 인생을 부와 명예와 권력을 거머쥐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어쩌다가 이런 기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아니, 그에게 선택권이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단순한 충동에 휩쓸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에게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삶은 무언가 압도적인 힘에 의해 이끌려 오게 된 외나무다리가 아니었을까. 이를 광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br>나머지 인물은 찰스 스트릭랜드가 마지막 숨을 쉬었던 타히티에서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며 그를 도왔던 아내 ‘아타’이다. 비록 중간에 티아레가 중개인으로 역할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타는 타히티에 와서도 여전히 독고다이 캐릭터로 살아가는 스트릭랜드의 아내가 되어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를 도우며 살기로 작정한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그녀 혼자만의 결정이었다. 앞에서 소개했던 블란치가 스트릭랜드를 따라나섰던 이유와는 다른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모든 것을 수발했고 아이까지 낳았으며 나중에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결연한 여인이었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삶을 선택하게 했던 것일까. 아니, 이번에도 이 질문은 틀린 질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도 어떤 운명 같은 순간이 닥쳐왔고 그저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무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이런 갑작스러운 삶의 전환을 광기라는 표현을 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br>찰스 스트릭랜드, 블란치 스트로브, 아브라함, 그리고 아타, 이렇게 네 인물은 이 작품 속에서 일생일대의 운명 같은 삶의 전환을 맞이했고, 비록 끝은 다르지만,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그렇게 살았다. 한동안 내 머릿속은 이들의 패턴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바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솔직히 내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어떤 근거를 대며 설명하려 해 보아도 근사치에 머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이런 일이 의외로 많이 일어나지 않는가. 나는 다시 겸손해진다. 세상엔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겸허히 인정하게 된다. 그것의 시작이 광기이든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광기라고 해석하는 것조차 하나의 이성적인 접근에 불과할 테니까 말이다.&nbsp;<br>그렇다면 이번엔 제목에서 '달'을 제외한 나머지 ‘6펜스’에 대한 해석을 해 볼 차례다. 작품을 다 읽고 달의 의미를 유추했더니 그와 대조적인 이미지로써 6펜스가 자연스레 해석되었다. 6펜스는 돈이다. 달이 안정적인 삶 혹은 일상에서 사람을 끄집어내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6펜스는 그와 반대되는 힘일 것이다. 달이 원심력이라면 6펜스는 구심력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말이다. 즉 안정적인 삶 안에 가둬두려는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앞에서 언급한 네 인물은 모두 6펜스의 삶으로부터 달의 이끌림으로 인해 일생일대의 대전환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원의 바깥으로 궤도 이탈을 이뤄낸 소수의 사람들인 것이다.&nbsp;<br>6펜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수다. 그들은 주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대의 조류이기도 하고, 그 시대의 얼굴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속에 따라 살아가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정신에 따라 그것이 추구하는 방향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그 안에서 안정과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무리들인 것이다.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익명성에 의지하여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살아간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네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6펜스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화자처럼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달의 삶과 6펜스의 삶 양쪽 모두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부류도 존재할 테지만 말이다.&nbsp;<br>문제는 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바로 옆에 존재하는 6펜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자적으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행운을 거머쥐는 자가 되기도 하며, 기회주의자처럼 눈치를 보다가 자신의 이익에 위해 더욱더 견고한 6펜스의 삶을 살아가는 자로 강성해지기도 한다.&nbsp;<br>먼저 스트릭랜드의 첫 아내의 경우다. 그녀는 전적으로 피해자로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모든 걸 버리고 떠나면서 편지 한 장 달랑 남겼는데, 그 편지에는 왜 떠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적혀 있지도 않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만 적혀 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갑자기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아내로서 느꼈을 그 황당함이 적이 공감이 간다. 그리고 남편이 떠난 이유가 어떤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에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반응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그녀는 남편이 달의 삶을 사는 사람인 줄 진짜 몰랐던 것일까. 부부인데도 남편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속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놓고도 안정적인 부부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일까. 스트릭랜드의 인격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위선과 거짓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아마도 스트릭랜드는 6펜스의 삶에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숙이 빠져 살아가는 아내와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었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의 삶을 사는 사람과 6펜스의 삶을 사는 사람 사이의 소통이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하는 물음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br>그다음으로는 블란치 스트로브의 남편 더크 스트로브의 경우다. 그 역시 스트릭랜드 부인의 데칼코마니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떠난 아내 때문에 불행을 겪게 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스트릭랜드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매우 드문 사람이었다. 그는 체면도 자존심도 내던지고 광대짓을 기꺼이 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한 인물이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스트릭랜드를 온마음 다해 도운 것밖에는 없다. 스트릭랜드를 일견에 싫어한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서 아픈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자고 했던 사람도 더크 스트로브였다. 그런데도 그는 친구도 잃고 아내도 잃는 신세가 되고야 만다. 저자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의 인생은 익살극의 소란스러운 대사로 가득 찬 비극과 같았다." 그래서일까. 익살극을 펼치며 그의 너그러움 성품을 발휘해도 그의 삶은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더크 스트로브를 보며 나는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 역시 이런 말을 덧붙인다. 허를 찌른다. "그처럼 허다한 모순을 안겨주고선 이 사내로 하여금 당혹스럽고 냉엄한 세상에 맞서게 한 거 보면, 조물주의 장난도 잔인하기만 하다." 전적으로 동의가 되는 문장이지 않을 수 없다. 뭐라고 분석할 수조차 없는 이 인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nbsp;<br>마지막으로는 알렉 카마이클이라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이 알렉산드리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그로 예정되어 있던 여러 자리는 아브라함에 밀려 언제나 2등 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알렉 카마이클의 것이 되었다. 그는 대여섯 개 병원에서 정식 의사직을 가지고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화자의 친구이기도 한 그는 화자에게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모든 게 아브라함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가 아브라함에게는 인격이 없었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화자뿐 아니라 나 역시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아브라함에게는 인격이 없었던 게 아니라 6펜스의 삶이 주는 최고의 복을 넙죽 받아들이는 이해타산적인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찾아 용기 있게 떠난 사람이었다. 알렉 카마이클은 6펜스의 세상에서는 아브라함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겠지만, 아브라함이 정착한 달의 삶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알렉 카마이클의 삶에서 공허함이 느껴지는 이유는.<br>인간의 삶을 달의 삶과 6펜스의 삶, 이런 식으로 둘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법이 아니라 방향으로 해석하면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많은 것 같다. 6펜스의 삶이 인간의 모든 삶인 것처럼 믿고 그 안에서 경쟁하고 피라미드 상층부를 차지하려 애쓰며 안정과 만족을 얻으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광기라는 강한 어감의 단어를 사용할 만큼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다시 말해 6펜스의 삶에 반대되는 가치를 지향하며 언제나 저 너머를 궁금해하고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안정과 만족이 아닌 인간다운 그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을까. 나는 잘 정돈된 행복만을 얻으면 된다고 여기고 있을까. 물질적인 만족과 기쁨이면 만사가 괜찮다고 여기고 있을까. 나는 안정을 원할까, 모험을 원할까. 내 삶은 너무도 안정적이어서 죽은 것 같은 삶일까, 불안정하고 불확실하지만 언제나 길 위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살아있는 삶일까.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은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극단으로 보여준 이 소설을 통해 우린 우리의 현재 삶의 방향을 성찰하고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바라기는 6펜스의 삶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달의 삶을 잊지 않고 항상 추구하며 살아내려고 애쓰는 삶이 되면 좋겠다. 가능할 런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br>#민음사&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7/cover150/s69263962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7763</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무풍지대에 아주 조금의 바람과 파도를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97114</link><pubDate>Sat, 04 Apr 2026 2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971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1992&TPaperId=171971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30/3/coveroff/89509719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1992&TPaperId=171971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a><br/>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09월<br/></td></tr></table><br/>무풍지대에 아주 조금의 바람과 파도를<br>박찬국 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고<br>어쩌다가 읽게 된 책. 올해 1월부터 동녘에서 나온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을 통해 2주마다 철학자 한 명씩 훑는 프로젝트를 지인 두 명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철학을 읽는다고 하면 일견에 대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2주 동안 두세 시간만 내면, 비록 여전히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정도에 만족해야 하지만,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철학을 전공하고 싶지도 않고, 철학적인 지식을 더 많이 머릿속에 축적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는 나도 모르게 젖어 버린 익숙함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낯섦과의 조우를 만들고, 그 결과 자칫 무풍지대가 될 수도 있을 내 마음과 생각에 아주 조금의 바람과 파도를 가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함께 하는 두 명의 지인도 나와 같은 고백을 하는 걸 보면 이런 나의 믿음은 현실에서 어느 정도 잘 작동하는 듯하다.&nbsp;<br>총 열두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는 책인데, 지난주에 여섯 번째로 만난 철학자가 하이데거였다. 박찬국 교수가 쓴 스무 페이지 정도의 그 글을 읽다가 뭔가 클릭이 되었고, 인터넷 서치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제목도 근사하지 않은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라니. 삶을 짐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자는 인간밖에 없다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동시에 삶을 짐으로 느껴본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흠칫하며 살펴보고 싶어 할 책인 것 같다.&nbsp;<br>두세 시간이면 후루룩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의 하이데거 편,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을 읽은 사람이라면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그 스무 페이지의 확장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nbsp;<br>하이데거와 에리히 프롬, 그리고 소로까지 연결시키는 논리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박찬국 교수의 말마따나 하이데거의 철학 혹은 사상은 기존의 서양 철학이 이성 중심이었던 것과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이데거가 폄하를 받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는 말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철학을 전공한 적도 없고 전공할 마음도 없는 내 눈에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에게 배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일맥상통했으며, 이성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즉 하이데거는 '존재'라고 표현한, 숭고함이랄까 성스러움이랄까 하는 것에 대한 고찰이 솔직하게 드러나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철학보다 문학을 더 사랑하는 내겐 하이데거가 훨씬 문학적이기도 했다. 다른 철학자들처럼 인간을 마치 다 파악한 것처럼 군림하는 듯한 인상도 주지 않았을뿐더러. 인간을 신비 가운데 그대로 두고 그 자체를 존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아서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때론 어떤 대상을 술어로 단적으로 풀지 않는 편이 그 대상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nbsp;<br>에리히 프롬에 대한 책도 구해놓았다. 하이데거와 연결시켜 읽어보면 좀 더 깊고 풍성한 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월든'의 정체를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지, 소로는 여전히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여러 책에 발췌된 '월든'에 등장하는 소로는 정말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지만 말이다. 언젠가 마음을 좀 더 비우고 내가 아량이 좀 더 넓어지면 '월든' 완독도 가능해질 수 있겠지.<br>박찬국 교수의 해설이 쉽고 편해서 좋다. 어려운 전공 지식을 대중어로 쉽게 풀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아주 조금 안다. 하물며 하이데거라는 거인을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건 아무래도 저자의 탁월한 내공 덕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른 책들도 천천히 읽어 봐야겠다. 이런 식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하지만 적은 시간을 활용하는, 공부는 언제나 즐겁고 유익하다.<br>#21세기북스#김영웅의책과일상&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30/3/cover150/89509719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300342</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으로 설교하다 - [말씀 따라 한 걸음씩 - 성경적 교회론의 신학과 실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78987</link><pubDate>Sat, 28 Mar 2026 1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789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389&TPaperId=171789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4/80/coveroff/k2121373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389&TPaperId=171789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말씀 따라 한 걸음씩 - 성경적 교회론의 신학과 실천</a><br/>안진섭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03월<br/></td></tr></table><br/>삶으로 설교하다<br>안진섭 저, '말씀 따라 한 걸음씩'을 읽고<br>새누리2교회 대표목사이자 약 2년 전부터 나에겐 '우리 목사님'이 된 안진섭 목사님은 파킨슨씨 병을 앓고 계신다. 파킨슨은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며, 알츠하이머가 기억력 감퇴 같은 인지 장애 쪽이라면 파킨슨은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멸로 인한 운동 장애가 주된 증상이다.&nbsp;<br>60세 이상에서 약 1퍼센트 내외의 발병률을 보이는 이 병을 앓았던, 혹은 앓고 있는 사람들 몇몇을 나는 알고 있다.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함마드 알리,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이었던 마이클 J. 폭스, 그리고 가톨릭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인으로는 600백만 불의 사나이, 인디아나 존스, 그리고 '스타워즈'의 한 솔로 목소리를 맡았던 성우 양지운 등이다.&nbsp;<br>무함마드 알리는 은퇴 후 3년 후인 1984년에 파킨슨을 진단받았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1942년생인 그는 2016년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킨슨 투병 32년 째였다.<br>마이클 J. 폭스는 1991년, 그러니까 그가 29세 때 조기 진단을 받았지만, 2026년 현재까지 활동을 35년째 지속하고 있으며, 파킨슨 연구와 치료에 많은 기부와 헌신을 이어가고 있다. 1961년 생인 그는 현재 64세이다.<br>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나이 71세 때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 1920년생인 그는 14년 동안 투병하다가 2005년 향년 84세로 선종했다.&nbsp;<br>1948년 생인 성우 양지운은 그의 나이 69세가 되던 2017년에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 2026년 현재까지 9년째 건강을 유지하며 재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현재 78세이다.&nbsp;<br>파킨슨은 꾸준한 재활과 가족, 친지, 친구의 관심과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예를 든 경우처럼 평균 수명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파킨슨병 자체가 사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폐렴이나 낙상으로 인한 골절 같은 부가적인 사고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관리가 중요한 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nbsp;<br>안진섭 목사님은 50대 중반에 파킨슨을 진단받았다. 현재 6년째 투병 중이다. 책에서도 밝히듯 그는 2025년 3월 9일 주일 설교 시간에 파킨슨 진단받은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그 고백을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숙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목사님이 그 고백을 하기까지의 마음이 헤아려져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진정한 고백은 자유케 하는 힘이 있는 법. 나는 이미 목사님의 거동을 보고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생물학자의 눈에는 달리 보이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실로 공표되고 나서 모든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좋게 해석하게 되었다.&nbsp;<br>진단받기 전과 달리 운동 장애가 생겨 생활에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이 책 초반에서부터 고백된 문장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목사라는 직업이 쓰고 말하는 것이 주된 활동인데, 이것들 모두에서 예전과 다른 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의 괴로움은 나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잘하던 것들을 잘할 수 없게 된 자의 비애는 겪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일 것이다. 실제로 설교 시간에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빨라지고 발음이 부정확해질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기도가 된다.&nbsp;<br>저자가 책의 1부를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말씀으로 시작한 것처럼, 나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안진섭 목사님에게 파킨슨을 허락하신 이유를 가시(간질(뇌전증))를 바울에게 주셨던 이유에서 찾는다. 그리고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안진섭 목사님도 동일하게 질병으로 인한 약함이 아닌 그 연약함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나는 살아있는 믿음과 견고한 신앙,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본다. 목사님의 설교도 좋지만 목사님의 존재 자체가 내겐 은혜가 된다. 이건 목사님이 바라신 삶으로 전하는 설교의 열매일 것이다. 부디 꾸준한 운동과 재활을 지속하셔서 가족과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오래오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끝날까지 잘 감당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br>이 책은 성경적 교회론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담고 있다. 성경적이라는 말이 많이 오염되어 있는 터라 나는 의심의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나, 책을 다 읽고는 오히려 성경적이라는 말은 이렇게 써야 제대로 사용하는 거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실제로 군더더기 없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원래 안진섭 목사님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드라이하고(?) 딱딱하지만(?) 핵심과 본질을 정확히 간파하여 살만 발려내는 스타일로 교회론을 풀어준다. 일반인들이 읽기에 어려울 정도로 현학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한 편의 설교처럼 글을 따라가다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글로 이뤄져 있다. 그러므로 '이론서'라는 단어 때문에 혹여나 이 책에 진입하기 꺼려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큰 오산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목사님이 밝히셨듯 성경 속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새누리2교회가 공동체로서 함께 겪은 이야기들도 있어서 지금도 예수가 머리 된 교회는 건강할 수밖에 없고 생명력이 숨 쉴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느끼게 되리라 생각한다.&nbsp;<br>새누리2교회에 몸 담은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이 교회로 오게 된 건 선율 출판사 이재원 대표님의 추천이 발단이었지만, 실제로 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의 설교를 여러 번 듣고 교회 분위기를 맛본 뒤에야 나는 등록을 결정했었다. 내가 느낀 건 건강함이었다. 건강한 분립 개척의 열매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목사의 제왕적이고 수직적인 시스템이 아닌 모든 성도가 수평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분위기로부터 나는 다른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건강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2교회에서는 장로, 권사, 집사 같은 직분이 없다. 모두 형제, 자매다. 회중 중심의 침례교단 영향 때문만이라고는 설명하지 못하는 새누리2교회만의 분위기가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를 교회가 교회답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기업이 아닌 교회, 사교모임이 아닌 교회, 교회 다운 교회로 새누리2교회가 영원하길 기원한다. 안진섭 목사님이 은퇴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영원히 유지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한다.<br>#샘솟는기쁨&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4/80/cover150/k2121373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348039</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 편의 소설, 한 편의 수업 - [중급 한국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77304</link><pubDate>Fri, 27 Mar 2026 15: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773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3836&TPaperId=171773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49/22/coveroff/89374738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3836&TPaperId=171773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중급 한국어</a><br/>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03월<br/></td></tr></table><br/>한 편의 소설, 한 편의 수업<br>문지혁 저, '중급 한국어'를 읽고<br>'초급 한국어'와는 달리 '중급 한국어'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이 아닌 한국이다. 주된 시간적 배경은 저자의 분신이자 동명의 작품 속 화자인 문지혁 작가가 귀국하고 8년이 지난 후, 여전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놓여 있던 2021년 3월부터 강원도에 위치한 어느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한 학기 동안이다. 이번에도 한 학기 밖에 가르치지 못한 신세가 된 화자의 등단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작가로서의 자조적인 뉘앙스는 ‘초급 한국어’에 이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뉴욕에서와는 달리 이젠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는 화자는 삶의 다른 부분에서의 의미와 행복을 찾은 듯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초급 한국어’에서보다 ‘중급 한국어’에서 나는 화자로부터 조금 더 인간다운 면모를 읽어낼 수 있었고, 작가를 넘어 남편이자 아빠로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저자의 작품에 본능적으로 끌렸던 이방인으로서의 이질감은 줄어들었지만 말이다.&nbsp;<br>'초급 한국어'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설정 때문에 '중급 한국어'는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수업을 할지 궁금했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에 많이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대상일 거라는 나의 일차적인 예상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이번에도 한국어 수업일 거라고 예상했던 것도 내가 '중급'이라는 단어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제목을 다시 보니 '한국어 수업'이 아닌 '한국어'이지 않은가. 아차 싶었다. '초급 한국어'가 미국에서 외국인에게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면, '중급 한국어'는 한국에서 한국인에게 한국어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그리고 한국어의 모음이나 자음, 기초적인 문법과 어법, 상황별 예시 문장 연습 등을 가르치는 것이 초급에서 다뤄졌다면, 이미 그런 것들을 모국어로써 당연히 할 줄 아는 이들에게 입으로 내뱉는 한국어가 아닌 글로 쓰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중급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내 생각은 확장되어, 그렇다면 '고급 한국어'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만약 있다면 아마도 그건 말해지지 않은 말들과 써지지 않은 글들을 말하고 쓸 줄 알고, 또 듣고 읽어낼 줄 아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영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아니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나라가 아닌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발화되지 않고 쓰이지 않은 언어들이 더 중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nbsp;<br>강원도에서 한 학기 동안 글쓰기 수업을 하는 한 학기 동안 화자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서 강원도로 차를 몰고 내리 두 강의를 하고 당일치기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한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말만 들으면 여유롭다고 할 수 있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나머지 6일에 수업이 없는 일정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 예기치 못한 사건이라도 터진다면 머피의 법칙을 거뜬히 초월하여 모든 것이 엉망으로 무너지고 마는 날이 되기 십상이다. 소설은 이런 극적인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출해 내고 그로부터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며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게 되는데, 이런 패턴은 ‘중급 한국어’에서도 적절하게 다뤄진다. 아이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아내가 코로나에 걸리기도 하는 등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건들이 화자에게도 발생한다. 어디 이것뿐인가. 미국 유학까지 했고 귀국 후 8년간 (아니 그 이상) 끊임없이 등단을 위해 애를 썼지만 매번 실패로 끝나고 마는 삶을 살아온 화자에게는 단 한 번의 작은 사건이 갖는 무게는 상대적으로 남달랐을 것이다.&nbsp;<br>그러나 이 책은 이런 우울하고 한 편으론 무겁기도 한 공감대만이 아니라 가슴 따스해지는 에피소드와 소소한 일상 가운데 아주 가끔 드러나는 에피파니의 순간들, 그리고 삶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일화들도 적절히 배치하여 가독성을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문지혁 작가의 문체가 정갈하여 쓰이지 않은 여백까지도 무언가로 채우는 듯한 기분으로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 장편소설을 완독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nbsp;<br>또한 작가이자 글쓰기 선생답게 저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일상들을 씨줄과 날줄로 자연스럽게 잇기도 하고 시제와 인칭 등을 다채롭게 사용하며 작품성 높은 소설이 어떤 것인지 말없이 보여준다. 내겐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수업으로 읽혔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디테일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한 수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읽어볼 만한 소설이겠지만, 특히 소설 지망생 혹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nbsp;<br>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나는 적어도 세 작품 이상을 정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문지혁 작가의 책은 벌써 다섯 권째다. 그의 문체에 익숙해졌고 더 좋아졌다. 행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이제 몇 주 전에 사놓은 ‘나이트 트레인’이 남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야간열차가 영어로 나이트 트레인 아니던가. 어떤 작품일지 기대된다.<br>#민음사&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문지혁 읽기1. 소설 쓰고 앉아 있네: https://rtmodel.tistory.com/20312. 고잉 홈: https://rtmodel.tistory.com/20463. 당신이 준 것: https://rtmodel.tistory.com/21124. 초급 한국어: https://rtmodel.tistory.com/21345. 중급 한국어: https://rtmodel.tistory.com/2139]]></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49/22/cover150/89374738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492229</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이질적인 - [초급 한국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67057</link><pubDate>Mon, 23 Mar 2026 0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670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3305&TPaperId=171670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94/47/coveroff/89374733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3305&TPaperId=171670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급 한국어</a><br/>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br/></td></tr></table><br/>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이질적인<br>문지혁 저, ‘초급 한국어’를 읽고<br>문지혁 작가의 소설 ‘고잉 홈‘을 읽으며 뭔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인 감성을 느낀 까닭은 그가 묘사한, 혹은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미국 유학생의 불안정한 신분과 그에 따른 불확실한 삶, 그리고 그 삶 저변에 조용히 깔려있는 불안감에 남다른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문지혁 작가를 작가 반열에 올린 첫 작품인 ’초급 한국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nbsp;<br>내가 느낀 건 아마도 '향수'였을 것이다. 미국 생활 11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전환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긴 기간을 살아낸 내 감성을 한 단어로 압축하라면 아무래도 나는 ‘불안‘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아무런 배경 없는 머나먼 타국에서의 이방인의 삶을 핑크빛으로 채색하기에 나는 어리숙했고 서툴었으며 모자랐다. 때론 즐거움으로, 때론 성취감으로, 또 때론 기쁨으로 그 시절을 보냈건만 언제나 내 삶의 저변에 깔린 무시 못할 감정은 불안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 불안이 내가 문지혁 작가의 글에 끌리는 주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감성을 읊조리는 작가가 있어서 나는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내겐 소중했던 그 시절의 아련한 감성을 되살릴 수 있어서.&nbsp;<br>이 작품은 저자의 분신인 (심지어 이름도 같다) 화자가 이십 대 중반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어 강사로 일하게 되는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강사. 화자는 자신의 대학원 전공과도 다른 이 일을 한 학기 밖에 할 수 없었다. 영주권 없는 유학생이 고정된 직장에 고용되어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반강제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아련하고 아쉬운 한 학기 동안 그에게 일어난 소소한 일상을 소개한다.<br>한국어 수업 경험도 없었기에 준비를 많이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덜컥 와 버린 기회가 가져다주는 묘한 긴장과 불안은 느껴본 자만 아는 감성에 속할 것이다. 내겐 화자의 행간이 눈이 아닌 몸으로 읽혔다. 나도 모르게 자주 화자에 나를 대입시키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저자의 필력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미국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는 독자가 느끼는 감도는 아무래도 더 클 수밖에 없었겠지만.<br>곳곳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나오고,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대화나 문장들이 나온다. 무심한 듯하지만 문장들 하나하나를 가려낸 저자의 정성이 매 페이지마다 느껴졌다. 소설 같지만 수기 같기도 한 일화들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고,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미국 생활을 경험한 독자라면 적어도 두세 배 이상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nbsp;<br>한편, 저자가 여러 번 내뱉은 작가로서의 자학적인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이 살짝 측은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보란 듯이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초급 한국어'를 첫 출간했던 6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그의 위상이 나는 반갑기 그지없다.&nbsp;<br>이제 '중급 한국어'를 읽을 차례다.&nbsp;<br>#민음사&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문지혁 읽기1. 소설 쓰고 앉아 있네: https://rtmodel.tistory.com/20312. 고잉 홈: https://rtmodel.tistory.com/20463. 당신이 준 것: https://rtmodel.tistory.com/21124. 초급 한국어: https://rtmodel.tistory.com/213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94/47/cover150/89374733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944735</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 없는 -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43601</link><pubDate>Wed, 11 Mar 2026 1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436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1135&TPaperId=171436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322/3/coveroff/8954651135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1135&TPaperId=171436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a><br/>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04월<br/></td></tr></table><br/>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 없는<br>한강 저, '흰'을 읽고<br>‘흰’이란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다분히 독립적으로 보이는 많은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사진도 여러 장 끼어 있어 마치 시집 같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이미지가 남는다. 짧은 텍스트를 읽었는데 남는 건 그림이다. 이 작품은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가 묻어나는 텍스트로 그린 그림집인 셈이다.&nbsp;<br>한강 작가의 여느 작품처럼 이 작품 역시 서사가 아닌 묘사 위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데엔 여백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텍스트 대비 물리적 여백이 많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그만큼 천천히 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읽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품은 모호하기만 했다. 공중에 붕 뜬 느낌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다.<br>마침 한강 작가가 이 책을 쓰고 나서 남긴 인터뷰 기사를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존재하지만 안개 같아 손에 잡히지 않던 것이 물방울이 되어 피부로 느껴진 순간이랄까. 그제야 선명해졌다. 소설 속에 나타난 이미지들의 윤곽이 의미를 가지고 실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그녀의 전작 '소년이 온다'가 남긴 흔적인 것 같았다.<br>'소년이 온다'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 내게는 가장 무거운 작품이었다. 한국 역사의 커다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광주민주화운동)를 그 어느 논픽션보다도 선명하고 사실적으로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그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거짓 역사와 참 역사를 분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역사 선생님이 하지 못했던 일을 소설 한 편이 해낸 것이다. 이는 왜 그녀가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로 올랐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br>인터뷰에서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를 소개한다.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지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언급되는 ‘어느 도시’는 한강 작가가 실제 4개월 정도 머문 폴란드 바르샤바다. 2014년 8월부터 12월까지였으니 ‘소년이 온다’를 탈고한 직후다. 한강 작가 역시 이 부분을 언급한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가까이 와 있다고 느꼈던 혼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고, 흰 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던 차에 바르샤바에 머물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노라고. 전쟁에 의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던 도시가 복원된 모습을 보면서,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상상하게 됐고 그런 이미지가 확장되어서 책을 쓰게&nbsp;되었노라고.&nbsp;&nbsp;그녀가 말하는 ‘흰 것’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고 절대 더럽혀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희다는 표현도 여러 색 중 하나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선다 (물론 어떤 면에서 흰색은 색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인터뷰 글을 가만히 읽어보면 그녀는 ‘소년이 온다’ 이전에도 흰 것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것 같다. 단지 ‘소년이 온다’가 담고 있는 참혹하고 어두운 기운이 흰 것에 대한 갈망을 더 짙게 만들었을 뿐. 그러고 보면 ‘소년이 온다’ 차기작으로 ‘흰’이 쓰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어두울수록 조막만 한 빛도 밝은 법이니까.<br>책의 서두에서 그녀는 흰 것의 목록을 나열한다. 거기엔 생명의 시작도 끝도 모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보와 배내옷부터 시작해서 백발과 수의로 끝나기 때문이다. 마치 삶과 죽음이 모두 흰 것 안에 들어 있기라도 한 것 같다. 작품 속에서 그녀가 직접 거론하는 죽음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같은 엄마의 자궁 속에 먼저 있다가 세상의 빛을 잠시 보고 숨을 거둔 언니의 죽음이다.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그녀는 태어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나에겐 마치 그녀의 삶이 죽은 언니에게 빚지기라도 한 것처럼 읽혔다. 작품 속에서 그녀의 언니는 언니가 되기도, 아기가 되기도, 또 그녀가 되기도 한다. 어떤 모습으로도 자꾸만 살아나고 또 죽고 또 살아나고 죽는 존재인 듯했다. 그리고 언니는 그녀가 바르샤바를 보며 떠올린 사람이었다. 파괴되었으나 복원된 한 사람. 책을 읽으면서도 왜 그녀는 보지도 못했고 함께 하지도 못했던 언니의 존재를 이렇게나 의식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내 안에선 끊이지 않았다. 혹시 그녀의 언니는 실재했던 한 사람의 의미를 넘어 파괴된 모든 넋을 상징하는 건 아니었을까. '소년이 온다'에서 학살당한 그 수많은 영혼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바르샤바에서 본 것은 그 혼들이 복원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흰 것의 궁극적인 이미지였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삶과 죽음뿐 아니라 부활의 의미까지 흰 것은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br>사실 이 작품을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에 먼저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아마 6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번엔 많이 이해가 되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도 파괴와 복원, 죽음과 삶이라는 단어들에 대한, 그리고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그 무엇, 흰 것에 대한 어떤 갈망 같은 것이 그동안 생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그동안 더 많이 보았고 체험했기 때문일까 (하기야 그동안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많이 읽었으니). 물론 흰 것이 빛을 낸다면 그 빛의 세기는 한강 작가의 그것보다 더 세진 않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흰'은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에서 느꼈던 폭력성이 희미한 잔재로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읽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희미한 잔재마저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선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아직 이 작품을 읽기 전이라면 적어도 '소년이 온다'는 먼저 읽고 시도해 보길 추천한다.<br>* 한강 읽기1. 채식주의자: https://rtmodel.tistory.com/3622. 소년이 온다: https://rtmodel.tistory.com/7913. 작별하지 않는다: https://rtmodel.tistory.com/13604. 희랍어 시간: https://rtmodel.tistory.com/14095. 흰: https://rtmodel.tistory.com/1886<br>#문학동네&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322/3/cover150/895465113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작가라는 운명 - [왜 쓰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24111</link><pubDate>Sun, 01 Mar 2026 13: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1241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5924&TPaperId=171241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4/39/coveroff/89329059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5924&TPaperId=171241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쓰는가?</a><br/>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02월<br/></td></tr></table><br/>작가라는 운명<br>폴 오스터 저, '왜 쓰는가?'를 읽고<br>어느 날 외야석에 드러누워 프로야구 개막전을 관람하다가 뜬금없이 어떤 계시 같은 것을 느끼며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가 천재라고 불렀던 미국 작가, 작년에 작고한 타고난 이야기꾼, 폴 오스터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을까?&nbsp;<br>글이 잘 풀리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대다가 땀이나 흘리자고 마음먹고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국수 말아먹듯 후루룩 다 읽어버린 이 책 속에 그 일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화만큼 매혹적이었고, 또 그만큼 터무니없게 느껴졌던 이야기. 나는 두 천재 소설가가 소설가가 된 이유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음… 그럼 그렇지. 소설가가 되는 데 합리적인 이유 따위가 어디 있겠어?' 그리고 이 생각은 곧장 작가는 운명이라는 결론으로 이끌었다. 폴 오스터가 쓴 '빵 굽는 타자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nbsp;<br>“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br>이 문장은 내가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한국 작가 중 하나인 문지혁 작가를 소설가로 이끈 계기로도 작용했다. 작가가 되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폴 오스터나 (그리고 문지혁이나) 모두 작가가 될 운명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작가는 그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nbsp;<br>마침 연필이 없는 바람에 유명한 야구 선수의 사인을 받을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그 이후 항상 연필을 들고 다녔다는 폴 오스터. 그 연필이 결국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진실은 개연성이 없을 때가 많은 법이다. 나는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보다 이런 진실을 담고 있는 투명한 이야기가 좋다.&nbsp;<br>왜 쓰는가? 어쩌다가 작가가 되었는가? 이 바보 같은 질문에 이제 나와 당신이 대답할 차례다. 한 단어로 말이다. 그 단어는 다음과 같다. 셋 중 하나를 골라도 된다. 뜻은 같을 테니까.&nbsp;<br>1번 그냥, 2번 몰라, 3번 운명<br>폴 오스터를 좋아한다면 심심풀이로 (똥 싸면서, ㅋㅋ 나는 실내자전거 타면서) 읽기에 적당한 책으로 추천한다.&nbsp;<br>#열린책들&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폴 오스터 읽기1.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 https://rtmodel.tistory.com/17882. 뉴욕 3부작 중 유령들: https://rtmodel.tistory.com/17913. 뉴욕 3부작 중 잠겨 있는 방: https://rtmodel.tistory.com/17944. 빵 굽는 타자기: https://rtmodel.tistory.com/20485. 바움가트너: https://rtmodel.tistory.com//21166. 왜 쓰는가?: https://rtmodel.tistory.com//212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4/39/cover150/89329059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43947</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죽음, 상실, 기억을 덮는 사랑 - [바움가트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97230</link><pubDate>Tue, 17 Feb 2026 13: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972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046&TPaperId=170972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36/28/coveroff/893292504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046&TPaperId=170972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움가트너</a><br/>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04월<br/></td></tr></table><br/>죽음,&nbsp;상실,&nbsp;기억을&nbsp;덮는&nbsp;사랑<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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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nbsp;오스터&nbsp;저,&nbsp;‘바움가트너’를&nbsp;읽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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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nbsp;상실,&nbsp;그리고&nbsp;기억.&nbsp;이&nbsp;책이&nbsp;내게&nbsp;남긴&nbsp;세&nbsp;단어다.&nbsp;커다란&nbsp;상실을&nbsp;겪은&nbsp;후&nbsp;암&nbsp;투병으로&nbsp;홀로&nbsp;죽음을&nbsp;앞두고&nbsp;있던&nbsp;폴&nbsp;오스터가&nbsp;남긴&nbsp;마지막&nbsp;단어들,&nbsp;혹은&nbsp;인간이라는&nbsp;필멸의&nbsp;존재자에게&nbsp;던져진&nbsp;보편적인&nbsp;단어들이라고&nbsp;할&nbsp;수도&nbsp;있겠다.&nbsp;이&nbsp;책을&nbsp;읽는&nbsp;누구나&nbsp;이&nbsp;세&nbsp;단어를&nbsp;떠올릴&nbsp;거라고&nbsp;생각했다.&nbsp;특히&nbsp;인생을&nbsp;절반&nbsp;이상&nbsp;살아버린&nbsp;사람들은&nbsp;이성을&nbsp;뛰어넘어&nbsp;가슴으로&nbsp;곧바로&nbsp;전해지는&nbsp;묵직한&nbsp;그&nbsp;무엇을&nbsp;느끼지&nbsp;않을&nbsp;수&nbsp;없었을&nbsp;것이다.&nbsp;살아갈&nbsp;날이&nbsp;살아온&nbsp;날보다&nbsp;훨씬&nbsp;적은&nbsp;바움가트너가,&nbsp;환지통을&nbsp;겪을&nbsp;만큼&nbsp;큰&nbsp;상실을&nbsp;겪은&nbsp;바움가트너가,&nbsp;폴&nbsp;오스터의&nbsp;분신이기도&nbsp;한&nbsp;바움가트너가&nbsp;조용히&nbsp;읊조리고&nbsp;가만히&nbsp;되뇌는&nbsp;인생은&nbsp;다름&nbsp;아닌&nbsp;우리의&nbsp;인생이기도&nbsp;하다.<br>
<br>
나이&nbsp;들어가는&nbsp;것이&nbsp;근사해&nbsp;보인&nbsp;적이&nbsp;있었다.&nbsp;빨리&nbsp;어른이&nbsp;되고&nbsp;싶었던&nbsp;나의&nbsp;어린&nbsp;시절이었다.&nbsp;그러다&nbsp;마흔을&nbsp;넘긴&nbsp;어느&nbsp;날,&nbsp;절반의&nbsp;물이&nbsp;컵&nbsp;꼭대기보다&nbsp;바닥에&nbsp;가까워&nbsp;보였다.&nbsp;나이&nbsp;들어간다는&nbsp;말보다&nbsp;늙어간다는&nbsp;말이,&nbsp;오래&nbsp;살았다는&nbsp;말보다&nbsp;이제&nbsp;얼마&nbsp;남지&nbsp;않았다는&nbsp;말이&nbsp;내가&nbsp;상관하지&nbsp;않을&nbsp;수&nbsp;없는&nbsp;말로,&nbsp;때로는&nbsp;폭력적으로&nbsp;느껴질&nbsp;정도로&nbsp;들리기&nbsp;시작했다.&nbsp;두려웠던&nbsp;것일까.&nbsp;그렇다면&nbsp;나는&nbsp;무엇을&nbsp;두려워했던&nbsp;걸까.&nbsp;모든&nbsp;필멸의&nbsp;인간에게&nbsp;주어진&nbsp;존재론적&nbsp;불안의&nbsp;근원,&nbsp;죽음이&nbsp;성큼&nbsp;나의&nbsp;조그만&nbsp;레이더망&nbsp;안으로&nbsp;들어오기&nbsp;시작했기&nbsp;때문일까.&nbsp;결혼식보다&nbsp;장례식에&nbsp;참석하는&nbsp;날이&nbsp;늘어나면서&nbsp;죽음이&nbsp;늘&nbsp;내&nbsp;주위에&nbsp;맴돈다는&nbsp;사실에&nbsp;나는&nbsp;익숙해져야&nbsp;했다.&nbsp;나이&nbsp;든다는&nbsp;건&nbsp;죽음에&nbsp;익숙해지는&nbsp;과정일지도&nbsp;모른다.&nbsp;<br>
<br>
죽음을&nbsp;생각할&nbsp;때마다&nbsp;과거의&nbsp;흩어진&nbsp;기억들이&nbsp;지금도&nbsp;여전히&nbsp;이해할&nbsp;수&nbsp;없는&nbsp;방식으로&nbsp;불쑥불쑥&nbsp;나를&nbsp;급습하곤&nbsp;한다.&nbsp;죽음에&nbsp;가까울수록,&nbsp;상실이&nbsp;깊어질수록&nbsp;기억하는&nbsp;시간도&nbsp;많아지는&nbsp;듯하다.&nbsp;집착일까,&nbsp;애착일까.&nbsp;둘을&nbsp;구분할&nbsp;수는&nbsp;있는&nbsp;걸까.&nbsp;죽음과&nbsp;상실이&nbsp;나의&nbsp;것이&nbsp;아니라&nbsp;내가&nbsp;사랑하는,&nbsp;혹은&nbsp;내게&nbsp;소중했던&nbsp;사람들의&nbsp;것이어도,&nbsp;아니&nbsp;오히려&nbsp;그런&nbsp;죽음과&nbsp;상실일수록&nbsp;더욱더&nbsp;그&nbsp;효과는&nbsp;증폭되는&nbsp;것&nbsp;같았다.&nbsp;그럴&nbsp;때의&nbsp;기억은&nbsp;나의&nbsp;기억만이&nbsp;아닌&nbsp;우리의&nbsp;기억으로&nbsp;확장되기&nbsp;때문이었다.&nbsp;바움가트너도&nbsp;다르지&nbsp;않았다.&nbsp;그의&nbsp;인생은&nbsp;아내의&nbsp;죽음&nbsp;전후로&nbsp;두&nbsp;동강이&nbsp;나버렸다.&nbsp;아내를&nbsp;잃은&nbsp;이후&nbsp;그는&nbsp;반만&nbsp;살아있는&nbsp;사람으로,&nbsp;반은&nbsp;죽어있는&nbsp;채로&nbsp;살아가게&nbsp;되었다.&nbsp;그의&nbsp;기억은&nbsp;아내와의&nbsp;기억이었다.&nbsp;<br>
<br>
기억은&nbsp;이상하다.&nbsp;중요하다고&nbsp;여겼던&nbsp;것들은&nbsp;통째로&nbsp;기억에서&nbsp;자주&nbsp;사라지는&nbsp;반면,&nbsp;시시콜콜하고&nbsp;별거&nbsp;아닌&nbsp;것들은&nbsp;공감각적으로&nbsp;생생하게,&nbsp;어떤&nbsp;것은&nbsp;초단위로도&nbsp;기억된다.&nbsp;중요하다고&nbsp;생각하는&nbsp;주체도,&nbsp;기억하는&nbsp;주체도&nbsp;모두&nbsp;나인데,&nbsp;왜&nbsp;이&nbsp;두&nbsp;주체는&nbsp;내&nbsp;안에서도&nbsp;좀처럼&nbsp;일치하지&nbsp;않는&nbsp;것일까.&nbsp;나는&nbsp;여전히&nbsp;그&nbsp;답을&nbsp;알지&nbsp;못한다.<br>
<br>
바움가트너를&nbsp;관통하는&nbsp;기억은&nbsp;아내의&nbsp;갑작스러운&nbsp;죽음이었다.&nbsp;아내가&nbsp;죽고&nbsp;그는&nbsp;아내가&nbsp;자신의&nbsp;일부였음을&nbsp;체감하게&nbsp;된다.&nbsp;팔다리를&nbsp;잃은&nbsp;사람이&nbsp;여전히&nbsp;잃어버린&nbsp;그&nbsp;부위의&nbsp;고통을&nbsp;느끼듯&nbsp;바움가트너는&nbsp;아내의&nbsp;상실로&nbsp;인해&nbsp;환지통을&nbsp;겪는다.&nbsp;환지통!&nbsp;소중한&nbsp;사람을&nbsp;잃은&nbsp;사람의&nbsp;마음을&nbsp;이토록&nbsp;피부에&nbsp;와닿도록&nbsp;절절하게&nbsp;표현하는&nbsp;단어가&nbsp;또&nbsp;있을까.&nbsp;나는&nbsp;그런&nbsp;바움가트너를&nbsp;보고&nbsp;그가&nbsp;아내를&nbsp;진정으로&nbsp;많이&nbsp;사랑했다는&nbsp;사실을&nbsp;알게&nbsp;된다.<br>
<br>
반려자와의&nbsp;이별은&nbsp;피할&nbsp;수&nbsp;없다.&nbsp;누가&nbsp;세상을&nbsp;먼저&nbsp;떠나는지는&nbsp;중요하지&nbsp;않다.&nbsp;어쩌면&nbsp;죽음보다&nbsp;이별이야말로&nbsp;감당할&nbsp;수&nbsp;없을&nbsp;만큼&nbsp;더&nbsp;큰&nbsp;고통이지&nbsp;않을까.&nbsp;아내가&nbsp;죽은&nbsp;지&nbsp;십&nbsp;년이&nbsp;지난&nbsp;작품&nbsp;속&nbsp;현재,&nbsp;바움가트너의&nbsp;일상은&nbsp;평범한&nbsp;듯하지만&nbsp;실상은&nbsp;그렇지&nbsp;않다.&nbsp;그는&nbsp;자잘한&nbsp;많은&nbsp;것들에도&nbsp;요동한다.&nbsp;무엇&nbsp;하나&nbsp;원하는&nbsp;대로&nbsp;되지&nbsp;않는다.&nbsp;마치&nbsp;원래&nbsp;붙어있던&nbsp;팔다리가&nbsp;사라진&nbsp;것처럼&nbsp;말이다.&nbsp;그는&nbsp;죽음에&nbsp;한&nbsp;걸음&nbsp;더&nbsp;가까워졌고,&nbsp;세상에서&nbsp;가장&nbsp;큰&nbsp;상실을&nbsp;겪은&nbsp;자로서&nbsp;과거를&nbsp;기억한다.&nbsp;그리고&nbsp;그&nbsp;기억&nbsp;속에서&nbsp;살아간다.&nbsp;피할&nbsp;수&nbsp;없고&nbsp;제거할&nbsp;수&nbsp;없는,&nbsp;뼈에&nbsp;새겨진&nbsp;각인이다.&nbsp;<br>
<br>
글이란&nbsp;무엇인지에&nbsp;대해서도&nbsp;숙고할&nbsp;수&nbsp;있었다.&nbsp;바움가트너의&nbsp;아내&nbsp;애나는&nbsp;많은&nbsp;글을&nbsp;남겼다.&nbsp;그&nbsp;글의&nbsp;세상&nbsp;속에서&nbsp;바움가트너는&nbsp;아내를&nbsp;이미지&nbsp;없는&nbsp;이미지로&nbsp;기억한다.&nbsp;그리고&nbsp;함께한다.&nbsp;그녀의&nbsp;옷가지들을&nbsp;끝내&nbsp;다&nbsp;치워버려도&nbsp;글만은&nbsp;그러지&nbsp;못한다.&nbsp;아니&nbsp;그럴&nbsp;수&nbsp;없었을&nbsp;것이다.&nbsp;글은&nbsp;그녀가&nbsp;남긴&nbsp;그&nbsp;무엇이&nbsp;아니라&nbsp;그녀의&nbsp;한&nbsp;부분이었을&nbsp;테니까.<br>
<br>
이제&nbsp;이&nbsp;책이&nbsp;남긴&nbsp;세&nbsp;단어는&nbsp;내&nbsp;안에서&nbsp;한&nbsp;단어로&nbsp;압축된다.&nbsp;사랑이라는&nbsp;한&nbsp;단어로.&nbsp;작품&nbsp;내내&nbsp;죽음과&nbsp;상실과&nbsp;기억이&nbsp;혼재되어&nbsp;숭고함이&nbsp;느껴질&nbsp;정도로&nbsp;차분한&nbsp;마음이&nbsp;되었지만,&nbsp;이&nbsp;글을&nbsp;마무리할&nbsp;즈음이&nbsp;되니&nbsp;모든&nbsp;게&nbsp;사랑이라는&nbsp;단어로&nbsp;채색되는&nbsp;것&nbsp;같다.&nbsp;그렇다.&nbsp;폴&nbsp;오스터는&nbsp;그의&nbsp;유작이&nbsp;되어버린&nbsp;‘바움가트너’라는&nbsp;글로&nbsp;우리들에게&nbsp;죽음도&nbsp;상실도&nbsp;기억도&nbsp;아닌&nbsp;사랑을&nbsp;남긴&nbsp;것이다.<br>
<br>
언젠가&nbsp;죽음을&nbsp;앞둔&nbsp;상황에서도&nbsp;나는&nbsp;글을&nbsp;쓰고&nbsp;있길&nbsp;바랐다.&nbsp;그러나&nbsp;그&nbsp;글이&nbsp;무엇을&nbsp;말하고&nbsp;있을지에&nbsp;대해서는&nbsp;미처&nbsp;생각해보지&nbsp;못했다.&nbsp;이제는&nbsp;알&nbsp;것&nbsp;같다.&nbsp;내&nbsp;글도&nbsp;나지막이&nbsp;사랑을&nbsp;노래할&nbsp;수&nbsp;있으면&nbsp;좋겠다.&nbsp;죽음,&nbsp;상실,&nbsp;기억을&nbsp;덮고도&nbsp;남는&nbsp;사랑을.<br>
<br>
#열린책들&nbsp;<br>
#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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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폴&nbsp;오스터&nbsp;읽기<br>
1.&nbsp;뉴욕&nbsp;3부작&nbsp;중&nbsp;유리의&nbsp;도시:&nbsp;https://rtmodel.tistory.com/1788<br>
2.&nbsp;뉴욕&nbsp;3부작&nbsp;중&nbsp;유령들:&nbsp;https://rtmodel.tistory.com/1791<br>
3.&nbsp;뉴욕&nbsp;3부작&nbsp;중&nbsp;잠겨&nbsp;있는&nbsp;방:&nbsp;https://rtmodel.tistory.com/1794<br>
4.&nbsp;빵&nbsp;굽는&nbsp;타자기:&nbsp;https://rtmodel.tistory.com/2048<br>
5.&nbsp;바움가트너:&nbsp;https://rtmodel.tistory.com/m/2116]]></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36/28/cover150/893292504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362895</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좋은‘ 책 만드는 일 - [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89017</link><pubDate>Fri, 13 Feb 2026 0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890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8572224&TPaperId=170890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8/84/coveroff/89685722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8572224&TPaperId=170890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a><br/>고우리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04월<br/></td></tr></table><br/>’좋은‘&nbsp;책&nbsp;만드는&nbsp;일<br>
<br>
고우리&nbsp;저,&nbsp;‘편집자의&nbsp;사생활‘을&nbsp;읽고<br>
<br>
’사생활’이라는&nbsp;단어는&nbsp;묘한&nbsp;매력이&nbsp;있다.&nbsp;들키고&nbsp;싶지&nbsp;않은&nbsp;마음과&nbsp;몰래&nbsp;알고&nbsp;싶은&nbsp;마음이&nbsp;거의&nbsp;동시에&nbsp;든다.&nbsp;나의&nbsp;사생활은&nbsp;보호받고&nbsp;싶지만,&nbsp;타인의&nbsp;사생활은&nbsp;궁금한&nbsp;이런&nbsp;마음은&nbsp;아마도&nbsp;인간의&nbsp;양면성을&nbsp;단적으로&nbsp;보여주는&nbsp;건지도&nbsp;모르겠다.&nbsp;<br>
<br>
제목에서부터&nbsp;이&nbsp;단어가&nbsp;들어가&nbsp;관심이&nbsp;갔다.&nbsp;왜&nbsp;그런&nbsp;거&nbsp;있지&nbsp;않나.&nbsp;관심&nbsp;없는&nbsp;척해야&nbsp;할&nbsp;것&nbsp;같은데,&nbsp;실제론&nbsp;관심이&nbsp;가는&nbsp;것.&nbsp;마치&nbsp;양손으로&nbsp;두&nbsp;눈을&nbsp;가렸지만&nbsp;조심스레&nbsp;한&nbsp;손가락씩&nbsp;벌려&nbsp;보게&nbsp;되는&nbsp;마음과&nbsp;같달까.&nbsp;무엇보다&nbsp;내가&nbsp;좋아하는&nbsp;책에&nbsp;관련된&nbsp;내용이라,&nbsp;게다가&nbsp;최근에&nbsp;읽었던&nbsp;정아은&nbsp;작가의&nbsp;‘이렇게&nbsp;작가가&nbsp;되었습니다’를&nbsp;출간했던&nbsp;마름모&nbsp;출판사&nbsp;대표의&nbsp;자서전적&nbsp;이야기라&nbsp;나는&nbsp;이&nbsp;책의&nbsp;존재를&nbsp;알고&nbsp;바로&nbsp;구했다.&nbsp;<br>
<br>
가족을&nbsp;만나러&nbsp;엘에이행&nbsp;비행기에&nbsp;탑승하자마자&nbsp;읽기&nbsp;시작했다.&nbsp;첫&nbsp;식사가&nbsp;준비될&nbsp;즈음이었으니&nbsp;두&nbsp;시간&nbsp;정도&nbsp;걸렸던&nbsp;것&nbsp;같다.&nbsp;저자의&nbsp;필력이&nbsp;좋았다.&nbsp;술술&nbsp;읽히는&nbsp;문체였다.&nbsp;정아은&nbsp;작가도&nbsp;언급했던&nbsp;것&nbsp;같은데,&nbsp;편집자가&nbsp;작가만큼&nbsp;혹은&nbsp;작가보다&nbsp;글을&nbsp;잘&nbsp;쓴다는&nbsp;게&nbsp;어떤&nbsp;것인지&nbsp;느낄&nbsp;수&nbsp;있었다.&nbsp;무엇보다&nbsp;내가&nbsp;글쓰기에서&nbsp;가장&nbsp;중요하게&nbsp;여기는&nbsp;가치인&nbsp;’진정성‘이&nbsp;글&nbsp;전체에&nbsp;녹아&nbsp;있어&nbsp;마치&nbsp;내가&nbsp;편집자라도&nbsp;된&nbsp;듯한&nbsp;기분도&nbsp;느낄&nbsp;수&nbsp;있었다.&nbsp;독자로부터&nbsp;흡입력을&nbsp;이끌어내는&nbsp;건&nbsp;전적으로&nbsp;작가의&nbsp;내공이라&nbsp;믿는다.&nbsp;<br>
<br>
이&nbsp;책을&nbsp;읽으면서&nbsp;편집자의&nbsp;일상이&nbsp;내가&nbsp;상상하던&nbsp;것보다&nbsp;의외로&nbsp;멋지게&nbsp;다가왔다.&nbsp;편집자가&nbsp;쓴&nbsp;다른&nbsp;책을&nbsp;읽었을&nbsp;때는&nbsp;느끼지&nbsp;못했던&nbsp;기분이었다.&nbsp;이&nbsp;책은&nbsp;편집자의&nbsp;일이&nbsp;알고&nbsp;보면&nbsp;이런저런&nbsp;일인다역을&nbsp;소화해야&nbsp;하느라&nbsp;엄청&nbsp;힘든&nbsp;일이랍니다,&nbsp;돈도&nbsp;안&nbsp;되고요,&nbsp;하는&nbsp;뉘앙스가&nbsp;강조하지&nbsp;않았고,&nbsp;대신&nbsp;편집자라는&nbsp;직업이&nbsp;의례히&nbsp;가져야&nbsp;할&nbsp;것만&nbsp;같은&nbsp;어떤&nbsp;’숭고함’이랄까&nbsp;하는,&nbsp;물론&nbsp;누군가에겐&nbsp;낭만으로&nbsp;보일&nbsp;수도&nbsp;있을,&nbsp;비물질적&nbsp;가치를&nbsp;소중히&nbsp;다루고&nbsp;있었다.&nbsp;그래서였는지&nbsp;오히려&nbsp;편집자라는&nbsp;직업이&nbsp;내겐&nbsp;더&nbsp;매력적으로&nbsp;다가왔던&nbsp;것&nbsp;같다.&nbsp;참고로&nbsp;나는&nbsp;숭고함을&nbsp;저버린&nbsp;물질주의적&nbsp;직업인에게서는&nbsp;아무런&nbsp;매력을&nbsp;느끼지&nbsp;못한다.&nbsp;<br>
<br>
저자는&nbsp;우스갯소리로&nbsp;10층&nbsp;빌딩을&nbsp;목표로&nbsp;한다고&nbsp;했다.&nbsp;나는&nbsp;이&nbsp;목표도&nbsp;좋게&nbsp;보였다.&nbsp;저자&nbsp;같은&nbsp;편집자(이자&nbsp;작가이자&nbsp;일인출판사&nbsp;마름모&nbsp;대표)라면&nbsp;그래도&nbsp;되지&nbsp;않나&nbsp;싶은&nbsp;생각을&nbsp;하게&nbsp;되었다.&nbsp;돈&nbsp;흘러가는&nbsp;데만&nbsp;눈이&nbsp;밝은&nbsp;자들로부터&nbsp;그&nbsp;빌딩을&nbsp;꼭&nbsp;사수하길&nbsp;바라게&nbsp;되었다(물론,&nbsp;먼저&nbsp;지어야&nbsp;하겠지만^^).&nbsp;한&nbsp;번도&nbsp;함께&nbsp;작업해보지&nbsp;못했지만,&nbsp;이&nbsp;책은&nbsp;작가라는&nbsp;정체성을&nbsp;가진&nbsp;사람에게는&nbsp;적어도&nbsp;그런&nbsp;믿음과&nbsp;신뢰를&nbsp;주기에&nbsp;충분했던&nbsp;것이다.&nbsp;<br>
<br>
책은&nbsp;상품이다,라는&nbsp;명제는&nbsp;참이다.&nbsp;하지만&nbsp;이&nbsp;명제는&nbsp;책이라는&nbsp;고유한&nbsp;가치를&nbsp;다&nbsp;담아내진&nbsp;못한다.&nbsp;책은&nbsp;상품이긴&nbsp;하지만&nbsp;상품을&nbsp;초월하는&nbsp;그&nbsp;무엇이기&nbsp;때문이다.&nbsp;이&nbsp;책의&nbsp;저자처럼&nbsp;이런&nbsp;가치를&nbsp;알고&nbsp;존중하고,&nbsp;나아가&nbsp;먹고사니즘이&nbsp;지향하는&nbsp;자본주의적&nbsp;가치와&nbsp;종종&nbsp;부딪치더라도,&nbsp;끝까지&nbsp;지켜내고&nbsp;싶어&nbsp;하고&nbsp;또&nbsp;지켜내고야&nbsp;마는&nbsp;편집자&nbsp;혹은&nbsp;출판사의&nbsp;존재가&nbsp;많아지면&nbsp;좋겠다.&nbsp;돈을&nbsp;벌어주는&nbsp;책이&nbsp;아닌&nbsp;그야말로&nbsp;‘좋은‘&nbsp;책,&nbsp;세상에&nbsp;꼭&nbsp;있어야&nbsp;할&nbsp;책,&nbsp;꼭&nbsp;읽히면&nbsp;좋을&nbsp;책들이&nbsp;더&nbsp;많아지면&nbsp;좋겠다.&nbsp;’베스트셀러’의&nbsp;퇴색된&nbsp;의미가&nbsp;사라지고&nbsp;좋은&nbsp;책이&nbsp;많이&nbsp;팔리고&nbsp;읽히면&nbsp;좋겠다.&nbsp;그리고&nbsp;이런&nbsp;책들을&nbsp;내는&nbsp;출판사들이&nbsp;잘&nbsp;되면&nbsp;좋겠다.&nbsp;더불어&nbsp;편집자의&nbsp;일상(사생활)은&nbsp;곧&nbsp;’좋은‘&nbsp;책을&nbsp;만드는&nbsp;일이라는&nbsp;명제도&nbsp;참이길&nbsp;바란다.<br>
<br>
#미디어샘<br>
#김영웅의책과일상&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8/84/cover150/89685722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988408</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소설가의 성장, 작품으로 말하다 - [당신이 준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89004</link><pubDate>Fri, 13 Feb 2026 0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890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726&TPaperId=170890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63/10/coveroff/89609097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726&TPaperId=170890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이 준 것</a><br/>문지혁 지음, 박선엽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01월<br/></td></tr></table><br/>소설가의&nbsp;성장,&nbsp;작품으로&nbsp;말하다<br>
<br>
문지혁&nbsp;저,&nbsp;‘당신이&nbsp;준&nbsp;것’을&nbsp;읽고<br>
<br>
KISS<br>
거의&nbsp;이십&nbsp;년&nbsp;전&nbsp;대학원&nbsp;워크숍에서&nbsp;썼던,&nbsp;A4지&nbsp;한&nbsp;장&nbsp;정도&nbsp;분량의&nbsp;초단편&nbsp;소설.&nbsp;첫&nbsp;문장부터&nbsp;긴장과&nbsp;스릴을&nbsp;조성하다가&nbsp;외통수의&nbsp;마지막&nbsp;문장으로&nbsp;끝나는&nbsp;강렬한&nbsp;작품.&nbsp;제목의&nbsp;철자를&nbsp;다시&nbsp;보게&nbsp;되고&nbsp;작품&nbsp;속&nbsp;공간이&nbsp;어딘지&nbsp;재차&nbsp;확인하게&nbsp;되는&nbsp;이야기.&nbsp;초단편&nbsp;소설은&nbsp;이렇게&nbsp;써야&nbsp;하는구나,&nbsp;하는&nbsp;걸&nbsp;보란&nbsp;듯&nbsp;보여주는&nbsp;작품.<br>
<br>
강과&nbsp;맥주<br>
완결성을&nbsp;갖는&nbsp;어떤&nbsp;이야기가&nbsp;아니라&nbsp;그&nbsp;이야기의&nbsp;아주&nbsp;작은&nbsp;한&nbsp;장면을&nbsp;묘사한&nbsp;듯한&nbsp;작품.&nbsp;하고&nbsp;싶은&nbsp;말을&nbsp;어떻게&nbsp;해야&nbsp;할지&nbsp;몰라&nbsp;머뭇거리며&nbsp;맥주만&nbsp;홀짝거리는&nbsp;한&nbsp;남자와&nbsp;마음이&nbsp;이미&nbsp;많이&nbsp;멀어진&nbsp;듯,&nbsp;식은&nbsp;듯&nbsp;침묵으로&nbsp;일관하다가&nbsp;가야&nbsp;한다며&nbsp;먼저&nbsp;일어나&nbsp;가버린&nbsp;여자.&nbsp;여자의&nbsp;맥주는&nbsp;거의&nbsp;마시지도&nbsp;않은&nbsp;상태였다.&nbsp;시간은&nbsp;남자와&nbsp;여자에게&nbsp;다르게&nbsp;흘러갔을&nbsp;것이다.&nbsp;맥주를&nbsp;세&nbsp;캔이나&nbsp;마시던&nbsp;남자에게&nbsp;시간은&nbsp;홀짝대는&nbsp;만큼&nbsp;멈추고&nbsp;있었으나,&nbsp;맥주를&nbsp;거의&nbsp;마시지도&nbsp;않은&nbsp;채&nbsp;침묵을&nbsp;지켰던&nbsp;여자에게&nbsp;시간은&nbsp;무겁고&nbsp;느리게&nbsp;계속&nbsp;흐르고&nbsp;있었을&nbsp;것이다.&nbsp;그러므로&nbsp;여자가&nbsp;먼저&nbsp;입을&nbsp;열고&nbsp;일어나&nbsp;가버린&nbsp;것은&nbsp;어쩌면&nbsp;당연한&nbsp;수순이었다.&nbsp;더&nbsp;이상&nbsp;시간을&nbsp;멈출&nbsp;필요가&nbsp;없어진,&nbsp;홀로&nbsp;남겨진&nbsp;남자는&nbsp;여자가&nbsp;남긴&nbsp;맥주를&nbsp;마실&nbsp;필요가&nbsp;없었을&nbsp;것이다.&nbsp;그래서&nbsp;강물에&nbsp;그냥&nbsp;흘려보낸다.&nbsp;하지만&nbsp;네&nbsp;개의&nbsp;빈&nbsp;캔은&nbsp;가방&nbsp;속에&nbsp;넣어&nbsp;가지고&nbsp;간다.&nbsp;미련이었을&nbsp;것이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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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만&nbsp;더<br>
기다리던&nbsp;메시지는&nbsp;그녀에게&nbsp;고백을&nbsp;한&nbsp;뒤&nbsp;2주&nbsp;만에&nbsp;왔다.&nbsp;유니온&nbsp;스퀘어에서&nbsp;만나자는&nbsp;건조한&nbsp;텍스트가&nbsp;무슨&nbsp;뜻인지&nbsp;알기&nbsp;위해&nbsp;그는&nbsp;평소에&nbsp;타지&nbsp;않던&nbsp;라인의&nbsp;지하철을&nbsp;타고&nbsp;약속장소로&nbsp;향한다.&nbsp;운명이었을까.&nbsp;그가&nbsp;무작위로&nbsp;튼&nbsp;곡&nbsp;제목은&nbsp;‘추억과&nbsp;함께&nbsp;영원히&nbsp;둘로&nbsp;남는다’였고,&nbsp;같은&nbsp;칸에&nbsp;타고&nbsp;있던&nbsp;방화범의&nbsp;방화로&nbsp;그는&nbsp;곡이&nbsp;끝나기&nbsp;7초&nbsp;전&nbsp;생을&nbsp;마감한다.&nbsp;7초가&nbsp;더&nbsp;지나도&nbsp;달라질&nbsp;건&nbsp;없었을&nbsp;것이다.&nbsp;그러나&nbsp;그&nbsp;순간&nbsp;그가&nbsp;바랄&nbsp;수&nbsp;있는&nbsp;건&nbsp;그게&nbsp;전부였던&nbsp;것&nbsp;같다.&nbsp;마치&nbsp;그&nbsp;곡을&nbsp;끝까지&nbsp;들으면&nbsp;혼자가&nbsp;아니라&nbsp;둘로&nbsp;남을&nbsp;수&nbsp;있을&nbsp;것처럼&nbsp;여겨졌던&nbsp;것일지도&nbsp;모르겠다.&nbsp;하지만&nbsp;그는&nbsp;결국&nbsp;’추억과&nbsp;함께&nbsp;영원히‘까지만&nbsp;듣고&nbsp;‘둘로&nbsp;남는다‘는&nbsp;듣지&nbsp;못했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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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nbsp;웨스트엔드<br>
외국인에게&nbsp;영어를&nbsp;가르치던&nbsp;덴마크&nbsp;출신의&nbsp;교사&nbsp;라리사를&nbsp;화자는&nbsp;종강파티&nbsp;2차를&nbsp;가기&nbsp;직전에&nbsp;찾는다.&nbsp;그녀의&nbsp;집으로&nbsp;택시를&nbsp;타고&nbsp;달린다.&nbsp;건물에&nbsp;도착했으나&nbsp;어느&nbsp;집이&nbsp;그녀의&nbsp;집인지&nbsp;모른&nbsp;채,&nbsp;머릿속에서&nbsp;많은&nbsp;문장을&nbsp;만들었지만&nbsp;우물쭈물하다가&nbsp;전화도&nbsp;하지&nbsp;못하고&nbsp;그는&nbsp;문자&nbsp;하나만&nbsp;달랑&nbsp;넣고&nbsp;만다.&nbsp;Good&nbsp;night.&nbsp;그리고&nbsp;다시&nbsp;2차&nbsp;장소로&nbsp;터벅터벅&nbsp;걸어간다.&nbsp;남자가&nbsp;애절하다는&nbsp;느낌보다&nbsp;찌질하다는&nbsp;생각이&nbsp;남는&nbsp;작품.&nbsp;아마도&nbsp;내가&nbsp;더&nbsp;이상&nbsp;이십&nbsp;대가&nbsp;아니라&nbsp;그런&nbsp;것이리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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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nbsp;허니문<br>
청첩장도&nbsp;돌리고&nbsp;여러&nbsp;예약도&nbsp;하고&nbsp;신혼여행도&nbsp;예약한&nbsp;젊은&nbsp;예비부부&nbsp;이야기.&nbsp;예비&nbsp;신부는&nbsp;결혼&nbsp;3주&nbsp;전&nbsp;급작사로&nbsp;세상을&nbsp;떠난다.&nbsp;아내가&nbsp;될&nbsp;여자가&nbsp;사라진&nbsp;‘무의미‘와&nbsp;싸우면서&nbsp;어쩌다&nbsp;혼자&nbsp;살아남게&nbsp;된&nbsp;남자는&nbsp;여자가&nbsp;도맡아&nbsp;준비했던&nbsp;신혼여행을&nbsp;취소하지&nbsp;않고&nbsp;혼자&nbsp;떠나기로&nbsp;한다.&nbsp;세계&nbsp;3대&nbsp;야경을&nbsp;볼&nbsp;수&nbsp;있는&nbsp;한&nbsp;곳,&nbsp;하코다테였다.&nbsp;호텔에만&nbsp;처박혀&nbsp;있다가&nbsp;체크아웃을&nbsp;하고&nbsp;전망대에&nbsp;오른&nbsp;그는&nbsp;호텔에서&nbsp;썼던&nbsp;편지로&nbsp;종이비행기를&nbsp;접어&nbsp;홀로&nbsp;선&nbsp;전망대에서&nbsp;날린다.&nbsp;까마귀&nbsp;떼가&nbsp;그것을&nbsp;잽싸게&nbsp;잡아채&nbsp;하강하는&nbsp;장면을&nbsp;목도한다.&nbsp;그리고&nbsp;그는&nbsp;저녁&nbsp;비행기&nbsp;시간에&nbsp;개의치&nbsp;않고&nbsp;그&nbsp;자리에&nbsp;서서&nbsp;한참을&nbsp;서&nbsp;있는다.&nbsp;죽은&nbsp;예비&nbsp;신부의&nbsp;전령이었을까.&nbsp;야경을&nbsp;보지도&nbsp;않고&nbsp;돌아가려는&nbsp;남자를&nbsp;사로잡는&nbsp;그&nbsp;장면은.&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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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자국<br>
카페에서&nbsp;발견한&nbsp;핏자국을&nbsp;‘그&nbsp;핏자국‘으로&nbsp;만들어내는&nbsp;일이&nbsp;바로&nbsp;소설을&nbsp;쓰는&nbsp;일임을&nbsp;말해주는&nbsp;이야기.&nbsp;문지혁&nbsp;작가의&nbsp;짧은&nbsp;수업을&nbsp;듣는&nbsp;듯한&nbsp;기분이었다.&nbsp;저자인&nbsp;듯한&nbsp;화자는&nbsp;정체&nbsp;모를&nbsp;핏자국으로부터&nbsp;남녀&nbsp;사이의&nbsp;이별&nbsp;장면을&nbsp;상상하며&nbsp;손목을&nbsp;그은&nbsp;여자를&nbsp;떠올린다.&nbsp;그렇다.&nbsp;아주&nbsp;작은&nbsp;재료로도&nbsp;풍성한&nbsp;이야기를&nbsp;만들어낼&nbsp;수&nbsp;있다.&nbsp;소설은&nbsp;그런&nbsp;것이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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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nbsp;달<br>
‘핏자국’에&nbsp;이어&nbsp;허구적&nbsp;상상력은&nbsp;이렇게&nbsp;작동하는&nbsp;거다,라는&nbsp;예시를&nbsp;보여주는&nbsp;작품.&nbsp;한&nbsp;여자에게&nbsp;술을&nbsp;얻어&nbsp;마시고&nbsp;잠에서&nbsp;깼는데&nbsp;얼음&nbsp;욕조&nbsp;안에&nbsp;있더라는&nbsp;한&nbsp;남자의&nbsp;이야기.&nbsp;그&nbsp;남자는&nbsp;신장을&nbsp;도둑맞은&nbsp;직후였다.&nbsp;그리고&nbsp;매일&nbsp;괴물이&nbsp;되어&nbsp;사람이&nbsp;사람을&nbsp;잡아먹는&nbsp;상황이&nbsp;연출되고&nbsp;끝내&nbsp;살아남게&nbsp;되는&nbsp;한&nbsp;여자의&nbsp;이야기.&nbsp;여자가&nbsp;가까스로&nbsp;탈출한&nbsp;날&nbsp;밤은&nbsp;언제나&nbsp;붉은색의&nbsp;만월이었다.&nbsp;화자가&nbsp;술집에서&nbsp;그&nbsp;여자와&nbsp;서로의&nbsp;이야기를&nbsp;주고받다가&nbsp;여자가&nbsp;먼저&nbsp;떠나고&nbsp;밖을&nbsp;나왔는데,&nbsp;갑자기&nbsp;코가&nbsp;사라진&nbsp;남자가&nbsp;와서&nbsp;자기&nbsp;배를&nbsp;찌른다.&nbsp;하늘을&nbsp;보니&nbsp;붉은빛&nbsp;만월이었다.&nbsp;단편소설만이&nbsp;줄&nbsp;수&nbsp;있는&nbsp;이런&nbsp;과감하고&nbsp;조각난&nbsp;상상력의&nbsp;향연.&nbsp;하지만&nbsp;나는&nbsp;여전히&nbsp;이런&nbsp;식의&nbsp;소설을&nbsp;읽고&nbsp;나면&nbsp;똥&nbsp;싸고&nbsp;제대로&nbsp;닦지&nbsp;않은&nbsp;듯한&nbsp;기분을&nbsp;느낀다.&nbsp;하지만&nbsp;이런&nbsp;‘무책임함’이&nbsp;단편소설의&nbsp;독특한&nbsp;맛이리라.<br>
<br>
당신이&nbsp;준<br>
이야기가&nbsp;막&nbsp;진행되려&nbsp;하는&nbsp;차에&nbsp;끝나버리고&nbsp;마는&nbsp;듯한&nbsp;소설.&nbsp;예전에&nbsp;선물&nbsp;받았던&nbsp;오르골의&nbsp;의미를&nbsp;소설이&nbsp;조금만&nbsp;더&nbsp;진행이&nbsp;되면&nbsp;알&nbsp;수&nbsp;있을&nbsp;것&nbsp;같은&nbsp;기대감이&nbsp;충족되지&nbsp;않아&nbsp;아쉬운&nbsp;작품.&nbsp;‘당신이&nbsp;준&nbsp;시간‘이라는&nbsp;메시지도&nbsp;모호하기만&nbsp;한&nbsp;작품.&nbsp;몇&nbsp;페이지만&nbsp;더&nbsp;저자가&nbsp;써줬으면&nbsp;싶었던&nbsp;이야기.<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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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서<br>
SF&nbsp;소설.&nbsp;안드로이드인&nbsp;주인공은&nbsp;탐정&nbsp;일로&nbsp;생계를&nbsp;이어간다.&nbsp;인간이&nbsp;인간을&nbsp;죽이는&nbsp;것은&nbsp;가인과&nbsp;아벨&nbsp;이야기부터&nbsp;시작된&nbsp;오래된&nbsp;일이지만,&nbsp;안드로이드가&nbsp;안드로이드를&nbsp;대하는&nbsp;방식도&nbsp;작품&nbsp;속에서는&nbsp;그다지&nbsp;다르지&nbsp;않다는&nbsp;설정이다.&nbsp;살인사건&nbsp;해결로&nbsp;목돈을&nbsp;마련하여&nbsp;안과&nbsp;수술을&nbsp;받으려는&nbsp;주인공&nbsp;안드로이드와&nbsp;그와&nbsp;친분이&nbsp;있는&nbsp;경찰&nbsp;안드로이드&nbsp;프랭크.&nbsp;프랭크는&nbsp;주인공이&nbsp;안과에서&nbsp;마취를&nbsp;당했을&nbsp;때&nbsp;이용당했음을&nbsp;간파해&nbsp;내고&nbsp;주인공을&nbsp;살인사건&nbsp;용의자로&nbsp;체포하려&nbsp;한다.&nbsp;기지를&nbsp;발휘하여&nbsp;주인공은&nbsp;프랭크를&nbsp;공격하고&nbsp;서로의&nbsp;칩을&nbsp;맞바꾸는&nbsp;선택을&nbsp;한&nbsp;뒤&nbsp;실행에&nbsp;옮긴다.&nbsp;안드로이드에게도&nbsp;정체성이란&nbsp;게&nbsp;있는지,&nbsp;중요한지,&nbsp;무슨&nbsp;의미를&nbsp;지니는지&nbsp;묻는&nbsp;듯한&nbsp;이야기.&nbsp;이&nbsp;책을&nbsp;구성하는&nbsp;열두&nbsp;편의&nbsp;짧은&nbsp;소설&nbsp;중&nbsp;꽤&nbsp;긴&nbsp;작품임에도&nbsp;내겐&nbsp;소설이&nbsp;무엇을&nbsp;말하고&nbsp;싶은&nbsp;것인지&nbsp;여전히&nbsp;모호하게&nbsp;다가왔다.&nbsp;장편으로&nbsp;확장하면&nbsp;좋을&nbsp;것&nbsp;같은&nbsp;생각을&nbsp;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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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nbsp;시커<br>
역시&nbsp;SF.&nbsp;외계인은&nbsp;물론&nbsp;우주여행이&nbsp;가능한&nbsp;시공간&nbsp;속&nbsp;이야기.&nbsp;주인공은&nbsp;가방&nbsp;속&nbsp;알&nbsp;수&nbsp;없는&nbsp;책&nbsp;한&nbsp;권을&nbsp;읽으며&nbsp;먼&nbsp;출장길에&nbsp;오른다.&nbsp;그&nbsp;책은&nbsp;지구동공설에&nbsp;관련된&nbsp;책이었고,&nbsp;언젠가&nbsp;사라졌다던&nbsp;할아버지&nbsp;이름도&nbsp;적혀&nbsp;있었다.&nbsp;주인공의&nbsp;아버지&nbsp;역시&nbsp;우주&nbsp;싱글라이딩을&nbsp;하다가&nbsp;어느&nbsp;날&nbsp;돌아오지&nbsp;않은&nbsp;채&nbsp;행방불명이었다.&nbsp;아버지가&nbsp;남긴&nbsp;듯한,&nbsp;아버지가&nbsp;마지막&nbsp;모습을&nbsp;보였던&nbsp;좌표&nbsp;가까이&nbsp;가게&nbsp;된&nbsp;주인공은&nbsp;자신이&nbsp;가지고&nbsp;간&nbsp;혈액샘플이&nbsp;반지&nbsp;형태로&nbsp;가운데&nbsp;구멍이&nbsp;생긴&nbsp;모양새를&nbsp;하게&nbsp;된&nbsp;것을&nbsp;샘플&nbsp;문제로만&nbsp;여겼었는데&nbsp;그게&nbsp;아니었다.&nbsp;그는&nbsp;블랙홀&nbsp;근처에&nbsp;있었던&nbsp;것이다.&nbsp;주인공은&nbsp;지구의&nbsp;구멍을&nbsp;찾는&nbsp;자,&nbsp;홀&nbsp;시커를&nbsp;우습게&nbsp;생각했다.&nbsp;그러나&nbsp;그&nbsp;홀&nbsp;시커는&nbsp;다름&nbsp;아닌&nbsp;자기&nbsp;자신이&nbsp;되어버린&nbsp;것이었다.&nbsp;작품&nbsp;마지막에서&nbsp;주인공은&nbsp;우주의&nbsp;구멍&nbsp;블랙홀을&nbsp;찾게&nbsp;되고&nbsp;빨려&nbsp;들어가게&nbsp;되기&nbsp;때문이다.&nbsp;지구의&nbsp;구멍과&nbsp;우주의&nbsp;구멍을&nbsp;연결시킨&nbsp;이야기.&nbsp;앞뒤의&nbsp;연결에&nbsp;어색하고&nbsp;뜬금없다는&nbsp;인상이&nbsp;강했던&nbsp;소설.&nbsp;역시&nbsp;장편으로&nbsp;확장되면&nbsp;좋겠다는&nbsp;생각을&nbsp;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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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nbsp;영원히<br>
이&nbsp;책에&nbsp;실린&nbsp;열두&nbsp;편의&nbsp;작품&nbsp;중&nbsp;긴&nbsp;편에&nbsp;속하는데&nbsp;읽는&nbsp;내내&nbsp;엉덩이에&nbsp;힘을&nbsp;뺄&nbsp;수&nbsp;없을&nbsp;정도로&nbsp;흡입력이&nbsp;강했던&nbsp;소설.&nbsp;전혀&nbsp;예상하지&nbsp;못했던&nbsp;상황의&nbsp;전개는&nbsp;물론&nbsp;불친절한&nbsp;연결조차&nbsp;작품성을&nbsp;더&nbsp;훌륭하게&nbsp;만든&nbsp;것처럼&nbsp;느껴졌던&nbsp;작품.&nbsp;완전한&nbsp;결론이&nbsp;나지&nbsp;않아&nbsp;여전히&nbsp;궁금함이&nbsp;남았지만,&nbsp;정유정의&nbsp;소설을&nbsp;읽는&nbsp;듯한&nbsp;기분까지&nbsp;든&nbsp;수작이었다.&nbsp;다이아몬드와&nbsp;연필의&nbsp;대비도,&nbsp;꽃반지와&nbsp;다이아몬드&nbsp;반지의&nbsp;대비도&nbsp;그&nbsp;상징성을&nbsp;잘&nbsp;드러내&nbsp;주었다.&nbsp;택배&nbsp;주인을&nbsp;알게&nbsp;되기까지의&nbsp;주인공&nbsp;부부의&nbsp;모습들에서도&nbsp;나는&nbsp;인간&nbsp;본성과&nbsp;심리를&nbsp;통찰할&nbsp;수&nbsp;있었다.&nbsp;문지혁&nbsp;작가가&nbsp;이런&nbsp;유형의&nbsp;소설을&nbsp;장편으로&nbsp;쓰면&nbsp;딱이겠다는&nbsp;강렬한&nbsp;생각이&nbsp;들었다.&nbsp;써주세요&nbsp;작가님~&nbsp;제2의&nbsp;정유정&nbsp;작가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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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과&nbsp;생존<br>
이&nbsp;책의&nbsp;저자인&nbsp;문지혁&nbsp;작가가&nbsp;등장하는&nbsp;소설.&nbsp;그러나&nbsp;시간대는&nbsp;현재가&nbsp;아니다.&nbsp;살짝&nbsp;디스토피아의&nbsp;뉘앙스마저&nbsp;느껴지는,&nbsp;몇&nbsp;년&nbsp;혹은&nbsp;몇십&nbsp;년&nbsp;뒤일까,&nbsp;아니&nbsp;오지&nbsp;않길&nbsp;바라야&nbsp;하는&nbsp;시점에서&nbsp;벌어지는&nbsp;이야기다.&nbsp;주인공은&nbsp;북토크를&nbsp;한다.&nbsp;종이책도&nbsp;마지막인&nbsp;듯하다.&nbsp;출판계가&nbsp;완전히&nbsp;바뀐&nbsp;것이다.&nbsp;문지혁&nbsp;작가의&nbsp;우려가&nbsp;허구적&nbsp;상상력을&nbsp;입고&nbsp;구체화된&nbsp;현실일&nbsp;것이다.&nbsp;고등학생인&nbsp;첫아들이&nbsp;북토크가&nbsp;끝날&nbsp;무렵&nbsp;들어와&nbsp;종이로&nbsp;만들어진&nbsp;포스터를&nbsp;가져도&nbsp;되냐고&nbsp;묻는다.&nbsp;학교&nbsp;과제를&nbsp;하기&nbsp;위해서였다.&nbsp;주로&nbsp;새벽에&nbsp;작업을&nbsp;하는&nbsp;작가에게&nbsp;이메일이&nbsp;온다.&nbsp;첫아들이&nbsp;보낸&nbsp;거다.&nbsp;발표자료를&nbsp;검토해&nbsp;달라는&nbsp;부탁인데&nbsp;첨부파일&nbsp;제목이&nbsp;‘멸종과&nbsp;생존:&nbsp;종이책이&nbsp;사라진&nbsp;39가지&nbsp;이유와&nbsp;생존자를&nbsp;아빠로&nbsp;둔&nbsp;나의&nbsp;북&nbsp;토크&nbsp;탐방기’였다.&nbsp;작품은&nbsp;주인공이&nbsp;아들에게&nbsp;피드백을&nbsp;하는&nbsp;장면으로&nbsp;끝난다.&nbsp;문지혁&nbsp;작가의&nbsp;종이책에&nbsp;대한&nbsp;염원과&nbsp;사랑이&nbsp;담긴&nbsp;글이었을&nbsp;것이다.&nbsp;나&nbsp;역시&nbsp;종이책이&nbsp;영원하길&nbsp;바란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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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br>
눈여겨보고&nbsp;있는&nbsp;차세대&nbsp;한국작가&nbsp;문지혁의&nbsp;일대기&nbsp;혹은&nbsp;성장기를&nbsp;그의&nbsp;자서전이&nbsp;아니라&nbsp;작품으로&nbsp;읽은&nbsp;느낌이랄까.&nbsp;극초단편부터&nbsp;초단편,&nbsp;단편까지&nbsp;여러&nbsp;분량,&nbsp;그리고&nbsp;스릴러,&nbsp;SF,&nbsp;드라마&nbsp;등에&nbsp;이르는&nbsp;여러&nbsp;장르를&nbsp;뛰어넘는&nbsp;열두&nbsp;편의&nbsp;작품들을&nbsp;읽으며&nbsp;두&nbsp;가지를&nbsp;생각했다.&nbsp;하나는&nbsp;문지혁&nbsp;작가의&nbsp;사상과&nbsp;시선,&nbsp;작품&nbsp;속에&nbsp;녹아든&nbsp;그의&nbsp;고유한&nbsp;정서를&nbsp;조금&nbsp;더&nbsp;알게&nbsp;되었다는&nbsp;생각.&nbsp;다른&nbsp;하나는&nbsp;소설가의&nbsp;성장은&nbsp;이런&nbsp;식으로&nbsp;진행되는구나,&nbsp;하는&nbsp;깨달음.&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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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nbsp;다&nbsp;내겐&nbsp;유익했다.&nbsp;무엇보다&nbsp;문지혁&nbsp;작가가&nbsp;강사로&nbsp;수업하는&nbsp;내용의&nbsp;청사진을&nbsp;작품으로&nbsp;본&nbsp;것&nbsp;같아서&nbsp;좋았다.&nbsp;소설은&nbsp;이렇게&nbsp;쓰는&nbsp;거구나,&nbsp;이런&nbsp;식으로&nbsp;상황을&nbsp;전개하고&nbsp;반전을&nbsp;주는구나,&nbsp;하는&nbsp;것들을&nbsp;배울&nbsp;수&nbsp;있었다.&nbsp;나도&nbsp;소설&nbsp;습작을&nbsp;하는&nbsp;취미가&nbsp;있고&nbsp;언젠간&nbsp;멋진&nbsp;장편을&nbsp;하나&nbsp;쓰려고&nbsp;염두에&nbsp;두고&nbsp;있는&nbsp;터라&nbsp;내게&nbsp;이&nbsp;책은&nbsp;하나의&nbsp;소설&nbsp;쓰는&nbsp;교본&nbsp;같은&nbsp;의미를&nbsp;지니게&nbsp;되었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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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nbsp;각&nbsp;작품에&nbsp;대한&nbsp;감상을&nbsp;짧게&nbsp;나누면서&nbsp;잠시&nbsp;언급했지만,&nbsp;문지혁&nbsp;작가에게는&nbsp;정유정&nbsp;작가&nbsp;스타일의&nbsp;스릴러,&nbsp;그리고&nbsp;’고잉&nbsp;홈‘에서&nbsp;물낀&nbsp;풍겼던&nbsp;이민자만의&nbsp;고유한&nbsp;정서와&nbsp;감성&nbsp;혹은&nbsp;문화를&nbsp;소외나&nbsp;배제&nbsp;혹은&nbsp;소수자라는&nbsp;개념과&nbsp;연결&nbsp;지어&nbsp;아련한&nbsp;느낌을&nbsp;주는&nbsp;소설&nbsp;형식이&nbsp;잘&nbsp;어울린다는&nbsp;생각이&nbsp;들었다.&nbsp;그런&nbsp;작품을&nbsp;더&nbsp;써주길&nbsp;기대하게&nbsp;된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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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nbsp;<br>
#김영웅의책과일상&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63/10/cover150/89609097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631023</link></image></item><item><author>Youngwoong Kim</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번역자에서 작가로: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언어로 - [언어의 무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79025</link><pubDate>Sun, 08 Feb 2026 14: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7068101/170790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0790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off/89349811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0790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언어의 무게</a><br/>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04월<br/></td></tr></table><br/>번역자에서 작가로: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언어로<br>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다시 읽고<br>같은 영화를 다시 볼 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동은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다음 장면이 이전보다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 파악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들이게 되며, 처음 볼 때 놓쳤던 부분들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단순한 관객을 넘어 스스로 감독이나 원작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nbsp;<br>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영화와 차이점이라면 '상상력의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이 기술력 및 재력과 타협한 지점에서 가시화되어 관객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상하고 감동할 뿐이지만, 책의 경우는 영화에서의 감독처럼 이야기를 가시화시키는 매개자가 없기 때문에 같은 책을 재독 한다 하더라도 독자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초독 때처럼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이 차별적인 수고로움(혹은 번거로움)이야말로 나는 재독의 고유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몰러).<br>초독 시 머릿속에 그렸던 책 속의 장면들이 재독 시에도 동일하게 그려지게 될 때, 나는 마치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책 속의 공간과 인물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도 느낀다. 그러나 영화의 재시청처럼 초독 때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보게 되고 그것을 기존에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들에 더하게 되는데, 종종 이 작업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될 때도 있고 대폭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상상력의 재구성'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묘미는 바로 이것이다.<br>약 2년 전에 '언어의 무게'를 읽었을 때도 겨울이었다. 서사보다 묘사가 주를 이루고, 주인공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책은 분량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는다. 정신없는 서사가 빼곡한 600페이지의 장편소설과는 읽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줄거리나 재미 위주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아마도 충분히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단순히 줄거리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깊은 사유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상념들과 공명을 이룰 때가 많다는 것 등을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이 책을 내가 왜 두 번 읽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이 책은 재독, 아니 삼독을 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nbsp;<br>이번에도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에 30페이지 정도씩 거의 매일 읽었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행복했다. 레이랜드와 함께 나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위치한 몰로 아우다체에 앉아 바다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는 아내가 사장이었다가 사별 후 레이랜드 자신이 사장이었던 출판사 앞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카를로타가 가져다주는 커피도 마셨으며, 안드레이가 수감되었던 감옥 안에도, 출옥 후 감옥 같이 살던 그의 집 안에도, 그리고 레이랜드가 사준 집 안에도 거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뿐인가. 운명 같은 오진 때문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영국 햄프스테드에도 가볼 수 있었고, 그와 함께 런던 거리와 서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공간뿐인가. 레이랜드 옆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덕분에 레이랜드의 절친이 된 이웃 케네스 버크의 첼로 연주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도움을 주고받았던 숀과 린도 만날 수 있었으며, 그가 과거에 번역을 했던 책의 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랜드의 딸 소피아와 아들 시드니의 내외면의 성장과정을 목도하며 아버지로서의 레이랜드를 볼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지되었던 이들과의 교유가 나는 벌써 그립다.<br>교모세포종이 분명한 MRI 사진은 레이랜드의 것이 아니었다. 의사와 병원의 실수였지만, 레이랜드에게는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레이랜드는 자신을 병원으로 실려가게 했던 발작의 원인이 교모세포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암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시한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출판사를 팔았고, 생을 정리하려고 했다. 날벼락처럼 찾아온 죽음의 방문 앞에서 그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nbsp;<br>단 열흘만 일찍 사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레이랜드의 인생은 과거의 연장선에 머물렀을 것이다. 출판사도 그대로 자기 소유였을 테고, 트리에스테에서 계속 살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러지 못했다. 딱 그 열흘 사이에 출판사를 팔고 삶을 마감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레이랜드에게 출판사는 단순한 건물이나 직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심장마비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 리비아의 분신이었고,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옮겨오게 만든 이유였으며, 그의 모든 것이었다. 의사와 병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가 레이랜드에게서 그의 모든 것인 출판사를 빼앗았던 셈이었다.&nbsp;<br>그러나 이 작품은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이러한 운명 같은 사건이 결코 그를 무너뜨리지도 불행하게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트리에스테에서 햄프스테드로의 이동 역시 그에겐 생소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지만, 그 덕분에 그는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의대와 법대에서 각각 하얀 카스트와 검은 카스트에 신물을 느끼고 저항하며 정의롭게 인간답게 살려고 아등바등 대는 소피아와 시드니에게도 햄프스테드의 새로운 집과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만남들은 얽기 설기 연결되어 영양분이 되었다.&nbsp;<br>이쯤에서 다시 묻게 된다.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그 황당무계한 사건은 과연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불행과 행복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나는 이번에 재독을 하면서 잡아냈기 때문이다.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소수이지만 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보이고 연결된다는 것. 어쩌면 그 사건 덕에 레이랜드는 그가 작품 후반에서 그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소설 속 주인공 루이 퐁텐처럼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 사건 덕에 그는 암암리에 그를 잡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뒤로하고 마침내 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nbsp;<br>번역자에서 작가로의 변화는 곧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운명 같은 사건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될 때 나는 아마도 레이랜드를 떠올릴 것 같다. 그 사건이 아무리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라도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거기엔 새로운 길이 있고 행복이 깃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내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고 싶다. 나만의 언어로 삶을 써 내려가고 싶다. 그때 비로소 언어의 무게를 말할 수 있으리라.&nbsp;<br>#비채&nbsp;#김영웅의책과일상&nbsp;<br>* 파스칼 메르시어 읽기1. 리스본행 야간열차: https://rtmodel.tistory.com/12032. 언어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1726<br>* 파스칼 메르시어 다시 읽기1. 언어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211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150/8934981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96819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