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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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제목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무한한 긍정이라고 믿었지만 불행을 예언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의 주어는 삶일 것이다. 삶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 감내해야하는 수치심과 좌절감, 그리고 놀라운 회복의 시간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바턴>의 등장인물들의 이후를 다루고 있다. 후일담이라기보다는 무대의 조명을 비춰주며 새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단편소설이면서 하나의 장편소설 된다. 어떤 이야기의 진실이 다른 이야기에서 의외의 인물에 의해 설명되기도 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생생한 인물들은 소설의 경계를 오고가며 살아간다. 단편소설이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절단하여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단면 이상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듯 인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물들은 각각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된다. 9개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시"와 "풍차"였다.
토미는 화재로 농장을 잃은 비극에서도 담담히 살아간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였지만 토미는 화재가 신의 계시였다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불타는 집과 농장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계시를 떠올리는 그를 상상하며 현현에 대해 떠올랐다. 그리고 피트와의 대화에서 무너지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풍차"는 수치심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진로상담교사인 패티는 상담중에 무례한 학생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준다. 그후 패티는 우연히 루시 바턴의 책을 보게 되고 고통과 좌절에 대해 공감한다. 패티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 있었음을 떠올고 회복의 용기를 내본다.
어떤 영화 대사에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치심은 누구에게 쉽게 경고할수 있는 것 아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외면하고 있던 트라우마는 스스로 극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불행이 가능했으니 회복 또한 가능하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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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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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감각과 사유

우리는 이별에 대해서 대처하거나 극적 서사를 부여한다. 이별을 겪는 사람에게 위로할 때 이별은 대처와 극복이 가능한 삶의 과정이다. 누구나 이별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단계가 된다. 또한 이별은 극적 서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별은 감각의 고통이며 대상의 죽음이다.

이별은 온전히 그 자체일 수 있는가. 과장과 축소없이 이별을 사유함과 동시에 이별이 나의 삶을 관통하듯 감각할 수 없는가. 그러한 질문에서 이 책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별에 푸가>는 철학자가 쓴 이별에 대한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이별을 논하는 철학자의 목소리는 담담한 관조도 아니고 감정적 원망도 아니다. 이별을 경험한 고통 앞에서 당신을 치열하게 그리워하지만 그 자세는 정적이다. 문장에는 철학적 사유가 있지만 이론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재생된 이별의 순간에서 어떤 지점들을 해석하는 힘을 준다.

이 책의 저자가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의 역자이고 인용도 되어있기때문에 어느정도 연상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별의 정황과 그에 대한 감각적 사유에 있어서는 <이별의 푸가>가 더욱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여 이 책에 이어 다음 책을 기대해보려고 저자 소개를 보니 작년에 작고하신 것으로 나와있다. 이또한 이별이라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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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을유사상고전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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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할까. 철학을 공부하는 도중에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 대답이 떠오른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철학’을 생각한다. 물론 모두에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은 나에게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어둠 속에서 삶의 방향을 인도하는 역할이 되어주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그 질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고민해왔다. 그 치열한 고민들은 학문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방대한 저작들은 사상의 흐름을 이어왔다. 그 역사에 대한 가장 탁월한 명저가 <러셀 서양철학사>이다. 연대기별로 철학사를 기술하지만 어느 하나에 치우침이 없으며 이를 분석하는 자신만의 주관이 명확하여 감탄하게 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연대별 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역사적 배경과 함께 명쾌한 분석을 할 수 있는 학자는 드물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고대철학을 설명하며 인간중심의 그리스 철학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계보로 받는 중대철학의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주관주의로 근대철학으로 그리스 철학이 계승된다. 하나의 큰 흐름과 대비되는 사상들이 대단히 일목요연하게 기술되며 이해의 깊이를 심화시킨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의외로 다뤄지지 않은 철학자들이 있다는 점과 칸트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량이 대체로 20페이지 내외로 학자나 사상에 대해 서술되는 일관성이 철학사 전반을 다루는 데는 적절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철학사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칸트 비판 3부작 중 <순수이성비판>에 대해서만 나오는 점은 아쉬웠다. 윤리학의 가장 큰 업적인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미학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판단력비판>에 대한 언급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분명 서양철학사 전반을 알기 위한 시도였으나 서양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으며 철학의 분과인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책 한권을 다 읽고나면 인간 버트런드 러셀에 대한 존경심을 떨칠 수가 없다. 97세까지 장수하며 철학자, 사회운동자, 논리학자, 수학자, 교육자, 저술가로 최고의 위치에서 수많은 저작을 남긴 그의 삶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분야에서 최고의 명저들을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 책을 읽고나면 대강의 짐작을 할 수 있다. 바로 자신만의 분석력과 비판력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명료한 논증과 지적인 문장이 이 책을 독보적인 저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를 추동하는 힘이었으리라는 생각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의 해제에는 러셀의 자서전 한 대목이 실려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견디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이 마치 거센 바람처럼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도 고통스럽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았으므로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해제 1019p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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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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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드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너무나 정확하다.

우리는 어떤 공간에 가면 쉽게
분위기좋다 혹은 인테리어 좋다
라고 이야기한다.
무심코 던지는 말의
심층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공간에서 맥락을 파악하고
디테일의 의미들을 분석한다.
우리에게 지배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각 뿐만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 마케팅을 지적한다.
소비자의 동선, 매장의 이름까지
공간의 개념으로 이끌어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풍부하게 한다.

상업적인 공간들에 고객의 취향을 불어넣어
성공적인 매장 운영을 시도하려는 창업자들을 위한 책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공간에 대한 나의 취향과 그 이유에 대해 섬세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풍부한 사진으로 이해를 도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특히 책의 끝에 실린 체크리스트는 단순한 점검을 넘어서 훌륭한 서머리이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공간을 꾸미거나 방문할 때마다
공간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해석이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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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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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사람

표지의 작은 별빛들이
우리가 아는 이들의 눈빛처럼 보인다.
그리고 꼬리를 남기는 별 하나.
노란 빛의 네모는
누군가가 있는집의 창문이다.
환하게 불켜진 창문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윤성희 소설가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다.
비범한 영웅이나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너무나 생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평범하다는 통념에 근접하지만
나는 그들의 삶을 그렇게 무심하게 단정할 수 없다.
<상냥한 사람>의 주인공 형민은
아역배우였던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38년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때 그 사람들'에
출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형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여러 인물로
가지를 뻗는다.
소제목도 없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인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과하거나 말하지 않고
삶 그 자체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 시작과 끝.
반의어들의 교집합에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도 서사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렬하고 긴장감을 주는 극적인 서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생각하는 소설이다.
거울을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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