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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평점 :
그래도아직은봄밤
황시운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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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장치로, 은유와 상징에만 감탄하며 이 소설을 읽어내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다. 처절한 묘사는 소설을 초과하는 지점으로 독자를 몰고 가고 문장의 메아리는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치명적인 통증 혹은 병증으로 삶과 사투를 벌이거나 세상의 혹은 운명의 배신으로 낙담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가까운 불행한 지점에서 낙관도 비관도 없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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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기억하고, 자책하며, 하지만 아주 질기게, 아마도 난 그렇게 살아가겠죠. 그래요. 그렇게라도 난 살아갈 거예요. 살고 싶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86쪽) <어떤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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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의 강렬한 의지에는 힘이 넘치고 희망을 모색하게 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치열하고 처절한 극복의지이며 존재증명을 위한 강렬한 싸움인 것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소설가 한지혜의 글을 통해 작가가 겪은 불운한 사고를 감히 짐작해볼 수 있다. 2007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2011년에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은 작가가 2021년에야 첫소설집을 냈다. 일년에 단편 하나씩이 수록되었고 9편을 묶어 단편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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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모든 소설의 밀도가 대단히 높게 느껴진다. 갈등하거나 좌절하는 인간은 허구로 구상된 것이겠지만 작가가 충분히 이입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어떤 부분은 그 강도가 마치 실제의 기록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삶의 피상적 인식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삶의 진실을 치열하게 관통하는 힘은 연약함과 강함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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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단편이 모두 나름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의 첫작품인 <매듭>이다. 결혼 3개월만에 빙벽등반 추락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을 부양하는 여자의 절망적인 삶을 그려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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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과 함께 지속되는 삶과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죽음 중 낙지는 어느 쪽을 원했을까. 어느 쪽을 원했든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삶도 죽음도 당사자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마련이었다."<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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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일어났던 시점으로 돌아갈 수도, 사고에 관한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 죽어라고 견뎌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은 그저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끔찍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_<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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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에 대한 묘사와 상징이 인상적인 동시에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작가의 소설이라면 감탄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통증은 삶의 증거인 동시에 죽음의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강렬한 통증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죽음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각각의 소설로서도 치밀한 밀도와 서사로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그 이상으로, 작가 스스로 삶과 죽음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한 흔적이 문장마다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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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제목은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다. '그래도'의 긍정은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또한 봄밤이라는 시기는 반짝이는 여름의 아침을 연상시킨다. 아직은 봄밤이니까, 그러니까 희망을 꿈꾸는 것, 그 진심의 무게가 느껴지는 소설들이다. 같은 이유로 다음 소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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