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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 동굴벽화에서 고대종교까지
전호태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 편식이 심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에세이 읽기를 좋아해서 소설과 희곡을 읽는 나를 상상해 보질 못했는데, 이제 에세이는 임경선 작가의 책 아니면 못 읽고, 비문학은 지겨워서 못 혹은 안 읽는다.
소설과 희곡을 보면서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도 하지만, 작품을 잘 이해하려면 글 쓴 배경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비문학.
비문학은 읽어두는 게 좋을 텐데 스스로 그 책들을 찾지 않으니 강제성이 필요했다. 동생 추천으로 창비에서 진행하는 독서 리워드 프로젝트 '교양한당'을 알게 되었고, 이를 기회로 총 3회에 걸쳐 역사, 정치, 그리고 철학 관련 책을 읽어 볼 요량이다.
1회차 도서는 전호태 작가의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역사 관련 책이라지만, 정확히는 '문화사'다.
역사를 좋아해서 (부전공으로 역사교육을 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을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좀 오래 걸렸다. 내가 정말 역사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를 의심할 정도였다. 읽다 보니 알았다. 난 역사를 좋아하고, 문화사는 누구에게나 다 어렵다는 것. 한국사 공부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거다. 문화사 파트는 외울 것도 많고 그만큼 헷갈리는 것도 많다는 것. 그러니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과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의심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었다.
이 책은 총 16장으로 구성되었고, 아버지와 아들이 유물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의 글이다.
그 둘이 '만약 그 시대의 사람이라면~'과 같은 질의응답으로 깊이 있는 문화사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내가 평소 별생각 없이 암기해서 알게 된 부분에 대해서도, 나도 갑자기 의문이 드는 것이다. '맞아, 나도 그게 궁금했어' 하게 되는 마법이 일어났다.
차례를 살펴보면, 구석기 문화, 신석기 문명, 청동기 문명, 암각화, 철기시대의 역사와 문화, 삼국시대의 건국 이야기, 샤머니즘, 음양오행론, 불교, 신선 신앙, 도교, 유교, 고분벽화, 그리고 고대의 사상과 종교의 본질에 대해 다룬다.
이 모든 주제들은 '신앙'과 관련되어 있었다.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예나 지금이나 무언 가에 의지한다.
현대인들도 종교를 갖는 것처럼 구석기시대에도 신을 믿었다. 동물 벽화나 조각 등으로 자기 부족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동물을 많이 잡게 해달라 기원했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자연에 없던 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첫 사례다. 당대 사람들은 토기 겉에 장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했다.
암각화에는 윷놀이 판을 새겨 놓기도 했다. 윷놀이를 인생사에 비유한 것도 재미있었다.
"윷놀이 규칙은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어. (중략) 그런데 윷놀이의 기본 원칙은 같아. 두 그룹의 말들이 경쟁하며 길을 가다가 어느 한 팀의 말들이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이겨. 두 팀의 말이 때로 앞서가고, 때로 따라붙어 판에서 상대를 나가게 하면서 먼저 되돌아오기를 경쟁하지. 말들은 길을 가며 먹고 먹히고, 업고 업히는 거야. 지름길로 간다고 유리한 것도 아니고, 많이 업고 함께 다닌다고 승리의 나팔을 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윷놀이는 인생의 축소판 같아. 집단과 개인의 삶이 어떻게 얽히고 풀어지는지를 보여준다고 할까?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 (pp. 160-161)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난 우리나라에 '맥아더신(p. 242)'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꿔서, 그를 신통히 여겼던 한국의 샤먼이 섬기는 가장 최근의 신이라고 한다. 인천에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만신(무당)이 있다고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하니, 진실인 것이다.
유교에는 내세론이 없다고 한다. 불교에는 윤회사상이 있어서 죽으면 나중에 다른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지만, 유교는... 죽어서 어디를 간다 하는 걸 들어 본 적 없다. 현생에 있는 사람들이 격식을 차려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는... 무서운 이야기에서 조상신이 제사 때 찾아와서 제삿밥을 다 맛보고 간다는 말은 있는데... 모르겠다. 유교적 사고로는 각 신분이나 직업 상호 간 지켜야 할 것은 제 의무를 다해서 지킨다는 점에서 '살아 있을 때 잘 하라'는 것을 일러주는 것 같다.
작가에 의하면 신념이 신앙이 되고, 사상이 종교가 된다.
각자 신념이 달라서 분쟁이 일어난다.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소통하여 다름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미로 말하는 건데. 장수를 위해서 옛날 사람들은 금을 몸에 지녔고, 옥도 갈아먹었다고 한다. 시체 보존을 위해 옥으로 된 의옷을 입혔다고도 한다. 금과 옥이 자주 등장하던데, 이대로라면 난 장수할 거다. 내 이름은 金도 들어가고 玉도 들어가니까.
이 책을 꼼꼼하게 완독한다면 분명 똑똑해질 것이다. 난 아직 꼼꼼하게 다 읽지는 못한 것 같아서 한 번 더 볼 거다. 나에게 누군가 역사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거기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전하고 싶어서다.
종교에 관심이 있거나 똑똑해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