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김예지 지음 / 성안당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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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좋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

앞서 썼던 "저 청소일 하는데요?"와는 조금 다른 결의 내용이라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이 책에 담고 싶었던 의미는 전과 같습니다.

"너만 그렇지 않다. 나도 이렇다."라는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만 하던 그 고민이 사실은 누군가도 하는 고민이었고,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어떻게 좋아졌는지 알아가는 건

제 경험 상 생각보다 많은 치유와 희망을 줍니다.

...

조금은 어둡고 축축한 저의 과거일지라도,

분명히 저에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가지지 못했을 마음의 성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힘들어 이 책을 폈을 당신도 분명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인생은 가혹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더 크게 행복하기도 하거든요.

그럼 우리 모두 스스럼없이, 주저 없이! 행복해집시다.

프롤로그

정말 몰랐다. 김예지 작가님이 사회 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었을줄은.

처음 김예지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작년 5월에 읽은 <저 청소일 하는데요?> 라는 그림 에세이 책이었다.

귀여운 그림체에 반해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으려고 본 책인데

중간중간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공감과 위안도 얻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전문직 일을 하시는 모습에 많은 응원을 보냈다.

그런 작가가 "불안과 이별하고 행복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니?

나는 부러웠다.

하고 있는 일이 있고, 공감가는 그림을 그리고, 이렇게 책도 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하지만 사회적 성공과 능력과 별개로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을 작가님을 보았고 그 전작 책보다 더 크게 응원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는 힘들게 겪고 치료한 누구보다 솔직하고 용감한 에세이다.

나는 환경과 유전자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살면서 느낀건데 누군가는 분명 좀 더 예민하다.

그렇다고 예민한 사람은 예민하게 태어났으니까 더 불행하고 힘들다는 비관론이 아니고,

센서티브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은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나도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라 이쪽 관련해서 참 많은 생각과 생각과 생각을 했다.

이쯤되서 내린 1차 결론은 억지로 괜찮은척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내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물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둔감력이 뛰어난 사람은 절대 모른다.

남보다 촉수가 예민한 사람이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하고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그리고 힘들어하는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싶다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작고 귀여운 그림책이 주는 위안이.

행복의 의미를 오랫동안 찾고 지금도 찾아다니고 있는데

영화 '매트릭스'처럼 파란 약을 받고 가짜 스테이크를 먹을 바에는 나는 좀더 불안하고 의미있는 빨간 약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

예민한 사람의 장점이라면, 나는 이걸 가장 중요하게 올려놓고 싶다.

 

 

 

- 내가 처음 낸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서는 청소를 시작한 이유 중 그림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면

이 책에서는 다른 이유인 불안장애를 이야기한다.

엄마와 단둘이 하는 일이여서 부담도 없고 사회적 활동도 적어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청소일로 인해 상황을 피한다 해서

내 불안을 잠재워주진 못했다.

- 근본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은 채 안일하게 불안한 상황들만 회피하니 말이다.

... 가장 좋은 방법인 회피가 사실은 가장 날 무력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 긴 터널을 지날 때 뫼비우스의 띠에서 끊임없이 배회할 때 나는 이런 미래는 상상도 못했다.

- 그런데 왔다. 그래서 이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알려봤자 꿉꿉하고 어둡고 기쁘지 않을 이야기를 쓴 이유는 간단한다.

- "예전의 나 같은 당신을 위해서야.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

- 내 몸에 문신이 새겨진 것처럼 당신도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나을 것이다. 우울증이 나으면 꼭 새기고 싶던 문양을 새기게 되었다.

- 그러니 죽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 불안 장애를 극복한 후 여전히 우울하고 짜증 날 때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니깐

- 대신 불필요한 불안이 사라졌을 뿐이다. 이제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기에 찰나의 두려움이 와도 가라앉힌다.

- 다행이다. 내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회피도 마찬가지.

뭐 그런걸 걱정하냐는 폭력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은 절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본인과 다른 성향의 삶은 어떤 기분일지.

그래서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느정도 힘을 빼고 덜 흔들리지만

학생 때와 사회초년생 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한번씩 수면 위로 올라와서 나를 아프게 한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를 통해 작가님의 삶의 무게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고마운 책이다.

그 불안하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위로를 받았으니까.

조금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는데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 한 쪽이 끊어진 뫼비우스의 띠가 작가님의 팔에 새겨져있다.

요즘 타투 많이들 하니까 타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업앤다운을 반복하던 불안 장애 극복기를 치유하는 의미로 새긴 아주 아주 뜻 깊은 단 하나뿐인 타투이다.

삶의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 '다행'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다.

삶은 고통이지만 고통은 삶이 아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와는 분명 결이 다르지만,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로 더 많은 사람들이 괜찮아지고 행복하길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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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게 제압하라 -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 여자가 살아가는 법
페터 모들러 지음, 배명자 옮김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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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훈련'은 직장에서 남자들과 소통하는 법을 여러 관점에서 다룬다. 몸짓 언어, 영역에 대한 태도, 권력 언어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오만 훈련은 무엇보다 의뢰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갈등 상황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나는 남자 스파링파트너를 투입하여 상황을 재현하고 여러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해볼 수 있게 했다. 스파링파트너의 조건은 딱 두 가지다. 첫째 남자여야 하고, 둘째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알아야 한다.

서문

여성 리더들은 기본적으로 남성 언어와 여성 언어 모두에 능통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적절히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 질문이 있다.

"남자가 왜 이런 책을 씁니까?"

이 질문에 짧게 답하고자 한다. 내 대답은 반문이다.

"그럼 누가 써야 합니까?"

직장 내 갈등 상황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보이는 태도 패턴을 다룬다면, 아무래도 '네이티브스피커' 그러니까 '남자'가 설명하는 것이 더 확실하지 않겠는가. 또한 남자를 스파링파트너로 둔다면 더 좋을 테고.

서문

학교 생활, 직장 생활, 일생 생활, 아니 그냥 태어나서면서부터 성별에 의한 차별은 삶의 한 부분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줘야할지 모를 막막함부터 내가 이것까지 설명해줘야하나 싶고,

종국에는 역으로 그렇지 않은 삶도 있구나 하는 부당했던 내 자신의 깨달음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어쩌겠나. 삶은 계속 되는걸.

하지만 체념이나 무기력이 아닌 또다른 삶의 에너지로 바꿔볼만한 한 여름의 수박처럼 시원한 책이 나왔다.

페터 모들러의 <오만하게 제압하라>.

남자의 언어, 여자의 언어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상황과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무기같은 책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당연히 저자가 여자이겠거니 했는데 서문부터 나온다. 남자다.

"남자가 왜 이런 책을 씁니까?"

미안하지만 나도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 질문에 저자는 잽이 아닌 훅을 날린다.

"그럼 누가 써야 합니까?"

젠더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적지 않은 책과 글들을 봤다.

이것도 미안하지만 글만 봐도 남자가 썼구나, 여자가 썼구나 어느정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고

특히 남자가 쓴 글에는 '아닌데? 그거 아닌데?' 라는 비꼼 레이더가 작동할 때가 퍽이나 많은데

<오만하게 제압하라> 만큼은 통쾌하게 읽었다.

저자와 함께 '오만 훈련'을 하는 재미가 있어서 책을 읽으며 나도 상상 속 스파링파트너에게 벌 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쏘아댔다.

이제 머리와 멘탈 트레이닝은 <오만하게 제압하라>를 통해 충분히 했으니 실전만이 남았다.

 

-단게별 모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이토크 High Talk' 에서는 논리적인 근거가 제시되고 말이 서로 통해야 한다. 의견 교환, 내용 토론, 세부적인 정보 교환이 여기에 속하고, 찬성과 반대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언어적 표현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수준에 있다.

'스몰토크 Small Talk' 는 합리적인 주장이나 토론과 상관이 없다. 같은 언어적 단계지만, 여기서 오가는 메시지는 사적이고 주관적이며 때로는 감정적이다.

-'무브토크 Move Talk' 는 말이 필요 없다. 하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몸짓과 표정, 시선, 태도, 공간적 거리의 변화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세와 동작이 큰 의미를 갖는다. 지위를 명확히 하는 오만은 이 단계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의사소통의 세 단계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 무브토크(비언어적)는 스몰토크와 하이토크(언어적)를 이긴다.

* 스몰토크(언어적, 비지성적)는 하이토크(언어적, 지성적)보다 강하다.

* 같은 단계에서 혹은 더효과적인 단계로 올라서야 기본적으로 공격이 가능하다. 반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공격받은 단계를 떠나 덜 효과적인 단계, 설사 자신에게 더 편하고 익숙하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그 단계로 내려가면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언어와 비언어의 힘은 익히 알고 있다.

입으로는 "응" 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젓거나 띠꺼운 표정을 짓는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뇌는 "아니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하다보면 강철같은 로고스가 먼저 나온다. 왜냐하면 일이니까. 우리는 어른이니까. 우린 지성인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성보다 감정, 감성, 몸짓,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다시 한번 머리와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챕터였다.

개인적으로 '오만 훈련' 중 무트토크 부분이 가장 좋았다!

젠더를 떠나 나와 전혀 다른 사람, 타인을 대할 때 꼭 기억하자.

무브토크 > 스몰토크 > 하이토크 !


- 언어와 권력에 관한 규칙

* 무의식에 담긴 내용이 먼저이고, 겉으로 표현된 내용은 그다음이다.

* 누군가의 말을 끊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 전략적 침묵은 매우 효과적이다.

* 목소리를 흉하게 내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너무 크게 말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말라. 갈등 상황에서 편안한 멜로디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 문장 혹은 단락이 끝났을 때, '이해하셨어요?' '그렇죠?' '알아들었죠?' 등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면 특히 효과가 좋다.

* 짧은 문장으로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긴 문장의 장황한 주장보다 낫다.

* 약간 바보같이 느껴지더라도 같은 메시지를 여러 번 반복하면 좋다.

* 말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입지는 더 불리해진다. 느리되 명확한 말투가 강한 인상을 준다.

* 가능한 한 정확한 발음의 표준말을 사용한다.

* 효과적인 의사소통 단계로 바꾸면 더욱 효과적으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몸짓 언어만 쓰는 무브토크만으로도 가능하다.

* 의도된 언어적 메시지에 대한 무언의 반박, 예를 들어 미소, 따뜻한 시선, 신경질적인 손가락질 등은 의도된 언어적 공격을 막는다.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더라도 갈등 상황인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그 사실을 설명하는 편이 낫다.

* 필요하다면 '달링' 등의 감정제어기를 이용한다.

- 말은 입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정보 그 이상이다. ...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말을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건 내 필요에 의해 메모하려고 꼭 꼭 적어둔다.

비언어적 소통이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입이 있고, 시간이 있고, 회의라는 게 있다.

더 잘 말하기 위해서 언어와 권력에 관한 규칙을 생각해야지.

 

 

 

-여자의 언어, 남자의 언어

-의사소통 방식은 직장 경험과 상관없이 어린 시절에 몸에 배기 때문에 성별에 따른 의사소통의 차이는 당연히 직장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그래서 나는 오만 훈련을 개발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남학생들은 준비를 전혀 못했어도 아무렇지 않게 앞에 나가 발표를 하고 뻔뻔하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여학생들은 준비도 완벽하게 했고 배경지식도 풍부한데 이상하게 앞에 나가서 발표하기를 꺼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학생들은 그럴 자격이 없어 보일 때조차 능력 있는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드러냈다. 발표를 듣는 태도 역시 달랐는데 남학생들은 중간에 끼어드릭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비판함으로써 주의를 끌었다. 반면 여학생들은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장애를 극복해야만 했다. 남학생들처럼 해볼 것을 제안받았던 학생들은 나중에 다소 부끄러워하며 고백했다. 누군가의 말을 끊는 것은 무례해 보이고 아무에게도 매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다고.

으으. 너무나 화나지만 내 얘기.

이런 내용은 실제로 수 많은 책에서도 나오는 거다. 발표를 하게 될 때 왜 우리는 "저도 아직 부족하지만...", "준비한 건 별로 없지만...", "저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으로 시작하는가?

별 볼일 없는 X라는 사람은 준비도 X 같이 하고, pt도 X 같이 하고, Q&A도 X 같이 하는데

사람이라면 응당 느껴야할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부족함 없이 굉장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꽤 좋은 점수를 받아간다. (가장 열받는 부분)

내가 연습하고 있는 시발점은 그거다.

겸손이라는 포장으로 부족하거나 모자란 점을 내 입밖으로 꺼내지말기.

그런 얘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겸손한 사람이다. 노력하는 사람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정당하게, 더 가치있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실력보다 더 높은 자신감 키우기. 유명한 에이미 커디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척 해야한다.

끝까지 친절한 이 책.

덕분에 제대로 '오만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싸우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모두가 윈윈할 수 있을 전략들을 배워간다.

마지막 <오만하게 제압하라>의 대미를 장식할, '오만의 십계명'을 보낸다.

직장이든 일생생활이든 필드에 있는 모두에게 응원을!

 

 

 

 

-오만의 십계명 _ 남자에게 존중을 가르치는 법

제 1계명.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제 2계명. 권력 의지를 가져라

제 1계명. 필요하다면 무례하게 행동하라

제 1계명.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바꾸어라

제 1계명. 당신의 역할을 진지하게 여겨라

제 1계명. 의사소통 단계를 뒤죽박죽으로 섞지 말라

제 1계명. 영역을 방어하라

제 1계명. 남자들이 남장한 여자일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제 1계명. 능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제 1계명. 지위 상징을 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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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 - 하버드에서 강조하는 성공을 위한 자기관리법
류웨이위 지음, 이재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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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 능력을 향상하기란 하나의 투쟁이다. 그 투쟁의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쉽고 만만해보이지만 까다롭기도 하다. 자주적인 생각과 감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기합리화시키려는 심리의 작동으로 통제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꿈꾸면서도 개인적인 욕망과 타성에 젖어 있다. 무기력하고 나태하며, 적극성이 부족한 자신을 일깨워야한다.

-이 책은 생생한 실화를 통해 자기관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자기감정과 행동 변화시키는 방법도 제시한다. 내면의 대화를 통해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 자기를 잘 제어하는 사람은 주변에 있는 고통과 아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다. 개인 중심으로 바라보던 시점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관점이 확장된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하버드 관련 책을 몇권 읽어봤다.

<하버드 행복 수업>, <하버드대 52주 행복 연습>, <하버드 새벽 4시 반>,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

이번 책은 그 중에서도 내 인생을 성공으로 바꾸는 자기관리법에 관한 특별한 내용이다.

우선 <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은 24강에 걸쳐 자기관리 비법에 대해 비밀을 푼다.

새해 아침 결심... 운동... 공부... 등 의지를 가져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의지를 지속하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 책을 펴자마자 저자는 먼저 바로 이런 속성들을 공감해주고,

더 나아가 우리는 그래서 하버드에서 어떤 것을 가르쳐주길래 공부보다 더 중요한 자기관리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힘을 실어준다.

예전에는 하버드라고 하면 막연히 명문 해외대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공부라는 것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 무엇보다 의지력이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상한 머리 뿐 아니라 남다른 마인드가 있어야 가능한 일 같다.

하버드에 가지 않아도 하버드에서 어떤 자기관리를 배우는지 알 수 있다면

바로 이 <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을 펴보는 게 좋겠다.

아래 이어서 하버드 관련 명사들의 명언이 우리를 성공으로 가는 길 첫발에 함께 해준다.

자기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되면 삶의 모든 법칙은 간단해진다.

외로움은 더 이상의 외로움이 아니고, 빈곤은 더 이상의 빈곤이 아니며,

좌절은 더 이상의 좌절이 아니다.

하버드 교수_헨리 데이비드 소로

좋은 습관은 평생 이익을 가져다주는 엄청난 재산이다.

즉각 행동에 옮기는 습관은 당신의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한다.

하버드 명예박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_빌 게이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아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제 22대 하버드 총장_로렌스 로웰

누구나 약점은 있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은 부각하고 약점은 줄이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종종 약점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

하버드 교수 겸 고생물학자_스티븐 제이 굴드



* 나를 바꾸는 하버드 '환경적응 트레이닝

환경적응은 정신적 적응 능력이다. 정신적 적응은 심리학에서 보통 외부환경에 변화가 생길 때 사람들이 자기조절 시스템을 통해 나타나는 능동적인 반응이다. 자기 심리 활동과 행동방식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해야 정신적 적응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1. 실전에서 끊임없이 자기 심리를 통제하자.

복잡한 외부환경을 정리하고, 분별하며, 선택하고, 회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현실에서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2. 복잡한 사안일수록 요점을 잡아내자.

본질을 인식하며, 자기 생존 발전과 관계없고 쓸모없는 자극들은 가려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의 자신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3.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

긍정적인 정신적응은 객관적인 환경에서 개체가 환경에 대한 부적응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절한다. 개체는 환경 속에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증대시킴으로써 스스로 발전을 꾀한다.

4, 자신의 특징과 환경의 특징을 정확하게 분석하자.

이 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기 성장점을 찾아야 한다.

5. 환경에서 유리한 요소와 개인의 긍정적인 요소를 일치시키자.

6. 능동적인 실천 활동을 가능하게 하며 긍정의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ㅇㅇㅇㅇ

이 <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의 장점 또 하나.

챕터 하단마다 친절하게 하버드 자기관리법을 요약해서 짚어주고, 1강 지나갈 때마다 마지막 1장을 할애해서는 이렇게 하버드 정수를 한번더 뽑아내서 알려준다. 나를 가르쳐준 것 같달까?

이번 키워드는 환경이다. 그냥 환경도 아니고 환경적응이다.

변화, 혁신, 새로움.

이 3가지를 위해서는 바로 환경에 적응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며 잘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도전해보는 게 중요할 것이다.

환경적응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챕터마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책을 넘기며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하버드 철학들은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환경에 지배당하지 말라", "환경에 간섭받지 마라".

먼저 이런 조언을 건내주었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그 한결같음을 나도 배우고 싶어서 특별히 이 챕터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자책할 필요없이 당연한 일이니, 우리는 환경이 우리를 간섭하지 않게 만들 자기관리법을 키우라고 조언해준다.

자신 만의 길을 오롯이 가는 사람,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또는 행복한 사람을 보면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최우선을 여기면서

그렇다고 이기적인 게 아니라 곁에 있으면 배우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자기관리법 중에서도 환경적응 능력이 뛰어난 것이었구나.

그리고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알고,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분별하는 지혜와

주변이 나쁜 에너지로 가득찰 때는 그것과 별개로 주변환경까지 개선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통제력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여론은 세계에서 가장 값어치 없는 상품이다. 사람은 저마다 견해를 가지고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주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타인의 평가는 모두 일방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대부분 깊이 생각지 않고 내뱉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영향을 줄만한 내용도 아니다. 자제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판단이 옳은지, 자신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의견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다.

남의 보석이 더 빛나 보인다

-완벽함만 추구하는 것은 무서운 삶의 방식이다. 자신에게 매사에 완벽함을 요구하면 심리적 부담이 늘어나 삶의 즐겁지 않다. 완벽함이란 '마음의 보탑'이다. 마음속으로는 이를 동경하고 찬미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존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벗어날 수 없는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불완전해지려면 불완전을 껴안아라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원하는 대로 척척 들어맞을 수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이긴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완벽만 추구하다가 그에 미치지 못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 결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완벽은 완전히 멀어진다.

내가 읽은 하버드 행복 강의 책 중 <완벽의 추구>가 있다.

탈 벤 샤하르 교수님의 책인데 "불행한 완벽주의자와 행복한 최적주의자" 관한 내용이다.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에 힘을 실어 이야기하는지 알 것이다.

<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에서도 바로 그 부분을 짚어주었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을 추구하고, 남과 비교하며 항상 더 잘해내길 원한다.

나는 특히 그런 부분을 줄이기 위해 올해는 내려놓음을 많이 실천하려고 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완벽함에 강박을 가지면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흠이 있고 그 흠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정말 완벽해질 수는 없다. 과도하게 완벽함을 추구하면 평생 만족할 수 없다. 자신조차도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자."

나는 마지막 이 한줄을 읽고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느낌과 함께 그래 해보자 라는 결심도 생겼다.

누군가는 옆에서 "대충해요"라고 할 때!

나는 그러고 싶지 않고 더 잘하고 싶고 의욕이 생기지만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할 때!

그냥 나의 흠을 인정하고 완벽이 아니라 최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창조적 모방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하고 재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시어도어 레빗의 명언이 나온다.

왜 이말을 책의 가장 마지막에 넣었을까?

우리가 <나를 바꾸는 하버드 성공 수업>에서 배운 24강의 정수를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창조적 모방을 통해 진짜 내 것을 만드는 마지막 강의가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책은 24강에서 끝이 나지만

25강, 26강, 27강을 차곡차곡 새롭게 써 나아가면서 자기만의 수업을 이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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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짐 홀트 지음, 노태복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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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성 좋고 웃기 좋아했던 아인슈타인과

늘 침울하고 고독하고 비관적이었던 괴델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이 글들은 지난 20년간 쓴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고려하여 내용을 선정했다.

첫째는 글이 전하는 생각의 깊이와 힘,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및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군이론, 무한대와 무한소, 튜링의 계산 가능성과 '결정 문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소수와 리만 제타 추측, 범주론, 위상수학, 고차원, 프랙털, 통계 회귀분석 및 '종형곡선', 진리 이론 등은 내가 살면서 접한 가장 흥미로운(또한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지적 성취이다. 이 모든 주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나의 이상은 칵테일파티용 잡담이다. 즉 심오한 개념을 핵심만 들추어내어 (어쩌면 냅킨에 연필로 몇 번 휘갈겨) 관심 있는 친구에게 상쾌하고 즐겁게 저달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문외한에게는 빛나는 통찰을, 전문가에게는 뜻밖의 참신한 반전을 선사하고 싶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말이다.

-두번째 고려 사항은 인간적인 요소이다. 이 책의 모든 사상은 매우 극적인 삶을 살았고 피와 살을 지녔던 해당 사상의 창시자와 함께 펼치진다. 종종 이들의 삶에는 어처구니없음의 일면이 깃들어 있다.

-세번째 고려 사항은 철학적인 것이다. 각각의 글에 나오는 사상들은 전부 이 세계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형이상학), 어떻게 우리가 지식을 얻고 정당화하는지(인식론),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윤리학)와 결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 어울리는듯 안어울리는듯 다정하게 걸어가며 유대가 느껴지는 둘은 뭐지?

아인슈타인 X 괴델, 이 두 천재가 만나 어떤 사고와 이야기와 철학을 나눌지 진짜 궁금한 책이다.

우선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함께 걸을 때> 책의 저자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작가이자 수학, 과학, 진리, 도덕 등 다방면의 지적 호기심을 나누는 짐 홀트이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가 주목하는 바로 이 책은 아인슈타인과 괴델, 그리고 수학, 물리학, 우주, 도덕, IT까지 우리에게 순수한 호기심의 기쁨과 본질을 일깨워준다.

과학과 수학을 잘 모르더라도 그저 그를 믿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있다.

어려운 글을 재밌고 쉽게 쓰는 재주. 그렇지만 그 안에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지식의 범주.

짐 홀트의 글이 그렇다.

문체는 가볍고 위트있으나 아인슈타인부터 괴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 버드런트 러셀, 리처드 도킨스 등 거의 모든 이론을 다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라고 종종 불리는 괴델은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종국에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아인슈타인이 붙임성이 좋고 웃기 좋아한 반면에 괴델은 침울하고 고독하고 비관적이었다. 열정적인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인슈타인은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좋아했다. 괴델의 취향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가장 좋아한 영화는 월트 디즈니에서 만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으며, 아내가 앞마당에 풀어놓은 홍학을 보고서 푸르흐트바 헤르치히, 즉 '지독하게 매력적인'이라고 감탄했다. 아인슈타인이 기름진 독일식 요리를 마음껏 탐닉한 반면에 괴델은 병약자의 식단과 유아식, 그리고 변비약으로 간신히 생활해나갔다. 아인슈타인의 사생활도 복잡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겉으로 볼 때는 즐겁고 평온했다. 반면에 괴델은 편집증 기질이 있었다. 귀신을 믿었고, 냉장고 냉매로 독살을 당할지 모른다는 병적인 두려움에 시달렸다. 실제로 어떤 저명한 수학자들이 프린스턴에 왔을 때 그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무서워서 외출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괴델이 고수한 '혼란스러운 것은 뭐든 잘못된 모습이다'라는 주장은 편집증 환자의 으뜸 금언이다.

-연구소의 다른 회원들은 이 우울한 논리학자를 찜찜해하고 난처해했지만 아인슈타인만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연구실에 나오는 까닭은 '단지 쿠르트 괴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아마도 그렇게 말한 이유에는 괴델이 아인슈타인의 명성에 주늑들지 않고 거침없이 반론을 펼치는 태도가 한몫했던 듯하다.

-아인슈타인은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괴델은 수학의 추상적 개념이 모든 면에서 탁자와 의자만큼이나 실재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철학자들이 순진한 생각이라며 웃어넘겼던 견해다. 괴델과 아인슈타인 둘 다 이 세계는 우리 개개인의 인식과 무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적인 고립의 감정을 공유했던 둘은 서로의 사귐에서 위안을 찾았다. 연구소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둘은 다른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길 원했다."

-괴델과 아인슈타인 둘 다 어떤 공허함이 말년을 장식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공허했던 것은 시간의 비실재성에 관한 둘의 굳은 믿음이었다. 그런 유혹은 이해할 만했다. 만약 시간이 단지 우리 마음속에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벗어나 어떤 시간 없는 영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 괴델의 경우, 어렸을 때 입은 치명적인 심장 손상의 공포 때문에 시간이 없는 우주라는 발상에 이끌렸는지 모른다. 생의 마짐작 즈음에 한 친구에게 터놓은 바에 의하면 괴델은 세계를 새로운 빛으로 볼 수 있게 해줄 어떤 통찰을 오랫동안 갈구했지만 끝내 그런 통찰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시간과 깔끔하게 결별할 수 없었다. 그즈음 세상을 떠난 친구의 미망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물리학을 믿는 우리로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구분이 환영일 뿐이건만, 고집스럽게 쉽게 사라지진 않습니다." 2주 후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이제 나도 가야 할 시간이네."

 

 

두 천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다.

실제로 즐겁고 유쾌한 파워인싸 아인슈타인과는 대조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고 편집증이 있는 침울한 괴델은 서로만이 가질 수 있는 유대를 나눴던 것 같다. 순수한 진리의 이론과 답을 찾아 궁리하고 또 궁리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괴델은 더 내향적이 되어 사람들과 이야기도 잘 나누지 않고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것도 거부할 정도로 콕 박혀 살았다. 그리고 그런 성격으로 인해 영양실조와 신경쇠약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천재가 없는 천재의 삶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다시 현재. 현실과 가상과 우주까지.

그들의 강력한 이론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느끼는 인간적인 유대는 직관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괴델이 미국 헌법을 문제삼다

-괴델의 시간 여행 연구는 12월 5일 트렌턴에서 예정되었떤 시민권 심사 때문에 중단되었다. 그의 성품을 증언해줄 살마은 친하게 지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게임이론의 공동 발명자인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이었다. 모르겐슈테른은 당시 괴델의 운전기사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꼼꼼한 성격답게 괴델은 시험 준비로 미국의 정치제도를 자세히 연구했다. 심사일 전날 그는 잔뜩 흥분하여 모르겐슈테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미국 헌법의 논리적 모순을 찾았다고 하자, 모르겐슈테른은 처음에는 웃엇지만 괴델이 무척 진지하다는걸 곧 알아차렸다. 모르겐슈테른은 괴델에게 관련 내용을 판사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시민권 심사가 잘못될까 염려해서였다.

-판사 필립 포먼은 괴델이 저명한 증인들과 함께 온 것에 놀라서, 자기 집무실로 셋을 초대했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 후 판사가 괴델에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독일 시민권자이셨습니다." 괴델은 아니라면서, 오스트리아 시민권자라고 바로잡았다. 판사가 계속 말했다. "어쨋든 사악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지요...... 하지만 다행히 미국에서는 독자가 아예 불가능합니다."

-몇달 후 괴델은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빈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다른 나라 시민권과 달리 미국 시민권은 아주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괴델이 겪은 일화.

열심히 미국 시민권 공부를 하고 미국 헌법의 논리적 모순을 찾았다는 괴델 앞에는, 그동안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적이었다는 판사의 말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재 어떻게 여전히 가능할 수 있는지, 그리고 미국 헌법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지 자신만의 논리와 추론을 펼친다.

헌법의 모순과 괴델의 이론과 페르마 정리를 연결해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저자가 판사라면 "농담 한번 잘하십니다, 괴델 씨." 라고 얘기해주고 싶다는 말은 흡사 리처드 파인만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함께 걸을 때> 이지만,

정작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걷고 얘기하는 챕터는 불과 한 두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아인슈타인, 괴델, 그리고 저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수많은 이론들과 천재들의 이야기가 내 앞에 펼쳐져있다.

저자는 말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문외한에게는 빛나는 통찰을, 전문가에게는 뜻밖의 참신한 반전을 선사하고 싶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말이다."

우리의 산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책이라는 연구실을 나가는 이 순간을,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될 순간을 아쉽고 기다리게 만들어줬다면

이 책은 이미 칵테일파티에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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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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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거짓말 문화'와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의 '노예근성'"

-2019년 <반일 종족주의>라는 기이한 제목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고, 뒤이어 일본에서도 출간되었다. 그 책의 저자들은 한국인의 반일적인 '상식'이나 '정서'가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일본에 대한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들이 책 <반일 종족주의>를 통해 주장하는 한국인들의 '상식'이나 '정서' 중 현재 한일 양국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들,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반일 종족주의'라고 폄하하는 이영훈의 논리는 일본 극우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적행위'와도 같다. 필자는 '노예근성'을 되풀이하는 이영훈의 논리와 글이 한국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우려스러움을 떨쳐낼 수가 없다. 필자는 그 우려스러움을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 본서를 썼다. 독자 여러분은 본서를 통해 거짓에 사실을 섞어 사람을 속이고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려는 악마가 있다면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영훈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주의 신아에 빠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종족주의자일 텐데, 왜 한국 사람들의 정신문화를 '반일 종족주의'라고 비판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종족주의'라는 말은 아마도 자신들을 관찰해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뜻으로 그들을 '친일 종족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다.

-연합군의 조사 기록에 의하면 일본인 '위안부'들은 조선인 '위안부'들보다 안전한 후방 지역에 배치되었다. 모든 지역에서 그랬다면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들을 최전선에 배치했다는 민족적 차별을 자행했던 것이다. 아무도 자발적으로 가지 않느 최전선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선정한 포주들이 조선인 여성들을 취업 사기로 속여서 연행했다는 사실이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게 아니라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 우파나 한국의 신친일파들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인권유린주의자들이다.

 

위안부 문제가 붉어졌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문제는 '나눔의 집' 관련 후원금 횡령 논란이다.

이번 <신친일파>를 읽으면서 그리고 뉴스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생각이 맴돌았고 읽으면서도 이 책을 오늘 다 읽지 못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리고 다시 꺼내기 힘들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책을 펴자마자 하루만에 읽었다. 그리고 또 읽게될 것이다.

<신친일파>의 저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호사카 유지 교수님이다.

난 이 책을 읽고서 알았다. <반일 종족주의>, 그리고 올해 5월에는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책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좋은 책과 나쁜 책.

두 책 모두 중요하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이니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나쁜 책은 나쁜 책으로 잉크와 종이가 아까우니까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노력과 지성이 아까우니까 세상에 뿌리 뽑아야한다는 것.

호사카 유지 교수님의 <신친일파>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 두 책은 바로 이 2가지 안에 속한다.

이 책은 크게 3가지, 강제징용, 위안부, 독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그것 외에도 정말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고, 알기 쉽게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반일 종족주의>책을 파헤쳐준다!)

-제1부 강제징용 문제에 드러난 '노예근성'

-제2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최전선 성노예 제도

-제3부 일제강점은 원천적으로 범버 행위였다

6.25 전쟁이 70년도 채 되지 않았고 그리 먼 일도 아닌데 어떻게 같은 한국사람, 아니 한 인류애로서 그런 말과 글을 쓸 수 있는지 정말 충격이었다. '신친일파'라는 책 제목이 딱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반일 종족주의가 아니라 친일 종족주의자라고 불러야할까?

자발적 징용, 자발적 위안부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부터 한국인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독도문제까지.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그런 억지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신친일파>는 용기의 책이다.

이 책은 결코 용기 없이는 쓸 수 없는 책이고 국적을 떠나 올바른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산물이다.

우리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책을, 이런 역사를.

역사를 공부하고 화를 잊지 않아야만 두 번 다시 이런 치욕과 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 궁금하다. <반일 종족주의>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은 다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과연 조국을 위해 애국심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책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자들이면 족하다.

 

 

 

-미이케탄광으로 연행된 조선인 노동자

-...위와 같은 증언으로 집단적 연행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부상이 일상적이었고 일을 쉬면 식사량이 줄어들었다는 점, 탄광 측이 조선인을 심하게 구타하는 등 폭력적으로 관리했다는 점, 조선인들은 강제로 저축해야 했다는 점, 장시간의 과중 노동으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도주하는 조선인들이 속출했다는 점 역시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노예 사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나 조선 내의 창부만을 데려간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제도도 아니었다.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라는 일왕으로 직결하는 국가 기관들이 '위안부' 강제연행을 주도하며 취업 사기 등으로 연행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조선인 여성들을 해외의 최전방 전선으로 데려갔다.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인 증거

-(1) <세종실록지리지>: 독도를 우산이라 표기하엿고, 날씨가 맑으면 무릉도(울릉도)에서 바라다보이는 섬으로 묘사되어 잇다. 그런 섬은 독도 외에는 없으므로 우산(도)이란 독도를 말한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독도를 울진현 소속으로 기록해 놓았다.

(2 <숙종실록>: 안용복은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독도)를 조선의 우산도라고 주장하며 일본인들을 독도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숙종실록>에는 대마도주의 아버지 말을 빌려 "두 섬(울릉도와 독도)이 조선 땅"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 위의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는 일부만을 소개했을 뿐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개인의 언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역사 왜곡 행위는 막아야 한다. 이우연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글과 동여상을 서슴지 않고 발표해왔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서가 올바른 세상과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미약하나마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다.

맺음말

<신친일파>를 읽으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이렇게 가다간 리에게 미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독일이 나치 청산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고 전쟁의 피해를 잊지 않는 것은 어쩌면 패전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패전국이면서 결코 한국에게는 패전국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청산할 수 없었고 지금도 <반일 종족주의>같은 친일 종족주의가 나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책을 용기 있는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며.

마음이 아픈 좋은 책은 그렇게 계속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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