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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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도 하고 싶었다."

올케와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기분이 고약했다. 죄책감 같기도 하고 소외감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드러내게 될까 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래도 희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남아 있지만 우리 식구에겐 그게 없었다. 엄마도 남아서 그들처럼 하려고 나만 피난을 보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미처 그렇게 하기 전에 엄마의 아들은 효자답게 살아서 돌아와 지금 엄마의 품 안에 있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 저들보다 행복할까. 엄마가 행복하건 말건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여기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이 분하고 억울했다.

꿈꿨네, 다시는 꿈꾸지 않기를

"욕먹을 소리지만 이런저런 세상 다 겪어 보고 나니 차라리 일제시대가 나았다 싶을 적이 다 있다니까요. 아무리 압박과 무시를 당했다지만 그래도 그때는 우리 민족, 내 식구끼리는 얼마나 잘 뭉치고 감쌌어요. 그러던 우리끼리 지금 이게 뭡니까. 이런 놈의 전쟁이 세상에 어딨겠어요. 같은 민족끼리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형제간에 총질하고, 부부간에 이별하고, 모자간에 웬수지고, 이웃끼리 고발하고, 한 핏줄을 산산이 흩트려 척을 지게 만들어 놓았으니......"

나는 강씨가 그 정도로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게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몰랐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난 기분까지 들었다. 잘났다는 뜻이 아니라 적당히 못나서 좋았다. 사람의 생각 속에는 좌우의 이념보다는 거기 속할 수 없는 생각들이 훨씬 더 많은데, 누굴 만나면 우선 저 사람 속이 흴까 붉을까부터 분간해야 하는 관습화된 심보가 부드럽게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임진강만은 넘지마

그날을 앞두고 식구들은 잠을이루지 못했다. 벌떡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가슴을 쥐어뜯곤 하는 엄마를 올케가 천사 같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곧 만나게 될 거예요. 임진강만 안 건넌다면요."

"오냐, 오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든지 임진강만은 건너지 말거라."

올케하고 엄마가 입을 맞추는 임진강 소리가 나에겐 암호처럼 들렸다. 내 마음속에는 삼팔선이, 그들의 마음속엔 임진강이 각각 넘어서는 안될 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임진강만은 넘지마

차차 나도 식구들과 같아졌다. 최소한도로 말했고 최소한도로 움직였다. 무언가 먹긴 먹었겠지만 다음에 무얼 먹을까 걱정하지 않았고,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었기 때문에 먹지 않음과 같았다. 그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다니던 먹는 문제에서 놓여났는데도 여전히 목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까 살아 있다는 감각도 없었다. 나는 내가 아니라 나의 그림자였다. 우리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동안이지 생각도 안 나게 오랫동안 비곤, 악운, 질병 등 인간의 그늘만 독차지하다보니 드디어 표정을 포기한 그림자가 돼 버린 것이다. 마침내 편안해진 것이다.

한 여름의 죽음

나는 혼자 다니는 데 더 익숙했다. ... 구속되기 싫었다. 남을 의식한다는 게 나에게는 일종의 구속감이었다. 남한테 신경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독한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유년기에 이미 형성된 버릇이었다. 일학년 때부터 산을 넘어야 하는 긴 등굣길을 친구 없이 혼자서 다니다 보니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위안이 필요했고, 그건 자신 속에 침잠해 공상을 일삼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내 외톨이로만 지낸 건 아니다. 엎드러지는 친구도 생겼지만 한때였고 오래 우정을 유지한 친구는 한눈팔거나 딴생각하고 나도그냥 거기 있는 친구였다. 정말 좋은 친구는 화제가 끟긴 동안이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가장 내밀하 소통의 시간이 되는 친구였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도 하고 싶었다.

문밖의 남자들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 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하고 나하고 만날 수만 있었다면 둘다 울지 않았을 것이다. 따로따로니까, 서로 안 보니까 울 수 있는 울음이었다.

그날 엄마가 정릉으로 빨래를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에필로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가, 박완서 선생님.

이번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멋진 책들이 타계 10주기 기념 아름다운 표지로 웅진출판사에서 다시 태어났다.

타계 10주년이라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다시 나타나셔서 그동안에 책들을 엮고, 신간도 내고, 시대에 대한 한탄도 같이 하면서 그래도 삶은 살아가는 것이리라 말씀해주실 것만 같은데 말이다.

박완서 선생님을 처음 알게된 건, 아마도 학교 수업시간.

<엄마의 말뚝>이라는 작품이 짤막하게 실려있는데 시험에도 꼭 출제되니 잘 읽어야하는 부분이었다. 대부분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 그러하듯 그저 문제를 위한 문제, 작가의 의도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는데 <엄마의 말뚝>을 읽는 순간 몇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그동안 내가 읽은 우울한 한국문학 작품과는 결이 다른, 우울함 속에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그래도 몰랐다. 박완서 선생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몰랐고, 읽으면 읽을수록 빛이 나는 작품인지도 몰랐다.

더 커서도 몰랐다. 40살 이후 등단하신 기적같은 분이라는 것과 한국문학의 정수라는 말들을.

이제는 그때보다 책을 아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잘 모르지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세대라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함을 느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책 소개를 읽어보자면,

"미완으로 끝났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작이며, 작가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다" 라고 말한다.

미완으로 끝났던 작품의 후속작...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

워낙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풀어서 이야기를 담아내는 박완서 선생님 답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처절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각기다른 주인공들의 삶이 펼쳐진다.

주인공 '나'가 스무살이 되던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장편소설은 박완서 선생님의 실제 연작 자전소설로도 유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지요?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는데 아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을 것만 같다. 이렇게 질문하면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만 같기도 하고.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주인공 '나'는 1951~1953년이라는 한국전쟁 전후의 한참 힘들었을 시기가 배경이다보니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우여곡절들을 겪는다. 이것이 인생인가, 이것이 사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들만큼 살아가는 것보다 죽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 '나'에게도 많은 인물들의 만남이 있다. 모두가 피난을 간 서울 한복판. 자기네 식구만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우연히 알게 된 '강씨' 아주머니와 아이들. 그리고 그로 인해 알게된 인민위원회 사람들. 가족들을 두고 홀로 피난을 가면서 함께한 '근숙이 언니'. 그리고 그 언니를 통해 취직한 한국물산 '파마자부'와 피엑스 생활. 무엇보다 이제 반평생을 함께할 반려자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 일들까지. 그리고 남보다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피는 불보다 진한 '나'의 일가친척 가족들까지. 주인공 '나' 한 사람의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그래도 '엄마'와 '오빠'인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무심하고 철없어 보이는 그 둘의 대화를 보면 마음이 아린다. 사람이 힘들면 어려진다고 했던가. 다리에 총상을 맞아 종아리에 총구멍이 뚫린 '오빠'는 박완서 선생님의 다른 많은 작품들 속 '오빠'처럼 1인분의 몫, 제 구실을 못한다. 걷지 못해 피난도 가지 못한다. 훗날에도 올케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자기 힘든 속만 말하니 원.

주인공 '나'에게 '엄마' 또한 마음껏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애증의 관계이다. 워낙 시대적 배경이 남자, 남자를 외치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하게 박혀 있어서 그렇겠지만 사실 지금도 남아있는 그 풍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설움이다. 더구나 어렸을 때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남녀차별의 한방이란. 지금도 한번씩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은 아마 어른이 되어도 평생 가겠지만 그 아픔을 '나'가 조금 달래준다.

"할머니는 그럼, 작은아버지 지게 지는 것만 속상하고 작은 어머니 광주리 이고 다니는 건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어쩜 그러실 수가 있어요."

"우리 근본이 뭔데요. 작은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면서기 하신 거? 그건 할머니, 일본놈의 아전 같은 거예요. 창피해요, 창피해. 그것 때문에 해방되고 나서 친일파라고 동네 청년들이 우리집 깨부수고 난리 친 생각도 안나세요?"

참다 참도 보다못한 '나'가 이번에는'할머니'에게 가하는 따발총이다. 자기 자식(남자) 힘든 것만 알지 남의 자식(며느리)과 식구들(딸, 손녀) 힘든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이 다 화가난다. 결국 서울대학까지 갔었던 이 시대 인텔리, '나'는 참을 수 없다. 아마 박완서 선생님 본인의 투영이리라.

어렸을 때는 일상 생활에서나 책과 영화 속에 이런 장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시대에 화가 나는 분노를 느꼈다. 왜 악습을 계속하는 것일까를 고민하던 찰나에 이제는 어느정도 양보하게 된다. 그래 그 시대는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고 자라며 배우지 못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배경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주인공 '나'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남은 패기를 응원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인물들의 인생이 참 기구하고 연민이 든다. 불쌍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말로는 십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일반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시련이 닥쳐온다.

수많은 전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배경이된 한국전쟁이 가져온 피해와 상처는 개인을 이렇게 파괴할 수 있구나. 서적과 자료로만 보던 상처를 소설 속 '나'와 인물들에 투영해서 아주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봤다. 전쟁의 아픔을 없앨 수는 있지만 이후 세대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최소한의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선생님의 너무 좋은 글들은 그래도 어찌됐든 살아갈 수 있다는, 살아가게 된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을거야. 하는 희망이.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고 악다구니 받쳐서 외치는 말들도, 내 안에 참고 참았던 설움의 울음이 터지는 순간도 모두 소중하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같은 작품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시대를 함께 나누는 순간들의 기록은 박완서 선생님의 글처럼 아름답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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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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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박완서 선생님, 아름다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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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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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

1984_당의 3대 강령

4월의 화창하고 추운 날, 시게들은 13시를 쳐서 알리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지독한 바람을 피해 보려 애쓰며 턱을 가슴께에 파묻고, 승리맨션의 유리문을 통해 빠르게 미끄러져들어갔다. 그럼에도 함께 따라 들어오는 모래 먼지의 소용돌이를 막을 만큼 충분히 빠르지는 못했다.

윈스턴은 확실히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오늘 아침의 눈길이 마주친 이우에도 오브라이언이 친구였는지 또는 적이었는지를 확신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또한 그것은 심지어 크게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애착이나 당파심보다 더 중요한 이해의 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나게 될 걸세." 그는 말했었다. 윈스턴은 그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실현될 것이었다.

사람들이 인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제정신을 지켜가는 것으로서였다. 그는 탁자로 돌아가, 펜을 담갔다가, 썼다.

미래 혹은 과거에게, 생각이 자유로운 시대에게, 사람이 각자 다르면서 혼자 살지 않는 시대에게- 진실이 존재하고 일어났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는 시대에게. 획일성의 시대, 고독의 시대, 빅 브라더의 시대,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인사 드립니다!

자신은 이미 죽었다, 라고 그는 되새겨 보았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 시작한 바로 지금, 결정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여겨졌다. 모든 행동의 결과는 그 행동 자체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썼다.

사고범죄가 죽음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범죄가 곧 죽음이다.

"당신들은 방금 묘사한 것 같은 그런 세상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건 꿈이에요. 불가능합니다."

"왜지?"

"문명사회를 공포와 혐오와 잔인함 위에 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왜 그렇지?"

"거기엔 생명력이 없을 테니까요. 그건 붕괴될 겁니다. 자멸하고 말 겁니다."

 

 

 

우리에겐 너무 친숙한 조지 오웰.

영국의 소설가로 <동물농장>, <위건 부두로 가는길> 등 마치 자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밑바닥 생활과 인생에 대한 고뇌로, 탄생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우울하지만도 않다.

사실 <동물농장>을 어렸을적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고 동물들마다 무엇을 뜻하는지 비유적 표현을 알아맞추는 문제적 문제를 위한 작품으로 접했었는데, 크고 나서 읽어본 <동물농장>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그의 멋진 필체로 얇은 책의 두께보다 배로 두꺼운 생각을 지니게 됐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른 고전 작품을 읽는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는데, 이번에 새움 출판사의 이정서 번역가를 통해 조지 오웰의 <1984>가 재탠상했다. 나는 아직까지 <1984>의 유명세는 알았지만 읽어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드디어 읽어봤다.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고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역시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작품은 모두 이유가 있다. <The Kiss>라는 그림 작품의 멋진 표지만큼 이번 <1984> 고전도 소장각이다.

<1984>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건, 한참 광고 공부를 할 때다.

광고인의 영원한 워너비, 스티브 잡스를 파헤치다보면 그의 놀라운 광고역작들을 만나게 된다.

때는 1983년 봄, 매킨토시 광고를 출시하기 위해 가히 놀라운 작품을 선보인다.

바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광고라는 평을 듣는, 소설 속 1984가 왜 실제 1984와 다른지 도끼로 깨부시는 그 멋진 장면이 담긴 광고!

광고 속에서도 빅브라더와 세뇌 당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에어팟을 낀) 여자가 나타나 화면을 부숴버린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책 속 <1984>가 아닌 희망이 있는 <1984>를 강조하는걸까.

단순히 디스토피아라는 작품을 넘어, 조지 오웰의 <1984>는 인생의 쓴맛이 아주 가득하다.

주인공 윈스턴은 부스스한 몸을 일으켜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하루는 역시,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는 빅브라더와 함께다.

그런 그에게 스멀스멀 반발심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일기도 쓰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느낀다. 이상한 강령은 또 뭐고 전쟁과 예속과 무지를 찬양하다니! 당의 3대 강령이 <1984> 속에서도 여러번 등장하는데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화가 난다.

이런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상한 신어를 만들고 사상경찰, 텔레스크린, 헬리콥터, 마이크로폰 등을 통해 철처히 감시하는 자유 없는 삶이 이어진다. 그런 윈스턴에게 용감한 변화가 찾아오나 싶은데 과연 <1984>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암울함으로 유명한 이 책의 명성만큼이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만나기도 하고 체포되기도 하고 무기력한 그저그런 인간1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소설 속 <1984>가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오늘 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일들이 너무 많고 국제사회를 봐도 독재정치와 암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이 1948년 (눈치 챘겠지만 1984를 살짝 뒤집은 숫자다) 에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70년이 넘어도 이 말도 안됨은 계속되고 공감하는 슬픈 역사인 것 같다.

더욱 놀라운건 <1984> 속 예견된 일들이 2020년대에도 지속된다는 것! 조지 오웰의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함에 놀라고 아직도 변하지 않는 빅브라더 시대에 한번더 놀란다.

<1984> 속 사람들이 빼앗긴 건 천천히 죽어가는 자유다. 주인공 윈스턴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생명력이 없는 힘은 붕괴되고 생각이 자유롭지 못한 자유 없는 삶은 곧 죽음이다.

<1984> 보다 자유로운 삶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1984> 속 윈스턴과 그의 동료들의 삶으로 투영되어 책 속에 뛰어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구 던져보게 된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1984>와 책 속에 나온 놀라운 신어들, 그리고 깜짝 놀랄 결말만큼 우리는 더 놀라운 삶을 자유롭게 투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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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 - 세계 1위 미래학자의 코로나 위기 대응책
제이슨 솅커 지음, 박성현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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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고, 기회가 있는 곳에 위험도 있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이 둘은 함께 한다."

나이팅게일

앞선 경고는 앞선 준비다

-이 책을 통해 불황이 어떻게 다가오든 살아남는 것을 넘어 더 크게 번영하도록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책에 담긴 조언이 코로나19 패네믹 이후 환경을 염두에 두었지만 그 전략은 훗날 또 다른 경기 침체를 지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경제의 역동성을 두고 경기 순환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는 성장과 침체가 패턴을 이루며 반복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또 다른 도전 과제와 마주할지도 모른다. 앞서 경고를 받는 것은 앞서 무장되는 것이다. 심지어 경기 침체기에도 생존과 번영의 기회는 있다. 내리막길에도 올라갈 기회가 있다.

꾸준히 자신에게 투자하라

-경기 침체의 위험에 대비하는 한 가지 방법은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다. 교육은 학교 교육이 끝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평생 교육 수업을 듣길 바란다. 만일 기업에서 사내 교육이나 여타 연수에 예산을 쓴다면 꼭 참여하라. 언어를 배워라. 도자기 레슨을 받아라.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취업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아 내가 X를 배웠거나 온라인 강좌 Y를 들었거나 전문직 타이틀 Z를 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면서 빈 시간을 채워가라. 호황기에 꾸준히 축적하고 성장하며 자신에게 투자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 돈으 ㄹ따로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나를 성장시켜라

-불황이 닥치면 선택지가 사라진다. 무언가를 쌓으면 선택지는 다시 나타난다. 현명하고 올바르게 쌓아 올리면 현재 직장에서 견뎌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선택지를 갖기 때문이다.

학교에 숨을 이유도 없다. 경기가 안 좋을 때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망칠 필요도 없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쌓아 올리거나 자기 밖의 무언가를 쌓아 올릴 수 있다.

-스스로를 쌓아 올린다는 것은 자신의 기술과 신용,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나'라는 기업을 성장시켜 새로운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렇게할 때 자신이 가진 선택지들을 열린 선택지로 둘 수 있다. 실업의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실업의 기간도 줄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업 흉터를 최소화하고 장기적인 수입에 미치는 끔찍한 영향 역시 줄어든다.

1. 게으른 백수가 되어선 안 된다

2. 자기 계발의 비용을 아껴라

3. 평범함에서 벗어나라

4. 미친 듯이 네트워크하라

5. 다른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조언 (비즈니스 클래스에 올라타라!)

 

2020년은 코로나의 해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났고, 심지어 지금도 진행 중이다.

너무다 당연했던 일상이 이젠 소중한 사진 속으로 남아있고 언제 끝나길 기다리기보다 언제 잠잠해는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많은 변화와 동시에 커리어의 위험도 함께 왔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지 꽤 되고, 매년 청년실업을 갱신하던 차에 코로나의 악재로 기 기세는 박차를 가했다. 아무리 평생직장은 없다지만 무서운 속도로 인원감축, 희망퇴직, 공채 폐지 등 한달, 한달이 위험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세계 1위 미래학자 전문가인 '제이슨 솅커'는 이러한 불황을 이기는 전략과 비밀들을 적어주었다.

이미 <코로나 이후의 세계>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으로 다시 만났다.

어찌됐든 삶은 계속되고, 업은 계속되기에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은 더욱 소중하다.

모두가 힘든 와중에 그래도 버텨내고 살아가야 갈 때,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 에서는 계속 외치는 말이 있다. 바로 위험과 불확실성 속에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너지기엔 인생은 길고, 인생은 값지고, 삶은 유한하다. 비록 힘은 들겠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 행동하고 뭐라고 시작해보는 게 한 달 후, 일 년 후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이슨 솅커'가 말하는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을 바로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준비하라

2. 견뎌라

3. 숨어라

4. 도망쳐라

5. 쌓아 올려라

6. 돈이 돈을 벌게 하라

6가지 전략을 보면 아마 더 알고 싶은 충동이 들 것 같다. 이렇게만 적혀 있다니! 그럼 뭘 준비하라는거지? 그리고 견디라고 해놓고 도망치라니?

아마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아니면 중간중간 원하는 챕쳐만 골라서 발췌독 해도 괜찮다)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준비하는 것은 진정한 '나'에 대한 준비다. 내 생각에 최고의 인풋과 아웃풋의 효율성은 '나'에 대한 투자다. 교육과 공부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나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는 훗날 더 큰 성취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도망치는 것도 그저 힘든 불황을 도망치라는 의미가 아니라,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에서는 '똑똑하게 숨기'라는 의미다!

자신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학교나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불황에 강한 업종을 선택하여 그 곳으로 뛰어들라는 전략이다.

코로나와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여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가 처음이기 때문에 어찌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처음이지만 그 패턴을 읽는 미래학자들의 조언은 많은 도움이 된다.

"불황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저자의 마지막 질문처럼, 코로나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속 묻는 것부터 커리어 전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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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인간 - 타인도 나 자신도 위로할 줄 모르는 당신에게 EBS CLASS ⓔ
권수영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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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

-나는 제 주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단어, '힐링'의 의미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내담자의 인생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상담가다. 하지만 누군가 힐링이라는 단어를 정리해보라고 하면, 나 역시 답변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학생들이나 내담자들이 힐링의 의미를 물어올 때면, 언제인가부터 아주 오래된 라틴어 명언이 떠오르고는 했다.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

-내면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이 자연적인 소생력을 불러일으키는 시작이다. 서구의 통증클리닉 의사들이 마음챙김 명상을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오히려 그들의 통증 부위를 가만히 느껴보라고 주문한다. 통증은 무서워 도망쳐야 할 고통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생하는 무엇, 즉 나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화가 나면 내면은 분노로 가득차 있다고 느끼고, 창피를 당하면 세상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여기는, 비합리의 함정에 빠진다. 나를 향한 가혹한 판단을 내려놓으면, 내 안에 있는 분노나 수치심도 그저 수만 가지 느낌 중 하나로 여길 수 있게 된다. 고통과 불편함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 농도가 옅어진다.

-이 책을 통해 저 밖이 아닌, 바로 우리 안에 이미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었다.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힐링은 없다. 치유는 나로부터, 내가 서 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미 너무 많은 힐링물 예능과 책과 영화가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힐링해줄 수 있는 책은 몇이나 될까?

그저 그런 힐링물을 보기 보다는 귄위있는 학자의 마음심리 상담 책을 권하는 게 좋겠다.

<치유하는 인간>은 그렇게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치유하는 인간> 의 저자 권수영 교수님은 지난 20년 동안 수만 시간을 내담자와 보낸 심리학 전문가이다. 마치 내가 권수영 선생님과 심리학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힘이 들든 힘이 들지 않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토닥여주는 위로를 받게 된다.

심리학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유아기나 아동기 때의 경험을 묻는 질문들이 이 책에는 참 많이 나온다. (그래서 더 심리상담을 받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잘할 수 있다고 토닥여주는 선생님의 말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치유의 진짜 의미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센 척', '잘난 척'의 속사정

-영화 <굿 윌 헌팅>은 최고의 힐링 영화이자, 안아주기와 공감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굿 윌 헌팅', 그러니까 착한 윌 헌팅의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주인공 윌은 전혀 착한 인물이 아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윌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대번에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맥과이어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또다시 교수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 "네 잘못이 아니야!" 맥과이어 교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듯하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던 윌은 마침내 맥과이어 교수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기 시작한다. 마치 20여 년 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결국 윌 헌팅은 맥과이어 교수를 만나면서 오랜 병적인 자기애로부터 해방되고 결국 진짜 자기를 찾게 된다. 우리 주위에 정말 외골수처럼 보이는 자기애를 가진 친구들도 어쩌면 누군가의 공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마음챙김과 사이먼튼 요법

-마인드풀니스는 마인드리스니스, 즉 멍한 마음의 상태를 벗어나서 마음을 꽉 채우는 경지를 의미한다. 나는 이 '마인드리스니스'란 정신없이 무의식 중에 이미 두 번째 화살을 맞은 상태라고 해석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은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여기에서 마음을 온전히 잘 챙겨서 현재의 경험, 그것이 통증이든지 혹은 고통일지라도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은 에포케와 수용의 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힐링 프로그램이다. 통증이나 고통이 오면 그 감각을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이것이 따끔따끔한 고통인지 아니면 온몸에 퍼지는 고통인지 따지지 말고 오히려 차분히 느껴보라고 권한다. '큰일 났다. 이 고통이 대체 언제 끝나지?'라고 두려워하면 벌써 통증의 경험 앞뒤로 훨씬 더 많은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증을 대할 때 마음을 다해서, 혹은 마음을 모아서 통증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내 신체의 일부 경험으로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불교 용어인 '마음챙김'을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마음모음' 혹은 '마음다함'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옛날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아직도 <굿 윌 헌팅>을 안봤다니!

나는 그냥 가방끈은 짧지만 천재적인 청소부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엄스 역)을 만나 제대로 살아가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청소부 '윌'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치유하는 인간>에 적혀진 줄거리만 봐도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찡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외치는 교수나, "알고 있다고!" 계속 그러면 화를 내겠다고 하는 윌이나 둘 모두에게 아픔과 인간적인 치유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어린시절인 것 같다.

너무나 유약하고 어찌할 수 없는 그 시기가 이렇게 한 평생 따라다니면서 인생을 좌우하다니. 맥과이어같은 좋은 상담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상담을 해주는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마 더 팍팍해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 자신도 제대로 위로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위로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말도 곰곰히 뜯어보면 '할 수'는 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남은 잘 치유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근데 그렇게 살면 너무 불행할 것 같다. 하나 뿐인 인생에, 하나 뿐인 자신이 주인공인데 정작 주변인물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니.

때론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게 된다. <치유하는 인간>은 누구든 치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때론 윌이기도 하고 때론 맥과이어이기도 하다.

<치유하는 인간>에 방점은 치유가 아닌, 인간에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치유하는 인간>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는 '치유하는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나/우리안에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 그 소중한 능력을 발현하면,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치유의 과정에서 우리는 나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마음 깊이 연민하고,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고양된 영혼으로 성장한다.

이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당연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팔을 다치면 다시 낫고, 상처가 나면 아물듯이 우리는 본투비 치유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치유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마치 해리포터처럼 그 힘을 몰랐을 뿐이다.

더 적은 아픔을 원하기보다, 더 많은 치유와 공감을 얻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우리는 치유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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