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롭 데이비스 지음, 김마림 옮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원작 / 미메시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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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용맹하고 뛰어난 기사, 돈키호테.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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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롭 데이비스 지음, 김마림 옮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원작 / 미메시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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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키호테 데 라만차다!"

-라만차 지역의 한 마을에 본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키하다>라 불리던 사람이 살았다.

이름은 틀릴 수도 있다. 어떤 작가들은 <케사다>라고도 하니까. 여기선 논란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케하나>라고 하자. 알론소 케하나.

-그는 평소에 할 일이 없을 때면, 말하자면 1년 365일 내내 기사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낙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기사 소설책을 사느라 갖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팔아 버렸다.

-직접 기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편련 기사들을 모방하여 세상의 모든 악당과 싸우고 모든 것을 바르게 바꿔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옷은 오래되고 낡아서 손질이 필요했고 가리개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꺼운 판자로 얼굴 가리개를 만들었다.

-그다음엔 말이 필요했다. 그에겐 늙어 빠진 말이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그저 멋진 준마로 보였다. 로시난테!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근사한 새 이름이 필요했다. 나는 돈키호테 데 라만차다!

-마지막으로 그에겐 사랑하는 귀부인이 필요했다. 마침 마을 근처에 그가 주위를 약간 어슬렁거렸던 농사꾼 처자가 한 명 있었다.

그 처자의 이름은 알돈사 로렌소였는데 그는 자신과 말의 이름을 바꾼 것처럼 그녀에게 어울릴 이름도 생각해 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둘시네아 델 토보소>가 된다.

 

 

 

 

지구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세상에가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은?

바로 지금 읽고 있는 <돈키호테>다. 4백년이 넘도록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은 불멸의 고전은 분명 이유가 있다. 이 <돈키호테>처럼 말이다.

미메시스에서 '롭 데이비스'의 기발한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한 이번 <돈키호테>는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좋을 책이다.

게다가 290여쪽의 분량 정도로 돈키호테 1부, 2부를 한 책 속에서 모두 읽어볼 수 있다니. 원작에 충실한 각색과 유쾌한 그림은 돈키호테를 더 응원하고 매력적이게 만들어준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책 속의 책으로 추천받아온 <돈키호테>를 이제야 읽게 됐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아직까지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앉은 자리에서 하루만에 후딱 읽었다. 그만큼 술술 읽힌다.

돈키호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가상의 괴물과 싸우고 투구를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서 무찌르고 놋쇠 대야를 맘브리노의 황금 투구로 착각하며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기상천외한 몽상가.

예전에는 돈키호테를 허무맹랑한 비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다면, 어른이 되서 읽는 돈키호테는 그 누구보다 마음 따뜻하고 정의로우며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찾아가는 드리머다.

물론 돈키호테의 모험은 쉽지 않았다.

툭하면 얻어 터지고 운 좋게 이긴 싸움에는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혀서 결국 쫒김당하는 신세가 되니까.

게다가 혼자만 그 고생을 하지 않았다. 그의 충실한 종자, 산초 판사도 같이 산전수전을 겪는데 그 둘을 안전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사촌과 신부님, 그리고 돈키호테의 친구이자 이발사인 사람도 같이 고생고생한다.

그래도 그 모험은 분명 값지다.

처음에는 아니 뭐 이런 민폐캐릭터가? 라고 생각했는데 죄 없는 사람을 풀어주고, 사랑하는(?) 공주를 위해 갖은 수모를 당하더라도 기사도 정신으로 싸우고, 불리한 싸움에도 불굴의 용기로 대적한다! 알론소 케하나는 나에게 기사소설에 빠진 가짜 편력기사가 아니라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진짜 용기있는 기사이다.

돈키호테처럼 무적의 용기로 세상을 무찌를 힘이 있다면 난 그런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물론 돈키호테와 산초도 잠시나마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2부에서 밝히질텐데 공작과 공작부인의 만남이다.

섬을 갖고 싶다던 산초의 꿈도 한시적이나마 이뤄지지만 결국 산초도 돌아오고 삼손 카라스코(일명 달의 기사) 때문에 돈키호테도 돌아온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엔딩은 너무도 유명하게 사람들을 놀리듯 제 정신으로 돌아온 멀쩡한 알론소 케하나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끝을 낸다.


-그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둘시네아에 대한 열망 때문이거나 바르셀로나에서의 패배 때문이거나 알티시도라의 말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에게 지워진 운명의 무게 때문이었는지는 베넹헬리조차 말해 주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돈키호테는 그 중압감에 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하느님께서 내게 자비를 보여 주셨네. 친구들이여! 내 평판이, 기사도에 관한 사악한 책의 그늘에 가렸던 내 평판이 회복되었네! 이제 그들의 부조리와 기만을 깨달았어."

-"친구들 나는 이제 죽어 가네. 하지만 미친놈으로 죽고 싶진 않아. 이젠 그런 저주로부터 벗어나고 싶네. 그래서 내 죄를 고백하고 유언을 남기고 싶어."

-"죽지 마세요. 산초 말을 들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이 삶을 포기하는 거예요.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도 그건 알아요."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네. 난 미쳤었지만 지금은 제정신이야. 난 돈키호테였지만 지금은 알론소 케하나이네. 유언을 하나 남길 필경사를 불러 주게. 죄를 고백할 수 있도록 신부님도 모셔주고.

-사흘 후 돈키호테는 영혼을 포기했다.

죽을 때가 다가오자 너무도 멀쩡히 오히려 사람들을 놀리듯 제 정신의 돈키호테의 말을 들어보면, 뭐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실제 영웅의 모험담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와 이야기 속의 저자 '베넹헬리'의 환상 이야기도 한 몫한다.

겉으로 보면 황당하고 순진무구한 돈키호테의 일생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유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과 인생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가지고 용기 있게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을 과연 비현실주의자라고 감히 놀릴 수 있을까?

<돈키호테> 후반부에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돈키호테의 모험담에 설렐 독자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가 부푼 돈키호테와 산초. 하지만 그들에게는 바보, 그리고 바보를 따라다니는 바보라는 호칭의 얼간이 광대라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상처받을 둘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세상의 잣대로 돈키호테와 산초가 평가당하며 멸시받는 모습이 참 마음이 아팠다.

과연 누가 돈키호테와 산초를 비웃고 욕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4백년이 넘었지만 <돈키호테> 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독자들은 그들의 모험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뛰어난 기사, 돈키호테를 읽으며 '삼손 가라스코'가 지은 돈키호테의 묘비명과 이야기를 다시시작해본다. 그럼, '안녕히!'

묘비명 _ 삼손 가라스코 지음

그 용기가 하늘을 찌린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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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 - 톨스토이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8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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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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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 - 톨스토이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8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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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집에 도착하자 한 여연이 우리에게 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 입에서 죽임의 기우이 퍼져나왔습니다. ... 하지만 만일 그렇게 한다면 여자는 죽고 말거라는 걸 저는 알았습니다. 그때 남편이 여자에게 하나님 얘기를 꺼냈습니다. 갑자기 여자의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여자가 제게 저녁을 차려주면서 절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녀 얼굴에 더는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저는 그 얼굴에서도 하나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제게 보여주셨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웃은 겁니다.

-한 남자가 오더니 1년을 신어도 모양이 변하거나 뜯어지지 않는 장화를 주문하더군요. 그런데 전 그 사람 어깨 뒤에 제 친구인 죽음의 천사가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저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천사를 알아보았고, 그날 밤 해가 지기 전에 천사가 신사의 영혼을 데려가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죠. '이 사람은 날이 저물기 전에 죽을 거라는 것도 모르고 1년을 준비하는구나.' 그때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두번째로 미소를 지었지요.

-그러나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던 겁니다.

-'그 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해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때, 난 부모 없이 아이들은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말을 들어주었지. 하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 자기 젖을 물려 아이들을 이렇게 키웠구나.' 부인이 자신이 낳지도 않은 아이들을 가엾이 여기며 눈물을 흘렸을 때, 저는 그 부인에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 번째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절 용서하셨다는 걸 알고서 세 번째로 웃었던 겁니다."

"세 가지 질문"

-"잘 생각해보시오. 당신이 어제 약한 나를 딱하게 여겨 대신 밭이랑 파주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면 저 젊은이는 당신을 헤쳤을 것이고, 당신은 여기에서 나와 함께 있지 않은 걸 후회했을 것이오. 그러니 가장 중요한 때는 당신이 밭이랑을 파던 때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도와준 것이었소. 나중에 그 젊은이가 달려왔을 때, 가장 중요한 때는 당신이 그를 보살펴준 때였소. 상처에 수건을 감감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당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니 말이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그였고, 당신이 그에게 해준 일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소.

-꼭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걸 말이오.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때에만 우리가 가진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앞으로 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인데, 오직 그 하나를 위해 인간은 이 세상에 온 것이기 때문이오!"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 첫 문장을 뽑는다면, 아마도 이것.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속 한 구절이다.

나도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고서 숨막힐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밤을 세웠는데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다시 밤을 새웠다.

소설인듯 우화인듯, 그동안 읽었던 톨스토이의 소설과는 결이 다른 아름다운 문체에 푹 빠졌다.

사실 예전부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이 너무 멋있어서 한동안 되뇌이고 꼭 읽어야지 메모도 했었는데

살다보니 시간은 짧고 읽고 싶은 책은 너무도 많아서 이제야 인연이 닿아 읽게 되었다.

근데 분명 제목만큼이나 익숙한 글이다. 어디선가 분명 읽어봤다. 유명한만큼 인용도 많이 되서 그럴 것인데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거지? 실마리를 찾다보면 어느새 퍼즐이 맞춰지면서 '아! 이 얘기! 그리고 사랑"이라고 외치게 된다.

가난한 구두장이와 아내. 그리고 길모퉁이에서 발가벗은 채로 교회 앞에 버려진 사내 하나.

이 셋의 이야기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된다.

구두장이이 세몬은 아내 마트료나와 바로 그 사내 미하일을 입혀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함께 살아가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도와줄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이 부부도 형편이 넉넉치 않아 세들어 살고 겨우 빵으로 하루 끼니를 연명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미하일을 버려둘 수 없었고 같이 살면서 구두장이 기술도 잘 연마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사내, 미하일이 인간세계에 버림받고 떨어진 이유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구두장이와 아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들려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특히 마음에 깊이 담겨지는 이유는,

깨달음이 필요한 질문 세 가지를 무엇이라고 딱 명확하게 짚어주지 않는 점이다. 사랑, 그리고 무엇이 더 있을까? 연민이라 해야할 지 따뜻한 마음이라 해야할지 유한한 인생의 소중함이라고 해야할지 그 몫은 오롯이 독자에게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함께 <세 가지 질문>도 인생의 멋진 가르침을 준다.

왕이 알고 싶은 지혜 3가지를 물으며 길을 떠났는데 뜻밖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결국 우리에겐 오직 지금만이 있다는 세 가지 이상의 한 가지를 얻게 된다.

요즘 마음이 썩 좋지 않고 각팍해지는 세상에서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너무 길지도 않은 딱 좋은 정도의 분량의 짧다면 짧은 글이지만 손 안에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 한 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할 지 묻고 싶을 때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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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기억법 - 영원한 것은 없지만, 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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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표현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머리와 가슴에 기록해두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진하는 방법은 있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카메라를_사진가의 기억법

영화를 좋아한다. 그림을 좋아하듯 사진을 좋아하듯 그렇게 영화가 좋았다. 영화를 한참 보던 시기의 나는 꽤 오랫동안 내 쓸모를 증명하지 못했고, 온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더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내게 좋은 취미 활동이자 선생님이며, 친구였다. 종일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영화 하나는 봤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영화와 친해졌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지만, 그냥 틀어놓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고, 다시 흘려보내기도 했다.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영화를 보며 멋진 장면이 나올 때마다 셔터를 누르듯 캡처를 했다. 영화의 미장센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좋았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움직이는 영상을 멈추는 것을 즐겼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사진 작업에 꽤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가 알아갈수록 놓쳤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그렇고 가끔은 무심한듯 멀어졌다가도 어떤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그렇다. ... 어쩌면 내가 영화는 나름의 사교활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_영화 감상법

 

 

직업병일수도 있는데 나는 광고와 관련된 책이면 꼭 읽어본다.

게다가 에세이라면 이렇게 하루 시간을 내서 읽거나(사실 이 책도 그렇지만 앉은 자리에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깐 서점에 들러 후루룩 속독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인터넷서점으로 책 제목과 소개라도 읽는다.

이번 책은 김규형 포토그래퍼님의 <사진가의 기억법>.

게다가 캐논, 에어비앤비, 에잇세컨즈 등 브랜드들이 사랑하는 포토그래퍼라니!

이미 <서울 스냅> 책과 강연, SNS 등으로 유명한 김규형 작가님이지만 끌리듯 <사진가의 기억법>을 폈다.

작가의 이력이 조금 독특하다.

광고를 하다가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이자 사진가의 길로 서다니.

궁금증이 생겨서 채널예스 인터뷰 기사도 읽어봤는데 평범하지 못하고 틀리고 이상한 아이였다는 자기소개가 눈에 띈다.

자신의 업을 관찰이나 메모, 기억, 좋아하는 일 등으로 푼 <사진가의 기억법> 책에도 나오지만 그만이 가지고 있는 뷰어 속 시선이 좋았다.

창작

-어렸을 때 나는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마 실은 '발견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사람.

직업병

-편집자가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을 보면 상상 속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간판 디자이너가 길을 가다가 마음에 안 드는 간판을 보면 어도비 프로그램을 열어 수정하듯이, 살면서 만나는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프레이밍해서 저장하려는 습관은 내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자연스레 잘 볼 줄 알아야한다. 잘 보려면 그만큼 관찰이 중요하다.

김규형 포토그래퍼가 보는 세상은 발견하고 프레밍하고 메모하고 기억하는 삶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꼭지 중 하나가 <사진가의 기억법>이라는 챕터인데, 그 속에서 모든 감각을 이용해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간직'하자고 말한다.

한참 SNS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도 나는 조금은 자의반 타의반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진이나 짧은 글을 포스팅하는걸 그리 열심히하는 편은 아니다.)

누구는 맛집에 가고 예쁜 카페를 가고 멋진 장소에 가서 인증하는 '인증샷' 문화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하는데

SNS를 열심히 하지 않는 나조차도 이 의견과는 다르다.

사진을 찍는 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비록 사진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더라도, 사진을 찍고 오랫동안 잊고 살면서 폴더 속 파일로 방치되더라도 사진이 가진 영원성은 그 자체로도 유의미하다.

아마 사람들도 SNS의 '좋아요'를 바라는 마음 속에는 그만큼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고 공감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더 열심히, 더 많이 인생을 즐기고 싶어진다.

<사진가의 기억법> 에세이 속에서는 사진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작가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경험이나 업에 대한 철학도 담겨 있고, 아픈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하는 모습이 담긴 글에는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리고 사진과 영화로 말하는 일상의 이야기도 좋았고 중간중간 작가가 찍은 멋진 사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보다보면 알겠지만, 사진들의 특징이 있다.

어딘가 비쳐서, 거울로 대비해서 찍은 사진들이 꽤 많았는데 아름다운 상을 눈에 한번 담고, 거울에 한번 담고, 사진기에 한번 담는 시선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과 사진에는 이유가 있다.

아마 <사진가의 기억법> 김규형 포토그래퍼님의 글에도 묻어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사진과 순간의 관계를 맺듯, 이 책과 관계를 맺은 독자에게도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거나 글로 썼다면

나는 그것을 만난 것이다.

마치 하마터면 스쳐 지나갈 뻔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

관계를 맺었다면 잊을 리 없다.

내가 기록한 순간은 내가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그래서 순간을 기록한다.

에필로그_그래서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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