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기분 -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나를 찾아온 문장들
이현경 지음 / 니들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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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모적인 직장 생활과 내 마음 같지 않은 가정 생활에서 나를 잃지 않고, 내가 나를 놓아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나를 순간순간 붙잡아주었던 책과 사람들,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다. 직장 상사나 선후배, 동료, 가족 중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도 나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내가 나를 알아주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서문

부침도 잦고 크고 작은 굴곡도 있지만 물은 결국 상류에서 중류로 그리고 마침내 하류로 천천히 흐른다.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다. 인생이 그런 이치에 맞게 흘러가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서문

요즘 느끼는건데 한가지 일을 꾸준하게 해 온 사람들이 대단하다.

1년, 1년이 모여 5년, 10년이 된다고 하지만

뒤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여전히 막막한 일들은 생긴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기분>의 저자, 24년차 SBS 아나운서 이현경 작가님이 더 대단할 수밖에!

'탁월함 보다는 꾸준함의 힘을 믿으며' 걸어온 작가님이 참 좋았다.

책 표지에 이런 말도 있다.

'생애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이한 만년 2진 아나운서의 일상 회복기'.

이현경 작가님의 아나운서라는 화려한 직업 뒤에 이 책을 통해

간판급 아나운서도 아니고 요즘 핫한 예능에 나오는 것도 아니며 진행한 프로그램도 스포츠, 옴부즈맨, 음악 등 살짝 마이너한 느낌을 담은 것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 더 좋았다.

'2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2진이라는 존재감으로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라는 책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

원래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특별히 나의 에세이 100번째 책이다.

예쁜 색감과 디자인과 디자인 뿐 아니라 존재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상, 책, 음악, 일, 가족, 사랑 등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시큰하기도 하고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을 함께 욕해주기도 하는 시원함까지!

아무튼 이 작고 예쁜 책의 제목은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지만 내게는 아주 큰 '아무'가 되었다.

 

 

 

 

"저는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네요"

-어차피 굴곡진 인생에서 나만 믿고 세상에 당당하면 되는 거였는데 작은 티끌 하나 숨긴다고 나는 참 오래도 스스로 고립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세상과 단절해놓고는 괜히 쓸쓸해했다.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당당하지 못했기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의 작가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어디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그럴 때 어디에나 속한다고 느끼죠.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커다란 보상을 얻게 됩니다."

나는 이 말을 나 또한 온전한 세상이기에, 내 의지에 따라 그곳에 속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아니할 수도 있으며, 비록 나 홀로 서 잇어도 초연하니 두렵지 않다는 뜻으로 알아듣고 마음에 새겼다. 내 지금 삶의 화두가 '존재감'이라면 이 작가의 오랜 고민은 '소속감'이었고, 이 둘의 해결방법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건 다름 아닌 의연해지는 것이다.

살다보면 자존감, 존재감, 자기확신, 자신감 이라는 의미가 흔들릴 때가 온다.

그럴 때 중심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을텐데 뿌리채 뽑고 흔들리는 순간은 어쩌면 좋을까.

그 질문을 아마 오랫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생각했을 작가님이 브레네 브라운의 책을 통해 전해주었다.

의연해지기.

꽤나 철학적인 말인데, 속하지 않았다고 깨달을 때 어디에나 속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니.

그 의연함은 "자, 이제부터 의연해져야지!" 하고 나오는 게 절대 아니다.

오랜 시간 훈련과 수련과 경험을 해야지만 남들이 뭐라하던 나의 길을 가는 게 아닐까.

요즘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는데 진정한 my way 란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게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길에 있는 장애물들을 점프해서 계속 걸어가는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될 때마다 TED 강연도 꼭 챙겨보려고 노력하는데, 기억에 남는 강의 중 브레네 브라운 교수님의 취약성의 힘이 생각난다.

약함을 약하다고 드러내는 그 용기, 취약성이야 말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아무것도 아닌 기분>인가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어 아무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 삶이 있다.

내가 없는 시간은 그 무엇도 아니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죽고 난 다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은 나 자신에게 온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하나 더.

-회사에서는 존재감이 없어 슬프지만, 내 아이에게는 내가 이 세상의 전부다. 내가 없으면 슬프고 내가 있으면 행복하단다. 내가 옆에 있어도 내가 보고 싶단다. 내가 사라질까 봐 무섭고 걱정된단다. 내가 뭐라고.

-서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봐줄 때 의미가 된다. 언제나, 한결같이, 최악의 순간일지라도. 그러니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존재감이 없어 자존감이 바닥일 때라도, 적어도 아직까지 나는 누군가에겐 전부니까.

 

 

"세월은 혼자 흐르지 않는다"

-남에게 향했던 원망이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올 때, 참을 수 없는 자책과 후회로 기억상실에라도 걸리고 싶은 순간. 잘못된 선택이 화를 자초하고,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고, 주변까지 근심케 해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떤 순간.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삽으로 푹 떠내버리고 싶은, 그런 세월이 있었다는 것조차 부정하고 싶었던 인생의 어느 시기를 건너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버리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쓸모없는 세월은 없습니다." (<쓸모없는 세월은 없다>)

그러나 그토록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은 그 삶의 조각도 결국 나의 일부였다.

... 과거의 어리석음에 발목 잡혀 오랫동안 너덜너덜했지만 실패를 거울 삼아 끝끝내는 반짝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돌고 돌아서 왔다.

그때의 나 같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디 우리 한번 믿어보자. 세월의 힘을.

이 문장은 존버를 외치는 나에게 아주 아주 필요한 응원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를 외치는 경험주의자다.

무엇이든 다 나에게 돌고 돌아 도움이 되고,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사람이든간에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들다구요.

24년이라니...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멋있다. 한 길을 꾸준하게 해 온 것 뿐 아니라 잘한다. 너무 잘한다. 내 기준에는 정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일정도로 더 응원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묻고 싶다. 작가님! 진짜 세월의 힘을 믿으면 작가님처럼 잘 할 수 있나요?

<아무것도 아닌 기분> 책 안에는 힘나는 구절도 진짜 많고 힘들 때 읽으면 더 좋을만한 위로와 공감가는 글도 많았다.

이 작은 아무것도 아닌 종이로 내가 이렇게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다니.

그리고 나도 어느정도 책을 읽어온 시간들이 있어서 왠만한 책은 읽어봤거나 적어도 제목은 안다고 자부했는데

숨겨진 좋은 책들도 많이 발굴해줬다.

유튜브 <이현경의 북토피아> 채널에서 북튜버로도 활동하신다니 이것도 챙겨봐야겠다.

일과 삶에 조금 지치고 방향성이 필요할 때 <아무것도 아닌 기분> 책을 만났다.

그릿을 가진 사람만이 아는 그 막막함과 자신감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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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태도에 관하여
제프리 마송 지음, 서종민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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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우리 곁을 떠날 때"

-개나 고양이 혹은 다른 동물들을 오랫동안 사랑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면 무척 혼란스럽고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때의 우리는 정말이지 복잡한 감정을 견뎌야 한다. 우리 일생의 어느 한 부분이 막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그토록 사랑했고 우리 일상의 중요한 일부였던 반려동물이 곧 우리 곁을 떠남을, 곧 추억밖에 남지 않음을, 그리고 늘 너무 빨리 찾아오는 죽음을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잃었을 때 슬퍼하면 누구나 이해해 주지만,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많은 이들이 느끼는 슬픔에는 누구나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듯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슬픔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동물의 슬픔에 관해서는 우리 인간의 슬픔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기는 하지만, 두 슬픔의 결은 분명 같다. 우리가 동물 때문에 슬퍼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 때문에 슬퍼할 수 있다.

-인간 이외에도 수많은 동물이 슬픔을 느끼며, 그중에는 인간만큼이나 강렬한 슬픔을 느끼는 동물(이를테면 코끼로)도 있다는 점은 이젠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이 누군가를 잃고도 슬퍼하지 않았던 때는 한 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이 진화를 거치는 내내 느껴 온 슬픔을 동물이라고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세상이 변했다고 느낀다. 워딩이 달라졌을 때.

예전에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TV를 개에게 보면 '앉아, 기다려, 엎드려, 안돼, 빵'을 훈련시키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이제는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동물인권 캠페인을 한다.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좀 더 친밀한 훈련법이 나온다. 그리고 세상에 나쁜 동물은 없다고 가르쳐준다.

"너를 내 삶에 받아들인 순간부터 우리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책 표지에 써있는 말인데 읽기 전에 한참을 들여다봤다.

장수하는 거북이나 고래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동물들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

특히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20년이 채 안될 것이다.

만남과 함께 이별을 준비해야하다니.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섭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법, 그리고 함께 있는 순간들을 의미있게 보낼 필요가 있다.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책은 제목에서느 느껴지겠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더 나아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법을 알려주는 에세이이다.

이해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는 건 사람이든 아니든 같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느끼는 사람이 정할 문제이지 제 3자가 관여할 일이 절대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 애도할 권리가 있음을 힘있게 알려주면서 동시에 반려동물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시선들을 따뜻하게 전해준다.

 

 

 

추측일 뿐이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있고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 사랑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물이 우리든지 다른 동물이든지 사랑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이 왜 이토록 극적으로 변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하였든 큰 변화가 있었다.

사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동물들은 우리보다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제는 상당히 많아졌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개를 말하는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개들은 다른 종류의 사랑, 양면성 없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여러 번 했던 말이지만, 이를 깨달은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아마 난데없이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

동물들만큼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그 사랑을 나누어준다.

외국이든 우리나라든 예전에는 동물들이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에 1차 충격.

그리고 여전히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2차 충격을 먹는다.

하지만 이 충격도 일단 귀엽고 사랑스러운 댕댕이와 야옹이들을 보고 힐링을 받는다.

인간이 가진 나쁜 능력 중 하나는 인간 우상주의라고 생각한다.

인간 이외에 자연이나 동물, 식물들은 그 아래의 하급으로 취급하고 어떻게 감정이나 생각,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일까?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밖에 다를 게 없는데.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을 읽어보니 사랑과 교감을 나누는 반려동물이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조용하게 준비하기도 하고

예상치못하게 작별인사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고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동물들도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다고 생각할까?

well-dying 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게 존재한다.


 

-심리학자인 나는 하나의 상실이 과거의 다른 상실까지 불러일으킨단 걸 안다. 눈덩이가 비탈길에 굴러 내려가면서 크기와 속도를 더해 가듯, 고통도 점점 커진다. 내가 느끼는 깊은 슬픔 중 일부는 내가 지나온 언젠가 떠나보냈으나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다른 누군가를 위한 슬픔이라는 걸 안다.

-나는 고통을 묻어 버리려 애썼다. 부정은 당장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외상후스트레스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연구원 중 하나인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말처럼, "우리의 몸은 전적을 기억한다." 슬픔은 늘 우리 몸과 마음 어디에인가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매일 망고를 생각하지만, 그를 잃은 고통을 없애 준다 하더라도 절대 그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 심장 한구석에는 더 이상 햇볕이 닿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사랑할 기회를 붙잡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 우리는 쥐들을 위해 슬퍼하고, 러셀은 살해당한 곰들을 그리워하고, 플럼우드는 웜뱃을, 킴은 칠면조들을, 로린은 앵무새를 그리워한다. 그것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슬픔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동물답게 만든다.

저자인 제프리 마송이 어릴적 키우던 새 '망고'를 떠나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픔과 상실감은 충분한 감정의 이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사람이 5년~10년 후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로 충분하겠다.

"슬픔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동물답게 만든다."

이 자연스러운 말이 참 좋았다.

유난이라고 이해하지 못하기 전에, 그저 슬픔은 슬픔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좀 더 열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충분한 이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동물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동물들을 떠날 보낼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이 태도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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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 우리가 지나쳐 온 무의식적 편견들
돌리 추그 지음, 홍선영 옮김 / 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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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 전엔 몰랐다, 나도 당신도"

-이 책에서는 과학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안내하고, 이야기가 그 그확을 일상으로 끌어올 것이다. 이제 믿는 사람이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네 가지로 추려서 알아볼 것이다.

1. 이미 만들어진 선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는 선한 듯한 사람으로서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동한다.

2. 자신이 누리는 일상적 특권을 바로 보고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이 특권을 잘 활용한다.

3. 마음이, 삶이 의도적 무지를 고수하려 해도 의도적 인식을 추구한다.

4. 주변 사람들과 시스템을 끌어들인다.

심리학과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학문적 연구는 우리가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을 제시한다. 더불어 이들 연구는 선의에서 한 행동이 오히려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과학을 활용해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법

다양성과 포용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해 온 이들도 있고 이제 막 관심을 갖게 된 이들도 있다. 개인 대 개인의 역학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사회적 삶을 형성하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해결을 구하기보다 성장하고 고심한다. 나와 당신처럼, 이들은 됟고자 하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선한 사람들이다.

구축하는 사람에게는 열과 빛 모두 필요하다

 

 

이번 책의 제목은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빳빳하면서 비비디한 컬러에 한 손에 들기 좋은 이 책을 읽고 내가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묻기 전엔 몰랐다, 나도 당신도" 이 말이 딱이다.

편견에 관한 편린들이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건방지지만 나정도면 꽤 선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남에게 해코지 하거나 민폐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살고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런 내가 오히려 가해자라니?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선함이 칼이되서 꽂힌다면 상처이고 무기다.

그러고 보면 내가 힘들고 아팠던 그 상처들이, 사실은 상대방이 '상처 줄 생각 없이' 했던 '선한' 행동이었다면?

아 잠깐. 머리가 아파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게 정말 싫다.

무지가 싫어서 나는 평생 공부할 생각이고 지혜롭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 말해주거나 본인이 깨닫기 전에는 전혀 모를 또다른 세상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인기 미드 <굿 플레이스> 시즌을 다 챙겨봤다.

<굿 플레이스> 속에서는 사후 세계를 풀어낸 이야기인데 선한 사람들이 사는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가 있다. (흔히 말하는 천국과 지옥)

그런데 굿 플레이스에 오면 안될 법한 사람들이 와있다.

아무렇지 않게 인종 차별, 성 차별, 계급 차별은 물론이고 백인특권의식까지 두루 갖춘 재수탱이형.

하지만 더 무서운건 '그래, 내가 굿 플레이스에 올 만 하지' 라고 생각되는 인간형이다.

(더 말하면 이 재밌는 미드에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춘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를 보면서 미드 <굿 플레이스> 가 이 책을 보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주고 편견을 가졌던 '선한 사람'(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모습을 보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앞단을 읽으면서 무수히 든 생각인데 끝까지 읽어보고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이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길 기대한다.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지 못하면 위협을 느끼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이렇게 자기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선한 사람이 되기 힘들다.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자기 확인에 대한 욕구는 선한 동료나 선한 친구, 선한 지지자가 되고 싶은 욕구보다 우선한다.

-사람들은 자기 확인을 받으려 한다. 타인의 욕구는 밀쳐 내고 자신의 욕구를 중심에 두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의를 인정받으려 하는데 인정을 해주는 사람에게 꽤 큰 충격이 가해진다고 해도 굴하지 않는다. 이렇게 확인받고 싶은 갈망은 특히 믿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의심받을 때 더욱 커진다. 자기 확인을 받으면 자기 위협은 줄어들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 되고자 하는 자기 자신과는 더 멀어지고 만다. 안타깝고도 맥 빠지는 패턴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완벽히 윤리적이고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며 완벽히 '선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환상은 문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선한 사람들은 '제한된 윤리성(bounded ethicality)'을 드러낸다. ... '선한 듯한(good-ish)' 사람들의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선한 듯한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며, 때로는 고의적이로 때로는 고의적이지 않다. 제한된 윤리성은 자신이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에 이의를 제기한다.

-선한 듯한 사람의 심리를 고려하여 '윤리적 학습(ethical learning)'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더불어 자신이 언제나 선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이들과 달리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한 사람에 대해 다시 정의 내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체로)

근데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를 읽어보니까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일까.

편견이 정말 무서운 건 색안경도 아니고 선글라스도 아니고 아예 안대라는 거다.

보이지가 않는다. 자기의 시야와 가치관과 잘못이.

"아직 이 책을 읽을 준비가 안 된 사람도 있다

(당신은 아닐 것이다)"

책을 펴면 서문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되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믿는 사람이 되려면 참담한 현실을 진짜로 믿어야 하는데 내가 믿고 있다고 착각했던 현실들은 결국 남에게 보이는 나,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확인'의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뼈 때리는 말이 너무 많아서 아프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 책을 편 사람들만큼은 책을 읽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니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요"

-사라는 지타에게 인물을 설정한 계기가 무엇인지, 왜 아무도 라비의 이름을 발음하는 법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지 물었다. 지타는 그 즉시, 망설임 없이 분석했다. "거만해서죠. 다들 신경 쓰지 않는 거예요."

-사라는 깜짝 놀랐다. 거만하다고? ... 사라가 주장하려 한 자신의 정체성은, 혹은 지타가 인정해 줬으리라 짐작한 자신의 정체성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사라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신경을 안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혹시나 나처해하지는 않을까, 상처를 주진 않을까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불편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러듯, 사라는 선의만 있었을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뚜렷이 드러났다. 지타에게 자신이 바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자기 확인을 하지도 못한 것이다. 사라는 자신 같은 사람의 의도와 믿음을 지타가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런 인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사라는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나아갔다. 사라는 지타에게 지타의 성과 주인공의 성이자 결혼 전 지타의 성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타는 흔쾌히 응했다.

-일주일 뒤, 사라는 지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타 수리아네리야난 버러다라전 씨 맞나요?" 지타는 울음을 터뜨렸다. 몇 년 전 미국에 온 뒤로 누군가가 가의 이름을 완전히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처음이에요." 지타가 힘주어 말했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연구 결과 뿐 아니라 일생 생활에서 겪을 법한 실화들을 쏙쏙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표기도 이해하고 나중에 따라 찾아보기에 참 좋다!)

한 학생의 이름이 무지 어렵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풀 네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차마 물어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만해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자, 이게 당사자의 시선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알고보면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차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비단 이름 뿐만 아니라 입으로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나 불편한 순간들 우리가 항상 하는 행동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그냥 넘어간다. 휴~ 하는 안도감으로.

왜냐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고 남에게 상처주기 싫거든.

내가 했던 수많은 행동들이 상처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왜 나는 내가 상처받은 것만 크게 생각하고 정작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아주아주 작게 하는 걸까.

이 말로도 전혀 용서가 되지 않겠지만 P.S 내가 상처줬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요. 정말로요. 정말 미안해요."

여기에 나온 노력이라는 건 거창한게 아니었다.

아주 작게 행동하는 것일 뿐. 그리고 솔직함의 힘을 다시 느꼈다.

먼저 생각의 필터링을 꼭! 거치고 그리고 나서 이게 상처주는 행동은 아닐지 타인에게 솔직하게 허락을 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상처줄 생각은 아닌데"를 시전하면서 마치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시리즈가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솔직하게 발음하는 법을 찾아봐도 모르겠다고 알려달려고 하는 이 작은 걸음 하나로 상처가 눈물(처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기쁨)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뒷단으로 가면 우리를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아니 구원해줄) 방법을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캐롤 드웩의 <마인드셋>을 여기서도 만나게 되다니!

이미 만들어진 선한 사람이 아니라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동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자신의 특권을 바로 보고 이 특권을 '잘' 활용한다. (나는 '잘'에 방점을 찍고 싶다.)

이건 로버트 프랭크의 <노력과 실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함께 생각하고 싶다.

흔히 생각하는 실력주의와 행운을 날카롭게 꼬집는 경제학 책인데 알고 보면 그게 실력과 운이 아니라 특권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백인 남자에 중산층으로 태어날 확률을 계산하시오. 그리고 그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출생으로부터 얻은 베네핏을 잘 활용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가진 편견을 아주 작고 작게 나눌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의식적인 노력과 시스템까지 곁들인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보람은 엄청날 것이다.

뼈를 너무 많이 맞아서 흐물거리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불편한 책들이 너무 좋다.

이제 나는 선한 사림이 되고 싶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듯한 사람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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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셔스 - 내 인생을 바꾸는 힘
문성림 지음 / 미디어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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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나를 '의식'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의식'은 이 책의 중요한 주제이므로 당연히 중요한 단어이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나'다. 자기 자신이 아니면 '의식'도 의미가 없다. 이미 우리는 지금껏 충분히 타인을 의식하고 살지 않았는가? 이제는 나 자신을 의식할 때다. 그것도 진지하게! 나를 의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러면 습관은 저절로 바뀐다.

...

우리는 지금껏 '1차 의식'에 의지해 살아왔다. '1차 의식'으로 사는 것은 내가 전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아지는 수동적 삶이다. 우리는 뇌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즉 이미 결정된 신경회로를 장착하고 태어난다. 그래서 '나'라고 생각했던 오류의 삶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끓고 있다. 이 욕구의 주체는 1차 의식이 아니다. 이를 현실로 이끄는 것은 오직 '2차 의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2차 의식'은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주체적으로 새롭게 내 삶을 만들어 가는 창조적 의식이다. 2차 의식이야말로 진정한 '나'다. 이 의식은 또한 사회에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서문

내 독서법은 잡식성이다. 잡히는대로 읽는다.

예전에는 흔히 말하는 '나쁜 책'도 많이 읽었는데 (삶에 도움이 되지 않고 권수만 채우는 시간 때우기용)

한 해에도 몇 만권의 책이 쏟아져서 출판되고, 세상에는 아직도 읽어야 할 양서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드라큘라처럼, 단테처럼 책을 읽기 위해 영생을 바라지도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삶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게 된다.

그리고 책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소설가들은 소설을 추천하고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반면에,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소설은 거의 읽지 않고 자기계발, 경제경영서만 보는 트렌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분야의 책을 사랑한다.

그러다보니 자기계발서도 300권 이상 읽어봤는데, 이번에 만나게 된 문성림 작가님의 <컨셔스>도 의미있게 읽었다.

아침에 알람을 끄고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고...

이 뻔한 루틴 속에서도 하루에도 수십만 건의 결정을 한다.

그 중에서 우리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하는 자동화 시스템이 이렇게 많다는 걸 뇌과학 책을 읽고 알았다.

(심지어 운전하는 것도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인 자동화이다!)

<컨셔스>는 '내 인생을 바꾸는 힘'으로 컨셔스, 즉 의식을 뽑았다.

자기 자신을 먼저 알고 관찰, 성찰, 상상, 계획, 학습, 창조라는 6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은 수동적인 1차 의식이 아니라,

주체적인 나만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2차 의식에 방점을 찍는다.

감각이 아닌 의식으로, 무의식이 아닌 진짜 의식으로 나를 살아가는 법이다.

 

 

 

"2차 의식으로의 접근"

-내 진짜 의식은 내가 스스로 '나의 의지'를 가지고, 진정 '내가', '의도적으로' 결단해야만 작동된다. 진짜 의식은 한마디로 정신 똑바로 차리는 일이다. 그래야만 내 진짜 의식을 '1차 의식'으로부터 분간할 수 있다.

-이 의식은 가끔씩 나타나 내 인생의 여러 측면을 예리하게 콕콕 짚어 판단하고 분석하고 잘못된 부분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다시 제대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내 인생의 전략 방향을 수립한다. 그 방향 안에는 세세한 전략 프로그램이 개발되는 것과 전략의 재수정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게 '2차 의식'이 하는 기능이다.

-2차 의식은 '진정한 나'가 개입되는 능동적 의식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의 의식이다. 지금까지의 자동화된 습관이 아닌 새롭게 학습된 의식이다. 힘과 열정, 즉 긍정 에너지가 생성되는 의식이다. 나의 의식이 상승하고 성장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이다. 따라서 '2차 의식'은 곧 창조의식이다.

-나의 '진짜 의식'인 2차 의식은 관찰의 조각, 성찰의 조각, 상상의 조각, 계획의 조각, 학습의 조각, 창조의 조각으로 내게 다가온다. 우리의 '진짜 의식'은 이렇게 단편 조각 같지만, 매우 섬세하고 칼날같이 예리하며, 조각 하나하나마다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의식하는 순간 행복해진다"

-2차 의식에 의한 삶은 나에게 한 번 행해지면 없어지지 않는다. 금방 왔다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정신적 지적 퇴적물로 쌓인다. 그것이 발화되는 시점을 스스로 만들기도 하는 능동적 주체다.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킨다. 성취를 일으키고 더 큰 행복을 준다. 그 주체가 바로 2차 의식이다. 2차 의식을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새로운 정보, 지식, 경험을 위해 우리는 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써야 한다.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 영감을 주는 것에 써야 한다. 이런 것들은 감각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쾌락을 준다. 지적 쾌락이다.

-의식의 조각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첫 번째 관찰의 조각 하나만으로도 어마어마했던 부정적 마음 방황이 많이 사그라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훨씬 더 행복해지는 것을 일상에서 분명히 느끼게 될 것이다. 관찰하기는 일상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히 훌륭한 의식 활동이다. 그러나 관찰이 익숙해진 이후에는 성찰을 하고, 꿈을 꾸고, 계획을 짜고, 새롭고 다양한 학습을 경험하며, 결국은 현실로 창조해 내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모두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올해 나의 화두는 깨어있는 삶이다.

오롯이 깨어있으려면 '지금 여기' 순간을 의식해야 하는데 살아가는 찰나들을 잡아내는게 쉽지 않다.

그렇게 연습하는 와중에 <컨셔스>를 읽게 되었다.

"나 자신을, 나의 말을, 내 생각을, 내 행동을.

나는 스스로 관찰자가 되어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관찰해야 할 대상은 나의 하루를

온통 뒤덮고 있는 나의 '생각'이다."

하루에도 떠오르는 수만가지의 생각 속에서 진짜 나를 관찰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여기서는 '컨셔스', 또는 2차 의식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매번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결과가 다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 즉 미친거라고.

진짜 변하길 원한다면 바로 그 간절함으로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걸 <컨셔스>를 통해 알았다.

성공하기 위해서 또는 더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가진 의식의 힘에 집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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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김예지 지음 / 성안당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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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좋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

앞서 썼던 "저 청소일 하는데요?"와는 조금 다른 결의 내용이라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이 책에 담고 싶었던 의미는 전과 같습니다.

"너만 그렇지 않다. 나도 이렇다."라는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만 하던 그 고민이 사실은 누군가도 하는 고민이었고,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어떻게 좋아졌는지 알아가는 건

제 경험 상 생각보다 많은 치유와 희망을 줍니다.

...

조금은 어둡고 축축한 저의 과거일지라도,

분명히 저에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가지지 못했을 마음의 성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힘들어 이 책을 폈을 당신도 분명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인생은 가혹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더 크게 행복하기도 하거든요.

그럼 우리 모두 스스럼없이, 주저 없이! 행복해집시다.

프롤로그

정말 몰랐다. 김예지 작가님이 사회 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었을줄은.

처음 김예지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작년 5월에 읽은 <저 청소일 하는데요?> 라는 그림 에세이 책이었다.

귀여운 그림체에 반해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으려고 본 책인데

중간중간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공감과 위안도 얻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전문직 일을 하시는 모습에 많은 응원을 보냈다.

그런 작가가 "불안과 이별하고 행복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니?

나는 부러웠다.

하고 있는 일이 있고, 공감가는 그림을 그리고, 이렇게 책도 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하지만 사회적 성공과 능력과 별개로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을 작가님을 보았고 그 전작 책보다 더 크게 응원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는 힘들게 겪고 치료한 누구보다 솔직하고 용감한 에세이다.

나는 환경과 유전자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살면서 느낀건데 누군가는 분명 좀 더 예민하다.

그렇다고 예민한 사람은 예민하게 태어났으니까 더 불행하고 힘들다는 비관론이 아니고,

센서티브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은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나도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라 이쪽 관련해서 참 많은 생각과 생각과 생각을 했다.

이쯤되서 내린 1차 결론은 억지로 괜찮은척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내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물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둔감력이 뛰어난 사람은 절대 모른다.

남보다 촉수가 예민한 사람이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하고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그리고 힘들어하는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싶다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작고 귀여운 그림책이 주는 위안이.

행복의 의미를 오랫동안 찾고 지금도 찾아다니고 있는데

영화 '매트릭스'처럼 파란 약을 받고 가짜 스테이크를 먹을 바에는 나는 좀더 불안하고 의미있는 빨간 약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

예민한 사람의 장점이라면, 나는 이걸 가장 중요하게 올려놓고 싶다.

 

 

 

- 내가 처음 낸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서는 청소를 시작한 이유 중 그림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면

이 책에서는 다른 이유인 불안장애를 이야기한다.

엄마와 단둘이 하는 일이여서 부담도 없고 사회적 활동도 적어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청소일로 인해 상황을 피한다 해서

내 불안을 잠재워주진 못했다.

- 근본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은 채 안일하게 불안한 상황들만 회피하니 말이다.

... 가장 좋은 방법인 회피가 사실은 가장 날 무력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 긴 터널을 지날 때 뫼비우스의 띠에서 끊임없이 배회할 때 나는 이런 미래는 상상도 못했다.

- 그런데 왔다. 그래서 이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알려봤자 꿉꿉하고 어둡고 기쁘지 않을 이야기를 쓴 이유는 간단한다.

- "예전의 나 같은 당신을 위해서야.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

- 내 몸에 문신이 새겨진 것처럼 당신도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나을 것이다. 우울증이 나으면 꼭 새기고 싶던 문양을 새기게 되었다.

- 그러니 죽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 불안 장애를 극복한 후 여전히 우울하고 짜증 날 때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니깐

- 대신 불필요한 불안이 사라졌을 뿐이다. 이제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기에 찰나의 두려움이 와도 가라앉힌다.

- 다행이다. 내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회피도 마찬가지.

뭐 그런걸 걱정하냐는 폭력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은 절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본인과 다른 성향의 삶은 어떤 기분일지.

그래서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느정도 힘을 빼고 덜 흔들리지만

학생 때와 사회초년생 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한번씩 수면 위로 올라와서 나를 아프게 한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를 통해 작가님의 삶의 무게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고마운 책이다.

그 불안하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위로를 받았으니까.

조금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는데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 한 쪽이 끊어진 뫼비우스의 띠가 작가님의 팔에 새겨져있다.

요즘 타투 많이들 하니까 타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업앤다운을 반복하던 불안 장애 극복기를 치유하는 의미로 새긴 아주 아주 뜻 깊은 단 하나뿐인 타투이다.

삶의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 '다행'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다.

삶은 고통이지만 고통은 삶이 아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와는 분명 결이 다르지만,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로 더 많은 사람들이 괜찮아지고 행복하길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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