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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 김미림 옮김
아르테 2017.04.14.
아, 정말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국내 출간되었다. 이전에 <검찰 측 죄인>을 꽤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작가만 믿고 이 책을 펼쳐 들었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철야 책’이라고 부른다는데 그만큼 궁금해서 다음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만드는 흡입력이 상당하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책 표지가 따스한 봄 햇살이 쏟아지는 전망 좋은 방, 마치 새로 이사 온 집 내부 같기도 한 게 평온해 보여서 과연 재미가 보장될까 하는.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야기는 일가족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다케우치 신고”라는 남자에 대한 판결로 시작한다. “다케우치” 자신은 범인에게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해 정신을 잃었다가 혼자 살아남은 채로 발견되는데 재판관인 “이사오”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이후 “이사오”는 치매 걸린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사직하고 전원 주태에 가족들과 조용히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남자, “다케우치”가 옆집으로 이사 온다.
“다케우치”가 친절하고 매너 있게 “이사오” 가족들을 대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사오” 어머니 병간호를 돕기 위해 자주 왕래하기 시작한다. “이사오”는 어머니 병간호를 아내에게 맡기다시피 하면서도 집안일에 별 관여를 하지 않고 있으며, 아내인 “하루에”는 시어머니 병간호를 도맡아 하지만 무심한 남편과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시중을 받는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아들인 “도시오”는 변호사 공부 한답시고 역시 집안일에 관심 없으며, 이기적이기까지 하고 며느리인 “유키미”는 다행히도 배려해주는 시어머니로 인해 고부갈등은 없으나 어린 딸 훈육 때문에 역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상태이다. “다케우치”에 대한 시댁 식구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 과거 사건으로 기인한 세간의 시선에 대한 억울함을 끝없이 호소하면서도 이 집안일이라면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는 터라 단단히 신임을 얻었다.
단지, 며느리 “유키미”는 “다케우치”에게서 섬뜩함을 느끼고 경계하기 시작하는데... 점점 이상한 일들이 이 가족에게 닥친다. “이사오” 어머니가 돌연 질식사하는가 하면, “유키미”의 어린 딸은 부쩍 반항이 심해지고, “유키미”에게 옛날에게 치근덕거렸던 남자가 “유키미”로부터 편지로 만나자는 연락 받았다면서 찾아오기도 하는데....
우선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인상 깊게 다가오는 점은 남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시어머니가 가족들을 불러 모아 놓고 나름 유산분배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에게만 턱없이 적은 금액을 분배하는 것에 격분하여 반발하는 대목은 여성독자 뿐만 아니라 남성독자에게도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솜씨가 상당하다. 같이 부들부들하게 만든다. 또 한 편으로는 시누이한테도 공감하게 만드는데 기막히게 잘 썼다.
또한 <검찰 측 죄인>과 마찬가지로 사법권을 실행하는 위치에 있지만 사법시스템의 불합리한 이면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전개를 펼침으로서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구도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미처 인지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불티가 튀자 화들짝 놀라고 마는 “이사오”의 심경변화가 이 책의 제목이 시사 하는 바임을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케우치”란 남자에게 아무런 원한을 산 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은인에 가까운 사이임을 감안할 때 이 남자가 옆집으로 이사 온 것은 단지 우연일까, 의혹을 지핀 것이 며느리라면 원인제공자일수도 있고 방관자일수도 있는 “이사오”가 후반에 보여준 판단과 행동은 정말 극적.
독자의 입장에서 “다케우치”를 바라보는 시작은 반전이 없을지도 모르나 “다케우치”가 자신을 향하는 불미스러운 눈초리에 대한 논리적 반격은 너무나 견고해서 숨 막힐 정도이다. 정말 대단한 심리전이었다. 그러다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며드는 미세한 균열들이 점차 커진 뒤로 종반부의 대 폭주는 가공할만한 흡입력이 된다.
분명 천천히 출발해서 올라타서 어느 순간에 정신 차려 보니까 도저히 중단할 수 없는 독서였다. ‘철야 책’이란 표현은 적절하다. 조금만 읽고 외출하려 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능력이 굉장했으니까. 아마도 “시즈쿠이 슈스케”는 새로이 완소작가로 등극할 것이 확실 시 되기에 책태기 해소에 이만한 첨병도 없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