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광주 5월 민중 항쟁은 80년대만 해도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비극이었다.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TV에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락프로그램만 내보내던 시절이었으니까 국민들은 광주라는 지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서울회군만 아니었다면 광주가 고립되는 일이 없었을 텐데 통탄스럽게도 계엄군의 총칼이 집중되고 말았던 것.
이렇게 은폐되고 왜곡되어온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아마도 대학 신입시절이었던 것이다. 캠퍼스 내에 전시되었던 사진들엔 머리가 곤죽이 되어 터져나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울렁거리는 가슴을 달래느라 멀리 돌아가야 했던 날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크나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무려 32년만이다. 1985년 초판 출간되어 ‘지하 베스트셀러’로 몰래 몰래 읽어야 했던 이 책은 당초 300여 페이지가 약간 넘던 분량이 전면개정판으로 출간되면서 분량이 2배 정도가 되었다. 가장 궁금했던 어떻게 촉발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계엄군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폭동이라고 진실을 왜곡하여 아무 죄도 없는 평범한 시민들을 곤봉에서 대검으로 나중에는 무차별 발포로 진압하기까지의 군사작전 내용도 상세하게 공개되어 있다.
정말 읽다 보면 계엄군의 잔학성에 치가 떨리고 울분이 쌓이다 눈물도 나면서 끝도 없는 일 진일퇴의 공방전에 읽는 내가 다 탈진할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진압하던 경찰도 계엄군의 강경진압을 거부하면서 잡혀있던 시민군들을 몰래 풀어주다 발각되어 계엄군에게 죽도록 구타당하기도 하고 같은 계엄군 장교들끼리 총을 빼어들면서 대립하기도 하였다 하니 오직 하늘 아래 반란군 수괴들만 오히려 하늘을 가리려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과잉충성까지.
얼마 전 광주를 방문했을 때 택시기사님께서 보수정권의 심각한 왜곡시도에 피맺힌 한을 표하셨던 게 책 속의 내용들처럼 이렇기에 충분히 그러실 만 했다는 공감이 뒤늦게 든 이유이기도
하였다. 이제 적폐청산과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들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어떤 불온한 시도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반란군 수괴들이 자신들에게 군인연금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냈다나, 어쨌다나.. 여전히 반성이라고는 모르는 짐승들..
또한, 망월동 민주묘지를 방문하면서 우리들끼리 전두환이 죽으면 화장실 자리에 안장해서 사람들의 떵을 받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자조 섞인 말들을 한 적이 있는데 결국은 유족들이 반대할거라고, 이 곳에 함께 묻히는 것조차 소름끼치는 일이라고 씁쓸한 결론을 내린 것이 기억난다. 어쨌거나 이 책은 그날의 진실에 목말랐을 국민들이라면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을 다소 덜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일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낸다면 내일 아침 9시부터
도청에 나와서 평소처럼 밥 짓는 일을 도와주오.
그리고 애들이 아빠를 보고 싶다고 보채거든 내일은 한번
데리고 나오지. 우리 식구가 모두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주오.“ <P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