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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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카트 멘시크의 원색적인 그림들이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진정한 아트 북이란 이런 것일까, 분량이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글보다 먼저 강렬함을 전해주는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필력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가 일하는 곳이 일본 롯폰기에 자리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어서 그렇다.

 

 

60년대 중반부터 오픈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이든 단골손님들이 드나드는 곳. 두 명의 웨이터와 그녀처럼 또 한명의 알바, 플로어 매니저, 카운터에 한명까지가 직원의 전부이다. 이 가게가 입주해 있는 빌딩의 육층에 사장의 방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매일 저녁마다 매니저가 식사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왜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채, 방에서만 식사는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바쁜 시간대인지라 사장의 방으로 저녁을 나르는 일이 귀찮고 않고를 떠나 자리 비우기가 좀 부담스럽다. 그래도 을이 갑에게 어떤 불만을 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할 일을 할 뿐.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은 날마다 치킨요리만 먹는데도 맛이나 메뉴에 관한 어떠한 일언반구가 없다는 사실.

 

 

수상쩍게도 이번만큼은 그녀가 사장의 방에 저녁을 나르게 된다. 나이 든 노인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잠시 이야기 좀 하자더니 뜬금없이 소원을 말해 보란다. 그녀의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선물로 주겠다며 되돌릴 수 없이 신중하게 하나만 고르라며. 과연 그녀는 어떤 소원을 말했을까? 그 소원은 이루어졌는지, 또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문득 나의 스무 번째 생일을 떠올려 보려 애썼다. 빨리 어른이 되어 못해 본 걸 해보고 싶었는데 술, 담배, 미성년자 출입금지, 관람금지 같은 걸 닥치는 대로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커피를 마음껏 마셔보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다. 어른들은 애들이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면 금지시켰던 금단의 음료에 몸이 달아올랐던 그때 그 시절엔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런 일상적인 소망 말곤 정작 스무 번째 생일은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것 같다. 더 이상 자신의 생일에 아무런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못해 지금까지 나이만 먹어 온 나날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지만 1년에 단 한번이자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 한 사람이 태어난 소중한 날을 너무 헛되이 보냈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소설 속 그녀가 빌었던 스무 번째 생일 소원은 어떤 것일까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송하기도 하면서 짧은 글 속에 진한 여운이 남더라는. 그 해답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있기 보다는 스스로 지나간, 그리고 다가올 그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있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소중한 나를 위하여. 나도 내년부터라도 셀프 생선 제도를 도입해서 자가 응원과 사기진작을 도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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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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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는 해리 홀레 시리즈 중 유일하게 국내출간 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순서상으로는 <팬텀>보다 먼저인데도 왜 뒤늦게 나왔을까? 의문이다. 우야동동 이 시리즈를 처음 소개받을 때만 하더라도 <스노우맨>의 줄거리와 함께 무척 흥미를 이끌어내었던 것도 사실이다. <스노우맨> 이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를 드디어 확인할 차례가 돌아왔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실제로는 악명을 숨겼던 톰 볼레르를 처단하고 난 후 해리 홀레는 경찰조직 내에서 어느덧 왕따가 되어 버린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의를 수호했지만 정작 내부고발자라기 보다는 동료를 배신한 괘씸죄에 엮여 다들 노골적으로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아직은 그나마 밝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덜 기이한 해리의 모습이다.

 

 

원래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했던 탓에 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에도 고작 5명밖에 없을 정도로 타협과 순응 대신에 신념을 고수하려는 성향은 라켈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많이 외롭다. 마음이 공허하다. 그럴수록 피를 씻어내고 진실을 바로 잡으려 애쓰던 해리는 어느 날 오슬로 거리에서 공연 중이던 한 구세군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즉각 수사에 착수한다.

 

 

킬러가 과거 유고내전 당시에 세르비아군에 저항하며 맞섰던 크로아티아 출신의 게릴라임이 밝혀지면서 민족분쟁과 연관된 범죄인 것 가라는 의구심이 피어난다. <레드브레스트>에서의 역사적 비극처럼 맥락을 같이 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번에도 진실에 반전을 심어두는데 성공한 셈이다. 역시 세상 모든 갈등과 탐욕은 오직 한 가지, 그것으로 인해 촉발되고 마는 것일까?

 

 

또한, 해리에겐 나름 의지가 되 주었던 뮐레르 경정의 은퇴식과 새로운 상사로 부임한 군나르 경정의 사람 됨됨이를 비교하는 일도 나름 쏠쏠한 재미와 쓸쓸함을 동시에 전하기도 했고.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연이 결실을 맺지 못한 아픔도 만만치 않더라는. 정착하지 못하고 과거의 아픔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해리와 그런 그를 사랑하고 싶었던 여인의 엇갈린

애정전선,

 

 

그리고 또 다른 동료의 죽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늘 불행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영원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운명인양 짊어져야만 하는 해리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죄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용서하기 보다는 구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이 중요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잠들 수가 없어,

 

 

평생을 허우적거리게 만들 고통 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도록 도움을 줘야만 한다. 해리의 그 순간의 선택과 결단이 인상 깊게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적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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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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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사면 절대후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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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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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디는 무광택 적갈색 립스틱을 입술에 방금 발랐다. 자신이 사용하던 제품은 아니었다. 브래독이라는 손님이 아내가 쓰던 것을 미리 보내준 것이었고 오늘 그와 만날 약속을 해두었다. 에디가 일하는 직장은 어떤 곳일까, 처음에는 가늠할 수가 없는데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라고 부른단다. 그 속뜻에는 극락, 천국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니 잊지 못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인가 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나.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란 곳은 망자의 영혼과 접신하여 유족들과 연결해주는 영매들인 바디들이 일하는 곳이다. 그렇게 소개되고 있으면서도 소설 속에서는 결과만이 나올 뿐, 구체적인 현장상황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이유가 각 방에서 손님과 일대일로 만나서 일단 로터스라는 약물을 복용해야 비로소 망자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으나 정작 바디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최면상태에 빠진 걸로 비유하면 될지.

 

 

당연히 몸과 마음이 상당히 고된 작업이라 오래 버티기가 힘들어 중도에 많이 그만 두지만 에디는 5년이나 꿋꿋이 버텼다. 브래독은 죽은 아내 실비아를 만나기 위해 에디를 선택했고 망자와의 대화를 통해 정신적 치유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에디가 실비아의 립스틱을 바르면서 신체에 이상한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자신의 몸 같지 않은 여러 가지 현상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수가 없지.

 

 

그 즉시 브래독의 아내 실비아의 죽음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조사하게 되는 에디, 한편으로 고객접점을 활용하여 브래독에게 호감을 점점 느끼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기도 하고 둘이서 실비아가 죽었다는 호수에도 가본다. 그리고 이 소설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희망이라는 어떤 여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끌어 나가고.

 

 

그러면서 실비아가 생전에 저질렀던, 아니면 처했던 상황이라고 해야 할지, 산 자에게 남겨진

가혹한 운명은 애달팠으며, 희망이의 죽음은 채널링의 통제과 관련된 말 못할 사정들이 있었던 것이다. 양쪽의 사연 모두 스산하거나 씁쓸한 감정과 여운만 남긴 채,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만약 채널링이 소설처럼 현실화 된다면 단순히 사업으로서의 역할과 산 자와 망자를 잇는 진심회복 기능 사이에서 무수한 갈등과 고민을 양산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잘해야지, 죽고 나면 그런 능력들이 얼마만큼 도움이 될는지, 많은 상상과 생각의 여지를 여전히 남겨두고 나는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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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 위기의 남자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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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다섯 번째를 맞이하는 해리 보슈 시리즈.

정년퇴직이 머지않은 해리 보슈에게 이번에 배정된 미제 사건은 뜻하지 않은 의혹을 남기고 있었다. 1989년에 강간 살해당한 희생자 릴리 프라이스에게서 채취된 범인의 피 얼룩이 지금 현재 나이로 29세이자 당시 나이로 8세 아이의 DNA와 일치한다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8세 아이가 19세 여대생을 납치해 강간 살해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클레이턴 펠이라는 이 성폭행범은 최근에도 일련의 성범죄로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지만 그때랑 지금은.

 

 

그래서 해리 보슈는 파트너인 데이비드 추와 함께 수사팀이 다른 사건의 증거물과 제대로 분류 하지 못해 생긴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때 갑자기 시의원 어빙의 아들 조지 어빙이 고듭 호텔의 고층 객실에서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어빙 의원은 자살일리 없다면서 해리 보슈가 이 사건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 동시에 두 사건을 맡게 된 해리 보슈는 바쁘지만 물러섬 없이 공정하게 조사해 나가기 시작하고.

 

 

처음에 조지 어빙의 추락사는 모든 정황상 자살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부검 이후에 드러난 특정한 흔적들은 누군가와의 다툼이나 위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점을 남겼기에 비로소 해리 보슈는 다른 관점에서 수사하기 시작하는데.... 만약 살인이 맞다면 조지 어빙이 생전에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을 테고 그것의 배후엔 정치적 커넥션이라는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조지 어빙의 아버지가 어빈 어빙이라는 권력이란 점과는 연관이 없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 미제 강간 살인사건의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DNA의 당사자인 클레이턴 펠이라는 청년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응훈련원을 찾아가 그와 그를 관리하고 있는 닥터 스톤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업무상 만나게 되었지만 점차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해리 보슈와 역시 싫지 않은 눈치인 그녀. 둘 사이는 어떤 관계로 이어질 것이고 강간 미제 사건의 진실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

 

 

모두가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해리 보슈가 직접 꺼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어떤 죽음 앞에서도 진실을 밝혀내겠단 사명감에 충실한 남자가 그라는 걸 잘 안다. 끊임없이 자신의 아들 사건을 최우선적으로 맡아줄 것을 요구하는 어빙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맡은 사건 모두를 평등하게 다루려는 이 남자가 가는 길이 늘 험난함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 진실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옳은 길을 가기 위해 틀린 길을 가야 했으니 해리 보슈의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판단의 착오나 실수는 예전 같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영광의 나날들은 저문다. 남은 임기를 꽉 채울 게 아니라면 미리 물러설 때가 되지 않았는지.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고 믿는다. 다행히 그의 처진 날개 죽지를 받쳐주는 든든한 원군이 있었으니 키즈민 라이더와 딸 매디가 되겠다.

 

 

처음 희망했던 정년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면서 어빙 사건의 정략적인 뒤처리에 힘을 실어주는 키즈는 역시 고마운 후배지만 과거와 같이 수사현장을 함께 누비며 손발이 되어주었던 순수함은 희석되고 이제 경찰국 정치게임의 나팔수로 변해가는 그녀와의 간극이 서글플 따름이다. 다시 좁히기는커녕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이대로 작별을 고하게 되나 보다.

 

 

그래도 그의 곁엔 딸 매디가 지키고 있어 좋다. 언제 이 아이가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대견하구나. 아빠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매디와 그런 딸에게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은 해리 보슈. 이제 시력이 감퇴된 아빠보다 사격술도 뛰어나고 각종 관찰력과 심리기법을 가르쳐 준 것 이상으로 능숙하게 잘 해내는 매디를 보면서 추리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부녀관계가 아닐까 싶어 내내 흐뭇했다.

 

 

아빠와 딸이자 스승과 제자라는 이런 모습들은 세상 모든 아빠들이 바라는 이상형일 게다. 장차 성인이 되어 멋진 경찰이 되어 있을 매디를 상상하면서 나중에는 경찰이 되어 맹활약 하는 매디 시리즈도 선보이면 좋지 않을까, 그전에 외로운 보슈가 여친을 어서 확정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되겠지. 잘 해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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