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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 위기의 남자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이제 열다섯 번째를 맞이하는 해리 보슈 시리즈.
정년퇴직이 머지않은 해리 보슈에게 이번에 배정된 미제 사건은 뜻하지 않은 의혹을 남기고 있었다. 1989년에 강간 살해당한 희생자 릴리 프라이스에게서 채취된 범인의 피 얼룩이 지금 현재 나이로 29세이자 당시 나이로 8세 아이의 DNA와 일치한다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8세 아이가 19세 여대생을 납치해 강간 살해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클레이턴 펠이라는 이 성폭행범은 최근에도 일련의 성범죄로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지만 그때랑 지금은.
그래서 해리 보슈는 파트너인 데이비드 추와 함께 수사팀이 다른 사건의 증거물과 제대로 분류 하지 못해 생긴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때 갑자기 시의원 어빙의 아들 조지 어빙이 고듭 호텔의 고층 객실에서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어빙 의원은 자살일리 없다면서 해리 보슈가 이 사건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 동시에 두 사건을 맡게 된 해리 보슈는 바쁘지만 물러섬 없이 공정하게 조사해 나가기 시작하고.
처음에 조지 어빙의 추락사는 모든 정황상 자살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부검 이후에 드러난 특정한 흔적들은 누군가와의 다툼이나 위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점을 남겼기에 비로소 해리 보슈는 다른 관점에서 수사하기 시작하는데.... 만약 살인이 맞다면 조지 어빙이 생전에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을 테고 그것의 배후엔 정치적 커넥션이라는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조지 어빙의 아버지가 어빈 어빙이라는 권력이란 점과는 연관이 없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 미제 강간 살인사건의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DNA의 당사자인 클레이턴 펠이라는 청년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응훈련원을 찾아가 그와 그를 관리하고 있는 닥터 스톤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업무상 만나게 되었지만 점차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해리 보슈와 역시 싫지 않은 눈치인 그녀. 둘 사이는 어떤 관계로 이어질 것이고 강간 미제 사건의 진실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
모두가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해리 보슈가 직접 꺼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어떤 죽음 앞에서도 진실을 밝혀내겠단 사명감에 충실한 남자가 그라는 걸 잘 안다. 끊임없이 자신의 아들 사건을 최우선적으로 맡아줄 것을 요구하는 어빙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맡은 사건 모두를 평등하게 다루려는 이 남자가 가는 길이 늘 험난함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 진실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옳은 길을 가기 위해 틀린 길을 가야 했으니 해리 보슈의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판단의 착오나 실수는 예전 같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영광의 나날들은 저문다. 남은 임기를 꽉 채울 게 아니라면 미리 물러설 때가 되지 않았는지.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고 믿는다. 다행히 그의 처진 날개 죽지를 받쳐주는 든든한 원군이 있었으니 키즈민 라이더와 딸 매디가 되겠다.
처음 희망했던 정년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면서 어빙 사건의 정략적인 뒤처리에 힘을 실어주는 키즈는 역시 고마운 후배지만 과거와 같이 수사현장을 함께 누비며 손발이 되어주었던 순수함은 희석되고 이제 경찰국 정치게임의 나팔수로 변해가는 그녀와의 간극이 서글플 따름이다. 다시 좁히기는커녕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이대로 작별을 고하게 되나 보다.
그래도 그의 곁엔 딸 매디가 지키고 있어 좋다. 언제 이 아이가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대견하구나. 아빠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매디와 그런 딸에게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은 해리 보슈. 이제 시력이 감퇴된 아빠보다 사격술도 뛰어나고 각종 관찰력과 심리기법을 가르쳐 준 것 이상으로 능숙하게 잘 해내는 매디를 보면서 추리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부녀관계가 아닐까 싶어 내내 흐뭇했다.
아빠와 딸이자 스승과 제자라는 이런 모습들은 세상 모든 아빠들이 바라는 이상형일 게다. 장차 성인이 되어 멋진 경찰이 되어 있을 매디를 상상하면서 나중에는 경찰이 되어 맹활약 하는 매디 시리즈도 선보이면 좋지 않을까, 그전에 외로운 보슈가 여친을 어서 확정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되겠지. 잘 해 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