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은 수첩 ㅣ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불에 탄 시체 한 구가 발견됐었죠?
그때 우린 그걸 ‘바삭바삭한 튀김옷’
이라고 불렀습니다.“ <P.70>
“... 시체를 절개해보니 장기들 상태가
꽤 괜찮더군요.
겉은 바싹 타버렸지만 속은 프렌치
스테이크처럼 날것 그대로였습니다.“
옆 테이블의 커플은 소리 없이
음식을 씹고 있었다.
커트는 그들을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는 것이거나. <P.71>
“집에 가려고 밖으로 나왔더니
누군가가 쓰레기 컨테이너 뒤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무방비 상태에서 습격을 당했고,
며칠 후 정신을 차려보니 간호사들이
제 물건을 씻겨주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그것 때문에 의식이 돌아온 거예요. 정말입니다.”
“그런 걸 의료 기적이라고 하나?”
“마법 스폰지였던 모양입니다.” 홈스가 말했다. <P.155~156>
“물구나무를 서면 훨씬 쉬워.” 리버스가 말했다.
“뭐가?”
“똥구멍으로 말하는 거.” 리버스가 말했다, <P.286>
타탄 누아르의 제왕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시리즈 제5탄 <검은 수첩>을 읽었다. 어느 날, 존 리버스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실로 오랜만이었다. 마약 거래혐의로 복역하고 나서 출소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동생 마이클이 형을 찾아온 것이었다. 당분간 거처를 구할 때까지 아파트에서 기거하게 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동생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승낙하고 마는 존 리버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으니 사랑하는 페이션스 에이킨트 박사에게 쫓겨나질 않나, 아직 갱생이 덜 된 것 같은 마이클과 세 들어 사는 학생들 문제로 존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사건이 결국 터졌다. 리버스의 파트너 홈스가 펍 뒷골목에서 괴한으로부터 둔기에 맞아 의식불명을 빠지게 되고 리버스는 홈스의 소지품 중에서 검은 수첩을 발견하는데 5년 전 발생한 센트럴 호텔 화재사고와 현장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에 대한 어떤 단서가 암호로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흐지부지 처리 된 이 사건이 지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자 심상치 않은 의혹을 느끼게 된 리버스 경위!
분명히 그 살인사건의 배후에는 앙숙인 암흑가 보스 캐퍼티가 있을 것으로 믿고 홈스 대신 리버스의 파트너가 된 여형사 쇼반 클락과 함께 사건을 재조사하는데 이때부터 주변에서 위협이 가해진다. 동생 마이클은 철교에 매달린 채 발견되고 당시 사건에 대한 증언을 해줄만한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날의 기억을 헤집고 다니는 것에 불안을 느낀 배후자가 미리 손을 써 수사를 중단시키고자 한 것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검은 수첩에 적힌 암호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열심히 캐고 다니는 존 리버스를 위하여 반가운 인물과 새로운 인물들이 속속 등장해서 이야기를 풍성하고 다채롭게 일조하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동생 마이클과의 재회는 1탄 <매듭과 십자가>에서 실력 발휘해주었던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늘 투닥 거리는 존 형제와 아버지와 삼촌의 불화 사이에서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가족애에 끝내 마음이 짠했다. 어쩔 수 없는 가족인가.
그리고 향후 존 리버스와 애증의 관계로 계속 나아갈 캐퍼티의 첫 등장. 리버스는 캐퍼티에 이를 갈면서도 잡아넣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분개하는데 역자 후기에는 이 두 사람은 상당히 이색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보여 지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요하는 캐퍼티이겠다. 또한, 리버스의 파트너로 새롭게 합류한 쇼반은 그에게 수시로 발끈하다가도 어느새 끈끈한 공조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미소와 신뢰가는 매력적안 신성이었다. 앞으로 그녀의 활약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결정적으로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최대의 재미는 역시 유머와 조크의 퍼레이드에 있다. 동음이의적 언어유희와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툭툭 되받아칠 줄 아는 리버스의 입담은 정말 끝내주게 웃겨준다. 쉬지도 않고 계속 깐죽대는 이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점점 진화하는 농담 따먹기에 중독되고 나면 페이지는 쉼 없이 잘 넘어가게 마련이다. 특히 미묘한 뉘앙스를 잘 살려꼼꼼히 번역하신 역자님께 갈채를 보내고 싶다는 ㅋㅋ
그러거나 말거나 이 남자는 강하다. 자신을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이들로부터의 방해공작과 경찰조직 내부의 파워게임이라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전진하여 끈질기게 조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후반부를 통쾌하게 장식하였다. 시작부터 중간 중간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솜씨 있게 풀어낸 점도 멋졌는데 그런 깨알 같은 반전이 있을 줄야.
이번에도 신났고 재미났다. 아직 존 리버스 시리즈의 최전성기가 도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을 정도면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나다. 6탄을 어서 번역하여 주길 바랄 뿐이다. 기다리다 숨 넘어가겠소. 아, 근데 리버스와 페이션스 박사의 밀당에 왜 이리 심쿵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