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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평점 :
뮤즈란 단어의 어원은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을 일컫는데서 비롯된다. 뮤즈 여신이 사는 곳에는 샘물이 있는데, 그 샘물을 마시면 영감의 원천을 얻을 수 있다 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한편, 박물관(또는 미술관)을 가리키는 ‘뮤지엄(museum)’이란 단어도 뮤즈 여신들을 모시는 신전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고, 음악을 뜻하는 ‘뮤직(music)’도 뮤즈 여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라는 검색 결과가 뜻밖에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술가는 남성, 뮤즈는 여성이라는 이분법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제시 버튼은 남성을 뮤즈로, 여성을 예술가로 역할을 바꿔 편견을 뒤집고자 하는 동시에 여성 예술가의 창작열을 적극 드러내고자 했다. 그녀들에게도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꿈이 있다고도. 1930년대와 1960년대를 오가는 서술구조는 그런 면에 있어서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1967년 영국 런던, 흑인여성 오델은 충분한 학식이 있음에도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퀵이라는 여자를 만나 미술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된다. 퀵과의 만남은 분명 재능을 떨칠 기회였다고 보여지 는데 그녀가 아니었다면 앞날은 언제까지나 시궁창이었을 텐데 오델의 재능을 알아봐 준 퀵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한 여자, 1936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살고 있는 올리브라는 여성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어려서부터 늘 뽀빠이의 여자 친구라는 놀림으로 콤플렉스가 심했던 그녀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러나 당시엔 미술계에 있어서 화가는 전적으로 남자의 차지였다. 그래서 여자화가는 어디에서나 인정받지 못했고 미술상인 아버지조차 딸의 재능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어느 날, 이 집을 찾아 온 이삭과 테레사라는 남매가 있었다. 둘은 고용인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올리브가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오빠 이삭을 사랑하게 된 올리브는 엄마가 이삭에게 그림을 부탁한 점을 들어 자신의 억눌려진 예술적 욕망을 표출하는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반발을 시도한다. 그것은 자신이 실제로 그림을 그려 놓고 이삭이 그린 것처럼 하겠단 것이었다. 마침내 그림은 완성되고 이삭은 양심에 걸려 이 같은 조작을 거부하려 든다.
이렇게 2가지 이야기의 축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놀라운 결말을 낳는다. 이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오델과 올리브의 삶은 같은 여성으로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던 예술적 성취의 봉인을 해제하고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한 것이다. 작가는 이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연대감을 갖고 여성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삶을 꿈꾼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가려져 있던 여성 예술가들의 분투에 찬사와 격려를 동시에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