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4
김중의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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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부터 이 소설의 향방은 정해져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 수하는 십여 년전에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했고 양육권을 갖지 못한 탓에 데려오지 못한 딸 희정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자신이 친엄마라는 사실을 차마 밝히지 못한 채, 가끔씩 만날 때 마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늘 괴롭고 희정은 수하를 아는 아줌마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휴대폰 통화를 통해 듣는 희정의 목소리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려야겠다는 다짐만 굳건해지는데... 그러던 어느 날, 광인병이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좀비 바이러스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이 전염병은 다른 좀비에게 물리면 자신도 좀비가 되는 식이 아니라 호흡기 전염병처럼 어느 순간 감염되어 광인이 되고 마는 무서운 전염병이란 것이다.

 

 

작가의 고향이 포항 출신임을 감안하여 전국에 퍼진 이 광인병을 주인공이 제일 먼저 목격하게 되는 장소가 포항으로 설정한 점도 흔치는 않다. 몇 년 전에 잠시 포항에 거주한 적이 있어서 소설에서 몇 차례 언급되는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7층 상가건물이 어딘지 모르게 친숙했던 것 같다.

 

 

이 광인병으로 도시가 점점 늘어나는 광인들과 희생당하는 사람들로 쑥대밭이 되자 딸의 생사를 알 길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가 직접 딸을 구하러 가는 수하.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으니 교통사고로 발에 골절 입게 되어 이젠 자신의 몸을 간수하기조차 힘든 위기일발의 순간. 광인들의 공격에서 외국인노동자 자카리아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고 그와 함께 딸 희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에는 여전히 불투명한 시국이다.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방송에서 정부는 제주도에 피난처를 마련했다면서 부산으로 오라고 한다. 광인들을 피해 정상인들을 수송할 선박에 탑승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수하 일행은 무사히 제주도로 향할 수 있을까?

 

 

광인들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광인병에 걸리게 되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는 말을 반복하는 순간이겠다. 가족이 본인이 이름을 부르면서 밤낮으로 문 앞을 떠나지 않게 되면 처음에는 몰라서 결국 열어주다가 봉변당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주인공들과 독자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고비다.  

 

 

버틸 수 있는 데 까지 노력하겠지만 나중에는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돌아버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귀를 막아야 산다. 숨통을 조여 오는 압박감이 그래서 빛난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국가재난사태에 대응하는 국가의 초법적 조치들은 꼭 그래야만 했나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 편으로는 불가피한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광인병이 발병하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초동조치는 과연 적절했는지, 인재는 아닌지 같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기로에서 선택하게 되는 그 판단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까닭도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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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탑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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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탑>은 듣던 대로 모험담이 부각되지 않아 재미가 덜했던 거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은 아니지만 애니화 하기엔 스타일이 맞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지. 유령탑 내부의 드나드는 통로의 비밀과 설계는 참 아기자기 해서 맘에 들었지만 그 안에서 좀 더 헤매고 다녔어야 한다. 아야츠지 유키토관 시리즈처럼 건축학적 미로와 기관장치가 있어야 흥미진진해진다는 말이다. 밖에 나가서 벌어지는 일들은 숫제 관심이 안 가는 게 유령탑이 철저히 주인공이자 무대가 되었어야 하는데 거의 기능을 상실하고 없더라. 보물섬이 아니더라. 에도가와 란포와의 첫 만남에 의의를 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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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증인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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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증인>은 일단 미키 할러가 주인공이지만 해리 보슈도 나온다고 해서 언제냐며 눈에 불을 켜고 페이지를 넘겼건만 막상 등장해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니 이러려고 불렀나? 완전 엑스트라 급이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의 변호사 미키리사에 대한 변론을 어떻게 진행 나갈까에 대해서만 초 집중하기로 한다. 정의를 수호하자는 게 아니라 법을 이용하는 게 변호사라면 미키는 솜씨가 뛰어나다. 대신 피고 리사는 넘 말을 안 들어서 통제가 안 되니까 열불 나서 걍 한 대 쥐어박았으면 좋겠더만.

 

 

변론이란 것에 무지한 지라 솔직히 미키가 쓰는 전술전략에 무슨 하등의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검사는 그렇다 치고 판사까지 노여워하는 상황들이 이해가 안 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피고가 유죄라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거나 범인은 따로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면 되는 게 아니던가? 결과적으로 검사와 판사의 까칠한 반응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쪼이는 맛이 강했다. 여러 가지 논리 중에서 피해자와 범인 간의 신장 차이에 대한 부분은 조금 아리송했고. 배심원들을 입맛대로 선정하는 과정들이 상세히 그려지지 않았던 점도 아쉬웠음. 그게 법정 스릴러의 묘미인데.

 

 

그리고 그런 식으로 결말 날 줄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는. 종이에 날카롭게 손가락을 베인 기분이랄까. 늘 정의와 진실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미키의 두 알만 희생당한 거였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더불어 해리의 딸내미랑 미키의 딸내미랑 얼릉 만나게 해주라고. <The Drop>에서 사촌들이 만나게 되던가? 해리는 옹달샘에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돌아간 토끼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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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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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시리즈를 논외로 일본 하드보일드를 논하지 말라!

무라노 젠조가 없었다면 미로 시리즈는 결코 전설이 

 될 수 없었다.

 빛나는 존재감의 무라젠, 이번에는 그가 주연이다!


4권째 읽은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라는 카피문구가 강렬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카피 말고 커피라고 해야 하나. 프림을 뺀 진한 커피 같은 맛. 실제 1962년에서 1963년에 걸쳐 일본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는 소카 지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나는 이 폭탄범이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 놀랐고, 특히 오쿠다 히데오<올림픽의 몸값>에서 나왔던 사건과도 동일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늦게 알고 나니까 왜 결말이 그래야 했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거다.

 

 

앞서 있었던 무라노 미로 시리즈<다크>에서 있었던 미로와 의부 무라노 젠조, 통칭 무라젠으로 불리는 남자 사이의 비극적인 관계에 솜털이 곤두섰던 경험이 떠올라 무라젠의 젊은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확인하고 싶어졌다. 도쿄 올림픽 개최를 1년 여 전을 배경으로 시작하는데... 주간담론이란 잡지사에서 특종꾼이란 생경한 일을 하고 있던 무라젠은 우연히 지하철을 타고 가다 소카 지로의 폭탄테러를 겪는다. 자칫 죽을 뻔 했는데다가 현장에서 스쳐지나간 남자에게서 감지한 진범이란 직감에 경찰수사와는 별개로 소카 지로에 대한 정보를 캐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가출한 고교생 조카를 찾아 나섰다가 사카이데 도시히코라는 디자이너가 주최하는 클럽에서 조카와 약에 찌든 또래의 다키라는 소녀를 함께 데려 나오게 된다, 그때만 해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그날의 일들. 하지만 무라젠의 집에서 나온 다키가 살해된 채 발견되자 그는 용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는다. 모든 정황들이 지극히 불리한 가운데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애쓰는 무라젠은 그 와중에 10대 소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인형놀이라는 변태서비스에 주목하게 되면서 다키 이전에 살해된 또 다른 소녀가 있었음을 밝혀낸다. 그 추악한 배후에는 어떤 사정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우선 소카 지로 사건을 둘러싼 특종 전쟁에서의 특종꾼이란 직업 자체가 넘 생소하고 특이하더라. 경찰한테는 보도협정을 깨는 비신사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위협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결코 물러섬이 없는 이 남자가 뛰어난 직감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캐내기 위하여 벌이는 심리전을 지켜보자니 나중에 탐정 사무소를 차릴 명분과 적성이 충분했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살인 용의자로 내몰리면서 까지 야쿠자도 마다 않는 조사 능력을 십분 발휘할 때 참 강단 있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돈으로 매매하는 시도도 무척 흥미롭다.

 

 

그런데 인간이란 본성 자체가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면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개념 자체를 망각해 버린 게 가장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미투 운동 기사를 접하면서 예전에 송강호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무슨 강간공화국이냐고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소통의 부재가 갑질의 궁극을 낳고 잘못을 저질러도 파렴치하게 은폐하고 모면하려고 하는 것에서 대중들의 공분이 끓어오르는 게 아닐까? 소녀의 죽음에 얽힌 도덕적 해이는 그냥 화가 치밀어 오르는 차원을 넘어 참 가슴 아프다는, 피해자와는 별개로 가해자를 둘러싼 모종의 흑막들이 말이다.

 

 

무라젠의 활약을 따라가다 미로의 친부에 관한 이야기, 어린 미로와의 첫 만남 그리고 미로의 의부가 된 시초 등이 곁들여 지면서 정작 소카 지로 사건의 행방 보다는 그런 쪽에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패전 이후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하던 전후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와 무관하지 않았던 시절에서 말이다. 그 당시를 온 몸으로 헤쳐 나갔던 이 남자의 매력 속에서 진정한 하드보일드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물의 잠, 재의 꿈의 의미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잡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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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이니
배영익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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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오래오래 읽히는 고전을 쓰고 싶다고 술회하고 있으나 과연 바람대로 이루어졌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왜냐하면 너무 힘이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 순문학도 장르문학도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느낌으로 읽히는데 결정적으로 매 단락마다 인용 글 및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되는 내용들이 장광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범죄만 있고 심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옳은 말씀이다. 살인마는 그냥 나쁜 넘이다, 라고 넘어가고 말아야 하는지... 성향, 패턴 그 어느 쪽도 무색무취이다. 또한 도깨비감투를 쓰고 돌아다니는데도 스릴은 없고 그냥 알아서 족치겠지, 같은 무신경한 반응. 설화에서 차용하면서 활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가 될 텐데 한국 장르소설은 기술 집약적 서술이 너무 빈약해서 항상 심심한 게 단점이 아닐지.

 

 

두뇌와 가슴은 차갑게 식어서 눈으로만 읽고 말게 된다. 덕분에 피디성기담 이라는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되는 전개에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몰입감이라곤 찾아 볼 길 없어서 내내 한숨만 내쉬게 되더라. 대체 과학적 프로파일링이 어디에 나온단 말인가? 오히려 뜬금없이 귀신을 보질 않나. 심령이니 빙의니 하는 방식은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하는 터라 초반에 성기담의 집에 출몰하던 여자 귀신은 뭥미???

 

 

그래서 <부유하는 혼>이나 <비하인드 허 아이즈> 같은 소설들은 논리를 역행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게으름, 반칙플레이로 해석되는 것이다. 게다가 연쇄방화사건 용의자로 재판을 받았다 무죄방면 되었다는 이야기도 석연치가 않고. 어디서 굴러다니던 도깨비감투인지 장인이 운영하던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득템한 것 자체부터가 엉성하더라. 그렇다면 여기 나온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거야. 나까지 정신혼미 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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