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스토리콜렉터 7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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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귀환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짓더니 이 남자는 결국 독자들에게 약속을 지켰던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개구리 남자!!! 속편에선 더욱 날카롭고 세련된 스릴과 추리를
만끽하게 해주리라는 기대감을 당연히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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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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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날씨가 몹시 추워서 외출 않고 이 책을 방에 틀어박혀 읽을 수밖에 업었다. 전작에서 분노어린 방아쇠를 당겼던 슈나이더는 자비네의 위증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내쫓긴다. 그런데 연방범죄수사국의 수사관들이 잇달아 자살하거나 가족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자 자비네는 슈나이더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평소하던 성격대로 냉담하게 대하면서 개입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슈나이더.

에잇 밥맛 없는 멍멍이 아들이라면 돌아나온 그녀는 더욱 수사에 매진하다가 어떤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그때서야 무거운 궁디를 씰룩거리며 자비네 구출작전에 나서는 슈나이더. 그리고 집에 불을 질러 가족들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20년 감방 생활을 하고 출소한 하디라는 남자가 있다. 모두가 전과자라며 박대하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이 남자의 끝은 예상보다 감흥이 없었지.

게다가 자비네는 여전히 다람쥐일 뿐, 슈나이더의 표현대로 야생고양이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여전히 나는 그녀가 싫다. 보덴슈타인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피아의 심성을 본받으라고. 남녀사이의 애정이 없어도 그런 점은 훈훈했는데 말야. 대신에 소득이 있었다면 슈나이더와의 가상인터뷰다. ! 이건 누가 착안한 것일까? 누가 썼지? 여기자가 친애하는 슈나이더씨라고 부르자 언제 친했다고 그리 부르냐며 타박하는 이 남자의 사교성에 엄지를 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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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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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단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말이지, 밥을 먹으면 똥을 눠야 해.

 밑을 닦을 휴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폭력단은 화장실 휴지 같은 거야.”


 


<고독한 늑대의 피>1988년 폭력단 대책법 이전의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경찰과 야쿠자의 투쟁을 그린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 소설이다. 2018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일본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는데 영화의 평이 썩 좋지는 않은 듯. 다만 그 점이 원작의 완성도와 비례하느냐 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오가미 쇼고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연기만큼은 훌륭하다고 한다.

 

 

어차피 소설을 끌고나가는 주동력은 오가미 쇼고 한 사람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우수한 검거실력만큼이나 징계이력도 화려해서 경찰조직에서는 베테랑이자 이단아로 통하는 사나이다. 그와 파트너를 이루게 된 히오카가 겪게 되는 오가미 쇼고 적응기가 초반을 지나고 나면 경찰 VS 야쿠자, 야쿠자 VS 야쿠자의 대립 사이에서 중재를 맡은 오가미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사실 오가미는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하자면 정의로운 경찰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야쿠자에게 삥 뜯어 부족한 수사비용에 보태 쓰거나 특정조직과 결탁하여 편의를 봐준다든지 하는 식의 행동들은 결코 용서받을 일이 아니다. 그는 다만 야쿠자를 궤멸시켜야 할 악의 대상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에게 위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 그대로라면 만족이 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에 선악의 잣대를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만 결말이 달랐으면 했다. 이 남자의 위험한 행동반경을 감안한다면 예상 가능하기는 했더라도 그렇게 물러나서는 안 되었고 더 맹렬히 늑대의 이빨을 드러내는 장렬함을 직접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내와 아들을 불행한 사고로 잃은 한 남자의 회한이 마음에 걸려 못내 안쓰러웠던 소설이었다. 그래도 내일이 없는 남자들의 세계, 그런 맛에 찾아 읽게 되는 게 아닐까. 늘 그 끝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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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여가 2
명효계 지음, 손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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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여가 1권을 읽고 나서 든 생각. 여가는 남자복도 참 많네 그려. 물론 당사자는 선택의 고민에 빠져 힘들었겠지만. 사실 소설 속 여가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중국 드라마 속 여가를 연기한 여배우는 참 이쁘단 생각이 들긴 했으나 결국 전풍인가, 옥자한인가, 은설인가, 누구랑 사랑의 결실을 맺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 구조인 것이다.

 

 

그런 점에선 난 한결같이 은설을 일방적으로 지지했다. 여자들은 옥자한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 같은데 그간 다른 소설에서 여자는 마음을 주지 않는데도 남자 쪽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다 목숨까지 내놓는 설정도 봤었기에 이런 방식이 넘나 싫었다. 그렇다면 어떡하든 둥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는 나무 없다고 은설이 도끼자루가 되어서라도 은설을 찍어버리는 데 성공했음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은설은 반드시 부활해야만 했다. 1권 말미에서 마음이 아팠기에. 돌아온 은설. 덕분에 한 여자를 둘러싼 세 남자의 다중로맨스는 여전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론 전풍은 이미 탈락이지만. 그런데 열명경의 갑작스런 죽음, 허망하게도 배후를 두고서 막장 같은 출생의 비밀이 있을 줄이야.

 

 

이 모든 피바람의 원흉인 암아랴의 동기 또한 사랑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뒤로 갈수록 판타지적인 설정이 은근슬쩍 묻어나려나 싶더니 그 또한 어떤 안배였지. 좀 뭐랄까, 어느 장면에선 에로틱한 분위기도 있더라는. 잠시 상상했더니 야릇했어. 결국 헌신이든, 집착 또는 광기든,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무협의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삼각형과 사각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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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 다시 만난 친구 아르테 오리지널 7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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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이 그들의 유일하고 확실한 보상이다

 

 

더위를 먹었는지, 아니면 연속으로 읽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뒤늦게 출간되었으면서도 스토리 전개 상 가장 앞선 순서인 0권 먼저 읽은 탓이 크다. 당연하게도 0권을 1권으로 착각하고 바로 2권으로 건너뛰었더니 구리하라와 하루나가 겨울등산을 하고 있어서 좀 생뚱맞게 느껴진 것이다.

 

 

더군다나 0권 말미에서 조난자를 구조한 후, 구리하라가 신경 쓰인다며 온타케소로 돌아가던 하루나의 모습으로 끝났었는데 여기서는 이미 구라하라가 혼조병원에서 근무한지 5년이 흐른 데다, 하루나와 구리하라는 결혼까지 한 뒤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짱이란 별명답게 미어터지는 환자로 인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구리하라와 그이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하루나 부부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극적인 장치 없이도 이 소설을 묵묵히 이끌고 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아마도 하루나라고 해야겠지. 자신의 일인 산악 사진촬영에도 열심일 뿐만 아니라 남편의 기분이 처지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밝고 다정한 이 여인을 글로서 접하는데도 마치 책속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 마냥 마음이 힐링된다. 정말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어질고 현명하여 이상적인 아내상이라는.

 

 

그리고 다시 만난 친구라는 부제대로 대학친구인 다쓰야가 혼조병원에 부임해서 참 반갑더라. 도쿄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여기로 왔으며 왜 야간이나 주말에는 비상호출에 안 응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렇게 무책임한 친구가 아닐 건데 자꾸 안 좋은 소문들이 떠도니까 독자인 나조차도 조마조마했다. 알고 보니 그런 사연이.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개인의 자유와 행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딜레마는 분명 쉽게 결정내릴 수 없게 한다.

 

 

선한 양심이 그들에겐 유일하고 확실한 보상이다, 라고 자위하는 동안 의사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어서라도 환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쉽게 강요할 수 있을까?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걸까? 의사도 사람인데 최소한 사람답게 살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게 된 의료환경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환자들의 애달픈 사연을 접하노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온전한 육신으로 치유해주고 싶은 열정이 꿈틀되지 않던가. 지금 이순간의 고통과 힘든 여정을 잊고 싶게끔. 떠난 자와 남은 자,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의 연이 작별을 고할 때 숭고한 슬픔이 가슴을 저민다. 이제 순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1권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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