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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절대로 범상치 않은 이 소설 띠지의 오른쪽은 이미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읽을 자격이 있으니 난 자랑스러운 틀딱인셈인가? 역자후기까지 읽고 나서 이런 확신마저 들었다. 만약 이 소설이 역겹다면 당신은 틀딱을 넘어 마스터 오브 꼰대스터라고 마땅히 불려야 된다고. 난 강력히 이 소설을 지지하겠다. 현재의 상식으로 이해하려들지 말자. “우리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들면 소설 쪽 세계가 왜곡돼서 이상한 소설이 종종 완성된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럼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편 “살인출산”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가까운 미래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살인”의 의미가 달라져 오히려 용인되는 시대가 도래 한다. 연애, 결혼, 섹스, 출산이 지금까지의 단계였다면 지금은 섹스란 오직 애정, 쾌락만을 위한 목적으로만 바뀐 데다 자궁에 피임기구를 삽입해서 원치 않는 임신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가히 나쁘지 않은 기술도입인 것 같지 않은가? 충동이든, 강간이든 인과관계를 일절 무시한 채,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될 테니까.
이제 아기가 갖고 싶으면 인공출산을 하거나 센터에서 반려견 입양하듯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당연히 지금보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게 되니까 인구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바로 10명을 낳으면 1명을 죽여도 된다는 “출산자” 시스템이다. 출산이 무슨 2달에 1번꼴로 하는 헌혈주기도 아니고 10명을 낳으려다 임산부가 먼저 죽거나 사산할 수도 있고 고령출산도 문제가 된다. 그때는 인공자궁을 달자. 살인이 합법화 된다는 점에서 소설 <저지먼트>의 동해복수법이 연상되기도 한다.
남자도 “출산자”가 될 수 있어. 인공자궁을 달고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50대 남자도 등장한다.
불법살인을 저지르면 감옥에 갇혀 남자도 여자도 주궁장창 출산해야 하는 산형이야말로 최고의 극형이 되었다. 사형은 없다. 계속 출산하느니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게 10명 낳는 게 힘든 일인데도 살의가 유지된다는 게 참 대단하지 않은가? 살면서 날마다 살의는 번뜩이지만 우린 실행에 옮기지 않은데 말이다. 살의가 미래로 생명을 잇는다면.
“트리플”은 2명이 아니라 3명이 동시에 하는 신종연애 방식이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여자 둘에 여자 하나. 어제까지 친구였다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 둘은 바로 연인이 되는 것으로 세 명의 동시 키스. 세 명이 동시에 하는 섹스. 이런 섹스를 흔히 쓰리썸이라고 부르지만 소설 속의 트리플 섹스는 읽다가 오줌 지릴 뻔 했다. 어찌나 말초적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에 근육 배기는 현상이라면 믿겠는가? 소설 속 엄마가 도끼눈 뜨고 화냥년에 색녀라고 딸한테 거품 무는 장면은 정말 가관이더라는.
“당신들 섹스리스라며? 여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아?
난 그를 늘 만족시키고, 서로 사랑해.”
“그렇죠,. 애인이니까 물론 그렇겠죠. 우리는 가족이라 섹스는 하지 않아요.
저어, 휴식 시간이 끝나서 긴 통화는 못 하겠는데.”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섹스를 해 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 사람은 당신한테는 안 서!”
“그래요. 그래서 가족이에요.”
“청결한 결혼”에 나오는 대화 장면이다. 난 이 장면을 수차례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었지만 그래도 질리지 않고 박장대소한다. 야릇한 쾌감에 기분이 묘하다. 어떤 내용인진 설명이 불가하다. 일단 읽어보시라. 이쯤해서 작가는 완전 천잰데. 결국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덮으려 하지 않고 상식을 뒤엎는 대안을 제시할 줄 안다는 게 이 소설의 강점이 되겠다. 그 대안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몫이지만 확실히 환기는 된다. 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만 하고 말 것인가!!! 비상식적이라고 욕하지 말고 제대로 나서라고 이 비겁한 독자들아, 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서 오랜만에 제대로 감각적인 소설을 만나 독서가 즐거웠다. 그리고 이 작가 언니는 “크레이지 사야카”로 불린다는데 여중생이 대학원생 과외교사를 “수유”란 행위로 지배한다는 소설도 썼다고 한다. 국내에 출간해주지 않으려나?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