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그들의 심장에 불타는 말뚝을 박으리라. 단 하나의 심장도 다시  뛰지 못하리.’(본문 중에서)

 

개인적으로 장르소설에 관해서는 단권보다는 시리즈물을 확실히 선호하는 편입니다. 애정 하는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시리즈물에서 강점을 보이는 그들이죠. 그렇게 본다면 존 버든의 데이브 거니 시리즈 2<악녀를 위한 밤>은 일단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즈물의 특성 상 전편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658, 우연히>를 먼저 읽지 않았다는 건 사전이해라는 선결과정을 생략해버린 오류를 범했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래도 읽고 난 감상은 불리한 조건이지만 일단 써내려가고자 하는 것이고 차후에 전편을 역으로 찾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멜러리 사건 이후 전직 뉴욕 최고의 형사였던 데이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의뢰가 들어옵니다. 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의사 스콧 애슈턴과 결혼한 신부가 오두막에서 끔찍하게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고 용의자는 애슈턴의 정원사로 일하던 멕시코인 헥터 플로레스로 밝혀지면서 사라진 그를 찾아 달라는 신부 어머니의 의뢰였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전 사건 때문에 거니와 부인 매들린에게는 많은 힘든 고비가 있었고 아직 그 여파가 있어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나 봅니다. 둘 사이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확인 못해 뭐라 판단 못하겠지만 대화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관계가 겉도는 공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들린의 입장에서는 형사직에서 은퇴한 남편이 더 이상 살인사건 조사에 연루되지 말고 부부가 자연 속에서 안락한 일상을 보내고픈 바램이 있지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는 미스터리라는 퍼즐을 짜 맞추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본능에 맘이 동하게하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당연히 부부 사이는 의견차이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금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거니는 기한을 두고 사건을 조사하기로 타협을 봅니다. 한편 이번 살인사건은 범인의 살인동기도 모호하고 흔적 없는 살해현장 주변과 도주 중 끊긴 발자국까지 도무지 단서를 남기지 않은 완전범죄인 듯 하네요. 완전범죄란 없고 완전해 보이는 현장이 있을 뿐이라는 책 소개 글이 중반 이후까지 갈지자걸음 같던 수사행보에 종지부를 찍고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는 복선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실살인의 동기와 트릭을 파해하는 것은 순전히 데이브 거니의 직감과 끊임없는 상상력입니다. 거기에 보태서 구체적인 물증을 통한 과학수사 없이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한 통찰력으로도 진실에 근접하게 되면서 동굴 입구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로 숨은 여우를 끌어내는 순간만큼은 전광석화 같은 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여우의 꾐에 농락당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자칫 좌초될 뻔 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과정들은 조금이라도 터닝 포인트를 조절 못했더라면 오버액션이 될 악수를 절묘하게 매조지 했던 것 같습니다. 라면 끊이는 냄비의 물이 넘치기 직전 화력조절을 잘한 이치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육체보다 어떤 느낌에 따라 감응하는 거니의 조사방식은 물증주의 수사의 대가 링컨 라임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 색다른 개성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또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도 위트와 시니컬한 냉소도 담겨있어 이를 음미하는 맛도 괜찮구요. 이제껏 만족스럽지 못했던 심리 스릴러 분야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되는데 몰입도가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제목인 <악녀를 위한 밤>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성폭력의 가해자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역시 신선(?)합니다. 고정관념을 과감히 바꾼 시도가 식상하지 않아 좋습니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 점은 어찌 보면 그리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중점을 둔 포인트는 어떤 일정한 사회적 메시지가 아니라 단지 퍼즐미스터리라는 두뇌게임을 만들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니까요. 진짜 악의 근원은 달리 존재합니다.

 

어쨌거나 주인공 데이브 거니는 때론 무모해서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더한 집념어린 오기 앞에 세상은 결코 진실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도 깨닫게 합니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요? 그렇게 섞이지 못할 것 같던 거니와 매들린의 관계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돈독해지란 믿음을 남긴 결말 부분은 그래서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심리전으로 승부하는 이 스릴러가 많은 독자들에 매혹적으로 다가오도록 만드는 스타일을 제대로 구축했다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구요.

 

'구역질나는 OO의 자손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이 저지른 역겨운 행각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글을 썼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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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스러지다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4
앨라페어 버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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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친구라는 단어를 그들의 삶 속에 퍼덕이며 들어왔다가 다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버리는 간단한 대상으로 묘사하면서, 관계를 축적하거나 끊어버리며 삶을 살아간다. (본문중에서)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르소설 작가에게는 전문성과 이색 경력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필수조건이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작품을 집필하는데 있어서의 사실성과 소재차별화를 위해서는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 앨라페어 버크에게도 그 점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된 것 같은데요, 스탠퍼드 로스쿨을 상위 10%위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고 포틀랜드 지방검사 출신이자 법대에서 형법을 강의하는 교수라는 화려한 경력은 그녀가 작가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특집을 다룰 정도였다 하니 적어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데 확실히 성공했다고 보여 집니다.

 

  

 

또한 이것만이 아니라 미국 최고의 범죄 소설 작가이자 에드거상과 대거상 수상경력에, 퓰리처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굵직굵직한 경력을 자랑하는 제임스 리 버크의 딸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물론 이 작가를 만나기전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도 전무한 상태였고 작품조차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부전여전은 스티븐 킹과 조 힐 부자처럼 부전자전의 또 다른 버전의 하나 정도로 넘어갈 정도입니다.

 

이 소설 <아스라이 스러지다>의 관련정보를 검색해보니사만사 킨케이드앨리 해쳐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몇 편의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던 그녀가 스탠드얼론으로 2011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숨은 치명적 위협과 악의가 서스펜스를 서서히 고조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인공 앨리스 험프리가 형사들로부터 살인사건에 대해 방문조사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으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가의 애견 프렌치불독 더프>

 

직장에서 해고당해 실직상태에 있던 앨리스는 우연히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던 중 드루 캠벨이라는 멀끔한 남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뉴욕 맨하탄 지역에 갤러리를 신규 오픈하는데 총 책임자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실업자 신세로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던 앨리스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기에 몇 가지 미심쩍은 의혹을 뿌리치고 수락하게 됩니다.

 

뜬금없지만 그녀의 가족들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앨리스의 아버지는 과거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유명한 영화제작자지만 사생활에 있어서는 추문을 수시로 발생시켰던 유명인사이고 어머니 또한 유명 여배우였습니다. 오빠는 마약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는 등 가족들은 화려한 경력 이면에 복잡하고 불편한 개인사들을 가지고 있는 범상치 않은 가정인데, 그동안 아버지의 딸로 그늘에 가려있었던 앨리스에게는 진정 자립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찾아왔던 것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게 됩니다.

 

그렇게 순탄한 일상이 될 것 같았던 그녀에게 뜻밖의 악재가 발생합니다. 어느 작가의 사진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 사진작품이 대중들로부터 아동포르노물로 간주되면서 종교단체의 시위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는 곤란함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그녀의 고난은 끝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서 그 남자, 드루 캠벨이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와 그녀로 보이는 어떤 여성이 키스하는 사진까지 발견되면서 그녀는 점차 외설작품 판매자라는 도덕적 논란과 더불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한 앨리스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 남자를 미행하는 형사 행크 베크먼, 가출소녀의 행방을 쫓는 제이슨 모하트 형사 등이 등장하면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이 모두가 의도한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들이 뒤엉켜 각자의 진실을 캐기 위한 행보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누명을 쓴 앨리스가 알 수 없는 악의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들은 심장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역동성은 없지만 누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해답을 밝혀내고자 하는 미스터리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본적인, 안일한 삶을 보낸 앨리스는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예측도 못한 상태에서 삶이 산산조각 나려했던 것이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게되구요.

 

 

그래서 모든 것을 내놓는 댓가를 치러야만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는 음모 속에 가족과 친구마저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상황들은 그녀에게 씻지 못할 상처가 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남깁니다. 때론 하나의 사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정 없는 수사의 재구성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넘겨버렸던 과오들이 꺼지지 않는 불씨로 살아나 무시무시한 화마가 된다는 교훈 또한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그리고 앨리스와 그녀의 아버지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단지 소설 속 등장인물만의 관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를 투영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책 속 설명이 아니더라도 확실히 많은 부분이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 속 관계처럼 불편함이 아니라 화목한 부녀지간일 것이라는 점은 가족사진으로도 느껴지니 별개겠지만요.

 

              <아버지 제임스리 버크와 앨라페어 버크>

 

결과적으로 불안함에 떠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한 영리한 스토리텔링은 부드럽게 읽혀진다는 점에서 흡입력은 괜찮은 편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좀 더 자극적인 전개와 스케일을 나름 예상하고 원했던 바라 그 점에서는 부족했다고 살짝 입맛 다시게도 하지만 이런 스타일도 나름 선호할 독자가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작가 비주얼이 인심좋고 맘도 넉넉한 이웃집 아줌마같이 푸근한 인상이라 호감이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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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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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이 책, <용서할 수 없는>을 읽기 전만 해도 할런 코벤의 기존 작들에 대한 괴리감이 분명 존재했었기에 다른 책들에게 밀려 한동안 책꽂이에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더 이상 쌓이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내어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한 많은 독자들의 찬사와 호평들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그러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뒤늦게나마 확인하게 되어 한편으로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동안 코벤의 작품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안정적인 일상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하고 그것이 점차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간다는 미스터리한 설정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인물들 간 갈등과 불화를 거쳐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는 별반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맘을 파고드는 것은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상황들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지켜보면서 나라면 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는 자문을 구하면서 나라도 그렇게 처신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공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흥미 있는 미스터리라는 미덕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빨간색 문에 달린 놋쇠손잡이에 비친 갈고리 모양의 그림자는 “그 빨간 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의 불길한 전조를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빨간 색 문은 소아 성애자로 몰리게 된 댄 머서의 상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댄의 스탠포드 대학시절 룸메이트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파멸과 불행들이 사실은 의도하지도, 의도되지도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라는 금기를 결과적으로 열었던 선택을 상징한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 있을 수 있는 치기라는 추억이 우발적인 사고로 한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게 되면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책임지고 속죄해야 할 최악의 상황 앞에서 피해자는 대범하게도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푼 사실이 있습니다. 결코 쉽사리 내리기 힘든 결단에 가해자들의 처신은 각자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하며 뒤로 발을 빼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속죄를 실천하기도 하지요. 왜 내가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면서 분을 토하는 사람도 제각각, 결국 인간 군상들의 축소판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은 용서가 용서를 낳으면서 훈훈한 반전과 결말로 마무리 지으면서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진실로 시간이 귀한 줄을 아는 현명한 자는 용서함에 있어 지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헛된 허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새뮤얼 존슨의 명언대로 분노에 목을 옭죄도록 만들기보다는 용서라는 베풂이 당장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를 불행에서 구제해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겠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실천은 아닐 것이며 그전에 진정한 반성과 속죄가 선행되어야 함을 댄을 통해 깨닫게 될 겝니다.

그리고 코벤의 이번 작품에서도 발견되지만 시리즈물이 아님에도 전작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조연으로 간헐적인 출연을 하는데 아! 그때 그 사람하면서 기억을 한 번씩 되살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에서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웬디 모자가 아니라 헤스터 크림스타인 변호사였습니다. <아들의 방>에서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의 맹활약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저에게 그녀의 재등장은 반갑더군요.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를 보면 맹렬한 투견이 연상되는데 그녀가 출연한 TV리얼리티 쇼도 재밌는 대목이지만 보안관 워커와 취조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정말 정말 압권이었네요.

 

헤스터는 또 한 번 자신의 귀에 나팔 모양을 만들었다.

“얼른 대답해요, 덩치 씨. 말을 하라구요”.

“풍악을 울려야 털어 놓을 건가요?”                           <본문 중에서>

 

그녀의 언변을 듣다보면 변호사가 아니랄까 봐 신랄하면서도 풍자가 있고 논리에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 미심쩍기도 한데 교묘히 정당하게 포장해서 자신하게 유리하게 결론을 유도하는 기술은 감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에는 하나같이 뼈가 있고 무게가 실려 있으며 강렬한 에네르기가 장악하는 터라 읽는 동안에 완벽히 제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미키 할러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사 캐릭이 아닌 가 싶은데 그녀를 원톱으로 내세운 시리즈물이 나온다면 굉장할 것 같네요. 한 번쯤 작가가 고려해봤음 좋겠다는 희망사항과 함께 그 동안 다소 멀게 느껴졌던 할런 코벤과의 거리가 이번 작품으로 인해 코앞까지 당겨지는 순간이어서 만족스러웠으며, 작품별 굴곡이 심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가 이 정도 퀄리티만 꾸준히 내 놓을 수만 있다면 완소작가의 자격이 충분할 것 같네요.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부터 꾸준히 챙겨보고 싶은데 그 중에서도 <밀약>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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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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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전 독자모니터의 기회를 주신 비채에 머리 숙여 감사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다른 분들보다 다소 늦게 교정지를 받았던 터라 뒤늦게나마 감상의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독자모니터들에게 주어진 특명 중 가장 막중한 임무라면 오·탈자를 찾아내는 것일 텐데, 먼저 읽으신 분들께서 이미 이 잡 듯 속속들이 찾아내셨으니 지금에 와서는 뒷북치는 일 밖에 되지 않겠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포기하고 읽고 느낀 점으로 바로 넘어 가겠습니다.

 

전작 <스노우맨>에 이은 후속작 <레오파드>는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한데요. 스노우맨 사건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 우리의 해리 홀레는 스노우맨 사건의 여파로 손가락을 잃고 라켈과 올레그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을 그리움에 못 견뎌 만나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실의에 빠져 홍콩으로 도피하듯 떠난 상태입니다. 때마침 고국인 노르웨이에서는 스노우맨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게 되고 강력반 군나르 하겐 경정은 카야 솔네스를 보내 해리를 찾아 데려오게 합니다. 카야라는 이 여경이 해리를 찾아냈을 때 이 남자는 기존의 알콜 중독에다 아편 중독까지 더해 심신이 더욱 피폐해진 상태이네요, 그런 상태에서 처음엔 수사참여를 거부하던 해리는 카야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수사에 다시 참여하게 됩니다. 경찰이라는 이 조직에서 그는 야망 대신 단지 세상의 악을 잠시나마 몰아내고픈 본능에 다시 충실하고 싶을 따름인 것이죠. 이 남자는요.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해리와 동료들은 범인의 살인동기부터 밝혀내고자 하지만 또 다른 악재 두 가지가 발목을 잡습니다. 하나는 강력반과 크리포스란 양대 경찰조직이 강력범죄를 담당할 우월적 치안조직으로써 법무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바로 그 경쟁에서 강력반은 패퇴해 연쇄살인 사건 수사에서 발을 빼게 됩니다. 이에 해리는 강력반발 하지만 결국 크리포스의 수장 미카엘 벨만의 휘하에 들어가 수사를 재개하게 됩니다. 한 편 연쇄살인마는 "백마 탄 왕자님"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며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듯 요령 있게 피해가는데 "레오폴드의 사과"라는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를 이용한 살인이 특징입니다. 계속된 단서 수집과 추리를 거쳐 희생자들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 살인도구의 최초 구입처를 찾아 아프리카 콩고에까지 수사범위를 넓혀 갑니다. 콩고에서의 여정은 <제노사이드>를 부분 연상시키기도 하죠.

 

<레오파드>는 영문 모를 살인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남다릅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동안 단 한 번도 지루할 틈이 없더군요.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흡입력에 압도당했습니다. 그 많은 분량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요 네스뵈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탈고 전에 자신이 쓴 원고를 재차 꼼꼼히 확인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균형 있게 이야기를 분배해야 독자들이 즐겁게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갈까 라며 심사숙고한 끝에 탄생한 역작이 아닌가 싶네요. 인간의 희노애락이 제목처럼 날렵하고 군살 없는 미학적 성취 속에 풍부한 감수성과 센스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마치 인생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읽는 동안 해리 홀레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감정의 굴곡을 겪게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감정이입이란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균형 있는 이야기의 배치라고 한다면 살인마 백마 탄 왕자님"을 잡기 위한 추리와 수사과정, 치안조직으로서 절대적, 우월적 권력을 선점하기 위한 양대 조직의 파벌싸움,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가는 아버지의 여생 앞에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하려는 해리의 인간적인 고뇌라는 3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뼈대를 이루며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상생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물론 범인 검거가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이겠지만 나머지 과제들도 결코 팔짱 끼고 관망해도 될 정도의 수월한 고민들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찰 본연의 임무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크리포스의 수장 벨만의 야심은 비단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군집사회에서 해리 같은 아웃사이더와는 결코 융화되기 어려운 배타적 이질감만 낳을 뿐이라 씁쓸함을 남기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식의 손으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나는 아버지와 그런 소원을 들어드릴 수없는 해리의 선택이 부모와 자식 간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이라는 숙명적 아픔이어서 절절한 슬픔과 눈물 한 방울을 선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백마 탄 왕자님"이 저지른 이 참극도 시작은 가족에서 비롯되었고 이 혈연은 저주받은 피로 씻지 못할 악행을 초래하고 마는데요, 이렇게까지 살인극이 크게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어떤 계기로 광기에 한 번 눈이 멀게 되면 인간은 이성적 해결 대신에 파도에 휩쓸리듯 살인이라는 행위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정당화하고픈 마음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마 탄 왕자님"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억압과 폭력에 시달렸고 그것은 뒤틀린 분노로 이어지면서 살인에 대한 딜레마대신 점차 쾌감마저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스노우맨"과 마찬가지로 증오와 악의는 탐욕과 질투라는 근원적인 원인에서 다시 출발하기에 어쩌면 두 살인마는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여있는지도 도릅니다.

 

그 이유때문이지 병원에 수감 상태인 "스노우맨"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던 것도 단순히 범죄 심리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닮은꼴에 대한 큰 그림을 보기 위한 홀레의 판단이었습니다. 멘토는 해리의 의도를 간파하고 미로를 탈출할 실마리를 제공할 수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렇지만 거래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부탁은 해리가 당사자로부터 거절당하고 이에 상심하는 스노우맨을 보며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가여울 수밖에 없어서 그도 그 순간만은 동정받을 만 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요? “스노우맨”은 경피증 때문에 시한부 삶이라는 것은 전작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테고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간파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암튼 가슴 먹먹합니다.

 

800페이지에 가까운 대장정은 지뢰처럼 복선이 도처에 숨어있고 보물찾기 놀이처럼 찾는 즐거움도 있지만 못 찾아내도 끝까지 달려가다 보면 몇 차례 반전 끝에 포만감 있는 결말로 만날 수가 있는 것이 이번 <레오파드>여서 정말 만족스러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작 <스노우맨>을 뛰어넘는 스케일과 깊이 있는 스타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하반기를 확실히 석권할 대표 스릴러가 아닐까요?

 

그래서 내년 2월경에 해리 홀레 시리즈의 다른 편이 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에 벌써 마음은 그 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시간이동을 해서 미리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몸이 달아올라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10월에나 구입 가능한 <레오파드>를 먼저 읽게 된 것은 행운이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해리 홀레라는 이 남자의 치명적 매력에 즉시 중독되면 해독약은 달리 없습니다. 금단현상이 생겨 숨넘어가기 전에 속히 다음 편을 읽는 것만이 심장박동을 계속 뛰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내년에 신작 출간 전에 이번처럼 독자 모니터를 하실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리 1등으로 사전 예약신청해 봅니다

 

미국에는 마이클 코넬리, 데니스 루헤인, 제프리 디버가 있다면 유럽에는 요 네스뵈가 독보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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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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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이란 책 제목만 들었을 땐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  먼저 연상되고 이것은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으로 다시 회귀하는 듯하다. 기형도 시인은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젊은 시절에 대한 반성과 회한을 남겼다. 자신에 대한 애정보다는 타인이 가진 재능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에 눈이 멀었었다는 그의 고백은 서평 쓰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버거워지기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일이 점차 잦아지는 내게 공감되는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하드보일드 소설들에 대한 이 서평집은 책을 읽고 느낀 바를 글로 옮긴다는 작업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야할 지 좋은 참고가 된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시점이 모여 이 서평집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것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특성보다는 부조리하고 무자비한 세상에선 살아남는 방식에 대한 기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인 특정시점이라는 동일한 흐름으로 반복 재생되는 성향이 없지 않다. 책을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역자후기를 즐겨 읽는 나로서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말이다.

 

다소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을 언급해야겠다그 소설에는 이러한 문구가 나온다. “그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진정한 악은 세상에서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껏해야 양손에 물이 세는 양동이를 하나씩 쥐고 절망의 어두운 시궁창 속을 허우적거리고 다니며 물을 퍼내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문구이면서 이 서평집에서 인용된 많은 문구 중에서도 가장 하드보일드 정신을 함축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이든 가상이든 인간이라는 존재는 악이라는 독에 물들어 비참하고 잔인한 세상으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부당하다고 맞서 봐야 이 단단한 시스템에서는 머리통이 깨져 피만 철철 흘리게 될 뿐, 그 누구도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기에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몸을 낮추든지, 피해 달아나든지 이유를 불문하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그렇게 다른 특별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시종일관 세상을 우울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냉소적 시각만큼은 획일적이긴 해도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만큼은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만큼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용기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내게는 재능이 없다는 가혹하고 무기력한 현실 앞에서 다시 좌절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게도 된다. 그렇지만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고 나 자신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만큼만 짊어지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남들이 먹다남은 고기를 줏어먹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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