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사슬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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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놈이 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난 너보다 더 거친 사람이다. 그리고 너보다 잔인한 사람이다. 넌 지금 내가 아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난 네가 지금까지 꿔왔던 어떤 악몽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다. 내 말을 믿겠나?"

 

한적한 네브래스카의 한 시골마을에 들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방랑자 잭 리처는 술에 취해 환자의 호출을 거절하는 의사를 만나 그를 반강제적으로 차에 태워 환자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의사가 치료한 환자는 남편에게 얻어맞아 코피가 멈추지 않던 던컨 일가의 며느리 일리노어였고 이에 열받은 리처는 남편 세스 던컨을 찾아가 응분의 주먹을 먹입니다. 단순히 가정폭력에 개입했을 뿐인 것 처럼 보였던 이 행동은 던컨 일가의 대장인 세스의 아버지와 삼촌들의 분노를 자아내며 곧 바로 수하들에 의한 보복과 맞닥뜨립니다.

 

하지만 던컨 일가의 보복에 힘으로 제압하는 리처의 무력시위에 위기감을 느낀 던컨 일가는 리처를 제거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리처리처대로 이 마을은 던컨 일가가 농산물 운송사업의 장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을 통제하고 복종을 강요하며 군림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25년전 마을에서 어린 소녀의 실종사건이 있었고 모두 던컨 일가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의심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미제에 빠져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음을 추가로 알게 됩니다. 던컨 일가에서 감지되는 악의 기운과 그들에게 굴종당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소녀의 실종에 얽힌 미스터리가 교차하면서 리처는 정면돌파하여 악을 처단하고자 던컨 일가에 맞서 대적하게 됩니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출간된 잭 리처 시리즈의 신간 <악의 사슬>은 전작 <하드웨이>에서 쓴 맛을 안겼던 표지의 실패의 만회를 염두에 둔 탓인지 시리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이미지(개인적으로)의 표지로 탄생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제목부터가 작가명대신 캐릭터를 내세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왔더군요. 덕분에 구매욕구의 충동이 생기면서 한동안 멀리했던 잭 리처 시리즈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잭 리처는 소속이 없고 독립적이어서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떠돌이지만 찰나의 호기심과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투철하고 확고한 신념때문에 항상 위험한 상황에 빠져듭니다. 옳은 것을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늘에 놓여있는 약자들의 고충을 대변하고 불의를 앞세운 강자에게는 철저히 힘으로 응징하는 인물이죠. 그렇지만 그를 다시 만난 텀이 길었던 탓인지 리처의 대응방식도 많이 냉혹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같으면 이 정도에서 손 봐주고 끝을 냈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기어이 총알을 박아 넣습니다. 인정 사정 봐주지 않고 손속이 잔인해진 면도 있는데 그만큼 통쾌하고 후련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오히려 악의 세력들은 자신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는 내분 덕에 먹이사슬이 꼬이면서 리처의 수고를 덜어주는 어리석음도 보여줍니다. 옳고 그른 일에 관해서는 한 치의 균열도 발생하지 않겠지만 불의에 관해서는 의리나 원칙같은 것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항상 상대방의 뒷통수를 치려고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탓에 사슬은 느슨해지면서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그 빈틈은 확실히 호재였습니다. 그리고 심리 스릴러가 아닌 액션 스릴러 계통이기에 글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인 역동성의 쾌감은 여전합니다. 더불어 25년전 실종된 소녀에 얽힌 미스터리를 해결하면서 전달되는 안타까운 진실에서 비롯되는 아픔 또한 악을 철저히 짓밣고 응징해야할 절대적 명분을 쌓아 올리는데에 성공했다고도 보여집니다. 던컨 일가에 대한 처단은 결말이 예상가능하지만 "그래, 그렇게 끝을 내야하는거라구" 라며 주먹을 불끈 쥐게 하지요.

그런데 <하드웨이>와 함께 지난 달 개봉한 <잭 리처>의 후속영화로 <악의 사슬>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잭 리처>의 원작인 <원 샷>보다 영화화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그가 가는 곳마다 먹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내려쬐는 따뜻한 봄이 있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만인 것 같습니다. 잭 리처는 자주 만나기보다 한번씩 읽어주면 깊이는 없지만 시원시원 맛에 다시 찾게되는 그런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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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ungi2003 2013-02-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차일드의 글은 읽기 편합니다. 악의 사슬은 종전과는 조금 다른듯하여 즐겁게 보았습니다. 여행길에 들고가기를 강추합니다.

유마 2013-04-07 19:26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
 
이지 머니 2 밀리언셀러 클럽 131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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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옌스 라피두스의 범죄소설 <이지 머니>는웨덴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자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칠레 출신의 마약상 "호르헤"는 자신과 거래하던 조직의 수장 "라도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약밀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지만 증오와 분노로 인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나와서는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조직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스웨덴 토박이 대학생인 "JW"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실종된 친누나의 행방을 좇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갱 조직원인 "므라도"는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둔 딸의 양육권 분쟁과 함께 예전에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 "므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범죄자가 스웨덴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눈먼 돈<EASY MONEY>"를 쟁탈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거칠고 잔인하며,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봉된 바 있습니다.

 

바야흐로 범죄도 계급화, 세계화, 기업화되는 경향이 가속화중인 것 같습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극빈층의 신분상승의 꿈은 "JW"를 통해서도 가늠 가능하듯 범죄 조직에 대한 꾸준한 공급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범죄조직의 국적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칠레, 아랍계까지 여러 국적의 범죄조직은 해가 지고 난 어두운 밤 거리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흡사 기업운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히 합법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인 듯 합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하여 다양한 업종방식과 더불어 스웨덴 경찰에서 공세를 진행 중인 대 범죄조직 소탕작전 "노바 프로젝트"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조직간의 합종연횡 전략같은, 범죄의 끊임없는 자생력에 혀를 내두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아요.

 

저자 옌스 라피두스는 기존의 범죄소설들이 경찰 또는 탐정 위주의 캐릭터였다면 범죄자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으며. 범죄에 대한 해결보다는 플롯을 통해 범죄의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로 활동 중인 옌스 라피두스는 과거에 참여했던 아파트 무장강도 사건 재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 길 밖에 없었다."는 해답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화 대신 범죄의 길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종착역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그들과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대중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어떠한 감정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하류인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지요. 그런 세상은 또 없으니까요. 그것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혐오든 상관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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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머니 1 밀리언셀러 클럽 130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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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옌스 라피두스의 범죄소설 <이지 머니>는웨덴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자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칠레 출신의 마약상 "호르헤"는 자신과 거래하던 조직의 수장 "라도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약밀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지만 증오와 분노로 인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나와서는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조직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스웨덴 토박이 대학생인 "JW"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실종된 친누나의 행방을 좇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갱 조직원인 "므라도"는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둔 딸의 양육권 분쟁과 함께 예전에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 "므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범죄자가 스웨덴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눈먼 돈<EASY MONEY>"를 쟁탈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거칠고 잔인하며,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봉된 바 있습니다.

 

바야흐로 범죄도 계급화, 세계화, 기업화되는 경향이 가속화중인 것 같습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극빈층의 신분상승의 꿈은 "JW"를 통해서도 가늠 가능하듯 범죄 조직에 대한 꾸준한 공급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범죄조직의 국적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칠레, 아랍계까지 여러 국적의 범죄조직은 해가 지고 난 어두운 밤 거리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흡사 기업운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히 합법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인 듯 합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하여 다양한 업종방식과 더불어 스웨덴 경찰에서 공세를 진행 중인 대 범죄조직 소탕작전 "노바 프로젝트"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조직간의 합종연횡 전략같은, 범죄의 끊임없는 자생력에 혀를 내두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아요.

 

저자 옌스 라피두스는 기존의 범죄소설들이 경찰 또는 탐정 위주의 캐릭터였다면 범죄자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으며. 범죄에 대한 해결보다는 플롯을 통해 범죄의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로 활동 중인 옌스 라피두스는 과거에 참여했던 아파트 무장강도 사건 재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 길 밖에 없었다."는 해답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화 대신 범죄의 길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종착역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그들과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대중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어떠한 감정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하류인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지요. 그런 세상은 또 없으니까요. 그것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혐오든 상관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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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미싱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2
체비 스티븐스 지음, 노지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유괴와 감금, 사이코패스와의 1년.

 차라리 그 곳에서...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스릴러 소설이라는 틀에서도 소재의 참신성을 기대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정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공식의 복습에서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관점을 달리한 변용을 선택하는 것만이 작가들의  고육지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납치된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심리스릴러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패턴 중 하나인데 체비 스티븐스의 <스틸 미싱>은 그 패턴에서 일반적으로 놓치기 쉬운 실밥들을 다시 꼼꼼히 꿰매어 물 샐틈없는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여타 동류의 경쟁작들과의 비교우위에서 살아남아 신성으로 각광받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소설은 한 여인이 정신과상담의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제목은 상담1회차로 되어있고  이윽고 그녀의 이야기는 과거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과거와 현재, 1인칭과 3인칭으로 교차되는 점이 독특한 느낌이네요. 어느 일요일 아침 강변콘도 분양 건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부동산중개업자 애니는 오픈 하우스에서 퇴근하다 손님으로 가장한 낯선 남자에게 납치당해 산 속 오두막에 감금당하죠. 그리고 이 남자, 즉 사이코패스와의 끔찍한 동거가 1년동안 이루어집니다. 세상 밖으로 탈출에 성공하기 전까지요.  

 

사이코는 애니의 화장실가는 시간, 식사, 외출 등 모든 일상과 자유를 통제하고 지시와 명령을 통한 복종만을 강요합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그 곳에서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애니의 참담한 심경고백이 가학과 피학의 관계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됩니다.  흔히 인질과 인질범의 관계를 설명하는 심리학적 용어로 "스톡홀름 증후군""리마 증후군" 이 있는데 애니는 적대감과 공포 때문에 정신적 억압에 의하여 심리적 도피를 시도하다가 인질범이 자신의 정당성을 호소하자 이를 받아들이는 자기세뇌현상을 잠시나마 갖게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단계를 거칩니다. 극한 상황에 부딪치면 적응기재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인질범은 강자의 입장에서 애니에게 자신의 어릴 적 신상을 털어놓으면서 애니의 개인사에게 동정을 표하기도 합니다. 바로 "리마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일시적인 상호 간의 동화는 성폭행당한 애니가 출산한 아이의 죽음에서 파장을 맞이한 채 현실로 되돌아오는 과정들에서 여성으로서 자존감과 모성애의 절망이라는 눈물만 쏟아내기에 안타까움이 절로 들었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사이코를 죽이고 탈출한 성공한 애니에게는 세상의 무지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2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애니의 사연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대중매체, 그것을 부추기는 가족들과 주위사람들, 아이를 잃은 엄마로서의 절절한 아픔에 대인기피증까지 겪으면서 세상과 교류하지 못해 어둠속에서 자학합니다. 때마침 알게된 정신상담의와의 만남에서 조금씩 심리회복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어 탈출 이후 제2의 인생이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게 되는군요.

 

그런데 왜 내가 하필이면 그 놈에게 납치된 것일까? 단지 재수없이 걸려던 것일까? 애니의 의문은 "아직도 실중 중(STILL MISSING)"이라는 제목대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의 전모를 파고 들어갑니다. 진실의 배후에는 예상했던 인물대신 진짜 진짜 아니었어야할 인물과 동기가 충격을 몰고와서 처음에는 이건 막장이다 싶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데 그 진실이란 놈이 냉정하게도 언론보도를 통해 심심찮게 단골기사처럼 도배되어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이란 걸 깨닫도록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열등감에서 기인한 몰상식한 판단과 상처입게 될 소중한 영혼을 감안못한 극단적 이기주의가 맞물려 발생한 비극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호불호를 구분짓게 할 논란의 종점입니다. 차라리 탈출과정을 더 드라마틱하고 박진감있게 설명하고 이후 치유과정을 좀 더 설득렸있게 그려내었다면 오히려 전형적인 심리 스릴러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충격효과를 노린 반전이었다면 성공했다고도 보여지지만 그러기에 애니가 치러야했던 댓가가 너무 잔인해서 기분이 찝찝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감동적인 이유는 결말에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작가는 그 이후에 주목하면서 어둠의 동굴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려는 회복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는데 그것에서 뭉클해집니다. 상처는 골이 깊어 치유하는데 평생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상처는 빠르게 치유되기도 합니다. 용서와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의 치유는 받은 사람의 몫입니다. 상처가 삶의 과정이며 성장의 필수요소가 맞다면 애니의 여생은 쉽지않겠지만 아물고 있다는 긍정의 의미로 해석해도 될 것 같네요.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보상받는 것외에는 뽀족한 수가 없다면서 그녀가 마지막에 한 말은 희망(HOPE)였으니까요. 아련한 그 이름, 그 느낌.... 특히 세상의 엄마들은 절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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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 / 검은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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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는 무슨 일에 손을 댔던 거죠?"

  카렐라가 물었다.

 "아이스입니다."

 

범죄소설 역사상 최고의 경찰소설로 꼽히는 '87분서 시리즈' 중기걸작으로 불리는 <아이스>를 방금 읽었습니다. 먼저 출간된 <살의의 쐐기>를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던지라 동 시리즈의 또다른 작품을 선택하는데에 있어서 일말의 주저함없이 정말 단숨에 빠져들었는데 역시나 훌륭합니다. 경찰로 재직했던 경험도 없고 경찰이 되고 싶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이 조사원의 도움을 받아 수사업무나 현장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현실성있게 소설 속 배경으로 작품을 발표해온 그였기에 경찰소설의 재미를 한 차원 끌어올린 이번 작품도 범죄를 조사하는 형사들의 애환과 활약상이 경쾌하고 날렵하게 녹아있습니다.

 

인기뮤지컬 "팻백"에 출연 중인 여자 무용수 샐리 앤더슨 극장을 나와 자신의 아파트로 귀가하다 낯선 남자로부터 얼굴에 두 방,  가슴에 한 방씩 총을 맞고 죽습니다. 그녀를 죽인 38구경의 총이 3류 마약상과 보석상의 사체에서 감식된 총기와 동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수사권은 '87분서' 맡게됩니다. 3건의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38구경은 단순히 미치광이의 소행인지 면식범의 소행인지.... 사건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스티브 카렐라 마이어 마이어 형사가 한 조를, 버트 클링 아서 브라운 형사가 한 조를 이루어 각자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살의의 쐐기>에서처럼 이 작품도 한 가지 사건만을 전담하지 않고 중간중간 다른 미제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들을 보여줌으로서 자칫 올인에 의한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이야기의 분산을 통해 도시의 범죄를 해결하는 형사들의 팀워크가 1인 시점의 단독수사와 차별화될만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검은 숯 블로그의 성분표에서도 확인 가능하듯 독자를 기만하는 대반전이나 논리정연한 해결에는 높은 점수를 매기긴 힘들 것 같네요. 범인의 정체나 범행동기에서 있어서도 의외성 대신 흔히 용의선상에 오르는 인물들 중 가장 그럴싸한 관계에 있는 자에서 출발해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어 의심은 멀리하지 말고 가까이에 두라는 공식을 모범적으로 전개했습니다. 대신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살의의 쐐기>에서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스티브 카렐라 형사였다면 <아이스>에서는 버트 클링 형사가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큰 키에 핸섬한 금발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여자문제로 골머릴 썩히는 캐릭터로 설명되는 버트 클링 형사는 역시나 이번에도 여자와의 관계에서 불거진 아픔에서 상처입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장애인 아내 테디와 닭살돋는 애정행각으로 훈훈한 감동을 주는 카렐라와는 달리 클링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혼한 상태입니다.

 

상심이 컸던 탓인지 동료들로부터 그가 혹시 목구멍에 총구를 박아 자살하지 않을까 염려와 배려를 받을 정도로 정신줄을 좀 놓은 지경이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게 하구요. 그런 클링에게도 여형사 아일린과 새로운 로맨스가 싹 트려고 합니다. 아일린클링에게 호감이 있어 가까이하려고 하지만 아내의 배신에 충격먹은 클링은 마음의 빗장을 걸고 문을 좀처럼 열지 않는 밀당관계가 이번 작품의 주 내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클링이 안쓰럽지요. 둘 사이가 핑크빛 무드로 본격적인 진도가 차차 진행될 조짐도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인 <아이스><살의의 쐐기>처럼 그 의미가 중의적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는 점도 여전히 이채롭습니다. 샐리의 주변사람들과 그녀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중 흔히 공연문화에서 하나의 전통이자 관행처럼 변질되고 악용되는 어떤 거래를 은어로 "아이스"라고 한답니다. 피해자가 없는 범죄지만 엄연한 불법에 해당되기에 실제로 이 같은 일이 얼마나 자행되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암암리에 뒷거래로 검은 차익을 챙기는 세력들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그것이 전통이라니요? 관행이라니요?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서 사용된 은어인 "아이스"는 맥거핀에 불과하단 점이고 자칫 속아넘어 갈 뻔했던 아이디어였습니다.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죠. 또한 "아이스"는 다른 의미에서는 범죄자와 맞닥뜨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 느끼게되는 공포의 순수결정체를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극한의 위기상황을 맞은 아일린의 마음은 얼음입니다.

 

이렇게 캐릭터와 특정단어가 주는 즐거움외에도 진짜 마약같은 대사와 상황설정에서 비롯되는 경찰서 내 형사들과 잡범들의 우스꽝스러운 대목들도 배꼽잡게 할만큼의 유머가 있어 좋습니다. 술주정뱅이와 임신한 매춘부의 활약(?)은 중반 이후 진중한 전개로 나아가기 전 워밍업 효과를 느끼게 할만큼 초반부의 일등공신들입니다. 시리즈로서 유머감각은 켄지&제나로 시리즈 이후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특출난 강점보다는 전주비빔밥처럼 전반적인 성분들이 골고루 양념에 배어있어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87분서' 형사들의 외모, 출신, 성명, 인종 등 각자의 프로필을 이번에도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어 작가의 배려이자 패턴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다시 설명들어도 여전히 그들에 얽힌 일화들은 쏠쏠하게 재밌습니다. <살의의 쐐기>가 맘에 들었지만 단지 적은 분량에 아쉬웠던 분들에게 불어난 두께만큼 경찰소설로서 읽는 재미도 더 만끽하게 되리라 장담하면서 작년에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발견의 기쁨이었다면 올해는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가 저에게 수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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