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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이제 북유럽스릴러를 대표하는, 아니 전 유럽스릴러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해리 홀레를 가장 먼저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설령 영미권 스릴러를 선호하지 않는 일미 팬들이라도 최소한의 호기심이랄까, 아니면 시류에 편승한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한번쯤 읽어보겠노라고 다짐하는 반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국가 선호도와 관계없이 이 시리즈는 핫한 트렌드로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정말 해리 홀레가 보여주는 지독히 어둡고 자기파괴적인 음울한 감성들은 대중들을 열광시키고 그가 망가질수록 더욱 깊은 연민에 빠져들게 한다. 단순히 살인범을 쫓는 형사물로서의 추리적 쾌감이 아니라 영화 "트루먼 쇼"처럼 당사자만 모를 뿐이지만 우리 모두는 관객이 되어 해리의 일상 속의 개인사를 훔쳐보며 무한대의 즐거움을 얻고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작년 두 작품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의 정점을 처음 접했으니 이번에는 해리의 본격적인 영욕이 교차하는 창세기적인 출발을 만나게 된다. 1편과 2편은 호주와 태국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스탠드얼론이라고 한다면 모국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본류시리즈로도 해석이 가능할 듯 싶은데 노르웨이라는 국가적 특성을 감안하여 그들의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것이 "레드브레스트"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중요한 소재가 되고있는 건 2차 대전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해버렸다. 당시 인접국인 스웨덴은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독일군의 자국영토 통과를 묵인하여 침략을 면하였고 형제국인 노르웨이를 지원하지 않아서 독일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한 셈이 되었다. 그때문에 노르웨인인들은 스웨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독일의 점령기중에 노르웨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언제나 그렇듯 순응과 저항으로 나뉜다. 노르웨이의 파시스트 비드쿤 크비슬링의 괴뢰정부를 승인한 독일은 노르웨이에 대한 억압적 통치를 실시하여 많은 노르웨이인들을 군에 징집하거나 징용으로 끌고 갔으며 노르웨이 전역을 요새화하였다.
비드쿤 크비슬링과 요셉 테보르펜같은 매국노도 있었지만 또 다른 노르웨이인들은 산악지형을 이용한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독일에 저항하는가 하면 국왕은 영국으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세우고 해군과 공군을 만들고 선박으로 석유수송을 돕는 등 맹렬한 반 나치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독일의 패망으로 전쟁이 끝나자 노르웨이는 본격적으로 나치 협력자들을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하였는데 부역행위로 구속된 사람은 인구 10만명당 633명 정도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르웨이는 사형제도가 없지만 소급입법까지 만들어 기소를 하고 보복처형을 계속했다고 하니 반민족 행위에 대한 그들의 단호한 처벌방식은 역사는 승자가 정의이자 진리임을 입증한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우토야섬에서의 무차별 테러를 저지른 범인처럼 인종적 차별과 파시즘의 망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2차대전 중 깊숙이 뿌리내렸던 나치의 잔재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한 갈등과 불편함을 시대적 아픔과 고민으로 되새겨보고자 한 스릴러적 시도가 진중한 사색을 남기고 있어 적절한 울림을 주기는 하지만 그 파장이 크지 않다는 분명 아쉬운 점이다. 오히려 또 다른 살인사건에 관심과 시선은 몽땅 그곳으로 쏠려버린다. 하나의 작품 속에 두개의 사건은 어디에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느냐는 관점의 차이로 갈리는데 확실히 엘렌 살인사건에 더 집중된다.
이전 출간작인 "레오파드"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지만 모두로 부터 존경과 신망을 얻던 누군가를 해리가 처단해야만했던 사건은 분명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프린스"를 두고하는 이야기 같은데 흔히 경찰들은 동료가 살해된 사건에는 시효도 정하지 않고 범인을 검거할 때까지 끈질기게 수사를 한다고 하니 해리가 엘렌의 죽음에 얽힌 배후를 나중에 알게되었때 그가 보였을 반응은 어떠할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내부의 적이라면 말이다.
그러고보니 "레오파드"에서는 살인범이 "백마 탄 왕자님"이었고 여기서는 살인범이 "프린스"로 불리고 있으니 우연의 일치치고는 절묘하다 못해 센스만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마디로 왕자와 거지 간의 계속되는 대결이 되는 걸까? "네메시스"의 우리 제목이 "천벌"이니 이번에 해결못한 미제사건에 대한 단죄를 그 작품에서 다루고 있을 것 같은데 맞는지...
그리고 엘렌에 대한 기억의 편린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데 해리가 그녀의 집 자동응답 전화기에 남겨놓은 메시지들에는 빈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남자의 비애와 고통이 눈물없이도 절절함이 담겨져있어 깨달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란 말이 와닿는다. 어차피 이러한 일도 앞으로 해리가 겪어야 할 가시밭길의 시초일뿐이겠지만.. 또한 라켈과의 사랑의 시작도 차후에 어찌 정리되는지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에 다가올 미래도 모른 채 지금 해맑은 해리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다. 흡사 동굴속의 어둠에 웅크리고 있다가 밝은 세상으로 나왔을 때 눈부심에 적응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이 인생의 목표라고 요 네스뵈는 말했던가? 그렇다면 선과 악이라는 이중가면을 쓴 진짜 악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과 리켈과의 로맨스의 시작과 갈등, 파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해리 홀레라는 이 남자의 인생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알고싶어 그 여정을 따라가는 일도 독자들의 사명이자 의무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짐 빔에 중독되어있는 이 남자에게 중독되어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나보다.
해리 홀레 홀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