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
매튜 퀵 지음, 정윤희.유향란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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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 인생 자체가 앞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게다가 니키만 돌아오기만 하면, 곧바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될테고요. 이렇게 상담치료도 받고 명상도 하고. 매일 운동도 하면서 스스로 나아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거든 요."

 

사랑으로 다친 마음은 사랑으로 치유하라!

 

말은 참 쉽죠. 여기 사랑에 서투른 두 남녀에게는 그리 만만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은 그 벽을 단단히 더 단단히 넘보지 못할 지경에까지 높이 쌓아 올려놓았지요. 팻과 티파니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이 남자. 팻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꼭지가 돌아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순간의 분노로 감정을 폭발시켰더니 기억상실에 빠졌습니다. 정신병원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바깥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도 잃고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은 상태에서 감정조절을 위한 심리치료를 계속 받아야할 지경입니다. 여전히 4년전에 대한 기억은 못하면서도 전처인 니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 매일을 운동으로 단련하며 사회 부적응과 우울증 같은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요.

 

그런데 같은 동네에 사는 절친의 와이프 언니인 티파니가 아무 말도 없이 팻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닙니다. 팻의 조깅시간을 어찌 알았는지 불쑥 나타나 같이 동네 한 바퀴 도는가 하면 자기랑 섹스하고 싶냐는 말도 뜬금없이 내뱉을 정도로 이상한 여자랍니다. 팻은 티파니가 이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이미지 때문에 달가워 하지 않는데다 티파니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섹스 중독자가 되었다는 괴상한 소문마저 듣게되니 더욱 께름칙하죠. 그래도 상처받은 사람은 동족을 알아본다고 했던지 차츰 그녀의 괴팍한 성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날 엽기녀 티파니는 팻에게 묘한 제안을 내놓습니다. 사실 팻의 마음 속에는 티파니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지만 아내인 니키와의 재회는 꿈에도 그리는 절대소원으로 가득차 있고 이것을 잘 알고 있는 티파니는 아내와의 재회를 도와주는 메신저 역할을 자임하는 대신 우울증 탈출 댄스 대회에 함께 출전해서 우승을 하자고 요구합니다. 티파니의 꿍꿍이을 알 수없어 미심쩍어 하면서도 팻은 오로지 니키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댄스 대회 참가준비에 올인하구요.

 

제목인 '실버라이닝'은 속뜻을 모르고 대충 넘겨짚으면 단순 연애지침서 같은 의미가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실버라이닝'만 따로 해석하자면 구름의 흰 가장자리, 밝은 희망이라는 뜻이랍니다. 넓게보면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한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라는 뜻으로 희망을 주는 말로 주로 쓰인다고 하네요. ‘플레이북을 사전적 의미대신 이 책에서 중요한 에피소드거리가 되는 미식축구로 풀어본다면 '팀의 공격과 수비에 대한 작전을 기록한 책이나 플랜'같은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밝은 희망을 위해 펼치는 전격 작전으로 나름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팻과 티파니가 만났으니 당근 달달한 로맨스를 구경할지도 라는 마음을 외면이나 하 듯, 둘 사이는 내내 별다른 진전이 없기 때문에 이거 로코를 선택한 것은 맞는지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냉랭한 분위기만 감지될 뿐입니다. 서로 말 없이 조깅하고, 말 없이 시리얼이나 한 그릇 때리고 작별인사도 없이 돌아서는 두 사람의 반복적인 만남보다는 미국 아니랄까봐 미식축구팀인 이글스 경기관람과 응원에 관한 에피소드가 비중도 높고 색다른 재미를 줄 정도니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지요.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은 팻과 티파니는 각자의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온전한 남녀사이로 관계가 진전되긴 어렵다는 겁니다. 더구나 팻이 전처 니키에 대한 집착을 놓기 전까지는요.

 

결국 돌고 돌아 길이 멀었지만 '실버라이닝'을 꿈꾸는 것은 팻이나 티파니나 다를 바 없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긍정의 마인드 속에서 한줄기 햇살 같은 희망의 실오라기를 쥐고 놓지 않겠다는 팻과 그를 통해 역시 상처 많은 티파니도 진실된 사랑을 찾음으로서 밝은 희망을 꿈꾸기에 사랑으로 다친 마음은 사랑으로 치유하게 될 것은 순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인상적으로 암시하는 수단들은 문학작품의 인용에 있다 하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도입부를 맘에 들어하던 팻은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랑을 얻을 수 없게되는 대목에서 좌절한 나머지 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 하는데, 특히 개츠비가 총에 맞아죽고 인간말종인 톰과 함께 하기로 한 데이지의 결정에서 이 소설을 행복한 결말에 대한 믿음의 상실 정도로 간주해버립니다. 어둠 끝에 빛이 있다고 믿지만 아직 그 빛을 찾아내지 못해서 울음을 참지 못하니 상처에 생채기만 덧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팻과 티파니의 관계변화와 정신적 성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그 소설의 결말부분에서 홀든이 동생을 놀이공원으로 데려가 회전목마를 태워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생이 목마에서 황금고리를 잡으려 애쓰는 그 장면은 과거의 아픔을 놓아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부여잡겠다는 두 사람의 결연한 각오를 나타내는 멋진 비유여서 순간 울컥했지요. 우리가 두 번째 유년기를 살고 있다는 것은 목마에서 떨어져도 간섭만 있던 첫번째 유년기를 거쳐 현재는 거짓희망을 포기한 채 기억의 진흙 속을 빠져나와 서로가 필요하다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용기를 얻었다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을 테지요.

 

누구나 살면서 고개를 넘는 일이 힘들어 숨을 깔딱이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겝니다. 삶이라는 고개의 고비 고비를 희망으로 극복해낸 팻과 티파니를 보면서 대단하진 않지만 단단한 의욕이 구름 속을 뚫고 한줄기 서광을 비추는 걸 느끼는 순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진정한 힐링이 됩니다. 진정 삶이 힘들고 지친 분들에게 꼬옥 권해드리고 싶은 참말로 훈훈한 소설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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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림스톤 펜더개스트 시리즈 3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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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동안 이 신작의 국내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작년 3월 출간예정에서 6월로, 다시 12월로 딜레이되더니 마침내 해가 바뀌어 이렇게 공개되니 감개무량할 지경입니다.  이쪽 세계에서 공저로서는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자랑하는 이 시리즈는 한 번 재미를 들이면 발을 끊기 힘든 이색적인 개성이 가득한 액션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2년만에 만나는 우리의 괴짜남 펜더개스트는 여전히 엉뚱발랄한 행보로 밀실살인에 얽힌 미스터리를 쉼 없는 팀플레이로 해결하고 있어 엔터테인먼트적 스릴러에 더없이 충실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롱아일랜드 주 사우스샘프턴의 한 저택에서 유명한 미술평론가인 제레미 그로브가 기이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외부로부터 침입흔적은 없고 밀폐된 실내는 유황(제목인 브림스톤의 의미) 냄새에 말발굽 모양의 그을음과 인체 내부로부터 자연발화가 발생되어 사망한 것입니다. 그밖의 어떤 곳에서도 일체의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은 이 사건을 두고 대중들 사이에서 악마와 계약하고 영혼까지 판 흑마술의 저주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확산됩니다. 사건현장에 투입된 다고스타 경사는 과거 뉴욕 경찰서 강력부 부서장 출신으로 지금은 지역 경찰서의 경사라는 한직으로 복귀한 참인데 때마침 현장을 수상쩍게 어슬렁거리는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내쫗으려 하지만 그 남자는 FBI 특별수사관 펜더개스트였습니다. 

 

그들은 구면으로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데 우연을 가장하고 사건을 수사하러온 온 펜더와 다고스타는 다시 한 팀이 되어 이 괴이한 사건을 맡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방식의 밀실살인이 2건이 추가로 발생되고 점차 세상은 종말론으로 흉흉해지면서 무지몽매한 선민들을 군중심리로 선동시켜 메시아가 되겠다는 얼빠진 목사까지 가세해 치안질서의 위협마저 받게 됩니다. 혼란의 와중에서도 연쇄 밀실살인의 단서를 추적하던 팬더개스트 일행은 수사항뱡을 이탈리아로 확대해 살인피해자들 사이에 모종의 연계와 흑막이 있음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자연발화 현상에 숨겨진 트릭과 연쇄살인의 동기, 결정적으로 범인의 실체까지, 이 모두는 이들을 죽음의 수렁으로 내몰면서 정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네요. 

 

FBI 수사관 펜더개스트는 알다시피한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이라고 할 만큼 역사, 대중예술을 비롯한 인류문화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다양한 지식들을 꿰고 있는 또다른 의미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지식을 활용한 수사는 불필요한 지식의 나열이거나 잘난 척, 똑똑한 척이 아니라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괴이에 대한 단서와 사건해결에 중요한 무기가 되죠.

 

외부적 원인없이 인체 내부에서의 자연발화 현상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싶어하는 맹점을 이용한 범인이 있는데요. 과학적 해석이 가능한 트릭을 악마의 저주로 둔갑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다른 펜더개스트는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실로 단정짓지 않는 열린 발상을 가지고 진실을 밝혀냈으니 완전범죄는 그의 끈기 앞에 무릎꿇었다고 봐야겠죠.

 

'그대는 절망의 도시에 살고 있다.

 내 눈에는 죽어 가는 그대의 모습이 보인다.

 그대는 곧 무덤보다 낮은 곳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그곳에 파묻힐 것이다.

 그러니 선한 이웃이여!

 이제 그만 만족하고 나와 함께 가자.'

 

또한,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여 혹세무민하는 벅 목사를 보면서 항상 난세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악용하거나 자신이 세상을 구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식의 망상에 빠진 혹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사는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형태면서 "너 자신을 알라."는 식의 교훈이 담겨있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중심부의 이야기와는 별개의 소소한 읽을거리입니다. 그리고 시리즈 속의 시리즈 "디오게네스 3부작"의 출발점답게 도전장을 보내서 친형인 펜더개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동생 디오게네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를 것을 예감한 펜더는 상대가 가족이라는 사실이 무거운 중압감이 되어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도 디오게네스와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드러나 그가 등장하는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상승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전쟁은 이제 서막을 열었을지도 모를... 거대한 광기의 폭풍전야에 긴장감은 미리 고조되는 듯 합니다. 속칭 "형제의 난"이 어떠한 혈겁을 불러일으킬지 단기간내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막을 연 이번 작품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군요.

 

솔직히 펜더개스트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중에서는 <브림스톤>을 보시고 두께의 위엄에 감탄 내지 미리 겁을 내시는 분들도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레오파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슬림한 편입니다. <레오파드>를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엄청난 두께의 압박에도 쿨하게 흥미를 끌었던 해리 홀레 형사의 활약에 지루할 틈을 최소화한 채 재미 만점이셨을줄 압니다. <브림 스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면 그건 거짓말일테고요. 중반까지는 몰입하면 읽었지만 이후는 가끔씩 놓치는 부분들도 있었던 건 사실인데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정말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의 힘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펜더개스트야 말할 것도 없고 다고스타 경사와 악당들 모두 섬세한 감성으로 익살과 함께 공간을 초월한 스피디한 전개, 중세 비밀결사조직 같은 댄 브라운 식 스릴(이건 진짜임)로 이끌나가는 이야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를 선사합니다. 감히 올해 읽은 스릴러 중 대중적 즐거움은 절대적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와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는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펜더개스트!!!

 

"어머 이건 사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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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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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속신앙에 있어 지장은 수행승의 모습을 하고 여행객이나 어린아이를 지킨다고 하며 육아지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마을 어귀의 지장보살님은 언제나 방글방글 웃고 계시네." 라는 동요가 있을 정도로 지장은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누구라도 거리낌없이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속화된 이미지라고 합니다. 그렇게 지장은 아이들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여  일본 곳곳에 많이 세워져 있는데 지장 동요의 노랫말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은 일본적이면서도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하는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미스터리와 민속학적 호러의 결합은 미쓰다 신조의 장기이자 단순히 괴이현상을 보여주어 공포의 극대화를 강조하는 밑그림의 역할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즐기고, 진짜 의미와 감춰진 진실을 들추어 합리적인 해석을 가능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철저한 자료수집과 추리적 검증을 통해 괴이현상을 저주가 아닌 자연적 현상과 인위적인 개입이 원인인 것으로 설득하지만 끝내 논리적 도출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그것은 사건의 핵심을 비껴간 괴이, 그 자체로 인정하고 만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불가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인간내면의 부조리한 의식구조가 끼어들면 추론의 한계가 확장되면서 '뜻밖'이라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도조 겐야는 단번에 이 사람이 범인이다고 지목하는 대신 의심스러운 인물이든, 그 범주에 벗어난 인물이든 상관없이 모두 용의 선상에 일단 올려놓고 최소한의 의심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다시 반론을 펼쳐 한 명씩 용의 선상에서 차례차례 지워나가고 남는 최후의 1인이 결국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래서 범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이 처음 나올 경우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되리라는 필연이 예상되기에 마지막 페이지에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상당했던 것 같네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이지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렇다고 안이하게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한심하다." 

 

부름산에서 일어난 괴이. 즉, 이리저리 날아드는 도깨비불, 갓난아기의 섬찟한 울음소리, 자신을 부르는 산마의 소리, 여섯 개의 무덤굴, 그 무덤 중에서 나온 손과 기분나쁜 웃음소리까지...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한 겐야의 조사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결말로 각각 정리되면서 안도의 한숨이 소름끼치는 여운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왜 호러가 이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여섯지장의 동요대로 차례차례 전개되는 연쇄살인의 배경이나 동기는 일반적으로 예상하게 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원한이 아니라 사소한 발단으로도 이 같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을 불길한 존재로 경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최후의 웃음소리는 실제로 귓가에 쟁쟁 울리는 착각이 들만큼 모골이 송연하고 가슴 한 켠에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두려움의 결정체입니다. 새삼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가끔씩 추리소설은 이제 한계라는 정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는데요. 이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러의 무대가 순간순간 펼쳐지는 와중에 틈틈히 선보이는 본격미스터리의 진수가 트릭과 반전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면 세상에는 아직도 참으로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라는 게 있다는 걸 다시 믿게합니다. 산마가 나타나듯 툭툭 튀어나오는 기괴함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도조 겐야식 특제소스라 그 맛은 얼얼하면서 외면하지는 못 할것 같아서요. 그래, 호평받아 마땅한 추리소설이란 이런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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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2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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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에 담긴 의미는 가장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원한의 대상을 살해하고는 목을 쳐 몸과 머리를 분리해 혼과 몸이 같이 있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영원히 준다는 상징적인 형벌로 기억됩니다. 그렇지만 참수를 한 후 효시를 한다는 것은 일벌백계의 교훈을 한다는 의미외에도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별도의 해석이 가능한 행위가 있을 겁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최후의 사건인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도 일반적인 관점을 벗어나서 개인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술적인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 이 소설은 먼저 호겐 가문과 이가라시 가문의 복잡 미묘한 가계도를 파악해야만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보는데요, 몇번씩 봐도 헷갈리는데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이탈한 기이한 혈연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 듣다보면 분명 홀대받은 가족구성원의 원한 사무친 절규와 한탄을 뒤끝처럼 만나게 되리란 예상을 하게 됩니다. 병원 고개의 집에서 목 매달아 죽은 이는 그래서 더욱 가여웠을 겁니다. 인간도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이란 유전자가 있을 터이고 그것은 가족이라는 공식적인 경로로 탄생되지만 배덕이라는 의외성에 순간 혹하다보면 계획에도 없는 숨겨진 관계를 만들고야 맙니다. 

 

지금은 여권신장이 눈부신 시대니까 공공연하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던 때에는 남자들의 축첩은 어쩌면 당연시되던 세상이니 정부인과 후처, 적자와 서자 간의 갈등, 불화에 얽인 사건들은 일본추리소설에서는 단골로 사용되는 소재일겁니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본다면 이 소설에서의 살인사건의 범인내지 동기 등은 그리 크게 어려운 숙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목 매달아 죽은 이도 목이 잘린 이도 모두 기구한 운명이고 연쇄살인의 희생양들도 알고보면 혈겁을 피해갈 수도 있었던 운명들입니다. 트릭이라고 할만한 것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관에서 추락해 죽은 사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점이며 완벽한 알리바이로 교묘히 위장된 살해방법, 딱 한가지가 있겠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트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단순하면서도 참신성이 돋보이는 시도였습니다. 

 

범인이란 것도 범행동기라는 것도 결국 마지막에 상세히 설명되기에 굳이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원통하고 분하다는 탄식이 생기지 않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랑 크게 차이없다고 착각될 정도로 이해타당한 대목들입니다. 그렇다면 한  권 정도의 분량으로도 끝낼 수 있었던 사건을 20년후에야 해결하게 된 데에는 어떠한 의도가 있을까요? 우선은 낡은 인습의 횡행이 현대에 이르러서 시대의 단절을 맞이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적 소요와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명탐정의 은퇴식을 준비하기 위한 노림수에 있다고 저만의 판단을 내려보았습니다. 그

 

것은 어차피 중요한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말년에는 쓸쓸한 회한이 남으면서 예전같지 않은 이야기의 한계와 노화도 대면하게 되기에 계속 추리소설을 이대로 읽어나갈수나 있을까라는 염려가 읽는 이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니깐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마지막은 그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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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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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 오늘 밤 이 시각에

  너희는 이 잘린 머리와 재회했다.

  앞으로 너희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으리라.

  너희는 저주받고 있다.

  너희는 저주받고 있다."

 

참수에 담긴 의미는 가장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원한의 대상을 살해하고는 목을 쳐 몸과 머리를 분리해 혼과 몸이 같이 있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영원히 준다는 상징적인 형벌로 기억됩니다. 그렇지만 참수를 한 후 효시를 한다는 것은 일벌백계의 교훈을 한다는 의미외에도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별도의 해석이 가능한 행위가 있을 겁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최후의 사건인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도 일반적인 관점을 벗어나서 개인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술적인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 이 소설은 먼저 호겐 가문과 이가라시 가문의 복잡 미묘한 가계도를 파악해야만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보는데요, 몇번씩 봐도 헷갈리는데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이탈한 기이한 혈연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 듣다보면 분명 홀대받은 가족구성원의 원한 사무친 절규와 한탄을 뒤끝처럼 만나게 되리란 예상을 하게 됩니다. 병원 고개의 집에서 목 매달아 죽은 이는 그래서 더욱 가여웠을 겁니다. 인간도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이란 유전자가 있을 터이고 그것은 가족이라는 공식적인 경로로 탄생되지만 배덕이라는 의외성에 순간 혹하다보면 계획에도 없는 숨겨진 관계를 만들고야 맙니다. 

 

지금은 여권신장이 눈부신 시대니까 공공연하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던 때에는 남자들의 축첩은 어쩌면 당연시되던 세상이니 정부인과 후처, 적자와 서자 간의 갈등, 불화에 얽인 사건들은 일본추리소설에서는 단골로 사용되는 소재일겁니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본다면 이 소설에서의 살인사건의 범인내지 동기 등은 그리 크게 어려운 숙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목 매달아 죽은 이도 목이 잘린 이도 모두 기구한 운명이고 연쇄살인의 희생양들도 알고보면 혈겁을 피해갈 수도 있었던 운명들입니다. 트릭이라고 할만한 것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관에서 추락해 죽은 사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점이며 완벽한 알리바이로 교묘히 위장된 살해방법, 딱 한가지가 있겠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트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단순하면서도 참신성이 돋보이는 시도였습니다. 

 

범인이란 것도 범행동기라는 것도 결국 마지막에 상세히 설명되기에 굳이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원통하고 분하다는 탄식이 생기지 않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랑 크게 차이없다고 착각될 정도로 이해타당한 대목들입니다. 그렇다면 한  권 정도의 분량으로도 끝낼 수 있었던 사건을 20년후에야 해결하게 된 데에는 어떠한 의도가 있을까요? 우선은 낡은 인습의 횡행이 현대에 이르러서 시대의 단절을 맞이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적 소요와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명탐정의 은퇴식을 준비하기 위한 노림수에 있다고 저만의 판단을 내려보았습니다. 그

 

것은 어차피 중요한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말년에는 쓸쓸한 회한이 남으면서 예전같지 않은 이야기의 한계와 노화도 대면하게 되기에 계속 추리소설을 이대로 읽어나갈수나 있을까라는 염려가 읽는 이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니깐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마지막은 그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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