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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
매튜 퀵 지음, 정윤희.유향란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제 인생 자체가 앞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게다가 니키만 돌아오기만 하면, 곧바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될테고요. 이렇게 상담치료도 받고 명상도 하고. 매일 운동도 하면서 스스로 나아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거든 요."
사랑으로 다친 마음은 사랑으로 치유하라!
말은 참 쉽죠. 여기 사랑에 서투른 두 남녀에게는 그리 만만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은 그 벽을 단단히 더 단단히 넘보지 못할 지경에까지 높이 쌓아 올려놓았지요. 팻과 티파니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이 남자. 팻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꼭지가 돌아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순간의 분노로 감정을 폭발시켰더니 기억상실에 빠졌습니다. 정신병원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바깥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도 잃고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은 상태에서 감정조절을 위한 심리치료를 계속 받아야할 지경입니다. 여전히 4년전에 대한 기억은 못하면서도 전처인 니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 매일을 운동으로 단련하며 사회 부적응과 우울증 같은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요.
그런데 같은 동네에 사는 절친의 와이프 언니인 티파니가 아무 말도 없이 팻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닙니다. 팻의 조깅시간을 어찌 알았는지 불쑥 나타나 같이 동네 한 바퀴 도는가 하면 자기랑 섹스하고 싶냐는 말도 뜬금없이 내뱉을 정도로 이상한 여자랍니다. 팻은 티파니가 이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이미지 때문에 달가워 하지 않는데다 티파니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섹스 중독자가 되었다는 괴상한 소문마저 듣게되니 더욱 께름칙하죠. 그래도 상처받은 사람은 동족을 알아본다고 했던지 차츰 그녀의 괴팍한 성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날 엽기녀 티파니는 팻에게 묘한 제안을 내놓습니다. 사실 팻의 마음 속에는 티파니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지만 아내인 니키와의 재회는 꿈에도 그리는 절대소원으로 가득차 있고 이것을 잘 알고 있는 티파니는 아내와의 재회를 도와주는 메신저 역할을 자임하는 대신 우울증 탈출 댄스 대회에 함께 출전해서 우승을 하자고 요구합니다. 티파니의 꿍꿍이을 알 수없어 미심쩍어 하면서도 팻은 오로지 니키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댄스 대회 참가준비에 올인하구요.
제목인 '실버라이닝'은 속뜻을 모르고 대충 넘겨짚으면 단순 연애지침서 같은 의미가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실버라이닝'만 따로 해석하자면 ‘구름의 흰 가장자리, 밝은 희망’이라는 뜻이랍니다. 넓게보면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한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라는 뜻으로 희망을 주는 말로 주로 쓰인다고 하네요. ‘플레이북’을 사전적 의미대신 이 책에서 중요한 에피소드거리가 되는 미식축구로 풀어본다면 '팀의 공격과 수비에 대한 작전을 기록한 책이나 플랜'같은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밝은 희망을 위해 펼치는 전격 작전’으로 나름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팻과 티파니가 만났으니 당근 달달한 로맨스를 구경할지도 라는 마음을 외면이나 하 듯, 둘 사이는 내내 별다른 진전이 없기 때문에 이거 로코를 선택한 것은 맞는지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냉랭한 분위기만 감지될 뿐입니다. 서로 말 없이 조깅하고, 말 없이 시리얼이나 한 그릇 때리고 작별인사도 없이 돌아서는 두 사람의 반복적인 만남보다는 미국 아니랄까봐 미식축구팀인 이글스 경기관람과 응원에 관한 에피소드가 비중도 높고 색다른 재미를 줄 정도니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지요.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은 팻과 티파니는 각자의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온전한 남녀사이로 관계가 진전되긴 어렵다는 겁니다. 더구나 팻이 전처 니키에 대한 집착을 놓기 전까지는요.
결국 돌고 돌아 길이 멀었지만 '실버라이닝'을 꿈꾸는 것은 팻이나 티파니나 다를 바 없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긍정의 마인드 속에서 한줄기 햇살 같은 희망의 실오라기를 쥐고 놓지 않겠다는 팻과 그를 통해 역시 상처 많은 티파니도 진실된 사랑을 찾음으로서 밝은 희망을 꿈꾸기에 사랑으로 다친 마음은 사랑으로 치유하게 될 것은 순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인상적으로 암시하는 수단들은 문학작품의 인용에 있다 하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도입부를 맘에 들어하던 팻은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랑을 얻을 수 없게되는 대목에서 좌절한 나머지 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 하는데, 특히 개츠비가 총에 맞아죽고 인간말종인 톰과 함께 하기로 한 데이지의 결정에서 이 소설을 행복한 결말에 대한 믿음의 상실 정도로 간주해버립니다. 어둠 끝에 빛이 있다고 믿지만 아직 그 빛을 찾아내지 못해서 울음을 참지 못하니 상처에 생채기만 덧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팻과 티파니의 관계변화와 정신적 성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그 소설의 결말부분에서 홀든이 동생을 놀이공원으로 데려가 회전목마를 태워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생이 목마에서 황금고리를 잡으려 애쓰는 그 장면은 과거의 아픔을 놓아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부여잡겠다는 두 사람의 결연한 각오를 나타내는 멋진 비유여서 순간 울컥했지요. 우리가 두 번째 유년기를 살고 있다는 것은 목마에서 떨어져도 간섭만 있던 첫번째 유년기를 거쳐 현재는 거짓희망을 포기한 채 기억의 진흙 속을 빠져나와 서로가 필요하다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용기를 얻었다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을 테지요.
누구나 살면서 고개를 넘는 일이 힘들어 숨을 깔딱이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겝니다. 삶이라는 고개의 고비 고비를 희망으로 극복해낸 팻과 티파니를 보면서 대단하진 않지만 단단한 의욕이 구름 속을 뚫고 한줄기 서광을 비추는 걸 느끼는 순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진정한 힐링이 됩니다. 진정 삶이 힘들고 지친 분들에게 꼬옥 권해드리고 싶은 참말로 훈훈한 소설이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