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 땅의 역사 4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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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우리 역사라는 허울 뒤에 숨겨 있는 추악하고 잔인하며 비겁한 면면을 본다. 자극적이고 불온해서 야사나 풍문아닐까 하지만 발로 수집한 증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남연군묘가 있다. 원래 그 자리에 동궁의 원당, 즉 세자의 안녕을 비는 절인 가야사가 있었다. 대원군은 (가야사 석탑자리에 묏자리를 쓰면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온다는 말에 가야사를 불지르고 석탑을 돌로 누군가를 묘를 옮긴 것이 아니고) 일정을 맞춰 이장을 했다. 이 석탑에서 송나라 시대 용단승설이라는 차가 나왔고, 그 차를 대원군이 이상적에게 주었다. 이상적은 그것을 스승인 김정희에게 선물했고, 김정희는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선물했다. 남연군묘가 세한도까지 이어지는 순간이다

세종은 천문기구 간의대를 설치한다. 하지만 명나라 사절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한다. 임진왜란을 겪고 한양을 버린 왕에게 분노한 한성 백성들이 경복궁에 방화를 하고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 경복궁은 방치되어 있었다. 이후 간의대 옥석은 경복궁 품계석으로, 일영대 석재는 경회루 연못 석축으로 사영되었다. 일제시대 때 서소문과 서대문이 매각되었다. 광화문은 건춘문 옆으로 옮겨 조선박람회의 게이트로 이용되었다

소동파는 고려 문사들이 흠모하는 시인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혐한주의자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은 중종의 능인 정릉을 파해치고 관을 불태웠다. 그래서 지금 현재 정릉 봉분 속 관은 비어 있다

1697년 광주 도공 39명이 굶어 죽었다. 왕은 사치를 막겠다며 관요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사번도 허용하지 않으며, 거주 및 직업선택의 자유도 주지 않았다. 그냥 굶어죽으라는 소리다. 그래서인가. 일본으로 잡혀간 도공들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한국의 기술력은 떨어져만 갔다

도첩제를 폐지하면서 승려들은 부역의 존재가 되었다. 남한산성 축성에 승려가 투입되었다. 부역을 하러 온 승려들은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준비했다. 축성하고 나면 성을 방어했고 성내 사찰도 승려들이 디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 현물을 승려들의 부역으로 충당하기도 했다. 시신 매장, 도토리줍기, 제방공사, 벌목, 종이 제작. 현종은 불교를 탄압하였으나 그가 죽자 정작 현종의 묘 산릉 작업은 승려들이 했다

호찌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을 가능성은 없다. 벅헌영이 호찌민에게 줬다는 말이 있지만 두 사람이 만난 시기가 없었고 아무리 한자문화권이라고해도 호찌민이 목민심서 원서를 읽을 가능성은 없다

왕들은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내노남불의 대명사였다. 사대부는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하며 변화에 더뎠다. 마치 지금의 정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역시 답사를 위한 설명이 덧붙여 있다. 책들고 답사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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