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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인상적이긴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럭저럭이었어요.
책에 대한 관심은 늘 충만했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인문고전쪽이 아니고서는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 는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이슈 말고는
저와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거든요.
뭔가 책이나 영화라는 것이 한 개인에게 관심있게 다가가는 계기가 있으면
서점이나 극장으로 움직이게 하기 마련인데 그런 계기가 딱히 없었던 책이어서
<채식주의자> 를 지금 완독하고 난 후에
더욱더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책이 읽고 싶어질 때면 즐겨찾는 카페에서 이 책과의 만남을 경건하게 시작하고 싶더라구요.
국제적인 문학상을 받았다는 그 이름값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ㅎㅎ
그리고 그 이름값에 실망하고 싶지 않은 기대감도 함께 갖고서
펼쳐본 <채식주의자> 는 장편소설이 아닌 연작소설이었어요.
창작과 비평의 2004년 여름호에는 채식주의자,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에는 몽고반점,
문학 판 2005년 겨울호에는 나무 불꽃을 각각 수록했었는데
그 세 작품이 하나로 연결되어 완전체가 된 것이죠.
이렇게 구성된 소설도 저는 <채식주의자> 가 처음입니다.
한강작가의 작품도 처음, 연작소설도 처음, 그리고 이렇게 충격적인 이야기와
흡입력 있는 소설 정말 오랜만이예요!!!
작가의 얼굴을 보면 각각의 느낌이 있지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작가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
작가의 아버지 역시 한국소설의 역사속에 남아있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를 썼던 소설가였고
딸의 작가적 능력을 이미 알아보고 자신을 능가했다고까지 평가할 정도라는 걸 보고
<채식주의자> 를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또 한겹 두터워 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비범함까지 갖고 이 책을 읽어가는데
작가의 묘한 느낌만큼이나 책 속의 주인공 영혜..... 정말 묘한 인물이네요.
작가의 어떤 일부분의 모습이라도
작품 속 인물에 투영되기 마련이라는 법칙이 이 작품에서도 보이더라구요.
그러면서 동시에 궁금해졌어요.
한강 작가는 물론이고 작품 속 영혜라는 인물.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남편, 형부, 언니까지~~~
실제 어딘가에 있을법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으며,
이야기의 흐름이 빈틈이 없다고 할까.... 이렇게 짜임새 있고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은
소설을 그리 많이 읽어보진 않았어도 이 책이 처음이라는 것이 제게는 특별한 경험이예요.
그래서 내 인생의 책이 되어준.... 탐서가인 제게는 기록적인 소설이 되었어요.
이 소설의 흡입력을 진작에 느낄 수 있었던 부분.... 정말 초반인데 곱게 읽고 싶었던 이 책에
밑줄 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작가의 힘이 제게 어떤 영향력을 미친듯 합니다.
그냥 이 한 줄로 일상속에서 너무나 공감가게 하는 요즘
남편들과 아내들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수식어 하나....
"울려대는..."
그냥 휴대폰이 '울리는' 도 아니고 휴대폰을 '울려대는' ....
별거 아닌거 같은데 저는 여기 이 표현에 꽂혔어요.
이 표현에 꽂히고 부터는 소설 전체에 꽂힐 수밖에 없도록 몰입하게 만들어준
작가의 필력에 고마울 정도로....
저의 기대감에 끝까지 실망시켜주지 않아서 또 한번 고맙더라구요.^^
표현 하나하나에 고심하고 적재적소에 넣으려는 작가의 정성과 흔적이
곳곳에 많이 보이는 소설입니다.
영혜의 꿈과 함께 평소에 말이 없던 영혜는 꿈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 하죠.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계기는 분명 영혜의 꿈인데....
꿈이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뭔가 눌려있거나 억압되어 있는것이
꿈이라는 것을 통해 분출해내려는 몸부림과도 같을 때가 있어서
영혜에게는 뭔가 억눌려 있는 것이 있었던거 같기도 한대요.
그것은 일부분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공격성을 보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을 거 같고
표면적이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도 같은데
꿈을 빌어 영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요....
저도 궁금해지고 명확하게 그것이 뭔지 작가님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모르겠는 부분도 있는데
그걸 굳이 억지로 알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요.
궁금한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모르면 모르는대로 넘어가볼까도 싶네요.
전체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영혜가 왜 채식주의자가 되려하고
고기와 관련된 것을 그리 멀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게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아요, 적어도 제게는....
그 이유보다는 영혜가 그토록 극단적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거부감!!!
어릴 때 그러지 못했던 것이 쌓여서 이렇게 거부하게 되었고
가장 자신이 편하고 좋게 느꼈던 것이 나무이고 꽃이었던 것인지....
생각할수록 미궁....ㅋㅋ
이런 상상이 흥미로워서 소설이 또 매력있나 봅니다.
몸이 비쩍 말라가도 음식을 끝내 거부하던 영혜는 언니에게 이런 말을 하는데
지금까지 왜 그리 거부했는지 영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 부분이었어요.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없어. 물이 필요한데"
어떤 소설들을 보면 괜히 나도 모르게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채식주의자> 는 최소한 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더라구요.
그건 사람들이 누군가를 속이거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거 같다는 거예요.
그 속마음을 어느 정도는 비춰주었던 작가의 생각이 제게는 편안하게 다가왔고
영혜, 남편, 형부, 언니중에서 그나마 언니가 겉으로는 영혜의 보호자로 나서주고 있지만
어쩌면 영혜가 원하는 죽음....
그냥 죽게 내버려주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도 얼핏 느껴지면서 마무리 되어서
결국 영혜와 언니는 어떻게 될까 또 궁금해지고
그 뒷 이야기를 완성해달라고 조르고 싶은 생각까지~~~^^
하지만 그 뒷 이야기는 또 독자들의 몫, 내지는 즐거움이라고 말하겠죠? ㅎㅎㅎ
나무가 되고 싶어했고 그래서 나무처럼 물구나무 서 있으면서 다리에서는 줄기가 나오고
손끝에서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거 같다고 말하는 영혜를 지켜보는 언니의 심정이
어떨까.... 가족들이 모두 외면하니까 책임감 강했던 첫째 딸 언니가 영혜를 챙겨주고 있지만
정작 집에서 함께 지낼 자신이 없어서 정신병원에 보낸 건 언니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니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가엾은 영혜가 더 밟히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인물들마다 사연이 있고 아픔도 있기 마련이겠지만
중심에 있는 영혜... 이해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이해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고
이렇게 연민을 품게 하는 인물도 처음이네요.
여운이 많이 남아요.... 말 줄임 만큼이나 이 작품....
나중에 이슈가 좀 시들해지고 시간이 지나서 제 생활이 지금과 또 달라졌을 때
읽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그게 또 궁금해집니다.
사람들이 물으면 이렇게 말할 거 같아요.
"채식주의자 어때?"
"음.....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는데 ....
그토록 아파했던 영혜를 보면서 내가 왜 치유받는 느낌이 들까?"
아파했던 영혜를 지켜보고 다독여주고 싶고 관심을 가져주고 싶은 마음으로
내내 읽었던 시간이 왜 뿌듯하고 마음이 묵직해 지는건지....
저도 알 수 없지만 멋져요.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한강 작가가 앞으로 더 기대됩니다.
그저 주저리주저리 한거 같은데 다 있는 그대로 느낌 그대로
책에 대한 강렬한 느낌 이렇게 풀어 놓으니 후련하네요.^^
영화도 호기심에 보려고 해요.
책 속에서 형부와 영혜가 하나의 꽃이 되어서 어떻게 어우러졌을까요....
몸에 꽃을 그린다는 이런 쉽지 않은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영혜의 영화속 표정이 궁금해서요.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 도 먼저 사두길 잘했네요.
한강 작가를 좀 더 탐구해볼 즐거움이 또 남아있다는 게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