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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얀 드로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책 제목과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그리고 철학 수업이라는 키워드가 읽고 싶게 만든 책입니다.
연금술사는 류시화 우화집 <인생 우화> 를 이미 소장하고 있어서 제게는 좋은 이미지의 출판사입니다.
552페이지 분량의 꽤 두꺼운 책인데 그만큼
철학에 있어서 굵직굵직한 키워드를 담고 있더라구요.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철학이지만
이 말이 또한 제 관심을 끌었죠.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말 뜬구름 잡는 것"
살기 바빠서, 생각하기 귀찮아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등등.....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가지가지이고
생각이라는 걸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조차 모르겠어서 길을 잃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생각하는 것" 이 무엇이고 우리의 삶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때
선택해 봄직한 6명의 위대한 철학자를 만날 수 있게 합니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의 세네카와 에픽테토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푸코.
세상에서 많이 들려오는 철학자들의 이름이지만 정작 아무것도 모르겠다면
한번 접해 볼만한 책이죠.
당연히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으니까 추상적이고 어려운 것일수록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는 생각으로.
철학이라는 것이 워낙 어렵게 느껴지는 것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쉽게 쓰여진 철학책을 찾게 되는데요.
그러다가는 전체는 보지 못하고 극히 일부만으로 철학이 쉬운 거였구나
착각 내지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쉽게 접근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전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일독을 하고 나니 어렵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진 못해요.
어렵더라구요.....
그런데 영원히 어렵진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독 해보니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느낌으로 파악해 볼 수 있었어요.
생각과 감정을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있어서 바로 적용해 봅니다. ㅋㅋㅋ
그러니 이 책은 일독만으로 읽었다 말할 수 없는.....대부분의 철학서가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요.
전체를 머리 속에 저장했다면 이독에서는 부분부분 내용들로 집중해 보면
처음에 읽었던 그 내용이 또 다르게, 더 선명하게 들어올 거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제게는 소설이 그렇거든요.
일독과 이독, 삼독이 또 다른 것이 소설인데
철학 수업을 다룬 이 책 역시 일독으로는 전체를 알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목차를 훑어보면 각자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이 되지요.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에서는 저자 얀 드로스트가 제시하는 것이
위대한 철학자들이 얘기하는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을 보고
각자 내 삶의 결과 닿아 있는 것을 선택해보기, 그리고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윤리, 도덕, 감정, 희망, 자유와 지혜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구요.
저자 얀 드로스트는 알랭 드 보통이 여러 나라에 세운 "인생학교" 가 있는데
가장 첫 번째로 나왔던 "에피쿠로스 학파" 제법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그와 대비되는 스토아 학파와 비교되면서
딱 한마디로 정의해서 간편하게 이해했던 경향이 있어요.
사실 그게 편하거든요 우리가 접하기엔.
에피쿠로스는 쾌락, 스토아는 절제.
이렇게 대비시켜야 사람들은 이해가 쏙쏙 되는지라....ㅎㅎㅎ
어쩌면 이해시키고자 사람들이 활용했던 키워드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쾌락과 절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다단함이 있죠, 사람 또한 그렇구요.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사상을 알 수 있는 문장들로 챕터가 시작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들 속에 쾌락주의적 이상이 들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워딩 그대로 단순하게만 볼 것이 아닙니다.
신체적으로 고통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마음의 불안이 없는
평정상태 를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있어요.
두려움이 인간적인 행복 추구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보면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방법은 두려움의 근거를 알고
자신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런 관점을 포함해서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에 나온 대부분의 사상들이
철학이라고 해서 뜬구름 잡는 어려운 얘기만 하는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신의 주변, 현실과 어떻게 연결지어 생각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현실을 알아야 직접적으로 내 삶에 철학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하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유의 반대개념인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자유와 행복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누구나 생각한다고 볼 때
자유의 반대개념으로 무력감을 들었던 것이 의외이기도 했는데
읽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무력감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상황중 하나의 감정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인생의 고비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무력감에 지배당한다면 생각하는 활동이 작동하지 못하고
곧 삶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일거라고 저는 해석했거든요.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메시지, 또 한번 새깁니다.
이 외에도 세상은 창조되지 않았고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며,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고 또한 신도 없다는 무신론적 사고를 취합니다.
모든 선과 악은 지각하는 데 있기 때문에 죽음이란 지각을 빼앗기는 것이어서
죽은 자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죠.
분명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종교적 세계관과는 또 다름이 보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반대는 불만족, 불안, 두려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추구하고 가능한 한 불안과 고통을 피하려 하며
그래서 에피쿠로스가 하지 않았던 한 가지는 바로 극단적인 욕망의 추구.
쉴새없이 즐거움을 추구하면 불안도 오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죠.
육체적으로 자족하면서 정신적인 평정심을 가질 때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영점 기준선" 의 의미를 보면
고난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행복만큼 중요하고 안정되고 온화하다면 인간의 행복을 알 수 없다는
니체와는 살짝 배치되는 경향도 보이구요.
여튼 철학 사상마다 각자의 주장과 근거를 들어 논박하는 것을 보면
다 일리있어 보이기도 하죠. ㅎㅎㅎ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에 많이 공감이 가서 그런지 필사노트에도 이것저것 많이 적었더라구요.
에피쿠로스 학파와 대비되는 스토아 학파는 철학자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기둥이 늘어선 복도"를 뜻하는 스토아에서 학파의 이름이 정해진 것이더라구요.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그 곳에서 많이 모였다고도 하구요.
참고로 에피쿠로스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 을 의미합니다.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들로 네로 황제의 스승 세네카, 에픽테토스,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소개하고 있어요.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키워드를 쾌락이라고 알고 있다면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스토아 학파에 대한 키워드는 절제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인간은 이성적 절제를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이 외에도 에피쿠로스 학파와 대비되는 관점들이 눈에 띕니다.
모든 것은 우연이라고 말했던 에피쿠로스와 달리 스토아 학파는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말해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분명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거든요.
에피쿠로스 학파는 "달리 방법이 없어."
스토아 학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모든 일은 합리적인 법칙, 즉 자연법칙에 따라 발생하고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필연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죽음에 있어서 스토아 학파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도 하지요.
로마의 귀족이었던 세네카는 예수가 동시대 인물이었다는 게
아주 오래전 시간은 개념이 없는지라 저로선 놀라웠어요 ㅋㅋ
괴테가 스토아 학파를 좋아했다는 것도.
스토아 학파에 대한 저자의 말은 엄청나게 더 있지만 이 정도로 정리.
자세한 건 직접 읽어보시는 게 가장 정확하겠죠?^^
아주 오래전에 고대 그리스 철학이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에 관한 책을 봤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또 새롭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 사상가들이 이후로도 많았기 때문에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이 두 학파의 사상은
한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어요, 여전히!!!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그 타이틀에 그치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기도 했지만
스승 플라톤 못지 않게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축한 다양한 학문들과
개인적으로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남긴 <시학> 속 내용들도 꾸준히 들려오고 있어서
분명히 존재감 있는 철학자 맞는 거 같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존재이며 이성,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을 중시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설파합니다.
스토아학파처럼 일원론적 사고에 반대하며
인간은 한 개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고도 하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때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고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서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어쨌거나 "생각하는 것" 이 중요하다가 저자가 누누히 말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는 것임에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쾌락과 도덕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가 가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만 정리해 보았어요.
다른 시기에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부분이 더 크게 시야에 들어올 테지요.^^
스피노자는 저자 얀 드로스트의 나라 네덜란드의 17세기 유명한 철학자이더라구요.
제가 기억하는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을 예리하게 탐구한 철학자로 기억합니다.
강신주 철학자의 <감정 수업> 이라는 책이 바로 스피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들을 풀어 쓴, 꽤 흥미로운 책이었거든요.
이 책을 계기로 제게 스피노자 라는 철학자가 관심 속에 들어왔었는데
또 오랜만에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를 통해 만났고
역시나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얘기했던 스피노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 책 속에서 소개되는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결정론자이며
이 세상 모든 일이 외적인 원인에 의해 정해져 있고
선택의 자유나 우연은 없다고 보았어요.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주의자 라는 말,
우리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고, 다만 이해하라는 말도 격하게 동의합니다!!!
강신주 철학자가 썼던 <감정 수업> 에서 스피노자가 개념을 완성한
48개의 정념들이 여기에서도 역시 중요하게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어려웠습니다....^^;;
강신주 철학자가 이해하고 <감정 수업> 에 썼을 때는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같이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니까 어렵지 않게 느꼈던가봐요.
그래도 저자가 정념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 중에 선명했던 부분은
스피노자에 따르면 욕망, 기쁨, 슬픔 이 세 가지가 인간의 기본적인 정념이라는 것이예요.
살아 남으려는 노력, 언제나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 확장+성장+발전을 향한 추구.
이 모든 것을 욕망이라고 봅니다.
기쁨은 인간의 작은 완전함에서 커다란 완전함으로의 전환이라고 보고,
슬픔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커다란 완전함에서 작은 완전함으로 전환될 때 슬픔이라고 말하고 있는 스피노자 예요.
스피노자 윤리학의 기본을 형성하는 이 세가지 욕망, 기쁨, 슬픔은
선과 악을 나누지 않으며 유익함과 무익함의 정도에 따라 해석할 뿐입니다.
이 세가지 큰 기본 개념 외에 45가지 정념들도 알고 있으면 유익하겠더라구요.
우리는 모두 감정에 휘둘리는 어리석음으로 끊임없이 고통받는 인간이기 때문이랄까요.....
원함이 있으니 인간은 욕망의 현상이라고 했던 스피노자.
인간의 감정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거 같은데
스피노자가 정의한 문장을 보면 적잖이 놀랍기도 합니다.
"후회란 우리의 소신에 의해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행동에서 오는 생각과 함께하는 슬픔이다."
"사랑은 외부적인 원인에서 오는 생각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이 외에도 지적 사랑이나 인과관계, 필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지만
역시나 선명하게 이해되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저자 얀 드로스트가 스피노자의 교훈으로 삼고 싶다는 말을 기억하려구요.
'언제나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라.'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이죠.
"탁월한 일은 드물고 어려운 법이다." 스피노자의 이 말에서
저자는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저는 모든 현상에 대해서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는 최소한 벗어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제 맘 편한 쪽으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결론을 내려본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스피노자의 저 말이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자는
제 평소 가치관과 닿아 있다는 생각에 기분좋은 발견을 한 것 같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와 미셸 푸코 역시 여기저기서 이름은 들려 오는데
제대로 책을 통해 만나보질 못해서 궁금했던 철학자들이었어요.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를 통해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역시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나 봅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이자 소설도 썼던 사르트르의 사상을
디테일하게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은 역시 강력하게 기억에 남네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자신에 대해 원래부터 결정된 것은 없기 때문에
행동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인간인 것두요.
"인간은 탐욕적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계속 탐욕적으로 행동하고
그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적인 주장에 진실을 전달할 겁니다.
이 세상에 결정론이란 없으며 우리에게도 결정론은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가운데 결정하는 선택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큽니다.
따라서 책임감 역시 큽니다.
행복해지고자 철학을 통해 생각하는 것을 하기 위해 이 책도 읽는 것이라 치면
사르트르가 말하는 행복에 대해서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겠죠.
물론 얀 드로스트를 한번 거쳐서 이지만요. ㅋ
행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평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실존주의가 가르쳐준 행복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행동, 나의 집중력, 내가 취사선택한 가치에 충실하기, 이상, 사람 등을 통해
내 자신을 실현해야 합니다.
나중에 헛된 꿈만 꾸고 진짜가 되지 못한 가짜로
인생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미셸 푸코.
사르트르 만큼 아니 더 많이 들어본 철학자이지만 역시 지식은 전무한 상태였던...^^;;
하지만 다행인 것은 <생각이 기대어 철학하기> 를 만나고 나서
알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알아야겠다는 실천으로 옮겨지게 하는 계기는 되었죠.
미셸 푸코가 제시하는 인간의 언어와 지식, 권력, 사회통제의 관계가 저로선 굉장히 흥미로웠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와 흐름들을 시민으로서 제대로 알고
견제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사명감도 약간은 있기에
미셸 푸코의 사상을 좀 더 깊이 알고 싶다,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는 미셸 푸코의 주장이
오늘날 너무나 맞아 떨어지는 말처럼 들려오는 걸 보면
예언자적 철학자 미셸 푸코, 진짜가 나타났다 .... 대충 그런 느낌....!
사르트르는 어려운데 미셸 푸코는 현실 속 상황들과 맞닿아 있는 내용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 잘 이해가 되는 듯 해요.
우리가 '대안은 없다' 라는 외로운 절망감에 빠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자유시장에서 이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지배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정체를 벗기는 우리의 통찰은 새로운 분노를 가져오고,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생각의 형태를 찾기 시작합니다.
의도적으로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대안은 없다' 라는 생각에
'대안은 수없이 많다' 를 외치고 해방감을 맛보십시오.
대안을 생각하는 것은 유일한 예술입니다.
미셸 푸코를 얀 드로스트가 이해하고 이렇게 문장으로 남긴 것이 멋져 보입니다.
감옥을 통해 권력의 사회통제를 얘기한 <감시와 처벌> 이라는 책도 따로 한번 보고 싶더라구요.
<성의 역사> 에서는 성을 억압의 역사로 보는 것이나
권력은 지식을 통해 사회 안에서 작동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는 늘 권력 이익이 있다는 시각들이 현실적이어서 관심갖고 읽게 됩니다.
물론 쉽진 않았지만 이건 어렵더라도 읽어내 보겠다는 생각을 끌어내는 미셸 푸코였어요.
사르트르와 푸코는 특히 더 알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들 대략 빌려왔죠....
책이 책을 부르는 이런 확장 효과 바람직한건 좋은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꼭 모든 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알고 싶으니까 다른 책도 찾아 봅니다.
왜냐하면 알면 세상이 또 달라 보이거든요.
세상에 있는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구요.
얀 드로스트의 철학 처방전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일정부분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고 더 파고 들고 싶어지게 만들긴 했지만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했던 것도 보이긴 합니다.
최소한 철학이란 쉬운 것이고 내가 쉽게 가르쳐 주겠다는 모토로 쓰여진 책은 아닌 거 같아요.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를 만난 소감을 이렇게 남기고 싶습니다.
책에 있는 내용을 다 내 것으로 만들려는 것 또한 욕심인 것을 알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애꿎은 저자를 탓하는 모자란 모습을 보일 생각도 없어요. ㅋㅋㅋ
다만 제 능력 안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정리해 보고
확장해서 더 알아 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것에 긍정적인 의미를 둘랍니다.
소설과 결은 다른데 역시 철학도 녹록치 않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