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목격
최유수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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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립출판계 베스트셀러 최유수의 에세이가 이번에는 허밍버드에서 출간되었어요.

신간일 때 만났는데 어느새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인 줄도 모르고 이제서야 완독하네요!!!

2월 말에 제주도로 가족여행 갈 때 비행기 안에서도 커피 마시면서 읽었던 책인데

여행중에 많이 읽진 못하고 집으로 가져와 내내 다른 책들에 밀려 본의 아니게 묵혀 두었었죠.

틈틈히 자기 전에 읽곤 하다가, 하루 맘 먹고 읽었는데 역시 독립출판계 베스트셀러 다워요.

독립서점에서 품절과 재입고를 반복했다는 <사랑의 몽타주> 이후에

<사랑의 목격> 에서는 실체 없는 사랑에 대해서 어쩜 언어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요.

 최유수 작가의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과 애정을 곳곳에서 느꼈습니다.

사랑이 존재함을 모두가 믿을 수 있도록 목격하고 증언하겠다는

최유수 작가의 바램이 제게도 전해졌고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유수 작가의 감성이..... 사랑에 관한 에세이 여러 권 봤지만

이렇게 깊은 감성과 통찰은 또 오랜만입니다.

<사랑의 목격> 을 먼저 읽었지만 <사랑의 몽타주> 도 궁금하네요.


 

 

 

 


제주도여행 중에 <사랑의 목격> 을 챙겨 들고 다녔던 인증 살짝 할까요.^^

제주서부에 있는 책방소리소문의 도장도 들고 간 이 책에 기념으로 남겨두구요.

제주도의 돌담 앞에서 <사랑의 목격> 이랑 책방소리소문의 어울림, 어떤가요?

책방소리소문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사랑의 목격> 도 진열되어 있네요.

괜히 더 반갑더라구요.^^

 

 


뭐 하나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꼭지마다 최유수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참 좋았어요.

그 메시지를 중심으로 풀어 가는 흐름도 급하지도 않고 억지도 없고

천천히 따라가게 되는 글을 쓰는 작가더군요.

근데 이 분 여자분인가요, 남자분인가요.....

글의 느낌은 굉장히 섬세해서 얼핏 생각하면 여자분일 것 같기도 한데

의외로 또 이렇게 감성이 깊고 섬세한 남자분들도 계셔서.^^

남자분이면 좀 놀라워서 한번 뵙고 싶을 정도예요.

<사랑의 몽타주> 까지 보고 나서 작가와의 만남의 기회를 기대해 보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탄생부터, 한없이 황홀하지만 때로는 애처로울 순간들을 지나,

마침내 사랑의 끝과 허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사건과 과정을

시작도 하기 전에 전부 알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그럴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을 건가요.

고민하며 망설일 건가요.


.......


사랑의 끝이 설령 허무할 지라도 우리가 선택의 순간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탄생하지 않을 테니까.

선택의 순간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최유수 작가가 그렇게 기꺼이 증언하겠다는

사랑의 탄생도 일어나지 않겠죠 아마도.....
모든 선택이 허무를 동반한다고 해도 기꺼이 시작하기로 하자고.....

용기를 내자고 말하는 것 같아요.^^

고통과 공허함이 따를 지라도 인간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최유수 작가의 문장을 읽다 보면 사랑의 본질, 그 어떤 의미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매력과 힘이 느껴집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빼고 저마다 인생에서 모든 결과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오는 것일텐데요.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랑".

사랑은 온전히 우리의 의지, 자유 의지로부터 비롯된 결과입니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의 삶은 만들어 지고 있어요.

사랑을 하면서 인간은 성장합니다.

<사랑의 목격> 을 통해 사랑과 삶을 동시에 돌아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최유수 작가가 이렇게 사랑에 대해 목격하고 증언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그래서 너무나 이해가 되는 거예요.

사랑이 곧 삶이 되는 등식을 가뿐하게 만들어 버리네요 ㅋ

대부분의 경우 삶에서 이다지도 중요한 "사랑" 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깊이 숙고하는 경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죠.

그래서인지 <사랑의 목격> 이 더 소중한 책으로 다가옵니다.

필사노트 18페이지를 채웠어요. ^^

몇 가지 골라 적어둔 것중에서 프롤로그가 가장 좋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사랑의 원형을 느낄 수 있다.

.....

발치는 어둡고 묘연하지만 시선을 떼지 않는 걸음으로 원을 그리다 보면

조금씩 중심에 가까워진다.

다가갈수록 분명해진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익숙한 섬광이 나를 감싼다.

평생에 걸쳐 사랑의 증거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이라도 사랑을 믿어본 사람은 누구나 목격자가 된다.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사랑을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다 소개할 순 없으니까 제목만 투척 ㅋㅋ


믿음 / 사랑의 원형 /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것 / 종교는 사랑 / 두 사람의 풍경

울음 / time for love / 순례 / 진화론 / 우리는 서로 다르다 / 목적론

last sleep / study on love / 선물 / 최선의 나

희망 없는 사랑 / 당신 자신의 사랑 / 이별과 사랑의 형식 / 100%의 사랑

purposelessness / age of love / 문득 / timeless

 

아마도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다른 제목의 글을 적어둘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쉬우니까 하나만 소개해 볼까요? ㅋ

<최초> 라는 글은 마치 인간 세상을 넘어서 전 우주의 질서를 말하는 것 같아서

최유수 작가의 사랑에 대한 고찰의 폭이 참 깊고도 넓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태초에 사랑은 탄생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이 글은

혹시나 서점에서 잠깐 서서라도 읽어 보시길.^^

 

최유수 에세이 <사랑의 목격> 을 읽다 보면 그 누군가가 분명히 떠오를 거예요.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 어서 펼쳐 보세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우리에게는 언어 라는 게 있어 최유수 작가의 문장을 만날 수 있음이 축복입니다.

면밀히 들여다 보고 숙고하는 진지함으로 사랑을 대하는 최유수 작가의 문장들이 참 좋았어요!

단언컨데, 사랑을 책으로 배우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요 <사랑의 목격> 이라면. ㅋ

사랑을 대하는 태도.....그것도 아주 잘 배웠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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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지음, 김아림 옮김 / 책세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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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출판사의 책을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있어서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책을 발견하고는 관심을 갖고 보니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 이라는 부제에 바로 읽고 싶어졌어요.^^

책도 직접 받아보니 생각보다 아주 작고 104 페이지 분량이라

가볍게 읽을만한 과학 에세이일줄 알았죠 ㅋ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초학문, 순수학문에 관한 내용들이라 앞 부분을 두번쯤 읽으니까

그제서야 조금...... 진도가 나가지더라구요......%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하지만 과학 정보들을 전하기 것보다는 저자의 철학에 방점이 찍힌 에세이여서

과학에 관한 전문지식 없어도 읽을만 했습니다.^^

핵심은 과학 지식 전달이 아니고 이 두 저자의 철학도 인간의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있거든요.

과학자들은 아무래도 실용적인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을텐데요.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의 두 저자가 몸 담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달랐어요.

그래서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을 배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30년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가 설립한 민간 연구소인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속된 학자들에게 그런 압박감을 주지 않고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이라는 능력에 가치를 두며

자율적인 연구를 추구해온 곳이거든요.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에 저자가 두 명인 이유는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의 에세이 제목이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인데

이 에세이가 두 번째 꼭지로 실려 있고

첫 번째 꼭지는 같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현 소장이자 끈 이론의 권위자인

수리 물리학자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가 플렉스너를 향해 쓴 오마주 에세이 입니다.

두 저자의 과학 에세이 속에는 규정과 제약없는 학문이 갖는 위력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그들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방해나 제약없이 쓸모없는 지식 추구하기"

우연한 발견에 힘입은 인간의 호기심이야말로 진정으로

혁신적 아이디어와 진보적 기술을 가로막는 정신적 벽을 부술 만한

강력한 힘이라는 확고한 지론을 가지고

 플렉스너의 상상이 구현된 장소가 바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입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이 추구하는 실용적인 응용과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채

깊은 생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구속받지 않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기초학문에 발전을 가져올 수 있게 한 이 곳에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다는

신구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들의 철학에 저도 설득되는 거 같아요.

평소에 저역시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결정적인 순간에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와 동시대 과학자였고

실제로 교류와 동시에 충돌이 있기도 했더라구요.

아인슈타인은 지금도 워낙 대중적으로 알려진 과학자이지만

당시에도 대중지식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상당했을 텐데요.

플렉스너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과학자의 이미지를 탐탁치 않아 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의사를 플렉스너가 중간에서

가로채 거절 의사를 대신 표명한 적이 있었더군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을 보면 플렉스너의 철학과 결이 비슷한 듯 보입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가 지금 알고 이해하는 모든 것에 한정되어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포용하며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앞으로 알고 이해하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과학에서 상상력이 맡은 역할이 크다는 의미일텐데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의 지론이 바로 이것이거든요.

호기심과 상상력이 가진 힘을 내내 그의 에세이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에서도 역설하고 있지요.


 

 

기초 학문, 순수 학문의 연구가 ​성과를 내어 개발된 지식의 상당 부분이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해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요.

플렉스너와 데이크흐라프의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연구가 지속되고 있고

정보기술, 생명공학 산업의 성공으로 기초연구에서 결실도 보고 있구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공공투자의 중요성,

역시나 돈이 드나드는 일이 참 중요하다는 걸 또 한번 알았구요.^^

공공재 지식들이 많은 인터넷 시대에 지적인 자유를 앞세워

앞으로 우리 사회와 미래 사회가 기초 연구를

 중요시하고 지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바램과 함께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과학 에세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체코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는 1866년생, 1959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과학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에 의해

플렉스너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자신의 에세이를 함께 실은 것 자체에서

겸손하게, 그리고 플렉스너를 존경하는 마음도 간접적으로 전해지는듯 합니다.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가진 힘에 관한 플렉스너의 통찰

과학 영역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에 어떤 영역에나 적용해 볼 수 있는,

매우 적절하고 시의성 있는 메시지였어요.

인간이 모여사는 이 공동체는 제자리 걸음을 하기도 할테지만

어찌 되었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와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가 역설하는

순수 학문의 자율적 과학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은

이미 세계를 바꿀만한 혁신적인 연구 결과로서 그 가치를 입중해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철학은 이 사회를 변혁하고 전 세계적인 문제에

해법을 제공하는 단초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를 만나 보니

기초 학문을 다루는 과학자들의 고민도 접할 수 있어서

그에 따른 지평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유익한 독서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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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사회 - 어설픈 책임 대신 내 행복 채우는 저성장 시대의 대표 생존 키워드
전영수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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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도모하다"

각자도생, 어찌 보면 이기적인 삶의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 ​중국에는 없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고 속도는 빨라서

개인의 삶이 책임감이라는 이름 속에 갇히게 되는 한국 사회의 시대 변화를 표현한

새로운 생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블랙피쉬의 사회학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사회학자 오찬호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를 만나고 나서부터였어요.

각자가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며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고

 그런 개인들이 모이는 공동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늘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책은 적절한 간격을 두고 읽으려고 하는데요.

이번에 블랙피쉬에서 또 하나의 사회학책이 나왔더라구요.

<각자도생 사회> 는 인구통계, 세대분석 등 사회 변화를 읽어내는

사회경제학자 전영수 한양대 교수의 신간입니다.

 각자도생 하자는 것은 ​본인만 살겠다는 이기심이 아니예요.

 다양한 삶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변화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 중에 

가족 형태의 다양화, 세분화에 주목하며 가족은 변하는데 제도는 그대로인

한국 사회의 경직성을 끄집어 내고 있죠.

동거 가족, 부부 가족, 입양 가족, 조손 가족, 기러기 가족, 주말 가족, 동성 커플​까지

가족의 형태는 해체되고 있지만 그 빠른 속도에 비해 제도는 뒤쳐져 있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저성장, 고위험 이라는 시대적 특징이

고착화 되어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옛날에는 고위험임을 감수하고라도 꾸준히 고수익이 가능할거라는 것 때문에

 가족을 이루고 살아갔지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청년은 부모 세대보다 수익이 좋지 못해 연애 본능을 미루거나 포기함으로써

고위험의 결혼 제도를 필수적인 삶의 경로로 인식하지 않고 있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는 중년은 이제 가족을 위한 희생 대신

가족 만큼이나 자기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죠.

1975년생부터 1985년생에 이르는 예전 X세대..... 저도 해당되네요.^^

X세대가 이제는 신중년이 되어 중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노년은 은퇴를 거부하며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연애, 일, 여행들을 찾아 나서는 등 한국 사회가 이렇게 세대 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열심히 살아도 가난해져만 가는 저성장, 고위험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각자가 잘 살아가고자 선택한 새로운 생존 전략이 "각자도생"인 것이고

저자는 해외의 각자도생 공존법도 사이사이 소개하며

​개인의 행복으로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여러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가꾸는 이들에게

긍정의 시선을 보내는 <각자도생 사회>.

우리가 있기 전에 무해하고 소중한 "각자" 는 무조건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행복한 "자기다움" 을 추구합니다.​
한국 사회를 거시적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면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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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각자도생 사회> 는

총 4부로 나누어 시대 트렌드에 따른 각자도생 실험들을 소개하는데

이 내용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워요.

내 주변의 가족 형태도 있고 생각지 못한 해외의 사례들을 접하고 나면

이런 가족의 형태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내지는

 제도를 벗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구나 깨닫게 되기도 하죠.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한 가족 정의의 핵심으로 결혼은 이제 전통적인 정의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이루어지는 근간이 이제는 결혼이 아닌 주거에 방점이 찍히고

스스로를 위한 행복 추구자들이 모여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거죠.

현재 곳곳에서 진행중인 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각자도생 사회> 를 통해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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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을 위해 비용과 수고를 낮추고 효용과 만족도를 높이는 라이프 스타일로,

집은 소유보다는 사용의 개념이 되어 집을 버리고 삶을 얻는 일이라는 인식으로,

 졸업-연애-결혼-출산-양육이라는 틀에 박힌 삶의 경로는 각자의 행복이 최우선의 가치로.....!


전통적인 개념의 정상 가족은 해체되고 있는 지금,

저성장, 고위험의 시대에서 생존하여 행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한국 사회의 모습들이 <각자도생 사회> 속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 제도 변화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우선할 것은

새로운 가족을 인정하는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청년, 중년, 노년.... 각 세대별 고민과 한국 사회에서 취하게 되는 행동방식,

'자기 찾기' 로 변화하는 삶의 모습들이 모두 흥미로웠어요.

이 글에 소개하지 않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스타벅스 필사노트에 18페이지에 걸쳐 필사하며 재밌게 읽었어요.

각자가 도생하기 위한 행복 실험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확산될 거라 저자는 전망하고 있는데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을 습관적으로 참아가며

행복을 미루는 현대인들에 혹시 자신이 해당된다면

<각자도생 사회> 를 읽기 전과 후는 분명 기존의 세계관을 깨뜨리는

유의미한 경험을 줄 것입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 <각자도생 사회>를 읽고 나니 "따로 또 같이" 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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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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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생전에 남겼던 시를 읽고 나서

특히 여성에게 "자기 삶을 글로 쓰는 일의 가치" 를 긍정하게 되었다며 이 책을 쓴 배경을 밝힙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는 삶을 글로 표현하고 때로는 글을 통해 싸우기도 하고

글쓰기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던 25명의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난 시기도, 삶의 터전도, 쓴 글의 성격도 제각각인 여성들은

모두 글을 써서 돈을 벌었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린 사람들이었어요.

평생에 걸쳐 편견과 차별, 폭력에 맞서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그들은 말과 글의 힘을 믿었고 책 읽기를 너무나 사랑했던 좋은 독자, 그리고 멋진 작가들이었습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제목에서부터 제게는 바로 관심도서가 되었지만

또 하나 표지에 있는 그림이 궁금했어요.

다행히도 책 속에서 답을 주네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도덕과 절제, 정숙과 순종이라는 청교도적 세계관에 억눌려 살았던

에밀리 브론테의 남자 형제가 그려준 <앤, 에밀리, 그리고 샬럿 브론테> (1834) 입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 을 쓰고도 출판이 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죠, 여자라는 이유로.

최근에 영화로도 나왔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속에서도

조가 직접 소설을 쓰고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가명으로 책을 내려고 시도했었죠.

에밀리 역시 가명으로 책을 냈지만 도덕성이 없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나중에 에밀리 본인의 소설임이 알려지고 나서도 인정은 커녕 거센 비난을 받게 됩니다.

몸은 허약해지고 결국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에밀리 브론테는 죽음에 이르게 되죠.

책 표지를 소개하려고 보니 에밀리 브론테에 관한 꼭지 내용을 소개하게 되네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는 이렇게 25인의 여성들의 삶을

쓰다 / 싸우다 / 살아남다 3부로 나눠서 구분짓고

글쓰기와 삶이 곧 하나였음을 그녀들의 인생을 비추어 보여줍니다.

이름만 봐도 관심가는 작가들이 꽤 많죠.^^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작품을 읽었거나 관심이 많은 작가로

도리스 레싱,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마거릿 애트우드, 수전 손택, 에밀리 브론테,

토니 모리슨, 가네코 후미코, 박경리, 헤르타 뮐러, 제인 구달 을 들 수 있겠네요.

​도리스 레싱 <다섯 째 아이>,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헤르타 뮐러 <숨그네> 읽었는데 다 좋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새 책을 만나게 될 때 늘 기대되는 지점은

새로운 사람들이 제 세계관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서는 실비아 플라스입니다.

 

 

실비아 플라스라는 이름은 제주도여행 중에 책방투어 하면서 가 본 서점들마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을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때도 이 사람이 누구지? 새 여성 시인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렇게 운명처럼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를 만나 제대로 실비아 플라스라는 시인을 알았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 되겠다는 야망있는 실비아 플라스는 대학시절에 남편을 만나

4개월만에 결혼하고 자신만의 시집을 발표해 호평도 받지만

여성으로서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삶의 굴레에 갇히는 시간동안

부부 갈등도 심해지고 급기야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죠.

원래 생활고를 겪기도 했던 실비아 플라스지만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남편의 외도도 아니고 생활고도 아닌, 바로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읽고, 쓰고,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다고 해요.

글 쓰는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려면 뭘 해야 할지도 고민했던 실비아 플라스.

한 가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고 싶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글쓰기가 곧 그녀에게는 건강이었기 때문에

건강도 악화되기도 했고 ​남편과 별거하고 4개월 후

가스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박아 결국 자살을 택합니다.

​아직 그녀의 시를 접해보지 못했고 그녀의 감성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본연의 그녀를 느끼진 못했어도

그 누구보다도 글쓰기가 곧 삶이었던 여성은 실비아 플라스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아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세상에 떠도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더라구요.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아버지는 헨리 제임스, 토머스 하디와 친구사이.

버지니아 울프에게 아버지가 전하려던 독서지침을 기억하고 싶더라구요.


"마음에 드는 책은 반드시 두 번 읽어라."


저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겠어요. ㅎㅎㅎ

여기까지는 버지니아 울프 아버지 참 좋아보였는데

 학교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버지니아 울프와 언니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정교육으로,

남자 형제들은 사립 기숙학교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진학했구요.

똑똑한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차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충격을 받고 정신착란을 겪기도 했지만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도모해 갑니다.

남편과 출판사를 차려 운영하기도 하고 위대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제임스 조이스, 프로이트, T.S.엘리어트과 교류하게 되죠.

책을 내고 드디어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지만

1940년 독일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서 영국 런던에도 폭격을 가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런던이 황폐해 지고 전쟁의 참혹함을 절감하게 되면서

버지니아 울프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글을 못 쓰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남편에게 편지를 남기고 세상과 작별을 하지요.

전쟁이 매일 열 시간동안 읽고 써왔던 작가로서의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빼앗아 갔고

더 이상 버지니아 울프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죠.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 글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던 여성들은 글쓰기를 했고 싸웠지만 결국 살아남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들에게 글쓰기는 삶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건 분명히 알겠습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서 다뤘던 25인의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통해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 갔던 사람들이었어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그들은 글쓰기로 인해 비로소 자기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글 쓰는 여자는 ......


빛난다 /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을 증명한다 / 오래된 비밀을 밝힌다 / 자기 자신과 싸운다 / 오늘에 집중한다 / 서두르지 않는다

크게 도약한다 / 끊임없이 질문한다 / 결국 승리한다 / 앞으로 나아간다 / 세상을 포용한다

용기를 잃지 않는다 / 우정을 잊지 않는다 / 멈추지 않는다 / 자신의 뜻을 이룬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 자신의 운명을 믿는다 /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역사를 탐험한다 / 미래를 지킨다 /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긴다 / 희망을 들려준다


25개의 각기 다른 글 쓰는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려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왜 남기고 있을까.....


이 책을 읽었던 순간에 느꼈던 찰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

나의 세상에 들어와 긍정의 힘을 심어주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 모두 "나"인 것이기에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인가 봅니다!^^

좋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너무나 좋았던 책.

 교훈도 얻었고 공감도 하게 되고 감동도 하게 되고....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변화하고 성장할 준비를 합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읽고 싶어서 진작에 사두고도 아직 못 읽었는데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장영은 저자의 신간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를 먼저 보게 되네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삶을

흥미롭고도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삶에 또 하나의 작은 변화를 주는 글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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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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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쯤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래에 사라질 직업" 이라며 과거의 지구인들(^^) 사이에서

한창 이슈가 되었던 때가 있었죠.

그 때 당시만 해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오는 노동 패러다임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었어요.

미래의 일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불확실한 거라서 '정말 그럴까?' 의구심을 갖는 데에서 그쳤었는데

요즘 현실적으로 주변을 돌아 보면 정말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업무들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맡아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일이 많아졌지요.

첨단기술, 인공지능, 자동화, 기계화가 스멀스멀 인간의 노동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고

이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기계를 상대로 경쟁력을 갖춰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해요....;

와이즈베리의 경제경영 도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는 미래의 발전된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기술 진보가 인간의 노동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기술적 실업" 이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정부, 기업,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흘러온 인간의 노동에 관한 패러다임이 기술 진보로 인해 변하다 보니

인간은 인공지능의 습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요.

넓은 의미로 볼 때 인간에게 노동(일)이란 개인의 미래이자 삶의 의미와 방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의 미래에 대한 왜곡된 주장들 / 기술적 실업 / 일자리가 줄어든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을 이제는 피할 수 없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불평등 구조는 심화되어 양극화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현재 어느 나라에서나 어렵지 않게 목도하고 있지요.

일자리를 잃어가는 인간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제는 정부의 역할로

분배 문제를 담론화시키고 책임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옥스포드 대학교 경제학과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저자 대니얼 서스킨드는

영국 정부에서의 정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인간의 노동력 수요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며

다가올 기술적 실업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일의 미래에 대해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1890년대 '말똥 대위기' 로 시작하고 있어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호기심있게 읽어나간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제게는 다소 머리 속에서 정리하면서 보기에 어려운 책이었고 

관심도에서도 떨어진 내용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럴 때는 안 읽히는 부분에 막 매여 있지 않고 그냥 쿨하게 패스하면서 읽습니다.

독서라는 행위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그 어떤 결연함으로

목 매가며 읽을 것까진 없으니까요.....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만나는 책마다 그렇게 읽으면 저는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아마도 ㅋㅋ

간간히 소주제와 연결된 의미있는 문장이 보일 때에는 필사하면서 읽었는데

나중에 필사한 내용을 다시 훑어보지 않았으면 이 책의 핵심을 많이 놓쳤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의 시작이었던  '말똥 대위기' 사건을 가지고

저자가 메시지를 풀어가는 걸 보면서

이 책 전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의 이동수단, 운송수단으로서의 말이 헨리 포드의 자동차로 대체됨으로써

신기술이 동물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비단 말에서 차로 이동수단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역할을 잃어버린 말의 자리에 인간을 그대로 대입하고 차의 자리에 인공지능을 넣으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시작되고 있더라구요.

기술 진보로 말에게 일어난 일이 인간에게도 일어날거라는 이 위기의식과 두려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그 뒤로 쭉~~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21세기가 되면 모든 사람이 일할 만큼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기술적 실업" 의 위협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신기술이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낸다는 개념, 즉 "기술적 실업"

현재와 미래에 어떤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지 하나의 축이 되어

관련된 문제들을 꺼내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제시합니다.

일의 미래, 지능의 본질,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이유,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의 삶과 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지요.

 

 

옛날에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했던 바,

 2020년까지 약 510 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보면

  자동화, 기계화로 인해 기계에 밀려 인간의 일자리를 뺏길 거라는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하지만 의외로 그런 예상은 빗나가고 있으며

인간의 일자리를 통째로 잃는다기 보다 인간이 하는 '업무'

기계들이 대신하고 있음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기계가 사람이 할 일을 다 뺏어간다는 공포가 있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간의 직업이라는 건 다양한 업무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 업무들 중 몇 가지는 기계가 얼마든지 잘 해내긴 하겠지만

모든 업무가 아닌 더 많은 업무를 기계가 차지하긴 할 거라고.

그래도 어떤 일들은 또 인간의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여기에서 틀에 박힌 업무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로 구분하여

기계가 자리를 차지할 직업군과 인간의 노동이 여전히 남을 수 있는 직업군도 언급하죠.

전문직,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은 인공지능의 습격에서

그래도 경쟁력이 있는 직업일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 보면 또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예상과 다른 전개였어요.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신기술에 밀려난 것은 사실이지만

영원히 실업자 신세가 될 거라는 두려움을 뒷받침할 증거가 거의 없다는 게

인간의 입장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도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자리는 충분치 않다는 거.....

(좋았다가 우울해 졌다가.....감정의 롤러코스터.....%EC%9B%83%EC%9D%8C%20%EB%85%B8%EB%9E%80%EB%8F%99%EA%B8%80%EC%9D%B4)

일거리가 부족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는 현실은 덕분에 분명히 인식합니다...;

인간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이 현상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술적 실업의 문제는 굉장히 관련성이 깊지만

이러한 사회 문제를 넘어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으로 저는

기술 진보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의미에 대해서 강조하는 부분들이었어요.




그 옛날 인간을 고용할 수요는 언제나 충분했다는 "노동의 시대" 가 이제는 끝났다는 책의 제목,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팩트겠지요.

하지만 기술 진보로 인해 줄어든 인간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략할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교육을 받은 숙련된 기술이나 인간의 복잡한 손기술이 필요한 일들, 인간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

자동화가 어려운 분야, 경험과 지식이 충분해야 하는 영역의 경우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들이어서 그래도 기계에 대해 인간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도 말하니까요.


​미래기술은 틀에 박힌 업무는 인간을 대체하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인간을 보완하게 될 것입니다.

 

 

 

책 후반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삶의 의미를 연결지어 풀어가는 결말은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부분과 닿아 있어서 생각하게 하는 좋은 흐름이었어요.

​인간이 해온 일을 이제는 기술이 잠식해 버리며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직업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라는 정확한 인식을 하게 해준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이것만도 제게는 인공지능에 대한 섬세한 지식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경제경영도서 이지만 인문학적으로 개인의 미래에 "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 걸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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