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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입문 ㅣ 니체 아카이브
베르너 슈텍마이어 지음, 홍사현 옮김 / 책세상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체가 즐겨 들었다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을 들으며
비장한 각오로(?) 책리뷰를 씁니다.
이 곡이 편하게 즐겨 들을만한 곡인가 저로선 의아해 하면서요....^^;
혹시나 저처럼 니체가 궁금해서 알고 싶어 들어오신 분들이라면 영화 스포 예고하듯 말씀드립니다.
평소 저의 책리뷰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책에 대한 이해와
책 내용중 일부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이번 책리뷰는 오롯이 제가 <니체 입문> 을 읽고 느끼게 된 감정과
니체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부분을 짚어볼 따름임을 말씀드립니다.
니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있긴 해도 책 제목이 <니체 입문> 이니까
좀 읽어볼만 하겠다는 기대감에 책세상의 신간을 만났는데요.
알고 보니 니체 전집을 출간했던 출판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니체 아카이브 그 첫권이었고
제게는 <니체 입문> 이라고 쓰고 니체 견뎌내기 입문서 라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었어요.
니체라는 철학자이자 작가를 알고 싶어서 그 동안 관련 책을 만나보려고 나름 노력해왔습니다.
니체 연구자가 이해한 니체의 사상을 현실적인 이야기와 버무려서
가볍게 조언해주는 형식으로 어렵지 않게 읽혀졌던 에세이를 만났던 경험이 있어서
이 책도 어려울거라는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었는데..... 
책세상의 니체 아카이브 1권 <니체 입문> 은 기존에 제가 만난 책과는 결이 다른,
니체가 살아돌아온 듯 생전에 했던 수많은 발언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접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습니다.
국제적인 니체 학술지 공동발행인이 소개하는 책세상 <니체 입문> 은
니체 연구의 동향이나 그의 저서를 소개, 요약하는 구성은 과감히 뺐어요.
<니체 입문> 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철학자 니체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니체의 사상을 알고 싶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많은 책들과 다르게
<니체 입문> 은 생전에 니체가 했던 말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가 철학하는 방식과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총 12개의 장 가운데 1장 니체의 삶과 경험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니체 입문> 이라는 제목의 책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니체의 삶과 경험이 모두 그의 사상으로 연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니체의 철학함이나 그가 사유하는 태도를 이해하는데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던 1장이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그가 철학하는 방식까지 곧바로 제게 전이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약해지는 내 모습.....
)
평범한 저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비범한 니체, 이참에 제대로 임자 만났습니다.
니체는 수백년, 수천년동안 믿어왔던 철학의 모든 영역을
뒤집고 파헤친 장본인이자 가장 논쟁적인 현대 철학자이지요.
앎의 희열을 경험하는 것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나름 용기를 내어 그 어렵다는 니체를 견뎌보겠다는 의지로 시작했고
니체의 생애를 소개한 1장은 어렵지 않으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1장의 느낌이 끝까지 가지는 않더라구요.^^;
힘겨운 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만족스럽게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도 없어요.
완독은 했으나 당혹감과 무력감으로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은 정말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연 진짜이긴 한건가...... 혼란스러움에 저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하게 만드는 니체.
하지만 이 책이 절대로 끝은 아니라.....
오히려 니체를 견뎌내보겠다는 용기를 다지는 시작이라고 저 자신에게 약속합니다!
주저함 없고 가차 없고 솔직하며 냉혹한 태도로
기존의 철학을 지배하던 전통적, 관념적 가치들을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마주하게 한 니체.
관점의 다양성을 제시했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필요성과 욕구를 갖게 했던 니체.
철학을 인간의 철저한 자기 비판의 도구로 받아들였던 니체임을 접하고 그의 생애를 만나보니
삶의 순간순간마다 사유하는 태도가 바로 그의 삶 자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1900) 는 목사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내면적으로 고독했고 그것을 또한 사랑했던,
바꿔 말하면 현실적이지는 못했던 성격인 것으로 보입니다.
거대해 보이는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나약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병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이후 정신착란에 이르기까지 질병은 니체를 지배해왔고
더불어 대학생 때 우연히 헌책방에서 접하게 된 강렬하고도 음울한 천재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를 읽은 후 완전히 지배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경멸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육체적인 고통까지 경험한 니체.
영혼까지 지배당하는 경험이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자신을 위해 쓴 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니체에게 이식되었고
그 경험이 이후로 니체에게는 다채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니체에게 임팩트있는 영향을 미쳤던 쇼펜하우어를 비롯하여 칸트, 랑게,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도스토옙스키 등등 동시대를 살면서 니체를 스쳐간 사람들로 인해 영향을 받았고
그들과의 관계나 질병으로 인해 위기 상태를 경험하면서
니체로 하여금 철학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믿음에 구속되지 않고 인식의 속박에서 해방되고자 자유로운 정신을 얻는 과정에
아이러니하게도 니체의 질병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전에 읽었던 니체 전공 교수님의 에세이를 통해 제가 기억하고 있는 니체의 철학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위기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거라고.
고통은 그야말로 인간의 조건이기에 고통스럽다고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인간을 덜 힘들게 하는 거라고.
전에 읽었던 니체에 관한 에세이와 <니체 입문>의 겹치는 지점을 발견한듯 하네요.
이해해가는 징검다리를 만난 기분입니다....
니체가 모범적인 설교자인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전달했던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같은 개념들은
사실 이 책의 10장에서 나름 자세하게 언급해주고 있지만
머리속이 하얘지게 만든 주범이 바로 이 10장이었다는.....ㅠㅠ
더 절망적인건 이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철학시라 말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소개된
몇가지 개념들이 니체의 철학을 충분히 설명할 수도 없을만큼
니체가 사유한 철학적 주제들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니체를 알면 알수록 블랙홀에 빠져드는 듯한 이 기분,
왜 니체가 어렵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제서야.... 
너무나 어렵지만 니체의 철학함(사유하는 태도와 방식) 을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니체만큼 깊이 사유하고 인간 삶을 통찰하지는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저는 조금씩 현명해지고 성숙해질거라 믿고 싶어서요.^^
현명함에 대한 니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인상깊었는데요.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한 삶의 경험들로부터 이 삶을 안정되고 느긋하게 만드는
어떤 앎을 획득했다는 것을 니체는 현명함이라고 보았다는 거죠.
니체 자신이 이렇게 현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니체에게 삶의 전체 문제중 일부였던 병고를 경험하는 일이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게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결국 현명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으로 인한 고통이 니체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힘들게 했고
정신적으로 극도의 우울을 야기했던 것이 그의 철학함에 의미 있고 유익하게 작용했던 것이죠.
니체 개인의 경험으로 인간 삶의 보편적인 통찰을 이끌어 내고
또한 독자나 일반 사람들에게 계속된 자기극복을 강조하면서
직접적으로 어떤 가르침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자신의 책이 가진 의미를
발견하기를 격려했던 사람이었어요.
영원한 독자로 남고자 하는 한사람으로서 니체가 독자에게 기대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니체는 자신의 책을 서둘러 읽는 사람은 절망에 빠질 것이라며
시간에 쫓기지 않게, 섬세하고 신중하며 느긋하게 읽는 법을 배우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그런 독자들만이 자신의 책들을 견뎌낼 거라고.
완벽한 독자를 원했던 니체,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내라는 독려는
독자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으로 기억해 두려구요.^^
책을 읽을 때 자신이 필요한 몇 가지를 떼어내고 나머지를 더럽히고 전체를 비방하는
독자를 니체는 가장 나쁜 독자라고 했는데
책 전체에서 이해가 안 되면 머리를 싸매고 있기 보다는
그냥 흘려 보내고 제가 이해되는 부분을 취하는 방식으로 읽어왔는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전체를 비방하지는 않으니 그래도 나쁜 독자는 아니다 자평해 봅니다.
다만 니체가 마한 것처럼 자신의 방식대로 전체를 일반화하고 확정, 해석하는 오류는
여전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다시금 해보았어요.
<니체 입문> 을 만나면서 니체 개인의 가족사와 정신적, 육체적 고통들,
그가 감당해야했던 고독이 고스란히 그가 남긴 말을 통해 느낄 수 있었고
내밀하면서도 사소한 니체의 삶들까지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니체의 사상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그가 사유하는 방식과 태도,
그가 세상과 인간의 삶을 꿰뚫고 강조했던 개념들은
아직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을만큼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철학자 니체.
니체의 책에 대한 경외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니체가 말한 것처럼
정신적 자극을 주는 책들이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기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영원한 독자로 남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유념하고자 합니다.
이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용기내어 읽을 적기인거 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