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세금공부
조문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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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정리한 리뷰입니다.


“돈을 잃지 않는 것이 최고의 투자다.”

조문교 세무사의 <최소한의 세금공부>의 책 표지에 있는 이 문장이 단번에 시선을 붙잡았다. 단순한 문장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평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경제적 통찰이 담겨 있다. 돈을 벌기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는 말은 이미 익숙하지만, 정작 세금 앞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세금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막막함의 문턱을 낮춘다. 사회 초년생부터 직장인, 자영업자, 그리고 은퇴를 앞둔 세대까지 각자의 상황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세금의 기본을 일상 언어로 풀어낸다. 세금이란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걷어가는 돈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불하는 ‘공동체의 유지비’라는 시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불쾌감보다는 납득이 따라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금을 ‘눈에 보이지 않게’ 나누어 징수하는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가 매달 급여에서 세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정작 얼마를, 왜 내는지 모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책은 그런 ‘보이지 않는 돈의 흐름’을 드러내며, 조세저항이 생기지 않도록 설계된 세금 시스템의 이면까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덕분에 그동안 막연했던 세금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하나의 지도로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세금을 단순히 ‘줄이는 법’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납부하는 법’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세금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의 균형선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실제 사례를 통해 연말정산, 부동산 거래, 사업소득 신고 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놓치기 쉬운 포인트를 짚는다. 그 설명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 마치 세무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복잡한 세금용어 대신 ‘이럴 땐 이렇게 하면 된다’는 실질적인 해법 중심의 구성 덕분에, 숫자에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물론 저자도 말하듯, 세법은 정권마다, 혹은 매년 변한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이 절대적인 기준일 수는 없다. 하지만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로서는 더없이 훌륭하다. 세금의 세계는 방대하고 복잡하지만, 그 기본 골격만이라도 알고 있으면 불필요한 손해를 막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세금을 ‘공부’라기보다 ‘생활 상식’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읽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닥칠 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회 초년생이 첫 연말정산을 하고, 부동산을 사고팔며,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증여를 고민하고, 은퇴 후 상속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세금은 우리의 인생 여정 곳곳에 스며 있다. 이 책이 그 모든 단계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단번에 읽어내려가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는 참고서처럼 곁에 두는 것이 좋겠다. 세금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리감이 점점 줄어들고, 어느 순간 “이건 알아두길 잘했어”라는 안도감이 따라올 것이다. 세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최소한의 세금공부>는 그 현실 속에서 우리를 ‘호구’가 아닌 ‘현명한 시민’으로 만들어주는 든든한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돈을 벌기 위한 공부’보다 ‘돈을 지키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재테크의 시작이 통장잔고가 아닌 세금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치있는 독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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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실수
강지영 지음 / STORY.B(스토리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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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네 터전을 다오. 내가 뿌리 내리게.”

이건 단화의 절박한 외침이면서 강지영의 신작, <양의 실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누군가는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의 모든 인연에 집착하고 발버둥친다. 그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혼란과 분노, 그리고 서늘한 연민이 페이지마다 스며 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복수극이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줄거리나 반전을 설명하기보다, ‘읽는 체험’ 자체가 중요하다. 읽는 내내 마치 불안한 꿈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미세하게 뛰었고, 눈앞이 좁아지는 듯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



비위가 약한 나로서는 몇몇 장면이 분명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극은 단순히 ‘폭력적인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오는 감정적 충격이었다.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들, 예컨대 ‘질투’, ‘후회’, ‘무력감’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그 불편함이 이상하게도 통쾌했다.


특히 작가는 인물의 내면을 묘사할 때 놀라울 만큼 섬세하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게 되는 기이한 공감 속에 빠져들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공감할 수 있었다. 소설속의 극악 무도한을 이해하는 감정이 스르륵 생겨났다. 이런 감정의 미묘한 층위를 정확히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 깊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 한켠에서 이상하게도 해방감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복수가 끝났는데, 그 끝에 '제피'라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복수라는 행위가 가진 파괴적 힘 속에서, 작가는 ‘인간다움’이라는 역설적인 온기를 건져 올린다. 그리고 그 온기는 오래 남는다.


나는 강지영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양의 실수>를 통해 그녀의 세계를 엿본 지금,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짜는 기술보다 더 깊은,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결을 다루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장을 넘길 때마다 숨이 막히고, 그 숨막힘 속에서 묘하게 위로받는 경험. 그게 바로 <양의 실수>가 준 가장 큰 감정이었다.



결국 이 책은 이렇게 요약된다.

기괴하고, 궁금하고, 통쾌하다.

그 세 단어가 내 독서의 모든 체험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기괴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다.


"모든 우울증의 시작은 크고 작은 모욕감이라고 했다. 잠들기 전,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 조금 오래 샤워하는 날, 우울증 환자들은 지난 모역과 수치를 되새김한다. 그래서 불면증이 생기고, 택시를 타고, 헐레벌떡 젖은 몸을 털어내며 자책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뭐가 그렇게 겁나요. 내가 있잖아. 괴물, 좀비, 미친년 유양이 다 해결할 텐데 긴장 풀어요."


"나는 강의 부탁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내게 필요한 것을 쓱스럽게 요구하고, 빈손으로 찾아온 날 박대하지 않았다. 케이크를 사 오는 일은 없을 테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모두를, 그리고 모든 걸 용서한 강은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나 또한 내게만 충실한 사람이었다. 모든 문제와 상황을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매듭지었 왔다. 대게는 회피였지만 이따금은 살인이 되기도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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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 굴레 출판사 - 영상화 기획 소설
현영강 / 잇스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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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굴레’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짐승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머리에 씌우는 고삐’다. 단어 하나에 이렇게 묘한 감정이 깃든 경우도 드물다. 억압과 통제를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삶을 유지하게 하는 최소한의 질서이기도 하니까. 인간에게도 이런 굴레가 있다. 가족, 사회, 관계, 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마음의 족쇄들. '잇스토리'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세 굴레 출판사>는 바로 그 인간의 굴레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 ‘미생’은 3일마다 시력을 잃는 저주를 안고 살아간다.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경계 위에서 그는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고, 우연히 발을 들인 ‘출판사’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과거의 꿈인 작가로 데뷔할 기회를 얻는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나 미스터리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직장인이 저주에 걸렸으나 갑자기 나타난 출판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글을 원하는 현대판 무협지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여기에 인간의 결핍과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그려넣었다.


책 속의 출판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작가는 이 안의 인물들을 통해 문학과 현실, 창작과 존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미생이 마주한 인물들, 어느날 갑자기 최고의 아군이 된 팀장과 3일에 한번씩 연차를 신청해도 받아주는 사장, 그가 20대에 치기 어리게 쓴 글을 담박에 알아본 '세굴레 출판사' 편집장, 그리고 정체가 미묘하지만 굉장한 외모의 재력을 소유한 '세굴레 출판사' 사장까지 그의 글에 한번에 매료된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욕망의 생명체인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이 작품이 신선했던 이유는, ‘신인 작가’의 첫 작품에서만 느껴지는 날것의 에너지 때문이다. 문장이 조금 거칠고, 결말이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아니라, 지금 막 세상과 마주한 작가의 호흡처럼 느껴진다. 세상을 향해 첫 목소리를 낼 때의 설렘, 그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꾸어볼 꿈일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는 일. 작가 이 작품에서 그 꿈을 그려낸다.


<세 굴레 출판사>는 이름처럼 굴레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굴레는 단지 속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무게이자, 동시에 벗어나야 할 과제다. 미생의 저주는 결국 그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불완전함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우리도 모두 저마다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굴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조금은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길목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읽힌다.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때,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을 믿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세 굴레 출판사>는 신인의 서툰 문장 속에서, 의외로 단단한 메시지를 남긴다. “굴레는 우리를 묶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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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 비트코인을 뛰어넘는 새로운 화폐 혁명의 시작
이지민.이은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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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은 제목부터가 낯설고, 묵직하다. 솔직히 말하면 ‘코인’이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돈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무지를 인정하고, 요즘 부쩍 돈과 경제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미 현금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비트코인’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이라니.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지만, 이 책은 그 낯선 세계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451페이지라는 두께부터 압도당했다. ‘이걸 내가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건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확 왔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언어였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코인의 한 종류’가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 금융의 판을 바꿀 수도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트코인처럼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이름처럼 ‘안정성’을 목표로 한다. 달러나 금 같은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시켜 급격한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블록체인의 개념과 작동 원리도 조금씩 감이 잡힌다. 예전엔 마치 기술자들만 아는 복잡한 코드 세계 같았던 블록체인이, 사실은 ‘신뢰’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신뢰 위에 세워진 새로운 화폐다. 그리고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디지털화폐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대한 분석도 흥미로웠다. 여전히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했지만, 기술력과 투자 열기, 그리고 금융 규제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코인 투자서’가 아니라, ‘돈의 진화사’를 기록한 책에 가깝다.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왜 돈이라는 개념을 계속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물론, 나는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경제나 코인 흐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주 유익한 데이터와 인사이트의 보고일 테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 많았다.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은 뒤 ‘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감각이 남았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세상의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안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에 대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세 번쯤은 더 읽게 될지도 모른다.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대에 도태되고 싶지는 않다.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은 이런 나 같은 ‘경제 문외한’에게도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어렵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고 결국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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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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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제목부터 심장을 두드린다. ‘미쳐가고 있다’는 고백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매일 지구의 온난화 시뮬레이션을 바라보며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한 과학자의 실존적 외침처럼 느껴진다. 케이트 마블은 이 책에서 기후 위기를 숫자와 데이터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과학의 언어를 넘어 인간의 감정으로, 지구가 겪고 있는 ‘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병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묻는다.


책의 첫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멸망이 눈앞에 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 문장은 현재의 기후과학자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지구의 이상 기후, 녹아내리는 빙하, 사라지는 생명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위기’보다 ‘편리함’을 선택한다. 이 책은 그 무관심과 안일함을 향한 그녀의 절규이자, 마지막 호소처럼 읽힌다.


이야기는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애도, 놀라움, 자부심, 희망, 사랑’의 아홉 단계로 나뉜다. 단순히 과학적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겹겹이 쌓인 서사 구조다. 각 장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와 삶의 단면을 겹쳐 보여준다. 기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희망’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의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공존한다.


그녀의 문체는 놀라울 만큼 흡입력이 있다. “관찰이 업인 과학자는 이미 시인이다.”라는 어느 추천사의 말이 딱 맞다. 데이터와 통계 속에서도 그녀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량의 곡선을 설명할 때조차 그것을 ‘죽음의 곡선’으로 표현하며, 지구의 울음을 시각적으로 들려준다.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시인이자 인간으로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 문장 사이사이에 진하게 묻어난다.


읽는 내내 ‘이토록 절박한 과학자의 목소리를 우리는 왜 심각하게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단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의 무게다. 컴퓨터 앞에서 미래의 기후를 시뮬레이션하며 멸망과 희망을 동시에 보는 그녀의 절망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지구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그래서 미쳐간다.


책의 표지도 그 감정을 완벽히 담아낸다. 푸른 빙하와 두개의 붉은 태양아래 늘어선 지구의 모습들이 담긴 커버는 마치 지구의 현재를 상징한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살아 있으나 병든 행성의 초상 같다. 그리고 희망을 섞어넣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단순히 환경문제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건 인간의 무감각에 대한 고발이자,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케이트 마블은 독자에게 ‘우려’를 멈추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걱정만 하는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지구는 이미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군가는 재활용 쓰레기 하나를 더 분리하고, 누군가는 불필요한 소비를 멈출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녀의 미침은 절망이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그리고 그 열기는,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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