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5.18 - 다시 읽는 5.18 교과서 질문의 책 23
김정인 외 지음, 5.18기념재단 기획 / 오월의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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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월은 노무현 대통령의 10주 기일 되는 해이고,
내년은 518비극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비극의 싹은 꽃을 피워 지지 않은 채 하늘만 무심하게 바라본다.
비극의 꽃을 지고, 그 뒤에 희망이란 열매를 그리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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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막 2019-03-26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그리 되었군요 이래저래 슬픈 봄이지만 그아래 숨어 있는 희망을 우리는 보았다고 생각해요

만화애니비평 2019-03-26 09:01   좋아요 0 | URL
희망은 절망의 형제인듯 합니다.
 

518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 들어와서 다시 큰 화두로 되었다. 19805월에 일어난 비극은 이제 2019년이 되어 39주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내년 2020년은 40주년이 되어 간다. 그 당시 태어난 이들도 이제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이제 어른이 되어 그들에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518에 대해 어째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민주화 운동이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태 즉 소요사태로 보는 이들도 있다. 나는 민주화나 사태보단 개인적으로 학살에 가깝다고 본다. M16으로 무장한 군인, 거기에 장갑차와 헬기까지 출동하는데, 고작 저항했다고 M4카빈 10개이든 100개이든 그게 상대가 되겠는가?

 

처음부터 고속도로에 최초모델 티코와 최근 제네시스를 가지고 경부고속도로 누가 먼저 돌파하는가? 하는 퀴즈를 내는 것과 같다. 게다가 티코의 연료는 E를 가리키는데 제네시스는 F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국 개입설을 주장하는 일파가 있다. 군대를 갔다 오는 이라면 당연히 생각한다. 국군의 체계에서 단순히 한국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과 같이 엮이는 경우가 많다. 매년 더운 8UFC(을지 포커스 레인지)라는 훈련을 뛰면 한국만 아니라 미군 역시 같이 동참한다. 한국에서 전쟁은 한국군이 아니라 미군도 같이 공조한다.

 

내가 군생활하던 시기 우리 부대 안에 미군기지가 있었고, 미군도 존재했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미군은 우리 기지를 전초기지로 삼아 보급과 전투지휘를 위한 체계를 잡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만큼 미군 아니 더 나아가 미 국무부, 국방부, 상세하게 CIA518 그때 일을 모를 일이 있겠는가? 미국의 기밀문서 보존기한이 해제되면서 518 당시 미국의 정보들이 공개된다. 그 당시의 정보를 보면 다들 북한과의 무관함을 증빙한다. 하지만 아직도 518의 문제를 북한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중가요가 국내에서 금지되고 북한에서 허용된 적이 있어 그런 것인가?

 

그런다고 북한에서 민중 그 스스로 북한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이나 민주화운동을 실천했는가? 노동운동과 관련된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종종 울린다. 독재와 노동운동이 밀접한 관계에서 시작한 한국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적어도 독재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은 유사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었다. 피로 물들어진 5월의 슬픔은 아직 우리에게 떠나지 않았다. 최근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꽃보다 더 고운 맵시를 가진 그 소녀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빼앗겼다.

 

꽃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진보 몇몇 단체도 있지만, 꽃이란 이름은 진달래꽃처럼 아기자기 하고 다정하고 늘 우리 곁에서 미소지어주던 그런 분들이다. 그런 봄날의 진달래꽃이 무참히 뿌리까지 뽑히고, 그들은 평생의 한을 지니다가 눈물이 마른 채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1940년 전후인데, 40년 뒤인 광주의 한은 오죽할까? 예전에 광주 518망월묘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머리에 하얀 백발이 들어선 할머니 몇 분이 묘역에 앉아 묘지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그 누구의 아내일까? 어머니일까?

 

TV나 신문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며, 묘비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들이 40년 전의 일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들을 학살하던 이들을 옹호하고, 오히려 학살자들의 가족을 두고 진짜 유공자인지 아닌지를 가리자라고 말하는 부류가 있다. 죽음 앞에서 당사자는 말은 없으나, 죽은 자들의 주변사람은 평생 한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가슴은 이미 가족의 죽음에서 죽었고, 그들의 죽음을 진상하려는 시도조차 밟아 또 죽었고, 또 다시 그 죽음을 모욕한다.

 

사람이 살아생전 누군가 크게 다투고 원수로 남게 될 일이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자신 스스로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면 된다. 상대방도 살아있다면 용서를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 베풀 수도 없다. 5월의 죽음을 모욕하는 행위는 바로 죽음 자에 대한 용서를 바랄 수도 없는데, 그 이상으로 망자를 모욕하기 때문이다. 망자의 모욕과 치욕은 살아남은 가족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고인을 모욕한다면 고인은 죽었기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온다.

 

518 유공자와 당시 가담하던 살인자들의 분류가 비공개라서 옭아매는 행위는 참으로 우습다. 이태까지 부정하다 최근에 헬리콥터로 사격을 실시한 사진과 증거가 공개되었다. 칼빈 소총이 헬리콥터에게 어찌 이길 수 있는가? 하다못해 공군기지 전투기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증거가 넘쳐 남는데도 아직도 망언과 망언에 대한 책임회피는 여전하다. 518의 비극은 죽음과 은폐만이 아니라 국가가 그동안 저지른 내분도 책임이 있다. 518 당시 희생자 가족을 매수하려고 했다. 일부 그런 자가 있어 그것을 이용한 것도 역시 국가이다. 세월호 비극을 가지고 유가족들이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가지고 배상금 흥정하려 했다는 말을 만든 것도 국가였다.

 

국가란 결국 그 자체를 운영하는 정부의 도덕성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의 운영을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국민의 정치적 참여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촛불정권이라 하나 사실 100%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현재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나 또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전의 정권이 유지된다면 어찌 되어야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 역시 두렵다. 지금 어느 당이 일으킨 문제를 두고 전의 정권이라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넘어갔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런 막말을 하는 인간이나 그것을 두고 옹호하는 인간이나, 그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버젓이 존재하는 것도 경악할 일들이다. 독일이라면 나치옹호론자를 가만 두지 않을 터이나, 아직 우리에게 그런 강력한 제재 방안을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518 내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그 당시 권력자는 그들이 잡으려고 한 인물만 괴롭힌 게 아니라, 그 가족을 잡아 고문했다. 늘 감시하고 문초하고 행패를 부린 그들이 이제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말하고 보수의 가치관을 말한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말할 것 같으면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그만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조선의 정통성을 밟은 것은 그들의 시작점에 있던 그들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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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9-02-14 10:59   좋아요 0 | URL
적대심, 내지 색깔론을 이용한 정치적 공략이죠. 이제 통할 시기도 지났는데 아직도 집착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뇌는 이미 30년 전에 멈춘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2-14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한정하려는 역사인식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물론, 광주, 전남 지역의 움직임이 컸지만, 신군부 세력 퇴진을 위한 전국적인 투쟁이었다는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지 않는 이들의 역사관이 문제라 여겨집니다. 전국적인 투쟁 속에서 광주시민과 전남 도민의 희생이 컸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상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9-02-15 08:4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대신 겨울고양이가 눈에 들어오나, 이른바 부채의식....
다른 곳은 몰라도 광주전남 일대가 피바다가 된 사실에 지식인들의 고통을 자주 보곤합니다. 작금의 지식인들은 거의 엘리트화 관료주의가 되어가고 있어 걱정입니다.
진보의 가치는 인륜의 합목적성이지 그들의 희생위에 권력을 잡은 게 아니니 말이죠...

나그네 2019-02-1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518때 시민군이 장갑차 가지고 있었고 TNT 폭탄 수백톤 광주시청 지하에 매설해 놓았고
탈취당해서 시민군이 무장하고 있었던 칼빈소총이 4000여정 기관총, M16소총 100여정까지
가지고 있었다는건 알고 있냐? 헬기 사격? 웃기고 있네 헬기에서 기총소사하면 얼마나 피해가
크게 발생하고 얼마나 넓은 지역에 총알이 날아가 박히는지 알기나 하냐? 영화나 방송에서
산에다 쏘니까 조그마한 공간에 총알 박히는것 같지? 축구장 반개 정도에 박힌단다.
그리고 헬기에 장착된 무장으로 사격하면 총알 맞은 시신은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게된다.
근데 518때 그런 사망자나 그런 사격 결과가 있었냐? 소설 쓰지마라
당신 말대로 광주는 진행형이야 왜냐하면 아직도 칼빈소총으로 시민들 살해한 살인자들
찾지 않았거든 그 살인자들 지금 광주시내 활보하고 있을건데 잡아서 법정에 세워야지
그거 아니 광주 사망자중에는 어떤 미친놈이 평소에 원한을 품고 칼빈소총으로 일가족 몰살한
경우도 있었다는거.. 궁금한건 그사람들 망월동에 묻혔을라나? 유공자 일라나?
칼빈소총으로 살인한 살인자 찾아내고 칼빈에 사망한 사람, 차에 치여죽은 사람, 광주에 한번도 안가본 사람 색출해서 유공자로 지정되어 있으면 제외해야지
그래야 정말 민주화 유공자 명예가 살고 광주의 한이 풀어지지 안그러냐?

만화애니비평 2019-02-19 19:33   좋아요 1 | URL
병신새끼 자신이 없어서 나그네 하는 아이디 달랑 하고 그런 개소리나 하나?
나이 먹고 쪽팔리지 않나 병신아
그래 살다 가라
 
[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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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2017년 추운 2, 아버지는 담도암 투병 중 건강이 악화되어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은 이미 복부까지 확대하여 복수(腹水)가 차고 있었고, 종양의 세포는 소화기관이 아닌 대뇌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2016년 말부터 이미 나는 아버지가 더 이상 오래 사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다. 20171월에 장례식장부터 미리 알아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2월 중순, 발렌타인데이의 달콤한 초콜릿 기운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버지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3일 동안 보낸 후 화장터를 거쳐 납골당까지 안치한 후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나는 집안에 아버지 물품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잘 몰랐으나, 집에서 내가 컴퓨터를 하는 것을 보고, 가끔 인터넷을 하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노트북까지 구매하여 직접 본인이 사용하고 있었다. 노트북은 대략 3번 정도 사신 것 같다. 배를 타고 먼 바다를 건너 해외를 돌 때, 남는 시간에 하랄 것 없이 있는 것보다 컴퓨터로 워드도 쳐보고, 동영상 등을 보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노트북을 처분하기 위해 노트북 내 파일을 정리하고, 외장하드 디스크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보는 도중에 파일명이 형과 나에게 보라는 한글작업파일이 있었다. 읽는 동안 나는 잠시 멍하게 있었다.

 

만일 밖에서 본인이 죽게 되면, 자신의 신원이 확인되면 시신을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 달라는 것이다. 파일생성 시점은 2014년이나, 아마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가진 것 같다. 다행히 형에게 자식이 생기자, 아버지도 그런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면 향년 72세 동안 배를 타던 40년 이상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 것이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세계와 전혀 다른 생활을 한다. 나는 가끔 지금의 한국을 볼 때마다, 혹은 그 과정을 볼 때마다 회의감을 느낄 때가 참 많다. 전에 와이프하고 대화 중에 내 이야기 중에 90%가 부정적인 내용이라 말했다.

 

고등학교부터 알고지낸 친한 친구가 말하길 나보고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런 점을 알고 있다. 내가 다소 냉소주의적인 인간이란 사실을 말이다. 냉소적인 가치관이 생긴 시기는 대학교 초반까지는 아니다. 어릴 시기야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고, 중고교 시절 역시 입시로 바쁜 시기이니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흐름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해외에서 배를 타다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화물선 내 크레인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물을 실거나 혹은 선박을 수리할 때 갑판에서 선원이 화물을 조작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선박 위에서 작업은 참 위험하다. 육지와 달리 바다는 평평하지 않으며, 파도가 몰아치면 큰 바다에서 평균 5m 내외의 파고가 형성되며, 바람의 세기도 역시 강력하다. 사람의 평형을 무너뜨리거나 또는 물체의 평형도 흔들어 버린다. 크레인작업을 하면 크레인 붐이 있고, 그 붐은 매우 무겁고 단단한 금속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런 환경에서 작업하다 무릎에 크레인 붐을 맞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이야기 듣기론 무릎 연골과 뼈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뼈와 근육이 심하게 손상되고, 손상부위로 출혈이 시작된다. 게다가 작업환경이 쾌적하지 않아 땀이나 금속파편, 바닷물이 환부에 들어가면 심한 조직괴사가 시작된다. 매우 급한 상황이다. 2003년 정도 일어난 일로 기억난다. 헬리콥터가 날아와 공수하여 수술하고 다시 집 인근에 있는 일반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몇 개월 입원 후에 퇴원했고, 후유증은 길게 남았다. 2003년 군입대를 한 나는 2004년 다음해 휴가를 받아 나왔고, 아버지는 다시 배를 타고, 집에 쉬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여 집에서 휴식할 때까지 생각하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일은 어릴 때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은 그저 수험준비에 충실히 하면 되나, 대학시절은 달랐다. 아버지와 대화를 해도 될 만큼 시간과 정신적 성숙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가난한 생활에 고생한 점, 귀가 잘 안들리는 이유도 잠수작업 중 고막이 나간 점, 손발이 모두 갈라져있었고, 발은 동상후유증이 남아있었다. 피부는 온갖 화상자국이었고, 심장까지 좋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조리를 말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부조리한 대우를 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원래 세상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비참한 삶을 보고 듣던 나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세계가 아닌 빌어먹을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냉소주의적 인간이 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본인의 삶과 동시에 본인의 삶과 가치관을 형성시킨 사회적 여건, 그리고 특히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말한 원래 세상은 그렇다를 어느 책에서 볼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이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중증외상환자를 대하는 이국종 교수가 어느 날 한겨례 기자가 1주일간 병원의 현실을 보았다. 이국종 교수에게 도대체 세상은 왜 그렇죠?”라는 질문에 이국종 교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원래 세상은 그래요라고 한 것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간단하다. 우리 일상은 산업화시대가 이루어진 60~70년대와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우리는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하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는 정해진 시간에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버스배차 시간조차 넉넉하지 못하기에 삶의 순환은 정해진 사이클이 어느 정도 있었다. 차량을 가진 사람도 귀했고,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시간 역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21세기 민주주의 시대로 오면서 무엇이 바뀌는가? 전국에 자동차 대수는 전 국민 인구의 반이 도로를 달리고, 밤의 편의점은 간식을 사러오는 학생, 맥주 캔을 사러오는 젊은 친구들이 넘친다. 예전에 밤 10시만 되면 어둠으로 넘치는 도시의 전경이 이제는 전기 빛에 의해 환한 야경을 만들어낸다. 여수밤바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여수시의 자연환경이 좋아도 밤의 조명이 없이는 야경은 없는 것이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이미 24시간의 서비스가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24시간 운영체계를 돌리기 위해 단순히 산업만 아니라 국방, 의료, 교통, 소방, 경찰, 에너지 등 다양한 국가인프라가 충원되어야 했다. 범죄는 낮보다 밤이 많고, 교통사고 역시 낮보다 밤이 심하다. 음주가 밤에 이루어지고, 밤의 시야가 좁기에 교통사고는 항상 밤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사고가 나면 소방과 경찰이 출동하고, 이후로는 의료시스템이 운영된다.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연휴를 즐기지만, 의료와 소방은 응급환자의 치료를 위해 시스템을 구비한다. 결국 24시간 운영, 비상시의 응급처치, 거기에 필요한 수도와 전기 등 에너지 인프라를 구비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노동력을 투여하여야 한다.

 

문제는 24시간 인프라운영에 소요되는 인력이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한 점이다. 최근 안타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 중 기계에 의해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고이다. 그의 죽음을 보고 나는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산업재해로 해마다 사망하는 노동자는 천 명을 넘고, 산업재해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수천 내지 수만이다. 가족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옆에 가족들은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친구들도 그 일로 고통 받는다. 얼마 전 윤창호라는 청춘이 음주차량에 의해 운명을 달리한 사건이 있었다. 친구들이 직접 나서서 윤창호법을 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멀쩡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차에 부딪히고, 건물잔해 깔리는 일이 있는데, 그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비교조차 어렵다. 최근 일어난 김용균 씨의 죽음, 그리고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고등학생 기사를 보니 참 마음이 심란하다. 201512월 내 친구가 일하던 공장 폐수처리장에서 황화수소가 새어 결국 폐와 뇌가 손상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21조로 근무해야 하고, 근무 중 안전과 관련된 장비를 장착하여야 한다. 그러나 전혀 되지 않았다. 그것도 날 좋은 크리스마스 연휴에 봉변을 당했고,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친구는 얼마 참지 못하고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산업재해로 친구를 잃었다. 하청노동자인데, 그 하청업체에서 재하청을 준 업체가 있다. 그 업체에 대한 지원근무를 나갔고, 결국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 노동자의 환경에 근무하면 참 어렵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고 보통사람이라면 생각조차 못할 상황이 많다. 장례식을 치룰 때는 양력으로 계산했지만, 기일은 음력으로 지낸다. 올해 기일은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크리스마스는 와이프 생일이지만, 올해는 친구의 기일이었다. 어째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는지 말이다. 이국종 교수는 잘 알았다. 언제나 자신에게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이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든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또는 농민, 어민 같은 사람들이란 점을 말이다.

 

특히 해군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본인도 해군에 근무했고, 해군 내지 해병대 훈련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심각하다. 공군출신인 나로서 예하비행단에서 근무하여 좋은 인프라를 누리고 있었지만, 해상에나 혹은 육지에서 먼 도서(島嶼)에 배치되면 의료지원시설이 빈약하다. 특히나 해병대 부대원이 근무하는 연평도 주변의 군사분계선 인근은 헬리콥터가 제대로 날지 못한다. 일정 고도 이상을 비행하면 북한군의 사격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 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친 외교정책이 불만일지 모르나, 전방에서 근무하는 장병이나 주민들에게 생명의 기로를 나누는 지점이다.

 

골든타임과 골든아워, 사실 타임(time)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이국종 교수가 그 말은 틀렸다고 한다. 계속 골든타임이라고 말하는 언론에서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이런 문구가 생각난다. "What time is now", 결국 현재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분류에서 현재상황만 말하는 게 타임일 것이다. 하지만 아워(hour)는 시간의 흐름이다. 사고가 발생하여 의료진에게 도달하거나 또는 병원외상센터에 도달까지일 것이다. 외상환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출혈이 많다. 온 몸의 혈액이 2L 내외이다. 혈액의 일정이상 손실되면 쇼크로 기절하고, 그 이상일 경우 사망한다.

 

외상환자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외상은 머리이겠지만, 한편으로 내장기관이다. 대장과 소장, 항문으로 이어지는 소화기관에서 분변이 노출되면 다른 내장기관을 오염시킨다. 특히 패혈증 증세는 세균이 혈액 안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부패하게 하고, 다시 빠르게 증식하여 온몸을 괴사시킨다. 분변이 간이나 신장 등 다른 장기에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장기파열이 되면 출혈을 멈추게 하고, 최저한으로 절개하는 것도 시급하다. 수술 후에도 중증외상환자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나 역시 직접 목격했다. 아버지가 무릎이 나가자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특히 잊을 수 없는 일은 할아버지 제삿날 친척이 모였는데, 제대로 무릎을 꿇지 못한 점, 그리고 큰절도 제대로 올릴 수 없는 것이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심한 모욕감을 말을 뱉었고, 나는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당해온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밤에 불을 끄고 침구 위에 누워있으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생각날 때마다 바로 잠이 들 수 없다. 하물며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사람은 오죽할까? 더 일찍 발견하고 더 일찍 의료진이 도착하면 죽지 않았을 목숨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의 안전의식은 부족하고 안전은 돈만 축내는 것으로 여긴다.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그 보상비와 합의금만으로 타격이 크다. 중소기업은 폐업을 해야 하고, 소규모 건설회사는 입찰을 할 때 벌점이 부여되면 결국 사업을 접는다. 다들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실패한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어쩌야 하나?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국종 교수가 전에 동영상으로 찍힌 모습을 보았다. 무전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신경질 내며 바닥에 내려친 것을 말이다. 누군가 말할 것이다. 왜 무전기를 그렇게 하는지? 핸드폰으로 하면 되는 게 아닌지를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이다. 가령 경찰에서 무전을 사용하면 그것은 비밀로 관리된다. 경찰의 무전을 만일 범죄자들이 알면 도피하기 좋을 것이고, 오히려 경찰관을 습격할 것이다. 또한 교통사고를 났을 때 사고차량을 끌고 가는 특수차량이 경찰차 및 구급차가 오기 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최근 경찰무선을 도청하여 사고현장의 차량을 먼저 견인하려던 차주가 구속되었다. 소방과 경찰 그리고 비상무선을 누가 함부로 들어서는 안 되고, 이용해서도 안 된다. 무전기를 보급 받아 사용하는 것은 비밀의 문제이다. 군복무 중 나는 관제탑과 교신을 하여 활주로 내부로 진입한 적이 있었다.

 

부사관으로 근무할 때 핸드폰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핸드폰으로 관제탑과 교신한 게 아니라 TRS, 무전기를 가지고 교신했다. 게다가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학교는 인근에 공군기지가 있고, 공군기지가 위치하면 공군관제타워와 교신을 해야 한다. 헬리콥터가 마음대로 이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방청에서 나온 헬리콥터라도 조종사가 내가 날고 싶어도 나는 게 아니다. 관제통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무전기를 박살내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비상사태 통제시스템이나 응급구조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중증외상환자는 11초가 아까운 사람이다. 시스템의 미비로 시간이 지연되면 결국 그 사람은 운명을 달리한다. 다른 병원에서 제대로 환자를 받아주지 못해 몇 시간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아주대학교 외상센터 올쯤에 이미 사망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은 없으나 죽은 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평생 한으로 남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돈과 지위, 명예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명예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 명예란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상환자의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다. 피가 온 몸을 적시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눈도 실명되어 가고, 어깨도 망가졌다.

 

자신을 받쳐주던 인력도 정해진 인원의 1/3 수준이다. 그마저도 있기에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내 아버지는 2003년 정도이니 한국에서 외상센터가 거의 걸음마 수준에 당했다. 외국 외상구조시스템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국내 연안에 정박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특히나 인천 앞바다라면 말이다. 바다라는 공간이 진짜 그렇다. 이국종 교수가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여러 일이 있었다. 북한귀순병사의 구조도 있었지만, 최고의 이벤트는 석해균 선장의 구출이다. 총알을 배와 다리를 관통하여 삶조차도 포기해야 하던 그 다급함, 해적의 무서움은 정말 두렵다.

 

석해균 선장납치 이후 이국종 교수가 국내로 데리고 와서 결국 회생할 때, 많은 한국인들은 감동의 도가니로 넘쳐났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선원들이 원래 해적에게 납치가 많이 되, 배를 타는 사람이니 험하게 다루지 않은데, 저런 일이 있네. 나도 2번 납치된 적이 있었다.”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 나는 내 방에 들어와서 혼자 몰래 울었다. 이국종 교수의 말처럼 석해균 선장이나 혹은 우리 아버지가 같은 사람이 있기에 한국이 돌아가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석해균 선장이야 이명박 정권의 기획적인 요소가 많았다. 에어-앰뷸런스 대여나 의료장비 공급 등에서 정부의 도움보단 본인의 희생이 많았다.

 

죽어도 타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와서 죽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행히 석해균 선장은 살아났고, 이국종 교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정작 외상환자를 위한 정책을 멀게만 느껴져 갔다. 이국종 교수가 잘 지적하듯이 중증외상환자는 대부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많다. 좋은 근무환경에 있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런 불행을 겪지 않는다. 기껏해야 교통사고이다. 가난한자들은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다 생명을 잃어가고, 병원에 가도 병실조차 잘 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위공무원이나 부유한자는 전자들을 외면하던 사람에게 대환영이다. 냉소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세상은 원래 그래요가 괜히 나온 말이겠는가?

 

이국종 교수는 어린 시절 가난했고, 아버지가 한국전쟁 상이용사로 무료진료를 받았을 때 많은 설움을 받았다. 병원에서 돈도 안 되는 불청객으로 취급당했다. 그러나 한 의사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남들에게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대접받던 아버지를 오히려 존경해야 할 분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한국전쟁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국군장병은 우리가 잊어서 안 될 분이다. 북한군과 대적한 민족상잔의 비극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지금을 만들어준 분이다.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거주하다 세상을 떠난 이국종 교수의 아버지, 이국종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예라는 점을 책에 명시했다.

 

왜 그랬을까? 나라면 이해할 것 같다. 눈을 다쳐 시력을 잃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가난한 생활에 본인도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고 절망했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세종대왕의 아들 중에 하나인 광평대군의 후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에게 그것 이외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인 이국종이란 외과의사가 있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지만, 가족은 있었다.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그런 식으로 남은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아버지도 가난했고, 배운 것도 없이 살아왔다. 돌아가신 후 며칠 뒤 구청에서 카드 하나가 발급되었다. 청각장애인 증명카드였다. 40년 넘게 그렇게 고생했는데, 조금 더 일찍 발급받았다면 고생을 덜하지 않았을까? 배 타는 사람이라 민간보험도 가입되지 않았다. 비싼 병원비는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의 돈, 내 월급통장의 잔액이었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양반의 후손이었다. 현대사회에 양반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은 하지만, 문중 자체가 다산 정약용 선생과 워낙 많이 연결되어 있었고, 다산 선생이 강진유배 중 다산초당에 기거할 적에 내 직계할아버지는 나룻배로 강진만을 건너 귤동마을의 다산초당에 갔다고 한다.

 

소설 목민심서를 읽기 전에 다산 선생의 따님은 우리 파계 할아버지 측으로 시집온 것과 목민심서를 만들어간 이야기, 베트남 상징적 인물인 호치민이 들고 다닌 짐은 오직 자신의 옷과 목민심서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양반 집안이라 해도 돈 없으면 상놈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면서 집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에게 해줄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 혹독한 노동만 하던 젊은 시절, 군대에서 군사정권에 어울리지 않은 후보를 찍은 이유로 구타당한 이야기, 배타면서 고생한 이야기, 들어보면 즐거운 일들은 별로 없다. 그나마 할머니와 함께 하던 시기만은 좋았던 것 같다.

 

그 외로 좋은 추억이 될 이야기는 없다.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내력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우리 아버지도 그것밖에 없으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말이다. 가진 것은 형과 나, 어머니, 그리고 형수님과 조카 2녀석이 다이니 말이다. 내가 결혼 전에 별세했으니 그것만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국종 교수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진 게 없고,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의 가족이었고, 이국종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그 위의 세대도 그런 마음이 이어져 간 것이라 여겼다.

 

그 때문인가? 자신의 눈이 실명되어가자, 이국종 교수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안으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시력을 잃어가는 이국종 교수의 눈 한쪽이 아버지의 실명된 눈과 같은 부위였기 때문이다. 업이란 거대한 운명의 수레는 이국종 교수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이국종 교수의 글을 보면 희망이란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사람이 죽어 가는데 아무런 대응이 되지 않은 현실에서 무슨 기대가 있을까? <골든아워>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생각을 하였다. 이국종 교수는 의사교수직이라 사회적으로 높은 쪽이나, 의료계에서 바닥을 맴돌고 있다. 중증외상환자는 바닥 중에 바닥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게 말로는 쉬우나 현실은 정말 어렵다. 사회적으로 인간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육체적으로 인간답게 살아야 최소한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알라딘이란 서적판매업체서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 1위가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국종 교수를 미디어를 통해 알았고, 그가 만든 책을 읽었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가 직접 마주해야 하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또한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들은 무슨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이국종 교수의 본인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팀과 조력자의 이야기도 되나, 때로는 소외받고 가난한 많은 서민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나라는 사람도 상당히 냉소적인데, 이국종 교수의 냉소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적어도 책을 보면서 오지도 않았고, 오는 것도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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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0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31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12-31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애니비평님께서는 작년과 올해 많은 변화를 겪으신 것 같네요... 아버님 별세, 결혼 등 큰 일을 많이 치루신 듯 합니다. 내년에는 평안하게 원하시는 바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만화애니비평 2019-01-01 11:35   좋아요 1 | URL
올해 목표는 돼지띠 아이입니다!!
호랑이님 언제 호랑이해가 올런지요..어흥~
새해 복많이 받으세용~~

카알벨루치 2019-02-0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수놓고 귀환하시길 바랍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9-02-05 16: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집에 와서 컴을 켭네요.
인사 늦어 죄송합니다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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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인 나에게 운좋게 90년대 청춘들 친구 몇몇 있다. 그들과 같이 맥주와 통닭을 먹으면서 느끼는 것이나, 7080년생대의 진보들이 젊은남성들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과거 보수꼰대는 여전히 신보수꼰대로 이어지난, 기성세대 진보도 역시 꼰대로 변해간다. 왜 그런지 본인은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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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12-14 10:58   좋아요 1 | URL
예전의 일입니다.
곰곰발님과 저하고 2~3번 만나 막걸리를 마시고 하던 그런 사이입니다.
곰발님은 분명 10~20년 전이라면 새로운 물결같은 분이나,
지금의 그분의 글(페미니즘 옹호)을 보면서 꼰대로 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꼰대는 별 것 없습니다. 과거에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을 아직도
외치는 겁니다. 이번에 예스24의 사태도 그런겁니다.
진보 스스로가 기성세대화 되어가는 점에서 그때 그 시절에 머무른 겁니다.
아래 사람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왜 그런가를 생각하지 않고, 아직 그렇다 식은
그저 역방향으로 갈 뿐이죠...걱정입니다.
 

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한국경제를 두고 자유시장주의 즉 자본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라고 해서 자유시장 경제 체계를 자유권리를 가진 국민의 힘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유럽의 길드연합이 존재하던 시절이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가의 통제권한이 지금과 비교하면 덜하면 덜 했지 더 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계가 자유시장 보단 국가의 개입이 완강하다. 지난 보수정권에서 자유주의 경제구조를 도입했다고 하나, 그 속에는 국가의 개입이 여전히 있었다.

 

국가의 개입이 없는 시장 따위는 없다. 결국 시장은 세계는 국가

라는 시스템과 더불어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과 기업 그리고 여러 조건들에 의해 움직인다. 경제를 두고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정작 경제학(經濟學)이란 영역을 들어가지 않는다. 정치학이란 영어철자는 economics로 불린다. 하지만 경제학은 단순히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적 요건이 갖추고, 세계적인 고전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읽게 되면 생각이 바뀐다.

 

세계 경제학의 시초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학의 원리와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흘러가는 경제학은 다르다. 경제학은 많은 재화가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소비되어 그것으로 인해 소비자는 생활의 도움이 되고, 판매자는 수익을 거두어 이윤을 추구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료, 노동력, 물류 등 각종 업무로 통해 많은 직업을 창출하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생계를 일구어 갈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목표로 하는 것이 스미스의 경제철학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 이전에 윤리도덕학을 전공한 철학자였다. 그가 <국부론>을 적은 이유는 당시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공업화로 통해 재화가 대량생산되고, 거기에 많은 소비자가 소비를 했다. 결국 경제를 잘 돌아간다는 말은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이 더 많이 생산되어 소비자가 계속 소비되는 것이 목표이다. 소비자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결국 생계를 이어가는 국민이다. 소비와 생산의 관계성에서 자본주의는 그렇게 성장했다. 이번에 감상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바로 그런 시스템이 붕괴하던 한국의 지난날을 다시 돌아보는 작품이다.

 

IMF, 그것은 하나의 재난이고 저주였다. 많은 은행이 도산하고, 기업이 부도나고, 기업가들은 도망치거나 구속되고, 노동자들은 절망의 외침을 내거나 심각한 경우 목숨까지 버렸다. 한 해 자살 율이 40% 증가하던 그 절망의 시기, 이때의 우리에게 닥친 것은 불황이다. 경제학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의 시작은 자본이다. 자본은 무엇에서 시작하는가? 바로 화폐에서 시작된다. 화폐는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는가? 그것은 기축화폐,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통화(通貨)를 말한다. 통화의 움직임이 없다면 돈의 흐름도 없다.

 

돈의 흐름이 없다면, 돈이 돌 수가 없다. 돈이 돌 수 없으면 재정적으로 파탄 나고, 부도가 난다. 한국 경제학에 대한 성찰에서 경제학과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단지 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 루소, 마르크스&엥겔스 책 몇 권을 읽은 정도이니 완전 일반인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으로 보자면, 그래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사는 이제 100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 경제는 일제에 의해 자본주의 개념이 들어왔으나, 자유경제는 없다. 전시 군국주의적 경제체계에 의해 자유경제가 아닌 식민지 경제에 돌입된 것이다. 자유경제구조라면 조선인이 가진 자본시장이 확대되어야 했지만, 일제는 거부했다. 독립군들의 자금이 거기에 흘러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자본시장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일본처럼 전시 이후 미국과 연합 국가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적 정책에 따라 경제성장을 올린 것이다. 경제성장이 정상적으로 일반 국민과 기업에 의해 움직인 게 아니라 국가의 대규모적인 정책에 따라 시행했고, 달러를 벌어들여 외화를 유치하고, 그 외화로 각종 공업기계를 도입해야 했으므로, 당연히 초반 공업은 경공업에 치중했다. 섬유공장은 늘 어린 여공들의 눈물로 가득했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강산은 폐수와 매연으로 물들어갔다. 자본주의의 시장성장 아래 인권이 밟히고, 자연이 오염되어 갔다. 그 과정에 따른 여파라고 하나, 지금 21세기 국민 중에서 옆에 매연이 나오는 공장 옆에서 살고 싶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장에서 매연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환경법규에 따라 벌금 내지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바로 성장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배분을 어떻게 할까 에서 대규모 공업을 투자하기 위해 대기업을 투자했고, 대기업은 부품 및 조립 그 밖의 외주를 시행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성장했다. 문제는 수익금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임금에 비하여 격차가 심했고, 그것의 차이는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차이는 비교하지 못한다. 대기업 정직원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기업 정직원이라도 어느 순간 권고사직 또는 명예퇴직이 닥쳐올지 모르는 시기다.

 

이 모든 것이 언제부터인가? 바로 IMF 통화구제부터이다. 군복무를 할 때 생각난다. 차량으로 출퇴근할 때 고속도로를 올려 비행장으로 가는데, 처음에 엄청 막히는 길로 갔다가 우연히 안 막히는 터널을 통해 갔다. 통행요금이 제법 비싸나, 편하게 출퇴근을 했다. 문제는 터널은 국가시설이고, 그것은 국민을 위한 시설이다. 터널요금의 수익금은 국가재정이나 거기에 투자한 시설공사 기업이 받는 것은 정당하나, 그것보단 공사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배분이 더 큰 관건이었다. 맥쿼리코리아란 업체는 상당히 좋은 위치에 SOC 사업을 벌인다. 도로의 통행세를 받으면 아주 유리한 돈벌이다. 신대구 부산고속도로, 인천공항 영종도 고속도로, 각종 터널은 SOC 사업을 국가가 인허가를 주도하지만, 거기서 나온 수익금은 조금 다른 방식이 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검은머리의 외국인이 탄생하는 원인을 알 수는 있는 모습이 나온다. 미국이 IMF기구와 협상을 하고, IMF 구제통화는 미국으로부터 받는다. 미국의 자본침투로 통해 기존의 한국기업들은 순수 한국지분이 아니라 외국기업의 지분이 들어있고, 지분의 50% 이상이 어느 지분소유자에게 들어가면 기업운영권이 넘어간다. 기업운영권이 넘어가면 그것은 한국기업이 아니라 다국가 기업이 되고, 자본은 국경은 초월하여 그 나라의 경제까지 좌지우지 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경제부 차관의 모습에서 정말 국가재정 파탄을 몰랐을까? 알았어도 왜 막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유리한 경제적 조건을 알았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노동자, 이들을 법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국가가 있다. 국가가 국민 대다수인 소비자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에게 모든 것을 부여했다. 기업이 이긴다는 것은 그 외의 사람은 죽어도 무방하다. 영화는 정경유착으로 망가진 지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업총수의 아들과 경제 관료의 밀실논의, 상황이 발효 되도 밀실에서 진행하는 모습, 자신의 이기심과 무지를 책임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국민의 과소비로 돌리는 모습도 보인다.

 

외화의 유출에서 외국여행도 어느 정도 나가지만, 최고 중요한 원인은 외국에서 한국의 은행에 투자한 것이다. 투자를 하면서 이자를 받거나 혹은 원금을 유지하면 몰라도 외화를 빼면 다른 말이 된다. 과거 외화 내지 금 같은 기축화폐들은 은행의 창고 속에 보관한다. 하지만 전산화 된 세상에서 화폐는 다른 개념이다. 미국기업이 우리에게 1억 달러를 투자하면 그 돈이 종이라는 화폐단위로 한국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산망에 따라 1억 달러가 인터넷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여 보는 기업인터넷뱅킹 서비스를 하면, 실제 100만원이 있다고 해서 그 100만원이 지폐다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산으로 옮겨질 뿐이다.

 

순식간에 전산에서 사라진 화폐로 국내 남은 달러가 소멸되자,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폭등한다. 1달러에 500원이 천원이 되면, 자재를 구매할 수 없다. 원자재 수입을 통해 수출하는데 자재가 들어오지 않고, 달러가 없으면 대금결재를 할 수 없기에 무역 자체가 불가하다. 이런 무능한 사태는 바로 금융권의 대출시스템, 은행의 감독권의 부실이 문제이다. 가령 한국은행이 100만원을 시중은행에 대출하면 그 은행은 100만원만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금보유액 10배만큼 대출할 수 있고, 만일 10배만큼만 하면 문제는 없으나, 그 이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은행에 100만원을 보유하다 은행이용자들이 현금을 찾는 액이 200만원이 될 경우 뱅크런으로 은행은 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전산망의 금융시스템은 뱅크런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든다. 투자자에게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대출하는 은행과 대부금융업체, 받은 돈을 사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횡령하는 총수들은 결국 불굴의 기업이 도산하게 되는 길을 열게 되고, 이런 문제점이 쌓이고 쌓여 국가부도의 날로 이어진다. 물론 우리는 몇 년 안에 빚을 갚았다고 하나 그 여파는 강하다. 흔히 21세기란 길가에서 Hell-조선이란 신종어가 생겼다. 지옥 같은 조선, 한국은 그런 나라이다. 경제의 후퇴는 인구감소로 이어진다. 인구감소 심각성은 시장경제의 축소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창출하자, 그들은 생계의 문제로 식료품 필수 의복을 제외한 나머지를 최소화한다.

 

그런 나머지 산업들이 후퇴를 하고, 거기에 문을 닫는다. 인구가 감소하기에 앞으로 식품산업도 시장규모가 축소한다. 그러면 그런 부류의 산업체계가 붕괴하고, 다시 경제적 문제가 생긴다. 한국의 문제는 소비할 수 있는 부류가 축소이다. 집도 차, 심지어 핸드폰조차 할부로 구입한다. 할부도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 할부이다. 채무를 안고 계속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그날의 운명은 많은 이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영화에서 좋은 연출은 경제정책을 움직이는 관료, IMF 여파로 피해를 보는 일반 소시민,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들이 나온다.

 

절망의 심정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갑수가 있는 반면, 그 같은 거리를 웃으며 활보하는 정학도 있다. 정학이 새로 산 집에 가니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갑수의 거래처 사장이었다. 부도가 나고, 자신도 어렵지만 모두 어려우니 차마 돈을 받을 수 없고,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그 우울함에 극단적 선택을 고르게 된 것이다. 영화 주인공 한시현 팀장은 경제엘리트 관료이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따듯한 인간이었다. 그녀가 그런 마음을 가진 이유는 갑수라는 인물이 오빠였고, 그 오빠가 IMF로 괴로워하자,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고, 간접적으로 정치적 대안조차 내놓을 수 없었다.

 

그녀가 현실에서 좌절한 모순은 바로 그녀 주변인에게 닥친 것이다. 또한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정치문화와 정경유착 체계는 소수 남성 지배계급(그런다고 갑수나 자살한 사장이나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이 아니다)이 움직이고 있었고, 새로운 경제지식인이던 한팀장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한팀장이 바라본 현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한국은행 총장은 경제학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저 낙하산인사로 떨어진 인물이고, 사무실조차 제대로 붙어있지 않았다. 일에 무지하고, 책임에 무능한 그 자체가 결국 재난의 길로 빠진 것이다.

 

영화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20년의 IMF가 영화에서는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위기가 온다는 점이다, 운이 좋은 것은 당시 경제수석과 관료들은 국민을 버리던 자이나, 이제는 국민을 살리려는 자이다. 당시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자들은 기업의 임원으로 잘 먹고 잘 산다. 생각해보면 IMF 당시 경제업무를 맡은 관료 중 책임자가 아니라 실무자가 지난 정권에서 경제관료 책임자급으로 있었다. 부도사태를 나고도 다시 돌아온 그들에게 국가경제의 핵심은 누구인가?

 

부익부 빈익빈은 심각한 국가문제를 야기한다. 사회는 피폐해지고, 범죄도 증가한다. 게다가 소비위축은 새로운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재고가 남고, 재고가 남아 대금을 치루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부도가 나면 은행의 채권들은 휴지조각이 되고, 부실채권의 돈에 투자한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린다. 위기는 기회가 되겠지만,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부류는 극히 일부이다. 기회는 찬스라는 말 따위를 다수 사람에게 떠벌리는 인간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국민의 책임이 아닌데도 물과 전기를 절약하고, 과소비를 억제하라 한다. 영화는 그런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은 국민에게 다시 위기를 말한다. 다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때처럼 호락호락 당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때 일을 잊어서는 안 되고, 그때 그 지경까지 만든 놈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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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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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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