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 Animation & Philosophy
이진경 외 지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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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국외에 애니메이션과 관련되 서적과 학술자료 및 논문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막상 그런 책들을 필자가 접하는 경우 많은 애로사항이 나온다.
그것은 이 자료들은 애니메이션 수용자를 대상으로 적은 글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네(학회)들의 사고를 공유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자료들이 애니메이션 향유자들에게 열려 있지 않으면 애니메이션문화는 결국 퇴화해 버린다.
애니메이션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대중이라면, 이런 자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야 말로 엘리트로 볼 수 있다.
현재 필자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문화 향유대중과 애니메이션 연구하는 엘리트부류의 중간론적 역할로 통해
서로 왕래하며 정보공유 및 이해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면 과연 이것이 자기가 어떤 것들을 생각했는데, 막상 표현하거나 혹은 나타내는 경우 많은 고민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작품 내의 텍스트 해석이나 영상기법, 음향기법 등 다양한 경로를 읽어서 애니메이션 영상을 읽는 것도 일종의 영상서사 읽기 하나라는 것을 인지시켜 만화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은 오덕이나 덕후, 십덕후라는 말 대신에 애니메이션 팬, 매니아라는 일종의 취미와 취향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 필자의 목표이다.
그래서 오카다 토시오가 제시하는 진정한 애니메이션 오타쿠는 이런 팬과 매니아들을 아무런 편견과 고정관념에 시달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째든 계속되는 한국 애니메이션문화의 현실적인 문제는 단순히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생긴 문제이니, 조금씩 조금씩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늘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즉 애니메이션 아니다는 말은 애니메이션인데 왜 아니냐는 말인데, 그 이유는 여기서 나온 애니메이션들은 인문사회학자들이 보는 시점에서는 단순한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아닌 그 이상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예술이란 것은 명작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그 명작을 구분짓게 하는 것은 그 작품 내에서 의미하는 영상서사를 해석함에 따라 나온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몰라도 필자는 인기있는 애니메이션을 명작과 별개로 보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명작이다고 하자. 그러면 그게 왜 명작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가? 단순히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로 누가 멋있다! 누가 대단하다! 란 식은 애니메이션 전문 평론이나 비평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이다. 그 작품 내에서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 그 시대적 상황과 배경에 따른 연출을 해석하여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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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
이진천 지음 / 디씨에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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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리뷰를 적고 있는 필자는 만화애니메이션 오타쿠이다. 국내에서 만화애니메이션 내지 혹은 게임과 밀리터리, 코스프레를 접하는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한다. 오타쿠란 어원은 본래 일본에서 나온 단어로 집에만 갇혀 살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여 다른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이른바 세상 속에 고립된 인간을 의미한다.

분명 오타쿠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강한 단어이다. 하지만 이 오타쿠란 존재가 과연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코믹월드에 참가하는 부스나 거기에 상품을 사러오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아닌 2차원 세계의 인물을 흉내내는 코스프레이어들이 과연 집에만 있는 존재인가이다.

물론 일반 대중들과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대중처럼 심각한 획일화에 갇혀있지 않다. 물론 오타쿠문화라는 서브컬쳐에도 주류세계와 비주류세계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 것을 무조건 버리고 새로운 것만 취하기를 바라는 대중문화와 달리 새로운 것과 아주 오래된 것까지도 공존하는 것이 오타쿠문화이다.

그래서 오타쿠문화란 상당히 폭넓고 다양하고, 그 다양함 속에 세밀하고도 깊은 세계가 존재한다. 이런 서브컬쳐를 구성하는 오타쿠문화를 알아본다는 것은 현재 획일적인 사회통념과 교육관념으로 창의력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뭔가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신선한 자극제로 사용될 수 있는 이 오타쿠문화가 어떻게 하면 사회문화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는 언제나 획일적인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뭔가 새롭고 참신한 내용이 필요한 세상이다. 그런 현대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서브컬쳐를 알아본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공간을 창출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제일 필요한 게 바로 문화구성력을 만드는 인적 인프라 단계이다. 문화컨텐츠는 공장의 기계처럼 자동으로 찍어 나오는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컨텐츠는 오로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무형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욕구로 통해서만 문화컨텐츠사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화컨텐츠를 구성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이 오타쿠문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이 오타쿠문화로 통해 긍적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필자가 리뷰하려고 하는 "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는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오타쿠와 우리가 평소 알지못했던 오타쿠에 대해 소개한 도서이다. 물론 필자가 이 서적을 읽기 전에 이미 국내 대학원에서 오타쿠에 대해 연구한 석사학위 논문 몇부를 읽어보았으며, 거기에 더하여 일본 오타쿠 전문가 및 평론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문사회학자들의 연구서적까지 보았다.

그런데 기존에 필자가 보던 책들은 일반 사람들이 읽기에는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일반 대중들은 어느 특정한 이슈와 현상에 대해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대부분 사회적통념과 편견으로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은 자신들과 다르게 보이는 오타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사고로만 접근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소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올바른 단어의 정의와 내용해석이 필요하면서 한편으로 일반 대중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 "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는 상당히 좋은 도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책를 만든 지은기가 국내에서 오타쿠에 대해 서술하기 보다는 직접 일본이란 곳에 살면서 현지에 있는 오타쿠와 만남으로 통해 좀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전개하였다.

책을 보면 우리가 기존 생각했던 오타쿠는 대부분 만화애니메이션, 게임, 밀리터리, 코스프레 등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오타쿠는 그런 장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도오타쿠, 공항오타쿠, 기계오타쿠, 차량오타쿠 등 매우 많은 종류가 있다. 특히 이 서적에서는 주로 다루고 있는 오타쿠는 철도오타쿠와 모에오타쿠이다. 

철도오타쿠는 교통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존재로 기존 오타쿠 연구서적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모에오타쿠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에를 쉽게 풀이하고 모에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작용하는지 쉽게 풀이 되어있다. 그리고 모에오타쿠에 대한 내용으로 1980년대 우르세이 야츠라부터 최근에 방영된 애니메이션까지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국내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찍힌 오타쿠문화이지만, 이 서적에서는 이 부정적인 면을 잘 이용하여 긍정적인 요소로 만들어서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문화컨텐츠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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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사학
서정남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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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해 리뷰를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공부와 정보가 필요하다. 애니메이션은 영화, 드라마 등과 함께 영상으로 비추어지는 하나의 서사물이다. 서사구조를 먼저 이해하려면 글로 적혀 있는 문자서사인 소설과 수필 등이 매우 좋겠지만,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는 글로써 이루어진 서사물이 아니라 영화와 같이 이미지로 이루어진 서사물이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허나 한국의 애니메이션 비평문화는 주로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다루어진 현실이기에 애니메이션을 이해라혀면 영화적인 요소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영화적인 요소를 어느정도 인지하게 되면 영화 속의 대사, 소품배치, 효과음, OST 등 다양한 요소를 파악하게 될 것이며, 이런 주변 요소들이 영화 본래의 이야기에 극적인 효과를 전달해줄 수가 있다. 영상서사의 이야기전개나 카메라앵글, 몽타주나 미쟝센기법, 시간적인 흐름과 이야기주체와 객체 등은 영화제작자나 혹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런 점을 미루어 볼때 영화서사학이란 책은 우리가 영화나 혹은 영상서사물을 보고들을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면서 감상해야하는지를 유도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주말이나 공휴일에 대중들이 여가시간를 이용하여 단순히 즐긴다는 것보단 영화라는 전체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지은 서정남 교수는 프랑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적인 분석방법을 이 책에서 소개하였다. 물론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체계도 소개했지만, 프랑스 구조주의를 시초인 소쉬르의 기호학으로부터 크리스티앙 메츠, 롤랑 바르트, 제라르 쥬네트와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자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그런 점에서 분명 이 책은 쉬운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 읽어본다면 영화의 제작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분석해보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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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메신저 1화 SE - 스페셜 에디션 - (디지팩DVD + 설정집(60p) + 엽서(3) + 하드케이스
구봉회 감독 / 스튜디오애니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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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토요일 오후 7시에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서 고스트메신저 OVA 1화에 대한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보통 저는 시사회라고 하면 우선 영상을 보여주고 나서 관객과 제작진과의 내용에 대한 토론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없어서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래저래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선 고스트메신저에 대한 시사회 리뷰하는 만큼 그런 제 개인적인 질문사항이나 착안사항에 대해 적고 싶으나 자세한 비평적인 리뷰는 12월 22일 정식 1화 시디가 오면 적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선 시사회에 다녀온 입장으로 고스트메선저 제1의 리뷰어로 글을 적으려고 합니다.


우선 작품 전반을 보면서 서사구조에서 도입부분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강림도령과 꼬마강림이 같이 퇴마활동을 하는 것부터 나옵니다. 여기서 꼬마강림이 강림도령을 돕는 것까지는 문제없으나 꼬마강림이 평소 성격이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여 강림도령의 화를 돋는 장면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차후 시사회 끝난 후에 고스트메신저 감독님이 이 꼬마 강림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많이 무섭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애니메이터들의 의식과 무의식적인 면을 넣었기 때문에 그런 면이 많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꼬마강림을 보면 전형적으로 말썽꾸러기 속성에 호기심이 상당히 왕성합니다. 그런 호기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바로 부모님의 부재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어머니는 나오나 아버지가 나오지 않고, 꼬마강림이 살아가는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신화적인 관점에서 영웅이 대부분 남성소년이나 청소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 주몽신화와 같은 경우 아버지 없이 유화부인 아래서 커는 주몽이나 혁거세신화나 석탈해와 같은 경우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고 신화 속의 영웅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다른 예로서 한국 만화책 중에서 소마신화전기에서 주인공 소마 역시 부모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조부-아버지-아들 3명의 남자에서 아버지가 존재하면 아들은 영웅이 되지 않은 것이 신화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영웅은 곧 영웅성과 동시에 권위성을 가지게 될 당위적인 면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꼬마강림 가계구조는 아바지 대신 할아버지가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영웅으로 군림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으므로 손자와 경쟁상대가 되지 않은 보조적인 단계입니다.


그래서 보통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아니 신화,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들들은 아버지의 부재가 강하고 대신 부재하는 아버지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없는 꼬마강림은 영적인 힘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과 차별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영령들을 직접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으나 저승사자만이 다룰 수 있는 소울폰을 꼬마강림이 다룰 수 있음으로써 그가 인간세계에 나타난 영웅입니다. 물론 고스트메신저 속성이 건국신화보단 무속신화 쪽이 가깝습니다. 그러나 꼬마강림은 인간세계에 나타나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을 퇴치하는 하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꼬마강림에게 신내림으로 이어진 강림도령이 나옵니다. 강림도령이 소울폰에 갇혀있을 때 다른 초등학생들이 그 소울폰을 다루려 할때 모두 거부당합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꼬마강림만 무사히 다룰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다른 꼬마강림이 다른 인간과의 차이점을 강림도령의 역할로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강림도령을 보면 조금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원래 신분이 인간이였으나 저승에 발을 들여 저승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물설정표에서도 그는 성격이 까칠하고 남과 상대하기 싫어하는 타입입니다. 게다가 그는 인간을 싫어하는 타입였습니다. 그는 인간인 꼬마강림에게 매우 냉정하게 대하는 점과 과거 자신이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해 혐오하는 점에서 그는 삶을 포기하고 영령으로 살아가는 저승사자가 된 이유는 아마 자신의 인간인 기억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고스트메신저 1화에서 수수께기 중의 1가지 바로 이 강림도령이 무엇때문에 인간이기 포기하고 저승사자가 되었느냐 입니다. 여기에 더해 꼬마강림이 왜 까칠하고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 강림도령을 따라오는가입니다. 

다른 수수께기 하나가 꼬마강림의 어머니의 존재입니다. 꼬마강림의 어린시절 가족관계에서 어머니가 있었으나 현시점에서 등장하지 않은 것은 뭔가의 사건이 연류되고 꼬마강림은 그 사건을 알아가기 위해 강림도령과 계속 행동하길 원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강림도령의 성격 자체가 남과 어울리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다소 폭력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 예로 작품에서 저승사자의 관리관인 바라낭자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바리낭자가 영계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도중 부하가 강림도령에 대한 보고를 올립니다. 강림도령의 업무현황을 보고받는 바리낭자 표정을 보면 영 시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평소 사고를 많이 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바리낭자는 부하에게 강림도령에 대한 내용을 마고할미에게 보고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업무를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저승사자인 강림도령은 아직까지 물리적인 존재감이 분명하지 않으나 바리낭자는 물리적인 존재가 분명합니다. 

인간사회에 가서 직접 사물을 만지거나 지하철역에서 강림도령의 동태를 살피는데, 옆에 서울시민들과 같이 서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래 바리낭자가 바리데기라는 신화에서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인간과 영계를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특히나 바리낭자는 아버지인 어비대왕을 구하는 공로로 이승과 저승을 고나리하는 신직을 부여받습니다.


또한 인간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한명 더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마고할미입니다. 마고할미 전설은 고조선의 단군이 마고할미가 다스리는 부족을 정벌하러 가면서 마고할미 군대를 물리치고 마고할미의 부족의 영토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단군은 마고할미의 부족마을을 약탈하기는 커녕 오히려 마을주민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마고할미는 감동을 받아 단군에게 항복했다고 하고 마고할미는 한국조상신 한명이 되었다는 것으로 압니다. 


 





조금 재미있는 부분은 마고할미가 여기에서 생명의 여신인데, 사실 생명의 여신으로 당금애기 무속신화가 있습니다. 당금이는 이른바 한국에서 삼신할미로 산모 뱃속에 있는 생명을 점찍어주는 고귀한 신선입니다. 

단지 신화적 요소에서 당금애기의 남편이 승려인 점에서 삼국 시대 이전의 인물입니다. 바리낭자도 아마 삼국시대 이후 인물인듯 합니다. 왜냐하면 마고할미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인 고조선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설의 향연을 계속 따라가면 또 한명의 무속신화 인물이 등장합니다. 강리도령의 라이벌인 사라도령입니다. 사라도령은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데, 이 사라도령은 강림도령과 사이가 정말 좋지 못합니다. 저는 왜 안좋을까라는 생각에서 이 사라도령이 완벽주의자 속성이 있다고 봅니다. 

원래 사라도령의 본 출처를 조사해보니 한국 고대 무속신화인 이공본풀이에 등장하는 인물인듯 합니다. 서천꽃밭을 관리하는 인물로 원강도령과 원강도령의 아들인 할락궁이가 있습니다. 아마 사라도령의 원초인물은 할락궁이가 맞을 듯 합니다.


 





할락궁이는 본래 아버지 원강도령의 자제라는 점에서 저승계의 관리직을 이어받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공본풀이에 대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고 차후 한국 조선시대 이전을 대입하면 그는 본래부터 영령세계에서 권위있는 집안의 후손인 겁니다. 

그런 전통성이 있는 저승사자가 일개 평범한 인간출신인 강림도령을 좋게 볼리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뒤에 있는 이야기는 알 수 없으나 신화적인 요소와 그동안 보여진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이렇게 판단이 납니다.


 





작품이 끝난 뒤에 이제 오프닝곡이 아닌 엔딩곡이 흐르는데, 전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대중가수 중에서 재즈와 발라드, 락, 팝, 보사노바 등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는 보컬리스트 이소라씨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영상과 잔잔한 노래가 어울린 점과 게다가 이소라씨의 깊은 감성은 엔딩곡이 뮤직비디오로 만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는 전문가수가 노래를 많이 불렀지만 영혼기병 라젠카에서 넥스트가 OST를 맡은 이후 국내 애니메이션에서 대중가수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친근성에서는 대중가수를 내세워 익숙한 목소리를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입니다. 또한 이 장면의 흥미로운 점은 바로 노를 젓고 있는게 강림도령이고, 강림도령 앞에 배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바리낭자입니다. 바리낭자의 원조격인 바리공주는 저승과 이승을 관리하는 신입니다. 

그리고 강림도령이 젓고 있는 배는 죽은 사람이 저승사자를 만나 다시는 이승으로 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곳입니다. 이승과 저승을 관리하는 바리낭자 눈에 비추어진 이 세계는 어떤 곳일까요? 고스트메신저는 정말 한국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한국 전통종교인 무속신앙은 신이란 존재는 인간과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다고 여기는 존재입니다. 기존 서양의 관념에서 영령이란 그저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라면 한국에서는 해로운 존재도 이로운 존재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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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빠진 아이, 만화로 가르쳐라 - '만화세대'아이의 독서.논술.토론 참고서
한창완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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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교수가 자신의 자녀를 생각하면서 제작한 "만화에 빠진 아이 만화로 가르쳐라"는 기존의 만화라는 매체에 대하여 조금 다르게 보자는 느낌이 있다. 가령 우리가 아는 만화란 학생들에게 공부가 방해되고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하나의 불량도서로 각인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만화라는 문화가 제대로 발전되기 보다는 발전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만화라는 것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최근 아동문학과 유아들에 대한 교육물에서 만화를 이용하는 것이 크게 늘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만화는 기본적으로 글로 구성된 것보단 그림이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그림 옆에 말풍선이 곁들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 만화를 쉽게 보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읽는 고전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가 나관중의 삼국지가 있다. 이 삼국지는 황건적의 시작으로 진나라의 통일까지 다루면 보통 10권 내외로 나눤다. 그리고 등장인물이나 시대배경이나 흐름 지역적인 상황까지 각기 다르므로 보는이로 하여금 높은 독서력을 요구한다. 물론 어느 정도 독서력이 바탕이 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소화가능할 수 있으나 이런 고전들은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에게 읽혀져야 할 때에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10권이나 되는 문자도서를 한창 독서를 해야할 어린아이나 청소년에게 떠밀면 쉽게쉽게 읽힐 수가 없다. 그러면 그들에게 쉽게 그리고 잘 이해되면서도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전달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만화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기존의 흐름처럼 만약에 대한 인식이나 연구, 고찰이 성실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만화는 도외시해야할 서적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만화로 통해서 충분히 교육적인 요소를 담을 수 있고, 교훈과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컴퓨터 PC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겐 책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만화를 읽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특히 만화를 주로 읽는 계층이 어린아이와 청소년이란 점에서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만화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게 해줘서 그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경험을 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1권의 만화가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뭐든지 부정적으로 만화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만화로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생각하는지 제대로 생각한 후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만화문화 습관을 길러준다면 아이들은 풍부한 감수성과 교훈적인 면을 맛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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