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나는 행복한 임금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나라는 왕조국가이나, 왕조라는 이름으로 거행되지 못했다. 물론 임금은 백성을 위해 모든 열정을 투자해야 하나 조선이란 국가는 쉽게 되지 못했다. 분명 태조 이성계는 국가이념을 단군조선(檀君朝鮮)에서 찾았다. 고려라는 나라를 포함하여 그 이전에 존재한 삼국시대와 발해라는 국가조차 모두 조선이란 이름 아래 하나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조선이란 국가이름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조선에 사는 백성은 모두가 하나이고, 귀천이 있을망정 그들이 살아가는 생업이나 인륜의 본분까지 파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씩 뒤틀어져갔다. 조선은 서양의 봉건국가와 조금 뭔가 다르다. 봉건귀족은 기사단 내지 영주가 국왕에게 충성하나, 정치권은 지방자치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은 중앙집권적인 정치체계이나, 지방은 군주에게 위임받은 목민관에 의해 통치된다. 목민관은 문과 내지 무과에 급제된 관료에 임명된다. 조선의 무인들은 모두 무식한 자들이 아니다. 훈련원의 봉사 내지 사정 등은 군사업무에 옳고 그릇된 점을 바로잡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문서를 작성해야 했다. 조선의 사대부는 양반이라 하듯이 무반과 문반의 균형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던 때는 아마 임진왜란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양반 중 무관이 가장 빛을 발휘할 시기는 임진왜란이고, 곧 그것은 무반의 멸종이었다. 조선사대부는 임금과 동급은 아니지만, 임금에 버금가는 직급이다. 왕족 중 임금이 되지 못한 자는 처음에 왕족의 직분을 받아 벼슬을 나가나, 어느 순간 일반 양반자제로 살아간다. 그들도 양반이 되어 과거를 봐야하고, 때로는 후예들의 제사자리에서 학생부군(學生府君)으로 모신다. 그래서 임금이란 자는 왕으로서 절대적이야 하는지 아니면 조선 제1의 사대부인지 알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만일 조선 제1의 사대부가 아닌 그저 왕이란 직분이 절대적이라면 조선군주들은 그토록 출생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왕비는 양반규수에서 선택되고, 그들은 정식으로 왕족의 황후 내지 대비가 되어 정사는 개입하지 못해도 차기 왕을 간택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현재 왕이 급사할 경우 다음 왕좌는 대비전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문제이다. 왕이 살아있고, 그 왕이 현명해도 몰라도 어리석으면 크게 그르칠 수 있다.
조선의 왕조사회와 봉건적제도, 그리고 왕권과 신권을 제대로 알아야 전후맥락을 알 수 있다. 역사드라마 내지 그것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가끔 보면 뭔가 수가 틀리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다 그런 것이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부터 고종 황제(아무리 조선이 망한 국가이고, 그 마지막은 임금이라도 존칭을 붙이는 게 한국인의 도리이다)까지 왕권과 신권의 대결이다. 그리고 왕권을 위해서 그 왕과 주변 가족과 친척, 또는 그 왕을 돕는 신화와 반대되는 신하, 신하끼리 대립되는 신권까지 주어져 있다.
이번에 나온 영화 <대립군>은 바로 이점을 알지 못하면 전후맥락을 살피기 어렵다. 광해군의 어머니는 왕실의 정실왕후가 아닌 무수리의 자식이고, 그 형인 임해군과 더불어 왕자이면서도 신하들의 견책을 받는다. 나중에 선조가 영창대군을 얻은 후 사망할 때, 영창대군은 형 광해군과 나이가 너무 차이가 났으며, 정사에 참여하기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많은 고위대관은 광해보단 영창대군의 집권을 바라고 있었다. 왕권에 왜 신하가 관여하는가? 왕권은 왕의 이름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신하의 간택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용군(庸君), 어리석은 왕인 중종은 바로 그런 신하에 의해 옹립된 왕이다. 적어도 수양대군은 세조로 오르기 전에 본인이 직접 칼을 잡고 다녔지만, 중종은 칼들의 소용돌이에서 오른 왕이다. 이런 문제는 명종에서 문제가 발생되고, 선조가 임금으로 책봉되기 전에 붕당의 영향으로 문제가 있었다. 이때 국상 이준경이 재치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왕으로 오르지 못했다. 만일 선조가 기축옥사와 임진왜란을 지혜롭게 처리했다면 그는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이산해, 류성룡, 이덕형 등과 같은 명관들이 있었고, 선조는 대유학자인 퇴계 이황을 매우 존경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의 순간이 없었을 때이다. 인간의 진가는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다. 그 위기는 바로 전쟁이다. 영화 <대립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은 왜군이 오자 선조는 도망치고, 광해는 남아 의병을 소집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난다. 이때 서인과 남인의 갈등이 나온다. 남인과 북인은 원래 동인에서 시작했으나, 기축옥사로 인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졌으나, 남인은 선조를 호군하던 류성룡 일파, 수군에서 활약하던 이순신과 이억기 같은 무관, 그밖에 의병이 있었지만, 조식 남명 제자인 북인들은 전형적으로 의병으로 활약했다.
선조는 평양에서 명나라로 도망치기 바빴지만, 의식이 있는 문무 대신들은 변방에서 목숨 걸고 적과 싸웠다. 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복수나 분노만으로 시작할 수 없었다. 그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동기가 필요했다. 왕조국가에서 왕이란 존재는 모두의 어버이였고, 왕이란 존재는 감히 드러내기가 황공한 존재였다. 조선이 망했다 해도, 일제강점기시대 조선이란 이름이 없어져도 여전히 식민지의 백성에게 주인은 조선총독부 총리가 아니라 고종이었다. 고종이 죽을 때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 통곡했다. 왕이란 그런 존재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백성들은 왜군의 칼에 죽는 것도 두렵지만, 더 두려운 것은 조선의 군주가 백성을 버린다는 사실이다. 왕이 없는 나라에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 이런 배경에는 외교와 내정, 경제, 권력다툼이란 다양한 고리들이 살아있던 것이다. <대립군>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한다. 왜 광해가 남아있을까? 광해군은 참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광해군은 연산군 다음으로 폭군으로 남아있고, 종이나 조 대신 군으로 왕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연산군처럼 암살되지 않았다. 오리영감 이원익 정승의 도움으로 천수를 누리며 생을 마감했다.
광해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으나 임금이 되었고, 임금이 된 이후로 보여준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과연 그가 폭군인가? <대립군>은 그가 조선의 왕세자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들, 실제 광해군은 아주 명석했고 인간성이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신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왕이다. 영화에서 조선의 왕을 노리는 자는 왜군이 아니라 조선의 민중이었다. 선조가 한양에서 나오자,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은 왕궁 문서고가 파괴되었다. 노비문서 내지 국가에서 빌린 부채 등을 삭제한 것이다. 왜군이 오자 길을 안내하고, 어느 이는 왜군의 부하가 되었다.
이들이 된 동기는 군왕은 백성의 통곡을 무시하고, 자신의 안위와 권력만 찾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권력을 가진 신하와 연합하고 왕후까지 간택한다. 선조는 광해를 왕으로 삼을 생각을 없다. 단지 조선에 왕이 없다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할 때 구색이 갖출 수 없고, 의병조차 통솔할 수 없다. 누군가 남아 자신을 대신해야 한다. 대신한다는 의미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필요 없는 자를 남긴 것이다. 광해는 그런 아들이다. 2번째 아들이나 임해군과 더불어 무수리의 아들이고, 선조 역시 무수리의 아들이다. 정실 사대부의 규수를 맞아 대군을 원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임금의 뒤틀린 신분의 콤플렉스는 경종과 영조에 가면 비극에 이른다. 영조 역시 무수리의 아들이고, 연잉군 시대 경종과 소론에 목숨이 위험했다. 노론과 연합하여 권력을 잡자 그가 행하던 짓은 소론을 부수고, 경종의 흔적을 지우고,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였다. 왕의 권력은 그런 것이다. 선조는 광해에게 세자를 줄 생각이 없었고, 그를 살려둘 생각도 없었다. 왜군이 전국을 모두 점령할 때 명나라에 그를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의병을 구하기 위해 군사진영에 보낼 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점은 광해를 지지하지 않은 신하들도 알았다. 광해를 암살하려 자들은 처음에 왜군이 아니라 암살단이었다. 암살단은 왜군의 조총 대신 강력한 활을 사용했고, 그 중심에 염탐꾼을 심어놓았다. 광해군이 죽어도 상관없는 형태였다. 이때 광해만큼 암울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립군(代立軍)이다. 이들은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나, 집안이 가난하여 병역을 서야 하는 자들은 대신하여 군복무를 하는 자이다. 평화가 지속되면 모르나 변방에 여진족과 왜구가 나오면 대신 가서 싸워야 한다. 대립군은 정군(正軍)으로 복무해야할 양인들 대신 군복무를 하니, 그 수가 일대일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호패를 몇 개나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죽게 되면 병역을 대신하지 못해 가족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 조선시대 군역은 정군과 보인(保人)이 나누어져 있다. 보인들은 정군들이 군역을 하면서 필요한 생계수단을 지원한다. 집안족보를 보니 임진왜란 시기 나의 할아버지는 보인을 맡았지만(우리집안은 남인이고 당시 할아버지 친척들은 전쟁 중에 많이 죽었다), 한편으로 무관으로 임용되었다. 그 동생은 만호(萬戶)라는 무관자리를 맡았다. 본래 무관을 맡은 자나 정군을 이행하면 몰라도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대립군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타인의 이름으로 군역을 했다. 죽음이 오고가는 전장터, 그러나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굶어죽는다. 이런 대립군을 광해군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광해군의 역사는 정사일수 있으나, 대립군은 실존해도 광해군과의 관계성은 허구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 그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광해군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다음으로 전쟁을 직접 수행한 임금이다. 임진왜란에는 3인의 영웅이 있다. 무의 완결자인 이순신, 전시행정의 완결자인 류성룡, 전시상황의 바람인 광해군이다. 그래서 선조는 3사람을 미워하거나 견제했다.
3사람 모두 선조를 대신하여 조선을 구한 사람이나, 왜 미워하는가? 백성들은 모두 광해의 분조를 알았다. 선조가 머문 성은 파괴되었으나. 광해군이 머문 자리는 오히려 건재했다. 영화에서 광해는 백성들의 고통 받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괴로움에 눈물을 흐른다. 굶주림에 밥을 얻어먹을 때 대립군 하나가 노래를 부르자, 그 장단에 따라 춤을 춘다.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자세로 백성을 대한다. 그를 보자 백성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을 흐른다. 가토의 군사가 광해군과 대립군이 피한 성에 침공하자, 광해는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의 국기, 왕을 상징하는 어기를 올려 작은 성이 조선의 정부라고 선언한다. 거기서 조선의 백성에게 자신의 왕이란 사실을 밝힌다.
영화에서 고위관료가 경연을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은 유학이나 그것은 공맹의 유학보단 주자의 성리학으로 흘러가던 시기이다. 주자의 성리학으로 조선은 망했다. 공맹의 유학에서 맹자는 모든 만물의 근원은 백성이라 했다.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고, 백성의 고통을 담아듣지 않은 군주는 자격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에 광해에게 도망을 권한 고위대신은 오히려 광해에게 꾸짖음을 듣는다. 위기의 순간, 생사의 길로, 광해는 왜군의 앞에 공포를 떠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기 때신 손에 활시위를 들기를 선택한다.
광해에게 국가의 주인은 바로 배고픔에 고통 받고, 왜구 앞에 죽음을 당하고, 임금에게 배신당한 채 절망하던 백성이다. 임진왜란으로 최근에 만든 <명량>은 그저 이순신이 성웅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순신이 성웅으로 인정받은 시기는 아주 뒤에다. 그가 영웅인 것을 아는 사람은 친구인 류성룡이다. <징비록>에 순신에 대한 애절함이 깊이 드러난다. 감정을 드러나기를 조심하던 조선시대 사대부, 그것도 영의정 대유학자 류성룡은 친구의 죽음에 비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순신과 인척이던 백호 윤휴는 남인의 논객으로 사형을 당했다.
남인이던 이순신은 정조에 이르러 겨우 성과를 인정받았다. 남인, 그리고 남인과 북인의 원류인 동인이 그토록 가려진 것은 노론의 사대주의와 권력지향에 대한 욕망이다. 광해의 가치가 절하된 이유는 그가 서인에게 반대되는 세력이고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다. 인조반정은 서인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남인 이원익이 광해군을 보호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남인 이원익은 임진왜란에도 국정을 안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이다. 선조와 서인에게 임진왜란은 지울 수 없는 실정이다.
의병과 전란 중 성과를 올린 자는 대부분 동인계열이다. 남명 조식의 제자들은 의병장으로 활약했고, 이순신의 역할을 말할 필요도 없다. 원균은 서인의 장수였지만, 결국 실패로 인해 전장에서 사망한다. 그래도 선조는 그에게 높은 공훈을 치하한다. 선조는 조선의 승리를 의병장과 이순신·류성룡의 세력보다 중국의 진린 세력을 옹호했다. 명나라에 구원 간 자신이 천국의 나라의 구원군을 데리고 와서 적인 왜구를 격퇴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선조의 왕권은 그대로이나, 민심은 그렇지 못했다.
이순신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나, 류성룡이 북인에게 탄핵이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거나, 광해군이 선조가 죽기 전에 머리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선조에게 당해야 했던 이유도 모두 임진왜란의 비극이다. 만일 류성룡이 현명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이 장군도를잡고 지휘하지 않았다면, 광해군이 노숙과 암살의 위기를 지나지 않았다면 조선은 없다. 그리고 그들 옆에서 목숨을 걸고 도와준 이름 없는 백성 역시 없었다면 마찬가지이다. 광해군이 조선군영에 도착하자 무관을 비롯한 백성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사기가 충만해지는 모습이 나온다.
광해군 손에 들려진 날카로운 칼, 그 칼을 아주 강하게 잡고자 하는 의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백성을 이 나라에 살리기 위한 의지이다. 대립군은 자신의 이름 없이 살아간 자들이다. 곽재우나 정인홍 같은 유학자들은 양반의 이름으로 의병장을 맡아 조선을 살렸다. 하지만 이들은 혼자서 싸운 게 아니라 그 뒤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다. 단지 그들의 의기가 충만한 것은 조선의 땅에 조선의 임금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광해군에 자신이 직접 글을 적어 격문을 돌리자 전국에 의병이 활약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어기에 담겨진 2마리의 용은 하나는 임금이고, 하나는 백성이란 말을 토우가 한다. 사실 조선왕조가 왕이 주인이라 하나, 유학에서 진정한 주인은 백성이다. 20세기부터 조선의 위대한 철학자 정약용 선생의 가치가 다시 살아난다. 다산의 철학이 조선시대 왕조국가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진정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다. 임금과 목민관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라 백성의 생업을 유지하고, 그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이 민주주의에서 자유와 삶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정부, 국회, 법원의 삼권분립이 완성된다.
광해군이 폭군이라 하나, 막상 광해군이 만들어놓은 과업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비교하여 훨씬 우월하다. 허균의 발탁이나 정치나 외교의 업적은 인조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왜곡된 이유는 서인들에 의해서이다. 서인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다소 반대지점이 필요했다. 개혁을 원한 군주나 세자들은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왕조사회에서 권력의 다툼이나 암살 등은 흔한 일이다. 백성들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개혁을 통한 모순의 해결을 원했다. 개혁은 권력을 가진 고위대관에게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조선시대 민중의 분노와 울분을 외면한 이들이 가장 신봉한 것은 성리학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한 사람의 말만 찾는 바보들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했다. 그 바보들은 위기의 순간에 백성을 버렸고, 광해가 백성과 함께 하는데, 왕의 자리를 위해서 벗어나는 것부터 권했다. 조선시대 권력에서 왕조국가에 숨은 그늘의 권력이란 늘 이런 것이었다. 이런 모순에서 단지 가난이란 이름아래 군역을 대신한 대립군, 그들은 대립군역이 끝나도 마지막은 의병이 되어 죽음을 선택한다. 의병이 되어 죽는다면 광해군은 살아 전국의 의병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팔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 사실 영화는 조선이나 그 말에는 조선이 아니라 현대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그 당시의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시선과 감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콘텐츠이다. 게다가 역사물이나 과거와 현재와 대화하는 모습이 영화로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지난 정부에서 영화 <광해>와 <변호인>을 만든 업체가 많은 제재를 받았다고 한다. 영화가 역사를 소재로 제작했다면 사극영화조차도 현대사회의 우리를 반증하는 스토리텔링이다.
<대립군>을 보면 참으로 암울한 시대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대신 병역을 살아간 백성들, 그들에게 이름은 있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것을 바꾸려 했던 자들이 있었다. 어둠과 절망만으로 가득해도 가늘고 약하지만 작은 빛이 어딘가에 분명 존재했다. 인간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하다. 인간은 생물인데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나, 살아갈 의미가 없다면 죽음의 욕망이 영혼을 지배한다. 그러나 대립군은 죽음의 욕망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게 아니라 삶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이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말이다. 대립군만 아니라 조선의 백성은 임금다운 임금을 원했다. 광해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으나, 백성의 고통을 같이 나누며 그들을 위로하면서 진정한 임금이 되었다. 조선의 임금을 조선의 땅에 있었고, 유교정치가 그대로 실현되었다. 죽을지 알아도 왕의 깃발이 보이자 100명의 의병과 승병들은 죽을지 알았지만, 사지를 향하여 뛰어간다. 유교사상은 백성을 잘 살기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나, 그 중심에 군주가 있어야 했다.
<대립군>에서 대립군만 아니라 분조의 왕조차 대립군처럼 되어야 했지만, 광해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왜군과 싸웠다. 나라의 지도자란 제일 낮은 곳을 찾기 위해 높은 곳에 존재한다. 같은 선상에 있으면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순신 역시 진중에서 회의할 때 참모만 모이는 게 아니라 가장 말단 병사까지 발언권을 주었다. 이순신이나 광해군이나 모두 가장 아래부터 먼저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이 수 백 년 뒤에 가서 알아준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그들 옆에서 생사를 같이한 자들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