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네요. 형.”

 

지윤은 형이 낙심해져 엎어져 있는 걸 처음 보았다. 그의 일생에 포기, 실패란 단어는 없었다. 객관적인 실패는 있어도 주관적인 실패는 단 한번도 없었다.

 

“한놈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형, 그 정도 장난같은 문구로...”

 

지윤은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젠장.”

 

형이 식탁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놈도 안 움직였어. 젠장할. 삼천원은 돈도 아닌가!”

 

“형한테는 큰돈이겠지만 요즘 시대에는...”

 

“한놈도 안 오다니...”

 

다시 고개를 파묻고 중얼거리는 그가 딱했다. 사실 한 명이 오기는 왔다. 하지만...

 

[여기 있었습니까. 신부님.]

 

이준구는 약간 벗어진 머리에 몇가닥 없는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네. 거기는 제게...]

 

[그 광고문하고 신부님이 관계가 있는지는 몰랐군요. 길준씨를 찾는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

까?]

 

[아니...뭐.]

 

이준구의 눈에 측은함이 서렸다.

 

[신부님.]

 

[네.]

 

[일반 신자가 신부를 불쌍하게 여길 날이 오는지는 몰랐군요. 아직도 신부님을 쫓는 그 사람이 여기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아마...안 올 겁니다. 여기는]

 

[길준씨가 흥미를 보일 정도면 당신 형도 곧 여기를 찾아올겁니다. 다시 위험해지는거죠. 커피물에 대해서 아는 건 당신 형제들이니.]

 

[위험하다니 말입니다만.]

 

지윤은 준구에게 말했다.

 

[진짜 위험한 분은 따로 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윤은 이준구를 데리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노인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전 괜찮으니까 이 분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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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설을 쓸 때 제일 높게 평가하는 게 오락성입니다.

재미없는 소설은 잘 안 읽는 주의라...

문학도들이 들으면 화내겠지만, 저는 상업소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쓰는 것도 주로 그런 장르의 것을 많이 썼죠. 인기는 없었지만.

근데 쓰면서는 항상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책임질만한 부분이 생기면 폐기처리하곤 했으니.

제가 소설을 쓰는 마음이 어떤건지는 뻔하죠.

제가 쓰는 소설은 만화와 드라마에 좀 더 가까운 것입니다.

제목들부터가 만화 같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방심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맘껏 쓰자. 라고요.

 

그런데 일어나버렸네요. 소설보다 더 잔인하게.

정치가가 누군가를 청부살인한다. 혹은 어느 높은 집단의 사람이 낮은 사람을 어떻게 한다.

이건 소설로 보면 실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 재미있게 볼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는데.

일어나버리면, 쓰는 입장에서는 망연해집니다.

더 이상의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죠.

그래서 좀 돌아오는데 늦었습니다...

아직도 생각 중입니다.

 

기존에 써오던 것들처럼 문제가 생긴 후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가곡의 성처럼 완전히 판타지스럽게 결말을 지을 것인지...

우선은 뒷편을 썼습니다. 이글 올라가고 나서 올라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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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야 테츠의 맛의 달인을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궁금한 적이 있을 것이다. 기타오지 로산진 말이다. 맛의 달인에서 그는 궁극의 신처럼 여겨지며 숭배받는다.

그런데 그 이전에 도자기를 연구한 사람 중 로산진을 연구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부산 일보에 그릇에 대해서 연재하시는 박영봉 선생님 말씀이다.

그분은 로산진에 대해서(물론 한권은 도자기에 좀 더 할애가 되어 있다.)전기문을 쓰신 분이다. 과연 로산진은 어떠한 인물이기에 맛의 신, 도자기의 신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로산진에게 혹독한 비난을 받은 야나기 무네요시(로산진 이전에 이미 한 30년전부터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이 국내에 관심을 받은 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의 저작을 이제야 알고 찾기 시작했다.

 

 

 

 

 

민예가 어째서 비싼 돈으로 팔리는 현실이 제대로냐!는 로산진의 일갈이 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에 대해서 별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박영봉 선생님의 저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하지만 이번에 구매했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저작을 모아놓은 [다도와 일본의 미]에 보면 로산진이 공격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로산진을 공격하는 듯한 글을 쓴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예, 미술을 가르고- 또한 소박한 미와 일부러 꾸미는 미에 대해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로산진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로산진은 말 그대로 아티스트~이니까.)

아마 그래서 로산진은 제압을 하기 위해서 그런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을까...

 

 

 

 

지금 국내에 있는 로산진에 대한 연구서는 2권(모두 박영봉 선생님의 저작.)이고 논문은 하나 뿐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때 국내 붐으로 인해서 책이 제법 있으나, 솔직한 말로 로산진에 대한 책은 좀 빈약하다. 박영봉 선생님을 비판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로산진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국내 저자의 책보다는 로산진이 직접 쓴 책을 번역하는것이 맞지 않았나 싶다.(로산진 저작이 있으면 말이지만. 아니면 하다 못해 일본에서 연구한 연구서는 좀 더 깊은 맛을 지니지 않았는지. 감질난다. 그 저작으로만 만족하기에는.)

물론 로산진의 요리를 직접 재현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기에 부족함은 많이 가려지지만.

하지만 요리, 서각, 도자기 등에 뻗쳐나간 로산진의 천재적인 능력에 대해서 다 서술하는데에 저자의 한계가 있음은 어찌함인지...(2권 중 한권은 소장했다가 중고서점으로 넘겼다. 도저히 계속 가지고 있기에는 나하고 안 맞아서...나는 좀 더 풍부한 이야기를 원했다. 물론 저자분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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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는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1년간 집을 비웠던 것이 거짓말같았다.

남편은 정당 건으로 항상 바쁘고, 돌아와도 술에 취해 있었다.

그녀도 정치인의 아내로 그와 함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무실로, 거리로, 그리고 유권자들이 있는 곳으로 인사를 나갔다.

오늘은 커피 강습소가 있는 곳으로 인사를 나갔다. 정치인의 아내가 되기 전 카페에서 서빙을 했었기에 커피는 좀 친숙했다.

 

 

“어서 오세요. 사모님.”

 

 

어느새 윤희씨. 가 사.모.님. 으로 변한 것일까. 그녀는 그 변화를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강습소의 어린 학생들과 어머니들은 그녀에게 아는 체를 하며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잔 하고 가세요. 예가체프가 좋은 게 들어왔어요.”

 

 

“아, 감사합니다.”

 

 

무조건 거절하기보다는 호의를 받아들이자. 정치인의 아내도 정치인. 이라며 신신당부하던 보좌관의 말도 있었기에 그녀는 커피를 한 잔 받아 마셨다.

보좌관의 말에 따르면 정치인이 될 그릇은 남편보다는 그녀가 더 낫다고 했다.

물론 그말을 한 본인도 말을 한 후 이내 후회했고, 윤희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일이었다.

옛날의 병률이었다면 그런 말은 들어도 모른척 했거나 그냥 웃어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병률은 달랐다. 알게 모르게 날카로웠다. 아내인 그녀조차 조심할 정도로.

다행히 병률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여기, 코피 루왁도 있는데, 한잔 시음...”

 

 

갑자기 요란스런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커피 강습소는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니, 의원님 사모님이 오셨는데...”

 

 

선생님의 자상하지만 난처한 말에 학생 하나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이건 커피에 관한 건데요...”

 

 

“3천원을 준데요. 커피에 데인 화상 자국만 있으면.”

 

 

"왜 그 말은 빼먹어. 커피에 데여 죽은 사람 이야기도 하면 준댔잖아..."

 

“3천원이면 교통비가 더 들겠네. 여기서 거기까지.”

 

 

“아니 매일매일 준데요...근데...”

 

 

“문을 닫았데요.”

 

 

어느 누구의 말에 의해서 그 우스꽝스런 이야기는 끝이 났다.

 

윤희는 빙긋 웃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윤희는 이내 남편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병률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어...디...였습니까. 그 장소가...”

 

 

하지만 그가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수강생 중 한명이 그 기사를 잘라 그에게 주었고, 그는 모든 행사를 취소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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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길준은 신문을 펴고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죠?”

 

저번 말다툼 이후로 다소 친근해진 두 사람이었다. 물론 서로간의 감정이 기본적으로 원활하지는 않았기에 다소 딱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군요...”

 

“뭐가요? 아니, 그것보다 신문을 읽으시는 게 이상하네요. 인터넷으로 보면 더 빠를텐데.”

 

“습작하던 시절의 습관이죠. 신문은 통째로 읽어야 제 맛이니까. 난 그렇게 알고 있어요. 지금은 소설가의 꿈은 버렸지만 우습게도 아직까지 그 버릇은 그대로죠.”

 

“근데 뭐, 독특한 걸 발견하셨나봐요?”

 

“아, 보여드려도 상관없겠죠. 이리로 와서 좀 보세요. 이런 광고같은게 있군요...”

 

은미는 속으로 셜록홈즈의 단편을 떠올리면서 얼른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신문은 연합뉴스의 신문을 주로 갖다쓰는 지방지로써 하단부에 조그만 광고가 하나 나 있었다. 신문을 뼈째로 씹다시피하는 애독가들이 아니라면 읽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군침이 도는 기사이기도 했다.

 

“남이 쏟은 커피 때문에 화상 입은 사람을 찾습니다. 1도에서 3도까지. 혹은 커피로 죽은 사람도 알고 있는 사람도 찾고 있습니다. 한 사람당 매일 3천원을 드립니다. 단 화상의 경우 최근의 상처가 아니라 1년은 지났어야 합니다.”

 

3천원 때문에 가기에는 뭔가 좀 좀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확실히 길준의 말대로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한 사람 알고 있긴 합니다만.”

 

길준은 그렇게 말한 후 입을 다물었다. 은미는 그 사연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한 장난쯤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특이한 광고네요. 3천원이 공짜로 생기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에 가는 값이 더 들겠어요.”

 

“뭐 생각나는 거 없습니까? 은미씨?”

 

“셜록홈즈가 되고 싶은 거군요.”

 

“음, 내가 좀 한가하다면 직접 응하고 싶지만 그건 안되겠고...”

 

“신문을 그렇게 꼼꼼히 읽으시는 분이 한가하지 않다는 건...”

 

그 말에 길준이 빙긋 웃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라는 말을 하려고 한다는 걸 안다는 듯.

 

“이 친구들은 날 찾는 것 같군요. 하지만...”

 

“하지만?”

 

“내가 직접 가면 안될 것 같아요. 적을 옆에 두는 건 위험한 짓이죠. 당신만 해도 버거운데.”

 

“...여전하시군요.”

 

씁쓸한 그녀의 미소에 길준이 고개를 반쯤 까닥였다.

 

“커피 때문에 화상을 입었건 아니건 화상자국은 거의 다 비슷하니까. 이 친구들은 헛수고만 할 것 같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준구씨가 대신 가주면 좋을 것 같아요.”

 

“호, 대신 가도 상관없다면?”

 

“3천원보다 돈이 더 들지만 나도 가끔은 이런 장난에 응해주고 싶어지죠. 적이건 아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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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내용은 미리 생각해두었지만 손이 안 나가서 늦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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