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경은 약속을 지켰다. 길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레지던스 301호에 있는 동안 그는 그가 이때껏 해온 뇌물 수뢰자들의 명단을 길준에게 보내주었다. 어차피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지경이 있는 방에 있는 cctv를 통해 모든 것이 그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다만 의외였던 것은 이준구가 조지경에게 의외의 동정심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 분 담당을 저로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준구의 말에 길준은 아연해졌다.

"바쁘실텐데 그 사람을 꼭 만나셔야 합니까?"

"상심했을 겁니다. 저도 사업체를 해본 사람이라 저렇게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길준이 원하는 건 그가 모든 비리를 밝히고 루가의 정체에 대해서도 폭로하는 것이었지만 조지경은 그것만큼은 완강히 거부했었다. 그를 레지던스 301호에 2개월간 두는 것은 결심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것이었다, 또한 다른 덫을 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겁니까?"

길준의 어조가 조금 올라갔다.

"그 불쌍한 남자를 위해서? 악랄해서 제 벌을 스스로 받은 그 자에게. 당신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저자는 악질이에요."

"악질이라도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의 비참함은 형언할수가 없는 고통이죠."

담담하게 준구가 말하자 길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구씨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전 그냥 두고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100만원의 금액을 전달하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길준씨한테도 큰 폐는 안될 겁니다."

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컴퓨터를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준구가 그에게 가는 것이 악영향이 될 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한동안은 준구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준구는 그를 위해서 어깨를 빌려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해주었다.
그리고 길준은 또 어깨를 빌려줄 사람을 찾았다. 이번에는 여자였다.

[번개팅합시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트윗이 올라왔다. 길준은 피식 웃었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해왔던 트윗은 가끔 그를 인간답게 돌려주었다.

[미정씨 오늘 시간이?]

[근무 중이라...그래도 5시쯤에는 뺄 수있을 것 같아요.]

어깨를 빌려줄 사람...아니, 앞으로의 복수의 도화선이 되어줄  사람.

[그럼 로얄 호텔 토르테에서 뵙죠.]

[거긴 비싼데요?더더군다나 호텔...]

[커피는 내가 살게요.더더군다나 오늘은 케이크 뷔페가 있는 날이에요. 미정씨 케이크 먹부림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그 시간, 윤희도 채미정에게 트윗을 받았다. 채미정과 그녀는 오랜 시간동안 팔로워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병률이 의원이 된 이후부터 그녀는 점점 외로움을 탔다. 그래서 트위터를 해왔고, 이젠 트윗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오늘은 물주가 있어요...미림님도 참가가능하죠?]

처음에 그녀에게 트위터를 가르쳐 준 사람은 길준이었다. 요즘은 흐린 기억속에서 길준을 생각하곤 했다.
옛날에 병률과 그와 그녀와 길준의 아내가 어울리던 시절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때는 참 분위기가 좋았었는데...

[네. 꼭 나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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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는 그 사건 이후 병률과 말을 하지 않았다. 병률은 늘 하던 대로  될 수 있는대로 부드럽게 윤희를 설득했고, 윤희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의혹은 가졌지만 더 이상 닥달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심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다. 그건 과거에 한번 만났던 형이라는 남자의 전화때문에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의혹을 품고 진실을 찾아가려는 동안에 정의와 병률, 명준의 작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주민등록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정의가 황명준을 찾아갔을 때 황명준은 앞으로 모 도시에 있을 마라톤 대회의 기념품을 택배로 받고 있었다.

"네?"

너 누구냐, 라는 눈빛의 황명준에게 정의가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이준구라는 사람이라는데 변동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다만?"

"저희 서의 한 선배분이 그 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답니다.이준구라는 사람으로는요."

젠장. 황명준은 투덜거렸다. 신분세탁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는 건 그 치 또한 만만찮은 인물임을 알게 했다.
과거, 도민증의 시절 사람이라면 확실히 가능하다.
지문을 완전히 없애거나 지문이 유사하다면 더욱 가능하다.
그걸 떠나서 경찰에 있는 지문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매수...
상대도 법과 질서를 교란하는 자라는 점에서 황명준을 매우 화나게 만들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은 아니지만 매뉴얼의 인물이었다. 기존 틀을 벗어나는 사람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럼 그 선배님과 공적으로 만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유가 없답니다."

"예?"

"그 사람을 경찰로서 꼭 만나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법적으로 만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발장이 들어온 게 없어서요."

"...의혹은 있지 않습니까?"

"검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정의가 조용히 말했다.

"이유가 없는데 억지로 만날 수 없다는 걸요."

그리고 그때 길준도 조지경을 보내주고 있었다. 조지경은 갑작스러운 사태로 어음을 몇개 막지 못해 -여기에는 길준의 술수도 조금 있었다.- 파산을 겨우 면한 상태였다.

"잘 가십시오. 조 선생."

"......"

조지경은 이빨을 부득부득 갈았다. 전화까지 했는데도 윤희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이 빌어먹을 놈의 집에서 4달을 있어야 했다.

"아, 가시기 전에 선물을 드려야지요?"

"선물?"

조지경은 갑자기 깨닫는게 있었다. 그 금괴!

"우선은 거처할 곳이 없으실테니, 로얄 호텔 레지던스 301호에 자리를 마련해두었습니다. 거기서 한동안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아,만날 사람이 있으시면 거기 커피숍 토르테에서 만나시면 될 겁니다."

"....."

한참 뒤에야 조지경은 다시 입을 뗄 수 있었다.

"금괴는?"

"여전히 욕심이 작으시군요."

피식하고 길준이 웃었다.

"일이 무사히 진행되면 그깟 거 천개인들 못 드리겠습니까?"

"일이라니?"

"조선생께서 레지던스 301호에서 2개월만 계시면야 금괴 몽땅 다 드려도 아깝지 않지요. 우선은 하지만 거기서 무사히 계시는게 일입니다."

"날 갖고 노나?"

"...별 말씀을."

길준이 미소를 지웠다.

"당신이 이의원 부인에게 전화한걸 알고 있는데도 보호해줬다는 건 생각하지 않습니까?"

"......."

조지경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가린 상사라는 곳에 현금을 맡겨 두었습니다. 하루에 백만원씩. 쓰고 싶으신 대로 쓰십시오."

"댁도 손이 작군."

조지경의 말에 길준이 다시 말했다.

"자신의 몸에 독을 뿌리는 사람에게 그 독을 줄여주는 겁니다. 이것도 선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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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5-04-2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분세탁건은 모방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더더군다나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책 입수기는 절판되었던 책이나 재판된 책을 입수했을 때 쓰는 카테고리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는 번역을 하니 옥중기라 하지만, 원어는 곧 그 뜻으로 해석되는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영어가 짧고 귀차니즘에 젖어 옮겨오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주십사...)

하여간 언젠가 원어로 된 제목을 듣고 구하려고 백방으로 뒤지다가-그게 무려 5년전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다 절판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 범우사에서 나온 옥중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열심히 클릭질했지만...그 판본도 절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그때는 인연이 아니라 지나친 것일수도 있지만, 하여간 한동안 내 실망은 제법 컸다.

그러다가 모 문고에서 뒤지다보니 이북으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구입.

읽기 시작했는데 이북치고도 얇은 페이지였다.

읽어보니 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더더군다나 오스카 와일드의 그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신을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 그 태도에는 음...뭐랄까. 회색의 미가 느껴졌다.

예전의 오스카 와일드의 색색이 보여주는 그 빛깔들이 회색으로 변했달까.

 

일생을 축약으로 들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모르니 이 책 내용만 가지고는 오스카 와일드가 어떤 유형의 천재였는지,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묘사가 안되어 있으니 모른다. 나는.-

그 막대한 부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망했는지...

하지만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점에서는 어떤 평론가보다 매섭다고나 할까...

회색. 처음부터 끝까지 회색.

이제 1독 했으니 잘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하여간 입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쁘다. 좋은 책이라서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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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아직도 멀었는데
비구름이 치더니 쨍쨍하구나.
때늦은 딸기 화채 만들어
붉은 즙 흘리며 잘도 먹는다.

할애비가 남긴
논어니 춘추니 하는 것들 한 켠에 펴놓고
북종화니 남종화니 하는 것도 두루 펴놓고
종이에 물기 먹을새라 조심도 하는구나.

그런 들 무엇하냐.
한켠에는 춘화도 가득 펴놓고
양반인척 해봐야 무엇하냐.

그꼴에 흙마당에서는 닭싸움이니
애들이야
어른이 무엇하건
그거 구경하느라 넋이 나갔네.

검정닭이 이기건
붉은 닭이 이기건
수컷이 홰를 치건
암탉이 꼬꼬댁 울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랴.
세상아, 그저 어제만큼만 돌아라.

--------------------------------------------------------------------
닭이 울건 하는 내용은 이틀전에 생각나서 한켠에 적어두었는데
자려고 누우니 짝되는 부분이 생각나서요...ㅎㅎ
김홍도 풍속화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시대는 현대지만, 느낌은 그런 식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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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여  벗들이여.
우리의 행복한 시간은
떠나갔도다.

배가 귀환할 때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잔을 내려
내 마지막을 축복해주오

이제는 떠나갈 시간
이국인에게 돈을 주고
행복을 사던 시간
또 다른 이국인에게 행복을 주고
돈을 사던 시간은 지나갔구나.

그대들은 내가 차마
돈으로 사지 못했던 이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내게 
안겨주던 최후의 이들.

그러나 그대들도 영원하지 않으니
어떤 이들은 내 모습에서 노쇠를 읽고
또 다른 이들은 애절함을 읽었다네
남은 이가 있고, 떠난 이가 있었네.
이십년의 세월동안 그러해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러하리.


내 사랑하던 친구들이여.
내게 입맞춰주던 어버이들이여.
이제 때가 가까워왔으니
나를 축복해주오.

마지막 순간까지
안토니오!
내 이름을 불러주오.

나의 무역함이 귀환하고 있네.
이국의 축복과 저주를 담은
그 배가 돌아오면
나 심장을 베어 올리리


친구는 심장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최고의 진주 이며 루비, 다이아몬드!
그대들이여, 그렇기에 나는
그 어떤 보석들보다 그대들을
귀중히 여기노라.

그러기에 내 핏방울같은 루비. 
루비가 방울져 떨어지듯, 내 핏속에
그대들의 말 한마디
올올이 배여있기를.

부디 내 최후의 한 방울이라도
헛되이 흘리지 않게
나의 이름을 축복해주오.

안토니오!
그 한마디.
단 한마디일지라도.


그러면 나 저승가는 길 
뒤돌아보리라.
안녕이여, 벗들이여.
------------------------------------------------------------------------------------
위에 쓴 대로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장면을 구성해서 썼습니다.
음, 최근의 제 일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결혼하면 친구가 바뀐다더니...그 말이 제게도 왔지요.
음, 제가 썩 좋은 친구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안토니오 이야기에 처음으로 공감했어요. 결혼하면 친구는 바뀐다더니만...하면서
상심했죠. 물론 안토니오는 친구의 우정으로 다시 살아나지만...
그 친구도 잠시 저하고 멀어진 걸거라고 믿고 싶어요.정말 좋은 친구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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