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어를 만드는 건 도공들이다. 운어는 인간이 생기기 전에는 생기지 않았다.
인간들이 붓으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릴 때 운어가 생겼다.
그래서 가끔 하늘의 도움으로 황제가 되었다는 자들은 운어를 얻기 위해 신필들을 가두거나 도공들을 가두고 죽이고는 했다.
그리고 여기에...한 도공이 있었다.

"또 여기에 갇혀 있구나."

패설사관 유모는 갇혀 있는 여자애를 꺼내주었다. 또래들의 장난이었으리라. 도공 후보생 중 여자는 이 아이 하나밖에 없었다. 얼핏 들여보내기 전에 성분조사를 했을 때 부모가 도공이라 했다. 하지만 한가지가 하나 더 있었다. 신필들이 도공행세를 했던 것.

"사부님."

"난 사관이다. 사부님 소리를 하려면 저어기 사옹원장 도조에게 말하거라."

유모가 억지소리를 해서 사옹원장 도조에게 맡긴 게 탈이라면 탈이었다.
 도조는 그 아이를 보자마자 부모를 알겠다며 역모죄를 지을 일 있냐면서 유모에게 엄청나게 화를 냈다.
신필의 도공들이 죽었다면 그건 운어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면서. 현 체제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이었다. 

"도조님이 가두셨어요."

"도조에게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도공들은 반역자니까, 그래서 이렇게 궁안에 묶어두는 건가요?"

아이의 당돌한 말에 유모는 잠시 침묵했다.

"누가 그러더냐."

"도조님이요."

"뭐?"

유모는 혀를 찼다. 도조는 젊었고, 혈기가 방장했다. 아마 이 아이가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출세해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도조였으니만큼 반역자의 자식을 보는 눈이 좋을 리 없었다.

"네 부모가 신필의 도공이었던건 사실이다."

"....."

"너도 기억날게다. 네 부모가 빚은 그릇에서 운어가 태어났더 것을...네 나이 여섯살쯤이었을게다. 운어가 그릇에서 발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지."

"......"

"운어를 빚는 것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때와 장소, 천명이 바뀌어지는 그 순간 태어나는 것이지. 물론 서투른 도공이나 붓질하는 아이에게는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겠다 마음 먹은 자에게 생긴다.그래서 반역죄로 처단하고, 관에 묶어두는 것이다."

"......"

아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유모의 손을 꽉 잡았을 뿐이었다.

"그럼 전 꼭 운어를 만들어야겠어요."

"천명을 바꾸게? 아서라. 천명을 바꾸는 도공과 신필은 100세대에 1인뿐이란다."

"꼭 그럴거에요."

"왜 그래야 하느냐?"

"제대로 된 세상같으면 제 부모님이 운어를 만들 일도, 돌아가셔야 할 일도 없을테니까요."

"허어. 참..."

유모는 먼 발치에서 도조가 오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몸이 굳지도 않은 걸 보면 하도 익숙한 체벌이라 별로 겁먹지도 않은 듯 했다.

"모. 데리고 올 필욘 없었을텐데."

"조. 자네 정말 자꾸 이러긴가. 타고난 도공을 맡겼더니 매일 가두기나 하고 말일세."

"...타고난 도공은 무슨, 운어타령이나 해대서 정신 좀 차리라고 넣었을 뿐인데."

도조는 유모에게서 아이를 떼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서 아이 손에 들려주었다. 

"자, 가서 네 그릇이나 마저 만들거라. 난 사관과 이야기 좀 해야겠다."

아이가 달음박질해서 사라지자 도조는 유모에게 말했다.

"아직도 저 앤 운어를 못 잊고 있다네."

"......"

"궁에선 아직도 저 애를 잘 몰라. 단지 점술사가 하는 말만 믿을 뿐이지. 하필이면 황자의 눈에 띌게 뭔가. 점괘에 따르면 저 애는 운어를 또 불러올 거라 하더군. 덕분에 나만 죽을 맛이지. 궁에서는 독이든 뭐든 먹여서 죽이라고 하고. 내 도공의 마음은 저 애를 어떻게든 반항심을 죽여서 살게 하자 그러고..."

"황자가?"

"점괘에는 황자와 결혼한다는 말이 있어. 그리고 황가는 저 아이로 인해서 멸망한다 하고...그러니 내 꼴이 뭐가 되겠나.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저 앨 사옹원에서 쫓아낼 계획일세. 상궁쪽에 이야기를 넣어서 무수리나 시켜볼까 생각 중이라네."

"허어. 자네..."

"악질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네."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앞뜰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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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논리의 싸움 끝에 두 사람의 말다툼은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들 무리의 사람들이 각각 두 사람을 뗴어놓았고, 냉정한 길준에 비해 선량한 신부이기를 원했던 지윤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나마 지윤의 입장에 가까이 있었던 은미는 지윤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사는 주택의 베란다에서 지윤은 베란다에 놓여 있는 스툴에 앉아 봄바람을 쐬었다.

 

신부님...”

 

은미가 그의 손을 잡았다. 지윤은 아까 전의 험악한 태도를 누그러뜨린 채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군요.”

 

지윤은 이마에 약간의 주름을 잡았다. 은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러실 수 있어요.”

 

“...천주교 신자이신가요?”

 

“......”

 

농담인지 시니컬한 자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은미도 쓴 웃음을 지었다.

 

난 단지 그 사람이 이해가 안됩니다.”

 

“......”

 

용서도 안되고요.”

 

왜냐고 은미는 묻지 않았다. 지윤도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교인이라고 하면 원하는 게 많아요.”

 

띄엄띄엄 그가 말하는 것을 은미는 그저 듣고 있었다.

 

종교인이니 선량해야지. 부패하지 않아야지. , 너희는 신부니까 동정이기도 해야하지?라고.

허목사건은 내가 쓸데없이 예민했던 것 같긴 해요. 그 사람은 누명을 썼을 수도 있고, 법적으로 무지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진심이 아니신 건 알고 있었어요.”

 

은미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내가 더 화가 난 건.”

 

화가 난 건?”

 

내게 단순히 어떤 복수심에 대한 책임을 느끼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허목사건도 선량한 일을 하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위선에 불과한 행동이죠. 노숙자나, 녹차를 생산하는 일에 무슨 책임감을 느끼거나 경제적으로 공로를 세우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걸 느낄 수 있어서에요.

허목사가 가혹행위로 끌려가자 그 다음 대타로 날 세우는 데 조금도 의심도, 책임감도, 생각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저 종교인이라는 껍데기가 필요했을 뿐이죠.“

 

은미는 그 말을 듣는 어느 부분에서 딱딱하게 굳어졌다.

 

복수심이요?”

 

복수심.”

 

일말의 주저도 없이 지윤이 말했다.

 

복수씨는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지만, 거기서 나는 다시 뛰는 내 심장에서 그의 복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마 복수의 큰 부분을 내게서 찾는 것 같아요.”

 

“...복수라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네요.”

 

은미가 손끝을 매만졌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죠. 그 점에서 그와 전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용서하세요. 신부님.”

 

복수는 하지 마세요. 남에게건. 자신에게건.”

 

몇 달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지윤은 빙긋 웃었다.

 

나도 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군요. 고맙습니다. 은미씨.”

 

“......”

 

떠나야겠군요. 복수씨에게 인사 대신 부탁드립니다.”

 

지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로 가시게요?”

 

“...글쎄요.”

 

은미가 보기에 그것은 생각과 생각의 여러꼬리 끝에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윤은 밝히려 하지 않았고, 은미도 굳이 밝히고픈 마음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그건 심연에 가까운 것이어서 심연을 바라보는 자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바람직하지 못한 복수의 중간과정만큼은 막을 순 있겠죠. 전 그렇게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돌아서서 짐조차 챙기지 않고 내려가는 지윤의 뒷모습에 은미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부르고 말았다.

 

신부님.”

 

지윤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시죠?”

 

“......”

 

잠시 침묵하다가 은미가 말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겠죠? 그동안 이야기도 좀 많이 나누고 친해졌으면 좋았을텐데...”

 

, 물론.”

 

지윤이 짐을 다 내려놓고 떠나는 자의 여유로움으로 대답했다.

제 피정기간이 조만간 끝날 것 같군요. 제가 시무하는 성당으로 언제든지 오세요. 개종하고 오시는 거 알죠?”

 

물론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다. 은미도 마지막에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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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사가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이준구는 재빨리 길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그를 처음 불러들였던 거리의 변호사도 불러 들였다.

 

뭔일이랍니까?”

 

노숙자들 중 몇 명은 이미 준구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그들은 준구가 이야기해주지 않고 침통한 얼굴로 사무실안에서 빙빙 돌고 있자 같이 불안해했다.

사무실에서 반쯤은 머리가 벗어진 남자가 방안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은 좀 웃긴 일이었지만 같이 웃지도 못하니 불안할 따름.

 

모르겠어요. 아까전부터 대표님이 저렇게...”

 

그렇게 다들 웅성거리고 있는데 20분 후에 지윤이 들어왔고, 30분 뒤에는 변호사가,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길준과 은미가 같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담담한 어조로 길준이 물었다.

 

허목사님이 무슨 일로 끌려가셨답니까?”

 

예측 못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길준의 물음에 비아냥섞인 어조로 지윤이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신부님.”

 

애초에 기독교 단체에 맡긴 게 잘못이죠. 부패의 온상 아닙니까.”

 

길준은 냉담한 어조로 맞대꾸했다.

 

이준구씨가 추천한 인물로 허목사님만한 분이 없었다는 건 신부님도 아실텐데요.”

 

“...미인가 단체에 맡기는 것도 해결방법입니까? 여기 변호사님도 계시니 답변은 더 잘 아시겠군요.”

 

변호사는 얼굴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어서 안쓰럽게 보였다.

 

변호사님, 정말 입니까?”

 

길준이 한자 한자 똑똑 끊어 질문했다.

 

미인가 단체이고, 뉴스에서 나오는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다는게 정말입니까?”

 

가혹행위까지는 모르겠고, 미인가 단체인건 지금 막 확인했네.”

 

이준구씨. 확인 안 해보셨습니까?”

 

이 사람은 한번도 대장 노릇은 안 해봤던 것 같은데, 목소리며 행동이 마치 오랫동안 대장노릇, 회장노릇한 것 같다. 라고 은미는 생각했다.

물론 해야 할 시점이 늦어진 건 사실이었다. 만약 제대로 대처를 했더라면 이 일이 일어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어째서 왜 처음부터 제대로 일을 꾸려나가지 못했을까.

자신이 처음부터 길준의 옆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번도, 단 한번도 허목사님이 그런 분...”

 

전문성의 부족일따름입니다.”

 

길준은 조용하게 한마디했을 뿐이었다. 딱히 충격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허목사님을 다시 모셔오려면 가혹행위가 없다는 걸 증명하면 됩니다.그건 변호사님이 도와주실테고. 그 단체가 미인가단체인 것은 우리와 상관없으니 넘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시설을 세울 때 이지윤 신부님의...”

 

싫습니다!”

 

딱 잘라서 지윤이 소리를 질렀다.

 

거절합니다!”

 

차가운 길준의 눈과 뜨겁다 못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정도의 혐오감을 보이는 지윤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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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러면 안된다.”

 

병률의 배다른 형은 문을 닫고 애원했다.

 

이게 다 뭐냐. 점점 도를 넘는 이유가 뭐냐고.”

 

형은 자금만 대면 되는데 왜 그렇게 참견을...”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면서 손을 휘젓는 병률에게 형은 애원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냐. ? 그 여자때문이냐?”

 

“.....”

 

병률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 관련 없어. 그냥 어쩌다보니 그 치가 스스로 총을 쏜 것 뿐이야.”

 

뭔 소리를 하는거냐. 원하는 게 돈이야? 정치인이 되고 싶은게 돈때문이냐? 돈이면 내가 어디서든 구해서 올게. 아니, 지위때문이냐. 지위도 얼마든지...”

 

아무것도 원하는 거 없어.”

 

그럼 왜. 정신병원에 가뒀던 그 친구 어머니를 여기 감금한 거냐고. 여긴...위험한 곳이잖아. 여기서 그 친구 엄마가 죽기라도 하면!”

 

빨리 죽으면 더 좋지.”

 

?”

 

그가 경악했다.

 

이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그렇게 할 거야. 그렇게. 내 뒤를 쫓고 있는 놈의 모든 것을 짓밟아주겠어. , 할 수 있는만큼 내 뒤를 봐줘. 의장님의 앞을 막은 놈도 누군지 알았으니 의장님을 위해서, 형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꼭...”

 

그리고 두 사람의 반대편 방에서 도청기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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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은 천천히 옛집을 둘러보았다. 며칠, 아니 몇 달인가, 아니 좀 더 들어가서 몇 년쯤은 지났던가? 이 집에서 아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시간. 가끔 어머니가 방문해서 조그마한 고부갈등이 몇번 일어난 그 집. 그는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잠깐 멈춰섰다.

 

어머니는 보통의 여인이었다. 고부관계에 대해서 한정하자면 그가 행복한 공무원이었던 시절, 아내는 어머니를 이겨먹을 수 있는데도 그저 그런 여자인양 시끄러운 행사를 했다.

가끔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서 노트북을 몰래 챙겨들고 서재로 가야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이, 눈치를 챈 아내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곤 했던 것이다.

그는 그때를 추억하듯이 눈을 초승달처럼 가늘게 떴다.

어머니는 과연 있을까?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전화를 했을 때 보였던 그 모습 그대로라면.

 

[길준이냐?]

 

전화속 어머니의 음성은 다정했었고, 슬펐었다.

 

[......]

 

[어디에 있니.]

 

길준은 그때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그때 모시고 오고 싶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그걸 막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자신을 정신병원으로 보낸 사람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돌아오렴.]

 

감정에 이끌리진 않았었다. 그 순간만큼은.

 

[조만간 모시러가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기다려달라, 오늘을...

 

길준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인터폰에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길준이 아내의 환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환영이 된 이래로 그랬듯이 또다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건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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