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구제불능인간님의 서재 (구제불능인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1점: 중간에 포기하고 덮음2점: 끝까지 읽을 수는 있음3점: 돈하고 시간이 안아까움4점: Output &gt; Input5점: 걸작</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5 Sep 2026 11:25: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구제불능인간</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0.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구제불능인간</description></image><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혼돈의 시기를 살아간 알코올 중독자 -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70853</link><pubDate>Tue, 25 Aug 2026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708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66X&TPaperId=174708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83/82/coveroff/893240366x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66X&TPaperId=174708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a><br/>베네딕트 예로페예프 지음, 박종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09월<br/></td></tr></table><br/>&nbsp;알코올 중독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들과 애인이 기다리는 페투슈키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페투슈키에서는 쟈스민 꽃이 영원히 지지 않고, 새들의 지저귐이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열차를 타기 위해 구매하는 것은 평범한 표가 아니다. 그는 표가 아니라 술을 구매한다. 주인공은 과연 페투슈키에서 아들과 애인을 조우할 수 있을까?<br>&nbsp;주량이 센 편이고 무리도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일을 하다 보면 시간당 소주 1.5병 이상, 총합 1인당 소주 6병 정도 마시는 날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그저 적당히 마실 만 하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가면 게워내고 싶기도 하고 뭔가 그러면서 즐겁기도 하고 아주 원초적이고 음란한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메스껍고 기분이 슬퍼지기도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예로페예프라는 작가가 나보다 훨씬 더 술을 많이 그리고 자주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감정 묘사, 혹은 생리학적 반응을 리얼리즘으로 봐야할까...?<br>&nbsp;술에 대한 묘사는 절반은 경탄이 나오고 절반은 헛웃음이 나오지만 작가는 이를 토대로 다양한 내용을 묘사한다. 묘사는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상당히 황당하고 엽기적이지만 언급되는 내용은 상당히 진중하고 차용하는 테마도 성경, 그리스로마신화, 철학, 역사, 공산당 등 상당히 고급스럽다. 몇몇 장면에서는 피식거리기도 했고, 몇몇 장면에서는 다소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br>&nbsp;문제는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내가 문사철 전공자가 아니며, 그 시절 러시아의 역사와 공산당 문화에 정통하지가 않고 성경, 문학, 철학 등에 있어 완벽한 아마추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당대에 태어나 문사철을 전공했으면 코미디로도 비극으로도 읽을 수 있는 걸작으로 평가했을지 모르지만, 많은 내용들이 시대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기에 나는 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주석을 일일이 참조해가면서 읽을 수야 있겠다만 그러면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 되고 만다. 근데 나 정도면 그래도 현대 사람 치고는 고전과 역사에 대해 중간 이상 정도의 지식 정도는 보유한 편이다. 그렇기에 대다수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작품은 결코 못되며, 후대로 갈수록 점점 시대의 한계에 노출되지 않을까 싶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83/82/cover150/893240366x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838273</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낡았지만 아이러니가 빛나는 작품 - [마의 산 -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52618</link><pubDate>Sat, 15 Aug 2026 2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526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317&TPaperId=174526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6/6/coveroff/8932403317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317&TPaperId=174526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의 산 -상</a><br/>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06월<br/></td></tr></table><br/>&nbsp;가난하지 않지만 백수로 먹고 살 수 있을정도의 재산은 물려받지 못하는 조선공학 전공자 한스카스트로프는 질병에 걸린 사촌을 방문하기 위해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요양원에 방문한다. 처음에는 단기간 체류할 목적이었던 그는 쇼샤부인이라는 여자를 만난 뒤 갑자기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는 열때문에 요양을 잠시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한스 카스트로프는 이 마법의 산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br>&nbsp;16~17세기 유럽에서는 왕권신수설을 옹호하는 서적들이 엄청나게 출판되었지만 지금은 유럽의 고(古)도서관의 보존서고에나 존재하고 아무도 읽지 않은 채 책장에서 잠자고 있다. 당대에는 걸작으로 칭송받았을지라도 오늘날에는 그저 낡은 이론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독문학은 대학에서 하나의 학과로 자리잡았고 교수들은 고전을 끊임없이 옹호하지만, 객관적으로 낡은 건 낡은 것이다. 이 작품은 낡았다는 수식어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마저 문사철 분야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의 배경이 설명되지 않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대에는 신기하게 받아 들여졌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기계장치들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은 오늘날에는 시의성을 많은 부분 상실했고 다소 병적이기까지 하다.&nbsp;<br>&nbsp;그럼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마의 산에 도착한 한스 카스트로프는 처음에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며 페이지도많이 할당되지만, 요양원의 정적인 생활에 익숙해진 카스트로프에 관해서는 작가가 서술할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절대적인 수치로는 7년 요양원에 머물렀지만 요아힘, 쇼샤부인 등의 인물과 함께 보냈던 앞부분의 짧은 시간이 개인에게 있어선 후반부의 길고 단조로운 생활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다.<br>&nbsp;시간 관련 아이러니 외에 삶과 죽음에 대한 아이러니도 매우 탁월하다. 한스 카스트로프는 요양원 생활을 함으로서 19세기 소시민이라면 경험하지 못할 지식과 사고들을 접할 기회를 갖는다. Memento Mori, 즉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고대 및 중세처럼 죽음이 늘상 도사리는 장소이며 그곳에서 카스트로프는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기독교적 박애정신 및 동정심을 느낀다. 산 밑에서 현실을 사는 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로부터 둔감해지고 기계처럼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에 시야를 돌리는 행위는 현실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세템브리니가 지적하듯 방종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br>&nbsp;세템브리니와 나프타 이야기도 뺄 수 없다. 진보와 과학기술을 옹호하고 자본주의적인 삶을 옹호하는 세템브리니는 궁색한 생활을 하는데 공산주의를 부르짖고 종교적인 삶을 옹호하는 나프타는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세템브리니는 본인이 진보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그 기원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카발라적 신비주의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반진보적이라고 욕먹는 종교는 과거 압제적인 군주들에게 반항하는 세력의 중심점이 되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작가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충실하게 보여줄 뿐이다.<br>&nbsp;교양소설은 한 소년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정신적으로 고찰하면서 성장하는 내용을 굉장히 충실하게, 느린 속도로 서술하는 소설을 말한다. 괴테가 개척한 이 장르의 문법을 마의 산에서 토마스 만은 채택하였지만 그 결은 사뭇 다르다. 한스 카스트로프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로 대표되는 지성인들의 사상에도 노출되고, 생물학에도 관심을 가지며 정신분석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혼자 설산에서 스키를 타다가 삶에 대해 고찰하는 등 분명 예민한 영혼을 각성했다. 그러나 단조로운 생활이 지속될수록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행위는 방종이 되어 버리고, 개인의 영혼은 담배맛조차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세속의 둔감한 영혼 그 이상으로 마비상태에 빠지고 만다. 한스 카스트로프는 과연 성장한 것이 맞는가?&nbsp;<br>&nbsp;오늘날 마의 산은 그 시의성을 많이 상실했다. 전원책 씨가 옛날 방송에서 사람들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은 잘 사먹으면서 니체의 책은 구매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을유문화사의 선전문구,&nbsp;20세기 사상을 종합한게 오늘날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명문대 문사철 전공자들이 나같은 아마추어보다 책을 덜 읽으며 대거 로스쿨에나 진학하는 오늘날에 말이다. 마지막의 제 1차세계대전에 대한 시대적인 절망도 현대인들이 온전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못된다. 그러나 작가의 아이러니만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채를 뽐내고 있다.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 마의 산에 올랐던 행위는 절대 후회스럽지 않았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26/6/cover150/8932403317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60626</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담과 하녀 - [하녀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51857</link><pubDate>Sat, 15 Aug 2026 0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518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638420&TPaperId=174518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592/50/coveroff/k5626384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638420&TPaperId=174518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녀들</a><br/>장 주네 지음, 오세곤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0년 03월<br/></td></tr></table><br/>&nbsp;비참한 생활을 하는 하녀자매는 마담이 자매를 비운 사이 한명이 마담을, 한명이 하녀를 연기한다. 그녀들은 마담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지만 마담처럼 드레스를 입고 애인과 밀회를 꿈꾸는 것 또한 강하게 동경한다. 그들은 마담의 소품을 이용하여 연기를 하는데, 마담이 이를 눈치채지 않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br>&nbsp;이 극은 여러모로 스트린드베리의 "미스 쥴리"에 영향을 받은 티가 난다. 단막극이며, 삼일치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진다. 언어가 아닌 행동이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마담과 하녀라는 직급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인이다.&nbsp;안타깝게도 언어 감각에 있어서는 주네가 스트린드베리에 미치지 못한다. 나름대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려고 애를 쓴 티가 나며, 주네도 언어적 재능이 넘치는 훌륭한 작가지만 진짜 천재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예체능 분야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주네가 선배 작가를 뛰어넘은 분야가 있다. 바로 무대 소품의 활용 능력으로, 마담의 연지, 알람시계, 마담의 옷, 전화기 등이 대단히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는 듯해 독서를 하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br>&nbsp;하녀들은 마담을 연기하고, 또 마담과 대화하면서 마담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한다. 마담이 거드름을 피우고 자매들의 이름을 헷갈려하며 사람취급도 안하지만 마담은 하녀들을 미워하는게 아니다. 별다른 관심이 없을 뿐이되 을의 입장인 하녀들은 내면적으로 이를 확대해서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 계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극중극의 형태로 아주 세련되게 잘 묘사했으며,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는 기법은 "후안 마요르가" 와 같은 후대 극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592/50/cover150/k5626384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5925052</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상위호환들이 존재한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51810</link><pubDate>Sat, 15 Aug 2026 08: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518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032916&TPaperId=174518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0/39/coveroff/k6220329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032916&TPaperId=174518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하로부터의 수기</a><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최은경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br/></td></tr></table><br/>&nbsp;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지하에 사는 한 폐인이 자신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토해내는 일종의 철학적 에세이이며, 2부부터 진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서사가 존재한다. 1부의 수리과학 및 합리주의 비판 관련 내용은 다소 선각자 스러운 것으로서, 실존주의 계열로 해석되는 작가들이 이를 참조하여 더 나은 작품들을 창조했으므로 굳이 오늘날에는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다. 고통스러워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부분, 무기력에 중독된 부분은 다소 인상적이긴 했으나 보들레르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더 잘 썼기에 마찬가지로 별 의미가 없다.<br>&nbsp;2부는 강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성질의 글이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광기는 진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은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것이어서, 후대 작가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묘사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필체를 도저히 모방할 수가 없다. 심리 묘사가 경이로울 뿐 소설로서 서사가 그리 탄탄한 작품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모욕을 느끼고 복수하겠다고 마음 먹어 놓고 다시 비굴하게 그들에게 빌붙으려는 주인공의 행태는 글을 쓴 작가가 제대로 또라이라는 생각만 들고 재미는 없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창녀 리자를 구원하겠다고 설치다가 마지막에 자기 혐오 발언만 내뱉고 끝까지 궁시렁거리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지만 이 또한 "악령" 이라는 상위호환이 존재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0/39/cover150/k6220329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803908</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저질스러운 투자 서적들보다 우월하다 - [원자재를 알면 글로벌 경제가 보인다 -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진실과 해법을 만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48688</link><pubDate>Thu, 13 Aug 2026 15: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486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8781566&TPaperId=174486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39/91/coveroff/89287815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8781566&TPaperId=174486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원자재를 알면 글로벌 경제가 보인다 -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진실과 해법을 만난다</a><br/>이석진 지음 / 한국금융연수원 / 2023년 05월<br/></td></tr></table><br/>제목은 거창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책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얇은 분량 대비 각 원자재의 특성 및 원자재 생산 기업들에 관한 정보를 이 정도면 나름 잘 담아냈다고 생각된다. 이하의 내용은 국내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Prop Trader들,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및 경제학자들에게나 필요한 내용들, 책을 저술할 때에는 맞는 말이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틀린 내용들(ex)플래티넘이 팔라듐보다 저렴하다)를 제외하고 남긴 메모들이다. 실력은 없으면서 투기꾼의 마인드를 가진 자들에게는 별로 도움 될 내용은 아니고, 건실한 장기투자자들은 참조해볼 만하다고 생각된다.<br><br>-석유는 대체제가 없다. 그렇기에 수요가 가격에 비탄력적이고, 이에 인플레이션 시기에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산업금속은 대체제가 존재하고 이에 수요가 가격에 탄력적이다. 이에 인플레 시기에도 원유만큼 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br>-원자재는 달러로 거래한다. 달러가 약할 때 투자가치가 높고 강달러에는 대체투자자산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br>-미국 경제가 호황일 때 달러가치는 올라가고, 평범할 때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불황일때는 전 세계가 불황을 겪고 이때 자산은 안전자산인 달러로 편중되므로 역설적으로 달러의 가치가 올라간다(달러 스마일 이론). 극도로 단순화 하면 시계열 상 2/3는 달러 강세고 1/3은 달러의 상대적 약세장이다. 그러므로 원자재 투자 등으로 달러를 이겨먹으려고 하면 안된다.<br>-산업금속 가격은 글로벌 경기에 따라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호황일 때 비싸지고 불황일때는 상방에 제약이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시 후진국은 선진국 대비 느리게 회복하고, 신흥국들의 수요도 천천히 회복된다. 인플레이션보다 기대성장률이 더 높은 호황기에만 대체투자 자산으로서 산업금속은 매력을 지닌다 (그런데 호황기에는 다른 자산들도 다 같이 상승한다. 정보가 수시로 흘러들어오고 막대한 현금과 컴퓨팅 파워, 우수한 인재들을 보유하여 Prop Trading이 가능한 자원중개회사 및 거대 정유사, Jane Street 혹은 Square Point 같은 회사 트레이더가 아니라면 헷지 목적 제외 산업금속에 투자하지 말라는 이야기).<br>-금을 제외한 원자재는 변동성으로 인한 거래비용 때문에 장기 투자대상이 되지 못한다(선물 거래로 인해 수시로 마진콜이 발생하며 원월물에는 유동성이 부족하여 근월물 거래 후 롤오버를 해야 하는데 롤오버시 기본적인 거래 수수료 부담은 물론이오, Contango 및 Backwardation 상황에 따라 이익을 보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무지성으로 할 경우 거의 무조건 손해를 본다). 금을 제외한 원자재에 장기 투자할거면 원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br>-엑슨모빌과 같은 거대 석유회사는 탐사, 개발, 원유채굴, 정유까지 석유 관련 전부를 총괄한다. XLE라는 미국 ETF는 그러한 거대 기업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석유 관련 특정 섹터에 투자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수익률 차이가 날 수 있지만 XLE에 투자하면 석유 관련한 대부분의 산업에 노출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엇비슷한 평균 수익률을 보이고, ETF 운영수수료는 적게 부담한다.<br>-은은 산업금속의 성격과, 금과 같은 안전자산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장기 투자 목적으로는 금보다 부적합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안전을 기하면서도 높은
단기상승을 누릴 수도 있는 상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39/91/cover150/89287815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399194</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벚꽃동산에 견줄만한 작품 - [밑바닥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39934</link><pubDate>Sat, 08 Aug 2026 2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399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5338&TPaperId=174399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3/34/coveroff/k9626353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5338&TPaperId=174399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밑바닥에서</a><br/>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07월<br/></td></tr></table><br/>&nbsp;등장인물들이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어딘가 의사소통이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아마 체호프가 연극에 처음 도입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의 문법이 되어 후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의 기법을 흉내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유명 작가들도, 심지어 체호프 본인이 쓴 다른 작품들 마저도 "벚꽃 동산" 이라는 마스터피스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단 한 작품 이 분야에서 "벚꽃 동산"과 맞먹는 작품이 있다. 바로 오늘 리뷰할 고리끼의 "밑바닥에서" 이다.<br>&nbsp;무려 15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이 방이 기껏해야 1~2개인 하숙집이라는 단일 공간에서만 활동하므로 무대에는 상시 다수의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그 중 순례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다. 나머지 사람들끼리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다른 사람이 지멋대로 해석하는 체호프스러운 불통(不通)이 아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도 남의 말을 비웃고, 냉소하고, 귀찮아하고, 그 동안 술이나 쳐마시거나 도박판을 벌이는 밑바닥 인생들의 리얼리즘 코미디이자 비극이다.&nbsp;<br>&nbsp;체호프의 극처럼 사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집주인 부부와 안주인의 여동생, 페펠이라는 등장인물을 제외하면 사건이 없다. 나머지는 등장인물들이 현 상황을 주로 순례자에게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극이 전개된다. 그들은 순례자와 이야기하며 자기 자신의 거짓된 "인생" 이란 것을 갈구하려고 애를 쓰나 결국 하숙집 밑바닥에서 술판이나 벌이거나 감옥에 가는 진짜 "인생" 을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중에서야 인정하며,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못한다......<br>&nbsp;이토록 탁월한 작품이지만 극으로 보지 않고 텍스트로 읽었을 때의 무게감은 "벚꽃동산" 보다 확연히 떨어진다. 무려 15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이,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이 있으며 상당한 비중을 지닌다. 이로 인해 글만 읽었을 때는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며 그렇기에 별점 1점을 깎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3/34/cover150/k9626353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333442</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질풍노도의 작품 - [도적 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30201</link><pubDate>Mon, 03 Aug 2026 15: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302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725&TPaperId=174302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87/34/coveroff/89329075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725&TPaperId=174302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적 떼</a><br/>프리드리히 실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br/></td></tr></table><br/>&nbsp;열정적이고 낭만적인
기질이 있는 미남 “카를 모어” 와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추남 “프란츠 모어”는 형제관계다. 프란츠 모어는 왜 자기가
차남으로 태어나서 장자 상속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지, 왜 추남으로 태어나서 아말리아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지,
왜 냉소적으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지 등 불만이 아주 많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장자 카를 모어가 방탕아라는 누명을 씌우고, 아버지가 의절했다는 거짓 편지를 카를 모어에게
보낸다. 카를 모어는 절망하여 도적질을 시작한다. 그는 의적을 표방하지만
부하들 모두가 카를처럼 숭고한 의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br>



&nbsp;이 작품의 단점은
카를의 행태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의절 편지 하나 받았다고 천륜을 저버린 사회 운운하며 사회에 등을
돌리는 카를의 행태는 다소 극단적이다. 탁월한 어휘 구사능력과 세련된 극작술에도 불구하고 쉴러가 셰익스피어보다
한 수 아래의 작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셰익스피어는 비극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면모를 그려내었지만 쉴러의
경우 이야기의 틀에 등장인물들을 억지로 짜맞춰 넣는 몹쓸 버릇이 있다.<br>



&nbsp;다소 억지스러운
카를 모어 대비 매우 걸출한 인물이 두 명 있는데, 앞서 언급한 차남 프란츠 모어와 악당 슈피겔베르그다.
쉴러는 비록 프란츠 모어를 부정적으로 묘사했지만 그가 품는 의문은 부정할 수 없는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누군가는 부잣집 자제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빈궁한 곳에서 태어나며, 누군가는 잘생기고
아름답게 태어나고 누군가는 추하게 태어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를 사회는 과연 정당하게 보완해주고 있는가?
수동적으로 납득만 하는 삶을 살 바에 프란츠 모어처럼 행동하는 것이 어쩌면 더 옳을 수도 있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말이다. 슈피겔베르그는 단순한 악당으로서, 쾌락과 약탈을 즐기는 자이다. 카를이 현실에서 보기 힘든 가상의 도적이라면 슈피겔베르그는 현실의 도적상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br>



&nbsp;그 외에도 다양한
장면이 나오는데, 슈피겔베르그가 자기가 대장이 되어야 한다고 김칫국 들으키는 장면, 룰러가 대장을 구하겠다고 칼을 뽑아드는 장면 등의 명장면이 있는 한편 아말리아에게 프란츠모어가 구애하고 차이는 장면,
그림 앞에서 신분을 숨긴 채 카를이 아말리아와 마주하는 장면 등 허접한 장면들도 여럿 존재한다. 천재 작가라 하더라도 처녀작이어서인지 미숙한 부분이 여럿 눈에 띄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87/34/cover150/89329075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73486</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구약성서 해석분야의 영원한 고전 - [문명과 야만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07652</link><pubDate>Thu, 23 Jul 2026 1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4076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470378&TPaperId=174076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18/coveroff/8978470378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470378&TPaperId=174076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문명과 야만 1</a><br/>프레이저 지음, 이양구 옮김 / 강천 / 1996년 07월<br/></td></tr></table><br/>&nbsp;총 3권짜리로 이루어진 이 책의 원
제목은 "구약시대의 민속(Folklore in the Old
Testament)" 이다. 성서에 적힌 이야기, 혹은 그 시대의 풍습에 관한 기록을 다른 민족의 풍습 및 신화와 비교함으로써 성서를 재해석하고 인류의 원초적 모습을 추적해 나간다.
비교로 언급되는 민속학적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요약되지 않고 지리하게 나열되며, 2권 후반부 부터의 내용은 성서 해석이라기 보다는 당대 이스라엘 인들의 습속에 관한 해설에 가까워 흥미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오늘날에도 정설로 인정받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2권 중반까지의 내용은 성경 상의 모순들에 대한 본인의 가설들을 대단히 유려한 문체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하는 기억이 휘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적으로 남긴 메모들을 정리한 것들이다.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기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고,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데 있어&nbsp;10시간
이상을 소요했다…<br>



인간의 창조 <br>



창세기 1장(P텍스트)에서는 제일 나중에 인간이 창조되었는데, 창세기
2장(J텍스트)에서는 먼저 인간이 창조되고
그 다음에 짐승들이 창조된다. J텍스트에서는 인간이 흙으로 빚어지며, 이는 그리스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등에서 묘사되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즉, 인류 근원의 신화 내용을 담고 있다. P텍스트는
바빌론 유수이후로 작성된 비교적 최신의 것이며 훨씬 체계적이고 신학적으로 다듬어져 있다. 이 서술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후기 편집물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br>



카인의 표지<br>



카인의 표지는 하나님이 카인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대에 살인 등을 저지른 중범죄자가 흘리는 피는 주변을 감염 및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주변인들에게
그가 범죄자임을 알려 피하도록 신체에 새겨넣은 일종의 경고판이다. 혹은 카인의 표지는 그가 살해한 아벨의
망령이 카인을 찾는 것을 방해하거나 해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부적이다.<br>



대홍수<br>



노아의 방주에 탑승할 짐승들에 관하여, 창세기
6장에서는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동물을 구분하지 않으나 7장에서 정결한 동물은
7쌍 태우고 부정한 동물은 1쌍 싣는다는 내용은 모순된다. 창세기 6장은 원시적인 J텍스트로 소박한 설화의 성격을
지니지만 7장의 내용은 P텍스트에 기반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법정신을
담고 있다. 즉, 성경은 단일한 저자에 의한 기록물이 아니라 여러 저자들에
의해 덧씌워지고 수정되어온 누적된 문서이다.<br>



폭우는 40일간 지속되고, 방주 안에서 노아는 7일 단위로 총 3번 새를 내보내서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를 체크한다. 당대 근동사람들은 40일이라는 기간을
상당히 긴 시간으로 묘사하곤 했으며, 7이라는 숫자는 수메르 신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대 근동인들에게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숫자였기 때문에 이것이 히브리 신화에도 반영이 된 것이다. 새를 배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항해도구가 없던 고대의 항해 관습이 반영된 것이다. <br>



노아는 방주에 1년하고 10일을 머무른다. 과거에는 태음력(354일)을 사용하였으나 후대 성서 편집자들은 태양력(365일)을 사용하였다. 후대 편집자는 10일을 더함으로서 나름대로
역법을 보정한 것이다. 후대인들은 완벽한 1주기(1년)동안 노아가 방주에 머물렀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br>



그리스로마신화의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성경 속 노아와 유사한 경험을 한다.
또 수메르 신화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수메르의 신화가 성경에 영향을 미쳤고,
히브리인들의 신앙은 교류가 있었던 그리스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지리적으로 인접하지 않은 생소한 지역의 신화들도 언급하며, 교류가 없는 지역에서 많은 내용이 겹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그는 홍수 설화가 언급되는 지역의 지질학적 유사성을 짚으며, 유사한 경험을 한 지역들이 유사한 신화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펼친다. <br>



바벨탑<br>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인간이 하늘로 높이 올라가려다가 실패하고 언어의 혼란이 발생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여러 민족들에게 높이 올라간다는 행위는 신에의 도전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신이 징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편 이는 사람들이 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원시적인 규명 시도이기도 하다.<br>

히브리인들에게는 이것이 “바벨탑”
설화로 구현되었다. 바빌론의 원래 이름은 아카드어로 “바브-일루” 이며 이는 “신의 문”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해당
언어를 가져오다 보니 “바벨” 이 되었다. 히브리어로 “바벨”과 유사한 단어 “바랄” 은 혼란을 의미한다. 즉 지구라트를 보며 히브리인들은
위화감을 느끼고 이를 신에의 도전으로 생각했으며, 그로 인해 언어의 혼란이라는 천벌이 내려지고 히브리 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그만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해석한 것이다.<br>



아브라함의 계약<br>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야훼와 언약을 맺고,
짐승들을 반으로 찢어놓은 다음 횃불을 들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는 고대의 계약관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고대인들은 이를 어길 경우 본인도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행위에는 정화의 기능도 있는데, 쪼개진 짐승들의 사체를 지나감으로써
본인의 부정함을 찢겨진 짐승들에게 다 이전하고 깨끗한 상태로 계약을 시작하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후자는 정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br>



야곱의 상속권, 막내 아들의 상속권<br>



이삭은 형 이스마엘 대신 아브라함의 축복과 재산을 물려받고, 창세기 21장에 따르면 이스마엘은 떡과 물 한가죽부대만 지니고 아브라함을 떠난다.
허나 창세기 25장에 따르면 이삭이 아닌 그의 다른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동쪽
땅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서술되며,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례식에 참여한다. 그는 결코 축복 받지 못해 버림받은 자식이 아니다.&nbsp;야곱은 눈이 침침한 이삭을 속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나, 역설적으로 야곱은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다. 왜 야훼의 축복을 받은 이삭이 축복 받지 못한 에서를 두려워하는가?&nbsp;에서가 야곱을 용서하는 장면에서, 야곱은 죽을 각오를 하고 형을 만나뵈며 에서는
여러 부하들을 거느린 것으로 묘사된다. 막내 요셉은 막내로서 색동저고리(육체노동에서 면제된 자의 징표)를 입고, 꿈 속에서 요셉의
곡식단에게 형제들의 묶은 곡식단들이 절을 하며 해와 달, 11개의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한다(나중에 베냐민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앞 부분에서는 요셉이 막내로 묘사된다). 다윗은 여러 형들을 제쳐두고 막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어쩌면 이 징표들은 고대 근동의 말자 상속 제도에 대한 방증일지도 모른다.<br>



프레이저는 영국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든다. 고대
영국의 상속제에는 ‘버로우 잉글리쉬’와 ‘버로우 프렌치’가 공존했는데, ‘버로우 잉글리쉬’
에서는 막내아들이 부모를 끝까지 봉양하는 대신 가업과 토지를 물려받는다. 한편 ‘버로우 프렌치’ 에서는 장자가 모든 것을 상속한다. 프랑스에서는
‘메네타’ 라는 말자상속 관습이 있었으며 독일에서는 ‘마델스타’라는 말자상속 관습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형들은
결혼과 함께 독립을 하지만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가업과 재산을 물려받는다. 대신 막내는 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지참금을 마련하고 그녀들을 보호해야만 했다. 프레이저는 아직 개간하지 않은 토지가 많은 원시
시대에는 장남들이 집을 떠나 본인의 영역을 개척하고 막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토지가 부족하고
집약적 노동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하면 장자상속 문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br>



야곱이 에서의 짐승털옷을 입는 것은, 에서의 몸에
걸쳐진 짐승가죽에 깃든 힘과 권능이 본인에게 이전되게 함으로서 본인을 보다 높은, 장자권을 지닌 고귀한 존재로
재탄생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짐승의 가죽과 창자등을 몸에 휘감고 그 힘이 깃든 자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은 원시인들에 대한 여러 민속기록들이 존재한다. 야곱은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에서와 야곱을 축복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장자 우선권을 해제하고 말자에게 상속을 하는 당대의
관습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br>



베델의 야곱<br>



야곱이 돌을 베고 잠에 들었더니 그는 꿈에서 하나님을 영접한다. 두려움에 떨던 그는 돌을 가져다가 돌기둥(마세바)을 세운
뒤 그 돌에 기름을 붓는다. 그리고 해당 지역을 베델(하느님의 집)이라고 명명한다. 그 뒤 야곱은 야훼에게 십일조를 바칠 것을 맹세한다.<br>



프레이저에 의하면 베델은 원래부터 유명한 성소였다고 한다. 가나안 지방에서는 돌기둥을 세우고 이를 신의 현현으로 생각했는데, 후대 히브리인들이 이를 야곱의
세운 것으로 전용했다는 것이다. 베델은 애당초 유명한 성소로서, 여로보암
시기 황금 황소상이 설립되기도 하였고 아모스 시기에는 참배자들로 들끓던 장소이다. 고대인들은 신이 현현한
것으로 간주한 성스러운 돌에 기름을 부으며 숭배하곤 했다. 그러나 성서에서 원래부터 성물이었던 돌은 야곱의
기름부음에 의해 성스러움을 부여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야곱이 벧엘을 이름지은게 맞다면, 왜 아브라함은 벧엘 동쪽 산에 제단을 쌓고 여호화를 외쳤겠는가? (창세기 12장)<br>



돌무더기의 언약<br>



가축과 딸을 데리고 몰래 떠난 야곱을 장인어른 라반은 뒤쫓는다. 야곱과 조우하기 전날, 라반의 꿈에 하느님이 등장하여 야곱에게 상해를 입히지 말라고 경고한다.
둘은 다음 날 화해의 돌무더기를 쌓는데, 여기에 당대 근동인들의 관습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br>



&nbsp;돌무더기는 일종의
경계선이다(“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 해하지 아니할 것이고, 네가 이 무더기를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라반은 돌무더기를 일컬어 “미스바” 라고 하였는데, 이는 ‘파수대’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옵소서”). 당대인들은 돌무더기에 깃든 신성이 언약을 어기는지 여부를
감시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nbsp;&nbsp;<br>



압복 강가의 야곱<br>



&nbsp;야곱은 압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고 환도뼈를 다친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야곱과 씨름한 천사의 원형은 압복 강가의 지령(地靈)이다. 고대인들은 강이나 산의 경계에 그곳을 지키는
신령이 있다고 믿었으며, 외지인 야곱이 그 강을 건너려 하자 도하를 막으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의 지령은 밤이 오면 물러나야만 하는데, 이러한 제약은 다른 민족의 신화들에
서도 흔히 목격된다. <br>



&nbsp;그리하여 야곱의
후손 히브리인들은 짐승의 환도뼈 힘줄을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터부는 성서가 편찬되기 전부터 히브리인들
사이에 존속했으며, 오히려 터부가 천사의 손질이라는 형태로 반영되었다. 여러 민족들에게서 힘줄을 먹지 않는 터부가 발견되는데, 프레이저는 이를 동물의 뒷다리 힘줄을
먹을 경우 나도 힘줄에 손상을 입어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리라는 공감주술의 원리를 주장한다. 그의 공감주술
이론은 오늘날 틀린 내용으로 판명이 났으나, 여러 민족에게서 힘줄을 먹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성서 편찬 이전 히브리인들이 힘줄을 먹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므로 여전히 이 텍스트는 가치를 지닌다.&nbsp; <br>



각대 상자 속의 모세<br>



요셉 덕택에 성공적으로 애굽(이집트)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에 대해 파라오는 경계심을 갖는다. 이로 인해 히브리인의 자손 모세는 나일강에
던져 버려지나 애굽의 공주가 그를 발견하고 왕자로 교육시킨다.<br>



&nbsp;프레이저는 성경의
주장과 달리, 모세를 강가에 띄우는 행위는 고대 부족사회에서 행해진 물에 의한 시험이 일부 담겨있다.
아기가 물에 떠오르거나 살아남으면 적자로 인정을 받으나 가라앉거나 죽으면 사생아 혹은 신에게 버림받은 자로 여기는 사례(혹은 창작)가 다른 민족 전승에서도 목격된다. 히브리인들은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의 정통성 및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설화를 외부로부터 차용하고 편집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대왕설화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 강에 띄우고 정원사가 아이를 발견하고 구출하는데, 이는 모세의 설화와 대단히 유사하다.<br>



엔돌의 마녀<br>



히브리인들은 사울을 왕으로 옹립하지만 여전히 사울과 다윗은 제사장 사무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그를 경외한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사울이 자신을 따르지 않자 사무엘은 그와 거리를 두고 다윗을 옹호하는데,
이는 사무엘이 본인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능숙한 노련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r>



&nbsp;사울은 즉위 후
신접한 자들을 박해하여 무당들은 은둔생활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막상 블레셋 인들에 의해 궁지에 몰리자 사울은
무당을 찾는데 중심부로부터 한참 떨어진 엔돌에서야 겨우 한 명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평민복을 입은 사울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정 수사라고 짐작하며 찾아온 왕을 비난한다. 그러자 사울은 본인의 정체와 의도를 밝히고,
엔돌의 마녀(무당)는 사무엘의 혼령을 현현
시킨다. 이 설화는 당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강령술이 얼마나 뿌리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며,
야훼 유일신교 하 민속신앙이 근절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br>



&nbsp;사무엘의 영은
땅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고대인들이 사후 세계를 발 밑의 지하세계로 보았음을 보여준다(ex)그리스 로마 신화의 하데스). 사울은 의복을 보고 불려나온 영이 사무엘임을 알아차리는데,
이는 살아 생전의 의복이 사후에도 영혼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당대의 사고관을 보여주는 것이다.<br>



인구조사의 죄<br>



&nbsp;다윗은 인구조사를
수행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여호와에게 죄의 사함을 구한다. 그 다음날 선지자가 다윗을 방문하여 세 가지 징벌
선택지를 보여주고, 다윗이 선택을 신에게 맡기자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돌고 이로 인해 7만명의 인구가 사망한다(사무엘하 24장).
또한 출애굽기 30장에 의하면 인구 조사를 할 때 각 사람당 반 세겔의
Ransom(속전으로 번역되나, 단어의 의미는 포로의 몸값을 의미한다)을 납부하라고 기재되어 있다.<br>



&nbsp;숫자를 세는 행위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장악하는 마술적 수단으로, 신의 권한을 감히 피조물 다윗이 넘보아서 징계를 받은 것이다.
또한 프레이저는 여러 민족의 숫자 세기 금기를 예로 든다. 가령 동물의 숫자를 세는
행위가 동물의 성장을 멈추게 할까 두려워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가축의 숫자를 집계하지 않고, 영국의 일부
어부들은 다음 번 어획량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며 물고기를 배 위에서 세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숫자를
세는 순간 개별 주체를 악령들이 인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악령들에게 개체들이 노출된다고 고대인들이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br>



상수리나무와 테레빈나무<br>



&nbsp;아브라함은 헤브론의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는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세명의 나그네를 영접하는데,
이들은 여호와와 그를 보좌하는 2명의 천사들이다(창세기 19장).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그녀를 키워준
유모 드보라가 사망하자 벧엘의 상수리 나무 아래서 장사지내고 그 나무를 통곡의 상수리나무(알론바굿)이라고 이름짓는다.<br>



&nbsp;그러나 호세아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너희의 딸들이 음행하고 며느리들이 간음한다고 비난하며, 이사야는 상수리 나무 사이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벌인다고 비난하고, 에스겔은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행해진 우상숭배를 비판한다.
과거에는 다양한 신앙이 야훼 신앙과 결합해서 굳건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여러
신앙이 병존하였으나 유일신교가 보다 강세해진 후대에 올수록 이러한 민속 신앙은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문화는
오랫동안 살아남아 나무 숭배는 로마 시대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br>



&nbsp;그렇다면 왜 이
챕터의 제목이 상수리 나무와 테레빈 나무인가? 원전에는 “Elon”, “Allon”, “Elah”
라는 단어를 히브리인들조차 구분 없이 마구 혼용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들 중 하나
혹은 두 가지가 테레빈 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의미할지언데, 한국 성경은 이를 전부 상수리 나무로 번역했기
때문에 해당 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개인적으로 애를 먹었다.<br>



이스라엘의 신당들<br>



&nbsp;이스라엘의 신당들은
각 마을이나 지역의 제의적 거점으로서, 시작은 야훼께 번제를 올리는 곳이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역의
토속신앙과 결합되곤 하였다. 이러한 지역 중심의 제의는 자연스럽게 가나안의 바알, 아세라 신앙과 혼합되거나 ‘사마리아의 야훼’, ‘베텔의
야훼’ 등으로 파편화되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이러한 지방 산당들을
약화시키고 야훼신앙을 단일화하기 위한 조처였으며, 요시야 왕은 한발 더 나악 종교개혁을 통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기에 이른다.<br>



&nbsp;그러나 당대 민중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던 산당을 중앙정부가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었다. 성스러운 나무를 베어넘기거나 돌기둥을
뿌리뽑는 행위는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야기하였고, 이로 인해 신목은 방치하고 주변의 숲을 정리한다는
방식으로 현상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유대교는 민속신앙을 근절할 수 없었을 경우 이를 “야훼의 제단”으로 이름을 바꾸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야훼신앙에 편입시키는 방법을 채택했다.<br>율법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한
위치<br>



요시아 왕은 종교개혁을 통해 야훼 신앙을
공고히 하고, 찬란했던 다윗왕과 솔로몬의 시대를 복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강력한 외부의 적들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서에서 성군으로 묘사되는
요시아왕은 므깃도 전투에서 이집트 군에 의해 허무하게 전사하고 말고, 후대 왕들은 바빌론의 멍에를 메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모한 독자노선을 시도하다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고 만다.<br>



&nbsp;후대 이스라엘인들은
멸망의 원인을 이스라엘 왕국의 미흡함으로 여기기 보단 야훼가 본인들을 내버린 이유를 천착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율법에 복종하지 않았음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율법을 보다 철저하게 준수하다면 과거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결국 기원전 444년 에스라는 레위기
율법을 선포한다. 이는 유대교가 국가가 아닌 율법을 매개로 한 제사장 중심의 종교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초기 교회의 성격을 많은 부분 지니고 있다.<br>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br>



&nbsp;널리 알려진 “간통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와 같은 도덕적 개념의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34장의 십계명의 내용은 도덕적 개념 보다는 제의적인 절차에 보다
가깝다. 그 내용은 “무교절을 지킬 것”, “처음 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칠칠절과 수막절을 지킬 것”,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 것”, “유월절 제물의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 것”,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 것” 등이다. <br>



&nbsp;프레이저는 출애굽기
34장의 십계명이 더 오래되었고, 고대 유대교의 면모를 많이 띄고 있음을 지적한다.
원시적인 제의와 주술적 금기를 중시함으로서 민족의 생존을 고대 유대인들은 도모했던 것이며, 후대 윤리와 도덕 등을 신경 씀으로써 고등종교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4장의 십계명 중 새끼염소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고 한 이유는, 고대 유대인들이
젖을 끓이는 행위가 일족이 보유한 가축의 젖을 전부 말라버리게 할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외에도
많은 과거 유목민들은 절대 젖을 끓여먹지 않았으며, 새끼 염소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의 코셔 식법의 일부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다(고기와 우유를 같은 식탁에서 먹거나 같은 조리 기구로 조리해서는
안된다).<br>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는 관습<br>



&nbsp;프레이저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피를 바치는 행위를 조상숭배 및 네크로맨시로 본 것은 오늘날 정설로 인정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모스, 이사야, 에스겔 등의 위대한 예언자들은
머리를 밀어버리고 몸을 베는 것을 대단히 자연스럽게 행하는 반면,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갑자기 죽은자를 위해
살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 털을 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br>



&nbsp;느헤미야와 에스라
이래로 개편된 유대교는 과거의 토착민속과 관습 등을 억제하고 유일신 신앙을 공고히 하며 외부 세력의 제의가 유대교에 침습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반면, 이보다 앞선 시대에서는 야훼신앙과 민속은 자연스럽게 결부되어 있던 것이다.<br>



사람을 받아서 죽인 황소<br>



&nbsp;출애굽기
21장에서,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소는 반드시 돌로 쳐죽이되, 주인이 소가 사람을 받는 버릇이 있음을 주지하고 있음에도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연좌제를 적용하여 주인 또한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br>



&nbsp;중세 유럽,
심지어 19세기 초반까지도 동물을 피고인으로 내세우는 “동물 재판”은 실제로 빈번히 행해졌다. 돼지가 아이를
물어죽이거나, 쥐떼가 곡식을 훔쳐먹으면 동물을 법정에 세우고, 변호임을
선임하며 판결을 내리곤 했다. 고대인들은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18/cover150/8978470378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830</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시를 못쓰는 삼류 작가 - [[초록/살구] 리옴빠 (표지 2종 중 랜덤) - 유리 올레샤 단편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99107</link><pubDate>Sat, 18 Jul 2026 22: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991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930505&TPaperId=173991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75/44/coveroff/k8529305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930505&TPaperId=173991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록/살구] 리옴빠 (표지 2종 중 랜덤) - 유리 올레샤 단편집</a><br/>유리 올레샤 지음, 김성일 옮김 / 미행 / 2024년 05월<br/></td></tr></table><br/>&nbsp;40페이지가량 읽고 덮었다.
논리적이진 않지만&nbsp;순간의 장면을 나름 인상적으로&nbsp;묘사하고&nbsp;싶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소설이 아니라 시를 쓰면 될 일 아닌가?
시를 쓸 재능이 없으니 소설을 썼더니&nbsp;지적 허영심에 가득찬 평론가들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천부적인&nbsp;재능을 소유한 자였다면 로트레아몽, 마야꼽스키처럼 비논리적인 시를 쓰고 말지 괜히 소설로 도피할 이유가 하등 없다. 물론 로트레아몽과 마야꼽스키는 유리 올레샤와 달리 문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철학 또한 가슴에 품은 위대한 작가들이다.&nbsp;<br>&nbsp;제랄드 드 네르발의 "실비" 또한 비논리적으로 내용이 서술되지만 그 소설은 사랑과 기억이라는 핵심 테마가 시종일관 유지되며 작가 본인의 삶에 대한 회한이 말미 문장 하나마다 묻어나온다. 비논리적이라도 소설이라는 형태를 택했으면 기초적인 뼈대는 유지해야 하는 것이며, 문장을 참신하게 쓰려고 고뇌한 흔적이 보이더라도 알맹이가 비어 있으면 독자는 그저 피로해질 뿐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75/44/cover150/k8529305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754482</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효시 - [고리오 영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99023</link><pubDate>Sat, 18 Jul 2026 2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990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627&TPaperId=173990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38/35/coveroff/s9324036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627&TPaperId=173990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리오 영감</a><br/>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04월<br/></td></tr></table><br/>&nbsp;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방 촌놈 라스티냐크는 법학 공부를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집안의 희생을 바탕으로 상경할 수 있었음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파리 사교계의 사치스러움은 순진한 청년을 강렬하게 유혹하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귀족 인맥을 가지고 있어 사교계에 문을 두드릴 수는 있었지만 사교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재력과 매너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런 그에게 보트랭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접근해오는데…<br>



&nbsp;이 작품의 주제는 “양심”,
“성공”, “부성애” 정도로 요악할 수 있다.
이 셋 중 “양심”
과 “성공”
은 탁월하되,
“부성애”는 그렇지 못하다.
보트랭은 라스티냐크가 이대로 법학 공부를 마쳐봤자 성공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므로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성공을 쥐어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뷰 글로는 그냥 평범한 내용에 지나지 않으나&nbsp;그의 장광설은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에 의하면 미덕을 지키는 자들은 신이 창조한 우둔한 피조물이며,
당신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항아리 속의 거미처럼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고, 도덕적으로&nbsp;초라하게 살 바엔 차라리 해적이 되고 말겠다고 선언한다.<br>



&nbsp;라스티냐크는 성공과 미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이다.
육체적으로는 보트랭의 논리에 끌리면서도 지켜야만 하는 선을 자각하고 갈등한다.
파리에 매력과 환멸을 동시에 느끼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파리와의 대결을 선포하는 장면은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br>



&nbsp;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가 매혹을 느낀 영애의 아버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직 딸들만을 끔찍하게 아끼는 노인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모티프를 얻은 인물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인물이 과하게 평면적이고 사용하는 언어 또한 전혀 시적이지가 못하다.
보트랭과 라스티냐크라는 인물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등장하는 거인들에 준할 만큼의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으나,
고리오에게는 오직 우둔함과 지루함만이 느껴진다.<br>

&nbsp;또한 작가의 초창기 작품이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가 상당히 어색하며 가독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단점들로 인해 19세기 리얼리즘 문학을 창립했다고 함께 평가받는 스탕달의 “적과 흑”
보다는 “고리오 영감”
이 한 수 아래라고 개인적으로 사료하는 바이다.
그러나 “적과 흑”에서는 보트랭의 연설,&nbsp;파리와의 대결 선포에 준할만한 명장면이 존재하지는 않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38/35/cover150/s9324036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383567</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강한 좌파 향기 - [브레히트 희곡선집 2 -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88312</link><pubDate>Sun, 12 Jul 2026 22: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883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11812X&TPaperId=173883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71/38/coveroff/89521181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11812X&TPaperId=173883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레히트 희곡선집 2 -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a><br/>베어톨트 브레히트 지음, 임한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01월<br/></td></tr></table><br/>갈릴레이의 생애<br>&nbsp;이 극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1.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이를 둘러싼 교회와의 갈등상황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 2. 브레히트는 사회주의자였고, 마르크스는 유물론자로서 과학을 인류 발전의 토대로 보았음, 3. 당대 과학자들은 귀납법적 연구방법론을 채택하지 않고 권위자의 텍스트를 진리로 가정하고 연역적으로 논리를 전개했음. 을 선행으로 알아야 한다.<br>&nbsp;개인적인 감상으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들도 브레히트의 이 작품에 비할바가 되지 못하며 오직 쉴러의 "발렌슈타인" 정도만이 역사극 분야에서 이 역작에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가 그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브레히트가 묘사한 갈릴레이는 대단히 입체적인 인물로, 진리를 향해 본인을 불사르는 듯 하지만 목숨이 걸리자 순식간에 비굴해지는 한편, 타인이 발명한 망원경을 자신의 업적으로 속여 국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뜯어내고, 식도락을 즐기기도 하며, 주변인들을 챙기는 듯 하다 가도 타인의 안위보다 본인의 연구를 우선시하기도 한다.&nbsp;<br>&nbsp;저자의 유물론적 관점은 사회주의의 의미가 많은 부분 퇴색된 오늘날에는 호불호가 다소 갈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근신처에서 보이는 행태를 유물론적 관점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입체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볼 수도 있어 큰 문제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빼곡한 주석들을 보며 브레히트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연구하고 조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인간의 생애를 과하게 함축하지도 그렇다고 지리하게 나열하지도 않은, 대단히 밀도가 높으면서 중요 내용은 거의 다 담긴 브레히트의 최고 역작이라고 생각한다.&nbsp;&nbsp;<br>사천의 선인<br>&nbsp;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인간의 도덕성을 시험하기 위해 거지로 분장하나, 다른 마을 주민들은 신들을 전부 외면하고 가난한 노부부만이 그들을 환대한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감명을 받아 이들에게 보상을 내린다...<br>&nbsp;이 신화의 내용을 브레히트는 차용하여, 없는 살림에도 거지로 위장한 신들을 소박하게나마 접대한 삼류 창녀 셴테에게 신들은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셴테는 그 돈으로 담배가게를 사지만 그 물건은 하자가 있는 물건이었고, 그마저도 각종 빈민들이 셴테를 등쳐먹기 위해 혈안이다. 셴테는 가면을 쓰고 악역 사촌오빠 "슈이타" 를 가장해야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신은 선량한 이에게 돈은 줬으니 할 건 했다는 기색이다.<br>&nbsp;사회주의가 의미하는 바가 컸고, 종교의 가치가 훨씬 높았던 당대에는 이 작품이 강한 시사점을 지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가면을 쓰고 벗음으로 한 등장인물이 "슈이타"가 되었다가 "셴테"가 되었다가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못알아 본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은 작품이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을 때는 소외 효과를 야기해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대에는 그냥 어이가 없고 극에 몰입만 안될 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71/38/cover150/895211812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713885</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든 것을 해체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 [관객모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88097</link><pubDate>Sun, 12 Jul 2026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88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067&TPaperId=17388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55/35/coveroff/s5126369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067&TPaperId=17388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관객모독</a><br/>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br/></td></tr></table><br/>&nbsp;누군가에게는 68혁명으로 불리지만 누군가에게는 68폭동으로 불리는 68운동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으로 유명하다.&nbsp;이 작품은 1966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런 작품이 고평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68운동의 도래를 예고하는 성격이 있다고 본다.<br>&nbsp;독문학에서 고트홀트 레싱과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두 사람은 연극을 통해 대중들을 교화하고자 했다.&nbsp;극에 몰입을 하게 하는 레싱의 방법론과 극에 몰입을 방해하는 브레히트의 방법론 모두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대중들은 극을 재밌게 본 것에 만족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nbsp;"관객모독" 은 이러한 극장과 관객들의 문화를 비판하고자 쓰여진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본다.<br>&nbsp;어쩌면 관객을 모욕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nbsp;브레히트가 소외 효과를 통해 등장인물의 행태에 대하여 관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을 넘어, 이 작품은 관객을 욕함으로서 관객 그 자체를 등장인물들로 만들어버린다.&nbsp;관객들은 메인 배우들만큼은 아니지만 극의 일부가 되며, 무대감독과 배우들이 대화를 나누는 등 극장의 여러 경계들은 완전히 무너져버린다.<br>&nbsp;감상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nbsp;이름은 까먹었는데 누군가가 화장실 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했고 그게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알고 있는데, "관객모독" 도 이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nbsp;객석, 무대, 무대뒤편 / 관객, 감독, 배우들의 경계를 이 정도로 해체시킨 것은 다분히 인상적이었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br>&nbsp;메타연극의 형식을 빌려 "거짓과 진실", "인간성" 이라는 주제를 세련되게 묘사한 "하녀들", "엔리코 4세",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같은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의 주제는 아무것도 없다.&nbsp;그저 모든 형태가 무너져 내렸을 뿐이다....나는 모든게 무너진 폐허 더미보다는 세련되게 축조된 Well-made play를 보고 싶다.&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55/35/cover150/s5126369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553535</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청춘 드라마 요소의 과중 - [돈 카를로스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33212</link><pubDate>Sat, 13 Jun 2026 2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332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3832&TPaperId=173332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9/27/coveroff/89546238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3832&TPaperId=173332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돈 카를로스 (무선)</a><br/>프리드리히 실러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02월<br/></td></tr></table><br/>&nbsp;무대는 바야흐로 네덜란드(플랑드르)에서 신교가 부상하고 카톨릭 왕정 스페인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시점.... 왕의 아들 돈 카를로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원래 카를로스와 왕비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왕이 미모의 왕비를 보고 여자를 가로챈 것이다. 카를로스에게는 절친한 친구 포사 후작이 있다. 그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사랑하는 남자다. 그들이 모여 사랑과 우정, 자유 등 다양한 내용이 전개된다.<br>&nbsp;번역가 안인희씨의 해제에 의하면 이 작품은 원래 기형적인 가족 내 비극적인 사랑, 친구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가 글을 쓰다보니 플랑드르 지역의 자유주의 운동의 비중이 갈수록 커졌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메인인 극이 맞지만, 초기 구상으로 인해 로맨스의 비중이 과하게 높다는 치명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쉴러는 로맨스에 심각할 정도로 소질이 없다. 등장인물들이 사랑을 하는건지 아니면 논쟁을 벌이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br>&nbsp;그럼에도 4막까지 이 작품은 재미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은 했다. 지리하고 유치한 로맨스와 다소 인위적인 우정놀음은 왜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교조적이라고 비판받았는지 짐작가게 하는 부분이었으나, 포사 후작이 카를로스 및 왕과 만나서 내뱉는 대사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br>&nbsp;5막의 훌륭함은 4막까지의 치명적인 결함을 순식간에 만회해 버린다. 카를로스가 왕에게 분노에 차 외치고, 왕은 일시적으로 물러난다. 왕은 비정해지기를 각오하고 대심문관을 만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카톨릭 체제에 대해 토론한다(이 작품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으로, 그 유명한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대심문관 파트는 이 장면의 오마주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 세개의 이어지는 장면들을 읽으면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을 읽었을 때와 버금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로맨스와 우정의 비중이 낮아 1~4부의 완성도가 조금 더 높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9/27/cover150/89546238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392786</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리얼리즘의 정점 - [크로이처 소나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32735</link><pubDate>Sat, 13 Jun 2026 1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327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4305&TPaperId=173327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1/86/coveroff/k3720343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4305&TPaperId=173327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크로이처 소나타</a><br/>레프 톨스토이 지음, 김경준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열차에서 만난 한 남성이 서술자에게 본인이 아내를 살해한 경위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포즈드니셰프는 학창 시절 성욕을 매음굴에서 주기적으로 배출하다 젊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은 본인의 생각과 달리 행복에 가득찬 삶이 아니다. 음악가 한명이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 생각한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살해한다.<br>&nbsp;톨스토이 본인이 쓴 해제, "크로이체르 소나타 에필로그"를 읽으며 이 작가가 노년에 도덕과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에게 있어 단순히 성욕을 풀기 위해 성교를 하고, 애가 너무 많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피임 조처를 하는 등의 행위는 전부 혐오스러운 행위다. 연애는 건전한 이성교제가 아니며, 애들은 부모의 쾌락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양육된다. 매우 지당한 말일 수도 있지만 작가가 주장하는 그대로 살 경우 인류가 존속가능할지 조차 의문이 들고, 인생이 매우 삭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br>&nbsp;다분히 교조적인 의도로 쓰여진 이 작품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대로 오늘날 읽히지는 않을 것 같다(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톨스토이의 주장은 제법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공감하기 힘들다. 허나 야동이 없던 시절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매음굴에 방문하는 젊은이들, 아내와의 결혼, 부부관계를 통한 성욕해소 , 가정불화, 아이가 태어날 경우 양육의 번거로움과 모친 건강의 문제, TV와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여자를 사교계에 풀어놓을 수 밖에 없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불륜의 가능성, 남편의 질투 등에 대한 심리묘사 등...... 가히 당대 결혼생활의 실태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해부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결혼제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대단히 시사점이 높다고 사료된다. 남자 입장에서 결혼이란 안정적이고 주기적인 성욕 해소를 하기 위함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위선이다(대한민국 사회에선 역겨운 위선자들이 판을 친다). 가정내 다툼은 상시 발생하고, 애들은 많이 태어날 수록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부모에게 많은 시간 및 정력의 소요를 야기한다.&nbsp; &nbsp;&nbsp;<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1/86/cover150/k3720343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518691</link></image></item><item><author>구제불능인간</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허무주의자 나르시스트 - [우리 시대의 영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29994</link><pubDate>Fri, 12 Jun 2026 0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5705189/173299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807747&TPaperId=173299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56/0/coveroff/896680774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807747&TPaperId=173299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 시대의 영웅</a><br/>미하일 레르몬토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04월<br/></td></tr></table><br/>&nbsp;총 5개의 단편,중편 소설로 이루어진 일종의 소설 모음집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푸슈킨의 "벨낀 이야기"를 많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나, 독립된 이야기 조각들이 모여 "페초린" 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형상화하므로 장편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nbsp;<br>벨라 / 막심 막시미치<br>&nbsp;카프카즈 지역 시골에서 복무중인 페초린은 아리따운 야만족(타타르인) 벨라를 만난다. 레르몬토프는 타타르인들을 같은 인간으로 취급도 안하지만, 이는 시대상을 감안하고 읽으면 문제가 될 부분이 아니다. 페초린은 인생이 그저 무료하고 인간관계도 덧없을 뿐이다.&nbsp;<br>&nbsp;풍경 묘사 실력이 상당하고, 주인공이 제법 흥미롭고 못되먹은 인물이라는 인상 정도를 주었으나 크게 깊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직까지는 제법 재미있는 중단편 소설 정도였다.<br>타만<br>&nbsp;야만적인 지역에 페초린은 머무르게 되는데 여관에는 왠 소경이 심부름을 하고 있다...<br>수록된 다른 4편의 이야기는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으나 이 "타만" 이란 작품은 일종의 독립적인 단편이다. 주제는 딱히 없다. 대단히 잘 쓰인 단편소설.<br>공작영애 메리<br>&nbsp;"메리", "그루시니츠키" 와 같은 등장인물들의 감정 및 생각들을 작가는 직접 서술하지 않고 언행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 분야의 정점인 "헨리 제임스" 와 비교했을 때 그 묘사가 대단히 투박하고&nbsp; 객관적이지 않아(다소 여성 혐오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또 주인공의 나르시스트 기질이 두드러기가 돋을 정도로 오글거려, 전반부를 읽으면서 왜 이 작품이 고전이 되었는지 의문을 품었었다.<br>&nbsp;중반부부터 이 중편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왜 본인의 친구가 사랑하는 여성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유혹하는가? 메리는 외모도 뛰어나고, 재산도 많으며 페초린을 사랑하는데 왜 주인공은 그녀와의 결혼을 거부하는가? 왜 주인공은 친구 그루시니츠키를 모욕하는가.....? 러시아 사교계 남녀의 허세어리고 허깨비 같은 행태들을 작가는 진정으로 증오하고, 낭만을 꿈꿨으나 현실은 변함이 없고 그저 권태로울 뿐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 페초린에겐 객관적인 관찰 대상이자 유흥거리에 불과하다. 물론 그 유흥은 그리 즐겁지가 못하다.<br>&nbsp;화자는 이 모두를 환경 탓으로 돌리지만 개인적으로 이에 그다지 공감하진 않는다. 뚜렷한 목적 없이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뒤&nbsp;냉소와 허무주의, 권태가 섞인 수준 높은 객관적 성찰을 하는 것을 보며 그저 깜짝 놀랐을 뿐이다.<br>운명론자<br>&nbsp;"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를 주제로 한 단편이다. 작가가 이러한 사상에 경도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 기준으로는 그냥 적당히 잘 쓴 단편 소설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nbsp;&nbsp;<br>--------------------------------------------------------------------------------------<br>&nbsp;* 민음사, 문학동네에서 이미 번역된 작품을 지만지에서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어떤 경로로 지만지 작품을 구매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번역의 퀄리티가 상당히 훌륭하여 독서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56/0/cover150/896680774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56005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