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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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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인간은 감정적이다.  

이성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결국 본질적으로 감정의 영역에 있고 행동하기에 그 결과 역시 감정의 결과물이다.

같은 사물을 볼 때도 감정이 다르면 다르게 보인다. 같은 행동도 감정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도 그렇다.

​하물며 사랑이야 오죽하겠는가. 사랑은 정확히 감정의 공유이자 결과물이니까.

아는 후배가 예전에 지금 썸타고 있는 그녀를 잘 모르겠다며 말했다.

그 날 저녁 그녀가 분명 먼저 그에게 연애하자며 고백했고, 키스까지 했단다.

그런데 다음 날 살갑게 문자들을 보냈는데 돌아온 답은 없고, 대신

 

'나는 내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많이 생각해. 논리적인 상황이 아닌 것을 못받아들이기에,곱씹는 거고. 그냥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야.'​

요게 전부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건 '논리적인 상황'이라고 한 것에 답이 있는 거야. 사랑이라는 감정에 논리적이라는 것을 대입할 수 없는 거거든. 그렇게 했다는 것은 너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겠다는 거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순간적인 유흥에 불과한 거였겠지'

강신주의 <감정 수업>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정의한다.

단순히 후배나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욕망이 머리를 들 때가 있다. ... 이처럼 전혀 예상치 않았던 욕망이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 혹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당황이라는 감정의 정체다. 그러니까 당황의 감정은 라캉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나와 실제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확인할 때 발생한다. 어쩌면 당황의 감정에 빠진 사람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당황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 혹은 자기의 맨얼굴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가면의 욕망과 맨얼굴의 욕망이 우리 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면, 당황의 감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감정수업, p158> 

그래, 그녀의 감정, 강신주 철학자가 말한대로 '당황'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쓰여져 있다. 감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넘처난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한 48가지의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48가지의 문학 작품을 통해 정의하는 책이다.

더불어 48개의 감정을 다시 네 개의 큰 카테고리로 쪼개어 설명하는데 바슐라의 네 가지 물질적 상상력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감정수업>은 '스피노자의 감정윤리학'과 주옥같은 문학작품,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이 혼재되어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혼합'이라는 말보다는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거 같아 혼재되어 있는 책이라고 표현했는데, 까닭은 이러한 형식이 정교하게 믹스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거기에 독자와의 거래라는 '개개인의 독서 반응'을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코너로 강요한 것 또한 어색했다.

대학생일때 조동일 교수의 <철학사와 문학사는 둘인가 하나인가>를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다. 철학과 문학은 둘이자 하나로 서로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였는데, 근대 이후 철학과 문학은 구분되고 철학을 이성으로 넘기고 문학을 감성 영역으로 두어 각자의 길로 가고 있는 문제에 공감하였던 적이 있다.

그래서 <감정수업>에서 이성으로서의 철학을 넘어서서 감정의 철학을 가지고 문학과 접목시키는 상황이 흥미로웠다. 문학의 겉핥기를 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문학 독서의 욕구를 더욱 자극한다는 점에서 기뻤다.

​그런데 뜬금없이 바슐라르라니. '감정'이라는 수업을 펼치기 위해 바슐라르의 위대한 4가지 상상력을 아무렇게나 나누는 저 담대함이라니... 바슐라르의 상상력을 48개의 감정 정리 수단으로 활용하다니...

더욱이 이러한 겉돌음은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코너까지 첨부해 산만하기까지 했다. 

하나하나 단편적으로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그 속에 있는 갖가지 감정을 살피는 재미가 있으나 앞에서 말한 겉돌음의 연속은 독서를 산만하게 만들기도 했고, 생각이 분절되기도 했다. 후반부에는 건너뛰는 독서도 가능했으니 온전한 몰입은 하지 못한 책이다.

 

​책의 전개는 이렇다.

1부. 땅의 속삭임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반감, 박애, 연민, 회한

2. 물의 노래

당황, 경멸, 잔혹함, 욕망, 동경, 멸시, 절망, 음주욕, 과대평가, 호의, 환희, 영광

3부. 불꽃처럼

감사, 겸손, 분노, 질투, 적의, 조롱, 욕정, 탐식, 두려움, 동정, 공손, 미움

4부. 바람의 흔적

호회, 끌림, 치욕, 겁, 확신, 희망, 오만, 소심함, 쾌감, 슬픔, 수치심, 복수심

이러한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가져왔단다. 스피노자를 안경 수리공이나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외친 정도만 알아서 '에티카'에서 이런 다양한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는 게 생소하고 신기했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감정의 설명하면서 이해했을까. 아님 감정을 겪어서 그걸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긴 했지만 다양한 감정 잔치는 이 책이 왜 감정수업인가를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주옥같은 48가지의 문학 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는 것은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었다.

물론 하나의 감정 테마로 책 전체를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어떻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분노라는 감정으로만 관통시키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영광이라는 감정으로만 읽을 수 있는가.

그렇지만 <감정수업>이라는 책에서는 전체적인 문학의 심오함을 논하는게 아니라, 감정의 설명을 위한 문학 작품의 도구를 논한다고 느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문학 작품은 도구가 되어서는 당연히 안된다!

​아마 이러한 형식은 '감정'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문학 작품을 찾고 작품을 감정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서술 방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 걸 알면서 봐야 <감정수업>이라는 책에 관대해 질 수 있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앞에서도 나타냈듯,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와 문학 작품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것 같아 겉돌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하다. 감정은 개개인이 다른 형태로 느끼는 것이고, 작품 속에 담겨있는 감정의 해석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인데 가르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자칫 읽지 않은 문학 작품을 그 하나의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그러한 감정의 틀로서 작품을 읽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양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고 정의하지 못하며, 또한 때로는 억압하는 나에게는 가끔씩 감정이 서글플때, 감정을 명확히 하고 싶을 때 다시 찾아보고 싶은 책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훌륭한 작가와 그들의 문학 작품을 짧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책읽기였다.

<감정수업>을 통해 <감정에 대한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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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wey (Mass Market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 The Small-Town Library Cat Who Touched the World
브렛 위터 외 지음 / Grand Central Publishing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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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잔잔하고 재미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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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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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 교육을 위한, 아이이해를 위한 참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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