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
'이 모인 얇지만 무거운 책

NO. 01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날에 나는 한창 아이들의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인지되어 있는 것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배가 침몰하고 있대요.'라고 하는 말에 '침몰한다고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니 구하고 있겠네.'라고 얼핏 생각하며, 설명하는 방식을 점검하는데 열중했다. 이어 '전원구조 되었대요'라는 는 말에 '그랬군'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저녁에 뉴스를 보다 당황했다. '전원 구조'의 오보를 뒤로하고 학생들이, 승객들이 가라앉고 있었으며 잔혹하게도 TV는 그 무엇도 하지 않는 채 무심히도 그 모습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었다.

 방송은 연신 세월호 이야기로 가득 찼지만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숫자는 번복되기 일쑤였고, 행정부는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세월호는 가라앉고 있었고, 그 속에는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 처음의 그 놀람이 점점  쓰라림으로 다가왔다. 안타까웠다.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들. 선장을 위시한 선원들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것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재의 징후들, 그리고 책임을 떠 넘기는 모습들을 보며 좌절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에 웅크리고 앉아있었을 학생들 생각에, 그것을 안타깝게 지켜봤던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고통스러웠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4월은 비극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모든 수학여행, 현장학습 일정이 취소되었다. 배가 가라앉았기에 배를 이용한 현장 체험은 아예 통제되었으며, 계속해서 안전 교육 지침에 관한 공문이 쏟아졌다. 그리고 난 또 아이들의 질문에 씨름해야만 했다. '왜 배가 침몰했어요?', '왜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지요? 나갔으면 살았을 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대답하기가 힘이 들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고민했던, 머릿속에 있는 것들에 대한 쉬운 설명은 여전히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아니 이번에는 어렵게라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총체적인 부실은 쉽게 설명되지 못하였다.

이번 달 초에 이 책을 읽었으니, 세월호가 침몰한지 200일쯤 되었다. 아직도 세월호 침몰은 진행 중이며,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사주','불온세력'이라는 딱지를 감당하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식 잃은 것이 완장이냐'는 눈물날만큼 악랄한 말에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어쩌면 지극히 합당하다.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 열 두 명의 작가들이 세월호의 사건을 바라보며 글을 썼다. 아파하며 때로는 담담히 받아들이며, 때로는 분노하고, 좌절하며 글들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잊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 아픔이 절대 잊혀질 수 없음을 느끼며 나도 묵묵히 읽어나갔다.

작가들의 시선에서 세월호의 침몰은 단순히 배의 침몰을 의미하지 않았다. 세월호를 통해 그들은 우리의 어긋난 삶을 말하며, 존재와 부재를 인식하게 하고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김애란은 특유의 ​단어의 섬세함과 언어를 통한 사건의 묘사로 세월호의 아픔 속에 나를 떨어뜨려 놓았고, 김연수는 담담하게 지식인의 목소리를 내면서 퇴보하는 현 상황을 이야기하며, 박민규는 직설적으로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며 침몰하는 국가를 비판한다. 전규찬, 홍철기는 신자유주의 속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며 황정은 작가는 이야기 속으로 나를 끌어들여 결국 그들의 깊은 슬픔에 빠뜨렸다.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만큼 이 책은 사람이라는 개인의 시선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며 가독성도 훌륭하다.

특히 역사는 퇴보할 수도 있다는,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지금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는 김연수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편과 유가족의 정당한 싸움을 불온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사회적 폭력과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연민의 눈을 비판하는 진은영의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편은 두세 번 다시 읽을 만큼 통찰력 있는 글들이었다. 문학동네 편집주간 신형철(요즘 난 이 사람 책에 푹 빠져 있다)의 엮으며 쓴 마지막 글에서는 이 책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읽을 수 있는데, 그의 말로 나 역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고 싶다.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그들과 삶이 어긋나버린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한다. 

 " 요컨대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 받는 중이다."(책을 엮으며, 신형철, p230)


NO. 02

 

 

차례

 

김애란 (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 / 김행숙 (질문들) /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 배명훈 (누가 답해야 할까?) / 황종연 (국가재난시대의 민주적 상상력) / 김홍중 (그럼 이제 무얼 부르지?) / 전규찬 (영원한 재난상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 / 김서영 (정신분석적 행위, 그 윤리적 필연을 살아내야 할 시간: 저항의 일상화를 위하여) / 홍철기 (세월호 참사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 신형철 (책을 엮으며)

NO. 03

 

 

밑줄 긋기

 

 " 희생자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그곳에서 그런 식으로 불리게 될지 몰랐을 거다. 뉴스를 본 많은 이들이 희생자 이름 위에 자기 이름을 덧댔다. 혹은 자기 자식 이름을 포개며 같이 울었다. 중학생들은 처음엔 군대에서, 그 뒤엔 대학에서, 최근엔 고등학교에서 큰일이 났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라 자조했다. 모두 공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인재였다.(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 p11)

 "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 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는 어떻게 푸나.(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 p17)

 "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사회가 어째서 뻔뻔스러운 사회인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백일 넘는 시간 동안 참담한 상황을 보며, 서글프게도 니체의 저 구절들이 이해되었다.(​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p75)

 " 그들의 정당한 싸움이 '몹시 가여운 사람'이라는 사회적 온정주의의 선을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그들은 곧바로 시체 장사꾼으로, 혹은 불온 세력으로 매도되며 사회적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p83)

 " 그 팔꿈치들의 간격이, 그 광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렸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백해야겠다. 그 점점한 아름다움을 믿겠다. 그러니 누구든 응답하라. 이내 답신을 달라.(가까스로, 인간, p98)

"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정부가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려고 할 때, 그런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죽이려 든다.(책을 엮으며,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모의 권위 - 늦기 전에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요세프 크라우스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헬리콥터형 부모는 되지 말자

상담하다보면 유독 자녀의 사소한 문제들까지 집착하는 학부모님들이 많다. 작은 사회인 학교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라 할 수도 있는데 굉장히 큰 일이라 여기며 안절부절해 한다. 심적으로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모든 부모가 자식를 자기와 동일시하니 당연하다. 그래서 많이 들어주고 학교 생활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사회 속에서 성장한다. 그 속에서 느끼며 알아가며 때로는 견디며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을 만들어간다. 과도한 개입과 밑도 끝도 없는 관심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더욱이 학교는 규칙이 있고, 아이들을 이끄는 교사가 있다. 학교로 발을 너무 많이 들이면 그 만큼 능동적인 아이들을 좀 더 나중에 만나야 한다.

요세프 크라우스는 이 책에서 헬리콥터형 부모를 실랄하게 비판한다. 헬리콥터형 부모란 헬리콥터처럼 굉음을 내며 여기저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것을 말한다.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부모는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크라우스는 이러한 현상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고, 부모들의 간섭과 속박, 과잉보호와 응성받이식 교육법이 자녀를 망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될까? 크라우스는 부모가 권위가 있어야 됨을 강조한다. 권위있는 부모는 상술에 속지 않아야 된다. 또한 권위있는 부모는 아이를 단단하게 키운며 부족하게 키운다. 그리고 권위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상쳐주지 않고 꾸짖는다. 무엇보다도 권위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음을 강조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실 이 책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주장이 전적으로 맞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부모의 권위가 무엇이지? 라고 책을 읽는다면 상투적이어서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떫떠름하게 덮을지도 모른다. 그리 철학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인 논리로 무장한 책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 부모의 서포팅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 책은 그 반대 주장이 들어 있는 책이다.

​우리가 독일식 교육을 때로는 부러워하듯, 이 책은 독일 교육 한복판에 있는 지은이가 프랑스식 같은 교육을 부러워하며 쓴 책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그래도 읽을 만은 하다. 부모의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걸 다 받아주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소한 문제들까지 크게 확대해 고민하는 학부모님들에게도 들려줄 필요가 있어서라도 나름 필요한 책읽기였다. 표지가 깔끔한 노란색이라서 산뜻한 것도 나름 이쁘서 책 읽기에 한 표 더 드린다.

사실 부모는 숙제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교사가 보고 싶은 것은 엄마 아빠가 수학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가 아니다. 아이가 숙제를 제대로 했는지 살피고 필요한 경우 수업 시간에 보충하기 위해 숙제를 내는 것이다....부모의 임무는 아이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숙제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숙제할 시간아 되면 숙제를 했는지 가끔 확인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아이가 깜빡하거나 반항심이 생겨 숙제를 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물을 권한은 교사에게 넘겨야 한다.(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와 문학, 그리고 사람에 대해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실험


하나의 세계가 온전히 들어가있는 소설이나 그 세계를 압축해 반짝이는 단어로 치환하는 시, 그리고 그것을 영상이라는 매체 속에 담아 버리는 영화라는 텍스트들은 그 자체로 어렵다. 세계를 구축하려는 치열한 작가의 고뇌를 내가 알 길도 없거니와 사상의 뿌리와 시대의 명확함, 단어의 함축성을 이해하기에는 지식이 짧고 생각이 얕아서일거다. 그래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원초적인 표현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글을 끄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러하기에 책을 읽은 후의 느낌(내가 남긴 글은 서평이 아니라 느낌 정도일 것이기에)을 난 항상 나만의 기준을 설정해두는 편이다. 그 기준이라 하는 것이 '독서는 글쓴이와 읽는이의 끊임없는 거래'이고 그러하기에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거래하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도 나에게는 읽을 가치가 없는 작품으로 절하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심금을 울리면 그걸로 됐다고 이야기한다. 텍스트를 바라보는 내 느낌은 항상 이정도였다. 

허점이었다. 텍스트를 온전히 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거래를 한단 말인가. 사소한 물건을 살 때도 특징과 성능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거래를 시작하는데 텍스트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무슨 거래를 한단 말이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표현>을 격렬하게(그래, 격정적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텍스트를 보는 눈에 관해 나에게 많은 질문을 나는 스스로 던졌다. 평가 절하하는 것의 이유가 '나에게 닿지 않아서 별로다'라는 말이 얼마나 작가에 대한 모욕인가. 작가에게 합당한 근거를 들어 절하했던가. 또한 작가의 세계인 작품을, 그들의 글을, 그 글 속의 의미를 충분히 곱씹지도 못하고 사유하지도 않으면서 폐기하고 있지는 않고 있냔 말이다. 때론 이해불가의 문장으로, 때론 써먹을 만한 문장으로 구분해 하나는 쓰레기로 하나는 카피의 서랍으로 쓸어버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책은 영화 비평 에세이다. 문학비평가인 신형철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 비평을 하는 이야기의 모음이다.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연재했던 글의 모음집이라고 책 머리에 나와있다.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 영화를 일종의 활동서사로 간주하고, 문학 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하고'라며 스스로 말하듯이 이 비평글들은 영화의 기법에 대해 평하지 않으며 우직하게 서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도 텍스트이고 단지 영상이라는 매체를 이용할 뿐 결국 스토리, 즉 서사의 전달이기에 신형철은 영화를 문학에 대입해 풀어내는 비평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크게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그리고 '성장과 의미'라는 네 가지의 범주 속에서 각각의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한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란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책을 읽은 후 나는 두 가지 범주의 '사랑'을 생각해봤는데, 하나는 '작품에 대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또는 자신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신형철은 작품 비평을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품은 모든 해석자들에게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며 해석자의 꿈이란 그러한 작품의 말에 정확하게 사랑을 해야한다는 의미다.(책머리 2쪽) 사랑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정확한 비평, 즉 이해와 분석을 치환하는 말이겠다. 그런데 다른 면의 사랑도 이 책에는 또한 읽혀진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하나를 나는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썼다.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이다.'(책머리 3쪽)의 저자 고백처럼 이 비평문들은 영화를 통해 정확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고, 정확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비평을 하는 것도 어렵고 비평(인터넷에서는 흔히 서평)을 보는 것도 어렵다. 어떠한 작품을 평한다는 것, 재단한다는 것은 작품의 무게를 파악하지 못하고 감당하지도 못하기에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품에 대한 감상을 허용하는 감상문 정도는 괜찮을텐데, 해석하고 논하는 것은 감상문의 범위를 넘어선다. 작품은 '정확히 사랑받고 싶다'고 아우성치는데 나는 겉만 핥는 성의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평을 보고 읽는 것도 쉽지는 않다. 비평가들의 분석이 언어의 조각들이 망망대해에 떠도는 것 같이 난해할 때가 많을 뿐더러 그들의 도구가 낮설다고 느껴서이다. 헤겔, 스피노자, 보통, 프로이트 등 수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난무하고 수많은 시와 소설에서의 인용을 이해로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비평에 발을 뗀다. 더욱이 치명적으로 비평문이 다루는 문학 작품이나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를 보지 못했을 때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실패하고 비평을 온전하게 읽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보지 못한 영화라는 텍스트가 주가 이루는 이 비평문들은 너무나 반짝반짝하게 머리 속에 들어온다. 그의 생각은 신선했으며 사유는 논리적이었고 재미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장면 장면을 정지 상태로 놓고 읽어가는 듯한 느낌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서사로서 영화를 접근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놀랄만큼 치밀하게 작품들을 분석한다. 그 작품의 본질을 보려 노력하고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엄격한 사색을 통해 정리한다. 그렇게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 비평가에게 작품은 '정확한 사랑'을 허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에게 정확한 사랑을 받은 이 비평가는 나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도 사랑의 정확성을 보게 해주는 눈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비평문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았고, 영화 속 감독의 철학을 읽고 있었으며 작품에서 나타나는 삶의  의미의 가치를 계속 곱씹었다.

​특히 두번째 장(발기하는 인간, 발화하는 인간_욕망의 병리)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홍상수와 김기덕 영화를 분석하는 장면과 <시> (미자씨가 시가 아니라 소설을 썼더라면)편은 빠져가며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사유는 본질적이기에 끌리는 주제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두 거장의 접근법 (예를 들어 김기덕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홍상수는 말에 초점을 맞춘다.)의 비교 분석이 신선했으며 작품에서도 '김기덕이 원형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홍상수는 전형적인 인간을 다룬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을 나 역시 마음껏 탐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와 소설의 갈래를 예전에 대학원에서 숙고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를 추억하며 <시> 비평문을 읽은 것도 하나의 기쁨이었다.이렇게 비평문을 읽는 독자를 끌고 다니는 능력이 아마도 신형철의 힘이 아닐까 한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는데 못 본 것들이 많아 보고 싶다라는 욕망이 꿈틀댄 것도 이 책의 재미를 이루는 원동력이었다.

 

신형철을 잘 몰랐다. 얼핏얼핏 그의 글을 보긴 했지만 그냥 흘려 보는 통에 차분히 그의 글을 음미하지 못했다. 책을 보면서 그는 참 정확한 사랑을 위해 실험하는 실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해석학자라고 말하는 그는 더 좋은 해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같다. 그게 작품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일 것이다. 나를 정확하게 이해해주라는 작품에게 그는 섬세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보듬는다. 그런 그의 글들을 보며 앞서서 이야기한 것 처럼, 나의 책읽기가 얼마나 부족하고 옹졸한지를 다시 한 번 느낀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사랑을 할 자격이 아직도 나에게는 부족하다고 느꼈으며 그러하기에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을 참 많이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지적 욕구 딱 좋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결여를 깨달을 때의 그 절박함으로 누군가를 부른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말, '나도 널 사랑해'라는 말의 속뜻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결여다.'(p25)

 

 

어떤 조건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드어가려 할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는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문학이다.(p65)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세 단계를 차레로 밟아가는 일이다. 그 세단계를 각각 '주석 '해석 '배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텍스트가 다루고 있는 것들의 '사실'관계르 확인해야 하고(주석),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서 텍스트의 '의미'를 추론해내야 함고(주석),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서 텍스트의 '의미'를 추론해내야 하며(해석), 이렇게 추론된 의미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를 평가하면서 그 텍스트가 놓일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배치).(p113)

 

 

좋은 이야기들에는 인간에 대한 경험함이 있어서 이런 말들이 들린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그러므로 너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 내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감히 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나의 진실을 은폐하고 너의 진시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두렵다. 아마 나는 실패하리라.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를 하려는 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p143)

 

 

어떤 말과 행동이 장착할 수 있는 의미의 최대치가 100이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 중에서 많아야 20~30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대체로 사려 깊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내 흩어져버린다. 어쩌면 그것들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을 때 영화는 지상에서 흐르는 어느 시간을 살아 있는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놀라운 기술이 된다. 문학에서 시간의 의미는 그 시간을 살고 난 이후 되돌아볼 때 얻어지는 어떤 깨달음의 형태로 효현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것은, 그 어떤 깨달음의 형태로 굳어지기 전에, 그저 흐르고 있는 그 상태 자체로, 무의미가 아니라 미의미의 형태로 보존된다. 이것 또한 형화적 마술의 한 본질인 것이 아닌지.(p2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남에서 서울대 많이 보내는 진짜 이유
심정섭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공부그릇 가지고 있는가? 그것부터 살펴보자.

 

학력이 성공의 주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학력을 무시하고 개성껏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하물며 자식의 대학 진출을 위해 모든 것을 쏟으며 노력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오죽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학력 사회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라는 간판은 모두의 선망이 된다. 또한 대치동으로 일컫는 강남 학군은 부러운 눈으로, 때로는 교육 불평등의 핵심으로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나오자마자 각 서점마다 교육 분야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우선 책 제목이 눈에 띈다. 강남에서 서울대 많이 보내는 진짜 이유라니... 강남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서울대를 많이 보낸단 말인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왜 강남 안에서 자취를 감추는지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이 책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를 대한민국의 1%로 성장시킨 부모들의 비밀"이라는 부제로 책을 들었을 이도 많다고 확신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강남에서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진짜 이유는 그 곳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곳으로 특별한 사람들이 몰려서이다.​ 오히려 그 특별한 사람들 중에 진짜 특별한 사람들만 서울대를 가고 나머지의 특별함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곳이 강남이라는 것이다. 가능성 있는 아이들은 어느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성과를 내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강남에 데려다 놓아도 도태된다.

글쓴이는 서울대를 나왔고, 대치동에서 잘나가는 영어 강사이다. 그런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는  강남 신화의 불편한 진실을 강남 한복판에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강남에 무작정 들어오지 마시라, 아이를 다시 바라보시라고 조언한다. 때로는 대학 입시 전문가답게 냉정하게, 때로는 안타까워하며 독자들을 설득한다. 그는 강남은 서울대를 보내주는 급행열차가 아니라고, 환상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책을 들었던 독자들은 성급하게 책을 내려놓는다. '뭐야, 그래서?' 

'뭐긴 뭐야. 그래서 더 읽으라고!'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바로 공부 그릇에 있단다. 실력있는 학생들은 어디에다 가져다 놓아도 공부를 잘한다. 바로 공부 그릇이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의 현장 경험에서 느껴지는 이야기다. 나도 겪하게 공감하는게 결국 공부는 자신과의 싸움이자 자신의 지적 능력이라고 평소 느끼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가르치는 것, 방향 등은 서포팅에 한정한다고 믿는다.

공부그릇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건강한 몸이다. 두 번째로 평안한 마음이다. 세 번째로 생각하는 머리이다. 이 세 가지 핵심 그릇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운동 잘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생각하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한다. 내 자식을 주입식으로 학원으로 떠밀고, 고립시키고, 피말리는 경쟁에 내놓는다면 결국 지는 게임이다. 명문대는 고사하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우리 학부모들, 이 세가지를 자신의 자녀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특히 세번째 공부 머리가 없다면 과감히 명문대 도전이라는 공부로서의 투자를 접고, 적성과 진로를 재빨리 찾아가주기를 바란다. 시니컬한게 아니다. 진짜 성공은 20대에 명문대에 가는게 아니라 40대의 경제적 자유인이 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향 중에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명문대는 물론 가면 좋다. 그러나 누구나 명문대에 갈 수 없다. 공부 그릇이 있는지 없는지 냉정히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투자를 제 때 적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과정은 초등학교 때 가능한 경쟁이 덜 치열한 지역에서 마음껏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체력을 키우게 하고, 학교 공부와 더불어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독서하고 토론하며 탐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p64)

사실 부모가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환경은 집의 TV를 끄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의 공부에 필요한 적절한 영양과 운동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p158)

 공부에서 성과를 내는 아이들은 어떻게 몰입독서 능력을 길렀을까요? 아이들마다 과정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부모가 책을 많이 읽는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부모가 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독서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씁니다. 셋째, 몰입독서 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책을 구하기 쉬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p182~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시절 지겨운 수능 문제 풀이에 지쳐있을때 얼마 들어있지 않은 윤리시간은 나에게는 기쁨이었다. 

진지한 윤리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소크라테스 철학, 플라톤의 이데아론등의 서양철학, 맹자,순자 등의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따분한 윤리'라고 외쳤던 모범생들도 많았으니 윤리선생님의 수업은 그리 재미있거나 활기찬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냥 좋았던 수업의 기억이다. 철학자들의 삶에 대한 고민, 사람, 사회에 대한 막연한 고민 등을 할 수 있는,

소위 말해서 '주체로서의 나'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어서 그랬을거다.

 

어렸을 때부터 문득문득 생각했던 문제. 사람들은 원래 악한가? 아님 원래 선한가. 이도 저도 아니면 백지?

그러한 고민도 이전 절학자들은 이미 했다고 윤리 시간은 나에게 가르쳐줬다.

그래서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질문도 스스로에게 물었던 기억.

남을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보면 선한게 맞다고 생각했고,

잔인하리만치 악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원래 악하다! 고 여기기도 했다.

 

이 책은 대학 졸업반 때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연찮게 읽은 이 책은 꽤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인간에 관한 나의 사고가 뒤틀리고

뒤틀린 자리를 '과학적'사고로 메꾼 계기가 되었으니,

그로 인해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인간은 악한 존재, 선한 존재가 아닐수도 있겠다라며 책을 덮었던 그 기억.

 

얼마전에 다시 읽었다. 새로운 개정판(별로 달라진 내용은 없는 것 같다) 표지가 맘에 들었다.

예전 기억도 나고...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유전자의 복제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 생존 기계이다"

이 정의에 대한 도킨스의 믿음은 초판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 역시 예전에 읽었던 것이나 지금 읽은 것이나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 만큼 논리가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지 않나 싶다.

  

모든 동물의 행동을 유전자 전달 관점으로 설명하는 쉽게 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종교적 가치나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영 시원찮을 수 있다.

책 제목 역시 이기적 유전자라는 우리는 모두 이기적임을 내포하고 있어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자. 읽고 이야기하자.

이 책은 논리가 탁월하다. 다윈의 진화론을 기본 바탕으로 섬세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논리를 확장해간다.

동물의 모든 행동, 즉 본능적인 행동은 결국에는 자기 유전자 복제에 있다는 논리는 재미있고 명확하다.  

그리고 도킨스가 대놓고 전개하지 않지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인간 역시 그러한 자기 유전자 복제, 유전자 전달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궁긍적 목적이기에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충분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특별하다고, 자유의지가 있기에 본능적인 동물과 다르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문화가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이 부분을 예전에는 읽을 땐 기억이 나지도 않고, 간과하였는데

요즘 다시 보니, 도킨스는 밈(me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문화 역시 유전자의 하나로 모방의 단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진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집단선택설

 

도킨스는 진화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진화론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치열한 논쟁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이타주의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 집단 선택의 문제, 종의 문제와 직결되기에 도킨스는 우선 진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하려고 하는 장이다.

도킨스는 진화는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택의 관점이란 선택의 기본단위 즉, 유전의 단위라 주장한다.

 

2. 자기복제자

  안정, 생명의 기원과 자기 복제자

 

생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장이다. '원시수프' 이야기를 통해 태초의 단순함에서 현재의 생명체의 진화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경이롭고 신비하다. 우리의 근원인 자기 복제자가 이루어진 과정을 이야기하며 그 자기 복제자는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유전자'의 이름을 갖고 있다.

 

3. 불멸의 코일

  생존기계, 자연선택의 단위, 노화이론

 

이제 구체적으로 유전자 이야기를 해 나간다. 쉽게 풀어쓴 게 이 책의 장점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과학적 상식이 있어야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이다. 과학을 잘 모르는 내가 예전에 배운, 또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각종 생물학적 지식을 동원해 읽은 장이다. 유전자의 자연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자가 어려워할 수 있는 내용을 실제적인 예(조정 선수 이야기)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설득하는 점이 좋았던 장이다.

 

4. 유전자 기계

  생존 기계의 시작, 뉴런과 컴퓨터, 예측하는 유전자, 시뮬레이션, 의식의 진화, 의사소통

 

도킨스의 기본적 정의는 '우리 몸은 유전자 전달을 위한 생존기계'라는 점이다. 기계라는 말에 욱할 필요는 없고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 거부감이 희석된다. 여하튼, 생존기계인 우리는 컴퓨터의 그것과 닮았다. 유전자의 프로그램에 따라 우리 몸은 예측하고, 도박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심지어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 우리 몸속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고 이는 앞으로 설명할 거짓말 역시 진화의 관점에서 생존을 위한 유전자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다른 생존 기계는 환경의 일부, 이론과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비대칭적 싸움

 

이 장은 개인적으로 흥미있게 읽은 책이다. 뒷 책의 '보주'장에서 자신의 논리의 허점을 인정하고 수정하긴 했지만, 진지하고 재미있다. 우리 생존기계는 결국 자신의 경쟁자와의 싸움이다. 그게 다른 종이든, 같은 종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전자 전달을 위해 최대한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우리 유전자는 항상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을 취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전략을 게임이론으로 설명한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게임 이론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이번 장은 우리 동물의 생존 전략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인간도 생존 기계인 동물의 일부이기에 우리 역시 궁극적으로 이 안정한 전략을 택하리라 여겨진다. 난 개인적으로 ESS를 인간에 대입하며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아주 긴 우리 인간의 역사는 이 부분이 결국 적용되는 과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 장이다. 

 

6. 유전자의 행동 양식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주의, 혈연선택, 부모와 자식관계

 

재미있는 장이다. 더욱이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혈연자, 또는 친족 관계를 왜 중시하는지를 설명한다. 유전자 전달 기계인 우리는 당연히 근연도를 생각하며 삶을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식이 소중한 까닭, 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강력한 관계, 심지어 이타주의를 보는 관점 역시 이기적인 자신의 유전자 보존을 위한 선택의 관점까지. 좀 더 다루었으면 할만큼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나 역시 혈연과의 유대관계 속 한복판에 들어있어서 그랬을거다.

 

7. 가족계획

  아이 낳기와 키우기, 개체 수 조절, 인구문제, 가족계획이론

 

그래서 가족계획 역시 중요하다. 아이를 낳는 것은 '유전자를 얼마나 잘 효율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도킨스는 아이키우기와 아이 낳기는 하나의 개체가 이용할 수 있는 시간 또는 여러 자원을 놓고 서로 어느 정도 경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그리하여 그 개체는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할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새로 하나를 낳을 것이가?"

 

8. 세대 간의 전쟁

  가족 내부의 이해관계, 갈등의 승자

 

우리의 숭고한 이타적인 사랑, 모성애 등을 유전론적으로 다룬다. 부모님의 '숭고함' 어머니의 숭고함 을 버리고 싶은게 아니다. 다만 우리 몸의 유전자 생존의 기계라 한다면 그것 역시 유전자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도킨스는 부모의 투자라는 관점으로 어미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러한 이타적이고 숭고한 사랑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거북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해석할지라도 난 우리 부모님의 사랑을 분석하지 않는다. 또한 내 자식들을 내 유전자 전달자로 인식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더욱 아니다라고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가치혼란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동물의 삶을 이해하고, 그러하기에 삶을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폭을 넓힌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9. 암수의 전쟁

  짝 간의 갈등, 성의 전략, 이기적인기계, 수컷선택전략, 핸디캡원리, 암수의차이, 인간에서의 성 선택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이기적 유전자 전달의 관점에서 암컷은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을 취한다. 근본적으로 암수의 차이, 즉 성의 비대칭성을 바탕으로 암컷이 안정된 수컷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한다. 결국 성의 선택은 유전자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간에서의 성 선택 역시 이러한 과정의 변종일 뿐이며 다만 재미있는 것은 인간은 일반적인 다른 종과 달리 왜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려고 애쓰며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가이다. 일반적 동물은 난자가 더욱 희소자원이기에 차지하기 위해 수컷이 화려해지려는 경쟁을 한다. 현대 사회의 인류는 멋진 유전자를 가진 남성이 희소해서일까..

 

10. 내 등을 긁어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집단 형성이 주는 이익, 사회성 곤충, 협력의 진화

 

협력이라는 개념 역시 각 개체의 안정된 유전자 전달을 위한 파생 상품일 뿐이다. 안정된 유전자 전달을 위해 협력은 진화하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회성 동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타주의 대명사라 일컫는 개미의 사회 생활을 통해 결국 개미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협력, 사회성 관점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득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인간 역시 동물이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타주의, 호혜적 이타주의 역시 인간 진화를 위한 주요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챕터 소주제대로 너가 등을 긁어주면 나는 기회를 봐서 네 등 위에 올라탈지도 모르겠다.

 

11. 밈-새로운 복제자

   문화, 문화적돌연변이, 밈과 그 진화, 밈의 특성

 

사실 앞 장까지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당연한 이야기 유전자 전달과 원시스프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리저드 도킨스는 조금 생소한 그렇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문화 수프 '밈(meme)'을 이야기한다. 사실 인간은 다른 종들과 다른 면이 확실히 있는게 바로 유전자와 같은 동일선상에서 문화 전승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킨스는 밈을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와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예를 들어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밈 역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복제자이고 그러하기에 우리 몸 역시 유전자 전달기계와 더불어 밈 전달 기계가 될 것이다. 도킨스가 인상적으로 설명하는 '신'이라는 관념 역시 결국 '밈'이다.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쉽게 복사되는 이유가 바로 밈의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 실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사후에 유전자와 밈, 이 두 가지를 남긴다.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죄수의 딜레마, 영합,비영합 게임

 

번외장 같은 느낌이다.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는 모두 이기적이다. 그러나 이 장은 그럼에도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고 말한다. 그냥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게임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은 집중이 잘 안되었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구체적인 논리적 분석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귀찮게 읽었다. 독서 탄력성이 가장 떨어졌던 장인데,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정독할 필요가 있는 장이다.

 

13. 유전자의 긴 팔

   유전자냐 개체냐, 숙주와 기생자, 유전자는 왜 집단을 형성하는가, 불멸의 자기 복제자

 

초판과는 다른 재판될 때 추가된 장으로 알고 있다.(맞나?) 아마도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책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을 듯하지만 이 장을 통해서도 도킨스가 의도한 내용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유전자는 개체보다 앞서는 가장 근원이다.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 개체의 목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각 개체의 모습과 형태는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도킨스는 비버 댐, 새집, 날도레 애벌레 집과 같은 건축물의 예로 우리 몸이 왜 확장된 표현형인가를 그리고 동물의 행동이 왜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도킨스는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데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 몸을 지배하는 것 뿐 아니라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세상에 있는 대상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생물 무생물 다 해당한다. 결국 자기 복제자인 유전자는 그 자체로 존재 이유이며 끝까지 살아남을 우주의 모든 생명중 유일한 실체라고 말한다 .

 

......

 

나는 이 책이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사고의 책이라서, 심지어 우리는 생존 기계라고 단언하는 책에 처음에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물론 지식이 미천한 나는 완벽하게 도킨스에게 졌고 경외감도 들었다. 그리고 결국 비로소 과학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행동을 이해하는 어떤 기본적인 틀을 가진 것 같아 기쁘다.

 

그렇지만 인간을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본다고 철학적 사유와 인간의 감정을 놓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철학적 사고가 더 풍요로워졌다고나 할까. 생각이 많아지고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폭이 더욱 커졌다. 결국 인간은 유전자와 밈 전달을 위한 개체이다. 그러나 그러하면서도 얼마나 창의적이고 다이나믹한가. 계속 다양하게 감정의 변이를 일으키면서 때로는 유전자에 굴복하고 때로는 진화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하기에 지금은 삶은 쉽게 포기하거나 귀찮은 것이 아닌 필수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래서 내 유전자를 따뜻한 감정의 풀로 빠뜨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좋은 책을 빠져 읽게 한 내 유전자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내 이기적 유전자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책을 읽음으로써, '밈'의 스푸에 빠져버렸다.

결국 이기적이리 만큼 내 유전자는 그 만큼 더욱 성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