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기초 - 수와 인류의 3000년 과학철학사 Philos 시리즈 21
데이비드 니런버그.리카도 L . 니런버그 지음, 이승희 옮김, 김민형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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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과 이성적 사고의 3000년 역사

나는 너를 위한 가르침을 요약할 것이다.

그 가르침은 두 가지 규칙으로 구성된다.

'모든 다른 것은 같다.

모든 같은 것은 다르다.'

"너의 정신 안에서 이 두 가지 원리 사이를 오가라. 그러면 너는 우선 이 두 원리가 모순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발레리

자기 시대의 위기를 지식 발달에서의 선택과 연관 지어 이해하는 많은 사상가들은 잘못의 원인과 사태를 악화 시킨 선택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과정에 몇몇 수학자와 과학자의 독단적인 태도를 봤다.

이 책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분야 등에서 지성계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이자 인류가 지식을 논하는 방법론인 ‘차이’‘동일성’의 개념에 대해 다룬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근대 물리학과 경제학, 현대 양자 세계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3000년이라는 장대한 기간을 아우르며 광범위한 사상체들을 정교하게 탐구하고, 훌륭하게 통합한다.

『지식의 기초』는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어떤 경로로 발전해 왔으며, 그것이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과학철학사를 다룬 역사서임과 동시에 현시점에서 ‘인류의 자리’를 묻는 철학적, 시적 권고문이기도 하다.

❤️ 지식의 총서이자, 지식의 기초라는데 그 저반 지식이 없는 내가 읽어도 될까? 너무 겁 없이 손을 내민 것은 아닐까? 역대급으로 어려운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잘 읽히는데도 이해는 어려웠다.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았으나 17세기 이후 과학의 발달과 19세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문학들에 대한 작은 경험으로 어렵사리 땅 짚고 헤엄을 쳐보며 이 책의 고급진 지식 경험을 누린다.

이전에는 문학이나 사회경제 관련해서 만났던 이름들을 이제는 수학자, 과학자의 이름으로 만나며 인류사의 많은 현상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식 자체가 재밌는 신세계였다. 이해했다기보다는 이런 지식체계가 있구나 하는 경험이다. 책 속의 문과적 언어들을 취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문학과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황홀경이었다. 온전한 이해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다음이 기대되는 책이다.

인식론에 비춰보면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가 있고 무지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만큼의 세계를 잘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더 많이 안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혹시 알아? 하는 마음으로 읽기도 했다. 또 모르지 않을까? 눈 감고 코끼리를 더듬다가 굉장한 깨달음을 얻을지? 석공이 돌을 깨어 조각하듯이 천천히 음미해야 할 책으로 묘한 기쁨이 있다.


이런 말들에 묘하게 끌린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 알려진 모든 것은 수를 갖는다. 수가 없으면 어떤 것도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

  • 모든 차이는 원리들이 쌍으로 표현된다. (경계가 있는, 경계가 없는 / 홀수, 짝수 /하나, 단수 / 오른쪽, 왼쪽/ 남성, 여성 /정지 중, 운동 중 /직선, 곡선/ 밝은, 어두운/ 좋은, 나쁜 /정사각형, 직사각형)

  • 사유의 법칙으로 배중율과 비모순율이 있다. 배중율은 수는 반드시 홀수 아니면 짝수임을 확실히 하는데 필요하다. 비모순율은 어떤 수도 동시에 홀수이면서 짝수일 수 없음을 보장해 준다.






저자

프린스턴고등 연구소 소장으로서 종교, 인종, 철학, 수학 및 물리학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춘 세계적 역사학자 데이비드 니런버그와 그의 아버지이자 수학자이며 문학가인 리카도 L. 니런버그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출간 즉시 국내외 수학 및 과학계 인사와 철학 및 사회학계 인사가 극찬했으며, “앞으로 몇 년간 논의될 수학 대 다른 형태의 추론에 관한 비판에서 논쟁의 중요한 조건을 변화시킬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21세기의 분열을 더 잘 이해하고 이 분열 속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시도다. 인류의 다양한 사상은 어떻게 서로 맹렬하게 싸웠을까? 그리고 왜 이런 갈등 속에서 수와 수식 관계의 진리 주장이 그렇게 강력하게 떠올랐을까? ✔️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역사학의 과제이며, 이 책 전반부(1~5장)에서 그 역사를 제시한다. 1~5장에서는 고대 그리스철학 및 유일신교의 부상부터 근대 물리학과 경제학의 출현까지 다루면서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사고의 이상, 실천, 습관들이 수를 지식과 확실성을 향한 인간적 요구의 초석으로 바꾸었는지 추적한다(고대의 역사, 철학, 종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은 2~4장을 건너뛰어도 된다). 이런 분열 속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이 책 후반부의 목표다(6~10장).

이 책의 목표는 양자택일 해법이 잘못됐고, 동시에 위험하다는 것을 해명하는 데 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 강연에서 베버는 근대사회에서 인간 지식이 ‘점점 지성화 및 합리화'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주장했다. “계산될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이 더는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계산을 통해 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세계가 탈주술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탈주술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는 심대했다. '문명인'은 지식이 끝없이 진보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처럼 나이가 들어 인생에 만족하면서 충만함 속에 죽을 수가 없다. 근대적 주체는 삶에서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언제나 잠정적인 것일 뿐 최종적인 것이 아니므로, 근대적 주체에게 죽음은 의미 없는 사건일 뿐'이라는 걸 안다.

세계의 탈주술화 수준에 대해서는 베버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톨스토이[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근대에서 죽음의 무의미성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베버의 해석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감지되던 반지성 혁명에 대한 이보다 더 설득력 있고 섬세한 관찰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베버는 이 상황이 플라톤의 [국가] 7권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와 반대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고대의 비유에서 인간 해방은 삶의 환상과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생각이라는 빛을 통해 참된 존재를 보는 법을 배우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반대로 느낍니다. 그들은 학문이라는 지성적 구조물이 인공적 추상물이라는 비현실적 영역을 만든다고 느낍니다. 젊은이들에게 '순수한 실재는 생생한 경험 속에서 고동치는' 것이다.

지성적 구조물, 즉 학문과 "그 나머지는 생명의 부산물일 뿐이고, 생명 없는 유령이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라는 개념에서 서로 대립하는 지식의 형태를 보게 된다. 베버는 이 혁명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개인숭배와 대중 선동, 학문의 정치화와 카리스마적 교수 요구에 반대하는 내용을 강연에서 많이 다루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경고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버는 이런 혁명을 인류의 다양한 측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원한 전쟁의 일부로 이해했으며, 이 전쟁을 다신론과 신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비유했다.

"생명을 향해 취할 수 있는 여러 태도들은 궁극적으로 서로 화해할 수 없습니다. 이 투쟁은 결코 최종 결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호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베버에게서 두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독단주의의 상대적 배제, 지성적 구조물의 기초보다 지붕에 더 큰 관심을 갖는 태도가 그것이다. 근대 주체에 도전하면서 베버가 발견한 것은 지식의 무한한 지평, 그리고 모든 단계와 모든 발견의 잠정적 성격이었다.

슈펭글러 같은 학자들은 주로 기초 부족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서술했던 수학 기초의 ‘위기’가 좋은 예다. 슈펭글러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이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심지어 2×2=4 같은 가장 ‘자명한' 기본 산술 명제도 분석적으로 다루면 문제가 되고, 이 문제의 해답은 [집합론에 나오는]추론으로만 가능할 것이며, 많은 지점에서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슈펭글러는 수학 기초의 허약함이 자신의 논지를 지지해 준다고 보았지만, 그가 언급했던 작품을 쓴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완전히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1884년 고틀로프 프레게가 출판한 산수의 기초 덕분에 모순이나 역설 없는 순수한 논리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수학의 모든 것, 그리고 인간 지식의 많은 부분을 구축하는 꿈에 한 걸음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버트런드 러셀이 나중에 회상했듯이 모든 순수수학은 순전히 논리적 전제에서 나오고, 논리적 용어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들만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 그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슈펭글러 같은 비판가들은 수학적 기초의 이런 허약함에 초점을 맞췄던 반면, 수학 옹호자들은 강력한 기초를 희망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수학 분야에서 기호논리학의 승리가 언어를 논리에 맞춰 언어와 실제의 관계를 확립하고 해석적 모호함과 오류를 제거하려는 기획의 부활을 의미했다. 예를 들면 프레게는 ‘아침 별’과 ‘저녁 별’을 분석했다. 두 단어는 같은 ‘실제’대상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는 행성을 언급하지만, 두 단어를 늘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로미오가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경험했을지 생각해 보라.

1905년에 나온 러셀의 ‘기술 이론’도 비슷한 질문을 제기한다. “문장의 주어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들이 사물들을 가리키고 사물들은 문장이 말하는 그대로라서 이 문장이 참이라고 생각될 때, 누군가 같은 사물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을 대체어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참조하는 표현을 포함한 어떤 참인 문장들이 거짓이 될 수 있을까?" 러셀의 새 논리는 이 언어 ‘문제’를 제어하려고 했다.


이 책에 대한 철학과 교수님들의 추천사 또한 대단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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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기초 - 수와 인류의 3000년 과학철학사 Philos 시리즈 21
데이비드 니런버그.리카도 L . 니런버그 지음, 이승희 옮김, 김민형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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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총서이자, 지식의 기초라는데 그 저반 지식이 없는 내가 읽어도 될까? 잘 읽히는데도 이해는 어려웠다.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았으나 과학의 발달과 19세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고전문학들에 대한 작은 경험으로 어렵사리 땅 짚고 헤엄을 쳐보며 이 책의 고급 지식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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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혁명 -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성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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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을 통해 보는 세계 정상국의 무기 전쟁이 어디로 흘러갈지 불안한 마음이 작지 않다. 최근 뉴스에선 러시아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이 회담을 가지는 일을 대서특필하고 있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시스템에서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가 무기 생산과 최대 소비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딜레마에서 인류는 해방될 수 없을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를 비롯해서 오늘 함께하는 책 <희망의 혁명>까지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유럽-북미 기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는 모두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희망의 혁명>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경제 시스템 사이의 관계를 다루며 '낙관'을 통한 더 많은 '진보'를 희망한다.

희망한다는 건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희망이라면 더 좋은 집, 차, 가전제품 등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소비를 욕망하는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희망은 수동적이고 기다리는 희망이 아니다. 또 의식적으로는 희망에 차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다.

희망은 신념과 동반되는 기분이고 희망이라는 기분이 없이는 신념이 유지될 수 없다. 희망, 신념과 연결된 또 하나는 용기, 바로 불굴의 용기이다. 개인적 변화나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사회는 지금 여기 일어나는 희망과 신념의 행동 안에서 매 순간 부활한다.

문학작품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들의 소재는 대부분 이러한 것으로 사랑, 각성, 연민의 행동 하나가 모두 부활이다. 그리고 태만, 탐욕, 이기심의 행동 하나하나는 죽음이고 매 순간 존재는 우리에게 부활 아니면 죽음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을 통해 거기에 답한다. 최근에 내가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소냐를 통한 부활을 이룬 라스콜리니코프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느낀 메시아적 희망을 보았다.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희망이 없이는 살 수 없고,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사람들은 더 큰 절망을 맞게 된다.

공통적으로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느냐에 답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지에 있나?

에리히 프롬은 핵무기가 그전에 인간을 전멸시키지 않는다면 서기 2000년에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회와 인간이 되어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21세기의 수많은 문제들이 예견되었음이다.

❤️ 이 책의 부제는 '인간적인 기술을 의하여'이고 무엇이 인간적인지를 고찰하고 기술을 인간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밝힌다.

-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다움을 실천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도덕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P19

우리 한가운데서 망령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망령을 똑똑히 바라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오래된 유령이 아니다. 컴퓨터의 지휘 아래 최대의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 온 힘을 쏟아붓는 완전 기계화 사회라는 새로운 망령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과정 속에서 인간 자신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잘 먹고, 즐겁게 대접받지만, 수동적이고, 활기 없고, 감정조차 거의 없는 존재로 말이다. 새로운 사회가 승리를 거두면서 개인주의와 사생활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타인을 향한 감정은 심리적 조건화나 다른 장치, 혹은 약물을 통해 조작될 것이고, 이것이 또한 새로운 종류의 자기성찰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기술정보화 사회 rechnetronic society에서는 매력과 흡인력을 갖춘 개인이 최신의 통신 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쉽게 수많은 사람의 감정을 조작하고 성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화하지 않은 수백만 시민의 개별적 기지가 한데 모이는 방향으로 추세가 흐를 듯하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같은 소설에서 이런 새로운 형태의 사회상을 예측한 바 있다.

어쩌면 지금 가장 불길한 것은 우리가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도 하려 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고도 않는다. 우리는 핵무기로 멸종의 위협을 받는 동시에, 책임지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서 배제되어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바람에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갈 위협도 받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자연을 두고 승리의 정점에 서 있던 인간이 어쩌다 자기 창조물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을까?

<희망의 혁명>을 읽으며 오늘을 함께 읽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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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9-1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희망의 혁명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네요..

요즘 보니 에리히 프롬 저작물이 여기 저기 출판사에서 다투어 재 번역되고 있는 듯합니다. 프로이트처럼 프롬 전집이 나오면 좋으련만..2000년까지 나왔던 프롬 저작들은 전부 읽었고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요즘 작게 하드커버로 나오는 책들 주이 이전에 번역되지 않았던 논물들이 간혹 번역본에 실려 있는 걸 보고 꽤 놀랐습니다. 번역도 예전 것보다 좋아진 듯하구요..<인간 파괴성의 해부>가 어여 재번역되길 기대하는데...언제 번역될지...

반가운 마음에 몇 자 끄적여 봤습니다..^^

모든것이좋아 2023-09-15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걱정보다 잘 읽혀서 놀랐고 지금도 역시나 필요한 책이라는걸 알겠더군요. 말씀하신 책과 샤르트르의 책, 그리고 실존을 탐구한 여러 작가들을 더 만나가고 싶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희망의 혁명 -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성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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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시스템에서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가 무기 생산과 최대 소비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딜레마에서 인류는 해방될 수 없을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를 비롯해서 오늘 함께하는 책 <희망의 혁명>까지 함께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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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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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창비의 테마 소설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되고 다시 만난 작가님과 글이 있었다. 생각이 날 때마다 펼쳐 읽은 하나의 글 속에는 중요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것들이 하나의 사진처럼 찍혀 있다.

공존하는 소설

각자 따로가 아닌 같이 함께를 바라는 이야기들


내가 다 끌어안기엔 버겁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 이해의 폭은 턱없이 좁기만한 세계에서 타인을 향한 공감을 넓히며 공존하길 바라는 소설들이다. 극혐이라고 외면하다가도 마음을 여는 순간 나의 일이 되는 이야기들을 만나며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뒤로 희망을 보아서 좋았다.​​



<밤은 내가 가질게> p 23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일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불행해지기 의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같았다. 기를 쓰고 히든 크레바스에 몸을 던진 사람 어떤 의지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냥 거기 구멍이 존재하니 빠져드는 것... 더욱 최악인 건 언네가 도무지 지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속았으며 무기력해질 법도 한데 언니는 끝도 없이 사랑을 믿었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어김없이 돈을 뜯기 고 가차 없이 버림받았다.


보잘것없는 불행부터 겉잡을 수 없는 불행까지 빠짐없이 지려 밟고 있는 언니는 이제 겨우 서른네 살이었다.

p 29

이 세상은 공평해. 내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말만 하고 집 살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

❤️ 어느 집에나 있을법한 사고 뭉치다.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이 드는 인물로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죽을 맛이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저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은 언니에게 닥치는 불행을 보며 감당하기 힘들다. 감정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동생은 언니에게 등신이라고 퍼부어보지만 정작 모르는 건 너라는 얘기가 돌아온다. 언니의 삶도 나의 삶도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서로가 모르는 것, 앞으로도 모를게 분명한 것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이상한 싸움이다. 내가 지닌 굴곡과 언니의 굴곡이 다르지만 어찌 잘 맞추면 평면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가족은 주는 상처와 위로를 만난다.

고백 p 113

셋이란 이런 거구나. 미주는 종종 자신이 주나와 진희의 특별한 관계에 딸린 부록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의 관계에는 미주가 개입할 수 없는 단단한 지점이 있었다. 그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진희는 자기야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렇잖아. 너희 둘은 허물이 없다고 해야 하나. 편해 보여. 내가 낄 수 없을 때가 있어."

진희의 커밍아웃

p 123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 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 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진희에 대해서, 진희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 미주는 대학에 와서야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었다. 겉으론 의연한 척하면서도 여렸던 그 애가 받았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미주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 애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했을지, 그때 자신과 나가했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였는지도, 미주는 그 사건으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다.

p 125

둘은 진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진희를 연상하게 하는 어떤 기억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이 둘만의 보이지 않는 계약이었다. 그 계약을 지킬 때에만 둘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희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은 없었다. '우리'라는 말에는 늘 진희가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결국 미주와 주나가 함께했던 시간은 없던 일이 됐다.

p 131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신에게 위로 받기보다 다만 한 사람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이 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만 같은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런 사람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을 느끼는 반면, 원래 없었던 것을 찾고 있었다는 깨달음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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