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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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 끌어안기엔 버겁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 이해의 폭은 턱없이 좁기만한 세계에서 타인을 향한 공감을 넓히며 공존하길 바라는 소설들이다. 극혐이라고 외면하다가도 마음을 여는 순간 나의 일이 되는 이야기들을 만나며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뒤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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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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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서로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동정과 연민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우리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완벽이 온다> 제목이 그야말로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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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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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인물들이 겪는 상황은 때로는 특수하다. 특수하지만 뉴스 같은 매체에서는 어쩌면 흔하기도 해서 이렇다 할 시선을 받지 못하며 구석자리에 놓여있다. 이 소설에서는 양육자가 없는 상태의 미성년자 아이들이 복지관의 도움으로 함께 생활하는 시설인 그룹홈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6살에 아버지와 건설 노동 현장의 컨테이너에서 기거하던 민서는 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술에 취한 아빠는 배우지 못하고 돈이 없으면,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살고 일해야 하고 더울 땐 가장 더운 곳에서 살고 일하게 된다는 것만 어린 딸에게 어렴풋이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부터는 아빠가 컨테이너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가 친권을 포기했다는 말과 함께 복지사의 손에 이끌려 그룸홈 생활을 시작하게 된 민서는 가족 아닌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지만 가족 같던 관계는 퇴소 후에 흩어진다. 흩어져 각자 자립해서 연락 없이 지내다가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가장 먼저이자 가장 마지막에 떠오르는 사람이 그룹홈 사람들이었다.

P 15

또래 알바들은 불편했다. 그들과 같이 웃어야 할 타이밍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다들 웃는데 나혼자 웃지 못하는 순간이 가장 난처했다. 생각하는 걸 다 말하는게 아니라고는 배웠지만 그다음은 익히지 못했다. 어른이 된다고 모르는 것들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룸홈은 1997년부터 서울시에서 도입한 복지제도이다. 보호가 필요한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가정보호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한 명의 관리인과 4~5명의 아이들이 가족처럼 살도록 한 제도인데 소설 속 인물 민서, 해서, 설이, 솔이는 그렇게 만났다. 넷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 6살에 보호소에 입소한 민서에겐 많은 경험들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휘력과 문해력이 떨어지는 학습경험 탓에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많은 것들과 달리 미술은 민서가 좋아할 수 있고 잘 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인 선택은 미술과 관련한 것들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소설의 저자는 1990년생으로 민서와 동일시되는 성장 시점을 가지고 있어서 이 소설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되어있을 민서를 생각해 보자면 딱 저자가 떠오르고 만다.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이 소설 [완벽이 온다]를 썼을 작가를 내 마음대로 민서와 동일시하며 상상하는 것이 큰 잘못은 아니기를 바라는 동시에 소설에 다 드러나지 않은 민서와 해서, 솔의 미래가 완벽이와 함께 밝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낯선 세상에 부딪혀 가며

자신만의 ‘완벽’을 찾아 분투하는

청춘의 이야기













사랑 받고 싶은 마음,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늘 남에게 내비치며 가족에 대한 결핍에서 벗어나고자 애쓴다.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은 채 홀로 버텨 보기도 하고, 완벽한 가족을 만들겠다며 끊임없이 연애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들의 결핍과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건 다름 아닌 이들 자신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솔에게 해서가 손을 내밀고, 여기에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힘겹게 이겨 낸 민서가 합류하면서 이들은 그룹홈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처럼, 아니 그보다 더 단단한 연대로 다시 뭉친다. 이들은 이제 곧 태어날 해서의 아이 '완벽이'를 다 함께 기다린다.

아빠, 엄마, 아이가 있는 완벽한 가족을 만들겠다며 해서가 지은 아이의 태명은 ‘완벽’이다. 결국 해서는 최초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어엿한 가족과 다름없다. 민서와 해서, 솔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되고, 새롭게 만들어진 대안 가족의 모습에 든든한 희망을 품게 된다.

18세가 되어 보호소에서 퇴소를 하고 나서 겪는 우여곡절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 매체에서 들어서 아는 정도다. (그들이라고 말하기가 부자연스럽지만 그들이라는 표현밖에 없었다. ) 그들이 사회에 나와 일자리를 구하고 월세든 전세든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과정에서 불안과 위험들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현실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거나 관심 밖이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알아챌 여지조차 없다. 그러한 사정을 알리고 알아가는 과정들에서 그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홀로서기는 낯선만큼 더 위함할 수 있기에 그룸홈에서든 밖에서든 멘티멘토 관계를 만들어 선배로서 조언해줄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대 관계가 마련되었다는 것도 들어서 아는 정도이며 실효성에 대해선 모른다.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여러 상황에 의한 청년 가장들은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어느 세대보다 독립이 힘들어진 청년 세대의 문제점들을 함께 보게 되는 소설이다.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이 겪은 불행을 끝내고 다시금 완벽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걸까? 무수히 깨지고 실수를 거듭하면서 알아가기엔 하나의 작은 사건이 미치는 영향만으로도 벅차다. 솔이가 그랬다.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바닥이 있더라... "라고.

P 198

그는 이미 낭떠러지에 서 있었고 그 일은 마지막 한 발을 떠민 것뿐이라고... 다 스러진 솔이 언니를 절벽 밑으로 떠민 건 무엇이었을까...


인물들이 서로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동정과 연민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우리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소설이다. 불안하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삶을 꾸려 가는 이 땅의 수많은 ‘민서’와 자립을 모색 중인 모든 이에게 이 작품은 찬란한 자기 성장기로 다가온다.

이 소설의 아이들에게서 버림받은 배신이라는 감정 뒤로 서서히 생겨난 연대에서 느끼는 책임감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연대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을 통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만나고 그 삶의 무게감을 함께 느껴본다. 나와는 전혀 개연성이 없이 시작한 이야기지만 중반이후 부터는 내 삶의 일부분이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하며 나역시 민서이고 해서이고 솔이였다. 살아가는 기술이 있다면 그 무엇보다 사랑을 주고 받는 방법에 서툰 그들과 나를 보게 된다.

출발 선상에서 이미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문서들이 당당한 홀로서기와 연대를 해가기를 바란다. 특수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긴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잘못은 될 수 없다. 또 누구든지 평범한 삶에서 회의를 느끼거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평범함인지를 더불어 알아야 하고 손잡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던 성장소설이었다.

그리고 완벽이 온다. 임신하고 미혼모가 된 해서의 뱃속 아이의 태명은 완벽한 가정을 주고 싶었던 해서의 마음을 담아 '완벽이'였다. 어려움을 통해 진짜 가족 이상이 되어버린 가족, 그들의 완벽을 희망으로 바라본다.





(창비 서포터즈로 도서만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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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유전자 - 풍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에드윈 게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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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총집합,

막힘없는 서사로 텍스트를 접하고 있는데

머릿속에선 다큐가 그려진다. .

인류 기원에서 출발해서

19세기의 모든 것을 눈앞에 펼쳐주는 책.

20,21세와의 연결성도 최고!

그 많은 사회 이론들도 모두 연결된다.

생생한 현장 속에 있는 것 같다.

인류의 혁명과 진화, 표현형을 비롯해

창조자가 된 인간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맬서스의 덫, 인구론

애덤스미스 국부론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찰스 다윈, 자연선택, 진화론, 총 균 쇠

세계를 먹여살린 발명들에 얽힌

인간의 대탈주를 1장으로 목격했다.

서사의 힘이 좋아서인지,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온 기분마저 든다.

이제 시작인가~~~~

시작에 불과하다~~~~

모든 고전의 배경이 되는 총체적 지식으로

고전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이 소환시킨 책들이 책장에 줄 서 있고,

이 책만으로도 매우 흐뭇하다.

우와~~

이건 지금까지의 내 독서의 계보이지 않나!

'창조적 유전자'라는 제목부터

내 취향이었지만

완독까지 쭉~ 이 시간이 보람 있다.

❤️ 완독 서평 전에 빨리 알리고 싶은 책!


에드윈 게일

현대사회에서 당뇨병이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 하던 중 우리의 몸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 유전자의 표현형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창조적 편 유전자는 자연선택에서 해방 돼야 풍요를 맞이한 인류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관해 흥미롭게 풀어낸 그의 첫 책이다. 인류는 식량 부족을 해결 했고, 감염병을 돌파 했으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했다. 이책은 변해 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깊이 있게 통찰 하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돌고 돌아 이 책에 도달했다. 연구하는 의사로서 제1형 및제2형 당뇨병이 왜 이토록 빠르게 증가하는지 의아했다. 질병이 왜달라져야 하지? 정답은 일단 알고 나자 당연해 보였다.

당뇨병이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들여다볼수록 우리가 변화중인 종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 머릿말에서




유전자는 집단이 되어 유전형 genotype을 형성하는데, 요한센은 특정 환경에서 유전형이 표출된 것을 표현형phenotype이라고 불렀다."



✔️ 표현형이란 개념을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에서도 만났었고,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기원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확장된 표현형>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는데, 기억하기로는 지금 이 책 <창조적 유전자>의 서사가 쉽고 명확해서 문과적인 내게는 더 도움이 되고 있다.


✔️ 웬만한 인류사보다 월등한 서술이라 와닿는다. 시대의 발명품, 에너지의 변천사를 따라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시대 속의 사회배경을 알게 되니 완전히 새롭게 읽히는 책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될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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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2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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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관련한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다른 책 속에서 수없이 만나고 있는 니체다. 이제 니체의 철학에 대한 것이나 니체의 유명한 말들은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그 깊은 심연을 이해하기란 턱없이 부족해서 늘 어렵기만 하다. 박찬국 교수님의 전작 <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를 통해 니체 철학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새로이 알게 된 의미들이 도움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니체와 관련된 책은 챙겨 읽어 갈 것 같다.


❤️ 이번 책을 통해 니체가 고전문학 교수였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었구나. 그리스 로마신화와, 일리아스, 그리스 비극이 어떻게 니체에게 녹아 있는지를 보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는 관점까지도 새로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정리를 잘 해주시면서 독자에게 닿게 해주시는 박찬국 교수님에게도 늘 감사하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니체

p 12~23

니체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다. 니체는 선하고 착한 인간이 아니라 강한 인간이 되라고 외친다. 니체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자신보다 동등하거나 이왕이면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과 겨루고 훌륭한 적수라면 기꺼이 존경을 표할 줄 아는 자들이다. 우위에 있는 자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한다면, 그런 질투와 시기심은 선한 것으로 '선의의 경쟁심'으로 본다.



서가 명강 시리즈 36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우리나라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 분야에서 권위적인 전문가라 할 수 있박찬국 교수님에게 듣는 니체, 그것도 예술과 관련한 명강을 들어본다. <비극의 탄생>의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니체가 처음이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다. 관념의 세계는 미묘한 말장난 같으면서도 매우 심오하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

니체는 학문보다는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을 통해 세계의 비밀이 드러난다고 본다. 세계 비밀은 세상을 눈앞에 세워 두고 그것을 관찰하는 학문적인 지성을 통해 파악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우리를 사로잡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 다는 것이다. p 53

니체의 삶과 사상에 대해 집중하기 보다 [ 비극의 탄생]에 초점을 두고 예술과 인간과의 유기적 관계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유기체다. 어느 날 들었던 노래 하나가 내 삶에 엄청난 위로를 줄 때가 있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심장에서 피가 빨리 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없던 기운이 넘치고 의욕이 살아나는 경험도 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을 깨우는 감각이었다.

"신은 죽었다."

신은 과학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신처럼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과학은 모든 것은 인과 법칙에 따라서 생성되고 소멸할 뿐 인간의 삶과 세계의 특별한 의미나 목적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과학은 오히려 우리를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목표도 없다고 보는 허무주의에 빠뜨리기 쉽다. 그래서 새로운 신화를 쓰고자 했던 니체는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썼다.

❤️ 인간의 감정, 비판 없이도 행해지는 사랑에 대한 감동과 경이를 예술과 문학에서 느끼지만 더 세밀한 감정을 전달받는 것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과 전혀 상관없이도 경이로움에 자주 닭살이 돋는 경험을 하는 것은 음악이다. 아름답고 다정한 음악이 살아있는 국가는 비관적일 수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트로트 장르의 쾌활함이 이끈 격동기도 있지 않던가. 그리고 지금도 세계가 함께 듣고 부르는 노래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떤 영향을 미친다.

미술이나 조각을 비롯한 다른 예술은 모두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내지만 음악은 아무런 형상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 우리를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음악이 아무런 형상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음악이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음악을 창조하고 음악에 그렇게 감동할 수 있는가?


니체가 영향받은 인물 /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가 보기에 당시의 고전문헌학자들이나 국가 권력과 종교 권력에 아부했던 철학자들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정신의 독재자였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되면서 전통적인 고전문헌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철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방향 선회가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니체 ( 1884 ~ 1900 )

니체 시대에 바그너의 음악이 건강한 생명력으로 넘치며 신화적인 예술을 이끌어냈다면 오늘날은 BTS를 비롯한 K-pop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가 다른 전 세계인을 하나로 연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니체가 지금 같은 모바일 시대에 살아있다면 '이럴 줄 알았노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고 믿고 싶다.



p 37

니체는 인간은 과학이 드러내는 세계에서 살 수 없고, 예술이 드러내는 신화적인 세계에서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보다 큰 건강과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는 오늘날 예술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신화를 창조하고, 신화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 참으로 강한 자는 변화와 갈등과 투쟁을 즐기는 자다.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한 디오니소스, 끊임없이 변화하는 다채로운 현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디오니소스의 우주적이고 충만한 생명력과 하나가 되어 춤추듯 유희하며 살 것을 니체는 권한다. 세계의 비밀은 음악으로 다가온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도 예술 원리는 각각 '꿈을 꾸려는 충동'과 '도취를 맛보고 싶은 충동'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충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음악을 들으면 왜 우리는 황홀해지는가.

세계의 비일 은 음악으로 다가온다.

음악에 도취할 때 우리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경험한다. 음악이 드러내는 세계는 심연의 세계다.

디오니소스 적 조치에 빠져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몸으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된다 이러한 조치에 빠질 때 우리는 아플 론 적인 질서와 차별의 세계가 사실은 디오니소스 적 세계를 은폐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1788~1860)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전개하는 음악에 대한 사상은 쇼펜하우어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근원적 일자에 대한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대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책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는 니힐리즘과 염세주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의 초점을 맞추어 니체 사상을 쇼펜하우어와 비교하면서 소개한다.

쇼펜하우어 세계 의지가 인간의 욕망에 결핍이 있을 때 나타나고 욕망은 절대 만족을 모르므로 충족돼 않는 욕망으로 인해 삶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에게 이상적인 인간은 자신의 무한하고 맹목적인 욕망을 이성을 통해서 부정하는 금욕주의적인 인간이다. 쇼펜하우어는 천박한 낙천주의 대신에 염세주의를 설파했으며, 인격신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맹목적인 의지라고 주장했다.

니체는 인간 역시 세계 의지처럼 발산하지 못하는 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니체에게 이상적인 인간은 카이사르나 나폴레옹같이 자신의 넘치는 힘을 절도 있게 발산하는 인간이다. 니체 철학에서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생명력으로 충만한 존재가 될 것을 가르친다. 니체는 비극이 주는 메시지를 생명력으로 승화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지적인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격신 따위의 허구적인 관념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내면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생존의지종족보존 의지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삶의 본질이 논리적으로 해명될 수 없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의지라고 여기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물론 니체는 의지는 생존이 아니라 힘을 추구한다고 본다. 의지는 자신을 고양하고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의지, 즉 힘을 향한 의지인 것이다. 니체는 당시의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노동하면서 도넛을 끊을 려는 찰나적인 쾌락과 낭만을 추구하는 절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봤다. 이러한 인간에 비하면 쇼펜하우어가 제시하고 있는 예술적인 인간 집 조형 예술을 통해 이 대화를 완료하거나 음악을 통해 세계 의지와 하나가 되는 인간이 훨씬 높은 차원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비극의 탄생]은 염색 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언제나 용솟음치는 힘에 의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힘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있고 둘 모두가 우리에게 내재해 있으며 자연스러운 충동으로 인해 우리가 고통을 받는다고 본다.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 자기 구원을 위한 창조 행위가 예술로 표현되며 아폴론적인 조형예술(조각, 미술, 문학)과 디오니소스적인 비조형예술(음악)으로 나눈다.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한

니체 그리고 히틀러

그들의 횡보는 너무나 다르지만 같은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니체가 찬사하던 바그너를 <이 사람을 보라>에서 나중에 비판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 중인 용병들도 있어서 니체가 걱정하던 바가 무엇인지 짐작해 본다.. 바그너의 이름이 이렇게 이용되는 것은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햏기 때문인데 히틀러가 세운 새로운 신화는 국가와 민족이었던 것이다.

힘을 향한 의지가 강한 인간만이

세계를 아름답게 본다.

니체

그리스 정신, 그리스 로마 신화 역시 창의력의 산물이고 그리스 신화는 인간에게 삶의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부여했습니다. 노예 상태가 된 근대인들에게 새로운 신화가 필요해진 것이죠. 그런 신화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하게 예술이라고 자유롭고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산토리를 튕기며 자신의 슬픔도 표현하고 기쁨도 표현하던 모습이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이었네요. 자기가 살고자 하는 대로 살았던 조르바의 몸부림이 초인적이었던 것이죠. 신도 지식도 아닌,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우뚝 선 조르바에게서 느낀 자유를 상기해 봅니다.

데미안, 싯다르타,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맥락으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고자 했던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었어요.

니체의 철학이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크고 현대에 적중했는지 점점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과학이 드러내는 세계에서 살 수 없고, 예술이 드러내는 신화적인 세계에서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보다 큰 건강과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는 오늘날 예술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신화를 창조하고, 신화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 P37

니체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다. 니체는 선하고 착한 인간이 아니라 강한 인간이 되라고 외친다. 니체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자신보다 동등하거나 이왕이면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과 겨루고 훌륭한 적수라면 기꺼이 존경을 표할 줄 아는 자들이다. 우위에 있는 자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한다면, 그런 질투와 시기심은 선한 것으로 ‘선의의 경쟁심‘으로 본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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