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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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지막을 드디어 읽었다.
애초에 10권 시리즈로 정하고 시작된 기획이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매년 한두권 출간할때마다 꼬박꼬박 구매하여 읽은 책이라 이 끝이 아쉽기만 하다.

복지국가로 선망시되는 스웨덴의 여러 일면을 알게 되었고, 집필연대가 1960, 70년대여서 꽤나 과거이기는 하지만 어느 국가라도 빛과 어둠은 가지고 있다는 점도 새삼 느꼈다.

첫 책 로재나를 읽을 때만 해도 어색한 이름들과 이제껏 읽은 범죄소설과는 다른 템포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데 장벽이 좀 있었던것 같은데,
이제 모든 등장인물들과 내적 친밀감이 쌓여 경찰을 떠나고, 죽음을 맞이하고 , 깜냥도 안되는 인간들이 고위층의 자리를 꿰차는 등 이런 것들에 꽤 많은 감정을 소모하게 되었다. 9번째 책에서 경찰을 그만둔 마르틴 베크의 동료인 콜베리의 자리가 몹시 그리웠다는 얘기다.(등장을 하긴 함) 살인수사과의 모든 팀원들이 진짜 한팀이 되어가고 있는 순간에 콜베리가 빠져있어서 더 그랬다.

또하나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우둔하고 오만한 지도층의 묘사를 무시무시할 정도로 신랄하게 하는것도 내내 그리울 것 같다. 멍청이 순찰조 이야기를 서로 쓰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런식의 비판을 매우 즐겼던 듯. ㅋ

평범하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가 나의 자리가 아니라 여기는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레베카 린드가 공감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복지국가라는 구색을 갖춘 스웨덴이 정작 근본적인 빈곤의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하는 지점에 레베카 린드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이 묘사로 사건이 해결되어도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런 날것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매력일 것.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가 마지막 권의 소재인데, 어쩌다 보니 지금의 이 나라에도 그런 테러가 자행되고 있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세상은 지독하게도 바뀌지 않는 구나 싶다.


- 브락센이 어느 때보다 심하게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브락센이 말했다. "이런 일에 와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생각을 알 것 같았습니다." 마르틴 베크가 말했다.
"그게 문제요." 브락센이 말했다.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지지하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 91

- "콜베리."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난 그의 아내도 좋아요. 그리고 난 그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그는 경찰이라는 조직이 크게 두 부류의 시민들, 사회주의자들과 이 계급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판단했죠.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그만둔 거예요."
"나는 콜베리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좋은 경찰관이 남이 느껴야 할 죄책감을 대신 짊어지고 모두 그만둬버리면, 가장 어리석은 이들만 찌꺼기처럼 남을 테니까. 이건 우리가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는 문제지만요." - 280

- 만약 누가 마르틴 베크에게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순서대로 꼽아서 '체계적 사고, 상식, 성실성'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 314

- "어떤 여자가 총리를 총으로 쐈습니다." 마르틴 베크가 말했다. "여자는 리다르흘름쉬르칸 교회에 숨어 있었는데, 그곳을 수색하기로 되어 있던 보안 요원들이 실수로 놓쳤어요."
"내가 총리의 지지자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만, 이건 좀 무의미한 짓 같네요. 그쪽 사람들은 그와 똑 닮은 후보를 삼십 분 만에 찾아낼 텐데요." - 445

- "확실히 이겼군요." 콜베리가 이렇게 말한 뒤 마르틴 베크에게 너그럽게 덧붙였다. "괜히 그런 생각에 빠져 있진 말아. 폭력은 지난 십 년 동안 서구 사회 전체를 눈사태처럼 덮쳤어. 그 사태를 자네 혼자 막거나 방향을 틀 순 없어. 어떻게 해도 폭력은 증가할 거야. 자네 탓이 아니야."
"그럴까?"
모두 종이를 뒤집어서 새로 칸을 그리기 시작했다. 콜베리는 다 그리고 나서 마르틴 베크를 보며 말했다.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그게 다일까?"
"대충." 콜베리가 말했다. "내가 시작할 차례인가? 그러면 엑스로 하죠. 마르크스의 엑스.." - 554

2024. jan.

#테러리스트 #마이셰발 #페르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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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2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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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가 일으키는 혼돈.

아무도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기적인 사회의 단면을 극대화한 느낌이다.

어느 날 광장에 등장한 코뿔소는 시민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코뿔소의 잔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아 무수한 소문과 주장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단순히 동물원같은 곳에서 탈출한 코뿔소 몇마리가 아닌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으로 악화된다.

현실과 괴리된 채로 음모론을 주장하는 직장동료와 카페에서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논리학자 들이 등장하는데, 이건 부조리극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렇듯 다양한 화자 속에서 주인공인 베랑제는 세상과 섞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알콜의존증도 있는데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지만,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 코뿔소로 변해버리는 상황에서 베랑제는 끝끝내 세상의 최후의 인간으로 남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그 다짐이 성공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항하는 인간이 이전에는 사회와 어우러지지 못했던 인간이라는 지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2024. jan.

#코뿔소 #외젠이오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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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생각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천양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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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후회와 덧없음.

- 오늘따라
생각으로 찢는 것이
시의 마땅한 일이란 것을 절감하게 된다 - 시인의 말 중

<그때가 절정이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 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전문)

- 인생은 무슨 이유로
환상은 짧고 환멸은 긴지
모를 일이다 - 모를 일 중

- 가난한 백석에게
시인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백석은 말했다네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면 안 될까요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면 안 될까요 - 그러면 안 될까요 중

- 애매하고 모호한 것이
속수이며 무책인 것이
안절과 부절 사이에서 헤맬 때
심사하고 숙고한 단 하나의 진정한 시는
다른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뜨는 것
내일의 불확실한 그것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것
이 말들은 던져진 운명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 시작법 중

2024. jan.

#새벽에생각하다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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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좋은 사람
이다 치아키 지음, 송수영 옮김 / 이아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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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아기자기 예쁜 일러스트.

집을 좋아하는 5명의 집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만화.

금새 후루룩 읽을 수 있지만 여러번 다시 펼쳐봐도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을 그런 그림들.

시리즈로 나오거나 다른 컨셉으로 나온다면 좋겠다 싶은 책.

2024. jan.

#집이좋은사람 #이다치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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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 오늘의 젊은 작가 35
정지돈 지음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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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많은 부분 설명된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뭔가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그저 무표정의 등장인물들이 진지하게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익숙한 느낌 뭐지? 하고 생각하다 웹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생각났다.

의미가 있는 문장들이 수시로 튀어나오는데, 이야기 자체의 의미는 없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재미다.

정말이지 그렇다.

이래서 정지돈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 사람들은 생략을 어려움 없이 이해한다. 프랜은 반대였다. 아무것도 생략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생략해선 안된다. 아무것도 생략할 수 없다. - 14

- 가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몽상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 곧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선유도에서 난지 공원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탔고 UN 평화 공원 벤치에 앉아 인공 호수를 바라보며 새해 다짐 따위를 중얼거렸다. 두고 봐라. 내가 되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뭐가 되어야 할지 어떻게 되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18

- 지우는 이런 종류의 모든 유행이 한심했다. 4차 산업혁명, 통섭, 공유 경제, 가상 경제, 디지털, 미디어 철학, 기술 철학,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머니즘, 사이퍼펑크, 암호 화폐, 게임 이론...... 특히 실리콘밸리나 스타트업은 최악이고 유사한 측면에서 미디어 아트나 아트 테크니 하는 것들도 비호감이었다. 그런 것들은 눈속임에 불과했고 실체가 없었다. 변화, 새로움, 혁신은 언제나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곳에 진짜 변화는 없다. - 51

- 그러나 역시 문제는 대부분의 음모가 상상된다는 것이며 상상된 음모, 곧 음모론이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현실이 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 61

- 유진이 프랜에게 말했다. 뭘 받고 싶은지 프랜이 묻자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했다. 그때 생각하자...... 좋은 말이지만 프랜은 지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욕망은 달라질 거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변하고 약속이나 다짐, 상상이나 꿈은 헌책처럼 창고에 처박힐 것이다. 그러니 지금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구체적인 건 무엇이나 현실이니까. 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꿈속에 있다. - 70

- 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사소한 논쟁 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라졌으면 했다. - 71

- 생각이 범죄라면 진정한 범죄자는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 113

- 유치장 안에는 대령과 교사, 인턴으로 불리는 세 명의 사람이 있다. 한 철창에 정해진 인원은 넷인데 침대는 세 개다. 침대가 왜 세 개인지 아냐고 간수가 묻는다. 글쎄. 일종의 고문인가? 간수는 웃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유란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허용하면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 135

- 우울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은 미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 136

- 프랜은 생각했다.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절대 그 속사정을 알 수 없다고. 안다 해도 되돌리거나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인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그것이 때로 우리를 절망하게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작고 표면적인 일을 통제하고 실천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 거라고. - 148

-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논리적 오류가 진짜 오류나 실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게 언어의 본 모습, 진정한 내면 아닐까. 말은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의미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단지 말이 말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언어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언어는 분명 뭔가를 전달한다. 다만 나는 그것이 내용이나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 말이 뭔가 라팔리사드의 하나처럼 들린다면 그건 맞다. 물론 그렇다고 의미가 전달됐다는 건 아니다.) - 작가의 말 중

2024. jan.

#스크롤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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