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어둠의 속도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잔류인구를 읽고 홀딱 반한 작가. 엘리자베스 문의 소설.

진작에 사두었지만 아껴읽으려다 이제야 읽었는데
마음에 깊이 남는 이야기다.

고기능 자폐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초반에는 더디다라는 감각이 있긴한데 익숙해지면서 깊이 빠져들었다.
(고기능, 펑셔널이라는 단어가 늘 걸리는 용어라고 생각해왔는데, 고사양이라든가 하는 기계적 용어와 뉘앙스가 비슷해서였을까. 사람에게 사용되면 뭔가 비윤리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

흔히들 말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자폐인인 루는 지인인 자폐인들과는 다르게 비자폐인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배경안에서 사건들이 생겨난다.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에게 주어진 약간의 혜택?에 반발심을 갖는 사람들은 흔히 볼수 있다. 그 반발심의 근거가 어처구니 없음을 이해하는 상식이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피해의식들이 발언권을 쉽게 얻는 현실이 좀 짜증스럽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모자란 쓰레기들이 있기는 해도 세상의 선의는 아직도 제대로 기능하기도 하니까. 이 이야기는 어두운 전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더디다고만 느끼던 주인공 시점에 빠져들면서 세상을 보는 조금 다른 시선을 약간이나마 깨우치게 된 그런 독서.

아주 좋았다.

- 오늘의 주제는 사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직원들이었는데, 크렌쇼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은 대신 ‘(크렌쇼의) 비전을 가져야’했고, 다른 모든 일에 앞서 비전을 찾는 일에 줍중해야 했다. 비전에 맞지 않는 것들은...... 나쁘거나 의심의 대상이었다. 민주주의는 상관없었다. 우리의 일은 파티가 아니라 사업이었다. 크렌쇼가 여러번 한 말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사내에 ‘A부서’라고 알려진 올드린의 부서를 잘못된 경우의 예로 들었다. 올드린의 속이 뒤틀렸다. 입으로 신물이 올라왔다. A부서의 생산성은 탁월했다. A부서 덕분에 그의 이력서에는 칭찬이 줄지어 있었다. 어떻게 A부서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 27

- “누구에게든 치료받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은 아시뇨.” 땀이 갈빗대를 간질이며 흘러내렸다. “인권이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하겠군. 그리고 그렇다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할 문제겠네. 병든 상태를 선호하며--“
”그들은 병들어 있지 않습니다.“
”병들고 손상된 상태를 선호한다니 말이오. 치료받기보다 특별 대접 받기를 바라면서, 틀림없이 정서 불균형과 관계가 있을 거요. 계약 해지를 심각하게 고려할 근거가 되리라 생각하오. 다른 사람들이 바라 마지 않는 섬세한 작업을 맡고 있으니까 말이오.“ - 31

- 마침내 다시 생각하고 느낄 준비가 된다. 슬프다. 나는 슬픔을 느껴서는 안 된다. 나는 포넘 박사가 내게 했을 법한 말을 되뇐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보수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 살 집과 입을 옷이 있다. 드물게도 자가용을 운전할 자격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과 함께 차를 타거나 시끄럽고 번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운이 좋다.
그래도 슬프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는다. 같은 때 같은 말을 한다. 안녕하게요, 안녕. 잘 지내요, 괜찮아요, 잘 자요, 부탁합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아뇨, 사양할게요, 당장은 아니에요. 교통 법규를 지킨다. 규칙을 따른다. 아파트에 평범한 가구를 놓고, 내 별난 음악은 아주 조용히 틀거나 헤드폰으로 듣는다. 그래도 부족하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데도, 진짜 사람들은 내가 변화하기를, 그들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변화하기를 바란다. 내 머릿속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내 뇌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을 그렇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독립저그로 생활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살며. 그러나 나는 안전하지 않았다. - 63

- ”루, 페르소나를 꼭 정할 필요는 없어. 하루 동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루로 있는 것만도 충분히 힘들다. - 124

- ”빛의 속도는, 진공 상테에서 빛의 소도는 값이 있어요...... 그렇지만 어둠의 속도는......“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루시아가 말했다. ”그저 빛이 없는 곳일 뿐이지 - 부재에 붙인 명칭일 뿐이야.“
”저는...... 저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톰이 백미러를 살짝 보았다. 루의 얼굴은 조금 슬퍼 보였다. ”어둠이 얼마나 빠를지 생각해 봤어?“ 톰이 물었다. 루시아가 그에게 시선을 보냈으나 모르는 체했다. 루시아는 그가 루와 그의 단어 놀이에 빠질 때마다 걱정했지만, 톰은 딱히 해가 될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 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 130

- ”네 말로 설명하는 건 암기가 아니야. 그 온라인 교재를 나도 아는데...... 루, 너는 내 직업이 뭔지 물어본 적이 없구나.“
추운 날 문 손잡이에 손을 대는 듯한 충격이 온다. 그의 말대로다. 나는 톰의 직업을 물어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직업을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적이 없다. 루시아와는 병원에서 만났기 때문에, 그녀가 의사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톰은?
”직업이 뭔가요?“ 나는 이제야 묻는다.
”대학 교수야, 화학공학.“
”학생들을 가르치세요?“
”그래. 학부 수업 두 개와 대학원 수업 하나지. 화학공학도들은 유기화학을 필수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유기화학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학생들의 말이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어떻게 다른지도 말이야.“
”그래서- 제가 정말 이해한다고 생각하세요?“
”루, 네 머리잖니.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알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서요.“
”나도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되어서 이렇게 잘하는 사람을 지금껏 본적이 없어. 아이큐 검사는 받아 봤니?“ - 250

- 제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정말이지 강렬한 문장을 만난다. 나는 읽기를 멈추고 그 문장을 빤히 응시한다. ”본래, 생리적인 기능을 제외하자면, 인간의 뇌는 패턴을 분석하고 형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숨이 가슴에서 걸린다. 몸이 차가워졌다가 뜨거워진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인간의 뇌가 가진 본래적인 기능이라면, 나는 기형이 아니다. 정상이다. - 261

- ”루, 지금 허비한 시간 보충해.“ 크렌쇼 씨가 말하고, 문을 쾅 닫으며 나간다.
나는 스테이시 씨를 본다. 그가 고개를 흔든다. ”허, 저 인간 진짜 걸작이군요. 몇 년 전, 제가 고작 말단 순경일 때 꼭 저 자식 같은 경사가 있었는데, 천만다행히 시카고로 전근 갔죠. 에런데일 씨,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실 법도 한데요. 저 자식, 당신을 쫓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무척 열심히 일해요. 그는 왜 우리를 쫓아내고 싶어 할까요?“ 아니면 우리를 다른 누구로 만들고 싶어 하거나...... 나는 스테이시 씨에게 실험 조약에 대해 말할까 말까 생각한다.
”권력에 미친 개새끼죠. 저런 사람들은 언제나 남을 나쁘게, 자기를 좋게 보이게 하려고 혈안이에요. 당신은 여기서 맡은 일을 조용히, 아무문제없이 잘하고 있죠. 함부로 대해도 되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에게는 운 나쁘게도, 이번 일이 일어났죠.“
”저도 운이 좋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분이 더 나빠요.“
”아마 그러시겠죠. 하지만 보세요, 이렇게 되었으니 저 크렌쇼란 양반은 나와 맞서야 할 겁니다 - 자기 오만함이 경찰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 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 297

- ”이렇게 될 줄 예상했다면, 만약 내가 돈을 좀 더 잘 다루었다면.....“
”돈은 사람이지 물건이 아니에요. 아무도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고, 그러려고 시도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린다. ”루, 가끔은 네가 우리 중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아,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온갖 일을 겪게 되어 유감이야.“ - 321

- 책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 332

- ‘지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궁금하다. 부모님은 불황 초기의 경기 변동 때 실직했다. 어머니가 90년대 말에는 평생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삶은 변화구를 던진단다. 그래도 그 공을 잡는 게 네 역할이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 426

- 미래를 상상하려고 사면 - 남은 오늘, 내일, 다음 주, 여생 - 마치 내 눈의 동공을 들여다 볼 때 같다. 오직 암흑만이 나를 마주 본다. 빛이 속도를 높일 때, 어둠은 이미 빛이 도착할 때까지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채로 그곳에 있다.
무지는 지보다 먼저 도착한다. 미래는 현재보다 먼저 도착한다. 지금부터, 과거와 미래는 방향만 다를 뿐 같지만, 나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빛의 속도와 어둠의 속도가 같아지리라. - 474

2023. nov.

#어둠의속도 #엘리자베스문

[마이리뷰] 서머싯 몸 단편선 1

서머싯 몸 단편선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2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과거에 좋아하던 작가들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이젠 더이상 좋아하기 어려워진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서머싯 몸은 아직은 계속 읽고 싶은 작가 중 하나다.

불안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단편들.

-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의 표정에는 누구도 설명하지 못할 멸시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참 같잖고 가증스럽다는 투로 대꾸했다.
“당신 사내들! 이 추잡하고 더러운 돼지들! 당신들 모두 똑같아, 당신들 모두. 돼지들!돼지들!” - 77, 비

- 포요는 프랑스 상원 의원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이 었고 내 분수에는 차고도 넘치는 곳이라 가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워낙 좋았고, 여자에게 안된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걸 아직 모르는 새파란 나이였다. (첨언하자면, 남자들은 너무 나이가 들어서야 자기가 하는 말이 여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171, 점심

2023. aug.

#서머싯몸 #서머싯몸단편선1

[마이리뷰] 만남

만남 ㅣ 밀란 쿤데라 전집 14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비평집. 다양한 예술에 대한.
접점이 30프로 정도라서 크게 흥미롭지는 못했다. 그 점이 아쉽다.

- 내 성찰과의, 내 추억과의,
(실존적이고 미학적인) 내 오랜 주제와의,
오 오랜 사랑(라블레, 야나체크, 벨리니, 말라파르테......)과의
만남......

- 베이컨의 초상화는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한 개인은 여전히 그 자신으로 남아 있을까?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사랑하는 존재는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까? 소중한 얼굴이 질병 때문에, 광기 때문에, 증오 때문에, 죽음 때문에 멀어질 때, 얼마나 오랫동안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자아’가 더 이상 ‘자아’이기를 멈추는 경계는 어디인가? - 19

- 얼굴, 나는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인생이라는, ‘의미마 결핍된 이 우연성’의 삶을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다. - 33

2023. jul.

#만남 #밀란쿤데라

[마이리뷰]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엄청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기 보다는 평범한 회사원 스타일로 사건을 사부작? 해결하는 탐정.
사건도 끊임없이 들어온다기보다는 주변인들의 입소문으로 하나둘 늘어나는 스타일이어서 과연 생활이 되려나 싶은 소시민적 탐정.

가볍게 큰 스트레스 없이 술술 읽기 좋은 탐정물.

2023. jul.

#어제가없으면내일도없다 #미야베미유키

[마이리뷰] 집으로 가는 먼 길

집으로 가는 먼 길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안현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3년 7월

가마슈 경감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밉상으로 남아있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이번 편의 피너 모로, 클라라의 남편이다.
뒤늦은 아내의 성공에 질투 시기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시한부 별거를 시작했던 피터가 약속한 날짜가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아 시작되는 이야기.

뭘 굳이 찾나 싶은 생각이 들게 정안가는 캐릭터.
자신을 찾아 거창한 순례?를 하는 그의 궤적조차도 밉상이랄까...

그러나 이 시리즈의 분위기는 늘 좋았다.
사건이 시작되면 온 마을이 우르르 움직이는 점도 여전하고.
루스와 로사도 여전하고.

오랫만의 출간에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문장이 왜 죄다 도치인지.
제대로 문장이 안쓰여져 있나? 번역이 그런가?
초반에 그 사실이 거슬리기 시작하니 겉잡을 수 없이 그 도치 식의 문장만 맴돌았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 가마슈 경감, 퀘벡 경찰청 살인 수사과의 전 수장.
하지만 그는 또한 아르망이었다. 자신의 친구, 그런 삶에서, 그 모든 죽음에서 물러나기 위해 여기로 온 사람, 슬픔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그만 수집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평화로운 곳에서 자신의 짐들을 마주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짐들을 놓기 시작하려고.
자실들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 14

- 루스가 옳았다. 허세를 떨어 봤자 피터는 겁쟁이였다. 그리고 겁쟁이들은 거의 항상 쉬운 길을 택했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마법적인 열 번째 뮤즈보다 더 쉬울 게 뭐겠는가? 사이비가 제공한 게 그게 아닐까? 폭풍을 피할 은신처? 명확한 답. 아무 방해 없는 전진. - 382

2023. aug.

#집으로가는먼길 #루이즈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