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십 년 전 부터 완독해야지 마음먹었던 책이고, 매번 다른 이유로 7, 8 권 정도까지 읽다 다른 책들로 빠져버리곤 했는데,
올해는 진짜(라고 하지만.... 모르겠다) 완독해야지 싶은 토지.

1권만 한 5번째쯤 재독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어린 서희, 최 참판 댁의 위세 속에 가려진 최 씨 가문의 비극들, 평사리 주민들이 소개되고 있는 토지의 시작.

격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갈피를 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백성들도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 어찌어찌 생존하고 있는데,
명성황후의 죽음, 일본의 침탈 야욕, 주변국의 어수선함, 동학, 천주교도의 박해 등 온갖 사건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배경을 보다 보면 암울한 근현대사의 서막을 보는 기분.

- 여 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 서문 중

- 저주를 남기고 굶주려 죽은 과부와 그 자식들 원귀 때문에 최참판댁에 자손이 내리 귀하다는 이런 구전으로 하여 한시절 전까지만 하더라도 청빈한 선비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면 강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고래등 같은 최 참판댁 기와집을 외면했고 최씨네의 신도비에 침을 뱉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그 많은 재물을 쌓은 이면에는 죄악의 행위가 있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 287

2024. apr.

#토지 #1부1권 #박경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발표 단편과 에세이들.

에세이들을 통해 카버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된다.
글을 쓴다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 작가였는지, 그 열망이 와닿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생애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엮은 책을 읽다 말았는데, 그런 길고 긴 지루한 책보다 카버가 직접 쓴 에세이들을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레이먼드 카버라는 벽돌책을 다 읽게 될런지 그건 모르겠다.

- 일 분 정도 생각에 잠겼다가 공책을 펼치고 비어 있는 하얀 페이지 맨 위에 공허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라고 적었다. 마이어스는 그 글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맙소사, 완전히 쓰레기로군! - 불쏘시개 중

- 내게는 체호프의 단편에 나오는 문장 일부를 적은 3x5 카드가 있다. "...... 그리고 돌연 그에게 모든 게 명확해졌다." 나는 이 단어들에 경이로움과 가능성이 가득함을 발견한다. 나는 이 단어들이 보이는 단순명쾌함, 그리고 은연중에 내비치는 이후 벌어질 사건의 암시가 마음에 든다. 이 문장에는 또한 수수께끼도 담겨 있다. 이전까지는 무엇이 그렇게 불명확했다? 왜 이제는 그것이 명확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무엇보다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그러한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또렷한 안도감 그리고 기대를 느낀다. - 163

- "시간을 더 들였다면 훨씬 더 나은 글이 되었을 거야." 소설가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할지라도 여전히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는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만약 더 잘 쓸 수 있음에도 그렇게 쓰지 않았다면, 애초에 왜 쓴단 말인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과 그 노동의 증거가 아닌가. - 167

- 그러니까 교육을 받겠노라는 욕망과 함께, 내겐 글을 쓰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이 어찌나 강한지 '분별력'과 '차가운 현실' - 즉 내 삶의 '실체' - 이 계속해 나에게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이제는 꿈을 버리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계속해 글을 썼다. - 196

- 나는 좋은 단편이 보여주는 재빠른 도약을, 종종 첫 문장부터 시작되는 흥분을, 최상급 단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감정을 사랑한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앉은 자리에서 다 쓰고 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랑한다. (시처럼!) 이는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여서,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338


2024. mar.

#내가필요하면전화해 #레이먼드카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곱씹어 볼 문장이 넘쳐난다.
두 번 정도 되돌아 읽었지만, 아직도 시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겠기에, 틈틈이 다시 읽어볼 만하다.

-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 7

-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지만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모르는가. 왜 학교에서는 '슬픔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혼자 공부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런 벽에 부딪힌다. 예컨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뿐이다, 라는 벽. 내가 지금 아는 것은 지금 알 수 있는 것들뿐이어서, 내가 아는 슬픔은 내가 느낀 슬픔뿐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부딪힌 그 불가능의 자리에서 진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다. 이 분야의 열등생으로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펴내기도 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영원히 공부해야 한다. - 48

- 그러나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그 시인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강조하는 편이 옳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사 당사자가 자신의 고통을 '존재 일반'의 그것으로 규정한다 할지라도, 읽는 사람 쪽에서는 고통에도 성별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 67

-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아나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 132

2023. aug.

#인생의역사 #신형철 #공무도하가에서사랑의발명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지 스펙트럼
신시아 오직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민이라는 것이 남지 않은 사람들.
로사가 와 있는 곳에는 어떠한 연민도 남지 않았다.
마그다의 숄에 사로잡힌 채 남은 인생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로사.
그녀에게 고모의 삶을 살라고 다그치는 스텔라.

둘의 관계성과 입장이 충분히 이해돼서 그 상실감에 공감할 수 있다.

평범한 전차가 평범한 선로를 따라 바르샤바의 한 구역을 관통해 지나는데도, 그들이 몇 번씩이나 목격하던 유대인 구역의 비참함을 모두가 외면했듯, 위험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온 이들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부재와 상실을 핀트 나간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반복해서 일어난다.
그것이 세상이 무탈한 척 돌아가는 이치일까 생각한다.


- 내가 스스로를 가둔 이곳은 지옥이야. 한때 나는 최악은 그야말로 최악이니, 그 후로는 최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알겠구나. 최악이 지나갔어도 더 많은 최악이 있다는 것을. - 25

- "내가 거들지요." 노인이 말했다. 그는 신문을 내려놓고 엉킨 빨래 푸는 걸 도왔다. "생각해 보세요. 바르샤바에서 온 두 사람이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 만나다니. 1910년에 나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는 꿈도 못 꾸었다오."
"저의 바르샤바는 아저씨의 바르샤바와 달라요." 로사가 말했다. - 32

- 그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두려운 거요? 여기는 나치도 없고, 하다못해 큐클럭스클랜 단원들도 없어요. 대체 댁은 어떤 사람이기에 아직도 두려워하는 거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로사가 말을 받았다. "아저씨가 보고 계시잖아요. 39년 전에는 다른 사람이었지만요." - 33

- "바래다주리다."
"아니, 아니에요. 사람은 가끔 혼자 있을 필요가 있죠."
"너무 많이 혼자 있다는 건, 너무 생각이 많다는 거요."퍼스키가 말했다.
"삶이 없는 사람은," 로사가 대답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데서 사는 거죠. 가진 게 생각뿐이라면, 생각 속에서 사는 거고요." 로사가 대꾸했다.
"댁의 삶이 없다고?"
"도둑들이 빼앗아갔어요." - 45

- 질병, 질병이란다! 인도주의 맥락, 이건 무슨 뜻일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흥분. 그들의 입에 침이 고이고 있다. 미국에서 염증으로 피 흘리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니, 무슨 쓰레기 같은 소리인가. 그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단어 또한 생각해 보라.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 - 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를! - 59

- 내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가게를 열어 운영했을 때, 나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어 - 우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까지 하고 싶었지. 그런데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더구나. 그것이 놀랍기만 했어, 불과 얼마 전에 벌어졌던 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이 기억하지 못한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었어. 그러니까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들을 몰랐던 거야. - 104



2024. apr.

#숄 #신시아오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포칼립스 장르를 읽을 때마다 밀려드는 아득한 난감함이 있다.
이야기에 이입해 나라면 그 지난하고 고단한 여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높은 확률로 그냥 지레 포기하고 칩거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굳이 고난과 비이성과 상황에 의해 일깨워지는 야만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다행히도 이야기 속 세계는 끝간데까지 망가지진 않은 이성이 조금은 남아 있는 그런 세상이라 너무 괴롭지 않게 읽었다.

빨간 눈이 내리는 세상을 떠올리니 얼마 전 읽은 매니악에서의 핵실험 장면이 떠올랐고, 그 때 알게 된 실험지역 근처에 캠핑을 하던 사람들의 경험담이 떠오른다.
눈이 내린다고 생각해 신나하며 핵폭발 재를 만지고 먹어보고 했다던...
끔찍하다.

죽은 이 탄생보다 흔한 일이 되고 있다는 문장에 정작 다가오는 아포칼립스는 엄청난 재난, 위기가 아니라 더 이상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게 되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즈음 차이를 발견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되어 있었다. 그 해골은 죽은 후에도 남는 것이니, 사람이란 결국 해골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 11

- 그게 온다고 한다.
그 말이 정말 현실로 닥쳐올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간곡히 그 문장을 의심하고 싶어졌다. 아니,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떤 악마의 얼굴을 하고 찾아올까. 전쟁처럼 올까, 전염병처럼 올까. 혹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로 벌써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앉아 있었던 건 아닐까. - 23

- 혹시 그게 오려는 것일까. 그게 지금인 걸까. 저건 경고음일까, 예비음일까. 바라건대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못다 한 말과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많이 남아서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 - 60

- 인생이 한 권의 소설이라면 우리의 페이지는 작가의 말을 읽는 중일까, 아니면 쓰는 중일까. 작가의 말이 없는 소설은 작가의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가짜로 지어낸 소설의 첫 페이지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해 낸 작가의 마지막 페이지, 작가의 말이라는 진짜 속생각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 가는 거라고. 소설과 작가의 한 시절과 창작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끝 페이지.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우리의 페이지는 가장 솔직해야 하는 순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었다. - 151

2024. mar.

#날짜없음 #장은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