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 어쩌다 보니 17년차 마감노동자의 우당탕탕 쓰는 삶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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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는 의미로 새 책이 출간 될 때마다 찾아 읽는 작가다.

변하지 않고 좋은 글, 좋은 의견을 많이 말해주었으면하는 바램이 있다.

- 슬픈 얘기지만 글을 오래 써오며 익히는 테크닉이란,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망한 글을 대충 멀쩡해 보이게 버무리는 꼼수에 가깝다. - 7

- 길티플레저에 대해 써본다는 건 스스로에게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무언가를 놓기 어렵다고 할 때, 거기엔 정말 포기하기 어려운 취향이 있을 수도, 내 안의 어떤 병리적인 결핍과 욕망이 있을 수도, 나만의 독특한 사적 윤리관이 있을 수도 있다. 스스로 이것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높은 수준의 자기 이해를 가져야만, 앞으로 내가 무엇을 쓸지에 대해, 또 무엇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또 내가 실제로 어떤 의도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 자기 인식이 두터워질수록 관점은 더욱 명료해지고 내적 모순이 줄어들며 비로소 글쓰기는 세상과 관계 맺는 도구나 싸움의 무기가 될 수 있다. - 59

2023. dec.

#이토록귀찮은글쓰기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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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브 연락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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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외계인 구르브와 연락이 두절되어 구르브를 찾아 바르셀로나를 배회하는 외계인의 독백.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전 일종의 도시 에피소드로 시작한 이야기인데, 인류에 대한 통찰과 세계의 혼돈을 유쾌하게 그렸다.

다양한 형태로 변신이 가능한 이 외계인은 온갖 지구의 레퍼런스를 이용해 여러 인물로 변신하며 지구 생활을 이어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지구의 상식에 적응하는데 곤란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생활한다. 

결국 마주한 구르브는 심심하기만 한 원래의 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전하고 자기의 갈 길로 떠나고, 주인공은 또 지구에서 배회한다. 

인간을 조롱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롱의 대상을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낯선 작가지만 출간되어 있는 책은 여러 번 지나치며 봤었는데, 이런 유쾌한 작품을 읽고 나니 다른 작품들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아마 조만간 더 만나게 될 작가일듯 하다.

- 지구인들은 여러 범주로, 특히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 중 하나다. 내가 보는 부자와 빈자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이런 것 같다. 부자들은 그들이 가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손에 넣거나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돈을 내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돈을 낸다. 부자들이 향유하는 면세는 이전부터 내려오거나 최근에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거나 속임수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 똑같다. 한편 양자의 차이점은 통계로도 증명되는 모양이다. 부자들은 빈자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잘 산다. 부자들은 더 크고, 더 건강하고, 더 멋지고,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이국적인 곳을 여행하고, 더 좋은 교육을 받는다. 부자들은 덜 일하면서도 생활이 더 안락하고, 옷이 더 많고, 특히 여가 시간이 더 많다. 부자들은 집중적인 치료도 더 많이 받고, 몸을 치장하는 일이나 이미 지나간 일에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 27

-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는 방금 전에 쇼핑한 모든 물건을 분해한 다음,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홀가분하게 걷기 시작한다. - 35

- 내가 볼 때 지구인들은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 치중할 뿐 장기적인 안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을 자각하면 고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자기 잘못을 시정하려는 자는 거의 없다. - 62

2023. dec.

#구르브연락없다 #에두아르도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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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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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뗄 수 없는 세 명의 직업인의 단편적인 에세이 모음.

소설가와 디자이너, 마케터로 구성된 점이 책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전달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을 대상이 그저 독자인가 싶은 이야기들.

"분석이라기보다는 빠른 미디어의 시대에 가장 느린 미디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표면에 천천히 떠오른 질문들을 모은 것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많이 알게 되어버린 출판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랄까.

그럼에도 책을 쓰고, 만들고, 팔고, 사고, 읽기도 하는 이들의 책 사랑은 충분히 느껴진다.

- 책은 느린 매체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첨예한 생각들을 담는다. 첨예함은 때로 폭력적인 이들의 주의를 끌고 만다. - 47


- 문화계에 효율성이 더 필요한 경우도 분명 있겠지만 정부의 역할은 개입이나 통제가 아니라 큰 틀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문화계의 특성상 투입된 자원의 사용 결과가 곧바로 나오지는 않아도, 결과가 나올 때는 유무형의 결실이 폭발적이기 마련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튼튼한 토대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 80

- 버지니아 울프는 그래서 천사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했을까. 목을 졸랐다고 한다.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 목을. 아마 그래봐야 천사는 다음날 또 살아날 테지만 그때는 다시 목을 조르고, 또 썼을 것이다. - 148

- 출판계에 있는 친구들과 "이거 어차피 다 만든 사람이 사고, 쓴 사람이 사고, 산 사람이 만들고, 쓰는 거 아니냐고!"라면서 자주 눈물 섞인 웃음을 짓는 것이다. - 185


2024. jan.

#하필책이좋아서 #김동신 #신연선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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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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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지막을 드디어 읽었다.
애초에 10권 시리즈로 정하고 시작된 기획이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매년 한두권 출간할때마다 꼬박꼬박 구매하여 읽은 책이라 이 끝이 아쉽기만 하다.

복지국가로 선망시되는 스웨덴의 여러 일면을 알게 되었고, 집필연대가 1960, 70년대여서 꽤나 과거이기는 하지만 어느 국가라도 빛과 어둠은 가지고 있다는 점도 새삼 느꼈다.

첫 책 로재나를 읽을 때만 해도 어색한 이름들과 이제껏 읽은 범죄소설과는 다른 템포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데 장벽이 좀 있었던것 같은데,
이제 모든 등장인물들과 내적 친밀감이 쌓여 경찰을 떠나고, 죽음을 맞이하고 , 깜냥도 안되는 인간들이 고위층의 자리를 꿰차는 등 이런 것들에 꽤 많은 감정을 소모하게 되었다. 9번째 책에서 경찰을 그만둔 마르틴 베크의 동료인 콜베리의 자리가 몹시 그리웠다는 얘기다.(등장을 하긴 함) 살인수사과의 모든 팀원들이 진짜 한팀이 되어가고 있는 순간에 콜베리가 빠져있어서 더 그랬다.

또하나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우둔하고 오만한 지도층의 묘사를 무시무시할 정도로 신랄하게 하는것도 내내 그리울 것 같다. 멍청이 순찰조 이야기를 서로 쓰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런식의 비판을 매우 즐겼던 듯. ㅋ

평범하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가 나의 자리가 아니라 여기는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레베카 린드가 공감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복지국가라는 구색을 갖춘 스웨덴이 정작 근본적인 빈곤의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하는 지점에 레베카 린드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이 묘사로 사건이 해결되어도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런 날것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매력일 것.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가 마지막 권의 소재인데, 어쩌다 보니 지금의 이 나라에도 그런 테러가 자행되고 있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세상은 지독하게도 바뀌지 않는 구나 싶다.


- 브락센이 어느 때보다 심하게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브락센이 말했다. "이런 일에 와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생각을 알 것 같았습니다." 마르틴 베크가 말했다.
"그게 문제요." 브락센이 말했다.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지지하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 91

- "콜베리."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난 그의 아내도 좋아요. 그리고 난 그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그는 경찰이라는 조직이 크게 두 부류의 시민들, 사회주의자들과 이 계급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판단했죠.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그만둔 거예요."
"나는 콜베리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좋은 경찰관이 남이 느껴야 할 죄책감을 대신 짊어지고 모두 그만둬버리면, 가장 어리석은 이들만 찌꺼기처럼 남을 테니까. 이건 우리가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는 문제지만요." - 280

- 만약 누가 마르틴 베크에게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순서대로 꼽아서 '체계적 사고, 상식, 성실성'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 314

- "어떤 여자가 총리를 총으로 쐈습니다." 마르틴 베크가 말했다. "여자는 리다르흘름쉬르칸 교회에 숨어 있었는데, 그곳을 수색하기로 되어 있던 보안 요원들이 실수로 놓쳤어요."
"내가 총리의 지지자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만, 이건 좀 무의미한 짓 같네요. 그쪽 사람들은 그와 똑 닮은 후보를 삼십 분 만에 찾아낼 텐데요." - 445

- "확실히 이겼군요." 콜베리가 이렇게 말한 뒤 마르틴 베크에게 너그럽게 덧붙였다. "괜히 그런 생각에 빠져 있진 말아. 폭력은 지난 십 년 동안 서구 사회 전체를 눈사태처럼 덮쳤어. 그 사태를 자네 혼자 막거나 방향을 틀 순 없어. 어떻게 해도 폭력은 증가할 거야. 자네 탓이 아니야."
"그럴까?"
모두 종이를 뒤집어서 새로 칸을 그리기 시작했다. 콜베리는 다 그리고 나서 마르틴 베크를 보며 말했다.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그게 다일까?"
"대충." 콜베리가 말했다. "내가 시작할 차례인가? 그러면 엑스로 하죠. 마르크스의 엑스.." - 554

2024. jan.

#테러리스트 #마이셰발 #페르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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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2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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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가 일으키는 혼돈.

아무도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기적인 사회의 단면을 극대화한 느낌이다.

어느 날 광장에 등장한 코뿔소는 시민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코뿔소의 잔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아 무수한 소문과 주장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단순히 동물원같은 곳에서 탈출한 코뿔소 몇마리가 아닌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으로 악화된다.

현실과 괴리된 채로 음모론을 주장하는 직장동료와 카페에서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논리학자 들이 등장하는데, 이건 부조리극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렇듯 다양한 화자 속에서 주인공인 베랑제는 세상과 섞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알콜의존증도 있는데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지만,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 코뿔소로 변해버리는 상황에서 베랑제는 끝끝내 세상의 최후의 인간으로 남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그 다짐이 성공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항하는 인간이 이전에는 사회와 어우러지지 못했던 인간이라는 지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2024. jan.

#코뿔소 #외젠이오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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