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인주를 보았던 날 그녀는 방과 후의 텅 빈 운동장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인주는 열네 살이었고, 나중에 그림을 그리게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던 단거리 육상 선수였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대표로 소년체전에 나가 은메달을 받았다고 했다. 큰 키에 뚜렷하고 중성적인 이목구비의 인주는여러 아이들의 동경을 받았다. - P53

달리기를 시작했어. 라고 스물한 살의 내가 인주의 집 부엌에서 말했을 때 인주는 희미하게 웃었다. - P54

삶이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에 철저히 회유되고 협박당한 사람의 얼굴로 어머니는 작은 방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어머니의 살비늘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녀에게 삶이 폭력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녀는 어떤 희망에 그토록 교묘하게 회유당했을까. 가정의 평화, 아들들의 출세, 딸의 행복한 결혼. 오순도순한 노부부의 말년. 종내에는 무릎을 무너뜨려 계단조차 오르내릴 수 없게 만든 삶을 그녀는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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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령 그 여자의 삶을 왜곡한다 해서, 그 여자가 살았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관없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건 어떻게 되는 거죠?
이정희 씨 말대로 그 여자가 자살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 여자가자살하지 않았다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여자가 자살했다는 의견을 내가 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어차피 그 여자는 죽었고,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건 도대체 그런 궤변은! 무엇 때문에 당신은!
흥분하지 마시지요.

...

결코, 죽음 따위로 그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 민서는ㅇ자랄 것이고 언젠가 그 ㅈ댁을 읽을 것이다. 저 사람에게는 그런 일 따위는마무것도 아닌가? 진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 P34

긴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고, 공격적이면서도 침착했고, 확신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가 평생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무기이자 연장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세 치의 혀와 능란한 글. - P36

담배 연기가 그림에 밸까 봐, 이 안에서는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않았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는 변명하듯 말하고 인주의 그림들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는이발할 시기를 넘겼다. 반나마 희끗하게 센 머리털이 귀를 덮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는 인주를 사랑하고 있었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도. - P36

간혹 누군가가 다시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권고하면 무관심한 침묵으로 답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백지 앞에 앉는다는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를. 쓰레기 위에 덮인 눈 같은 생활의 고요가 물기와 썩은 고깃점들에 뒤범벅이 되는 순간의 예감을. - P40

분명한 건 하나뿐이다. 내 말들은 그의 말처럼 매끄럽지 않을 것이다. 견고하지 않을 것이다. 일사불란하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요약하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지마.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떨리는 입술을 닥쳐.
나는 더듬을지도 모른다.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내 말들로 그의 말에 부딪칠 거다. 부서질 거다. 부술 거다. 조각조각 부수고 부서질거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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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지금 내가 자네에게 말한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용기를 부채질하고 일깨워준다네. 아무리 어려운 모험일지라도 이 일에 도전해야겠다는 욕망으로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터질 것 같네. - P274

...나리께서 이곳을 떠나시자마자 저는 겁에 질려 제 영혼을 원하는 아무에게나 줘버릴 거라 생각하시고 제발 생각을 고쳐 잡수세요. - P274

하지만 욕심이 자루를 찢듯이, 제 희망이 저를 찢는 것 같습니다요. 

나리께서 그토록 약속해 주신 그 불행한 애물단지 섬이 드디어내 손에 들어온다는 희망으로 들떠 있었는데, 섬은 고사하고 오히려 지금 이런 인적 없는 외진 곳에 저를 혼자 내버리시겠다니 말씀입니다요. - P275

제가양치기였을 때 배운 바로는, 지금부터 동이 틀 때까지는 세 시간도 남지않았습니다요. 

큰곰자리의 주둥이가 머리 위에 있고 왼쪽 팔 선에 한밤중이 걸려 있는 걸 보니 말입니다요. - P275

돈키호테는 이 물과 무언가를 두들기며 나는 큰 소리에 놀란 로시난테를 진정시키며 조금씩 조금씩 집들이 있는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면서 자기 귀부인에게 이 무시무시한 여정과 시험에서 자신을 도와 달라고 온마음을 다해 빌었다. 내친김에 하느님에게도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부탁했다. 

산초는 주인 곁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목을 뗄 수 있는 한 최대로 빼고, 눈을 뜰 수 있는 한 최대로 크게 뜬 채 자기를 그토록 무섭게하고 긴장시켰던 것의 정체를 이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로시난태의 다리 사이로 앞을 내다보았다. - P285

그리고 앞으로 한 가지만 알아 두게. 나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좀 삼가 주고 참아 주었으면 하네. 여태까지 내가 읽은 수많은 기사 소설에서 자네가 내게 하듯이 주인에게 그토록 말을 많이 한 종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이것은 정말이지 자네와 나의 큰 실수라네. 

자네의 잘못은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의 실수는 좀 더 존경받을 짓을 못했다
는 것일세. - P287

...그의 귀부인 둘시네아에게 대신 전해 주어야 할 전갈과 소식을 되풀이해서 일러 주었다. 산초가 자기를 섬겨 준 대가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으니, 자기가 마을을 떠나오기 전에 유언장을 만들어 두었는데 거기에 그의 봉급과 관련한 모든 것이 지불되도록 해놓았으며, 봉사한 시간에 비례해서 사례금을 주도록 적어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그 위험에서 자기를 아무 탈도, 걱정도없이 꺼내 주신다면 약속한 섬은 틀림없이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초는 이 착한 주인의 말을 가슴 아프게 듣고 또다시 울었다. 그러면서 이번 모험이 어떻게 되든 결말을 볼 때까지 주인을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 P284

그렇다면요...... 산초가 대답했다.
하느님한테 모두 맡기고 운이 더 바람직한 길로 가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겠습니다요.

하느님의 뜻에 맡겨야지…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내가 원하고,
산초 자네가 필요로 하는 대로 되게 말일세. 그리고 사람이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 P303

「이발사 문제는 제게 맡겨 두십시요.」
산초가 말했다. 
나리가 하실 일은 왕이 되시는 것이며, 그래서 저를 백작으로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요

「그렇게 될 걸세」 돈키호테는 대답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다음 장에서 이야기할 것을 보았다. - P305

여태까지 몇 마리를 건네다 주었습니까?

내가 그걸 어찌알겠나?

제가 바로 이 점을 말씀드린 겁니다요. 잘 세시라고요. 맙소사, 이야기가 끝났네요. 더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요.

어째서 그런고? 
돈키호테가 물었다. 
강을 건넌 그 많은 양의 수를 알아야하는게 이 이야기의 그렇게 중요한 핵심인가? 수를 하나라도 틀리면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이나?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나리 
산초가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나리에게 양이 몇 마리나 건너갔느냐고 여쭙지 않았습니까요. 나리께서는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바로 그 순간에 앞으로 얘기하려던 것이 몽땅 제 기억에서 빠져나거 버렸거든요. 정말 훌륭하고 재미있는 얘기였는데 말씀입니다요. - P280

23-321
내가 늘 듣기로 산초여, 천한 인간들에게 잘해 주는 것은 바다에 물을 붓는 격이라 하더군.

자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텐데.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꾹 참고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아겠네. - P321

23-327
산초, 옛날의 편력 기사들은 모두가 아니 대부분이 위대한 시인이자 음악가였다는 걸 알아 두게나, 이 두 가지 능력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두 가지 천부적인 재능은 사랑에 빠진 기사들이 부속으로 지녀야 했던 것이었네.

 지난 세기 기사들의 노래는 아름답다기보다 그 정신이 더 좋았던 게 사실이지만. - P327

우연찮게 발견했던 금화 더미가 산초를 그렇게 욕심나게 한 것이다.

그 물건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산초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에, 

이 훌륭한 주인을 모시면서 겪어 온 담요로 헹가래 쳐진 사건도, 약물 먹고 토한 일도 말뚝 세례도 마부의 주먹질도, 자루를 잃어버린 일이나 외투를 빼앗긴 일도, 그리고 그토록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했던 일도 모두 보람 있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P329

여러분, 저의 엄청난 불행을 짧게나마 듣기를 원하신다면, 어떤 질문이나 행동으로도 저의 슬픈 이야기의 실을 끊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셔야합니다. 여러분이 이야기를 끊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제 얘기는 중단되고 말 것입니다. - P339

23-324쪽
산으로 들어간 돈키호테는 그곳이 자기가 찾던 모험에 적합한 장소인것 같아 흐뭇했다. 그와 유사한 고적하고 험준한 곳에서 편력 기사들에게일어났던 기막힌 사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사건들에 취해 황홀해하며 그것들을 생각하느라 다른 일은 아무것도 머리에 들일 겨를이 없었다.

산초 또한 안전한 장소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사제들로부터 빼앗아 먹고 남은 것들로 위를 채우는 일밖에는 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당나귀를 타는 식으로 한쪽으로 두 발을 모아 타고주인 뒤를 따라가면서 자루에서 먹을 것을 꺼내 배에 채워 넣었다. 그렇게 가노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때 산초가 눈을 들어 보니 주인이 멈추어 서서는 창끝으로 땅에 떨어저 있는 뭔지 모를 물건을 들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주인은 창끝에 물건을 걸어올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손가방 하나와 거기에 같이 묶여 있는 커다란 가방이었다. 둘 다 완전히 썩어 망가져 있었지만 꽤 무거운 터라 산초가 당나귀에서 내려 들어 주어야만 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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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2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난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네. 자네가 내게 그 맹세를 기억할 수 있도록 제때 일러 주지 않아 그 잘못으로 그 담요 소동도 일어난 것이 분명해. 앞으로는 나도 고치도록 하겠네. 기사도에는 무슨 일이든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말일세. - P262

그러자 잠시 후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으니, 산초 판사는 그 무시무시한모습에 완전히 기가 질려 사일열에 걸린 사람처럼 이빨이 서로 맞부딪칠정도로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체가 뚜렷해졌을 때는 떨림의 정도와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더 커졌다. - P264

기사 양반들, 아니 뭘 하는 분이시든지 간에 그 자리에 멈추시오. 그대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관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밝히시오. 보아하니 여러분들은 뭔가 무례한 짓을 했거나 혹은 무례한 짓을 당한 것 같소. 여러분들이 나쁜 짓을 했다면 벌을 주고 모욕을 받았다면 복수를 해드려야 하니, 나는 내막을 알 필요가 있고 마땅히 알아야 하오. - P265

돈키호테는 몰라도 산초의 용기는 이미 바닥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주인에게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이 순간 이 광경이 자기가 책에서 읽은 모험 중 하나로 상상 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던 것이다. - P264

하느님이 나의 수고를 덜어 주시는군, 누군가 그를 죽였다면 마땅히 내가 복수를 해야 하는데, 죽여야 할분이 죽이신 것이니 잠자코 어깨나 한번 으쓱하는 수밖에. 나를 죽여도그럴 수밖에 없듯이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알아 두었으면 하는 건,  나는라만차의기사 돈키호테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애꾸눈을 바로잡고 모욕을 쳐부수는 일이 나의 수행이자 직업이라는 거요. - P267

모든 일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오.
돈키호테가 말했다.
잘못은, 알론소 로페스 학사, 당신들이 한밤중에 흰 셔츠 차림에 횃불을 들고 기도문을 외면서, 게다가 시커먼 상복까지 입고 왔다는 데 있소. 그모습이 얼마나 불길했는지 내겐 바로 저세상에서 온 것들 같았다오.그러니 당신들을 공격하여 내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소. 당신들이 지옥에서 온 끔찍한 사건들이었다 해도 나는 공격했을 것이오. 사실 나는 당신들을 그렇게 생각했고 줄곧 그렇게 믿고 있었소. - P268

이리하여 학사가 떠나자. 돈키호테는 대체 어떤 연유로 자기를 <슬픈몰골의 기사>라고 했는지 산초에게 물었다.
「이유를 말씀드립죠」 산초가 대답했다. 「제가 그 불쌍한 사람이 들고있던 횃불에 잠깐 나리 얼굴을 보았더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슬픈 얼굴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요. 아마 이번 싸움으로 피로하신 탓이거나 아니면 앞니와 어금니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 같습니다요」 - P268

내가 말한 그 현자가 자네의 혀와 생각으로 하여금 나를 <슬픈 몰골의 기사>라고 부르도록 한 것이라면, 지금부터 나를 그렇게 부를 생각이네. 그리고 이 이름이 내게 더 어울리도록 기회가 닿는 대로 내 방패에 아주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나 그려 넣게 해야겠네. - P269

하지만 나도 알고 있소. 좋게 할 수 있는 일을 나쁜 방법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신중함의 한 요소라는 것을 말이오. - P316

당나귀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자기 귀를 때리던 돌팔매의 폭풍이 아직 그치지 않은 줄 알고 이따금씩 귀를 흔들고 있었다. 

로시난테는 주인 옆에 뻗어 있었다. 
로시난테 역시 돌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산초는 속옷 바람으로 성스러운 형제단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돈키호테는 자기가 그렇게 잘해주사람들에게 이런 지독한 변을 당해 우거지상이 되어 있었다. - P320

 그는 산초의 말대로 잿빛 당나귀를 타고 있었는데, 이것이 돈키호테의 눈에는 얼룩이 있는검은 말을 타고 황금 투구를 쓴 기사로 보였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보는것마다 모두 자기가 읽은 허황된 기사도 이야기와 불행한 망상에 아주쉽게 갖다 붙였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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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만일 이러한 고생들이 기사도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ㅡ이건 생각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ㅡ아마 나는 분통이 터져 이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걸세. - P222

15장
만일 그 위급한 순간에 그의 친구인 현자가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 가련한 기사는 못 볼꼴을 당했을 거라는 말이네. 그 정도니 나야 지금은 좋은 사람들 틈에서 잘 지내고 있는 셈이지. 그 기사들이 받은 모욕은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니 말이야. - P223

15장
두들겨 맞은 게 너무 아파서 매질은 제 등판만이 아니라 기억에도 확실하게 새겨질 겁니다요
...
세월과 함께 잊히지 않는 기억은 없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는 걸세.

아이고, 그렇게 불행할 수가!
판사가 대답했다.

기억이 잊히도록 세월을 기다려야 하고 고통을 끝내 주는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니 말입니다요. 우리의 이 불행이 고약 두어 개로 나올 만한 것이라면 그렇게 나쁠 것도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의원에 있는 고약을 다 써도 이 불행을 제대로잡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요.」 - P224

「운이라는 것은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문을 항상 열어 놓지. 불행을해결하라고 말일세」

 돈키호테가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못난 짐승이 지금 로시난테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 내 상처를치료할 어느 성으로 나를 태워 가도록 말일세. 더군다나 나는 이런 짐승을 타고 가는 것을 불명예로 여기지 않을 걸세. - P224

그러고는 서른 번의 <아이고>와, 예순 번의 한숨과 자기를 이런 곳에 데리고 온 사람에 대한 백스무 번의 저주와 욕을 내뱉으면서 일어났지만,
몸을 곧게 펼 수가 없어서 마치 터키의 활처럼 등을 구부정하게 굽힌채로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자기 당나귀에 안장을 얹었다. 당나귀는 그날 자유롭게 딴 데 정신을 팔고 실컷 나돌았던 터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로시난테를 일으켰는데, 말에게 만일 혀가 있었더라면 산초나 주인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투덜댔을 것이다.

결국 산초는 돈키호테를 당나귀 위에 얹고 로시난테는 그 뒤에 밧줄로 묶은 뒤 당나귀의 고삐를 잡고 큰길이 나올 만한 곳으로 얼마쯤 걸어갔다. 행운이 따랐는지 얼마 걷지도 않았을 때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산초는길가에서 객줏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산초에게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돈키호테에 따르면 그것은 성이어야만 했다. 

산초는 객줏집이라고 고집을피웠고, 주인은 그게 아니라 성이라고 고집을 피웠다. 서로의 주장이 끝장을 보기 전에 그들은 그곳에 도착했다. 산초는 더 알아볼 필요도 없이 당나귀와 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 P226

그렇다면, 여기가 객줏집이란 말인가?
돈키호테가 물었다.
아주 평판이 좋은 객줏집이죠.
주인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속고 있었군!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나는 정말 그리나쁘지 않은 성인 줄 알고 있었소.
그러나 성이 아니고 객줏집이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계산에 대해서 눈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이오. 나는 편력 기사의 법도를 어길 수가 없소. - P244

이에 산초는 자기 주인이 받은 기사의 법도를 걸고 설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일전 한 푼 지불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편력 기사들의 훌륭한 관습이 자기로 인해 훼손되어서는 안 되며, 앞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편력 기사들의 종자들이 이런 정의로운 법도를 깼다고 자기를 비난하면서 원망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 P245

17-247
나리께서는 제가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잊으셨나요? 아니면 지난밤에 토하다 남은 내장까지 토하란 말씀이십니까요? 나리의 그 약물은 악마놈들을 위해 간직하시고 저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물을 입에 댔는데 첫 모금으로 그것이 그냥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포도주를 다 마시자 산초는 당나귀에게 발길질을 해 활짝 열린 객줏집문을 나섰다. 그는 자기 뜻대로 일전 한 푼 지불하지 않게 된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비록 늘 그러하듯 자기 등짝의 희생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객줏집 주인은 받아야 할 돈 대신 그의 자루를 챙긴 터였지만 산초는 정신없이 나가는 바람에 그것이 없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 P247

18-249쪽
저를 갖고 장난친 놈들은 나리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유령도 아니고 마법에 걸린 인간도 아닙니다요. 저희들과 똑같이 살과 뼈로 된 인간들입니다요.

...

 그러니 나리, 나리께서 담을 넘지도 못하시고 말에서 내리지도 못하신 것은 마법 때문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거죠. 

이 모든 일에서 제가 분명하게 얻은 결론은요, 우리는 우리가 찾아다니는 모험들 때문에 결국 어느 쪽이 오른쪽 다리인지도 모를 만큼 수많은 불행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요. 저의 변변치 못한 이해력으로 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옳고 잘하는 일인것 같습니다요. 때마침 추수이고 농사도 바쁠 테니까. 사람들이 말하듯이 여기저기 광장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요.
- P249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저것은 분명 두 군대가 광활한 들판 한가운데서 서로 맞붙어 싸우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때고 어느 순간이고, 기사 소설에 나오는 전투며 마법이며 사건이며 황당무계한 일이며 연애 사건이며 도전이며 하는 환상으로 그의 머리는 가득 차 있었으니, 그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모두 그런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었다.

사실그가 본 모래 먼지는 그 길을 향해 서로 다른 쪽에서 마주 오고 있던 수많은 양 떼 두 무리가 일으킨 것으로, 먼지 때문에 가까이 올 때까지는 양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P251

18-255쪽나리, 제 눈에 악마가 씌었는지 들판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리께서 말하신 거인이나 기사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요. 아마도 어젯밤의 유령처럼 마법에 걸려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요.
...

자네 귀에는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양들이 요란하게 울어 대는 소리 말고 다른 것은 들리지 않는뎁쇼.
...

자네의 두려움이………
돈키호테가 말했다.
자네로 하여금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는 걸세. 두려움이 미치는 영향 중에는 모든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있다네. - P255

18-257쪽
그게 아니라면 산초여, 제발 한번 당나귀를 타고저 놈들의 뒤를 눈치 못 채게 쫓아가 보게. 그러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제대로 알 수 있을 테니 말일세. 조금만 가다 보면 그놈들이 어떻게 양의 모습에서 내가 자네에게 묘사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지를 보게 될걸세. 하지만 지금은 가지 말게. 자네의 시중과 도움이 필요하니까 말일세. 내게 와서 내 앞니와 어금니가 몇 개나 빠져나갔는지 봐주게. 입안에 한개도 안 남은 것 같군.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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