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쪽 우리는 총포상의 인사를 받기도 하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기도 하고, 기름이나 커피가 떨어졌다는 프랑수아즈의 말을 지나는 길에 테오도르에게 전하기도 하면서, 스완 씨네 정원의 하얀 울타리를 따라난 길을 지나 마을 밖으로 나갔다. - P239
240쪽 나는 꽃들의 나긋나긋한 허리를 껴안고 향기로운 별 모양 곱슬머리를 끌어당기고 싶었지만, 이런 내 욕망에도 아랑곳없이 가족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 P240
244쪽 이에 비하면 몇 주 후에 작은 바람의 숨결에도 날아가 버릴 단색 붉은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햇빛 아래서 이 시골길을 기어 올라갈 들장미는 얼마나 순진한 농부 아가씨같아 보일까! ...
울타리 뒤쪽 들판을 향해 가파르게 난 비탈길로 올라가서는, 홀로길을 잃은 개양귀비 꽃 몇 송이와 게으르게 여기저기 뒤처진수레국화 몇 송이를 쫓아다녔다. - P244
245쪽 꽃이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은 내게서 떨어져 나가 꽃에 가서 들러붙으려 했지만 헛수고였고, 그리하여 그 감정은 여전히 모호하고 막연한 채로 남아 있었다. 산사 꽃들은 내가 느낀감정을 해명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 P245
248쪽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모습이 단지 우리 시선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깊은 지각을 요하면서 우리 존재 전부를 사로잡은 것이다.
붉은빛 도는 금발머리 소녀가 지금 막 산책에서 돌아온 길인 듯 손에 정원용 삽을 들고 분홍색 주근깨투성이 얼굴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당시에는 어떤 강렬한 인상을 객관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 후에도 배운 적이 없었으며, 또는 눈 빛깔에 대한 개념을 추출하기에도 충분한 ‘관찰력‘이 없었으므로 오랫동안 그녀를 생각할 때면 그 눈의 광채에 대한 추억은, 그녀 머리가 금발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선명한 하늘광채로 떠올랐다. - P248
250쪽 이렇게 해서 질베르트의 이름이 내 곁을 지나갔다.
그 이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불확실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것에 사람의 모습을 부여하여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되찾게 해 줄 부적처럼 주어졌다. 그리하여 재스민과 비단향꽃무위에서 발음된 그 이름은... · - P250
253쪽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 이름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으므로, 내가 질베르트와너무 멀리 떨어져 유배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그녀와 그녀 가족에 근접한 주제로 부모님을 이끌어 가곤 했다. 가령 갑자기 우리 할아버지 직책이 할아버지 선대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믿는 체하면서, 또는 레오니 아주머니가 보고 싶어 하는분홍빛 산사나무 울타리가 마을 공유지에 있다고 하면서, 아버지로 하여금 내 주장을 정정하게 하여 내 뜻이 아닌데도 아버지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했다. · - P253
254쪽· 그 이름은 언제나 그것이 쓰인자리에 놓여서 나를 숨 막히게 했는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이름이 다른 어떤 이름보다 가득 차 보였던 것이다. 마음속에서 미리 수없이 발음할 때마다 그 무게가 더해 갔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내게 기쁨을 주었지만, 그 기쁨을 감히 부모님에게 요구했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기쁨은 아주 강렬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 기쁨을 내게 주려고 그분들과는아무 상관도 없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일로 많은 수고를 해야 했다. · - P254
256쪽 또 그바람이 그녀 곁을 지나왔으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메시지를 속삭인다는 생각이 들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그 바람에 입맞춤을 하였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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