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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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꽃은 알고 있다>. 그동안 법의학, 병리학, 고고학 등 수많은 학문들의 이름을 들어왔지만 '법의생태학'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학문 이름이었다. 식물학자, 화분학자, 고고학자인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배우고 연구했던 학문들을 활용해 지난 25년간 300건이상의 까다로운 범죄 사건을 해결해 온, 법의생태학의 선구주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유년시절과 성장기, 작가가 맡은 사건들과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지루하지 않게 묶어 서술하고 있다. 꽃가루와 포자, 균류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디자인이 책의 내용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포들을 표지의 일러스트를 생각하며 상상했기 때문이다. 책은 총 14개의 목차로 나누어져 있는데, 과거 -> 미래로 가는 서술이 아니다. 오히려 왔다 갔다(?)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내용이 끊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전문 용어가 많이 나와 이 분야(식물학, 법의학 등)에 생소한 사람들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지만 전문 용어의 어려움보다는 '이렇게 범인을 밝혀낼 수 있다고?',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란 호기심 어린 생각이 더 크게 와닿아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 본 투 비 문과 감성인 나도 이렇게 흥미롭게 읽었으니, 계열을 아우르고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현실에서도 자주 듣고 접하는 것 중 하나다. 미해결 사건의 범죄자를 추적하는 프로나, 범죄 관련 드라마와 영화 등은 마니아층이 있을 만큼 인기를 끄는 주제다. <꽃은 알고 있다>는 해결되지 않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법의생태학이 어떻게 실제 범죄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용의자 중 범죄자를 가려내야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범죄자가 사건을 부정할 때도 쓰일 수 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범죄 흔적을 지우려 애쓴들, 자연과 접촉한 흔적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의 저저자인 퍼트리샤 ̜윌트셔는 흙과 주변의 식물들, 균들을 이용해 범인을 잡아낸다. 이런 방법은 대단히 생소해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주 오래전, 자동차가 아닌 말이 끄는 마차가 이동 수단이었던 시절의 말의 똥 가루까지 땅속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 범죄를 밝혀낼 수 있는 주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법이 실제 범죄 현장에 사용되기까진 수많은 불신의 시선과, 법의생태학을 잘 알지 못하는 경찰과 과학 수사원들이 섣불리 훼손한 환경 등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다. '퍼트리샤 윌트셔'는 이 어려움 속에서도 놀라 우리 만한 성과를 보여주며 법의생태학의 선구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도시 외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병약한 아이였기에 어린 시절 학교 대신 집에서 혼자 백과사전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고, 할머니와 함께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 생활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 점은 그녀가 자연과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살아온 생활 지식과 함께 살아가며 배운 고고학, 식물학, 법의학과 같은 수많은 학문들은 결국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책은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다. 왜 이런 일으 하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선 그녀의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법의생태학이 단순히 하나의 학문이 아닌 다양한 학문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학문이라는 점도 그녀가 연구하고, 공부했던 과정을 알아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녀에게 배운 삶의 태도는, 오히려 나와 반대의 성향이라 얻은 것이 많았다. 때론 너무 섬세한 묘사(시체의 상태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한다)에 읽기가 힘들어 잠시 숨을 고르고 읽어야 했지만, 누군가에게 얻은 표본으로 결국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단순히 징그럽다는 말로 폄하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았다. '시체 농장'에 관한 부분에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게 아닌가 싶은 의문도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없어선 안된다고 느꼈다. 내가 그 일을 하기엔 놀라울 만큼 비위가 약해 힘들겠지만 말이다..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작고 가녀린 여성의 몸으로 이 길을 개척하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전공과 관련한 그녀의 놀라운 집중력과 학구열이 있었기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흥미를 느끼는 것에 열성적적이고, 꼼꼼한 완벽주의자 적인 면모는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데 완벽히 걸맞다. 허상을 믿지 않고 사실만을 생각하는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극히 이상주의자인 나와 전혀 다른 면이다. 특히 '죽음'에 관한 두려움 또는 열망에 개의치 않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죽음은 결국 모든 이인간이 수행하는 과정 중 하나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남은 육신은 균들, 동물들로 인해 분해되고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논리는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라 과거와 미래 어디쯤에 사는 나를 현실로 다시 데려와줬다. 


 마지막으로, <꽃은 알고 있다>의 가치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한 '법의생태학'으로 미해결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알ˠ려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에는 유독 강간, 여성을 타깃으로 한 성범죄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다. 한국 또한 이와 같은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무물론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가 된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선 이런 범죄를 신속히 해결한 후 빠른 처벌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현재까지 증거불충분으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너무 많다. 이들을 바로 이 책에서 처리하는 방법인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도입한 법의생태학으로 식물이 남긴 꽃가루와 포자, 균들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빨리 한국에서도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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