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버스가 끽 멈추었다. 몸이 엿가락처럼 앞으로 접혀졌는데 반사로 올라옴과 동시에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버스가 급정차를 하던 말던 도로 한가운데로 유유히 가고 있는 노인...리어카를 끌고 한 쪽 다리는 절룩거리면서 질질 끌고 가는 노인. 내가 알던 할머니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설때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로 나올때에도 제일 먼저 인사를 했던 할머니가 있었다. 자그만한 슈퍼에서 나오는 폐지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급성장염으로 아이들 복음병원에 입원시킨 그날. 난 궁금해 했던 폐지 줍던 할머니를 만났다. 반가이 인사하고 어떻게 된 일이시냐고 하니 관절로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랬었구나! 누가 간호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들리는 소문을 생각했다. 하나 있는 딸이 있다고 하는데 그 딸이 간호를 하고 있구나! 그 날 난 그렇게 생각하며 내 관심을 오로지 나의 자식들한테만 쏟았었다.
어느 날 슈퍼 옆에는 또 다른 노인이 진을 쳤다. 골목 곳곳에 폐지를 쌓아 놓고, 누가 필요해서 박스라고 하나 가져 갈라치면 난리를 치는 한마디로 말해서 앙칼진 할머니가 말이다. 무게를 좀 더 나갈려고 한다면서 박스 사이사이에 물을 치며 앉아 계시면서 산더미처럼 쌓인 리어카를 갸날픈 몸으로 끌고 가는 그 할머니에게도 난 또 다른 연민이 쏟아 올랐다. 그러나 종종 옛날 너무 착하신 옛날 할머니가 궁금했는데. 아니 그리웠는데. 옛날 할머니는 돌아 올려고 해도 자리를 빼앗겨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리세를 내는 것도 아니고 앉으면 그만인 그 자리를 말이다. 지금의 할머니였으면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서라도 다시 차지했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 노인을 도로 한 복판에서 만난 아침은 읽고 있던 책을 덮게 했다. 모두 다 출근한 도로의 한산함과 더불어 어젯밤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노인들로 인하여 그네 타던 18세 젊은이도. 놀이터의 주인공인 유치원생도 도망가 버린 놀이터를 장악한 노인들....잠깐 스쳐 지난 책속의 그 노인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내가 자칫하면 사고가 날 뻔한 저 할머니를 불쌍하게 여겨서일까? 버스 운전기사의 욕에도 눈길 한 번 줄수 없는 저 할머니를 말이다. 가슴이 많이 아려왔다.
버스가 출발하자 도로 양 옆으로 은행잎이 눈 송이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잠깐 또 가자 휘날리고 있는 은행잎과는 대조적으로 새파란 이파리들이 나뭇가지에 꽉 붙어 있었다. 떨어지는 이파리와 싱싱하게 붙어 있는 잎에서 난 오늘의 낙엽은 참으로 슬프다고 중얼거렸다. 이제 곧 추워진다. 내가 펄펄 끓는 이불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저 분은 어떨까? 모두들 불경기라고 아우성 치는데 동사무소에서는 저 분에게 기름 한 톨이라고 나누어 주고 있는지..............못사는 동네에서 살아서 그런지 나도 살기가 힘든데 왜 자꾸 저런 모습들이 눈에 띄는지.......맛있는 정식집에서 점심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운전기사의 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쪽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할머니가 사라질줄 몰랐다..........
지겨워! 지겨워!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줄 형편도 못되는데 자꾸 왜 내 눈에 띄는거야. 무스탕 두르고 탱탱거리고 사는 사람들 눈에나 띌 것이지...............한 솥 앉힌 김치찌개의 냄새가 가게까지 풍겨온다. 돼지 뒷다리살 남은 거랑 신김치를 넣어서 한 솥 끓이고 있다. 이 집 저 집 냄비만 들고 오라고 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