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민주주의 잔혹사 - 한국 현대사의 가려진 이름들
홍석률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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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유명 역사 강사의 강의 캡처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링크). 수능에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등장한 것에 불만을 토로한 수험생들의 반응을 전하며, 진정 역사에서 ‘중요한’, 또는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누구인지를 되묻는 내용이다. 비록 그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한국사 강의를 주업으로 하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시험에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수험생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새겨진 이름들을 ‘지나칠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는 현실은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무시당하고 말 이름일지언정 역사에 남게 된다는 것은, 그것도 한 사람, 또는 그 시절의 단체명이나 사건, 운동 등의 이름이 오롯이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름 한 번 불리지 못하고 사라져 간 많은 이들의 삶이 역사책에서 ‘이후 몇(십) 년 동안 과도기가 지속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힘들어졌다.’ 식의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사례를 의외로 흔하게 본다(교과서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안다’고 말할 때의 평가 척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의 한 시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얼마나 아는지의 여부가 된다.

 

 

 

  이 사람 누군지 알아? 이토 히로부미? 안 되겠네. 민족의 역사도 모르는 매국노!

 

 

  서벌턴(Subaltern)이라는 개념은 우리말로 ‘하위자’ 또는 ‘하위주체’쯤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고 한다’라고 앞 문장을 끝맺은 이유는, 학부 시절에나 개념을 얼핏 익혔을 뿐 개념의 정확한 정의나 관련된 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이 주는 문제의식만은 이후 내 역사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엄연히 현실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들은 누구인가? 왜 그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잊히는가?

  잠깐, ‘그들’이 잊힌다고? 나는 그럼 민중이 아니고 엘리트쯤 되나? 이쯤에서 질문을 수정해 본다. 민중의 정확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살고 있고, 그 바탕에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피와 눈물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민중이 민주주의의 주체라는 것도, 권력의 근본이라는 것도 상식으로써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간 민주주의를 반추할 때 떠올리는 이름은 4.19 혁명의 김주열, 87년 항쟁의 김종철과 이한열, 이 정도다.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열사들의 이름값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은 그들의 피를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이 땅의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사실상 ‘들러리’ 취급을 받는다. 기껏해야 ‘몇십(또는 몇백)만’의 ‘인구수’로 다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민중이 잊힌 민주주의’라는 현실에서 비롯한다. 필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민주주의 잔혹사’라 할 때 이는 한국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탄압, 국가폭력 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혹은 희생된 사람이 여전히 가려지고, 역사에 잘 기록되지 않는 것 역시 잔혹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책은 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한 ‘잘 모르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4.19 혁명의 결과가 무엇인지, 5.18이 어떤 날인지, 6월 항쟁이 대략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정도는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한다(여담이지만, 나의 학부 시절 때도 5.16과 5.18을 구분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기사가 교내 신문에 나고 그랬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때 억울하게 끌려간 삼청교육대원들에 대한 진상조사가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4.19 혁명 때 이승만 하야를 분명하게 외친 이들이 마산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는 이야기, 산업화 시대에 ‘민주노조’를 이루려 노력했던 이들이 여성 노동자들이며 그들이 정부, 한국노총 및 남성 노동자들에게까지 핍박받았다는 이야기들은 생소할 것이다.

  역사 주체의 행위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면 그 주체는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있어 수행한 역할이 미미한 것일까? ‘그렇다’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어떤 주체와 그 주체의 행위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부차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관련 기록이 부족한 것이다.

  승자는 패자의 역사를 끊임없이 지워내는 한편, 자신의 역사를 치장하여 더욱 빛나도록 한다. 5.16 군사정변 관련자들은 ‘4.19 혁명 이후 사회는 어지러웠고 기존 정권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으므로 불가피하게 새로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라는 식으로 ‘거사’를 일으킨 이유를 댔다. 이러한 서술이 민주화 도래 이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내가 군인이던 2010년대에도 버젓이 군 정신교육 자료라는 이름으로 유포되고 있었다. 군 정신교육을 진지한 마음으로 듣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민주시민과 국가를 수호한다는 집단에서 왜곡된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설마, 지금도 정신교육 내용이 그러하려나). 개인적으로는 군사정변 관계자들이 내걸었던 명분이 그 당시의 실제적인 정치적 상황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를 낱낱이 지적하는 5장의 내용이 이 책의 백미라고 생각했다.

  아, 직전의 서술은 취소해야겠다.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중심과 경계를 구분 짓고 있었다. 이 작은 책에서조차! 어느 것 하나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했던 작은 역사들, 그 역사에서 살던 소외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이야기의 명료한 뜻을 지금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역사적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가 미래의 역사를 준비하는 데 있어 좀 더 넓은 시선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가정법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 명제는 반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명제는 우리나라가 저 고구려 때와 같이 드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등과 같은 민족주의적, 영웅주의적 사관을 포기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역사적 가능성을 소거해 버림으로써 일반의 역사의식을 결과 중심적으로 굳어지게 한다. 역사가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정의에 가깝도록 역사를 체화할 필요가 있다. 주변부를 배제했던 민주주의의 지난날, 그 잔혹한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은 가능성의 호출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맞이한 지 이제 겨우 30년 지났다. 그 중 10년 가까이는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형식적 껍데기만 남은, 민주주의가 사실상 뒷걸음질하던 시절이었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이제 다시 시작’일 뿐이다. 위대한 몇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코 위대하지 않은,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민중들이 만들어가는 역사에도 이제는 주목해야 한다. 사실, 그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역사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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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스트 한국말’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이 영상(링크)에서 말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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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갔더니 동기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ㅇㅇ(오빠/형)~ 얼굴 진짜 좋아졌네!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졌어.”

 

  물론 나는 단박에 알았다. 한국어 화법의 전통으로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완곡어법’인데, 그네들이 나에게 그것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살이 쪘다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살이 찌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자그마치 ‘체중 미달’로 학교에서 실시한 일제 헌혈에서 제외되기도 했었으니, 말 다 했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영양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지는 않아서, 몸무게‘만’ 따지고 보면 어지간한 남성 아이돌 가수 못지않았다. 술, 패스트푸드 등 체중 관리에 안 좋은 것들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도 그 몸무게를 유지했으니, 돌이켜보면 그때가 축복받은 시절이었다.

 

  과거의 영광 늘어놓으면 뭐하나. 운동은 끔찍이도 싫어했고 먹는 것, 특히 살찌는 음식은 끔찍이도 좋아했으니 살이 찌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새삼스럽게 배우자와 함께 하는 외식(=맛집 탐방)의 즐거움에 빠졌다. 집에서도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결국 결혼한 지 1년이 안 된 시점에 몸무게 증가폭이 두 자릿수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예의 인상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내가 죄인이다. 배우자를 살찌운 죄인…….

  BMI 수치가 ‘비만’으로 나오는 일은 내 인생에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였다. 조금 더 살이 찌면 ‘고도비만’으로 넘어가겠다 싶었다. 당장에 다이어트 시작.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그런데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운동이 싫다. 그럼에도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무한반복.

 

  그러던 중에 ‘생각하는 운동쟁이들’ 피톨로지의 신간을 보게 되었다.

 

  

 

  피톨로지는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를 통해 생존체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생존체력이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체력이다. 바야흐로 ‘맨정신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 시대이다(바꾸어 이야기하면 이 시대는 불안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 매일 스스로를 번아웃시키는 시대다). 식스팩이니 S라인이니 하는 몸짱이 되겠다고 운동을 하면, 안 그래도 지치는 일상이 더 지친다. 그래서 피톨로지는 제안했다. 일상을 보다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체력, 생존체력을 기르자고.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소개된 운동법은 정말 간단하다. 스쾃, 버피, 푸시업, 플랭크. 네 가지가 끝이다. 물론 실전으로 옮기면 알게 된다. 이 운동들은 정말 간단하지 않구나, 라는 혹독한 현실을. 결국 나는 생존체력도 제대로 못 기르고 스쾃 단계에서 며칠 버티다 뻗어 버렸다. 그러면 그렇지.

  어찌 되었든, ‘생존체력’이라는 개념의 제안도, 이것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컨텐츠로 가공하는 피톨로지의 내공에는 신뢰가 갔다. 그래서 블로그도 찾아가 업데이트된 새 글도 꾸준히 읽고 했었다.

 

 

 

  그런 피톨로지가 신간을 냈는데, 무려 다이어트 책! 제목부터 거창하다. 『공포 다이어트』. 그렇지. 살을 뺀다는 건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힘든 일이야……. 이건 아니고. 책 소개를 보니 여기서의 ‘공포’는 ‘공복감/포만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즉, 공복감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공포 다이어트’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덜 먹으면 빠진다’는 것인데,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우리는 당연한 소리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마나한 소리, 식상한 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대개 진실은 그 ‘하나마나한 식상한 소리’에 있다. 안 먹으면 살이 빠진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리 쉽게 굴러가던가. 어쩌다 과음을 하게 될 때도 있고, 미친 듯이 야식이 당길 때도 있고, 아픈 시기가 있어 입맛이 싹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도 있다. 먹는 게 계획한 대로 조절되지 않다 보니, 다른 묘수를 찾게 된다. 원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지방 다이어트 등등…….

 

  피톨로지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왜 사람들은 정도(正道)를 포기하고 샛길로 가는가? 단지 다이어트의 목적이 ‘살만 덜어내는 것’인가? 물론 다이어트는 살 빼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살 빼서 뭐 하려고? 예뻐지고 멋있어지려고? 아니면 단순히 건강해지려고?

 

  최근에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거식증으로 활동을 중단한 일이 있다(관련 기사). 살이 빠지면 지금의 한국 사회 기준으로는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게 맞다. 그런데,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것이 인생의 유일 목적인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아이돌 가수들의 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문제에 주목해 본다면, ‘어떻게든’ 살을 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살을 빼되, 건강하게 빼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대다수는 아이돌이 될 것도 아니고, 아이돌이 될 수도 없다.

  결국 우리 생활 습관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피톨로지는 이 점에 주목해, 지극히 기본적이면서도 장기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제시한다. 공복감과 포만감의 패턴을 포착하고, 이를 조절해 궁극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는 것.

  물론 지금 당장 살을 덜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피톨로지가 제안한 방법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 두 달 뒤부터 바캉스 철인데, 그렇게 천천히 해서 살 언제 빠지냐고! 하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다이어트는 결국 내가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건강을 잃은 마른 몸을 보고 예쁘고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을 함께 할, 평생까지는 무리더라도 장기간 함께 할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다면, 일단 먹는 것부터 차츰 줄여나가는 게 어떨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남들이 다 자는 새벽. 아직 갓난쟁이인 딸을 돌보느라 낮밤을 바꿔 생활하다 보니 저녁을 열두 시 이전에 먹고는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공포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나흘째, 예전 같으면 4시가 되자마자 패스트푸드점에 아침 메뉴 주문을 넣었을 텐데(‘x모닝’은 내 소울 푸드다), 물만 마시며 버틴다. 다음 끼니는 자고 일어나야 먹을 수 있다.

다이어트는 장기전이니까, 작심삼일하지 말고 버텨야겠지. 그래도 배고픈데 참는 건 정말 힘들다!

 

 

  ps. 『공포 다이어트』 에필로그에서 밝히기를, 원래 ‘교양과학서’로 기획되었던 원고가 지금의 ‘실용서’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그 증거다. “‘다이어트 책’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 내용이 많아?”라고 생각이 되신다면, 두 번째 챕터만 볼 것을 권래 드린다. 방법론으로만 따지자면 두 번째 챕터가 핵심이다.

  ps2.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색이 ‘다이어트 책’이니만큼, 첫 번째 챕터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나름의 동기부여를 하는데,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식/서술인지에 대한 고민을 잠깐 했다. 잠깐 했는데, 뭐, 다이어트 책이니, 어쩔 수 없겠다 싶어서 가볍게 읽고 넘어가버렸다. 혹시 모르니, 참고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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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종류의 SNS를 사용한다. 알라딘 블로그까지 하면 세 종류지만, 이건 이제 막 시작했으므로. 쨌든. 이들 SNS의 초기 타임라인을 구성한 건 N년 전의 나인데, 지금의 나와는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역시 다르다. 그 결과 내 SNS 타임라인에서는 주요 대선후보의 지지자들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2번 빼고.

  링크한 기사에서는 '대선 과몰입' 현상을 이야기한다. 멋대로 요약하자면, 대선 과몰입이란 지지하는 후보가 비판받는 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그 후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준-선거운동을 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기사 말미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는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한편 이에 따른 해결책으로 '인터넷으로부터의 도피'를 제시한다.


  SNS가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만큼, SNS 정체성(identity)을 둘러싼 담론도 많이 생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SNS 정체성 담론의 전환적, 보편적 패러다임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본다. SNS 정체성과 기존의 정체성 사이의 관계가 서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실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존의 관습 체계, 그러니까 SNS가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던 몇 년 전까지의 생각하던 습관에 따라 SNS를 오프라인으로부터 쉽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SNS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 중 하나가 '확증 편향'이라는 데에서도 이런 일반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오프라인과 달리' 자기의 선호 체계에 따라 인간관계를 재구성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 이 얼마나 편협하냐, 라는 생각. 실제로 이 비판은 현상의 경향성을 일정 정도 반영한 것이기는 하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니 말이다. (요즘 내 SNS 타임라인을 보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비판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인간관계는 스트레스다.' 사고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도 경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온다. 나만 하더라도, 모 SNS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럴 듯한 흰소리로 여성 문제를 호도하는 '자칭 전 논객'을 볼 때마다 '피꺼솟'한다. (알라딘에는 자신의 저서 비판에 장문의 분노를 리뷰랍시고 직접 올리신 분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를 그렇게 싫어하시면서 '페미니즘의 포비아 확산'에 관한 책 어쩌구 '~~~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곧 출간하신다는 그 분!!!) 그럼에도 그의 SNS 팔로우를 끊지는 않는다. 내 인성이 훌륭해서는 아니다. 다만 남들이 흔히 말하는 대로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물론 안다. SNS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달게 받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좋자고 하는 건데, 굳이 스트레스 받아야 하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나 하나 무기를 내려놓는다고 뭐가 바뀌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사실 나부터가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당장 이렇게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글을, 이런 황금 같은 주말에 길게 쓰고 있지 않은가(물론 나는 수험생이므로 주중/주말 구분이 의미 없다).


  탄핵이라는 역사적 전환기 이후의 첫 대선이니만큼 이 대선은 중요하다. 각 후보 지지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후보들에게는 나름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려 한다. 정치가 진정 차악을 선출하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부딪쳐야 한다. 어떤 지점에서 후보를 비판하고 어떤 지점에서 후보를 지지하고 수용하기로 할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생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 있다. 이 말에는 '수용'에 무게추가 쏠려 있긴 하지만, 정당한 비판이라면 그 비판을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글 쓰느라 나 혼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 할많하않.

 

  *사족: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칠 때 '예상 독자를 고려하라'고 한다. 이 글을 누가 읽을 것인지 염두에 두고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이 글은 내가 이용하는 한 SNS에서 특정 후보를 과도하게 지지하는 지인의 말이 날이 갈수록 과격해지기에 그가 한 번 보았으면 해서 썼다. 누가 어떻다, 이런 이야기를 글에 쓰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는 내 글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글을 약간 고쳐서 다시 썼다. 그의 구체적인 말들이나 가치관을 여기에 그대로 옮기면 그야말로 '뒷담화'가 되는 것이니, 진짜로 여기까지.

 

  인생은 고통이다. 할많하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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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에 역사한당> 미션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처음을 되새기는 의미로, 첫 미션 포스팅을 썼을 때와 그 내용을 떠올려 본다. 1주차 포스팅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 사회탐구 과목으로 3사(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를 선택했다고 적었다. 좋아하지 않는데 선택권이 있는 네 개의 자리 중 세 개를 역사 과목으로 채웠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역사 과목을 좋아했을까?

 

  입시나 취직을 준비하는, 그러니까 수능이든 공시든 어떠한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공부에 대한 방법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암기’와 ‘이해’로 나뉜다. 암기를 먼저 하고 이해를 할 것이냐, 이해를 한 후에 암기를 할 것이냐. 시험을 더 이상 치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유의 선문답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험생은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그리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론을 하루라도 빨리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준비하는 시험의 강사들도 강의 첫 시간에는 상기한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쨌든 시험에 합격해야 할 거 아니냐고!

 

  역사 이야기를 하다 왜 뜬금없이 암기니 이해니 하는 이야기를 했을까? 정규교육과정을 지나온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기본적으로 ‘역사 과목=암기 과목’이라는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 주요 과목이 아닌데 다루어야 할 항목들은 많다. 인물, 사건, 연도, 왕조 및 단체명, 기타 등등. 그럼 주요 과목이 아니니 시험도 안 보거나 덜 봐서 다양한 역사관을 접할 기회로 삼으면 좋으련만, 이 과목도 시험을 본다! 그렇다면 안팎으로 말이 많은 역사적 사항을 바탕으로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누가 봐도 ‘객관적’이라고 인정될 만한 사항을 바탕으로 출제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안다. 이상은 전자에 있었지만, 현실은 항상 후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역사=한 번 암기하고 말 것’으로 이해해 버렸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암기한 것을 쉽게 잊어버렸다. 시험을 더 이상 보지 않으므로.

 

  나 역시 이러한 혐의, 그러니까 역사를 역사로 대하지 않고 시험용 도구로 대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머릿속에 내용을 ‘입력’하고 ‘보존’만 잘 하면 시험에서 두고두고 써 먹을 수 있고, 그 결과로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3사’를 선택했던 진짜 이유다. (덧붙여, 국사는 당시 모 대학교 입시전형에서 사회탐구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과목이었다. 모 대학을 가려면 국사를 억지로라도 좋아해야 했다. 내 경우, 억지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에는 다양한 사람과 중요한 사건이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사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이는 드물 터,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우리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민족의식이 투철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요새 그런 이들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당연히 우리 역사의 민족주의적 해석도 경계하는 편이다(환단고기에 열광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질색’한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찾고, 거기에서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통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할 뿐이다.

 

  『쟁점 한국사』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한국사를 세 개의 시기(전근대, 근대, 현대)로 나누어 시기별로 여덟 개씩, 모두 24개의 주제를 다루었다. 교과서의 역사와 다른, 살아 있는 역사를 강조하다 보면 흔히 흥미 위주의 야사로 빠질 우려도 있는데 『쟁점 한국사』는 그러한 측면에서 균형감각을 잘 잡았다. 물론 주제에 따라 어떤 주제는 다른 주제와 일정 부분 겹치기도 하고, 하나의 사건이나 흐름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것도 있다. 이 많은 역사적 쟁점 중에서 독자와 공명하는 부분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의외로(!) 전근대편에 있는 강종훈 교수의 「신라의 여왕 출현, 어떻게 가능했나」가 깊게 인상에 남았다.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성골’과 ‘진골’의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한 것도 유의미했지만(이런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글 말미에서 과거사와 현재의 사회 현실을 잇는 통찰의 전형을 보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핵을 앞두고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이 폭로된 것을 계기로 상상을 뛰어넘는 실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능과 후안무치의 대명사로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녀의 몰락이 여성의 정치력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촛불집회 때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항의 의사를 전달한 여성단체에게 ‘친박 페미’ 운운하는 딱지를 붙인 SNS 기반 논객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최근 TV 토론에서 성소수자 관련하여 실언을 한 유력 대선 후보를 두둔하며 마음껏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냈다. 역사적 관점이 없으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의 인식과 사고 체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지에 대해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는 국가가 무능하고 부패한 이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를 참담하게 목도했다. 어쩌면 이번 대선은 10년의 폐허 위에서 새 정부를 세우는,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모두 폐허 위에 서 있다. 우리 모두 그 동안 조금씩은 망가졌을 수도 있다(당장 유력 대선 후보의 발언도 5년 전보다는 후퇴한 수준이라 평가된다). 이제부터 망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더는 폐허를 새로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퇴보의 순간에 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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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 「초혼」 中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넋을 이승으로 부르는 절규. 「초혼」의 어조는 「진달래꽃」으로 대표되는 김소월의 시적 어조와는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겹다는 임에게 진달래꽃을 뿌리고 반어법을 구사하고 그러지 않는다. 곱게 돌려서 이야기하는 대신 떠난 사람을 직접적으로 목 놓아 부른다. 이 시만 보면 김소월의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 자신으로 생각하는, ‘물아일체’의 진정성을 가진 이다.

 

  시인으로서의 김소월은 한국문학사에서 독보적 존재다. 하지만 김소월이 쓴 「초혼」의 시적 화자, 그러니까 대상 하나를 자기의 목숨(또는 정체성)과 동일한 무게로 두고 끊임없이 그 대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갈구하는 사람도 한국 사회에 드문, 독보적 존재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작년에 한 회고록이 출간과 동시에 때 아닌 ‘북풍’을 일으켰다. 회고록의 저자는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참여정부가 UN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과 관련해 북한과 사전 연락을 주고받았다’라는 주장을 회고록에서 한 모양이다. 이 논란이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다시 점화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합리적 보수’로 규정한 후보가 토론 초반에 이 회고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유력 후보를 공격했다. 이에 다른 후보가 ‘합리적 보수’ 후보를 비판했다. 비판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북한이 없었으면 보수는 선거를 어떻게 치렀겠어요?” (관련기사: http://omn.kr/n4pm)

 

  유력 후보 말마따나 ‘제2의 NLL’이라고도 할 수 있는 회고록 사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써 놨지만, 정작 나는 회고록이 출간되었을 당시 해당 사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연히 회고록도 읽어 보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놈의 북풍, 꺼지지도 않는구나. 그런데 이 지겹고도 식상한 북풍이 똑같은 내용으로 또 부는 것은, 대통령 선거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한국에서 보수의 본질은 국내의 모든 정치적 현안을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과 연결 짓는 능력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한국의 보수파는 해외의 극우파에 가깝고, 한국의 진보파는 해외의 보수파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흔히 접한다. 아마도 한국의 정치 지형도가 보수파에 유리한 식으로 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희한한 기준으로 갈리기도 하는데, 그 기준은 바로 북한 문제다. 범세계적 평화와 인류 평등 실현에 앞장서야 할 것 같은 진보파가 정작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으며, 반대로 국내의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국익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둘 것 같은 보수파는 북한 정권을 어르고 달래기보다 도발하고 대치하여 긴장 국면을 조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뒤틀린 기준은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역사의 상흔이다. 해방 후 신탁통치에 찬성하느냐(친탁), 혹은 반대하느냐(반탁)를 기준으로 좌익과 우익이 나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한국적 좌우익 구분 기준’의 기원이 된 것이다.

 

  『쟁점 한국사: 현대편』에 수록된 정병준 교수의 「해방과 분단의 현대사 다시 읽기」에서는 해방 공간의 운명을 가로지른 몇몇 역사적 순간 혹은 주체를 조명한다.

  첫째,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논의치고는 내용적 측면과 시기적 측면 모두 적절하지 않았던 모스크바 회담 결정.

 

  “모스크바 회담에서 한국 문제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고,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만약 양국이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 직후에 대한정책을 결정했다면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모스크바 결정은 시기적으로 너무 지체된 정책적 결정이었고, 내용적으로 실현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한국인들이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둘째, 모스크바 결정 이후 각국의 진영 논리와 이해 관계에 따라 한국 문제를 자의적으로 처리하고자 한 미국과 소련.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미국은 4대국과 협의하는 신탁통치 단계에서 미․영․중 대 소련의 3대 1 대결구도로, 국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소련은 오랜 식민통치를 겪은 한반도에서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폭발 일보 직전이므로, 임시정부 수립 단계에서 큰 방향에서의 좌파적 정권, 즉 친소적 정부가 수립될 수 있다고 판단, 국내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은 국제적 우위를, 소련은 국내적 우위를 자신의 정책적 지렛대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셋째, ‘소련은 신탁통치, 미국은 즉시독립’을 주장했다던 동아일보의 계산된 오보.

 

  “한국인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이 보도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 보도에 기초해서 신탁을 반대하는 반탁, 신탁을 주장하는 소련에 대한 반소,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이 반탁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즉 반탁=반소=반공운동이 된 것이다. 사실 반탁의 핵심논리는 한국인들이 즉시 독립할 자격이 있으므로 이를 부정하는 외세를 배격하고 즉시 독립하겠다는 반탁=반외세 즉시 독립이 타당했다. 그러나 전혀 사실과 다른 반소․반공이 핵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모스크바 결정의 사실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략) 반탁운동은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의 3․1운동에 비견될 정도로 민족주의 에너지가 가장 강력하게 집결된 사례다. 이렇게 집결된 에너지가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의 에너지 대신 즉시 독립을 향한 긍정의 에너지로 폭발했다면, 한국현대사의 방향은 달라졌을 것이다.”

 

  필자는 모스크바 회담 결정 내용이 반탁운동으로, 종국에는 분단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대한 원인으로 당시 한국 사회 정치 지도자 계층의 권력투쟁을 든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 세력 보전을 위해 지지층이 결집된 지역에서 운신했을 뿐, 조국 통일을 위해 대국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니까 이해가 된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한반도의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한반도를 무대로 자기 이익의 최대 실현만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리바이어던’의 재림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상태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습으로까지 이어져 왔다. 북한, 친북, 종북, 부르다가 내가 죽을 그 이름이여!

 

  요새 한국 문단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장강명 작가는 작년에 통일 한국의 미래를 가상으로 다룬 장편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출간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니, 한국의 보수파들이 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최근에는 눈치 보여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했던 바로 그 메시지 아닌가! 그러나 정작 작가는 소설 출간과 관련해 진행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밝혔다.

 

  “보수진보를 떠나서 북한이 비정상국가고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인 건 맞다. (중략) 다만 그것과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하고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립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543)

 

  TV 토론이 끝났다. 정책과 상관없는 네거티브 공방만 오갔다는 언론의 평가가 있다. 언론이 뭐라 하든, TV 토론에 나선 다섯 명의 후보 중 한 명은 대통령이 되어 향후 5년간 국정의 기본 방향을 정할 것이다. 부디 그 때에는 10년 전에 참여정부가 북한에게 어떻게 했는지의 문제 같은, 민생과 1도 상관없는 쟁점이 지금보다는 덜 전파되길 바란다. 부디 그 때에는 북한 문제에 따른 해외 정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될지 보수파와 진보파가 모두 ‘합리적’으로 방법을 궁리하길 바란다. 지금은 21세기고, 지금의 대중은 오보 하나에 쉽사리 입장이 나뉘었던 해방 직후의 대중이 아니다. 대중은 민생과 동떨어진 ‘북풍’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

 

 

* ‘이 와중에 역사한당’ 3주차 미션: ‘한국의 진보 보수를 나누게 된 역사 쟁점’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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